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03:27:03

한국프로야구/2006년/신인 드래프트

2006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넘어옴
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 신인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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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차 지명3. 2차 지명
3.1. 지명방식3.2. 지명 결과
4. 드래프트 평가5. 이모저모

1. 개요

2006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2006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2005년 6월 5일까지 각 팀에서 팀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
1차 지명자 계약금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 [1]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김효남 (경주고-건국대, 투수) 1.5억 원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 남윤희[2] (신일고, 투수) ※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4~2009).svg 한기주 (광주동성고, 투수) 10억 원[3]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 이재원 (인천고, 포수) 2.5억 원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김기표 (경기고-경성대, 투수) 2.1억 원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 유원상 (북일고, 투수) 5.5억 원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2003~2008).svg 손용석 (부산고, 내야수) 1억 원

3. 2차 지명

2005년 8월 31일 서울특별시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3층 거문고홀에서 개최되었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상무 소속 선수들 등 총 700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4]

3.1. 지명방식

1라운드부터 9라운드까지 진행되며 각 팀은 최대 9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지명방식은 각 라운드마다 전년도 순위의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3.2. 지명 결과

- ※표시는 지명권 포기나 대학 진학으로 인한 지명권 소멸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 볼드표시는 스탯티즈 기준 통산 war이 2 이상 되는 선수한테 부탁드립니다.
라운드 롯데 한화 LG SK KIA 두산 삼성 현대
1 나승현
(광주일고,
투수)
류현진
(동산고,
투수)
신창호
(경동고,
투수)
김성훈
(인천고,
투수)
손영민
(청주기공,
투수)
김용성[5]
(덕수정보고,
투수)
차우찬
(군산상고,
투수)
강정호
(광주일고,
포수)
2 김정환
(동산고-경남대,
투수)
양승진
(춘천고,
투수)
원종현
(군산상고,
투수)
홍명찬
(한서고,
내야수)
박정규
(청주기공-경희대,
투수)
민병헌
(덕수정보고,
외야수)
김상수
(신일고,
투수)
김영민[6]
(덕수정보고,
투수)
3 김문호
(덕수정보고,
외야수)
정범모
(청주기공,
포수)
윤동건
(속초상고,
투수)
김성현
(광주일고,
내야수)
박경태
(동산고,
투수)
박성남
(동성고,
투수)
김기태
(동산고,
투수)
황재균
(경기고,
내야수)
4 배장호
(유신고,
투수)
신해수
(화순고,
투수)
황선일
(군산상고,
외야수)
김용태
(인천고,
투수)
이해창
(경기고,
포수)
[7]
송영찬
(경북고,
내야수)
장준환
(동성고,
외야수)
조용훈
(성남고,
투수)
5 김유신
(경남고,
투수)
장병탁
(서울고-성균관대,
투수)
김영롱
(인천고,
투수)
김재현
(원주고,
외야수)
김준무
(서울고,
내야수)
유상우
(효천고,
내야수)
고관성
(주엽고,
투수)
신현철
(유신고,
외야수)
6 황성용[8]
(부산고-성균관대,
외야수)
임기범
(성남고,
포수)
박영주
(휘문고,
투수)
김남영
(북일고,
내야수)
변강득
(용마고,
투수)
최주환
(동성고,
내야수)
모상기
(신일고,
내야수)
유선정
(상원고,
포수)
7 박상흠
(경남고,
투수)
김성환
(신일고-경희대,
내야수)[9]
최승준
(동산고,
포수)
김태훈
(대구고,
포수)
[10]
박경진
(춘천고,
포수)
홍병오
(서울고-송원대,
투수)
김현준
(상원고-탐라대,
투수)
유재신
(북일고,
내야수)
8 이진혁
(세광고-동아대,
내야수)
패스 패스 패스 이성준
(선린인터넷고-경희대,
외야수)
양의지
(진흥고,
포수)
현승민[11]
(덕수정보고,
포수)
이정신
(인천고-단국대,
투수)
9 홍유택
(덕수정보고-건국대,
내야수)
패스 패스 이명기
(인천고,
외야수)
패스 박진원
(신일고,
외야수)
김창호
(진흥고,
외야수)
김동진
(부경고,
투수)

4. 드래프트 평가

4.1. 선수별 총평

4.1.1. 롯데 자이언츠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2003~2008).svg
롯데 자이언츠
RD 지명자 평가
1차 손용석
(부산고 / 투수)
계약금 1억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당시 부산팜에 찍을 선수가 없어 김유신과 고민 끝에 지명한 선수이다. 1군에서 백업으로 활약하다 2017년도에 은퇴하였다.
2차 1RD 1번 나승현
(광주일고 / 투수)
류현진 거르고 나승현이라는 꼬리표로 인해 커리어 내내 고통받았던 선수. 16세이브를 올렸던 데뷔 시즌을 제외하면 1군에서 거의 활약하지 못하고 은퇴했다. 본인은 별 활약을 하지 못한 원인을 잦은 투구폼 수정으로 꼽았다.
2차 2RD 9번 김정환
(동산고-경남대 / 투수)
나승현 지목에 이은 롯데의 연속삽질, 이해 대졸 출신중 상위라운드에 뽑을 인물이 없는 흉작이였는데 오승환을 생각하고 의외로 상위라운드에 지명됐다. 결과는 대참사
2차 3RD 17번 김문호
(덕수정보고 / 외야수)
덕수고 천재타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야수 최대어 중 하나로 내심 1라운드도 기대되는 선수였으나, 의외로 3라운드 까지 밀려 롯데가 지목할 수 있었다. 2014년까지는 백업신세였으며, 2016년에 6월초 까지 풀타임 4할을 찍으며 드디어 각성하는 듯 했으나 이후 추락하여 3할 2푼으로 시즌을 마감. 이후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으며, 2019년 방출되었고, 2020년 한화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해 방출되었다. 2016년 초의 대활약으로 '대(大)타자'라는 별명을 얻긴 했으나 커리어하이인 그 시즌의 wRC+도 117에 불과했으며, 결과적으로 프로 경력은 고교야구 시절의 명성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2차 4RD 25번 배장호
(유신고 / 투수)
강영식, 임경완 정도의 성적은 아니었어도 추격조 정도의 위치에서 나름 쏠쏠한 활약을 해주었다. 07~10년까지 08년을 제외하고 매년 50~55이닝 가까이를 투구하며 그럭저럭 밥값은 했으며, 이후 부진하는 듯 하다 2016년말 제구가 잡힌 듯 좋은 모습을 보여주더니 2017년에는 전반기 내내 롯데의 필승조로 자리잡아 맹활약을 펼쳤고, 후반기에 좀 얻어맞긴 했어도 17년에는 66이닝을 계투로 던지며 롯데 불펜의 핵심 자원으로 자리잡았다. 오히려 통산 WAR은 김문호보다 높으며, 돋보이는 활약을 한 시즌은 없어도 커리어 전체로보면 불펜에서 제 몫은 해줬다고 평가받는다.
2차 5RD 33번 김유신
(경남고 / 투수)
2차 6RD 41번 황성용
(부산고-성균관대 / 외야수)
나승현과 마찬가지로 데뷔시즌이 커리어하이였으며, 이후 백업으로만 간간히 출장하다 2015년 은퇴했다. 수비에 비해 타격이 너무 안되었던 케이스.
2차 7RD 49번 박상흠
(경남고 / 투수)
2차 8RD 57번 이진혁
(세광고-동아대 / 내야수)
2차 9RD 62번 홍유택
(덕수정보고-건국대 / 내야수)

