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세대구분 | ||||||
현역 시절 | 은퇴 이후 | |||||
올드 게이머 | 드래프트 세대 | 아프리카 세대 |
1. 개요
스타크래프트의 프로게이머 중 KeSPA 드래프트 제도가 시작되었던 2005년 이후 데뷔하고[1] 2007년 이후부터 전성기를 펼친 선수들을 일컫는 말.[2][3] 반대말로 올드 게이머 세대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드래프트 세대는 드래프트 제도가 처음 도입된 2005년만 하더라도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4]나 하부리그 위주로만 활동했다.[5] 그러다가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을 시작으로 양대 개인리그 본선에 진출하여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더니, 2007년 이후 3.3 혁명을 기점으로 기존의 올드 게이머들을 밀어내고 프로씬을 주도하기 시작했다.[6] 택뱅리쌍이 드래프트 세대 중에서 유달리 두드러지는 이유는 드래프트 세대 중에서도 세대가 빠른 세대(일명 곰TV 세대)이거나(택리쌍), 그 이전 세대(뱅)임에도 불구하고 동세대 게이머는 물론 보다 뒷세대( 김민철, 정윤종 등)에게도 밀리거나 세대교체를 당하지 않고 꿋꿋히 버팀으로써 오랜 기간 동안 엄청난 커리어를 쌓았기 때문이다.
2. 상세
[스타1] 격동의 2007 시즌 : 드래프트 세대 라이즈초창기 e스포츠판은 지금처럼 체계적인 구조와 선수 선발 제도가 잡혀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게임단은 게이머들간의 연습을 원활히 하기 위해 구성된 길드(혹은 클랜)가 확장된 개념에 가까웠으며, 프로리그와 같은 팀간의 경쟁 체제 또한 없었기 때문에 감독 및 모기업과 같은 제도 또한 매우 부족했다.[7] 무엇보다 당시에는 협회 프로게이머와 비협회 프로같은 기준이 없어서, '프로게이머'란 그저 많은 게이머들 중에서 실력이 출중하여 게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상금을 타갈 수 있는 게이머 정도의 위치였으며, 프로 게이머를 선발하는 방법 역시 특정한 제도가 아니라 어느 팀에 소속된 게이머나 감독이 뛰어난 실력으로 입소문을 탄 비 프로를 수소문하여 데려오는 등의 방법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2003년 경 팀리그,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가 생겨나고 2005년부터 온게임넷과 MBC GAME의 양대 게임 방송사가 하나의 프로리그를 주관하게 되었으며, KeSPA 가입 절차가 생겨나면서 많은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각기 다른 방송사와 단체에서 주관하던 여러 게임 대회가 사실상 양대 개인 리그 주관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게임 리그로 통합되었고[8][9], 이에 따라 수많은 프로게이머들과 게임단들을 하나로 묶어 관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 이에 따라 프로게이머들을 선발하는 제도 또한 기존의 추천 및 캐스팅과 같은 원시적인 형태가 아닌, 커리지 매치라는 공개적인 프로 게이머 선발 대회를 통해 뽑는 방식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또한 기존의 게임단들 역시 거의 대부분이 스폰서를 두고 감독과 코칭 스태프 등의 인사와 합숙 및 전략 전술 교류 등의 방법을 통해 체계적으로 소속 게이머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리그가 체계적으로 자리잡고, 구단에서 연봉을 지급하는 등 직업적 안정화가 이뤄지자 프로게이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으며, 이는 프로게이머의 질적/양적 팽창을 가져오게 된다. 2008년에는 등록 프로 게이머가 무려 500명을 돌파했는데, 이들 뿐만 아니라 준프로, 온라인 연습생, 커리지 매치 참가자, 클랜마스터가 숙소를 잡고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을 모아 연습하는 일종의 ' 프로게이머 학원' 단체까지 등장하면서 수천 명에 달하는 프로 게이머 인재풀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 