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12:03:02

천부교

천부교
天父敎
Chunbu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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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571aa><colcolor=#fff> 분류 신흥종교, 사이비 종교
설립일 1955년
소속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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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 박태선[1]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신앙신보]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1. 개요2. 박태선3. 상세
3.1. 교리
3.1.1. 종말론3.1.2. 연좌제3.1.3. 금기
3.2. 예배 방식
3.2.1. 찬송가3.2.2. 헌금3.2.3. 성경3.2.4. 교주 설교3.2.5. 남녀 격리3.2.6. 연령, 성별에 따른 신자 선호
3.3. 세뇌시키는 근거들3.4. 절기
3.4.1. 3대 절기3.4.2. 축복일
4. 파생 종파들5. 신앙촌
5.1. 소사신앙촌5.2. 덕소신앙촌5.3. 기장신앙촌
6. 기업 활동
6.1. 관련 업체, 제품
7. 학교 운영8. 사건/사고
8.1. 격암유록 허위창작 의혹8.2. 교주의 장남 박동명이 일으킨 박동명 사건
9. 언론 매체에서의 천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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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태선 장로가 1955년에 창시한 반기독교 성향의 신흥종교이며 박태선을 하나님으로 믿는다. 박장로교 또는 전도관(傳道館)[3]이라고도 한다. 교인들의 신앙공동체인 신앙촌으로도 유명하다. 영미권에서는 감람나무 교회(Olive Tree Church)라고 불린다. 1990년 박태선이 사망한 이후 박태선의 3남 박윤명이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박태선은 개신교 장로였지만 예수를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마귀"라고 칭했다. 박태선 교주를 육신을 입고 내려온 (하나님)으로 주장하고 그를 "감람나무 하나님"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성기에 신도 수는 10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신천지의 이만희가 박태선을 신봉했다는 주장이 있으며, 후에 신천지를 세울때 천부교 교리 일부를 차용했다고 한다. #[4]

2. 박태선

설립자 박태선(朴泰善)은 1917년 평안남도 덕천시에서 태어났다.[5] 어린 시절에는 덕천군에 있는 교회의 주일학교를 다녔다. 16세때 일본 도쿄로 건너가 중고등공업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에서 정밀기계공장을 경영하다가 광복 후 귀국하여 대한정밀공업사라는 기계 부속품 공장을 운영했다.

서울 남대문 장로교회의 김치선 목사를 만나 교회에 다니며 집사로 활동하였다. 이성봉 목사의 부흥회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의 역사를 체험했다고 주장했다. 1948년-1949년경 정득은을 만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나운몽과 함께 순회 집회를 하기도 했다.[6]

박태선을 장로라고도 호칭하는데, 실제로 그는 개신교( 장로회) 장로였다. 1950년대에는 사람들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교회에서 부흥사로 활동했고 1954년 12월 창동교회에서 장로로 임직되었다. 부흥사를 하면서 신비체험 주장을 했는데 대표적으로는 한국전쟁 때 자신의 집 구들장에 숨어 지낼 때 하늘로부터 오는 생수가 마시어졌다는 '생수 체험', 1951년 1.4 후퇴에서 자신의 피가 소변으로 다 빠져나가고 예수의 피로 바뀌었다는 성혈전수 주장과 1954년 그가 안수기도를 받으면 난치병이 고쳐진다는 주장 등이 있다. 1955년경 한국예수교 전도관부흥협회를 창시했다. 새로운 교단 설립과 신비체험, 이슬 은혜라는 '감람나무 발언'등으로 이단시비가 점점 커졌고 1955년 이단으로 결의되어 제명되었다. # 1956년 박태선을 감람나무로 추대하는 행사가 있었고, 1957년 박태선은 자신을 '참 감람나무'이며 '동방의 의인'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1970년에 자신을 '이긴 자'라고 주장했고, 1980년에는 자신을 '새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교단 명칭을 천부교(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로 변경했다.

1990년 2월 8일 지병인 당뇨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3. 상세

초기 명칭은 '한국예수교부흥회'였다가 얼마 안 가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회'로 바꾸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전도관'이란 통칭은 여기서 유래했다. 1979년까지는 정식 명칭에 '예수교'란 표현을 사용하거나 십자가를 사용하는 등 외형적으로나마 유사 기독교 색채가 있었지만, 1980년부터는 교리적으로 아예 '반기독교'를 선언하면서 '천부교'로 개칭하고 심볼도 비둘기로 바꾸었다.[7]

천부교 초창기에는 기행을 좀 일삼을 뿐이었지, 설마 후기 같은 막장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창세기의 선악과가 사실은 복숭아라며 어느 복숭아 밭을 통째로 사들여 죄다 베어버렸다.

그러다 박태선이 1980년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선포해 버렸고 그 다음에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귀가 예수라고 주장하는 무리수를 날린다.

