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0:57:53

조원희/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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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원희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선수 경력

2.1. 울산 현대 호랑이, 광주 상무 불사조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2002년에 울산 현대 호랑이에서 데뷔하였지만, 1경기 출장에 그치게 되었고, 한 시즌 만에 광주 상무에 입대했다.[1]

선수진이 얇았던 상무에서는 33경기 2골을 기록했다. 상무에서 이강조 감독의 지시를 받고 수비수를 처음 봤다고 한다. 3-5-2시스템의 오른쪽 윙백이었으며 그전까진 공격수였다고 한다.

2.2. 수원 삼성 블루윙즈 1기

전역 직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다.

수원 입단 후 초기에는 주로 오른쪽 풀백으로 출장하였는데, 공격적인 능력은 괜찮았으나 그놈의 돌아오지 않는 윙백 본능 때문에 이전까지 수원의 오른쪽 풀백이었던 이기형, 또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국가대표 출신 최성용과 비교되며 신나게 까였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는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한 경기도 뛰지 못했고, 2007 시즌에는 송종국에 밀려 벤치만 달구며 그대로 잊혀지나 싶었으나, 그의 활동량과 신체 조건을 눈여겨 본 차범근 감독은 그 해 후반기 조원희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위치를 바꾸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2008년 김남일이 떠나고 김진우가 은퇴하면서 대체자가 필요했던 수원의 중원을 꿰차는데 성공했고, 주장 송종국과 중원 듀오로 활약하며 수원의 4번째 우승의 주역이 되며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이때는 김정우가 대표팀 붙박이 주전이 되기 전이라서 한창 떠오르는 기성용의 파트너로 조원희를 주목하는 팬들도 꽤 있었다.

2008 시즌 종료 후 FA가 됐고, 유럽 진출을 모색하며 수원과 작별했다.

2.3. 위건 애슬레틱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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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박주영이 있는 AS 모나코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외국인 선수 제한 문제로 모나코와 결렬됐고, 이외에도 FC 톰 톰스크, 비셀 고베 등과 연결됐다. 그러나 결국 스티브 브루스 감독이 있는 위건 애슬레틱에서 입단 테스트를 보고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했다. 계약 기간은 2년 6개월.

이로써 한국인 6호 프리미어리거이자, 이동국, 김두현에 이어 역대 세 번째 K리그에서 EPL로 직행한 선수가 됐다.

시즌 전 친선경기에서 골대를 맞히는 슈팅 등 좋은 조짐을 보였으나, 처음 조원희를 영입한 스티브 브루스 감독이 선덜랜드 AFC로 떠나버리고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이 부임하는 부침 속에 팀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부상도 당하는 등 단 4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할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이 이어졌다.

게다가 허정무호에서도 김정우, 김남일 등에 밀리자, 출전 기회 확보를 위해 이적을 모색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은퇴한 조원희는 이때 계속 도전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을 인생 최대의 실수로 꼽았다. 관련 기사. 조원희를 플랜에서 제외했다고 알려져 있는 마르티네스 감독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고, 경기에 기용해주겠다는 말도 들었으나 스스로 힘에 부쳐 떠났던 게 너무 아쉽다고...

또한 이 시기에 영국에서 인종차별도 많이 겪은 것으로 보인다. 동료들이 조원희 옆을 지나갈 때 눈을 찡그리고 다니는 건 기본이었다고... 슛포러브 인종차별 유튜브 캠페인에 나와서 밝힌 바 있다.

2.4.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기

결국 2010 시즌을 앞두고 차범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친정팀 수원으로 1년 간 임대로 복귀했고, 임대생 신분임에도 주장에 선임됐다.

전북과의 개막전에서 엄청난 중거리슛으로 복귀전 복귀골을 집어넣을 정도로 시즌 초반에는 EPL 클래스를 보여주는 가 했지만 수원 구단은 역사상 최악의 부진에 빠지며 전반기 꼴찌 수모를 당하고 만다.

