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3:28:13

칸다하르 학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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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을 저지른 가해자 로버트 베일스 미 육군 하사(Staff Sgt. Robert Bales)의 사진으로 위는 아프가니스탄 파병 당시의 모습, 아래는 사건 이후 수감 중 면도 등을 하지 않아 꾀죄죄하고 수척해진 모습이다.

1. 개요2. 상세3. 판결4. 영향5. 기타

1. 개요

영어: Kandahar massacre, Panjwai massacre
다리어: کشتار قندهار

2012년 3월 11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주의 판지와이 구에서 미 육군 부사관 1명이 저지른 학살 사건.

2. 상세

2010년의 메이완드 구 살인 사건에 이어 미군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최악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킬 팀은 집단으로 행동했으며 정신질환자들이었는데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는) 한 명의 멀쩡한 군인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저지른 총기난사 사건이다.

육군 제2보병사단 제3 보병 연대 소속의 로버트 베일스 하사[1]는 2012년 3월 11일 새벽 3시 경에 M203 유탄발사기를 장착한 M4 카빈 소총 M9 권총 야간투시경까지 착용한 중무장 상태로 부대를 빠져나왔고 전투복 위에 아프가니스탄 전통 의상을 걸쳐 위장하는 치밀함까지 보이면서 부대에서 약 1.6km 가량 떨어진 발란디와 알코자이 마을의 농가 세 곳을 급습했다.

주민들은 한밤 중에 자고 있다가 중무장한 미군과 맞닥뜨리자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끌려나와 살상당했다. 베일스 하사는 총과 유탄을 갈겨대며 16명이나 죽인 뒤 농가에 사살한 시체를 몰아넣고 불을 지르는 등 증거 인멸까지 시도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아비규환 와중에 도망쳐 목숨을 건진 주민들이 미군 아프가니스탄 당국에 이 사실을 알렸고 베일스 하사도 부대로 복귀하면서 입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의상을 벗고 무기를 내려놓은 채 자수했다. 그러다 보니 발광할 줄 알고 중무장하고 맞이한 미군들도 놀라워했다.

사건 이후 미 육군 당국은 즉시 베일스 하사를 구속해 쿠웨이트를 거쳐 캔자스 영창에 수감했고 바로 군사재판에 착수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당장 미국 정부와 미군에 강하게 항의했으며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도 특별 성명을 발표하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로 책임자에 대한 엄중 처벌을 요구했다. 아프가니스탄 의회도 베일스 하사를 아프가니스탄에서 공개 재판으로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시민들도 반미 시위를 벌이고 아무 상관 없는 미군에게 돌을 던지는 등 민심도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미군의 주적인 탈레반 미군에 보복 테러를 감행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테러를 감행해 애꿎은 아프가니스탄군 인사들만 죽어나갔다.[2] 물론 탈레반의 테러는 어차피 명분이 없고 악행을 정당화하려는 핑계에 불과해서 알아주지 않지만 대외적인 이미지가 문제다.

사건 이후 베일스 하사의 변호사는 베일스 하사가 정신 이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하며 최대한 형량을 감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베일스 하사의 전우들이나 과거 상관들은 베일스가 복무 기간 중 전혀 정신적으로 문제가 될 일을 저지르지 않았고 오히려 여러 공로 훈장과 메달을 받는 등 유능한 직업 군인이었다고 증언했다. 미 군 검찰은 베일스 하사가 이나 스테로이드를 남용했을 경우의 부작용이나 PTSD 후유증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PTSD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유는 없음으로 판정되었다.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PTSD의 정도가 인생을 폐인으로 만들거나 할 정도로 지나치게 심하지 않으면 양형에 고려되는 일은 없다.