이래봬도 1950년대에는 통일교와 함께 한국 신흥종교의 양대산맥이라 불리며 주목받았던 적도 있었다. 물론 교주 박태선이 1990년 사망한 이후에는 세력이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취재결과에 따르면 여전히 천부교 지교회는 국내 122곳, 해외 5곳에 이른다고 한다. # 2010년 보도에 따르면 신앙촌 상회도 전국 300여 곳에 있다고 한다.[8]

3.1. 교리

교리의 핵심은 성경 호세아 14장에 근거하여 이슬성신을 처음 내리는 존재가 '감람나무'이고, '동방의 한 사람', 곧 '육신(肉身)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며, 인간은 마귀의 구성체로 성욕은 자유율법을 지키며 죄짓지 않고 이슬성신으로 죄를 해결해야만 구원에 이르는 것으로서 이슬성신을 처음 내린 교주 박태선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교주의 설교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자신이 직접 세상을 만들었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마귀가 예수라고 주장한다. 교리에서 설명하는데 가장 큰 죄악은 탐욕, 성욕, 식욕이라고 한다. 한때는 성욕은 포함되지 않았으나, 이후에 모든 죄를 떠나 가장 큰 죄라고 못박아 버렸다. 교주의 말에 따르면 천국에서 음란죄를 지어서 3살 이하 여자아이만을 제외하고 모두 1차지옥으로 보냈다고 하고 지구가 1차 지옥이다.

과학을 매우 싫어한다. 모든 주장이 허풍이라고 하며, 빛의 속도는 없고 밝은 빛일수록 빠르고 마귀는 그것보다 빠르게 움직여서 인간의 과학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천국은 인간의 과학으로 갈 수 없는 곳에 만들어뒀다고 주장한다. 또한, UFO는 마귀가 타고 다니는 우주선이고, 수조억년 동안 발전한 문명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다고 교주가 설교했다. 특히 의학을 상대로 비난을 많이 하는데, 모든 생명은 심장의 힘으로 살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교주가 축복했다고 주장하는 물을 생명물이라고 부르며 신성시한다. 생명물을 마시면 병이 낫고, 시체에 생명물을 뿌리면 시체가 썩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다.[9]

예수를 믿지 않는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구원자인 것을 믿지 않으며 오히려 마귀(!)라고 주장한다. 예수 믿는 것이 핵심인 기독교와는 정면으로 대치 되는 부분. 그래서 천부교에서는 기독교를 적대시하며 기독교에서도 이들을 명백한 이단으로 간주한다.

기독교의 성경을 믿지 않는다. 원래의 성경은 불에 타거나 썩어 사라져서 없어졌으며 지금 있는 성경은 후대의 사람들이 마귀의 도움을 받아 창작한 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성경에 있는 아담과 하와 이야기, 에덴동산 이야기, 가인과 아벨 이야기,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가짜라고 말한다.

자유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자유율법을 지킨다는 건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 속으로 하는 모든 악한 짓을 양심에 따라 하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경을 믿지 않고 예수의 복음도 믿지 않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으로 죄가 사해졌다는 걸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기독교 교리를 믿지 않는다.

천국은 성신의 구성체들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구원 받은 자들은 천국에서 성신의 구성체가 되어 아주 밝은 빛을 낸다고 한다.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1초에 무려 144번이나 재창조되기 때문에 썩는 물질은 전혀 없으며 사람도 전혀 피곤을 느끼지 않기에 잠을 잘 필요가 없다고 한다. 참고로 아담이 있던 에덴동산도 천국이었다고 주장한다.

3.1.1. 종말론

종말론을 믿는 종교이다. 이유는 교주의 발언 때문인데, 죽기 전에 아래와 같은 발언들을 남겼다.
  • 식량이 부족해질 것이니 소식하면서 체중을 줄이는 것이 좋다.
( 신도들 사이에선 체중이 줄어야 나중에 종말이 다가오거나 죽었을 때 하나님(박태선장로)이 공주님안기로 같이 올라가주신다고 믿고있다)
  • 세상에 물이 다 마를 것이고 생명물만이 마르지 않을 것이다.
  • 종말이 오면 모든 사망자의 영혼을 불러 심판한다. 그 때 144xn배속으로 지은 죄를 말하고 심판받는다고 한다.

3.1.2. 연좌제

가족 중 한명이 구원을 받으면 나머지 가족들도 모두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 기장신앙촌 내부에서는 일반 헌금제외 가족헌금도 추가로 있다 )