후반기에 부임한 윤성효 감독 체제에서 여전히 조원희는 주장직을 유지했으나 9월 들어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고 그 사이 수원은 FA컵 우승을 차지하는 등 상승세를 맞이했다.

2010시즌 종료 후 수원이 대대적인 리빌딩에 들어가면서 조원희와 비슷한 스타일의 이용래를 경남에서 영입했고 울산의 오장은을 영입하기 위해 조원희를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하려고 하는 등 윤성효 체제에서 조원희의 자리는 없어졌다.

결국 수원은 조원희의 완전 이적을 철회했고 그렇게 조원희의 수원 삼성 2기는 끝이 났다. #

2.5. 광저우 헝다

조원희는 국내 잔류보다 해외 리그로의 재진출을 희망하였기에 결국 아시아 쿼터제를 이용해서 중국 슈퍼 리그 소속의 광저우 헝다로 이적했다.

원래는 위건과의 계약이 6개월 남은 상황이었으나 위건과 광저우의 협상에 의해 조원희의 계약은 조기종료되었고 광저우 헝다는 자유계약으로 조원희를 영입했다. 폭발적인 투자를 시작한 광저우 헝다에서 이장수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팀의 창단 첫 슈퍼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하지만 광저우의 끝없는 투자 속에 이장수 감독의 후임으로 마르첼로 리피 체제에서 설자리를 잃고 만다.

2.6. 우한 줘얼

결국 2013시즌 중국 슈퍼리그 승격팀 우한 줘얼으로 이적했다.

계약 기간은 2년에 연봉은 150만달러(약 16억2천460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위팀 우한에선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8월에 감독 교체 이후에는 구단주가 직접 조원희를 후반기 주장에 임명하며 수원 시절 이후 두 번째로 주장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끝내 우한의 강등을 막지는 못했다.

2.7. 경남 FC

2014년 2월 26일 경남 FC로 1시즌 임대되며 4년 만에 K리그로 돌아왔다. #

임대된 조원희는 입단 당시 본인 연봉의 상당 부분을 삭감하며 구단의 부담을 덜어준 대신 시즌 중 해외 진출 요청 시 구단이 이를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경남은 후반기 조원희의 잔류를 원했지만 입단 당시 이뤄진 상호 약속을 존중하는 동시에 본인의 강한 해외 진출 열망을 고려해 계약 해지 요청에 합의했다.

2.8. 오미야 아르디자

여름 일본 J1리그 오미야 아르디자에 입단하며 첫 일본 무대도 밟았다.

그러나 당시 팀은 강등권에 밀려 있었고 조원희의 몸상태 역시 완벽하지 않아 많은 경기를 뛰진 못했고 시즌 종료 후 반 년 만에 오미야를 떠났다.

2.9. 서울 이랜드 FC

2015년 2월 5일 K리그 챌린지 신생구단 서울 이랜드 FC에 입단하며 프로 커리어 첫 2부리그 무대를 밟았다.

시즌 초반에는 몸상태가 별로인듯 폼이 안 좋아보였지만 이후 멋진 중거리슛을 성공시키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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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강원과 경기에서 골찬스를 어이없게 날렸다. 사실 이날 경기는 조원희 뿐만 아니라 서울 이랜드 전원이 귀신에 씌인 듯 결정적인 상황에서 빗나가는 슈팅이 많았다. 아직 홈에서 첫승이 없기 때문에 부담이 큰 듯.



서울에서 한 시즌 동안 리그와 FA컵을 포함해 40경기에 나서 5득점을 기록했지만 승격에 실패했고, 또 다시 한 시즌 만에 팀을 떠났다.

서울 이랜드 팬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필드에서 게임을 잘 조립해주는 조원희의 이탈이 다음 시즌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과, 뛰지 않고 걷는 모습, 공격 템포를 늦추고 공을 오래 점유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 조원희가 나가서 다행이라는 의견이 있다.

2.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3기

파일:20210107_180436.jpg

2016 시즌 친정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며 또 다시 수원에 돌아왔다.