데뷔하게 된 드래프트 세대들은 신인들이 다 그렇듯 데뷔 초반에는 대부분 기존에 게임판을 휘어잡고 있던 일류급 올드 게이머 세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경험과 게임 이해도도 부족했고 방송 경기에 적응하지 못해 실수를 연발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다 그렇듯 창의성과 응용력 또한 떨어져 기존의 게이머들에 맞설 마땅한 무기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와 오랜 기간을 거치며 쌓인 기존 게이머들의 노하우를 체계화된 선수 육성 방식이라는 제도와 결합시켜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는 무엇보다 우수한 이점이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차츰 올드 게이머 세대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신인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조짐은 2006년부터 나타나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에 접어들면서 이미 올드 게이머 세대 멤버를 주력으로 한 KTF 매직엔스와 SK텔레콤 T1, 팬택 EX의 성적은 저조해진 반면, 르까프 오즈, MBC GAME HERO 등의 신인들이 중심이었던 팀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7년 3월 3일, 스타판의 대격변을 알린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것이 3.3 혁명이다. 드래프트 세대가 차츰 올드 게이머 세대를 밀어내고 있던 시기라고는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엄청난 포스를 보이며 본좌라고 인정받고 있던 마모씨를 상대로[10], 이전까지 촉망받고는 있었으나, 당시까지만 해도 일류와는 거리가 있었던 듣보잡 코큰 토스가 마주작을 일방적으로 관광을 보내버렸고, 이 사건을 기점으로 그나마 엇비슷하던 올드 게이머 세대와 드래프트 세대 간의 전력 격차는 확연하게 후자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 후, 안 그래도 이전에 비해 부진한 성적으로 우려를 샀던 기존의 강호 KTF[11]와 SKT T1[12]은 나락으로 떨어져버렸고, 르까프와 MBC GAME은 물론, 2006년에 부진했던 삼성전자 칸이나 완벽한 약체였던 STX SouL, 온게임넷 스파키즈[13]가 포스트시즌에 올라서면서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게 된다.
이처럼 올드 게이머 세대와 드래프트 세대 간의 관계와 세대 교체가 되는 모습은 e스포츠 내에 있었던 어떤 세대 교체 과정보다도 극적이고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브루드 워판은 크게 볼 경우, 올드 게이머 세대와 드래프트 세대라는 2개의 세대로 나뉜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상황을 명확하게 보여준 예시가 3.3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올드 세대 내에서도 세대 교체는 여러 번 있어왔고[14] 드래프트 세대 내에서도 올드와 신예가 갈리며 수많은 게이머들이 그 안에서 데뷔하고 떠오르며 도태되어 갔지만, 이 시기만큼 대대적인 격변이 일어났던 시기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과거에도 Gillette 스타리그 2004를 기점으로 한 '질레트 세대'로 불리는 박성준이나 전상욱, 한동욱 등 새로운 게이머들이 유입되는 시기도 있었지만, 이들도 사대천왕으로 대표되는 세대의 게이머들을 완전히 압도할 수는 없었다.[15] 임요환이 비슷한 세대인 장진남, 홍진호, 김동수, 박정석과 결승전에 붙은 다음에 게이머 커리어 중반기에는 더 늦게 데뷔한 최연성, 오영종과 결승전에서 붙고, 심지어 이윤열은 홍진호, 박정석, 조용호, 강민, 최연성, 박태민, 박성준, 오영종,
