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베르디의
오베르토,
나부코,
에르나니,
포스카리 가문의 두 사람과 세트로 베르디의 초기작 중 하나이며 베르디의 오페라 중 7번째로 작곡되었고 1845년에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단, 이 오페라를 계기는 베르디는 수정판
시몬 보카네그라를 재공연 할때까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과 일하지 않게 된다. 이유는 아래에 서술되는 내용을 참조.
조반나 다르코는 실존인물
잔 다르크의 이탈리아어 표기이며, 타이틀 제목에도 싸져있듯 잔 다르크가 주인공이지만 실존인물에 대한 이야기 보단 실러의 희곡 오를레앙의 처녀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1] 즉,
드림소설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2]
산 보니파초의 오베르토 백작으로 베르디가 최초로 오페라 작품을 내놓았고[3],
나부코로 대성공을 거둔 베르디는
롬바르디아 인,
에르나니,
두 사람의 포스카리를 작곡하여 연달아 성공하게 된다. 이 당시에는 이탈리아가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시기이기도 해서
나부코를 비롯한 이후에 나온 다른 오페라들이 베르디의 애국적인 색체가 강한 분위기와 내용과 연주가들의 열연으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기에 충분한 요소였다.[4] 또, 라 페니체 극장 감독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극장주들이 베르디릐 오페라를 공연하고 싶어해서 계속 의뢰를 걸어왔고, 당시 베르디는
나부코의 성공 이후로 대중스타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1년에 한 작품씩 발표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년씩 연달아 1작품씩 연달아 작곡하는 것은 베르디를 지치게 했고[5] 6번째 작품 두 사람의 포스카리가 흥행을 거두자 이번에는 라 스칼라 총 감독 바르톨로메오 메릴리가 나부코로 히트쳤던 베르디를 다시 불러서 그에게 자신들의 극장에 올려질 7번째 오페라를 작곡해달라고 의뢰하였다.[6]
나부코와
에르나니에서 그랬던 것처럼 베르디는 희극에서 작곡할 소재를 찾았고[7], 실러의 오를레앙의 처녀를 바탕으로 테미스토클레 솔레라[8]한테 대본을 의뢰하여 7번째 오페라 조반나 다르코를 작곡했다.
오페라를 완성한 베르디는 1845년 2월 15일에 조반나 다르코를 라 스칼라 극장에 초연하였고, 역시
애국심 오오라와 조반나역의 에르미니아 프레촐리니의 아름다운 가창으로 관객들에게 비교적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극장주 메릴리가 마련해준 자금과 무대 장치가 조반나 다르코를 올리기에는 최상의 상황이 아니었고, 이 전에 라 스칼라 극장에서
두 명의 포스카리를 공연했을때, 메릴리의 삽질로 마지막 장면을 아예 뒤바꾸면서 연주 되었던 적이 있어[9] 이미 베르디는 라 스칼라 극장주와의 사이가 금이 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베르디는 빡치면서 라 스칼라에서 다시 일하지 않겠음을 선언하고 1881년에 시몬 보카네그라 수정판을 라 스칼라에 올릴때까지 한 동안 다른 극장주들과 일하게 된다. 이후 조반나 다르코는 피렌체, 루카, 세니갈리아에서 공연되었고, 1848년에는 만토바 지방에서도 공연되었으며 1865년에는 다른 유럽 지역에서도 공연되었으나 당시 검열로 인해 원래 무대 배경을 바꿔버리고 공연하는 일이 잦았다.[10]