3.1.3. 금기

  • 다음과 같은 금기가 있다.
    • 1. 제사 금지: 귀신은 마귀고 마귀가 붙는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지 않게 하고 제사음식도 먹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영생할 거라던 교주가 사망한 날을 성신사모일로 칭하고 전국의 신도들이 기장에 위치한 신앙촌에 모여 집단 예배를 하고 식사를 한다.
    • 2. 돼지고기, 복숭아, 장어 등 섭취 금지: 더러운 음식이라 취급한다.[10]
    • 3. 화장 금지(반드시 매장): 천국에 가려면 육신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화장을 금지한다. 이로 인해 토함산 사건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 4. 연애 결혼 금지: 한때는 종교 내에서 신도들의 결혼을 장려하였으니 교주의 변심 때문인지 이성간의 사랑을 음란으로 규정하고 별거 또는 이혼 후 집단거주지인 신앙촌으로 이주를 권고하였다. 요즘 들어서는 평신도들의 경우 떨어져 나갈 것을 우려하여 교회 내에서도 크게 간섭을 하지는 않는다.
    • 5. 교주 의심 및 비난 금지: 사이비적인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금기. 남녀간의 연정을 가장 큰 죄인 음란죄로 규정하였지만 3번의 장가를 들었고, 예수를 마귀라고 비난하여 격하하고 신을 자처하였지만 개신교 장로로 입지를 다져놓고, 결국 사망하였지만 교리상 신이므로 교주의 말에 조금도 의심을 품어선 안된다. 만약 교주가 설교에서 사실과 맞지 않는 얘기를 하면 교주의 발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아는 사실이 잘못된 것이라고 여겨야 한다. 아니면 지옥간다.

3.2. 예배 방식

하나님 찬송이라는 걸 예배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튼다 찬송가 3곡이 있는데 2곡은 같은 가사로 5~6번을 부르며 나머지 한곡은 가사가 5개나 있는 걸 부르게 된다 하나님 찬송이 나오면 다같이 박수를 치며 부른다 또한 하나님말씀, 말씀주제 등등 이 나온다

3.2.1. 찬송가

한국 개신교에서 부르는 찬송가에서 단어 몇 개만 바꿔서 개사한 찬송가를 만들어서 부른다. 교주를 하나님(하느님x)이라 칭하며 교주가 찬송가를 부르는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놓고 따라부르는 방식이다.

3.2.2. 헌금

설교의 반은 한국 개신교와 가톨릭에 대한 비난이지만 십일조라는 헌금은 그대로 존재한다. 이외에 주일마다 내는 주정헌금 그리고 좋은 일이 있으면 감사하다는 명목으로 내게 권유하는 감사헌금 가족을 위해 내는 가족헌금이 따로 있다. 교주가 말하길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 속으로 지나가기보다 힘들다고 한 말[11]을 언급하면서 헌금을 독려하는 경우가 많다.

별도로 교주가 생존하던 시절 안수/안찰을 해주는 대가로 헌금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안수를 받고 기적을 봤다는 교인들끼리 신앙체험 경쟁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직접 안 하고 하나님(교주)가 전지전능하다는 이유로 사진에도 안수할 수 있다 하여 고인의 사진에까지 안수하며 헌금을 거두어 가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는 안수/안찰을 할 교주가 없는데도 핸드폰 메시지로 사진을 받아서 진행하고 헌금을 수금해 가기도 한다.

3.2.3. 성경

교주가 말하길 성경의 2%만 자신이 만들었고 나머지 98%는 다 마귀가 만든 것이라 한다. 기존의 성경은 거의 가짜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천부교만의 성경을 새로 만들었다. 하나님 말씀이라고 부른다.

3.2.4. 교주 설교

기본적으로 의자에 앉아서 교주의 말씀을 듣는 것은 교만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예배당에 의자가 없었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게 했다.[12][13] 요즘엔 모든 교회에 의자가 있다.

하나님 말씀이라는 제목을 붙인 교주가 설교하는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준다. 그러나 정작 말씀은 온데간데 없고 타 종교를 비난하는 데만 반 이상의 시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를 이유로 타 종교와 어떤 교류도 없다.

교주가 OO억조 OO억만 등등 숫자를 과장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걸로 봐서 , , , , 같은 큰 수의 단위를 잘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14]

교인들을 똥 공장 사장님들이라고 칭하며 인간은 마귀의 구성체라 썩어 사라지는 것이라고 설교한다. 오직 성신의 구성체만 영생한다고 한다. 이 와중에도 타 종교를 비난하며 에덴동산에 동물들은 똥을 만드니 썩어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중간에 뜬금없이 유비, 제갈량 등 삼국지 인물들을 언급하기도 한다.

3.2.5. 남녀 격리

여자교회와 남자교회가 분리되어 있다. 이성간의 사랑의 감정은 가장 큰 죄인 음란죄라고 주장한다. 교주의 발언 중 하나인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든 태어나게 만들어 놓았다." 때문에 부모는 더러운 행위를 한 사람이며 부모가 없었더라도 태어났을 거란 생각을 하는 패륜아를 만들기도 한다. 가족을 사랑하라는 언급조차 없다. ( 사실을 얘기하자면 박태선 장로도 결혼도 하고 자녀도 3명이나 있다 ) 신앙촌 내부에서는 남녀활동시간도 나뉜다 (식사시간, 예배시간 등등 )

독실한 신도들 중에는 같이 동거만 하면서 법적으로만 이혼을 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3.2.6. 연령, 성별에 따른 신자 선호

사람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죄가 많다고 하여 연령이 어린 신도를 좋아한다. 자녀나 친지가 있다면 어릴 때부터 데려오는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교주가 설교에서 대놓고 남성들이 죄가 많다고 발언한 것처럼 여성 신도를 더 선호한다.