2016시즌 수원에서는 주로 풀백으로 뛰고있으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때가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7월 31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 50분 시즌 1호골이자 쐐기골을 터뜨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패싱력이 좋은 이종성과 함께 더블 볼란치로 출장하며 뛰어난 수비력으로 중원을 쓸어담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17년 6월 25일, 16라운드 강원전에서 환상적인 다이빙 헤딩골을 넣었는데.. 하필이면 자책골이었다.[2][3][4] 굴리트도 못한다는 전설의 다이빙 감차 헤딩자책 이후 17라운드 대구와 18라운드 울산과의 경기를 끝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2018년에는 ACL과 월드컵이 있어서 로테이션이 매우 중요한 시즌이 되다 보니 경기에 출전 중이다. 게다가 주장인 김은선이 3라운드 포항 전 이후 6주 부상을 끊는 바람에 역할이 중요해 졌는데, ACL 2차전 가시와 전, 1라운드 전남 전에서는 눈이 썩는 백패스만 보여주다 4라운드 제주 전에서 각성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각성 이후, 2018 시즌 한정 인저리 프론이 된 김은선을 대신해 중앙 미들진 1옵션으로 출전 중이며, 나이를 잊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5월 16일 벌어진 ACL 16강 2차전 울산과의 경기에 맹활약하며, 수원을 7년만에 ACL 8강으로 올려 놓는데 매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하반기에 들어서자 무섭게 폼이 수직하락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ACL 및 FA컵 탈락의 주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서정원 감독 또한 이런 조원희를 계속해서 믿고 미들로 기용하면서[5] 팬들의 큰 의구심을 안게 되었다.

결국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고,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 2019년 JTBC의 K리그 해설진으로 합류했다. 다른 팀에서 오퍼가 오긴 했지만, 본인이 “내 몸엔 아직 푸른 피가 흐른다”고 말하며 수원 외의 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생각이 없는지라 거절했다고 한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는 수원에서의 조원희의 공로를 인정해 2019년 3월 31일에 그의 은퇴식을 치렀다.



2.10.1. 전설이 된 자책골

파일:전설이 된 조원희.gif
유튜브 영상[6]
17시즌 K리그 16R 수원 VS 강원전에 3-2로 수원이 앞서는 상황에서 이러한 황당하면서 아름다운(?) 자책골이 터져나왔다. 이 당시 중계를 하던 엠스플도 스코어를 실수로 4-2로 바꾸다 재빨리 3-3으로 바꾸었으며 이 골은 지금까지 회자되는 최고의 자책골 중 한 골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골은 머리로 감아차서 그런지 아름답다는 말이 많고 네티즌들 사이에는 자책골 아니었으면 푸스카스 받았다, 조원희상 만들어야 된다, '머리 감기'의 새로운 의미를 제시했다(…) 등 여러 드립이 탄생했다. 자책골이 나온 당시에도 회자되었지만 은퇴 후 유튜브 활동을 통해 유명해지며 재조명받고 조스카스상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참고로 당시 조원희는 교체로 나온지 얼마 안된 상황이였다. 서정원 감독이 조원희를 투입시키면서 ‘지켜라’고 했지만 그는 승리가 아닌 승부의 균형을 지켜버렸다.

당시 골키퍼였던 신화용이 후일 조원희의 유튜브 영상에서 언급하길 "조원희가 헤딩할 걸 알고도 못 막았다"고 한다. 본인은 할 거 다 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코스 자체가 막을 수 없는 코스였으며, 헤딩으로 감아차기를 하는건 처음 봤다고.

파일:2020 도쿄 올림픽 축구 루마니아전 자책골.gif

2020 도쿄 올림픽 B조 2차전 해설로 중계진에 참여했는데, 비슷한 구도로 루마니아의 마리우스 마린 선수의 자책골이 나오자 "조스카스상 수상 가능할까요" 라는 농담성 질문을 받기도 했다. 참고로 저 날 해설에서 본인은 저 장면을 보고 제가 저 마음 아는데라고 하기도 했고, 이 자책골 때문에 KBS의 순간 시청률이 증가하기도 했다.

