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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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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생전
2.1. 배병수 사망 관련 거짓 소문2.2. 조성민의 중상모략
2.2.1. 사건 개요2.2.2. 사건 경과
2.3. 안재환 사망 관련 거짓 소문2.4. 기타
3. 사후
3.1. 베르테르 효과3.2. 정옥숙의 소송3.3. 건설사 <신한>의 상고3.4. 유골 도난3.5. <갑산공원>의 묘지 사기3.6. 최환희‧최준희의 조주형‧유영숙에 대한 소송3.7. 덕정사랑교회의 고인드립3.8. 래퍼 스윙스 고인드립

1. 개요

배우 최진실에 관한 사건 사고를 정리한 문서. 모든 사건들은 최진실 본인이 일으킨 게 아니라 악의적인 루머들로 인하여 발생하였다.

최진실은 화재, 교통사고, 납치, 폭행, 강도, 스토킹 등 여러 사건 사고를 겪으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준 것은 20년 동안 이어진 허위사실유포였고 안재환 사망 관련 허위사실유포는 최진실의 사망의 결정타였다. 성병감염설 유포나 합성누드사진 유포 같은 건 애교 수준이다. 여론조작은 지층이 쌓여가듯 쌓여갔다.

최진실의 활동경력만큼이나 악의적인 루머 유포도 매우 오래 전부터 이어진 편이다. 데뷔하자마자 연예계 정상을 찍은 케이스라 데뷔 때부터 악성 루머의 대상이었다. 연예인한테 까불고 싶은 기자, 경쟁관계인 연예인·매니지먼트사, 잘나가는 연예인을 질투하는 일반인 등이 악성 루머 생산자 후보들이다.

가짜 뉴스 생산 시스템은 인터넷 기술과 만나면서 전환기를 맞게 된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 초기 온라인 모욕죄의 개념조차 희미하던 PC통신 시절 '최진실한테 고소 당했다, 어떻게 유명 연예인이 나 같은 일반인을 고소하냐'며 징징대는 글이 나우누리 같은 곳에 당당하게 올라왔을 정도로 상황이 급변한다.[1]

1999년 3월 김대중 정부가 정보 인프라 기본 계획을 발표하고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을 전국적으로 구축하면서 한국 인터넷 발달은 2000년대에 세계적 수준이 되고 악성 루머 유포도 더 극성을 부리게 된다. 바야흐로 월드 와이드 웹 시대 도래. 그 직격탄을 연예인 선두에 섰던 최진실이 맞는다. 자신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하듯 2008년 2월 9일 OBS <더 인터뷰>에서 데뷔 때 인터넷이 나왔다면 바로 '축 사망'이었을 거라고 말하며 인터넷이 살인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세상에 대한 모든 신뢰를 잃는 경험을 크게 세 번 한다. 여론조작이 크게 세 번 작동되었다는 뜻이다. 세 번째 여론조작에서 더 못버티고 쓰러진다.
  • 배병수 사망 관련
  • 조성민 관련
  • 안재환 사망 관련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진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후에도 여론조작은 이어지게 된다. 이름표 달고 손 들고 나와주는 여론조작범들은 리스트를 작성하여 후손들이 두고두고 반면교사로 삼도록 할 수 있어 다행이기도 하다.

2. 생전

2.1. 배병수 사망 관련 거짓 소문

최진실은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배병수를 매니저로 두었다. 1994년 12월 전용철과 김영민이 배병수를 살해했다. 자세한 내용은 배병수 살해 사건 참조. 최진실이 배병수를 매니저로 둔 시절에 전용철이 최진실의 로드매니저를 담당한 바 있었고 이걸 빌미 삼아 최진실이 이 살인 사건의 교사범이라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퍼졌다. 김구라 등이 2002년 ' 한국을 조진 100인의 개새끼들'을 불러 이 소문의 확대 재생산에 크게 역할을 했다. # #
  • 2002년 10월 19일 : 김구라
    • 김구라는 한국을 조진 100인의 개새끼들을 불러 최진실을 살인교사범으로 모함한다. 연예계 5년 선배이자 연예계 거물인 최진실을 죽여보자고 작정하고 달려든 것. 전용철과 김영민이 무기수로 복역하는 와중에 감히 이런 짓을 했다는 건 배후가 의심되는 대목.
  • 2002년 11월 24일 : 전용철
    • 전용철은 살인교사범이 따로 있다고 인터뷰한다. 교도소에서. 근거없는 소리일 뿐이고 전문용어로 관종짓.
  • 2002년 12월 18일 : 조성민
    • 조성민은 최진실을 살인교사범으로 모는 인터뷰를 한다.
  • 2009년 10월 6일 : 김범석
    • 김범석은 살인범 전용철이 죽은 최진실한테 편지 썼다고 떠들면서 '최진실 살인교사범 만들기' 프레임 거는 모양새이나 살인범 전용철과의 친분만 들킨다.
  • 2013년 12월 20일 : 한명구, 정원수
    • 한명구는 살인범 전용철의 '근거없는 살인교사 타령'을 소재로 영화 만든다고 헛힘 쓴다. 정원수는 배병수 살인 사건에 최진실을 쓸데없이 언급하며 '최진실 살인교사범 만들기' 프레임 거는 모양새이나 살인범 전용철이랑 한패라는 광고일 뿐.

2.2. 조성민의 중상모략

2002년 12월 18일 조성민은 언론을 이용해 '자백과 여론조작' 스킬을 구사한다. # 요약하자면 자백 내용은 '정조의무를 위반했다, 폭행을 저질렀다, 사기를 쳤다'는 것이고 여론조작 내용은 '최진실은 유책배우자다'라는 거다. 여론조작은 그 자리에서 바로 논파가 되어버렸고 자백 부분만 오롯이 남았다. 2004년 8월 31일까지도 그 주장을 입증하지 못하는 걸 보여줌으로써 그 기간 내내 자신이 여론조작범임을 만천하에 드러낸다. 승부가 결정난 게임에서 2002년 12월 18일부터 2004년 9월 1일까지는 그 집행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대중은 조성민이 '정조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 폭행을 저질렀다는 것, 사기를 쳤다는 것, 명예훼손을 저질렀다는 것,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것'을 챙기게 된다. # 이렇게 조성민의 정체를 사회적으로 확인해둔 건 최진실 사후 친권자동부활금지 법안이 마련되는 포석이 되어준다.

조성민의 여론조작질은 크게 4가지 덩어리로 나뉜다.
  • 조성민의 정조 의무 위반 관련
  • 조성민의 폭력 행사 관련
  • 조성민의 사기 행각 관련
  • 배병수 살해 사건 관련

이 4가지에 몇 가지를 더 추가 하자면 이렇다.
  • 태아 최준희가 혼외자인 양 주장한 것(최진실과 최준희 사이 이간질. 이 짓에 최진실 가장 분노.)
  • 최진실이 나쁜 음주가, 흡연가인 양 주장한 것​

2.2.1. 사건 개요

최진실은 1998년 12월 지상파 방송에서 자신의 팬 조성민을 처음 만난다. 둘은 곧 의남매가 된다. 2달 후 조성민은 최진실에게 청혼한다. 하지만 선견지명을 발휘한 정옥숙은 최진실의 인생에 조성민이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했고 최진실도 정옥숙의 생각을 받아들여 관계를 곧 중단한다. 그러자 조성민은 자살쇼를 하게 된다. 최진실은 조성민을 불쌍하게 여기고 남편 역할을 맡겨보기로 한다. 2000년 7월 약혼 하고 4개월 후인 11월 혼인신고 하고 1개월 후인 12월 결혼식 한다.