4.1.2. 한화 이글스

파일:한화 이글스 화이트 엠블럼(1994~2006).svg
한화 이글스
RD 지명자 평가
1차 유원상
(북일고 / 투수)
한화에서는 그런저런 모습을 보여주다가 2011년 7월 LG로 트레이드되어 꽃을 피운 선수이다. 이후 2018년 2차 드래프트로 NC로 이적, 2019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으나 kt에서 받아주어 재기하였다. 2021 시즌 종료 후 은퇴하였다.
2차 1RD 2번 류현진
(동산고 / 투수)
한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좌완 선발투수 1차지명도 아니고 2차 1번도 아니고 2차 2번으로 먹었다. 데뷔 첫 해부터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1위를 기록하며 트리플 크라운, 골든글러브, 신인왕, MVP를 차지하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암흑기에 빠진 팀의 선발을 혼자 이끌고 7년 동안 KBO를 평정하면서 98승 평균자책점 2.80 swar 44.74을 기록했다. 2012 시즌 종료 이후 6년 3600만 달러에 LA 다저스로 이적하면서 한화 이글스에 엄청난 이적료까지 남겨준 것은 덤.[12] KBO를 떠나 메이저리그에서도 2013 시즌 신인왕 4위를 기록하면서 준수한 3선발로 자리잡았으며, 이후 부상으로 오랜 기간 재활하다 2019 시즌에 각성하여 리그 평균자책점 1위, 사이영 2위를 수상하는 등 개인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냈고, 4년 8000만 달러에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한 첫 시즌인 2020 시즌에도 평균자책점 5위, 사이영 3위, 워렌 스판상 수상 등을 기록했다. 2024 시즌부터 다시 한화에서 활약하고있다.
2차 2RD 10번 양승진
(춘천고 / 투수)
2010 시즌 종료 후 LG로 이적하였고 2015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2차 3RD 18번 정범모
(청주기계공고 / 포수)
백업 포수로서 아픈손가락이다. 실력에 비해 포지션 특성상 꽤 긴 시간 동안 한화의 백업 포수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2018 시즌 종료 후 윤호솔과 트레이드되어 NC에서 뛰었으나 2022 시즌 후 방출되었고 은퇴하여 한화의 코치로 부임했다.
2차 4RD 26번 신해수
(화순고 / 투수)
2011 시즌 도중 방출되었다. 2017년부터 화순초 감독을 지내고 있다.
2차 5RD 34번 장병택
(서울고-성균관대 / 투수)
2차 6RD 42번 임기범
(성남고 / 포수)
2007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2차 7RD 50번 김성환
(신일고-경희대 / 내야수)
2차 8RD 패스
2차 9RD 패스

4.1.3. LG 트윈스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LG 트윈스
RD 지명자 평가
1차 김기표
(경기고-경성대 / 투수)
2차 1RD 3번 신창호
(경동고 / 투수)
2차 2RD 11번 원종현
(군산상고 / 투수)
LG에서는 팔꿈치 부상 때문에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방출되었고, NC 다이노스의 창단 트라이아웃에 합격하여 창단멤버로 합류했다. 이후 사이드암으로 팔을 내리고 1군에 자리잡을 즈음 대장암으로 인해 선수생활에 위기가 왔지만 이를 이겨내고 필승조 및 마무리 투수로 자리잡았다. 이후 키움 히어로즈로 이적했다.
2차 3RD 19번 윤동건
(속초상고 / 투수)
2차 4RD 27번 황선일
(군산상고 / 외야수)
2차 5RD 35번 김영롱
(인천고 / 투수)
2차 6RD 43번 박영주
(휘문고 / 투수)
2차 7RD 51번 최승준
(동산고 / 포수)
프로 입단 후 의병 제대까지 받은 부상으로 인해 1루수로 포지션을 전향했다. LG 시절 2군은 맹폭했지만 딱 거기까지였고, 정상호의 FA 보상선수로 SK로 팀을 옮긴 후인 2016년 딱 1년 동안만 인상적인 활약을 한 후 2017년부터는 그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SK에서 방출된 뒤 한화에 입단하기도 했으나 반 년만에 한화에서 방출되고, 그대로 2020년 은퇴했다.
2차 8RD 패스
2차 9RD 패스