뭉쳐야 찬다 2 38화에서는 레전드슛 재현 대결을 했는데 이때 조원희의 이 자책골도 포함이 되어있었고 시범으로 당사자인 조원희도 이 골을 재현했다. #

2022 동아시안컵에서도 중국의 주천제가 헤더로 자책골을 집어넣자 또 소환됐다.

2.11. 은퇴 이후

은퇴 이후 슛포러브에 간간이 출연하다가, 유튜브 채널 이거해조 원희형을 개설,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 19로 리그가 중단된 상태에서, 이승우를 훈련시켜주고 있다. 황의조 역시 훈련시켜줬었다고 한다. 슛포러브에서 훈련하는 모습이 나왔는데, 이승우와 자신의 선수 시절 처지가 비슷해서 공감이 많이 간다고 한다.

2020년 7월 9일 현재 현역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거론되는 구단은 수원 삼성 관련 영상, 수원 FC가 거론되고 있다.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에 따르면 최종환의 부상으로 라이트백 공백이 생긴 수원 FC가 월요일 김도균 감독의 연습경기 테스트 후 오케이를 했다고.

2.12. 현역 복귀: 수원 FC


2020년 7월 22일, 플레잉 코치[7] 신분으로 K리그2 소속인 수원 FC에 현역 복귀했다. 등번호는 2번. #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이적 과정과 소감을 밝혔다. 현역 선수로 복귀하면 유튜브 활동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서도 고민한 듯한데, 수원 FC 구단 측에서 "우리 팀에 유능한 선수가 많아서 알리면 좋겠다. 또 우리 팀 경기와 K리그를 축구 팬들에게 홍보하는 차원에서도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줄 수 있겠냐"며 오히려 선제의를 해줘서 이거해조 원희형 채널은 수원 FC 구단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당분간은 몸 만들기에 주력한다. 인터뷰에서 아들이 영국 가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고 밝혔다. 경기 투입을 위해 각종 영양제를 다시 먹고 다리의 피로를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운전도 삼간다는 모양이다. #

8월 1일 13R 안산 그리너스전에 선발 라이트백으로 출전했지만 아직 풀타임을 뛸 체력이 아닌 것으로 보여서 지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전반 32분엔 무리한 태클로 경고를 받았으며, 결국 39분에 교체아웃되고 만다.

다음 경기인 부천FC와의 경기 2일전에 가벼운 차량 접촉 사고를 당하고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여 명단제외를 당한다. 24R까지 명단제외나 벤치를 달구고 있다가 25R 제주전 2:0으로 지고 있는 후반 76분에 이지훈 대신에 교체로 들어갔었다. 이지훈이 제주 정우재의 측면 침투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해 두번째 골을 허용하게되자 질책성 교체로 조원희가 들어가게된 것이다.

이후 별다른 활약 없이 평소에는 코치 역할을 하거나 관중석에서만 있다가 가끔 유튜브 찍어주고 마침내 승격 확정으로 1부에 올라갔다.

그리고 1부 리그로 팀이 승격하자, 2021시즌 시작 전인 1월 7일에 선수 은퇴를 선언하면서, 수원 FC에 유소년 발전기금 2,000만원을 기부하고 떠났다. #

출전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크게 평가할 구석은 없다. 확실히 2부리그에서 수비력 자체만으로는 아직 나쁘지 않았으나 민첩함이나 순속이 불안했고 공격 전개는 확실히 좋지 않았기 때문에[8] 코치 역할이 아닌 선수 역할로는 재계약하기에 의문점이 따른다고 해도 납득할 만했다.