네티즌들에게 결혼식 인터넷 생중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진실 상대로 정조 의무 위반, 폭행, 사기를 저지른 상태에서 2002년 12월 5일 조성민은 가출하고 13일 후인 12월 18일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근거없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며 막장의 길을 간다. 그 여파로 2003년 3월 1일 최준희 출산 때에도 연락을 받지 못한다. 거기다가 최진영, 정옥숙에게 빌린 돈도 갚지 않아 소송당한다. 2003년 10월에는 이혼합의서를 무단으로 언론에 공개해 최진실에게 고소당한다. #

2004년 8월 1일에는 한밤중에 최진실 자택을 찾아가 최환희와 최준희가 보고 싶어 왔다고 자택에 들어가 폭력 행사를 하며 최진실에게 맞서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2004년 8월 23일 조성민의 사기 관련 판결이 나온다. 결국 조성민과의 극한 대립 끝에 2004년 9월 1일 최진실은 이혼했다. 이후에도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 상대로 면접교섭 의무 불이행을 저지른다. 2008년 10월 1일 월간 잡지 두 곳을 통해 최진실 상대로 여론조작하고 2010년 10월 9일에도 최진실 상대로 여론조작한다.

2.2.2. 사건 경과

  • 조성민은 고등학생 때부터 최진실의 팬이다.
  • 1998년 11월 조성민은 최동철에게 전화해 라디오 방송 출연을 자청하고 최진실도 출연하도록 해볼테니 꼭 부탁한다며 연락한다. 이 무렵에 KBS <행복 채널> 녹화가 있었을 것이기에 최진실과 안면을 튼 후 바로 연락한 것으로 추정. 최진실은 영화 촬영 중 짬을 내 전화 인터뷰에 응한다. #
  • 1998년 12월 1일 KBS <행복 채널>에서 최진실과 조성민이 처음 만나는 게 방송된다. 제작진은 1998년 일본 야구 리그 올스타 조성민을 섭외했고 조성민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최진실의 팬인 걸 알게 되어 만남을 추진한 것. 최진실은 조성민을 몰랐으나 이 계기로 나름 실력도 있고 인기도 있는 선수라는 걸 알게 됨.
  • 최진실과 조성민은 의남매가 되어 서로의 직업에 대해 응원해주며 우애를 나눈다. 조성민은 최진실의 자택에 놀러가기도 한다. 최진실은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조성민은 개안 수술 행사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하며 최진실의 환심을 산다.[2]
  • 조성민은 최진실에게 미국 구단 입단 포부를 밝혔다. 이 무렵에 박찬호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이라 미국 야구 리그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박찬호는 1997년 신문지상에서 성공한 유명인으로 최진실과 함께 언급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미국은커녕 일본 구단과의 계약 기간도 다 못채우고 야구판에서 나오는 걸 나중에 보게 됨.
  • 1998년 12월 30일 최진실은 납치 미수 사건을 겪는다.
  • 1999년 2월 조성민은 다섯 살 연상 최진실에게 청혼한다. 7년 동안 최진실을 짝사랑했다고 고백한다.[3] 요미우리 자이언츠 괌 전지 훈련지 주소와 전화번호를 최진실에게 알려준다. 최진실은 괌으로 놀러감으로써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일본 진출에 관심을 가지던 때이기도 하여 최진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일본에 놀러간다. 하지만 정옥숙은 최진실의 인생에 조성민이 별로 도움이 안될 거라고 본다. 점쟁이도 찾아가는 등 심란한 마음을 드러낸다. 조주형도 이 결혼에 난색을 표한다. 아쉬울 게 없는 최진실은 조성민을 끊는다.
  • 최진실과의 결혼이 성사되기 어려워 보이자 조성민은 일본에서 자살 시도를 한다. 조성민의 당시 매니저 손덕기는 구급차 안에서 최진실의 자택에 전화를 걸어 정옥숙과 통화한다.[4] # 최진실은 조성민을 불쌍하게 여겼는지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정옥숙은 유영숙으로부터도 결혼허락해줍사하는 전화를 받는다.
  • 2000년 7월 조성민과 약혼한다. 연예 기자들의 관심이 폭발적이라 귀찮은 일들이 이어지고 기자회견으로 이를 정리한다. 연예 기자들에게 연애는 핫 아이템이었고 그것도 최고 인기인 최진실이 연애를 한다니 미친듯이 달려든다.
  • 연예 기자들은 1990년대 전반기 두 살 연상 변진섭과의 연애 때도 미친듯이 달려들었었다. 1992년 6월 변진섭과 약혼했다는 가짜뉴스가 나올 정도. 그 와중에 죽은거나 다름없던 최국현도 변진섭과 결혼한다면서 왜 자기한테 연락 안했냐고 들이댔었고 최국현은 거기다가 정옥숙한테 돈 달라고 들이대기도 하고. 정옥숙이 포장마차 운영할 때 돈 뜯어간 전적을 볼 때 그러고도 남는다. 하는 짓이 말썽부리겠기에 최진실은 최국현에게 '개뼈다귀 물려주기 스킬'을 발휘한다. 그 덕에 최진실 명예를 훼손하는 짓은 크게 하진 않는다. 최진실 흠집내고 싶은 연예 기자들은 최국현 가지고 재미보려고 하나 크게 먹히진 않는다. 최진실이 일찌감치 최국현을 띄워 미리미리 리스크 관리 해두기도 했고. 정옥숙이 1998년에 이혼하도록 한 것도 리스크 관리일 수 있는 게 최진실 성공 직후가 아니라 10년 후라서 연예 기자들이 정옥숙의 이혼에 크게 신경 안썼다.
  • 연예 기자들은 두 살 연하 이병헌과의 연애설을 뿌리면서도 난리를 친다. 이병헌은 최진영의 친구였고 # 1994년 군에 입대한 최진영은 SBS <사랑의 향기>에 최진실과 같이 출연하는 이병헌에게 자기 대신 누나한테 잘해주라고 부탁하기도 하는데 2007년 <무릎팍도사>에서 최진실이 한 말로 추정컨대 이병헌과 연애했을 가능성 농후. 변진섭과의 연애도 연애설 발생 후에 그걸 같이 처리해보자고 자꾸 만나다가 한 것이듯, 이병헌과의 연애도 연애설 발생 후에 서먹하게 지내다가 이루어졌을 가능성 큼. 연애설 당시에는 부인했으나 연예 기자들은 집요하게 물어제낌. 변진섭과 연애 중일 때 이병헌과의 연애설이 나와 교통정리하느라 바쁨. 정리를 하자면 변진섭과의 연애 종료 후 이병헌과 연애를 한 것으로 추정됨. 이병헌과는 1995년 SBS <아스팔트 사나이>, 영화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에도 같이 출연한다.
  • 연예 기자들이 나댄 역사는 길다. 변진섭과의 연애가 종료된 것이 1995년. 1996년에는 이병헌과 연애 중이었던 것으로 추정. 연예 기자들은 변진섭과 연애 종료 후에도 변진섭과 친구로 잘 지내는 최진실을 보며 변진섭과 다시 연애하나안하나로 날밤 까면서 정작 이병헌과의 연애 여부는 관심의 대상에서 밀려나 있었음. 최진실은 변진섭과의 연애 종료 후에도 변진섭과 서로의 직업을 응원해주며 우애를 나눔. 연예 기자들이 헤집고다니지 않았으면 의남매로 우애를 계속 이어갈 수도 있었을텐데 결국 거리를 두는 사이가 됨. 나중에 MBC <내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배우와 OST 가수로 조우. 이병헌 건 이후에도 일반인과 연애가 있었고 이 연애는 이영자, 홍진경 정도만 알고 지나갔다.
  • 최진실은 성당, 조주형은 야구장에서 결혼식을 하길 바란다. 조성민은 조주형에게 겨울에 얼어죽을 일 있냐며 반대한다. 최종 서울 하얏트 호텔로 결정. 야구장 결혼식이라는 허세와 최진실 돈을 탐낸 추후 행동을 보건대 '결혼 반대 어쩌구'는 조주형의 페인트모션 가능성이 농후하다.
  • 2000년 12월 5일 결혼식을 한다. 이 행사에는 1500여 명의 하객이 참석한다. 주로 연예계와 야구계 인사들이다. 취재 기자들도 300여 명이 몰린다. 행사 전 과정은 인터넷망 iMBC를 통해 3시간 동안 생방송된다. iMBC는 2000년 3월에 설립된 MBC 자회사. 최진실은 MBC 전속배우. 네티즌 50만 명 접속. 인터넷 개인 방송은 나중에 아프리카TV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된다.