2007년 당시에는 스타판 매니아들 대부분은 아직 이를 이해하기 어려운 시기였고, 일시적인 슬럼프나 노쇠화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2006년만 해도 8강권에서 결승까지 올라가던 선수들이 단 1년 만에 16강 통과도 버거워진 상황은 단순히 나이로 인해 기량이 줄었다고 설명하기 힘들었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주 5일제 프로리그로 인한 과도한 선수 혹사'나 '프로 게이머의 상향 평준화' 정도를 문제로 지적했다. 하지만 주 5일제가 보편화되고 초기 데뷔한 드래프트 세대들이 슬슬 노장의 반열에 들어간 2012년 시기에도 택뱅리쌍은 여전히 팀에서 에이스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두 지적 역시 후대에 와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심지어 드래프트 세대 가운데는 2010년 중후반이 지나 스타크래프트 2라는 시리즈만 같은 완전히 다른 게임에서도 활발하게 활약하는 게이머들[16]이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드래프트 세대에 대한 재인식은
2007년의 대격변은 나이나 혹사에서 온 문제가 아니라 드래프트 세대가 올드 게이머 세대와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라는 결론을 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계에 이른 피지컬과 하루 30~40게임을 우습게 넘치는 엄청난 연습량으로 인해 프로게이머의 부상 문제도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마치 인간의 한계를 넘는 공을 던지는 현대의 강속구 투수들이 부상에 시달리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엄청난 연습량으로 유명한 이제동과 이영호는 고질적인 손목 부상에 시달렸고, 이제동은 피지컬 하락을, 이영호는 수술 후 고된 재활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20] 물론 이전에도 손목 부상으로 경기력이 악화, 은퇴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었으며, 손목터널증후군은 이미 프로게이머의 직업병으로 익히 알려져 있었으나, 프로게이머의 재활이나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어 크게 화두가 되지는 못했다. 물론 게임단에서 헬스 시간을 따로 마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것도 몸 관리해서 팬 모으고 하루종일 앉아 있지만 말라는 정도 의미였으니 조금 의미가 다르다.
3. 특징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프로씬이 흔히 올드 세대와 드래프트 세대라는 2개의 시대로 나뉘기 때문에 올드 세대와 드래프트 세대의 차이점으로 봐도 괜찮을 것이다.일단은 드래프트 세대 안에서는 세대 교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올드 세대는 그 안에서 4~5차례의 소규모 세대 교체가 있었다. 테란만 해도 최강자 라인인 임이최가 각각 최강자인 시절과 이 3명의 기량이 하락하기 시작한 과도기[21] 등 4개의 시대로 나눌 수 있으며, 저그도 조진락, 변태준으로 정리되는 2개의 저그의 3강 체제들과 이들 이전의 강도경과 국기봉, 이들 이후의
하지만 드래프트 세대는 어떤가? 드래프트 세대도 자그마치 5년이라는 긴 시간으로 올드 세대보다 전혀 압도적으로 짧지 않다.[24] 하지만 드래프트 세대가 바야흐로 개막한 3.3 혁명부터 스타 1이 끝날 때까지 당대의 최강자는 말 그대로 항상, 예외 없이 택뱅리쌍+ 허덴 6명이였다. 물론 이들 중에서도 잠깐 침체기를 가졌던 선수들이 있고 같은 세대에 부상한 또 다른 강자들, 그 중에서는 이 6인 중의 몇 명까지도 능가한 선수들이 분명히 존재한다.[25][26] 하지만 이때에도 당대 최강자는 항상 택뱅리쌍허덴 이 6명 중 누군가가 차지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택뱅리쌍허덴 이 6인들의 최강자 자리가 완전히 빼앗긴, 그니까 세대 교체가 일어난 적은 없다. 그것을 보여주는 매우 좋은 지표가 바로 KeSPA 랭킹으로, 택뱅리쌍허덴 6명은 허영무를 제외한 5명이 모두 1위를 찍어봤고 유일한 예외인 허영무도 2위를 5번이나 해봤다.[27][28] 거기다가 올드 세대 최후의 강자인 마재윤이 몰락해서 스타판이 완전히 드래프트 세대로 옮겨온 이후 1위는 항상 택뱅리쌍덴 5명의 차지였으며, 2위도 신동원(5번), 김정우(1번)을 제외하면 택뱅리쌍허덴 6인의 독차지였다.