조반나 다르코의 초연은 당시 시대상황을 반영하듯 프랑스 지배하에 있었던 이탈리아인들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었는지
나부코에서 받은 큰 흥행만큼은 아니었지만 대체적으로 호평이었다. 그러나, 정작 평론가들한테는 별로라는 평이 많았는데 이유인즉슨 베르디 그 전작들에 나왔던 애국심을 7번째 작품에서도 우려먹기 했다는 점[11]과 솔레라의 대본이 굉장히 작위적이고 실제 역사와 거리가 멀다는 점과[12] 내용진행이 매우 취약했다는 점을 들었다. 대신, 음악은 서곡을 비롯하여 각 캐릭터들의 아리아까지 매우 아름답다는 평을 받았다.[13]
라 스칼라 초연 이후 다른 극장에서 검열 받아가며 원래 무대 바꿔가면서 공연한 이후로 아예 공연되지 않았다가 1951년 밀라노 RAI 방송에서
레나타 테발디가 조반나 다르코역을 맡은 것을 계기[14]로 하여 가끔이나마 올려지고 있으나 여전히 베르디 오페라 중 비인기작으로 분류되어진 상황이다. 2013년에
안나 네트렙코,프란체스코 멜리,
플라시도 도밍고를 기용한
짤츠부르크 페스티벌 콘서트 실황으로 조금이나마 인지도가 올라가긴했다.[15]그래도 이쪽은
시몬 보카네그라와는 달리 여전히 비인기작이다. 덧붙이자면,
일본에선 도쿄문화회관에서 공연했던적이 있으며[16], 한국에서는 아직 공연되지 않았다.
음악적인 면에선 벨 칸토 오페라 작품답게 아름다운 쪽에 속하기 때문에 서곡과 조반나의 아리아 2개, 쟈코모의 아리아가 연주가들한테 비교적 자주 연주 되고있다. 특히, 서곡이 자주 연주되는 추세이며 제임스 러바인, 리카르도 무티, 안토니오 파파노, 리카르도 샤이가 조반나 다르코의 서곡 부분을 무대에서 자주 연주하곤 했다. 조반나의 아리아도 비교적 소프라노들이 많이 부르는 편인데 레나타 테발디 이후로
미렐라 프레니,
카티아 리치아렐리, 수잔 던, 레온타인 프라이스, 마르티나 아로요, 마리아 키아라,
몽셰라 카바예,
마리엘라 데비아, 스베틀라 바실레바, 준 앤더슨,
안나 네트렙코가 자주 불렀다.[17] 바리톤역 쟈코모 아리아는 서곡이나 조반나의 두 가지 아리아 보단 덜 연주되지만 레너드 워렌, 롤란도 파네라이,
피에로 카푸칠리,
셰릴 밀른스, 조르조 잔카나로, 레나토 브루손, 시모네 피아쫄라 같은 바리톤들이 콘서트에서 간혹 부르기도 한다. 특히,
레나토 브루손이 가장 많이 불렀고, 조반나 다르코 영상물 2개에서 모두 쟈코모를 맡은적이 있다.[18]
베르디 작품 중에서
임금님의 하루,
알치라와 함께 비인기작으로 분류되지만 의미도 있는 작품이기도 한 것이 조반나 다르코가 베르디 작품 중 최초로
프리마 돈나를 위한 오페라라는 점이다. 이는
알치라,
루이자 밀러,
라 트라비아타에서도 영향을 주게 된다.[19]
제 1장 : 장소는 동레미 성의 회랑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왕의 군대와 사관들에게 전쟁의 근황을 묻자, 프랑스는 지금 영국군에게 침략 당했으며 곧 항복하게 될 위기에 놓였다고 얘기한다. 아직은 정식 왕으로 등극하지 않은 카를로 7세가 동레미 성으로 들어온다. 카를로는 프랑스 백성들이 영국군에게 더 이상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영국군에게 투항하고 왕의 자리에서 퇴위할 것을 선언한다. 이에 백성들이 말리지만 왕은 자신의 꿈 속에서 동레미 숲 속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성상을 보았으며 그곳에 자신의 투구와 검을 내려놓으라는
하느님의 계시가 있었다고 얘기하면서 그 숲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백성들은 악마와 마녀가 대거 출몰하는 숲이라 아무도 거기에 가려는 자가 없다고 얘기하면서 말리지만, 카를로는 자신이 쓴 왕관을 내려놓고
성모상이 있는 숲으로 향한다.(테너 아리아 "Sotto una quercia parvemi...")
