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us Clodius Pupienus Pulcher Maximus 티투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풀케르 막시무스 |
|
출생 | 195년경 |
사망 | 미상 |
직위 | 원로원 의원, 집정관, 야전 사령관 |
가족 |
푸피에누스(아버지) 섹티아 세테길라(어머니) 마르쿠스 푸피에누스 아프리카누스 막시무스(남자형제) 푸피에나 섹티아 파울리나 카테길라(여자형제) 티네이아(아내) 루키우스 클로디우스 티네이우스 푸피에누스 바수스(아들) ??오비니우스 티네이우스 타르루테니우스 노니우스 아티쿠스(손자)[1] 마르쿠스 티네이우스 오비니우스 카스투스 풀케르(손자) |
경력 | 집정관 |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 세베루스 왕조, 군인황제시대의 원로원 의원, 집정관, 야전 사령관. 군인황제시대의 황제 푸피에누스의 장남이다.2. 생애
원로원 의원, 야전사령관, 프라이펙투스 우르비을 지내고 황제에 오른 푸피에누스와 그 아내인 섹티아 세테길라의 세 자녀 중 장남으로 195년경 태어났다. 종종 티베리우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풀케르 막시무스로도 알려졌지만, 21세기 비문 등을 통해 티투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풀케르 막시무스로 확인됐다.아버지, 동생처럼 오래된 로마귀족으로 원로원 계급이나, 군입대 후 원로원에 들어갔다고 하며, 세베루스 왕조가 무너지기 직전인 234년 혹은 세베루스 왕조가 무너진 뒤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즉위한 뒤 보결 집정관을 짧게 지냈다고 한다.
아버지가 황제가 됐지만, 안토니아 고르디아나와 손 잡은 일부 프라이토리아니의 궁중 정변으로 공동황제 발비누스와 살해됐다. 이때 할머니쪽 친척 어른과 외가 쪽 친척 피나리우스 발렌스 등도 살해됐다. 이때 그와 형제자매가 함께 살해됐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푸피에누스, 발비누스가 구금된 뒤 고르디아누스 3세 지지자들에게 고문받을 때, 원로원에서 두 황제의 가족, 친척들이 호소를 했고, 가담하지 않은 프라이토리아니와 게르만족 경비대가 두 황제를 구출하려고 한 것을 볼 때, 살해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그는 235년, 236년 이후 총독이나 집정관을 지냈다는 기록이 없다. 따라서 아버지가 제위에 오르기 전에 사망했다는 추정도 있다. 푸피에누스 유가족들인 자녀들과 손주들이 푸피에누스 사후에도 원로원에서 활동했고, 이들이 티부르에 은거해 덕망을 쌓았다는 비문이 21세기에 발굴된 까닭에 동생들과 마찬가지로 238년 이후에도 살아 있었을 확률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엘라가발루스 황제 시절에 집정관을 지낸 원로원 의원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의 딸 티네이아와 일찍이 결혼해, 사이에 아들을 뒀다.
아들은 루키우스 클로디우스 티네이우스 푸피에누스 바수스이다. 그는 명예로운 경력을 거쳐, 3세기 초인 240년 크레타 에트 키레나이카 속주 총독을 지냈다. 그는 루키우스 오비니우스 파카티아누스, 코르넬리아 옵타타 아퀼리아 플라비아의 딸 오르비아 파테르나와 결혼해, 마르쿠스 티네이우스 오비니우스 카스투스 풀케르, 오비니우스 티네이우스 타르루테니우스 노니우스 아티쿠스라는 두 아들을 낳았다. 티투스 클로디우스 풀케르 막시무스의 두 손자 중 마르쿠스 티네이우스 오비니우스 카스투스 풀케르는 274년 이전 즈음 집정관을 지냈다고 하며, 다른 손자인 오비니우스 티네이우스 타르루테니우스 노니우스 아티쿠스는 법무관을 지내고, 15명으로 구성된 사제단으로 시불라 예언집을 관리하고 해석한 퀸데킴비리 사크리스 파키운디스를 지냈다고 한다.
[1]
프라이노멘(개인이름)은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