또 하나는 양대 리그. 3.3 혁명 이후의 양대리그에서 4강 이상에 택뱅리쌍허덴 중 1명도 진출하지 못한 리그는 EVER 스타리그 2008이 유일하며[29][30], 결승으로 좁혀봐도 Daum 스타리그 2007, 아발론 MSL 2009와 피디팝 MSL 단 3개 뿐이다.[31]
만일 스타판이 외부적 요인으로 무너지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좀 더 긍정적인 가정을 해볼 수도 있다. 택뱅리쌍은 2012년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저력을 보이고 있었다. 송병구, 이제동, 김택용은 개인리그에서는 주춤했으나 프로리그에서는 여전히 상위권의 성적을 보였다. 이영호는 개인리그에서도 우승을 노릴 만한 저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허덴이라는 새로운 강자들도 등장했다. 김명운, 신동원, 김정우는 물론, 이신형 같은 뉴페이스도 두각을 보이고 있었다.
따라서 택뱅리쌍이 나이로 인해 쇠락기가 오더라도, 이미 최적화된 피지컬과 개념을 바탕으로 정상을 유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고, 허덴을 시작으로 수많은 새로운 스타들을 탄생시켰을 지도 모른다. 흡사 임요환이 투혼을 발휘해 2005년에도 결승에 가고, 이윤열, 조용호가 2005~2006년에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이들이 신인들과 격돌하는 과정에서 오영종, 박지호, 한동욱 같은 중견 게이머들이 각광받으며 결국 게임단이 전원 스폰 유치라는 쾌거를 이룩한 것처럼 말이다.
4. 드래프트 세대의 예
4.1. 테란
4.2. 저그
4.3. 프로토스
5. 관련 문서
-
스타드래프트 - 드래프트/스타크래프트 시리즈
- 루키리그 - 2011년 하반기 드래프트부터 마지막 드래프트인 2013년 상반기 드래프트는 루키리그 입상자로 한정되었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이 시기부터 드래프트 참가자가 급감하였다.
[1]
일반적으로 실시되는 1~5차 지명 외에도 추천 선수 등 다른 방법으로 데뷔한 게이머도 많다.
[2]
드래프트 제도는
스타크래프트 2로 넘어간 2013년 상반기까지 실시되었다.
[3]
드래프트 제도 실시 이전에 데뷔한
올드 게이머 중에서도 드래프트에 참가해 게이머 생활을 이어간 케이스도 있다. 항목 참조.
[4]
공교롭게도 이 대회부터 기존
온게임넷 프로리그와
MBC GAME
팀리그와 통합했다.
[5]
이들 중 일부는 드래프트 도입 이전에도 준프로나 아마추어 자격으로 팀 단위 대회나 하부리그 및 예선에 참가했다.
[6]
이 때문에 본격적으로 세대 교체가 시작된
곰TV MSL 시즌1을 기점으로 하여 곰TV 세대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다만 곰TV 세대는 드래프트 세대 중에서도 비교적 초창기에 데뷔했던 선수들에 한정되기 때문에, 양자가 완전히 매치되는 것은 아니다.
[7]
사실 거의 선사 시대 수준인 1999~2000년만 하더라도 조기에 이런 체제가 갖추어지고 있었다. 당시 스타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달리고 너도나도 프로게이머가 되고자 하면서 이들이 속한 게임단과 리그만 수십개에 달했으며, 프로리그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리그와 게임단 모두 어엿한 스폰서까지 갖춘 나름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있었지만 2000년도 말
IT버블이 꺼지고 스폰서나 리그를 개최하던 기업들 상당수가 철수하거나 아예 부도가 나버리면서 순식간에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게임판 자체가 박살나버릴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스타크래프트를 제외한 e스포츠 종목 대부분은 얼마 못 버티고 사라졌고,
워크래프트 3가 나올 때까지 거의 스타크래프트만이 유일한 e스포츠 종목으로 남았다. 수십개에 달하던 게임단 역시 대부분 사라졌고, 리그 또한
온게임넷 스타리그,
MBC GAME 스타리그를 중심으로 한 양대리그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팀리그 등의 팀 단위 대회로 재개편되는 계기가 된다.
[8]
이 과정에서 양대 리그에서 주관하지 않았던 여타 리그의 전적들은 모두
KeSPA 비공식 전적으로 치부되게 되었다. 그리고 졸지에 엄연한 우승 경력자였던
모 게이머께서는
콩라인의 시조로 전락하게 되었다.