4.1.4. SK 와이번스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
SK 와이번스
RD 지명자 평가
1차 이재원
(인천고 / 포수)
좌완 상대 좋은 타격 성적으로 지명타자나 대타로 주로 기용되다가 2014년 조인성이 한화로 트레이드되고 정상호도 FA로 이적하면서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했다. 2014년 지명타자로 규정타석을 살짝 못채웠지만 wRC+ 134를 찍으며 본인의 기량을 증명해냈고, FA를 앞둔 2018년에는 주전포수로 wRC+ 130을 찍고 SK 와이번스의 우승에 공헌하며 4년 무옵션 69억의 거액 FA로 팀의 레전드가 되나 했다. 그런데 FA 이후로 잦은 부상, 훈련량 부족에 의한 타격부진으로 인해 수비는 고사하고 장점이었던 장타력까지 급격하게 줄어들며 먹튀가 되어버렸으며, 거기다가 프로답지 않은 태도[13]로 인해 팬들의 민심이 완전히 떠나버렸다. 그리고 2023년에는 리그 최악의 타자로 지금까지의 공을 모두 깎아먹는 역대급 부진을 보이며, 선수경력만 보면 와이번스의 프랜차이즈라고 해도 될 선수가 온갖 조롱을 다 들으며[14] 스스로 평가를 깎아먹고 있다. 결국 2023년 11월 23일 자신이 구단에 방출해달라고 요청해 18년간의 SK-SSG 동행을 끝냈으며, 이후 한화 이글스에 영입되었다. 그런데 2024년 2월 류현진이 복귀하며 류거이의 당사자들이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2차 1RD 4번 김성훈
(인천고 / 투수)
부상으로 인해 2년만에 방출되고 2010년 삼성, 2014년 한화에 입단했으나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2차 2RD 12번 홍명찬
(한서고 / 내야수)
매해 1군에서 조금씩 출전했으나 대체로 2군에 있다가 방출되었다.
2차 3RD 20번 김성현
(광주일고 / 내야수)
전역 후 2012년부터 백업 내야수로 기회를 받았고 2014년부터는 주전으로 도약했다. 주전을 차지하고 첫 2년 동안은 유격수를 맡아 불안한 수비를 감안하고 기용할 정도의 타격 성적을 보여줬으나 결국 수비 때문에 2루로 전향, 16년에는 2루수로 공수 양면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으나 이후 4년간 2루와 유격을 오가며 백업 수준의 기량만을 보여주며 지탄받았다. 2루수 최주환이 영입되고 박성한이 주전 유격수로 성장한 이후로는 백업 내야수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2차 4RD 28번 김용태
(인천고 / 투수)
2차 5RD 36번 김재현
(원주고 / 외야수)
빠른 발로 1군에서 대주자 역할을 많이 맡았고 2016년에는 제4 외야수로 좋은 타격 성적까지 기록했다. 그러나 2020년 타격, 주루, 수비 모든 면에서 기량이 급감했고 결국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2차 6RD 44번 김남영
(북일고 / 내야수)
2차 7RD 52번 김태훈
(대구고 / 포수)
지명 후, 미 입단(2010년 기아 타이거즈 지명)
2차 8RD 패스
2차 9RD 63번 이명기
(인천고 / 외야수)
입대 이전에는 기회를 받지 못했으나 전역 후 좋은 컨택 능력을 인정받아 1군에 자리를 잡았다. 15년에는 규정타석 3할을 기록하는 등 주전으로 기용되었으나 16년 부진에 빠졌고 결국 2017년 트레이드에 포함되어 KIA로 이적했다. KIA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17년 우승에 기여했으며 2019년 재차 트레이드되어 20년 우승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2021년에는 방역수칙 위반 사건으로 출장 정지를 받는 등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2023년 현재는 사인 앤 트레이드를 통해 한화 이글스에서 뛰고 있다.

4.1.5. KIA 타이거즈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4~2009).svg
KIA 타이거즈
RD 지명자 평가
1차 한기주
(동성고 / 투수)
신인 역대 최고 계약금인 10억원을 받고 입단하며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데뷔 초부터 서정환 감독의 엄청난 혹사로 인해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터져버려 결국 무너져버린 비운의 투수. KBO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 중 한명이었던 한기주도 누적된 혹사 앞에서는 견딜 수 없었다.
2차 1RD 5번 손영민
(청주기계공고 / 투수)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KIA 불펜 필승조의 한 축을 담당하며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일조하였다. 하지만 2012년 사생활 논란과 더불어 음주 관련 사건사고를 내며 임의탈퇴 되어 선동열 체제 하 KIA 암흑기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2016년 복귀했으나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고 2018년 은퇴.
2차 2RD 13번 박정규
(청주기계공고-경희대 / 투수)
2차 3RD 21번 박경태
(동산고 / 투수)
2006~2018 , 통산 - 233경기 269이닝 4승 20패 15홀드 208탈삼진
2차 4RD 29번 이해창
(경기고 / 포수)
지명 후, 입단 대신 한양대학교로 진학해 2010년 넥센의 지명을 받았고, 이후 kt와 한화를 거쳐 2022년 은퇴한 뒤 2군 배터리코치로 KIA에 돌아오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차 5RD 37번 김준무
(서울고 / 내야수)
2차 6RD 45번 변강득
(용마고 / 투수)
2차 7RD 53번 박경진
(춘천고 / 포수)
2차 8RD 60번 이성준
(선린인고-경희대 / 외야수)
2차 9RD 패스