3.3. 세뇌시키는 근거들

신도들은 아래의 현상들을 기적이라 믿으며, 이를 근거로 세상에 다른 종교들을 허풍이라 믿는다.
  • 이슬성신(천부교에서 말하는 축복 개념)이 찍혔다고 주장하는 흑백사진. 구글에 천부교 성화 라고 검색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반박
    • 한눈으로 확인해도 조잡하게 조작한 사진으로 보인다. 이것과 관련해서 박태선은 사기죄로 기소되었고, 하도 우겨서 국가과학수사연구소가 법정에 성화랑 비슷한 무늬를 쉽게 합성해서 제출함에 따라 종결된다. 보여주어도 우리 것은 기적 너네 것은 조작이라고 내로남불식 주장을 계속하는 중이다. 여담이지만 판결 이후 이 사실을 보도한 문화일보에 찾아가 다 때려부수다 현행범으로 줄줄이 잡혀갔다.
  • 2000년대 칼라 사진에 찍힌 성화 사진.
    • 유일하게 남은 종교공동체인 기장에 위치한 신앙촌에서 하늘에 빛기둥이 찍히기 시작했다. 신도들은 드디어 눈에 성신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하며 신도들을 다시 세뇌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반박
    • 천부교 측에선 원본 필름을 코닥에 보내 조작이 없다는 공문을 여기저기 걸어 놓는 중이다. 말대로 사진에 조작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을 안쓰는 이유는 그냥 흔한 현상이라서 그렇다. Light Pillar라는 현상으로 지면 혹은 해수면에 있는 빛이 굴절되어서 하늘에 있는것으로 보인다.

3.4. 절기

주일 예배와 별도로 교인들이 전부 기장에 위치한 '신앙촌' 에 모이는 날이 있다. 보통 이슬성신절 추수감사절에 여성회, 어른, 어린이가 모두 남녀 상관없이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된다.

3.4.1. 3대 절기

1년에 3번 남녀 신도 모두가 기장에 위치한 '신앙촌'에 집합하여 예배를 보는 날이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구역을 갈라 놓는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방문자가 매우 많았으나 이후에는 수천 명 규모로 줄었다.
  1. 이슬성신절
    일년 중 이슬성신이 가장 많이 내려서 붙였다고 하며, 천부교 교리 핵심인 이슬성신과 관련된 만큼 가장 중요시하는 날이다. 1981년 1월 3일에 처음으로 이슬성신절을 기념하였고 이듬해에도 1월 중에 기념하였으나, 1983년부터 5월 중으로 날짜를 옮겼다. 천부교 내부 가르침에 따르면 이슬성신이 처음 내릴 적에 5월 하순 중에 제일 많이 내렸기 때문에 5월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매년 5월 중 일요일을 고른다.
  2. 추수감사절
    다른 절기와 똑같이 예배를 볼 뿐 칠면조를 차려놓고 파티를 해주지는 않는다. 참고로 교주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음식물을 마귀의 구성체 및 똥의 구성체라고 했다. 매년 11월 중 둘째나 셋째 일요일을 고른다.[15]
  3. 성신사모일
    1990년 2월 7일 새벽에 박태선 교주가 사망하자, 이듬해인 1991년부터 절기로 도입되었다. '신앙촌' 뒷산에 교주의 묘지가 있는데 국화를 들고 교인들이 참배하러 가서 묘지 앞에 국화를 놓는다.. 특이한 점은 교주의 가족묘라는 점이다. 부모님으로 인하여 태어난 게 아니라며 가족의 개념을 부정한 점과 상반된다. 매년 2월 중 일요일을 고르며, 2020년 기준으로 성신사모일 예배는 없어졌다.

3.4.2. 축복일

매월 축복일이라 하여 신앙촌에 모여 합동으로 예배하는 날짜가 있다. 그런데 이 축복일이 계층에 따라 서로 다른데 천부교 홈페이지에 따르면 부인, 여학생(여자 청소년), 남자, 중부 소비조합, 남부 소비조합, 이렇게 5계층으로 나뉜다. 이중 중부 소비조합은 부산 신앙촌이 아니라 서울에 모인다. 남자는 주말에, 여자는 평일에 모인다고 한다.

4. 파생 종파들

이런 광기 어린 행동은 훗날 파생 종파들의 막장성으로 이어진다. 현재 천부교는 교주 박태선이 죽고나서 연이은 탈퇴와 분열로 인해 폭삭 가라앉은 반면, 형제라고 할 수 있는 통일교의 위상은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그 분파들은 발전을 거듭하며 현재에 이르러선 청출어람을 이루었다. 그 놀라운 위상을 한번 살펴보자.