[9]
이 양대 리그 이외의 리그들이 모두 비공식으로 치부되어버린 것은 결코 이들이 OSL, MSL에 비해 규모가 작거나 권위가 낮은 듣보잡 리그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스타크래프트 극초창기만 해도 이들 중 상당수는 OSL 이상으로 권위있고 거대한 리그들이었다. 최초의 리그인
KPGL을 비롯해
KIGL,
KGL, PKO 등의 3대 메이저 리그가 모두 당시에는 KeSPA 등록 공인 대회였다. 그러나
IT버블 붕괴로 인한 혼란기 이후 게임판이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이들 리그가 모두 사라지면서 관련 자료를 찾기조차 어려워져 버렸고, KeSPA 측에서도 이미 존재하지도 않게 된 이들 리그들의 자료를 찾는 수고를 들여가면서까지 이들을 공식전으로 인정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10]
마모씨는 2003년 데뷔한 올드 게이머이다.
[11]
특히 KTF의 비교적 확실한 카드이자 억대 연봉을 받던
강민,
박정석,
홍진호는 잠시 복귀했던
김동수와 더불어
패왕사신기, KT 노인정스(...)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으며 KTF의 흑역사를 쓰게 되었다. 올드 네임드 선수들이 아직 많이 포진해 있고, 이영호를 주축으로 한 신세대로 세대교체를 하기 전까지 2007년의 KT는 팀 역사상 최약체였음은 물론, 연봉 대비 성과 소위 가성비는 더욱 나빴다.
[12]
역시 올드 게이머인
최연성,
박용욱,
박태민 등이 있었다.
[13]
더 정확히 표현하면 전자는 한 때는 저그 군단으로 불릴 정도로 강했으나 부진한 경우, 후자는 한때
SKY 프로리그 2004 3Round에서 앞에서 소개된 KTF를 상대로 우승할 정도였으나 그 이후 부진해진 경우다.
[14]
대표적으로
신주영,
이기석,
김캐리,
국기봉,
최진우,
기욤 패트리 등, 방송 경기보다는 래더나 국제 대회 등에서 활동하던 세대 및
김동수,
강도경,
김정민,
장진남,
장진수,
조정현,
김현진,
임성춘 등의 드래프트 세대가 떠오르기 전 이미 은퇴하거나 하락세에 접어들었던 게이머가 있다. 이런 흔히 스타판 고대 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프로리그가 도입되는 시기쯤 은퇴하거나 기량이 크게 하락한다. 프로게임 씬이 아마추어리즘에서 진정한 프로화의 길을 걸은 것이 이 시기이다.
[15]
질레트 세대의 주역 중 1명인 박성준의 최악의 천적은 사대천왕의 일원인 이윤열이다.
[16]
전태양,
이신형,
김대엽,
어윤수 등
[17]
사실 이런 평가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건 전성기를 맞은 이후 성적이 급락한 점도 한몫할 것이라고 본다. 역대 본좌 중 단기간에 이렇게 참혹하게 몰락한 사례가 없기 때문.
[18]
하지만 이 시운은 그가 결국
기적적인 결승전 패배 이후 급속도로 추락하는데 제공을 했으니 결국에는 양날의 검이였다.
[19]
한동욱,
전상욱,
변형태 등의 테란 강자들이 있긴 했지만 다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들에 비하면 다들 조금씩 아쉬운 선수들이었다.
[20]
이후의 이야기이지만 이영호는 이 문제 때문에 병역마저
사회복무요원으로 갔다.
[21]
즉, 이 3명이 번갈아 가면서
마재윤한테 얻어맞던 시절.
[22]
송병구는 매우 애매하다. 데뷔만 보면 올드 세대 과도기 선수이나 이때는 유망주를 벗어나지 못한 수준의 선수였다. 다만 드래프트 세대가 막 개막할 무렵 기량이 올라
택뱅리쌍과
육룡의 일원까지 되었다.