4.1.6. 두산 베어스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화이트).svg
두산 베어스
RD 지명자 평가
1차 남윤희
(신일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2017년 SK 지명)
2차 1RD 6번 김용성
(덕수정보고 / 투수)
빠른공을 던진다는 매리트로 1라운드에 지명받았으나,2008년 팔꿈치 부상으로 방출되었다. 그후에 의무경찰[15]로 군복무를 하였고,그는 프로선수로써 잊혀지는듯 했으나 2013년에 고양 원더스에 입단하였고 이후 NC-kt-롯데 등에서 프로생활을 하다가 2021년 롯데에서 방출당했으나, 1년을 무직 상태로 보내다 2023년 KIA에 입단해서 선수 생활을 연장했다.
2차 2RD 14번 민병헌
(덕수정보고 / 외야수)
프로 첫 시즌에는 주로 대주자나 대수비로 출전하였고,2년 차 시즌인 2007년 시즌에 30도루를 기록하며 두산 육상부의 일원으로 불렸으나 빈약한 타격으로 인해 붙박이 주전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경찰야구단에서 군복무 이후 타격 포텐이 완전히 터지며, 2013년부터 두산의 주전 우익수이자 리드오프로 맹활약하며 두산시절 두 번의 우승을 함께하였고, 국가대표에서도 맹활약했으며, 2017 시즌 종료후 롯데와 FA계약을 맺으면서 이적하였다. 롯데에서는 2018년과 2019년에 부상을 제외하면 두산에서와 비슷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2020년부터 뇌동맥류로 인해 부진하였고 결국 회복하지 못한 채 2021년 시즌 후 이른 은퇴를 선언하였다. 통산 sWAR* 가 25가량으로, 이른 나이에 은퇴했지만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2차 3RD 22번 박성남
(동성고 / 투수)
2차 4RD 30번 송영찬
(경북고 / 내야수)
2차 5RD 38번 유상우
(효천고 / 내야수)
2차 6RD 46번 최주환
(동성고 / 내야수)
데뷔 이후 2군에서 맹타를 휘둘렀지만 내야수로써 두터운 두산의 뎁스,수비력에서 다소 약점을 드러내며 1군에서는 생각보다 자리를 얻지 못했다. 이후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단한 상무에서는 2010년 퓨처스리그 북부리그에서 타율, 출루율, 장타율, 안타, 홈런, 득점까지 타격 6관왕에 오르는 등 퓨쳐스에서 이대호 놀이를 하였고 수비에서도 유격수로 뛰면서 수비까지 늘었다 이후 1군에서 여러번의 기회를 받으며 서서히 스텝업 하다 2017년 마침내 첫 3할타율을 기록했고, 주전 지명타자로 기회를 받은 2018년엔 타격에서 대각성하여 wRC+ 148을 찍고 강한 2번타자의 위력을 뽐내며 완전한 주전 내야수로 군림했다. 2020 시즌 종료후 SSG(전신 SK)와 FA 계약으로 이적했으나, 랜더스 입단 후에는 세 시즌 째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이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키움으로 이적했다
2차 7RD 54번 홍병오
(서울고- 송원대 / 투수)
2차 8RD 59번 양의지
(진흥고 / 포수)
입단 다음 해 경찰청에 입대하여 퓨쳐스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뒤, 전역하자마자 2010년 20홈런을 때려내며 신인왕을 수상했고, 이후 두산의 1군 주전포수로 자리잡아 두산 전성기의 핵심 선수로 자리잡았으며, 2015년을 기점으로 본인도 리그 최고의 포수로 군림했다. 2018년 후에는 당시 최고 금액이었던 4년 125억으로 NC 다이노스에 이적하였으며, NC에서도 4년 내내 리그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고, 팀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과 MVP를 수상하며 KBO를 정복하다 2023년 시즌을 앞두고 친정팀 두산에 4+2년 총액 152억이라는 KBO 역대 최고액 계약을 맺어 복귀하였다. 두산 복귀 이후에는 오히려 전성기 두산 시절보다 더 좋은 타격으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베어스의 영구결번으로 은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차 9RD 64번 박진원
(신일고 / 외야수)

4.1.7. 삼성 라이온즈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화이트).svg
삼성 라이온즈
RD 지명자 평가
1차 김효남
(경주고-건국대 / 투수)
별 다른활약 없이 조용하게 은퇴했다
2차 1RD 7번 차우찬
(군산상고 / 투수)
바로 다음 라운드에 지명된 김상수와 같이 안 터지는 투수들이었던 조원수박차의 차를 담당했지만, 2010년 선발로 포텐이 터졌고 이후 삼성의 통합 4연패 기간 동안 투수진의 한 축을 맡았다. 이후 무려 4년 95억+a의 조건으로 FA를 통해 LG로 이적하지만 2017년 단 한 시즌을 제외하면 10승을 거둠에도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LG의 FA 잔혹사에 또 하나의 사례로 전락했다. 결국 2022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고 롯데에 입단했으나 나이와 부상으로 인한 하락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2023 시즌 도중 은퇴를 선언했다.
2차 2RD 15번 김상수
(신일고 / 투수)
차우찬과 더불어 삼성 시절 안 터지는 투수들이었던 조원수박차의 수를 담당했었다. 장원삼과의 트레이드로 넥센으로 이적한 후에도 별 볼 일 없는 투수였다. 그러나 군복무 후 넥센의 불펜 투수로 자리잡은 뒤 한동안 마무리 투수를 맡기도 했고, 2019년에는 40홀드를 기록하며 당초 안지만이 기록하고 있었던 리그 최다 37홀드를 깨고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후 사인 앤 트레이드로 SSG로 이적. 이적 후 다시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며 2022 시즌 이후 방출되었고 롯데에 입단했다.
2차 3RD 23번 김기태
(동산고 / 투수)
2차 4RD 31번 장준환
(동성고 / 외야수)
2차 5RD 39번 고관성
(주엽고 / 투수)
2차 6RD 47번 모상기
(신일고 / 내야수)
2차 7RD 55번 김현준
(상원고-탐라대 / 투수)
2차 8RD 61번 현승민
(덕수정보고 / 포수)
2차 9RD 65번 김창호
(진흥고 / 외야수)
지명 후, 미 입단