대표적인 분파들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종교명 교주 창시일 현황
동방교 노광공 1956년 세력 축소
장막성전 유재열 1966년 1980년 해체
천국복음전도회 구인회 1971년 현재 건재함
에덴성회 이영수 1973년 현재 건재함
영생교 조희성 1981년 2004년 조희성의 사망으로 세력 축소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이만희 1984년 신천지 코로나 사건으로 세력 위축

한편 천부교에서 파생된 또다른 모 분파는 박태선을 부정하며, 그나마 남아 있던 아브라함 계통 종교로서의 정체성조차 스스로 부정할 정도로 민족종교화되기도 하였다.[16] 이외에도 수많은 기독교계 신흥종교, 사이비집단의 뿌리가 천부교와 관련이 있다.

5. 신앙촌

초기에는 흔히 '전도관' 으로 불렸고 '박태선 장로교[17]' 라는 의미로써였다. 현재의 정식 명칭은 '한국천부교회' 다. 천부교 신자들의 신앙공동체를 '신앙촌' 이라 칭하며, 가장 널리 알려진 명칭이 이 신앙촌이다. 기장군에 위치한 신앙촌에는 어린이들의 견학이 매일 이루어지고 있다.

5.1. 소사신앙촌

제1신앙촌이라고도 한다. 1957년 11월 1일에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범박리(현 부천시 범박동) 일대에 착공된 최초의 신앙촌이다. 약 1만여 명이 입주하였으며, 마을 안에 각종 생활용품 및 악기를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마을 내의 주요 시설들이 노후되면서 2000년부터 재개발되어 현재는 범박 힐스테이트 아파트[18]가 들어서 있다. 그러나 힐스테이트 6단지, 즉 시온고등학교 위쪽에 있는 천부교회는 아직 남아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신앙촌이라고 써 있는 셔틀버스를 타고 교회를 왕복하는 걸 보면 아직 교회는 운영 중이다. 지역 자체가 중동신도시와는 떨어진 곳이라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아직도 거기선 간장을 판매하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예배를 드리고 밥을 먹으며 소사 천부교회에선 놀러가거나 모임 장소가 된다시온고 다니다 보면 담력시험 장소로 한 번 이상 꼭 거론되는 곳이다

5.2. 덕소신앙촌

제2신앙촌이라고도 하며, 1962년 7월 21일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일대에 착공되었다. 소사신앙촌에 있던 생산공장들을 이전하고, 약 6천여 명이 입주하였다. 이곳에서는 소사신앙촌에서 생산하던 품목 외에 철강 등 중공업 분야 공장까지 건설되었다. 2001년 재개발되어 현재 덕소 두산위브 아파트가 들어서 있으나, 범박동과 마찬가지로 아직 교회가 남아있다.

5.3. 기장신앙촌

제3신앙촌으로 불리는 기장신앙촌은 1970년 2월 28일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일대에 세워졌다.[19] 50여 개의 생산공장을 세우고 약 5천여 명이 입주하였다. 1971년 12월 29일 이 지역 일대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추가 시설 확장은 중단되었으며[20], 2000년대 이후 소사 및 덕소신앙촌이 재개발되어 현재 마을과 교회가 모두 남아있는 유일한 곳이다.

6. 기업 활동

관련 기업으로는 한일물산, 시온합섬, 생명물식품, 신앙촌식품 등이 있으며, 일반인들에게는 생명물 두부와 생명물 간장, '런' 요구르트, 신앙촌 스타킹 및 관련 공산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노동력을 기부(?)하며 다양한 제품들을 생산중. 공정무역은 다른 세계 이야기 (신도가 아닌 분들도 기업에 입사가능하며 잡코리아, 사람인을 통해서도 채용공고를 함) 롯데제과의 야채크래커와 롯데샌드를 OEM으로 생산했었다. 관련기업에서 생산한 상품을 판매하는 '신앙촌 상회' 가 전국 곳곳에 입점하고 있다.

2017년 기준 생명물간장, '런' 요구르트, 생명물두부 등을 생산하는 식품 공장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공장이 문을 닫았다. 재고 물품들은 아직 판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판매할 물품들이 거의 사라졌고, 매출 부진으로 문을 하나둘씩 닫고있다. 영리 목적보다는 전도 목적으로 영업하기 때문에 줄줄이 사라지고 있지는 않다. 이와 신앙촌 안에는 별도로 오리엔스금속 또한 속해있으나 종교와 관련된 활동은 하지 않는다.