[23]
둘 다 은퇴한지 오래였다.
[24]
올드 세대 중에서도 완전한 고대(김동수, 임성춘, 기욤 패트리 등이 활동하던 시절)는 더 이질적인 시대였기 때문에 임요환의 등장인 2000년 즈음부터 기점으로 잡으면.
[25]
특히 허영무는 2회 준우승 이후 역대급 슬럼프에 빠져 그 정도 위치의 선수가 갈 수 있는 가장 밑바닥인
패왕라인에 택뱅리쌍허덴 6인 중 유일하게 가입하는 등 고난을 이어 갔기에 허영무를 일시적으로 능가한 선수는 꽤 많은 편이다. 사실 이때까지만의 기록으로는 허영무는 우승을 한 것도 아니기에 분명히 나머지 5명과 같은 반열에 두기에는 커리어 차이가 많이 났었다. 이 이후에 본인이 슬럼프를 화려하게 극복하고 정점에 서서 인정받고 당당히 입성한 것.
[26]
사실 김택용도 끔찍한 슬럼프에 2~3번 빠진 적이 있다. 심할 때는 케스파 랭킹 20위 밖으로 밀려났을 정도.
[27]
이 당시의 1위는 모두 이영호.
[28]
택뱅리쌍덴 5인을 제외하면
신동원과 함께 가장 많이 2위를 한 선수이다.
[29]
허영무와 이영호가 8강에 진출하기는 했다.
[30]
대신 이 대회는 올드 세대 선수인
박성준의 화려한 부활과 골든 마우스 수상, 스타판에서 유일하게 3,3혁명 이전과 이후에 모두 우승을 경험한 선수라는 타이틀로 장식했다.
[31]
다음 스타리그는 4강에서
송병구와
이영호가, 뒤의 두개는 둘 다
이제동이 4강에서 탈락했다.
[32]
이 리그의 문제는 "Golden Age of Zerg"라고 불릴 정도의 저그 편중에 있다.
저저전이 6개의 브루드 워 내 종족 매치 중 가장 노잼으로 유명하기 때문. 다만 택뱅리쌍허덴 6명 중에 누군가가 결승에 올라갔으면 이들 6명이 스타판 최대 흥행 카드 6명이라서 기본적인 흥행은 했을 것이기에 결승전에 이들의 부재가 뼈아팠던건 맞다.
[33]
그래서 덕분에 둘 다 결승전에 택뱅리쌍의 부재에도
피디팝 MSL 따위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수준으로 흥행했다. 진에어는 결승전 흥행 폭망은 커녕 오히려 스1 종반부를 장식하는 역대급 리그로 남았다.
[34]
신동원은 우승 이후 있었던 단 3개(MSL 1개, 스타리그 2개)의 브루드 워 대회에서 2개에서 4강을 찍고
KeSPA 랭킹에서 5회나 2위를 찍었던 선수이다. 분명히 대회가 더 많았다면 (최소한 저그 내부 한정으로는) 이제동을 뛰어넘어 세대교체를 할 가능성이 높았던 선수이다.
[35]
데뷔 자체는 2007년 하반기에 했으나, 2009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공식전을 치렀다.
[36]
데뷔 초에는
팀플레이 선수로 뛰다가 한 시즌만에 폐지되고 난 후에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37]
택뱅리쌍허덴의 일원인
정명훈에게 역상성전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강했다.
스1 프로시절 남긴 커리어는 미미하지만 가능성은 분명 보여줬던 선수.
그리고 스2로 넘어가 승승장구해 개인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다.
[38]
이들은 스타 프로씬이 끝나고 개인방송으로 옮겨온, 흔히
아프리카 세대라고 불리는 현재 스1에 남은 경우에 활약하고 있다. 아프리카판 3대 토스는 장윤철, 정윤종, 변현제이고 김민철이나 김성현, 정윤종은 우승까지 했으니.
[39]
대표적으로
3김저그의 일원인 김정우, 김명운과 투명테란
이재호. 김윤환의 실력이 신경쓰이면 지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