  • 신민섭은 결혼식장에 들어가지 못해 최진실에게 앙심을 품는다. #
  • 2001년 2월 SBS <두 남자 쇼>에 출연한다. 이 방송에서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함께 부른다.
  • 2001년 최진실은 일본에서 거주하며 일본 생활을 몇 달 즐긴다. 1998년부터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일본어도 공부해둔 터라 일본 생활은 일본 시장 조사에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 2001년 4월 남양유업과 광고 계약을 맺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인터넷에 <안티최진실카페>가 생긴다. 분유 가격 문제를 광고 모델한테 책임을 물은 어처구니 없는 결과다. 기자들이 모델료를 더 높게 떠들어대서 소비자들의 화를 돋운 결과이기도 하다. 최진실은 광고 계약을 없던 걸로 하고 마무리 짓는다. 그래도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이 죽을 때까지 존재한다. 조성민은 이걸 잘 악용한다.
  • 2001년 8월 3일 아들 최환희를 출산한다. 조성민은 일본에서 입국한다. 산부인과에 연예 기자들이 몰려간다.
  • 2001년 11월 최진영은 이경규가 진행하는 예능 <보고 싶다 친구야>에 김민희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한다. 이 예능은 게스트가 친구들한테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방송 녹화 현장에 누가 더 많이 오도록 하는가를 겨루는 컨셉. 최진영의 친구로 이서진, 김영철, 조성민 등이 달려온다.
  • 2002년 최진실은 한국에서 연예 활동을 한다.
  • 최진실은 연속극 <그대를 알고부터> 종영 후를 둘째 아이 임신 시점으로 잡는다.
  • 일본에 거주하는 조성민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한국에 온다. 그러다가 사업 시작하면서 2주에 한 번 꼴로 온다.
  • 2002년 5월 최준희를 임신한다. 최진실은 한 달 전인 4월부터 <그대를 알고부터> 출연 중이고 5개월 후인 10월에 종영한다. 뜬금없는 임신 시점과 조성민의 같잖은 입놀림으로 볼 때 스텔싱 가능성 농후. #
  • 2002년 6월 <그대를 알고부터> 시청자 게시판을 중심으로 최진실에 대한 허위사실이 유포되어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다.
  • 2002년 7월 조성민은 사업을 시작한다. 최진실에게 성실한 야구 선수로 어필하여 결혼한 것인데 이 신뢰가 깨지기 시작한다.
  • 최진실은 최환희 양육, 최준희 태교, 연기로 바쁘다.
  • 2002년 8월 3일 최환희의 돌잔치를 한다.
  • 2002년 8월 30일 조성민은 목동 현대백화점 지하 매장을 임차하여 빵을 팔기 시작한다.
  •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은 각각 1억 원씩 조성민에게 돈을 빌려 준다. 1억 원밖에 주지 않는다고 최진실한테 불평한다.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최진실은 일단 이 짓거리를 만회할 기회를 줘본다.
  • 2002년 9월 1일 조성민은 임신부나 태아를 걱정하기보다 '하루라도 젊었을 때 일찍 낳아 빨리 키우자는 게 자신의 생각이다. 그래야 최진실도 빨리 애를 키우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황당한 말을 한다. 왜냐하면 최진실은 이미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를 알고부터> 출연 중. 더군다나 '너는 뭐 하고?'라는 소리 절로 나오는 장면. '시간이 남아돌아 두 나라 왔다갔다하며 빵 파는 주제에 육아나 할 것이지'라는 소리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 2002년 10월 최진실은 연예인 동료들과 함께 조성민의 빵 가게 홍보를 해준다. 장사꾼으로서는 성실한지 지켜본거다. 돈 벌어 채무 변제 잘하면 최진실 재산 탐낸 짓거리 만회되는 거다.
  • 열심히 하라는 장사는 뒷전이고 조성민은 술집마담 심미영(가칭)과 연애하느라 바쁘다. 이게 최진영, 조성미의 귀에도 들어간다. 이 짓거리 세상에 알려지면 빵은 다 판 것. 최진영 귀에까지 들어갔다면 기자들 바닥에는 이미 쫙 다 퍼졌을 것. 심미영이 흘렸을 가능성 농후. 고로 이때 이미 김대오는 조성민, 심미영과 접촉 가능.[5][6] 이후 김대오의 행보를 보면 많은 것이 가늠이 된다. 심미영이 조성민 관련 노이즈마케팅 실컷 해둔 것은 2010년 심미영이 가방장사에 나서면서 그 내막이 구체화된다. # 그러면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도박장 운영 운운 심미영을 다루고 싶어했다. #
  • 최진영은 심미영이 일하는 술집에서 조성민과 심미영을 만나 이들의 위법행위에 대해 경고를 한다.[7]
  • 2002년 10월 31일 조성민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퇴단한다. 2003년 10월이 계약 기한이다. 미국 구단 입단은커녕 선수 은퇴 수순을 밟는다. 7년간의 일본 거주 생활도 마무리 짓게 되면서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삿짐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 2002년 11월 6일 조성민은 최진실을 폭행한다. 이 날은 조성민이 일본 짐을 최진실의 자택으로 가지고 들어온 날이다. 다른 짐들은 최진실의 자택에 있으니 들여올 필요가 없었을 테고 주로 조성민의 옷들이다. 조성민은 일단 부모가 거주하는 경기도 집에 이 짐들을 갖다두었다가 최진실의 출산 이후에 들여와도 되는데 굳이 이 날 최진실의 자택으로 가지고 들어왔고 그 짐을 들고오느라고 힘들었다며 짜증을 낸다. 그런 모습에 최진실은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기다렸다는듯이 조성민은 최진실의 뺨을 때리고 수십 번 밀치며 폭행한다. 계획적 폭행으로 볼 수 있는 게 이미 이혼당할 입장이라서 최진실의 자택에 짐을 끌고 들어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이 심리에 대해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진단했다. 최진실은 시누이 조성미와 함께 산부인과에 간다. 다행히 태아는 건강하다. 폭행 입증 기록을 남겨둔다. 경기도 별장에서 안정을 취한다. 조성민은 이 사건 이후 한 달 정도 뭉개다가 제 발로 기어나간다.
  • 조성민이 최진실에게 이혼하자고 한다. 최진실은 자신이 시정할 행동이 있다면 하겠다고 해본다. '당신 안에 또다른 당신이 있는 것 같다, 당신이 무섭다'는 반응이 나온다. 여론조작 냄새를 풍긴거다. 폭행범이 조용히 처분을 기다려도 모자랄 판에 여론조작 협박까지 한 것이다.
  • 최진실은 조성미로부터 조성민이 심미영과 연애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 무렵 조성미는 물론 최진영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최진실은 알게 된다. 이걸 통해 조성민이 무슨 속셈으로 자신을 폭행한건지, 얼토당토않은 말을 한건지 맥을 짚게 된다.
  • 심미영은 조성민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남기며 자신의 존재를 최진실에게 알리려고 애쓴다. 조성민도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 2002년 12월 5일 조성민은 가출한다. 임신부 폭행 거리로 삼았던 옷은 두고 나간다. 이 옷은 이혼 후에도 가져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최환희, 최준희 면접교섭권 존중하는 대외적 스탠스는 일관되게 유지해줌.