간장같은 몇몇 식품들은 싼 가격에 질도 좋고 의외로 맛있어서 옛날부터 유명했다. 때문에 일부 식품류는 신앙촌을 안 좋아해도 사먹는 사람들이 있다.[21]

6.1. 관련 업체, 제품

  • 신앙촌상회
  • 요거트 런 : 일반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 생명물간장/두부 : 부산 지역 슈퍼마켓 및 소형 마트에선 이 브랜드가 붙은 두부와 간장을 흔히 볼 수 있다. 괜찮은 품질을 지닌 반면 값이 비싸지 않다 보니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듯. 생명물간장은 1980년대 말에 TV CM 전파까지도 탄 물건인데 광고에 따르면 '생명물'라벨이 붙은 자매품으로 생명물 시온 참기름이 있으며 그외 식초, 옥수수기름도 팔았다고 광고하였다. 다만 해당 광고주 및 생산사 명의는 <삼광개발㈜>인데 당시 해당 법인이 천부교의 연관 법인이었는지는 불명.
  • 시온합섬 극세사 이불 : 분홍색 보라색 두가지 색상만 나오며 2000년대 초반부터 생산해서 팔았으나, 가격이 심히 비쌌다. 신도들을 상대로만 장사하던 시온합섬은 결국 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남은 물품을 신앙촌상회에서 열심히 파는 중이다.
  • 롯데샌드, 야채크래커 : 최근까지 신앙촌 제품(시온식품)의 OEM 방식으로 판매되었으나 롯데에서 공장자체를 구매해 버림. 관련기사
  • 샴푸, 에센스 등 미용제품 : 열심히 광고를 했던 것으로 보이나 빠르게 망했고 2014년부터는 보이지도 않는다.

7. 학교 운영

설립 인가받은 부지가 아닌 개발제한구역 내에 학교를 준공하여 부산광역시교육청 해운대교육지원청에 설립 인가를 취소당한 채로[22] 파행운영중인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소재 시온식품과학고등학교(현 SANC식품여자고등학교)가 존재한다.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인가(1988년 2월 5일)를 받았으며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최후의 산업체 부설학교였다. 또 부천시 소사구에 위치한 시온초, 시온중, 인문계 고등학교 시온고등학교를 운영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시온고등학교 범박동에 이전하여 운영하고 있다. 시온고는 설립 초기에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미션스쿨이었으나 현재는 종교적 색채가 거의 없는 상황이며 범박동 이전 후에는 종교 지도자들이 단 한 차례도 학교에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전한 지 30년 정도 되었으니 사실상 교육사업에는 손을 떼려는 수순이라고 보는시각도 있다.[23] 남양주시의 덕소 신앙촌에도 시온상업고등학교를 운영했으나 80년대에 운영에서 손을 떼어 현재는 그냥 평범한 장로교계 미션스쿨인 덕소고등학교가 되었다.

참고로 이 시온고등학교는 1950년대 설립되어 1970년대에는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경기고, 휘문고 등 서울 명문고 입시에서 탈락한 학생[24]을 장학금을 주어가며 입학시켜 한 해에 SKY(대학교)를 120명을 보내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에 인천엔 제물포고등학교, 부천엔 시온고등학교라는 말이 경인지역에서 돌 정도로 부천의 대표적인 명문고였으나, 1990년 교주 박태선의 별세 이후 부천의 문제아 고등학교로 급격하게 변하였다. 그 후 2000년대 초반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 실시되면서 현재는 평범한 일반계 고등학교가 되었다.

2013년에 개교한 시온식품과학고등학교는 학비부터 의식주까지 모든 것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여신도들의 입학을 독려했으나, 설립 당시 인가받은 부지가 아닌 멋대로 개발제한구역에 학교를 준공시킨 건축 허가 비리부터 내부적 조건까지 막장을 달리다 결국 부산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인가 취소를 당했으며 본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고졸 학력이 인정이 불가능해져 다른 고등학교로 재입학하거나 검정고시를 쳐야만 한다.[25] 참고로 여학생만 모집했으며 인가 취소를 당해 학교로의 효력을 잃어버리고 고졸 학위를 수여할 수 없어서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지만 아직도 버젓이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하지만 중학생 모임 같은경우 비인가라는 걸 말하며 인가보다 더욱 좋은 조건이 있는다고 표현하며 고등학교 입시를 소개하고 있다 그 고등학교를 들어가게 되면 입사생이라고 불린다 천부교회를 꼭 다녀야 들어갈수 있는거 같다

학교알리미에서는 폐교라고 나와있으나 비인가 대안학교로 유형을 바꾼 후 교명을 시온식품여자고등학교로 변경한 채 운영하고 있다.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허나 비인가라서 고졸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8. 사건/사고

폭행치사 후 암매장, 영아 과실치사, 사기, 탈세, 폭행 및 기물파손, 부정선거 개입, 노동력 착취 등이 있다.

1958년 당시 박장로교 이름으로 있던 시절 정신병이 있는 소년을 안찰기도로 치료를 시도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후 신고 없이 암매장한 적이 있다. 박태선이 직접 안찰을 한 것은 아니고 '김 집사'가 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신도였던 피해자의 부모는 안찰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이전에 역도를 하다 다친 상처 때문이라고 둘러댔다는 것이다.