4.1.8. 현대 유니콘스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RD 지명자 평가
1차 연고지 이전 문제로 인한 1차 지명 불가(2003~2008)
2차 1RD 8번 강정호
(광주일고 / 포수)
현대의 선수단을 이어받은 히어로즈에서 팀의 주전 유격수이자 리그 최고 유격수로 성장했고, 2012년과 2014년에는 유격수로 리그를 아예 개박살내버렸다.[16] MLB에서도 빠르게 주전을 꿰차며 KBO 출신 야수가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나 했지만 음주운전 적발로 흑역사로 전락했다. 어찌어찌 복귀한 메이저리그에서도 부진하며 방출됐고 이후 KBO 리그로의 복귀도 불발되었다. 결국 프로 생활을 단념하고 미국 LA에서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데, 손아섭이 2023 시즌 전 이 아카데미에 다녀온 뒤 그 해 타격왕에 오르며 현역 KBO리그 선수들로부터도 타격 조언 요청을 받고 있다. 재능은 역대급이었지만 야구 외적인 문제로 실패해버린 케이스.
2차 2RD 16번 김영민
(덕수정보고 / 투수)
지명 당시 모 아니면 도라는 스카우터의 한줄평이 있었고, 정말 그 한 줄 평대로 됐다. 공은 빨랐기에 꾸준한 기회가 주어졌으나 전형적인 와일드 씽 유망주답게 제구가 불안했고 여기에 십자인대 파열, 만성 백혈병, 그리고 이 두 질병에서 비롯된 까다로운 사용법때문에 포텐이 완전히 터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2016년 무패 세이브왕을 기록하는 등 나름대로 커리어에 한 획을 긋는데는 성공했다.
2차 3RD 24번 황재균
(경기고 / 내야수)
2009년 히어로즈에서 22살의 어린 나이에 풀타임 3루수로 sWAR* 3.50을 찍으며 팀의 주전으로 성장하려던 찰나, 구단의 자금 문제로 인해 롯데로 트레이드되며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롯데에서도 기복이 있는 시즌이 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주전 3루수로 팀을 지탱하고 있었으며, 2017년에는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짧지만 빅리그 무대를 경험해보기도 했다. 2018년부터는 FA로 kt wiz에 이적하여 역시 주전 3루수로 꾸준히 자리잡으며, 2021년에는 본인의 성적은 조금 떨어졌지만 팀의 창단 첫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2차 4RD 32번 조용훈
(성남고 / 투수)
2006년 2군에서 담금질을 거친 후 2007년 박준수의 부상으로 인해 사이드암 계투가 붕괴된 상황에서 혜성처럼 등장하여 신인왕 후보에 오를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하였으나. 데뷔 2년차에 불펜으로 81이닝을 던지며 구른 결과 그 후에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은퇴하게 된다.
2차 5RD 40번 신현철
(유신고 / 외야수)
2차 6RD 48번 유선정
(상원고 / 포수)
현대에서도, 이후 넥센으로 넘어온 뒤에도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고, 박동원이 자리잡기 이전 히어로즈의 포수 잔혹사를 이어갔던 선수이기도 하다.
2차 7RD 56번 유재신
(북일고 / 내야수)
히어로즈 초창기 시절 2루수 경쟁을 하기도 했지만 주전을 차지하지는 못했고, 경찰 야구단을 다녀온 후 염경엽 체제의 넥센에서 대주자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 임병욱 등 유망주들에 밀리면서 김세현과 함께 KIA로 트레이드 되었고 대주자 및 외야수 백업 역할을 하다 2020년 말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KBO에서 강명구 다음 가는 대주자로의 이름을 남기는 것에는 성공했고, 김광현을 상대로 개인통산 유일한 1군 홈런기록을 만루홈런으로 때리기도 하며 프로 통산 15년 동안 가늘고 길게 선수생활을 보냈다. 은퇴 후 두산 베어스 코치로 활동중이다.
2차 8RD 61번 이정신
(인천고-단국대 / 투수)
2차 9RD 66번 김동진
(부경고 / 투수)