플라시도 도밍고가 부르는 카를로 7세의 카바티나와 카발레타 "Sotto una quercia parvemi..."
제 2장 : 조반나의 아버지 쟈코모가
성모상이 있는 숲속에 와 있다. 그는 마음이 편치 않다. 딸이 기도하러 성당에 들어간 지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반나가 이 숲의 악마들과 결탁한 것이 아닐까 하고 불안해하기도 한다. 그 때, 조반나가 기도를 끝내고 나타나자 쟈코모는 몸을 숨긴다. 조반나는
성모상 앞에서 조국 프랑스가 적국에게 짓밟혀 가는 것을 걱정해 자신이 무기를 들고 나가 싸울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소프라노 아리아 "Sempre all'alba") 기도를 마친 조반나는 잠이 들고, 그 와중에 카를로가 나타나는데, 그는 자신이 꿈에서 본 것과 너무도 똑같아 그만 놀라게 된다. 그리고, 꿈에서 그랬던 것처럼 카를로는 자신의 검과 투구를
성모상 앞에 놓고 기도를 드린다. 잠이 든 조반나는 꿈을 꾸게 된다. 처음에는 악마들이 나타나 젊음과 아름다움을 즐기라며 조반나를 유혹하지만, 나중에는 천사들이 나타나 세속의 사랑을 포기하고 무기를 들고 전쟁에 나가서 프랑스를 구하라고 얘기한다. 조반나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프랑스를 위해 싸울 준비가 되었다고 얘기한다. 그 소리를 듣고 카를로가 다가온다. 조반나는 곧바로 그가 왕임을 알아보고 자신이 선봉에 서서 적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가져오겠다고 얘기하면서 카를로와 함께 전쟁에 나간다. 그 모습을 엿보고 있던 쟈코모는 조반나가 악마에게 홀려 왕을 유혹했다고 여겨 딸을 저주하게 된다.(테너와 소프라노 이중창 "Pronta Sono!...Son Guerriera")
제 1장 : 영국 병사들과 사령관 탈보트는 조반나가 이끄는
프랑스군에게 패한 상태이다. 영국군은 조반나의 군대가 악마의 군대라 얘기하면서 탈보트에게 후퇴할 것을 주장한다. 그 때, 조반나의 아버지 쟈코모가 전선으로 찾아온다. 그는 자신이
프랑스인이지만
영국군과 협력하려고 자청하러 온 것이며, 카를로 왕이 자신에게 치욕을 주었다고 얘기하고 프랑스군을 이끄는 자신의 딸 조반나 역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아비를 배신하고 부정을 저질렀다고 얘기한다. 쟈코모는 영국군에게 조반나를 넘겨주겠다고 말하고, 그 말을 들은 영국군들도 쟈코모를 돕겠다고 약속한다.
제 2장 : 랭스의 있는 궁전 정원에서 조반나가 갑옷을 입은 체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이 이끈 프랑스 군대와 함께 영국군을 물리치고 다시 자유를 찾은 마을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대접받고 환호를 받은 상태이다. 조반나는 자신의 임무가 끝났다고 믿어 원래의 옷으로 갈아입고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소프라노 아리아 "Qui! Qui...Dove Più S'apre....O Faticida Foresta") 거기서 카를로가 나타나 조반나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이에 조반나는 당황하면서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망설이지만 어느덧 자신의 마음이 왕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왕의 품에 안긴다. 그 순간 조반나에게 속세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화를 입는다는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에 조반나는 두려워하고 카를로는 갑작스러운 조반나의 태도변화에 당황한다. 그 때, 병사들과 백성들이 들어온다. 프랑스 장교 델릴은 영국군이 모두 후퇴했으므로 카를로에게 정식 대관식을 올리자는 것을 주청한다. 주청을 기꺼이 받아들인 왕은 조반나에게 대관식을 거행해달라고 부탁하고, 조반나 역시 카를로를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시키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그 부탁을 수락한다. 그 때, 악마들의 소리가 들린다. 조반나가 순결을 잃어버렸다고 하면서 즐거워하는 소리이다.