3. 판결

2012년 12월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고 사상 초유의 대량살인범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판사도 사형을 선고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13년 6월 사법거래로 본인이 유죄를 인정함으로써 사형은 불가능해졌고 대신 같은 해 8월 23일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남은 생애를 교도소에서 보내게 되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내부에서는 킬 팀과 달리 정신적인 문제도 별로 없어 보이는 데다 한두 명도 아니고 16명이나 되는 사람을, 그것도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인 묻지마 대량 살인범에게 사형을 내리지 않는 게 말이 되냐며 반발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미국인 미국 법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라며 무시했다. 물론 미국에서도 이로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인식은 박살났다고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열불터진 카르자이 정부조차도 미군에게 이제 돈이나 내놓으라며 늬들 지시 안 따른다고 대들 정도였다. 카르자이 정부가 이럴 만한 것도 미국이 물러나면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이 커질 것이므로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4. 영향

이 사건으로 인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에 대한 인식은 더더욱 나락에 빠졌고 2012년 4월 카불 동시 테러 당시 오히려 미군들은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의 욕설과 돌팔매질에 시달려야 했다. 이 학살로 말미암아 미군 측이 민간인 사살은 엄벌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당시 미군들은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은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들에게 경고사격을 했을 뿐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와서야 사람들이 물러나 이 사건으로 아프가니스탄 내 민심이 미군을 혐오하고 있었음이 드러났고 이후에도 미군들에게 돌팔매질은 기본이었으며 협조도 끊어 버렸다.

이렇게 미군 베트남 전쟁에 이어 굴욕적인 패배를 맛봐야 했다. 미군은 2017년에 다시 아프가니스탄에서 부분적인 전투를 벌였지만 사실상 아프가니스탄 상당수에서 철군한 상태였다. 미국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스스로 무덤을 다시 팠으며 이 사건이 이를 입증했다고 비아냥거리는 논평을 썼다. 프리드먼은 이 전쟁의 승리자는 결국 탈레반이고 미국 탈레반에게 굽신거릴 것[3]이라고 미국을 까기도 했다. 결국 2021년에 미국은 20년 동안 매달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패배한 꼴로 철군해 베트남 전쟁 시즌2를 재현해 버렸다.

5. 기타

  • 사건을 저지른 동기는 본인이 끝내 밝히지 않아 알 수 없었다.[4] 킬 팀의 모방범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재미삼아 죽인 게 명백한 반면 베일스 하사는 살해 수법부터 달랐으므로 모방범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신 이상이나 약물 중독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는데 미국 정부는 결국 공식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해당 사건은 차라리 하디타 학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사건 이후 범인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미국 본토의 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1] 커티스 르메이 장군의 고향으로 유명한 오하이오주 출신이다. 베일스는 입대 전에 대학을 중퇴하고 금융사기를 저질렀다가 발각되어 백만 달러가 넘는 손해보상을 명령받았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육군으로 도피한 케이스로 현재 미군, 특히 육군의 인적 자원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2001년 11월 28세의 나이로 입대해 사건 당시 10년 넘게 육군에서 복무했고 저격수 교육까지 통과했던 서류상으로는 나름대로 훌륭한 인적 자원이었다. 병력이 부족하다고 아무나 받았다가 대량살인을 저지르도록 훈련을 시킨 꼴이라 더 황당한 상황이 펼쳐졌다. 물론 경제위기 이후 지원자가 늘면서 인적자원을 가려 받게 되었다지만 이미 입대한 병력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앞으로도 이런 일은 잊을 만하면 벌어질 것이다. 특히 미군은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증의 정신질환자가 아닌 이상 웬만하면 받아준다. [2] 미군 영국군 등의 국제안보지원군에게 테러를 했다가는 당할 보복이 엄청나다 보니 만만한 아프가니스탄군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3] 정확히는 이제 미국이 적극적으로 승리자인 탈레반과 협정을 맺고 탈레반 아프가니스탄 지배를 인정해야 할 판국이라는 의미다. [4] 애초에 이게 형량합의의 목적일 수 있다. 법정에서 범인이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판결 등이 달라진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