  • 조성민의 가출지는 사무실이었고 그 사무실 옆 건물에 심미영이 산다.
  • 2002년 12월 17일 최진실은 조성민의 사무실을 찾는다. 동거 제보 받은 것으로 추정됨. 심미영이 흘렸을 가능성 농후. 조성민은 사무실에 없다. 심미영이 사는 건물 주차장에 가보니 조성민의 차가 있다. 동행했던 최진영은 상황의 심각성을 각성시키고자 조성민에게 전화를 걸어 주차장에 경찰과 함께 있다는 거짓말을 한다. 이 거짓말에 대한 반응이 가관이다. 기자들에게 들켜 망신당하지 말고 처신 잘 하고 살라는 뜻으로 주의를 줬더니 다음날 장본인이 직접 기자들을 불러놓고 간통, 간통 상간녀와의 동거에 대해 광고하고 다닌다.
  • 2002년 12월 18일 조성민은 최진실에게 이혼하자고 하고 최진실이 거절하자 '이혼하게 해주겠다'고 하며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다. 이 자리에서 조성민은 '이혼하고 싶다, 최진실이 나를 간통죄로 고소하려고 한다, 최진실은 나와 심미영이 동거한다고 한다, 나는 심미영과 동거하지 않는다, 심미영과 연애 편지 주고 받았다, 최준희는 내 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최진실이 나를 폭행했다, 나도 최진실을 폭행했다, 최진실은 임신 중에 담배를 피웠다, 최진실이 최진영을 교사해서 심미영을 납치했다, 최진실이 이혼하자는 말을 했다, 최진실과 최진영과 정옥숙이 나보고 빌려간 돈 갚으라고 윽박질렀다, 최진실은 내조를 못한다, 최진실에 대한 소문들에 고통스럽다, 야구가 너무나 하고 싶다' 등등 아무말 대잔치를 벌인다. # 그리고 명품사들이 최진실에게 입어달라고 협찬해준 옷들로 조성민은 "최진실이 사치와 허영심이 심해 옷장에 텍을 안 뗀 똑같은 옷들이 많다"라는 발언도 하였다.[8]
  • '내조 타령' 조성민은 최진실한테 맡겨놓은 듯이 '왜 나한테 내조 제대로 안하냐'고 난리. '내조 타령' 조주형도 최진실한테 맡겨놓은 듯이 '왜 내 아들한테 내조 제대로 안하냐'고 난리. "주형아 니 아들은 시간도 남고 힘도 남아 두 나라 오가며 빵 팔았잖아. 거기다가 얼마나 힘이 남아도는지 간통에, 임신부 폭행에. 근데 무슨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냐?"라는 소리 절로 나오는 장면. 부자가 최진실 인격에 흠집 내보려고 최진실을 물어뜯는 게 볼만하다. 하지만 대중은 이미 최진실이 조성민한테 도움을 많이 준 걸 알고 있다.
  • 조성민이 여론조작질 하며 '나 돈 많아' 하고 다니는데도 입으로는 돈 없는 척 쇼하며 동정심 유발하니 최진실을 물어뜯는 사람들이 하나둘 등장하는데 급기야 조성민의 통장잔고 걱정하는 것들도 보게 된다. 그러면 본인들 재산 헐어서 그 잔고 불려주든지 하면 되는데 최진실 재산으로 그걸 해결하려고 하니 뒷목 잡을 일이 되겠다.
  • 대중은 조성민이 가정법원 못가는 모양새에 사태 파악을 일찌감치 한다. '이혼하고 싶어, 최진실은 유책배우자야'라니,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 없다고 해줘, 제척기간 있어'이니 하루라고 젊어서 이혼 완료 하려면 가정법원 가서 소송이혼하는 게 정답인데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니니, 손에 쥔 게 전혀 없으니 여론조작질만 하고 다닌다.
  • 조성민은 자긴 피해자인데 임신부 골탕먹이는 나쁜 인간으로 취급받아 힘들다며 어그로 열심히 끌고 다닌다. 최진실한테 온갖 위법 저지르고 다니고 가출해서 사무실에서 산다고 주장하는 주제에 최진실한테서 양육권을 가져오겠다고 큰소리 치고 다닌다.
  • 궁지에 몰린 조성민은 한국 구단 입단을 모색한다. 퇴단한 일본 구단에도 입단 의사를 타진한다. # 은퇴 수순 밟다가 유턴하여 선수 생활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다. 기존 야구팬이라도 붙잡아두기 위한 몸부림이다. 2005년에 한국 구단에 입단하긴 한다.
  • 이 와중에 얼마 전 조성민과 심미영이 홍콩 같이 다녀온 게 기사로 나온다. 기자에게 들켜서 기사 난 걸 그 사실을 기사가 나서 알게 된 최진실이 기자에게 말해서 기사 난 것처럼 조성민은 떠들고 다닌다.
  • 2003년 1월 유재순은 최진실을 유책배우자 취급하는 기사를 쓴다. '내조 타령' 유재순은 최진실한테 맡겨놓은 듯이 '왜 조성민한테 내조 제대로 안하냐'고 난리. # "재순아 그렇게 하고 싶으면 너나 해"라는 소리 절로 나오는 장면.
  • 2003년 3월 1일 딸 최준희를 출산한다. 조성민은 나중에 이 사실을 전해듣는다. 최진실이 지으려고 했던 딸의 이름 '신희'에 대해 조성민이 시비를 걸어 일단 '수민' 이라는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한다.
  • 2003년 최진실은 최준희를 양육하는 데 전념한다. 자녀들과 교외로 여행을 자주 간다.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 # ​​
  • 2003년 10월 17일 최진실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영화 ‘내사랑 일진녀’의 출연진을 선발하는 오디션 자리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한다. # ​​
  • 2003년 10월 23일 조성민이 최진실의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공개한다. 이 범죄 행각으로 최진실한테 고소당하고 2004년 4월 24일 처벌받았다.[9][10]
  • 조성민 수족 기자들은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인 양 몰아갔다. 대중은 조성민과 연예 언론의 악랄함에 분노했다. 송원섭은 조성민의 궤변을 받아쓰기 했다. #[11]
  • 소송이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니라 자격이 안 돼 못하고 합의이혼은 채무변제, 양육비 등 합의금 아까워 못하고 조성민은 '덫에 걸린 원숭이' 신세다. 최진실은 급할 게 없다. 대중도 조성민의 실체를 파악하는 시간을 갖는다.
  • 2003년 12월 15일 최진실은 지난 일 년 동안 쌓인 쓰레기 청소에 나선다.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연예 활동 비전을 밝힌다. 그러면서 '이혼할 의사 없음'도 선포해 온오프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마타도어들을 정리한다. 조성민이 소송이혼 못하는 신세라는 걸 만천하에 드러내 확인사살해 버린 거다. 같은 날 조성민은 불교 행사에 참석하며 이미지 세탁 열심이지만 8개월 후 또 폭행을 저지른다.
  • 2004년 3월 1일 최준희의 돌잔치를 한다. 조성민도 참석한다.
  • 2004년 3월 20일 연속극 <장미의 전쟁>에 출연한다. 3개월 후인 6월에 종영한다. 주철환은 최진실의 연기 활동을 공격한다. #
  • 2004년 7월 영화에 캐스팅된다. 영화 크랭크인을 앞두고 괌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다. 잡지사와 함께 간 여행이라 월간지 <주부생활> 8월호에 여행 요모조모가 실린다.
  • 2004년 8월 1일 새벽 3시 조성민은 최진실의 자택을 찾아간다. 잠자리에 든 최진실은 느닷없는 조성민의 방문에 놀란다. 조성민은 최진실에게 최환희와 최준희를 보기 위해 왔다고 한다. 소란스러워질 것을 염려한 최진실은 조성민을 들인다. 조성민은 자는 최환희와 최준희를 둘러본 후 최진실에게 이야기할 게 있다고 말한다. 최진실은 이야기할 기회를 준다. 조성민은 신세한탄을 하다가 돌변하여 최진실을 폭행하기 시작한다. 최진실의 비명을 듣고 이은정이 달려온다. 이은정, 최환희, 최준희, 육아도우미(박진희로 추정)가 모두 공포 속에 놓인다. 최환희가 조성민에게 나가라고 한다. 그 말에 자격지심이 발동한 조성민은 최환희를 들쳐업고 나가려고 한다. 최진실은 말린다. 조성민은 그런 최진실을 폭행한다. 이은정은 조성민의 눈을 피해 최진영에게 전화를 건다. 최진영과 정옥숙이 최진실의 자택으로 달려온다. 최진실을 보호하려다가 최진영도 다친다. 경비원도 올라온다. 칼로 찔러 죽이겠다며 칼 찾아다니며 발광하던 조성민은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 이틀 후인 8월 3일이 최환희의 생일이다. 생일 선물 줄 게 없어서 이 짓을 한 거다.