4.2. 팀별 총평

  • 롯데 자이언츠: 전체 1순위[17]에서 전설로 남은 류현진 거르고 나승현를 시전, 결과적으로는 나승현이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2015 시즌이 끝난 후 방출되며 롯데의 류거나는 최악의 선택으로 남았다.[18] 김문호는 그나마 2014년부터 조금씩 실력발휘를 하기 시작하고 있지만 김문호를 뽑고 놓친 선수가 민병헌이었다는 게 문제다.[19] 배장호는 1군에 간간히 등판하고 있고, 황성용(개명 후 황동채)이 가끔 1군 백업으로 보인 정도였으나 2015년에 은퇴했다. 한편 1차 지명자였던 손용석은 대타로서 쏠쏠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큰 활약은 보이지 못한채 2016년 은퇴했다.
  • 한화 이글스: 류현진을 뽑은 것만으로도 2006년 신인 드래프트 최고의 승리팀이다.[20] 류현진 때문에 1차지명으로 뽑히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유원상은 2006 시즌에 아예 올라오지 못한 것은 물론 이후에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다가 양승진과 함께 LG 트윈스 트레이드되었다. 3라운드에서 정범모를 뽑고 8라운드에서 양의지를 패스한 것 역시 한화가 이후 포수 문제로 고생하는 요소가 되고 말았다는 의견[21] 결과적으로는 17 시즌 후반기 잠시 부활하는 듯 싶다가 18 시즌을 앞두고 주전경쟁에서 밀려났고, 구단에서 길을 터주려는 목적으로 윤호솔과 트레이드시켜 주어 NC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류현진은 누구나 다 알다시피 데뷔시즌부터 KBO를 정복하며 역사를 만들고 당당히 미국으로 진출하면서 어마어마한 이적료를 남겼다.[22]
  • LG 트윈스: 군산상고 타선의 중심 황선일과 2선발 원종현 등 군산상고 돌풍의 주역들을 대부분 지명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정작 그 중심에 있었던 차우찬을 지명하지 않고 경동고 투수 신창호를 뜬금지명했다. 드래프트 직전에 삼성과 선동열 감독이 신창호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자 원래 지명 계획이었던 차우찬 대신 지명을 하였지만 이는 완벽한 패착이 되고 말았는데, 이 지명에 대해서는 삼성 구단과 선동열 감독이 타구단을 낚기 위해 "우리는 신창호에 관심있음" 이라는 가짜 정보를 흘렸고 LG 프런트가 이에 넘어갔다는 이야기도 있다.[23][24] 대부분의 선수들은 LG에서 뚜렷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원종현은 NC로 가서 2014년에 불펜으로 나서 155km/h까지 찍으며 큰 힘이 되었고, 황선일도 결국 14 시즌 끝나고 한화로 갔다가 방출되었고 1차 지명인 김기표도 2015 시즌부터는 신생팀 kt로 이적했으나 1시즌 뛰고 은퇴, 유일하게 마지막에 지명한 최승준 한명이 15 시즌까지 남아있었으나 시즌이 끝난 후 fa로 영입한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SK로 이적하면서 현재 팀에 남아있는 선수는 없다.2년 연속 전멸 이후 차우찬은 16 시즌 종료 후 FA로 LG에 이적을 했다. 결론은 실패한 드래프트. 하지만 여기에서 신고선수로 작뱅을 가져오면서 아예 실패한 드래프트라고는 볼 수 없겠다. 그리고 신고선수였지만 이해 야수 최고 아웃풋이었던 김현수를 거액으로 영입했기에이건 두산이 잘 한 거 아닌가 LG 입장에서 자체적으로 픽한 드래프티는 모두 망하거나 타팀에서 포텐터지고 타팀에서 성공한 드래프티를 거액으로 모셔온 기묘한 드래프트다. 또한 남의 팀 1차지명자를 트레이드로 데려와 나름 잘 써먹기도 했다.
  • SK 와이번스: 그 유명한 가 발생한 드래프트. 류현진 지명을 하려했으나 조범현감독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정상호의 성장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박경완을 받쳐 줄 어린 포수를 지명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생각으로 이재원을 지목했다. 다행히 이후 이재원이 1군 주전으로 자리를 잡고 2010년대 중후반에는 타격 포텐도 터뜨리면서 완전 실패는 아니게 되었다.[25] 물론 이재원이 오랜 기간 쌓아온 WAR보다 류현진이 7년간 쌓고 떠난 WAR이 2배 이상 높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실패는 실패고, FA 계약 이후로는 기량이 급격히 하락한 데다가 워크에식에서도 문제점을 보이며 먹튀화하는 바람에 류거이 사건과는 별개로 SK 팬들 사이에서는 여론이 매우 나빠졌다. 그리고 2021년부터 3년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2023년 시즌을 마치고 구단에 자신을 방출해달라고 요청해 SK-SSG와의 동행을 끝나게 되었다. 2차 1라운드 지명으로 입단한 김성훈은 부상과 구단과의 불화가 겹치며 방출되었고 군 복무를 마친 뒤 삼성에 신고선수로 들어갔으나 거기서도 방출, 1년을 쉬고 2013년 말 한화에 신고선수로 합류해 재기를 노렸으나 그곳에서도 1년만에 방출되었다. 3라운더 김성현은 2014 시즌부터 세 시즌은 제대로 활약해줬다. 그 이후로는 백업급의 성적이지만 쓸 선수가 딱히 없어서 주전을 차지하고 있다. 2021년 최주환의 합류로 각성했는지 나름 괜찮은 방망이 실력과 준수한 수비력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5라운더 김재현은 1군에서 살아남긴 했는데 대체선수 수준의 활약만을 보여줬고 2020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이명기 이만수 감독이 2013년부터 밀어주면서 타격 재능을 서서히 피우고 있었지만 2016 시즌에 부진하다 다음 시즌에 노수광을 받아오며 KIA로 트레이드 되었다. 노수광은 이태양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럭저럭 괜찮은 드래프트였지만 류거이의 임팩트가 워낙 컸다.
  • KIA 타이거즈: 흉작은 아니었지만 선수들이 꾸준히 활약하지 못했다. 계약금 10억을 받아 관심을 모은 한기주는 광주동성고 시절부터 당한 혹사[26]로 인해 여러 부상이 찾아오며 재활병동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고, 결국 이영욱을 상대로 2018년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었고 결국 2019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손영민은 필승조였지만 혹사로 인해 구위가 하락했고 사생활 문제로 임의탈퇴 공시된 후 자취를 감추었다가, 2016년에 신고선수로 돌아와 정식선수로 승격됐다가 2018년에 결국 방출. 박경태는 좋은 모습을 보인다 싶으면 다시 부진하며 박경태러리스트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안았고, 그래도 오래 살아남긴 했지만 결국 2019 시즌 끝나기 직전에 김주형과 함께 방출당했다.
  • 두산 베어스: 1차와 2차 1번이 나란히 폭망하면서 망드랲으로 남는 듯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 오히려 더 낮은 순위에 있던 선수들이 초대박을 터뜨렸다.[27] 초반에는 1픽인 신일고 좌완투수 남윤희 미국으로 가고[28] 1라운드 김용성도 방출됐고[29], 그나마 1군에서 뛴다는 민병헌도 주전급 타격이라기엔 갈 길이 멀어 보였다. 하지만 2010년 경찰청에서 2년간 버프를 받은 양의지가 포텐을 터뜨리면서 신인상을 거머쥐었고 향후 10년간은 주전 포수 걱정을 덜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 따라 버프 받은 민병헌 또한 경찰청 제대 이후 2013년부터 타격이 폭발, 다음 해부터는 붙박이 국가대표 외야수가 되었다. 최주환도 계속 1군 주전을 호시탐탐 노리다 2017년 오재원의 부진에 주전으로 출전기회를 잡기 시작하여 2018년엔 포텐이 완벽하게 터지며 타선을 이끄는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하지만 이 시즌 두산 베어스의 최고 수확은 다름아닌 지명을 받지 못해서 신고선수로 입단한 김현수. 그는 2015년 시즌이 끝난 뒤 KBO 리그 선수 최초로 FA 자격을 얻어 MLB에 진출하게 된다. 비록 상위 지명은 실패했으나, 2015년 한국시리즈의 클린업 트리오를 3번 민병헌, 4번 김현수, 5번 양의지가 담당했고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멤버, 국가대표까지 되는 등 그야말로 대풍작을 일궈내며 전년도 드래프트의 흑역사를 완벽하게 지워냈다. 일명 87베어스 or 06베어스 or 민김양 베어스. 그러나 민병헌은 롯데로, 김현수는 잠실 라이벌 팀으로, 양의지는 NC로, 최주환 SSG로 이적했다. 06 드래프트 출신 코어 넷이 전부 FA로 팀을 나간 것 그래도 그 동안 써먹은 게 얼마냐.[30] 그나마 양의지는 NC와의 4년 계약이 끝나자마자 두산으로 돌아왔으며, 36세의 나이에 4+2년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두산에서 은퇴가 거의 확실시되었다.
  • 현대 유니콘스: 이 해 드래프트의 또다른 승자. 연고이전 시도 후부터 꾸준히 1차 지명은 하지도 못했던 현대는 2차 지명에서 1라운드부터 7라운드까지 모든 선수들이 1군을 밟고, 팀 해체 후에도 넥센에서 다들 나름대로 활약하는 기염을 토한다. 특히 강정호의 활약은 말할 것도 없다. 황재균은 롯데로 이적한 후 각성하기 시작해 인천 AG 결승전에서 결승타를 날리며 AG 母子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영광을 얻었고 황재균의 트레이드 상대였던 김민성의 포텐도 터지며 윈윈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 2차 2라운드로 입단한 김세현은 2016 시즌에 제 역할을 찾은 듯, 세이브왕에 등극하면서 방화범의 악명을 떨쳐내고 맹활약하다 같은 시기에 입단해 대수비, 대주자로서 쏠쏠한 활약을 보여준 유재신과 함께 KIA로 트레이드 되었다. 김세현은 2017 시즌엔 팀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시켰으나 이후 두 시즌 동안 투수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정도로 망했고,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K로 다시 이적했다. 유재신은 이적 후 대수비, 대주자로 여전히 계속 경기에 출전하며 가늘고 길게 살아남다가 2020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고 두산 베어스 코치가 되었다. 이 해에 현대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정훈은 방출 뒤에 2010년에 롯데로 다시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2021년 현재 롯데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 삼성 라이온즈: 1라운드 지명자 차우찬이 삼성왕조 4연패 시절 전천후 투수로 활약하며 성공했지만 이 뿐. 1차 지명 김효남을 포함해 대부분의 선수가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사라졌다. 김상수는 나중에 터지기는 터지는데 삼성이 아니라 장원삼의 트레이드로 이적한 넥센에서 터졌다. 이외에는 김기태 모상기가 간간히 보인 정도였으나, 김기태는 삼성의 투수난 때문에 잘하든 못하든 계속 올라오다 17 시즌 이후 방출되었고, 모상기는 KT로 갔다가 은퇴.