2.13. 두 번째 은퇴 이후

다시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계속해서 유튜브 활동을 이어가다가 이영표의 뒤를 이를 새로운 선출 해설위원을 찾던 KBS에게 발탁되어 다시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남현종 아나운서와 2020 도쿄 올림픽 해설을 맡게 될 것이다. # # KBS 해설위원으로서의 첫 경기는 벤투호의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마지막 경기인 레바논전이 되었다

JTBC 시절 해설위원으로서의 평가가 썩 좋지 않았던지라 KBS행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다수인 상황인데, 유튜브 활동을 통해 방송인으로서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다시금 기대를 거는 이들도 꽤나 존재하는 상황. 전임자가 워낙 KBS의 간판 해설위원으로 많은 명성을 쌓았던 바 있기 때문에, 조원희의 경우 여러모로 본인의 분발이 필수적일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레바논전에서의 해설 역시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9]

도쿄올림픽에서 그나마 나아지긴 했지만 KBS의 월드컵 시청률 1위 수성을 위해서는 분발이 필요할듯 하다. 즉, 더 개선이 되지 않으면 교체 가능성도 있다.

2021년 7월 15일부터 skySports의 K리그 프로그램인 DYNAMIC PITCH에 참여한다.[10] 2021년 7월 28일자로 황선홍, 최용수, 배성재, 민호와 함께 K리그 홍보대사(앰버서더)로 위촉되었다. #

뭉쳐야 찬다 2 8화부터 유동적으로 출연중이다. 8화에서는 상대팀인 강철 FC[11]의 감독으로 출연하고 9화부터는 경기 해설 한정으로 출연하고 있다. 그러면서 감코진인 안정환 이동국은 공격수였다보니 수비수 전담 코치도 필요하지 않겠냐며 코치자리에도 욕심이 있는듯 하다. 결국 30화에서 수비코치로 고용되었다. 자세한 행적은 이 문서 참고.

카타르 월드컵 조추첨에서는 현지 연결을 통해 리포터 역할을 맡았다. KBS가 구자철을 신규 선출 해설로 영입한 만큼 월드컵에서는 2-3선발 해설로 활약할 가능성이 있다.


[1] 조원희 본인이 밝히기로 2002년 11월에 입대했다고 하며, 1983년생인 조원희는 이 때 만 19세로 일반인도 이 나이에 입대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 정도로 빠른 나이에 군복무를 시작했다. 상무 동기가 김상식, 김영철, 박성배, 서동원 등이라고 밝혔는데 이들은 1975~1976년생으로 당시 만 26~27세인 선수들이다. 즉, 사회에서 선수로는 까마득한 선배들이 군대에서는 자신의 동기가 된 셈이다. [2] 본인의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라고 한다. [3] 스코어 기록하는 사람도 착각했는지 일시적으로 수원의 득점으로 올라간다.... [4] 이후 2020년 초 자신이 직접 댓글을 남겼고, 고정당했다. [5] 부상 때문에 기용할 수 있는 미들 자원이 몇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윤용호라든가. [6] 우리가 잘아는 그영상은 삭제되었다 [7] 2군 코치와 1군 선수 역할을 같이 할 예정인데, 문제는 최종환의 부상과 박요한 FC 안양 임대로 공백이 생긴 측면 수비와 기존 2군 코치가 없던 상황 상 양쪽 모두 비중이 크다 보니 맡은 일이 과해질 수 있다는 것. 거기에 후술할 유튜브까지 병행하면 워낙 바빠질 수 있어 구단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 이전에 2군 전담 코치 없이도 운영을 잘 해왔던 수원이니만큼 조원희의 코치 업무를 어느 정도 분담해준다던지... [8] 쓸데없이 몇 번 더 쳐서 공격 타이밍을 둔화시키기도 했고 킥 자체가 원래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단점이 더 부각되어 보였다. [9] 과거 MBC에서 해설을 했던 감스트를 연상시키는 쉰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는 의견도 있고, 캐스터와 계속해서 오디오가 겹쳤다. 다만, 손흥민의 결승골 직후 크리스티안 에릭센을 향한 세리머니는 경기 종료 이후 따로 언급했다. [10] 다만 2021년 7월 22일부터 8월 2일까지는 2020 도쿄 올림픽 때문에 박태하 기술위원장이 대신 참여했다. [11]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강철 FC 축구단이 아닌 예능프로 강철부대 출연진들로 이루어진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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