  • 조성민은 제 버릇 개 못주고 나도 맞았다쌍방폭행이라고 떠들고 다닌다.[12] 최진실은 역시나 '이혼할 의사 없음' 카드로 구라쟁이 조성민을 한방에 보내버리는 동시에 온오프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마타도어들도 정리한다. 같은 상황을 두고 피해자 말과 가해자 말이 다를 경우 피해자 말이 진실이라는 게 상식이라 조성민은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 최진실은 범죄 현장과 다친 얼굴을 공개하며 조성민을 확인 사살한다.
  • 최진실은 조성민에 대해 100m 이내 접근 금지 신청 한다.
  • 2004년 8월 23일 조성민의 사기 행각이 법원에서도 입증된다. # ​​법원에서 조성민보고 최진영과 정옥숙에게 빚 갚으라고 판결난다. 원고 승소. 2003년 2월경 이 소송이 알려졌는데 조성민은 그 돈 안줄려고 언론플레이 열심히 했었다.
  • 2004년 9월 1일 조성민과 이혼한다. 조성민의 여론조작질로부터 정옥숙, 최진영, 최환희, 최준희의 명예를 지켜내는 데도 성공했다. 이때 조성민은 빚 갚기 싫어서 돈 받고 친권 판다는 문서를 남긴다. 조성민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적시하는 문서를 작성한다. 최환희와 최준희는 성인이 된 후 이런 서류들과 최진실의 인터뷰 기사, 최진실의 일기 등으로 조성민의 정체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하면 된다. 이 날도 안티 카페 인간들은 여론조작 신나게 했다.
  • 2004년 11월 16일 <신한>은 최진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건다. 최진실과 조성민의 일련의 사건들로 브랜드 이미지 실추되어 <신한>은 이 공개로 피해 입었다고 주장한다. <신한>은 광고주, 최진실은 광고 모델 관계다.[13] 최진실은 인권변호사 강지원을 찾는다.
  • 2004년 12월 10일 조성민의 폭행에 대해 유죄 처벌이 내려진다.
  • 2004년 12월 16일 서병기가 범죄자 조성민을 지원 사격한다.
  • 2005년 조성민은 한화 구단에 입단한다. 어느모로 보나 방출을 시켜도 모자랄 위인을 김인식의 입김으로 떡 하니 입단시키는 엽기적인 일이 벌어졌다.
  • 2005년 7월 조성민은 심미영과 혼인신고한다.
  • 2005년 9월 23일 신한이 일부 승소한다.
  • 2006년 5월 2일 신한이 패소한다. #
  • 2007년 9월 18일 최진실, 최진영에 대한 여론조작질이 기자들에 의해 또 가동된다. #
  • 2007년 9월 20일 조/심 커플 혼인신고 기사가 나온다. # 2007년 10월호 월간지 기사 내용이 흘러나온 것. 이걸 물타기하기 위해 이틀 전 최진실, 최진영에 대한 여론조작질이 이루어졌을 가능성 농후하다.
  • 최준희가 면접교섭권을 행사하고 싶어해 박진희가 조성민한테 전화를 걸어 약속 날짜를 잡는다. 근데 막상 약속 당일 연락 두절 되어 알아보니 심미영이 조성민한테 전화번호를 바꿔버리라고 지시해서 그 모양이 된 거였다. 최진실은 어린 최준희 뒤통수를 깐 심미영을 단단히 훈계한다.
  • 2008년 5월 최진실은 딸의 이름을 '준희'로 개명한다. 아들과 딸에게 자기 성을 준다.
  • 2008년 9월 8일 오대일은 시신 안치소 앞에서 주저앉은 최진실의 모습을 찍는다. 이 사진은 기사에 실리고 최진실이 안재환을 죽음으로 몰고갔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대일과 김대오는 같은 언론사 기자다. 최진실을 안재환 시신 안치소로 데리고 간 것도 김대오다.
  • 안재환은 채무 때문에 죽었다. 사채업자 최진실이 안재환한테 돈 갚으라고 윽박질러 안재환이 죽었다는 날조가 백승연 등에 의해 널리 퍼져나간다. 5년 전 조성민도 최진실을 악덕사채업자인 양 떠들고 다녀서 최진실한테 혼난 적 있다. 채무자 주제에 돈은 갚지 않고 그러고 다녔다. 백승연은 조성민의 계승자쯤 되겠다.
  • 2008년 9월 조성민은 사업을 시작한다. 백은영, 하은정과 인터뷰 한다. 이 때 심미영이 연예계 인사들과 친하다고 자랑한다.
  • 2008년 10월 조성민의 9월 인터뷰가 잡지로 나온다. 제 버릇 개 못주고 또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며 호도한다. 최환희, 최준희한테 면접 교섭 의무 불이행한 것도 최진실 탓이라며 쭉 면접 교섭 의무 불이행할 거라고 제 얼굴에 침 오지게 뱉는다. 최환희, 최준희의 권리를 침해하는 글이 널리 퍼져 나간다.
  • 보통 9월말에 10월호 잡지가 나온다. 최진실은 최환희와 최준희한테 까분 조성민을 혼낸다. 혼낸 사실을 김재우에게 말해 둔다. 최진실 사망 후 조성민이 최환희‧최준희 재산에 집착할 때 김재우를 통해 이 카드가 쓰인다. 죽은 최진실이 산 조성민 싸다구를 날린 거다.
  •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
  • 역사나 제 버릇 개 못준 조성민은 정옥숙과 최진영을 물어뜯고 다닌다. 면접 교섭 의무도 불이행한 주제에 최환희와 최준희 재산 관리에 참견하겠다고 나대다가 여론의 철퇴를 맞는다.
  • 2008년 11월 3일 주진우는 정옥숙한테 최진실 등신 만드는 질문을 한다. [14]
  • 2008년 11월 19일 김태훈은 조성민, 백은영, 하은정이 작당해서 무슨 짓을 저지른지도 모르고 나댄다. #
  • 2009년 6월 여전히 정신 못차린 조성민은 난데없이 정옥숙, 최환희, 최준희가 다니는 교회에 나타나 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척 연출해대다 정옥숙의 호통을 듣는다. 어느 날은 잡지 기자를 대동하고 교회에 나타나 애들 노는 걸 배경으로 같이 노는 척 사진 찍으며 생쇼를 해서 웃음거리가 된다. 또 이 교회와 손잡고 사업한다며 광고해대 목사가 직접나서 아니라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
  • 2010년 2월 9일 신한이 일부 승소한다. # [15]
  • 2010년 3월 29일 최진영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
  • 2010년 10월 9일 조성민은 자기는 절대 최진실을 폭행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오리발을 내밀고, 대놓고 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최진실이 마치 피해를 조작했다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했다. #
  • 조성민은 사업한다고 나대지만 잘 안된다.
  • 2012년 11월 조성민이 후배한테 폭행당했단다. 피해자인데 가해자로 몰렸다고 징징댔단다. "니가 최진실한테 한 짓거리를 생각해봐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 2013년 1월 6일 조성민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16] #
  • 유산이 최환희와 최준희한테 넘어갈까봐 미리 손써둔 치밀한 조성민.[17] 그걸 합리화하는 '주부생활' 인터뷰이 조성미. 조성미는 연애 서사 어그로 끌며 조성민의 범법행위 물타는 기술도 시전한다. # '피디수첩'에 나와 감히 피해자코스프레 하는 조성미. # 남매가 똑같은 부류라는 거 입증. 거기다가 억울한 게 많은 조주형은 조성민에 대해 책 쓴다고 난리. # 유영숙도 비슷한 입장. #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한 짓으로 조성민 실체 다 까발려졌는데 저 집안은 단체로 저러고 놈.
  • 2013년 7월 조성민 같은 위인 걸러내는 친족법이 시행된다.