5. 이모저모

  • 2006년 두산 베어스의 1차 지명자인 신일고 투수 남윤희는 본인이 자진해서 지명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자비로 돌아다니며 테스트를 받아 해외에 진출하여 지명권이 소멸된 사례이다. 두산 베어스 구단에서도 안일하게 대응한 것이 남윤희의 아버지가 두산에 오랫동안 임직원으로 재직하였기에 당연히 계약할 것이라고 믿고 있던 것... 텍사스 레인저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5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아 더블에이까지 승급하였으나 결국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어깨 부상으로 방출당했다. 2012년 요미우리/닛폰햄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실패하고 귀국하여 고양 원더스에 입단했지만, 교류전 출전 불가와 병역 문제로 인해 2013년 3월 퇴단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31]했으며 2017년도 2차지명에서 SK의 지명을 받으며 비로소 KBO 리그에서 뛰게 되었다. 그러나, 2년만에 선수에서 은퇴하고 SK 와이번스 스카우터로 전직했다.
  • 청소년대표팀 출신에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였던 김현수의 미지명을 놓고, 동기인 남윤희의 해외진출로 인해 스카우트들이 신일고 출신을 안 뽑기로 담합했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그러나 김상수, 모상기, 박진원 등 2차 지명에서 신일고 출신만 3명이 뽑혔다.[32] 거기에 롯데에서 김현수 김문호를 저울질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단순 루머로 치부되고 있다.
  • 대구상원고의 좌완 투수 백정현이 돌연 유급을 하면서 논란이 빚어졌다. KIA에서 백정현을 지명할 계획이었는데, 유급 때문에 지명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 하도 팜이 부실한 삼성이 2007년 드래프트 1차 지명을 위해 백정현의 유급을 권했다는 설이 돌면서 문제가 커졌다. 결국 이 때를 기점으로 1차 지명자의 유급생 금지 규정이 도입되기에 이른다. 여담으로 백정현은 2007년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 삼성에 지명을 받았다. 당시 무릎십자인대 파열(군면제는 덤)로 출전이 없었다는 점 때문에 의리를 지킨 선택이라는 루머도 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 추신수, 이대호, 김태균 등이 포함된 2001년과 함께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 중 하나로 꼽힌다. 자그마치 세 명이 메이저리그의 문턱을 밟았으며(신고선수인 김현수 포함 4명), 류현진은 사이영상 경쟁을 하는 현역 중 아시아 최고 투수로, 강정호는 비록 막판 부상이 있긴 했지만 좋은 타격성적을 거두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맞이했다. 그 외에도 KBO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선수들 역시 어마어마하게 많다.
  • 이 해에 드래프트 지명을 못받은 김현수, 그리고 현대 육성선수로 입단한 정훈이 2010년 롯데로 다시 신고선수로 입단해서 신고선수 신화를 썼다. 정훈은 특히 2021년, 30대 중반에 매서운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다. 김현수는 말이 필요없고...

