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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아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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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413년 2월 21일 | ||
사보이아 백국 제네바 | |||
사망 | 1465년 1월 29일 (향년 51세) | ||
프랑스 왕국 리옹 | |||
묘소 | 제네바 프란체스코 교회[1] | ||
재위기간 | 사보이아 공국의 공작 | ||
1440년 1월 6일 ~ 1465년 1월 2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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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0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아메데오 8세 어머니 부르고뉴의 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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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뤼지냥의 안 (1433년 결혼/1462년 사망) | ||
자녀 | 아메데오 9세, 루도비코, 필리포 2세, 마르게리타, 피에트로, 지아노, 카를로타[2], 아녜세, 조반니 루이지, 마리아, 보나, 자코모, 프란체스코 | ||
가문 | 사보이아 가문 | ||
종교 | 로마 가톨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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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보이아 공국의 2대 공작.2. 생애
제네바에서 사보이아 공작 아메데오 8세와 부르고뉴의 마리(Marie de Bourgogne 1386~1422)의 4남으로 태어났으나 위의 형들이 모두 빨리 죽어 1431년, 그가 피에몬테 공[3]으로 임명되었다. 1433년, 키프로스 왕국의 상속권을 가졌던 안 드 뤼지냥(Anne de Lusignan 1418~1462)과 결혼하였고 이후 사보이아 가문은 키프로스 왕국의 계승권과 가까워졌다.1440년, 대립교황이 된 부친의 퇴위로 졸지에 사보이아 공국을 물려받았다. 밀라노 공국에 암브로시아 공화국이 들어서자 밀라노를 편입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1465년 1월, 프랑스 왕국 리옹에서 돌아오던 길에 사망했다.
나중에 공작이 된 아메데오 9세와 필리포 2세 형제 외에도 여러 자녀를 얻었는데, 딸 중 하나인 카를로타는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와 결혼하여 샤를 8세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