자세하게는 정신병이 있는 소년을 치료한다고 나무가지로 옆구리를 찌르고 때렸는데 아파서 발작이 진정되면 안찰기도 때문에 회복되는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피해자가 죽은 날에는 마지막으로 심하게 발작을 했다고 하는데 배를 발로 누르고 거동을 못하게 하자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말을 듣고 놓아줬다고 하며 이후 얼마 지나지 않고 절명했다고 한다. 피해자가 죽은 이후에도 소생시킨다는 목적으로 계속 기도를 했다고 한다. 부검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손가락 사이에 심한 고문 자국.
  • 늑골 외 2부분에 골절.
  • 머리 포함 5군데 이상 타박상.
  • 심장 내에 심각한 출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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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2월 10일 동아일보의 보도에 반발하여 동아일보를 점거하고 난동을 부린 일이 있다. # 당시에는 박장로교라 불렸다. 동아일보에서 당시 박장로교의 성화 기적에 관한 과학적인 반박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는데, 이를 본 수천명이 동아일보사로 난입하여 기물을 부수고 난동을 벌인 것. 이로 인해 사이비 종교와 안수기도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1961년 교주 박태선은 부정선거로 기소되었다. 교도소에서 신언한 전 법무차관에게 사주를 받고 가석방을 시켜준다는 대가로 신도들에게 자유당 입후보를 당선시켜라는 지령을 내린 혐의다. #

1970년 신도 중 한명이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생후 11개월 된 아기가 심하게 감기를 앓는다고 해서 초콜렛 4개를 물에 녹여 성수라고 먹였는데 이후 10분만에 숨졌다. #

1972년 거액을 탈세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담요 132,000매에 대한 매출을 조작하고 6억 9,000만원어치의 매출액을 누락하다 적발되어서 압수수색을 당했다. 20여권의 장부를 가져나오던 도중 신도 6명에게 모두 빼앗겨서 모두 수배되었다. #

8.1. 격암유록 허위창작 의혹

16세기 조선시대 사람인 남사고(南師古)가 썼다고 하는 예언서 격암유록(格菴遺錄)이 바로 1970년대 중반에 천부교 측 인사가 창작한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이는 1995년에 출판된 저자명을 김하원이라 한 <위대한 가짜 예언서: 격암유록>이란 책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된 주장이다. 이 책의 주장을 대략적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 격암유록의 내용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야 나온 어휘들을 사용하므로 조선시대 문서일 수가 없다.
  • 중국에서 발행된 한문 성경의 구절을 그대로 따라 쓴 흔적이 보이므로 그리스도교계 인사가 관여함.
  • 천부교 교리, 신앙촌 주변 지명을 표현하고 있어 천부교 인사가 지어냈음이 분명하다.
  • '성인이라고 불초자식이 없었는가'라는 구절을 보아, 하술할 박태선의 장남 박동명의 여성 관련 추문이 알려진 75년 이후에 완성됐다.
  • 국립중앙도서관에 77년, 천부교 신자인 이도은이란 사람이 격암유록을 기증했으므로 완성시기는 그 이전.

저자는 기증자인 '이도은'이라는 노인이 격암유록을 지어냈거나, 혹은 최소한 그에 깊이 관여했을 거라고 주장한다. 현대에 서점에서 격암유록이라며 나오는 것들은 전부 이도은이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한 필사본을 대본으로 한다.

당시 PD수첩에서 보도한 내용.현재 계정 해지되어 시청 불가

8.2. 교주의 장남 박동명이 일으킨 박동명 사건

그의 장남인 박동명은 태광실업을 운영하던 기업인이다. 나라가 가난했던 70년대에도 엄청난 사치를 부렸다고 한다. 해외여행 자유화도 안 된 시절 매달 외국에서 500달러 이상 쇼핑을 하거나 한국 땅에 자동차 자체가 드물던 시절에 벤츠를 샀고, 그 벤츠를 미국 등지에서 몰고 다니면서 라스베가스에서는 바니걸들을 끼고 다니기까지 했다. 한국에서도 당시의 유명 여배우/여가수들을 끼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고, 심지어 말 안 듣는 여자는 조폭을 동원해서 납치,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박동명의 엽색상대자 28명 명단>이라는 찌라시가 돌기도 했다.

그러다 1973년 50,000 달러를 현금으로 싸들고 하와이에 입국하려다 현지 세관원에게 걸린 게 화근이 되어 1975년 6월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붙잡혔다. 그가 저런 망나니질을 할 수 있던 원동력은 신앙촌 신도들의 돈일 가능성이 높다. 박동명의 몰락에 따른 불똥은 당시 유명 여자 연예인들에게 튀어서 해당 여자 연예인들은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고생했다고 한다. 이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세간에서 재벌 2세 등 돈지랄을 일삼는 7명을 묶어서 '7공자' 라고 불렀다. 박동명은 그 7공자 중에서도 수장에 가까운 취급이었다.