[1] 연고지 문제로 1차지명에서 제외 [2] 2012년 남윤성으로 개명. [3] 계약금 역대 최고액 [4]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 [5] 김건국으로 개명 [6] 2015년 12월 김세현으로 개명 [7] 한양대 진학후, 4년 뒤 넥센에 지명. [8] 2013년 11월 황동채로 개명. [9] 입단 계약을 했으나 2006 시즌 시작 전 선수단에서 제외. [10] 4년 뒤 KIA에 지명. [11] 후에 현철민으로 개명. [12] 서산 야구장 문서에도 있지만, 실제로 포스팅으로 받은 280억 중 일부를 서산 야구장 공사에 썼으며, 일부는 정근우 이용규라는 고액 FA계약을 모두 따 내는 데에도 썼다. [13] 파울플라이성 타구를 치고 바로 더그아웃에 들어간다거나, 팀이 지고있는데 웃는 등의 행동 [14] 대표적으로 '브랜드신'과 "야, 형이야" 발언. [15] 경찰 야구단에 합격한 것이 아니라 일반 의무경찰로 입대한 것이다. [16] 많은 사람들이 유격수로 최초 40홈런을 때려낸 2014년에만 포커스를 맞추는데, 사실 2012년도 투고타저라 클래식이 별로인것 같지만 wRC+가 179로, 2014년 겨우 6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17] 다만 저건 2차 지명이다. 1차 지명에서 웬만한 대어급은 대부분 빠진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당시의 나승현 정도 재능이었으면 전면드래프트 1라운드 상위권은 가능했지만 그 뒤에는 훗날 현역 메이저리거가 되는 사람이 세 명, 미지명 후 신고선수로 입단한 선수까지 합치면 네 명이나 있었다는게 문제였다. 그래도 황재균은 2010년에 트레이드로 영입하는데 성공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나승현이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프로에서 거하게 폭망해버린 임팩트가 너무 컸다. [18] 다만 당시에는 나승현을 1순위로 뽑는 것이 당연했던 상황인 것이, 류현진은 팔꿈치 수술 등으로 인해 부상 우려가 있었고 나승현은 0점대를 찍으며 날아다녔다. 당시 광주일고 3대천왕 나승현, 강정호, 김성현 중에서도 최고로 치던게 나승현. 당시 한 학교에서 한 명도 뽑히기 힘든 청소년 국가대표로 광주일고 한 학교에서 3명이 뽑힐 정도(전국 유일)로 최고로 잘 나가던 선수들이다. [19] 물론 당시 김문호는 민병헌과 함께 덕수고 타선을 이끌었고, 황금사자기 - 화랑대기 MVP를 탈 정도로 평가가 대단히 높았다. 2016 시즌 전반기에는 4할에 근접한 타율을 기록하며 타율 1위를 찍기도 했으나, 후반기에 체력 문제 때문인지 붕붕 휘두르며 3할 초반까지 추락했다. 드래프트 12년 뒤인 2018년 FA에서 민병헌을 데려왔긴 했는데 타격성적이 심각하게 롤코를 탔고 2019년 답이 없는 팀의 상황 속에서 준수한 활약을 해주었지만 2020년과 2021년 지병인 뇌동맥류로 인해 최악의 부진을 겪어 먹튀가 되었고,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20] 여러 뒷 이야기들이 있는데 자세한 건 류현진/프로 지명 문서 참조. [21] 한화는 드래프트 픽을 비정상적으로 아끼던 이 시기에도 유독 포수 자원은 꾸준히 확보해 두는 경향이 있었다. 현재까지 한화의 포수 자원이 막장인 것은 가진 자원이 없어서가 아니며, 있는 자원을 막장으로 육성한 탓이 더 크다. 한화팬들에게 철밥통, 칰무원으로 불렸던 조경택은 2015년에 두산으로 갔다. [22] 여기서 많은 팬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류현진의 이적료는 모두 구장 리모델링 비용으로 다 탕진한 상태였다. 이후에 잡은 여러 FA 선수들을 마구 잡은것은 모두 류현진의 이적료가 아닌 구단에서 타온 돈이라는 것. 왜냐면 구단 운영상 흑자를 낼 수 없었기 때문에 리모델링이다 뭐다 어떻게든 처리했다. [23] 드래프트를 둘러싸고 이런 낚시정보를 흘리는 건 종종 있는 일이며, 자기들이 눈여겨 본 선수를 다른 구단에 빼앗기지 않기위해 루머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신창호가 150km/h에 가까운 속구를 뿌렸던 것은 사실이었으며, 매력적인 자원임에는 틀림없었지만 2차 1순위 지명을 받을 선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 [24] 결국 신창호는 얼마 못가서 방출되고, 서울 해치를 거쳐서 기아에서 있다가, 2016년에 방출되어서 연천 미라클로 들어갔다. [25] 이재원도 그 류현진이랑 비교해서 망했다 평가받는 거지 다른 선수들이랑 비교하면 매우매우 성공한 케이스다. 2006년 드래프트 1차 지명 선수 중 최다 우승자이며 1차 지명 선수 중 WAR은 가장 높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 SK의 포수 자원을 생각해본다면.. [26] 지명 당시부터 팔꿈치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거기에 서정환 감독이 2006년 팀의 4강 진출을 위해 한기주를 무리하게 굴리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27] 이게 농담이 아닌 게, 2006 드래프트 출신들이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끄는 등 두산 베어스 호성적의 든든한 주역으로 자리잡았다. [28] 이후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방출되어 고양 원더스 찍고 군대로 갔으며, 2017년 드래프트에서 SK에 입단하게 된다. 11년을 날리고, 겨우 돌아온 셈이다. 그리고 양의지는 2018년 5월 KBO 첫 등판을 한 남윤성에게서 적시타를 뽑아낸다. [29] 2008년 방출된 뒤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다가 고양 원더스에 입단한 뒤, NC 다이노스가 스카웃해가면서 프로 재입성에 성공했다. 이후 2014년 2차 드래프트로 kt로 이적했다가 2017년 트레이드로 롯데로 이동했다. 2018년에서야 1군 무대에 등판하는데 성공했고, 프로 데뷔 12년만에 첫 승을 따냈다. 선수 인생이 상당히 다사다난했다. [30] 무려 넷이나 되는 선수가 FA 자격을 얻고 최소 40억 이상씩을 받아가며 이적까지 했다는 것 자체가 두산의 드래프트 초대박을 반증한다. 알다시피 KBO의 FA는 이적을 할 수 있는것 자체가 신생팀 특혜 덕에 보상선수 없이 이적하는 준척급들을 제외하면 선수 개인의 압도적인 실력과 시장성을 보장하기 때문. [31] 어깨 수술 때문에 공익 판정을 받았다. [32] 비슷한 루머가 2001년 신인드래프트에도 있었다. 정근우가 지명을 받지 못하자 추신수 미국 진출에 따른 보복 차원에서 지명을 안했다는 게 그 얘기. 그러나 당시에도 부산고 투수 김백만이 2차 1순위로 한화 이글스에 지명되었던 것을 보면... 사실 정근우는 체격이 작아서 스카우트들의 관심이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