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02 14:52:57

창경궁 옥천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사모정 미확인 건물지 집춘문
대온실 관덕정
창덕궁 춘당지 관풍각 국립어린이과학관
병경문 성종 태실 앙부일구
풍기대
관리사무소 월근문
함양문 건극당 세답방 수궁
영안문 환취정 자경전 장고 요화당 통화전 명광문
건인문 통명전 양화당 정일재 집복헌 영춘헌
여휘문 여휘당 채원합 소주방 연희당 연춘헌 천오문 만입문 보정문 통화문
정양문 연경당
경춘전 환경전 소주방 장방 수문장청
순역헌
풍순헌
함인정 공목합 수랏간
함안각
교태문 영군직소
취명문 빈양문 명정전 명정문 옥천교 홍화문
보화문 협문 숭문당 문정전 문정문 영군직소
주명문 누국 오위도총부 고문관 주자소 영군직소
낙선당 일영대 수문장청
저승전 진수당 군옥재 계방 등룡문 선인문
춘방 사주문 내사복시
시민당 종묘 수문 암문
※ '●' 표시가 붙은 건물은 현재 창덕궁 영역이다.
경복궁 · 창덕궁 · 창경궁 · 덕수궁 · 경희궁
}}}}}}}}} ||
창경궁 옥천교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경복궁 영제교
景福宮 永濟橋
창덕궁 금천교
昌德宮 錦川橋
창경궁 옥천교
昌慶宮 玉川橋
덕수궁 금천교
德壽宮 禁川橋
경희궁 금천교
慶熙宮 禁川橋
정문 · 중문 · 금천교 · 정전 정문 · 정전 · 편전 정문 · 편전 · 내정전 · 동궁 · 선원전
}}}}}}}}} ||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보물
385호 386호 387호
창경궁 명정문 및 행각 창경궁 옥천교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 ||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보물 제386호
창경궁 옥천교
昌慶宮 玉川橋
소재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분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 교통 / 교량
수량 1동
지정연도 1963년 1월 21일
제작시기 조선시대, 1484년
파일:창경궁 옥천교.jpg
파일:창경궁_옥천교_측면.jpg
파일:창경궁_옥천교_봄꽃_핀_모습.jpg
<colbgcolor=#bf1400> 옥천교[1]

1. 개요2. 역사3. 금천4. 구조

[clearfix]

1. 개요

<colbgcolor=#bf1400> YTN SCIENCE에서 제작한 유튜브 소개 영상

창경궁 금천교이다.

금천교는 이름대로 금천을 건너기 위해 세운 다리이며, 금천 풍수지리적인 이유[2] 외부와의 경계[3]를 나타내기 위해 궁궐의 정문과 중문 사이에 둔 인공 개천이다. 그러나 창경궁 중문이 없기에 정문 홍화문 정전의 정문인 명정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2. 역사

파일:동궐도 옥천교1.png
파일:조선고적도보 창경궁 옥천교.png
<colbgcolor=#bf1400> 〈동궐도〉에서 묘사한 옥천교 <colbgcolor=#bf1400>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옥천교
1484년( 성종 15년) 옛날 태종이 머물던 수강궁 자리에 대비들을 위해 창경궁을 창건할 때 함께 지었다. 이름은 창건 당시 의정부 좌찬성[4] 서거정이 지었다.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모든 궁궐 건물이 불탔으나 옥천교는 로 지었기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후 큰 변화없이 오늘에 이른다. 즉 현존하는 궁궐의 금천교 중 창덕궁 금천교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

3. 금천

옥천교 밑을 흐르던 창경궁 금천'옥류천(玉流川)'이다. 창덕궁 후원 옥류천과는 이름만 같은 다른 개울이다. 하지만 창경궁 옥류천의 발원지도 창덕궁 후원이다.

연경당 서쪽과 부용정, 관람정 권역에서 발원한 것으로 보이는 세 갈래의 물이 춘당지에서 합류한 뒤 # 남쪽으로 흘러 옥천교를 지난다. 원래는 창경궁 동남쪽으로 물이 빠져나온 뒤 계속 남쪽으로 흘러 종로 5, 6가동을 거쳐 지금의 예지동 광장시장 인근에서 청계천과 바로 합류했으나 현재는 창경궁 경내를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되었다.

발원지가 안이고, 또 경희궁과 달리[5] 궁역 자체에 큰 훼손도 없었기 때문에 현재 궁궐 금천 중 유일하게 자연수가 흐르고 있다.

4. 구조

  • 좌우에는 난간을 설치했는데, 연꽃 모양의 하엽동자(荷葉童子) 기둥을 4개씩 세우고, 그 사이에 한 장의 돌로 만든 판석을 끼웠다. 판석에는 도드라지게 새긴 하엽동자기둥을 배치하고 2개씩 구멍을 뚫어내었다. 난간 양 끝에는 법수(法首)라는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상서로운 짐승들의 조각을 새겼다. #
  • 얼핏 봐선 모르지만 아주 자세히 보면 가운데가 약간 솟아올라있는데 올 때 빗물이 다리에 고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빠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 다리 아랫 부분에 무지개 모양의 아치(전통 건축에선 홍예라고 표현한다.)를 2개 만들었다. 아치 사이에는 괴수 얼굴, 즉 귀면(鬼面)을 조각한 돌을 끼우고 그 위에 얇은 댓돌을 길게 덮었다.
  • 홍예 바깥쪽에는 긴 댓돌을 3단으로 쌓아 하부구조를 마련했으며, 그 위에 긴 댓돌을 깔아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귀틀석과 청판석을 배열하면서 3개의 을 놓았다. 이 다니는 어도(御道)는 가운데에 있는데 가장자리의 신하들이 다니는 길보다 조금 높고 약간 더 넓게 만들어 서열을 분명히 나타내었다.

파일:창경궁 명정문과 명정전의 축.png }}} ||
<colbgcolor=#bf1400> 홍화문, 옥천교, 명정문, 명정전의 축
창경궁 명정전 정문 명정문과 명목상으로는 일직선상에 있으나 실제로는 아주 미세하게 약간 축이 맞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설이 있으나 풍수지리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1] 첫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두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 보물 창경궁 옥천교
세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 보물 창경궁 옥천교
[2] 궁궐의 앞쪽에 물을 흐르게 하여 풍수에서 가장 좋다는 배산임수를 구현했다. [3] 물론 실제 궁궐 외부의 경계는 이지만, 잡귀를 쫓아내고 또 외부인이 궁에 들어갈 때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는 의미로 금천을 상징적인 경계로 두었다. [4] 議政府左贊成. 의정부에 속해 3의정(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을 보좌하는 직책. 오늘의 국회부의장 격이다. [5] 경희궁의 금천도 안에서 발원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부 메워졌다. 지금은 복원 경희궁 금천교 양 옆에 아주 조금 재현해놓은 것만 볼 수 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5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5 ( 이전 역사)
문서의 r20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