2.3. 안재환 사망 관련 거짓 소문

2008년 9월 배우 안재환이 사망했다. 안재환은 채무 변제에 어려움을 겪다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안재환이 최진실의 친구인 코미디언 정선희의 남편이었고 이걸 빌미 삼아 최진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라는 거짓 소문이 퍼졌고 이로 인해 최진실은 고통을 겪은 바 있다. 그 거짓 소문은 청와대 경호실 출처라며 채권자 최진실이 채무자 안재환을 압박해서 안재환을 죽게 했다는 내용이었고, 이 소문에는 최진실의 어머니도 등장하는 등 정교한 이야기 구성으로 신빙성을 높였다. 최진실도 이 날조가 전문가의 솜씨라고 생각했다. # 이러한 루머는 최진실 2008년 10월 2일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했다.

2.4. 기타

  • 1989년 MBC 드라마 <시진읍>을 촬영할 때 세트장에 불이 나 죽을 뻔 했으나 소품담당자의 도움으로 살았다. 상대 배역이었던 배우 이덕화도 직접 구조를 도왔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최진실의 자서전에 따르면 이 때 이덕화는 본인의 가발과 점퍼가 불에 타서 버려야 했는데 이후 최진실을 만날 때마다 옷값 물어내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물론 최진실은 그 은혜를 어찌 옷값만으로 갚을 수 있겠냐며 매우 고마워했다고.
  • 1990년 광고 촬영 차 사이판에 갔다가 거기서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때문에 부상당한 몸으로 영화 '남부군' 촬영에 임하게 된다.
  • 1994년 5월 납치될 뻔 했다. 20대 대학생이 납치 목적으로 최진실이 거주하던 빌라에 숨어있던 것이 발각되었다. 범인은 최진실을 납치한 뒤 나체사진을 찍어 협박해서 금품을 뜯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
  • 1995년 교통사고를 당했다. 마주오던 차가 중앙선을 침범해 발생한다.
  • 연예인이 되어 주소가 노출된 후 집에 도둑이 든 적이 여러 번 있다. 팬인 척 하며 문을 열게 한 후 칼을 들이대며 범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 가스배관을 타고 침입하기도 했다. 그래서 집 커텐이 펄럭이는 것만 봐도 깜짝깜짝 놀라는 증상도 겪는다. 어린 시절부터 심장이 약해 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 1995년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고 극성 팬과 도둑을 피하고자 급기야 이사를 추진하게 되고 주상복합건물주가 되어 경비원을 배치한다.
  •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인 이주노가 일방적으로 구애를 한 사건이 있었다. 이주노는 주변 지인들을 통해 최진실을 좋아한다고 언급했고, 방송 관계자를 통해 최진실과의 만남을 이어가려고 했으나, 번번히 무산. 결국에는 술취한 상태로 최진실의 집앞에서 행패를 부리는 사건이 발생. 이를 목격한 이웃주민이 신고하여 이 사건에 대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최진영은 군대를 제대한 후 카페를 운영한다. 1996년 어느 날 최진실은 친구들과 그곳을 들렀다가 돌아가던 중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다가 술에 취한 행인들을 만난다. 이 행인들은 최진실 일행에 대해 '연예인'이라며 시비를 건다. 최진실은 이들의 타겟이 되고 행인들의 폭력에 얼굴을 다친다.
  • 1998년 12월 납치될 뻔 했다. 최진실을 자택에 데려다 주고 돌아가던 매니저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다시 왔고 그 덕에 납치는 미수에 그치게 된다. 하지만 범행을 제지하던 매니저가 범인의 칼에 찔려 크게 다친다.

3. 사후

사후에도 최진실과 관련된 사람들이 다양한 사건 사고를 겪는다.

3.1. 베르테르 효과

최진실 자살 직후 한 달 동안 1,700명이 자살하면서 일시적으로 자살률이 70% 증가했다. 1990년부터 2019년 사이에 자살한 유명인에 대해 분석한 결과 최진실의 베르테르 효과가 가장 컸다.

3.2. 정옥숙의 소송

정옥숙은 조성민의 ‘친권자 자격 여부 확인 소송'을 위해 변호사 진선미를 선임했다. # 조성민은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관심을 보이다가 지난 만행이 다시 회자되어 사회적 분노를 산다. 그 여파로 친권자동부활금지 법안(일명 최진실법)이 마련되고 비슷한 사건들이 생길 일이 사라지게 되었다. #

3.3. 건설사 <신한>의 상고

광고주 <신한>은 최진실 생전에 범죄 피해자 최진실을 상대로 손해배상금을 청구했었고 최진실 사후에도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여 비난의 대상이 된다. 25명의 인권변호사가 최진실을 돕는다.

3.4. 유골 도난

2009년 8월 15일 최진실의 묘소가 훼손되고 최진실의 유골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신고 보상금을 걸며 범인 색출에 열의를 보이자 제보자가 나타났고 경찰은 2009년 8월 25일 대구에서 범인을 잡고 유골도 회수한다. 범행 동기를 묻자 범인은 “최진실이 꿈에서 납골묘가 답답하니 나를 꺼내달라는 말을 해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라고 헛소리를 했다. #, ##

두번째 기사를 보면 범인은 기존 유골함에서 나무상자로 유골을 옮겨 담았으며 기존 유골함의 일부가 인근 야산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범인으로부터 유골을 돌려받았지만 그게 진짜 최진실의 유골인지도 확실치 않다고 한다. 화장의 특성상 DNA 감식이 불가능하기 때문. 또한 두번째 기사에 따르면 회수후 재발을 우려해 재안장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다시 안장했다.

3.5. <갑산공원>의 묘지 사기

사립 묘원 <갑산공원>은 최진실과 최진영의 묘지를 경기도 양평군의 개발 제한 구역 내에 설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위법한 묘지 자리를 명당 자리로 속여서 분양한다. 2011년 7월 12일 수십억 원의 부당 이익을 챙긴 범인들은 구속된다. 최진실과 최진영의 묘지가 이장되느냐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나 이장되지는 않았다.

3.6. 최환희‧최준희의 조주형‧유영숙에 대한 소송

최환희‧최준희​의 법률대리권자 정옥숙이 조주형‧​유영숙을 상대로 건물 퇴거 소송을 제기했다. 조주형‧​유영숙​은 2013년 1월경부터 2019년 7월경까지 6년 동안 최환희‧최준희 소유 건물을 불법점유해 왔지만 소유권자측에서 6년 동안 그것을 용인해 오다가 퇴거 요구를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조주형‧​유영숙​이 불응해서 정옥숙이 소송을 제기해 법원에서 조주형‧​유영숙​의 퇴거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기존 소유권자 조성민의 하락하에 조주형‧​유영숙은 그 건물에 거주해왔던 것이기 때문에 2013년 소유권이 최환희‧최준희로 넘어간 시점에 바로 퇴거를 해야 했다. #

조주형은 2003년에도 정옥숙‧최진영의 재산권을 침해해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조성민의 사기 행각에 피해자 정옥숙‧최진영이 이 건물에 가압류 신청을 하며 소송(2004년 8월 23일 원고 승소)을 제기했는데 건물 거주자 조주형이 조성민과 함께 언론플레이를 더티하게 하며 채권자 정옥숙‧최진영을 마치 악덕 사채업자인 양 몰아갔었다. 그 때 보여준 못된 버릇이 또 나온 것. 조성민은 수십억 원짜리 건물이 있는데도 남의 돈을 안갚으려고 발버둥쳤었고 오히려 은인인 채권자를 악덕 사채업자로 몰아갔었는데 그 과정에서 조주형‧조성민이 비슷한 부류라는 게 확인됨.[18]