9. 언론 매체에서의 천부교

여행잡지 뚜르 드 몽드 2012년 4월호를 보면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 관련 기사에 뜬금없이 천부교 이야기가 나온다. 종교 자체에 관한 내용 아니고, 고고학 연구의 한계를 밝히는 연구를 위해 천부교 신앙촌 쓰레기장을 조사했었다는 내용으로 단순한 언급 수준이다. 천부교 신앙촌 쓰레기장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종교와 관련된 물건이 다른 곳보다 딱히 더 나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결론은 어떤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의 종류만 가지고는 그 부지가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를 판단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2014년 6월 6일에 방영된 궁금한 이야기 Y에서 신앙촌의 사연을 다룬 바 있다. 부산 기장 신앙촌 사람들이 21km 떨어진 펄프 제조 공장에서 악취가 난다고 민원을 넣는데, 그 수가 10년간 20,000건이라는 것이다. 하루에 7~80통의 전화가 걸려오지만, 그 민원의 내용이 본인 이름, 공무원 관등성명 확인, 그리고 "악취가 난다."는 말만 하고 끝이었다. 이에 조사를 진행한 결과, 신앙촌의 지리적 특성상 악취가 날아올 수 없는 지역이며, 신앙촌에서는 종교를 이유로 내부 조사를 거부했다. 환경청 등 여러 단체에서 조사를 진행했지만 펄프 공장에서는 악취 발생이 되지 않았고, 관계자는 종교적 생활로 후각이 발달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서울에서 인터뷰를 할 때 해당 장소의 공기 질이 신앙촌 주변보다 더욱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악취도 맡지 못했다.


[1] 1917년 12월 26일~ 1990년 2월 7일, 평안남도 덕천시 출신 [신앙신보] 천부교의 신앙신문이다. [3]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의 줄임말 [4] 엄밀히 말하자면 천부교에서 갈라진 장막성전이라는 한때 과천에서 거대한 세력을 자랑하던 사이비 교회의 뒤를 이은 것이다. [5] 평안북도 영변 출신이라고 기록된 문헌도 있다. [6] 박태선, 부산역사문화대전 [7] 비둘기상을 세운 이유는 노아홍수 때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을 물고 돌아온 것은 마지막 때 감람나무가 세상을 구원한다는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 [8] 2010년 8월 5일 <교회와 신앙> 박태선 신앙촌은 살아 있다. [9] 그래서 그런지 신앙촌 상회에서 파는 제품 중에 '생명물'을 쓰는 것들이 몇 있다. 대표적으로 생명물 간장 [10] 돼지고기와 장어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전통적 금기 식품( 할랄 푸드, 코셔 푸드)이라서 금지된 것으로 보인다. [11] 놀랍게도 이 말은 예수가 한 말이다. 마태오 복음서 19:24, 마르코 복음서 10:25, 루카 복음서 18:25 참고 [12] 이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에서도 마찬가지다. [13] 일부 교회에서는 의자에 앉는다. [14]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 무식하다는 증거다. [15] 일반적인 한국 개신교에서도 보통 11월 중에 추수감사절을 기념하기 때문에 이를 의식한 듯하다. [16] 해당 분파에서는 신발 판매 사업을 하기도 했다고 하는 듯하다. [17] 여기서 장로교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그 장로교(예수교 장로회 등)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박태선 교주가 장로였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즉 박태선 장로의 敎 [18] 그 이전에는 범박 현대홈타운 아파트였다. [19] 문화재인 죽성리왜성과 세트장과 영화/드라마 촬영장소로 유명한 죽성성당이 위치한 곳으로 일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 중에 하나다. [20] 허나 2010년대 초반에 시온식품과학고등학교라는 학교를 건립하였는데 기존 예정 부지가 아닌 개발제한구역 안에 세우는 바람에 부산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인가 취소를 당했다. 자세한 내용은 뒤에 후술. [21] 하지만 그 수입금은 그대로 천부교 운영자금으로 들어가니 이왕이면 구매하지 않는 것이 좋다. [22] 따라서 학교알리미 공식적으로 폐교로 안내, 현재는 비인가 대안시설로 운영중이다.) 신앙촌에서는 매년마다 막대한 벌금을 물어가면서까지 운영중이다. [23] 하지만 학교법인 2013년에 법인 산하에 있던 신앙촌의 산업체 부설학교인 시온실업고등학교를 특성화 고등학교인 시온식품과학고등학교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했었던 것으로 봐서 그때 까지는 여전히 천부교의 입김이 남아있었던것으로 보인다. 시온식품과학고등학교는 후술한 이유로 폐교되었으나 학교법인은 여전히 건재하다. [24] 4대 공립( 경기고, 경복고, 서울고, 용산고) + 5대 사립( 배재고, 보성고, 중앙고, 양정고, 휘문고)에 중동고, 서울사대부고, 경동고 등 서울에 명문 고교들이 포진해 있었고 입학하려는 중3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25] 아시아대학교의 고등학교 버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