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4 20:31:39

카를로 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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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ieznany_malarz_polski_-_Portraif_of_Charles_Albert,_king_of_Sardinia_-_MP_2089_MNW_-_National_Museum_in_Warsaw.jpg
이름 카를로 알베르토 에마누엘레 비토리오 마리아 클레멘테 사베리오 디사보이아카리냐노
(Carlo Alberto Emanuele Vittorio Maria Clemente Saverio di Savoia-Carignano)
출생 1798년 10월 2일
사르데냐 왕국 토리노 카리냐노 궁전
사망 1849년 7월 28일 (향년 50세)
포르투갈 왕국 포르투
재위기간 사르데냐피에몬테 국왕 사보이아 공작
1832년 4월 27일 ~ 1849년 3월 23일
서명 파일:카를로 알베르토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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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2da6><colcolor=#fff> 부모 아버지 사보이아-카리냐노의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어머니 작센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배우자 토스카나의 마리아 테레사 (1831년 결혼)
자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페르디난도, 마리아 크리스티나
형제자매 엘리사베타
가문 사보이아 가문
종교 로마 가톨릭 }}}}}}}}}

1. 개요2. 전임 카를로 펠리체와의 관계3. 제1차 이탈리아 독립전쟁4. 업적
4.1. 헌법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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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를로 알베르토는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7대 국왕이다.

1800년 사보이아 왕조의 분가인 사보이아-카리냐노의 공작이었던 아버지 카를로 에마누엘레(Carlo Emanuele di Savoia-Carignano)가 프랑스 제1제국의 감옥에서 사망하자, 불과 2살의 어린 나이에 공작위를 세습받았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는 프랑스에서 어머니 작센의 마리아 크리스티나(Maria Christina),[1] 여동생 마리아 엘리사베타(Maria Elisabetta)[2] 나폴레옹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살았지만 동시에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유주의 교육을 받았다.

1831년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 국왕 카를로 펠리체가 후계자 없이 죽자 13촌 조카뻘인[3] 먼 친척으로서 왕위를 물려받았다.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3세의 딸 마리아 테레사(Maria Teresa d'Asburgo-Lorena)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지만 딸은 영아 때 사망했고, 장남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차남 초대 제노바 공작 페르디난도[4]를 두었다.[5]

평소 우울하고 망설임이 많았으며 베일에 싸인 성격인데다 입헌군주제 전제군주제 강화 사이에서 고민을 오래 해서 '이탈리아의 햄릿', '망설이는 왕(Re Tentenna)'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2. 전임 카를로 펠리체와의 관계

3. 제1차 이탈리아 독립전쟁


유럽을 혁명의 소용돌이로 휩싸이게 한 1848년 혁명 시기인 1848년 1월 시칠리아의 봉기로부터 시작된 이탈리아 반도 전역의 봉기에서 카를로 알베르토는 봉기가 일어난 밀라노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에 병합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제국과 전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1849년 3월 23일 노바라 전투에서 요제프 라데츠키가 이끄는 오스트리아군에게 대패하였다. 카를로 알베르토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퇴위하여 아들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양위하고 망명을 선택했다. 양위 이후 수 개월 만에 망명지인 포르투갈 왕국 포르투에서 사망하였고 유해는 토리노로 이장되어 수페르가 성당에 안치되었다.

4. 업적

제1차 이탈리아 독립전쟁의 실패와 퇴위로 말년이 좋지 못했지만 재위 기간 동안 나름 업적을 남겼다. 1836년 작은 마을을 합쳐 하나의 도시를 세웠는데 그곳이 1992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알베르빌(Albertville)이다. 애초에 알베르빌이라는 이름이 그의 이름인 카를로 알베르토의 '알베르토(Alberto)'에서 유래했다.

이전에는 사보이아 공국, 피에몬테 영주국, 니차 백국, 아오스타 공국, 사르데냐 왕국, 제노바 등 명목상 사보이아 가문이 다스리는 별개의 영지들로 쪼개져있던 것을 1847년 연합법(Fusione perfetta del 1847)을 통해 모두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으로 정식으로 한 나라로 통합해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기존의 영토를 토대로 구성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행정구역은 이탈리아 통일 이후 이탈리아 왕국의 행정구역의 토대가 되었다.

4.1. 헌법 제정

1848년에는 헌법알베르토 헌법(Statuto Albertino)을 채택하였다. 가톨릭을 국교로 삼고 군대 지휘권과 조약체결[7], 행정 최종 결정은 왕에게, 입법권은 양 의회에 부여하였다. 의회는 상,하원 양원제 불체포특권이 인정되었으며 하원은 자유선거로 선출되었다.

또한 모든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계급과 직위를 불문하고 평등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했으며(24~32조), 적법 절차의 원리와 신체의 자유, 언론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였다.

이 헌법은 왕국 전체에서 큰 지지를 받았고 이 때를 기점으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은 확실한 입헌 군주국이 되었다. 이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헌법으로 계승되었으며, 베니토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에 의해 크게 개수되는 흑역사가 있었지만 현대 이탈리아 공화국이 들어서는 1948년까지 근 1세기 동안 이탈리아 헌정체제의 근간이 되었다.


[1] 작센 선제후이자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인 아우구스트 3세의 3남 카를의 외동딸이다. [2] 여동생의 차녀 아델하이트는 장남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결혼했다. [3] 부계혈통상으로는 13촌 조카이지만, 4대 카리냐노 공작이자 카를로 알베르토의 증조부 루이지 비토리오의 어머니 마리아 비토리아가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사생아 딸이기 때문에, 여계로 따지면 8촌 손자도 된다. 할아버지 비토리오 아메데오가 카를로 펠리체와 6촌관계. 하지만 당시 사보이아 가문은 살리카법을 적용해 여계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4] 움베르토 1세의 왕비 마르게리타의 아버지이다. 움베르토 1세에게는 삼촌이자 장인. [5] 제노바 공작가는 5대 174년간 이어지다 1996년에 대가 끊겼다. [6] 사부아 공자 외젠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카를로 알베르토의 조상인 5대조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토마소 프란체스코의 장남, 사부아 공자 외젠의 아버지 수아송 백작 외젠 모리스는 토마소 프란체스코의 막내. [7] 단, 중대한 국가이익과 국가안보에 관한 조약은 의회의 동의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