3.7. 덕정사랑교회의 고인드립

죽고 싶은 생각이 있거든 기도하세요...(들숨)기도하야아아아아아아아앍!!
나도 예수님을 믿었지만 기도하는 삶을 살지 못했어요...
- <최진실의 외침(자살하면 100% 지옥이야)> 中 -
덕정사랑교회가 제작한 음성 파일 <최진실 지옥의 소리>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자 2012년 5월 18일 지상파 방송에서 이를 다루게 된다. 이들이 제작한 ‘지옥의 소리’ 파일은 최진실뿐 아니라 종교인, 한국 대통령, 러시아 정치인, 북한 정치인, 미국 가수 등 죽은 유명인이면 누구나 가리지 않았고[19] 모두 합해 총 90여 개나 존재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제작한 음성 파일에 대해 '지옥문이 열려 생중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음성 파일들은 일단 당사자가 한국인이든 아니든 무조건 한국어로 말하고 이 음성 파일을 감정한 소리 분석 전문가도 '진짜 고통에 의해 나오는 소리가 아닌 가짜'라고 판단한다. #

3.8. 래퍼 스윙스 고인드립

2010년 래퍼 스윙스 비즈니즈의 정규 1집 <EGO> 피처링으로 참여했다.[20]

수록곡 < 불편한 진실>은 BIZNIZ가 변절한 옛 동료를 겨냥해 쓴 곡으로 스윙스는 후반부에서 다음의 가사를 쓰고 부르며 피처링했다. #
너넨 환희와 준희[21].
진실이 없지.
BIZNIZ - 불편한 진실(Feat. 스윙스)
이 가사는 고인드립으로 판단이 되어 스윙스는 대중의 비난을 받았고, < 불편한 진실>은 모든 음원 웹사이트에서 차단되었다. #

비슷한 사례로 매드 클라운의 가사가 있다. 2009년에 무료공개한 래퍼이자 프로듀서 The Quiett 시국선언 곡 People's Radio (Feat. 비프리, 매드 클라운)이다. 이 곡에서 매드 클라운 가사의 일부다.
진실은 언제나 이긴다? 다 개소리
진실 은 죽고 구라만 살았지

그런데 매드 클라운의 이러한 가사는 고인드립이라는 이슈가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곡 자체가 크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슈가 되지 않았고[22], 사람 이름이 아니라 단어 자체로만 볼 수도 있지만 고인드립으로 보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매드클라운은 단순히 단어로만 볼 수 있는 점이 존재하며 진짜 최진실을 의도한 가사라 해도 최진실이 없는 세상을 디스한다는 여지도 있지만 스윙스의 가사는 직접적으로 고인의 유족의 이름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더 공분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다.


[1] 왜 고소 당했는지는 죽어도 밝히지 않는다. 그냥 어떻게 유명인이 나 같은 소시민을 고소할 수 있냐고 징징댈 뿐. [2] 연인 사이가 된 후에도 최진실이 싸온 도시락을 일본의 공원에서 함께 먹을 때 그 도시락을 일본인 노숙인에게 줬고 최진실은 그걸 좋게 본다. 최진실은 사람을 볼 때 착한 마음씨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 [3] 7년 전에 조성민은 최진실을 직접 본 적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최진실 브로마이드로 방을 도배를 했다고 하니 최진실 팬싸인회나 공개 방송 같은 데 찾아가거나 했을 거다. 7년 전이라면 최진실이 한국시리즈에서 시구한 해이기도 하고. [4] 조성민 자살 미수 사건에 대해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측은 모르고 지나간다. 이 사건은 조성민의 캐릭터상 조성민과 매니저의 ' 짜고 치는 고스톱' 가능성 없지는 않다. 정옥숙이나 최진실이 일본 의사와 대화를 나누었을 리 만무하고 매니저의 전언뿐이라 그런 의심이 가능타. 조성민의 매니저가 조성민과 관계가 중단된 최진실의 자택에 굳이 전화를 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 죽었으면 몸조리하고 제 갈 길 가면 되었기에. [5] 김대오는 최진실의 연애에 대해 최진실과의 친분 덕에 1등으로 기사 쓸 기회를 잡았으나 연예 기자들의 집요함에 혹은 최진실의 소탈함에 곧 다른 연예 기자들도 알게 되면서 그 기회가 사라졌었다. 이 일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언급하고 다닐 만큼 김대오의 마음 속에 앙금으로 남아 있게 된다. 그 때 일 한풀이라도 하듯이 조성민과의 연애 시절 이야기 누가 궁금해 한다고 방송에 나와 신나게 한다. 최진실 대신 삐삐 들은 이야기 할 때는 조성민 성대모사까지 한다. 근데 누가 남에게 삐삐를 들려준다는 것인지, 남 삐삐 들은 걸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정상적이지 않고 그걸 방송에 나와 떠드는 것도 상식적인 행동 아니다. [6] 2008년 10월 1일 김대오는 최진실의 아프리카 봉사 의사에 대해 게거품 문다. 최환희, 최준희 양육 걱정하며 아프리카 봉사 의사에 초를 치는데, "그럼 김대오 니가 2008년 9월 8일 시신안치소에 최진실을 데리고 간 건 양육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랬냐?"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면. "빈소 차려지면 빈소 가서 조문하면 되는 사람 굳이 시신안치소 데리고 간 이유 뭐냐?"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면. 이미 그 전부터 안재환 이상해 보이니 챙기라며 최진실한테 이상한 짓을 했다. "김대오 너는 니 친구 배우자 챙기고 사냐?"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면. 연예 활동, 육아 등으로 바쁜 최진실은 김대오의 행각에 안낚였다. 김대오의 이 행각 며칠 후 안재환이 사망했다. 안재환과 김대오는 2008년 8월까지 같이 방송한 사이였고. "챙기라는 둥, 시신안치소라는 둥 왜 최진실과 안재환을 엮으려고 애쓴거냐?"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면. 보도에 따르면 당시 안재환은 사채에 치여 살고 있었던 거고 안재환에게 사채를 빌려 준 자가 심미영의 술집에서 도박 및 사채 제공 혐의로 구속됨. 김대오는 조성민이 사망한 2013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최진실이 유책배우자인 양, 복용약 때문에 사망한 양, 기혼남 조성민과 연애하고 싶었던 양 말하고 다녔다. 김대오는 최진영에 대해서도 고소영을 폭행한 양 말하고 다녔다. 복용약 운운은 김대오, 유정환, 박상호가 세트플레이를 하게 되는데 이 중에서 박상호는 2013년 11월에 사망하고 유정환은 2019년 10월에 죽었다. [7] 조성민과 심미영은 이때부터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을 엿먹일 시나리오를 짰을 공산이 크다. 왜? 피해자측한테 들켰으니까. 간통남 조성민이 궁지에 몰릴수록 상간녀 심미영은 조성민을 조종하기가 쉬워진다. 심미영보다 조성민이 사회적으로 잃을 게 더 많기 때문. 이후 펼쳐지는 조성민의 처절한 여론조작질이 그 반증. 그리고 임신부 폭행에, 칼부림 운운에 갈 데까지 가는 모습이 그 반증. 심미영도 그 여론조작질을 돕고. 백현주는 조성민과 심미영의 여론조작질을 돕고. 이 여론조작질에 서병기, 배국남, 하은정, 백은영, 황호택, 김범석, 송원섭, 박동희, 김갑식, 강일홍, 김도형, 신민섭, 유재순, 홍성록 등이 줄줄이 가세한다. 평소 최진실을 죽이고 싶었던 애들은 다 가세했다고 보면 된다. MBC PD로 잘 알려진 주철환에, 서프라이즈의 논객 김동렬까지 이 대열에 가세. 최진실 입장에서는 싹다 청소하고 지나갈 타이밍이 온 것이다. [8] "마누라 옷장은 있는데 내 옷장은 없다"라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9] 공개된 이혼합의서는 정식 문서가 아니고 최진실이 초안을 작성해서 조성민한테 전달한 것. 주 내용은 채무 변제하고 양육비 지급하라는 상식적 수준. 빚 갚으라는 건 이미 나온 이야기고 양육비는 당연히 지급해야 하는 것이라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또 상대가 안받을 이혼합의서 내용이라 최진실의 기존 공식 입장 '혼인유지'와도 배치되지 않는다. [10] 사문서 불법 유출 행각으로 조성민이 이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게 드러남. 어차피 간통, 폭행, 사기, 명예훼손 등으로 이혼당할 처지이니 최진실 명성에 흠집이나 내자는 심보가 재확인된 것. 또 조성민은 이혼합의서 공개라는 무리수를 둬서라도 소송이혼 못하는 자기 신세 감추려고 한 것으로 보이나 진상이라는 이미지만 더해감. "이혼합의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송이혼 루트 타면 되잖아. 너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고 했잖아? 근데 왜 소송이혼 절차 못밟아? 범죄를 범죄로 덮고 있는 거냐? 이슈를 이슈로 덮고 있는 거냐고?"라는 게 상식인의 반응이다. [11] "원섭아 그러니까 너의 조성민이 소송이혼 루트를 못밟은 이유는 무엇? 니가 너의 조성민한테 그 질문을 안한 속셈은 무엇? 너 같은 애들 데리고 범죄 저지를 시간에 가정법원 가서 소송이혼 루트 타면 됐잖아. 13억 5,000만 원에 대해서도 따져보자. 최진실 자택 담보로 4억 5,000만 원을 은행에서 빌린 게 너의 조성민이잖아.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각각한테 1억 원씩 빌린 게 너의 조성민이잖아. 최환희‧최환희 양육비[23] 2억 5,000만 원 지급해야 하는 게 너의 조성민이잖아. 최진실 자택 시가가 16억 원이고 그 중에 8억 원을 조성민이 챙길 수 있는 돈이라는 게 니 주장인데 왜 너의 조성민은 그 돈으로 5억 5,000만 원을 안갚은거냐고? 2002년 12월 18일 전에 갚았어야지. 최진실 단독 명의로 해주면서 채무 변제 했었어야지. 너의 조성민은 은행 대출금 4억 5,000만 원도 은행에 그때 갚았어야 했고. 결국 간통, 폭행, 사기, 명예훼손 저지른 너의 조성민이 최진실한테 지급하게 되는 손해배상금은 2억 5,000만 원이라는 소리잖아. 너의 조성민이 최진실한테 저지른 범죄 행각 수위에 비해 너무 소액 아니냐? 심마담 동거남 너의 조성민이 최진실 자택 저당권 설정 해결 안한 속셈이 뭐냐고? 심마담 동거남 너의 조성민이 최진실 자택에서 지 옷 안가지고 나간 이유는 뭘까? 손해배상금 지급할 일 계속 해댄 너의 조성민이 최진실과 얽힌 것들 안풀고 계속 최진실한테 엉겨붙은 이유가 뭐냐고. 근데 최진실 자택에 대해 너의 조성민이 2000년에 집값 반 부담했었던 건 확인된 사실이고? 은행 통해 8억 원 중 4억 5,000만 원은 이미 챙긴 셈이고 나머지 3억 5,000만 원 중에 3억 원은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각각한테 1억 원씩 빌린 돈 갚으면 되고 남는 5,000만 원은 양육비 일부로 처리하면 되고 2억 원 장만해서 최진실한테 지급하면 양육비는 해결되는 것이었잖아. 최진실 단독 명의로 해주면서 말이야. 8억 원은 그렇게 처리하면 됐다고. 더구나 수십 억원대 건물주가 너의 조성민이었는데 채무 변제 안하고 사기 행각 신나게 펼친 게 너의 조성민이잖아. 조주형‧​유영숙​이 거주하던 조성민 건물 말이야. 그 건물 믿고 간통, 폭행, 사기, 명예훼손 신나게 저지른 게 너의 조성민 아니냐? 간통, 폭행, 사기, 명예훼손 다 손해배상금감인 건 알지? 너의 조성민 일 년 후인 2004년 8월 1일에도 범죄 저지르잖아. 그것도 손해배상금감인 거 알지? 너의 조성민이 '돈 없다'고 떠든 소리 다 개소리라는 거잖아. 전문용어로 '궤변'. 일반인들은 범법행위 저지르면 다 돈이라 준법한다 원섭아. 근데 너의 조성민은 계속 범죄 저지른다 그치? 그리고 최진실은 2002년 12월 18일에 '혼인유지'라고 입장 확실하게 밝혔잖아. 그때 게임 끝이었다고. 조성민 같은 여론조작범을 한두번 겪니 최진실이? 원섭아. 조성민이 소송이혼 루트 못타는 거 대중이 직접 확인한 거야. 그러면서 '최진실은 비난받을 행동을 한 게 전혀 없구나'라고 확정지은 거고. 너 같은 애들이 조성민하고 한패가 돼 여론조작질 신나게 해댈 거 다 예측한 수가 '혼인유지' 수다 원섭아"라는 소리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12] 이는 남녀간의 가정폭력 사건이라기보다 강자와 약자의 이야기로 보아야 하는데 거구의 선수출신의 성인이 배우자와 어린 자녀들을 상대로 스파링 실력 선보인 꼴로 차마 말로는 못다할 추행이며 악행이었다. [13] 그런데 소송 이후에도 최진실이 모델로 등장하는 홍보물을 계속 사용하는 신한건설의 이중 행동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었다. #1 #2 [14] 삼성, 이명박, 조용기 등의 비리 혐의를 취재해온 주진우가 한국의 거물급 연예인이 가짜뉴스 때문에 사망한 직후 유가족을 인터뷰하면서 대표적 가짜뉴스 생산자 조성민에 대해 '호감' 운운하는 질문을 한 것도 모자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걸 귀한 지면에 굳이 실었다는 사실에서 주진우의 속셈이 드러났다. "진우야 정옥숙, 최진실, 최진영, 최환희, 최준희 다 조성민을 인간으로 안보는 입장인 거 니가 더 잘 알잖아. 너 같은 애들 엿먹이려고 그들이 조성민을 천사라고 말한들 뭐가 달라지냐. 조성민의 실체에 대해 최진실이 깔끔하게 다 정리해줬잖아. 정옥숙도 너한테 직접 말했고. 어떻게? 조성민은 임신한 최진실을 폭행했고 지가 간통남인 주제에 최진실을 간통녀로 몰고 최준희를 혼외자로 몬 애라고. 진우야 인터뷰해 오라고 조성민이 보냈니, 심마담이 보냈니? 너 술집마담들하고 친하잖아. 조성민은 백승연과 한패로 움직인 애잖아. 그걸 짚을 시간에 그러고 싶디?"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15] 2009년 6월 4일 박시환이 파기환송 판결 내림. '이미지 타령' 박시환은 감히 범죄 피해자한테 '이미지' 들이대는 엽기적인 일을 한 것. 최진실의 다친 얼굴이 분장이었어도, 엉망진창이 된 범죄 현장이 영화 촬영 현장이었어도, 최진실이 '괴물' 분장하고 영화에 출연한 것이었어도 같은 판결 내린다는 논리. 그걸 받아 이대경이 반헌법적 판결을 내린 것이다. [16] 연애하던 여성 집에서 사망. 근데 배우자는 심미영으로 돼 있다는데. 또 간통? [17] 근데 무슨 사달이 났는지 결국 최환희, 최준희한테 넘어감. [18] 조주형은 테니스 선수 출신으로 은행 지점장을 지내 돈이 좀 있던 자이고 싸이클 선수 출신 딸 조성미도 있음. [19] 김수환, 테레사 수녀, 장 칼뱅,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마오쩌둥, 이오시프 스탈린, 김일성, 마이클 잭슨, 앙드레 김 등등. 도대체 기준을 종잡을 수가 없다. [20] 비즈니즈는 힙합 듀오 인피닛 플로우의 멤버였고 I.F 시절에는 Young GM이 예명이었다. [21] 최진실의 자녀들의 이름이다 [22] 사실 스윙스 사건 때 또한 스윙스는 씬에 갓 데뷔한 신인급이라 현재의 스윙스의 인지도가 아니었다. 비즈니즈는 좋은 평을 듣거나 인기 있던 래퍼가 아니었지만, <불편한 진실>이라는 곡이 인피닛 플로우를 같이 했던 넋업샨 디스로 힙합 팬들 사이에서 꽤나 회자되었던 곡이었던 점에서 해당 곡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면서 스윙스의 가사가 오히려 더 큰 이슈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