안나 네트렙코가 부르는 "Qui! Qui...Dove Più S'apre....O Faticida Foresta"
마리아 키아라[22]가 부르는 "Qui! Qui...Dove Più S'apre....O Faticida Foresta"[23]
랭스의
생 드니 대성당에서 백성들과 귀족들이 카를로의 대관식을 준비하고 프랑스를 승리로 이끈 조반나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성당 밖에는 조반나의 아버지 쟈코모가 이를 지켜보며 하늘을 대신해 딸을 정죄시킬 작정이다.(바리톤 아리아 "Ecco Il Luogo....Speme Al Vecchio Era Una Figlia") 대관식을 마친 카를로와 조반나가 성당에서 같이 나온다. 조반나가 왕의 사랑을 거부하려는 찰나, 아버지 쟈코모가 나타나 조반나를 부정한 여인이라고 비난하면서 정죄하라고 외친다. 카를로가 조반나를 변호하지만 조반나는 어떠한 희망도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는 천둥번개가 치고, 두려움에 싸인 백성들도 조반나를 마녀라고 믿고 그녀를 비난한다. 카를로 역시 자신의 안전을 위해 조반나를 비난하면서 궁지에 몰아넣고, 쟈코모는 조반나의 영혼을 구원하는 방법은 화형밖에 없다고 얘기하며 딸을 영국군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간다. 아버지의 지나친 망상 때문에 죄없는 딸만 피해를 보는 유형의 예.
바리톤 셰릴 밀른스가 부르는 "Ecco Il Luogo....Speme Al Vecchio Era Una Figlia"
전장의 영국군 요새에서 보초병들이 프랑스군이 공격해 왔다고 보고한다. 조반나는 영국군의 포로로 잡혀있으며 사슬에 묶여 있다. 그녀는 화형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으며 하늘의 도움을 받아 전쟁에 나가 승리했던 날들을 추억한다. 조반나는 다시 프랑스군과 함께 싸워 조국을 구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남아있게 해달라며 간절히 기도한다. 이를 지켜본 쟈코모는 자신이 딸을 오해했음을 깨닫고는 그녀가 묶인 사슬을 풀어준 다음 딸에게 갑옷과 칼을 되돌려주고, 조반나는 다시 한 번 전장에 나가게 된다.(소프라노와 바리톤의 이중창 "A Lui Pensa!...Amai, Ma Un Solo Istante") 조반나가 이끄는 프랑스군은 또다시 승리하고 위기에 처했던 카를로도 구출된다. 승리한 프랑스군과 카를로는 요새로 개선해서 들어오고 쟈코모는 국왕 앞에서 자신을 벌해달라고 요청하나 카를로는 조반나의 요청을 떠올리며 그를 용서한다. 이윽고, 델릴이 나타나 조반나가 전사했음을 통보한다. 조반나의 시신이 운반되자 모두가 슬퍼한다. 그러자, 갑자기 빈사상태의 조반나가 눈을 뜨자 동레미 숲에서 봤던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보인다고 얘기하면서 군기를 든다. 서서히 죽어가는 조반나의 얼굴에 하늘에서는 광채가 비치고 천사들의 구원에 이르는 축복의 소리가 들린다.
조반나와 쟈코모의 이중창을 부르는 "A Lui Pensa!...Amai, Ma Un Solo Istante".
몽셰라 카바예와
셰릴 밀른스가 부르는 "A Lui Pensa!...Amai, Ma Un Solo Istante". 오페라 전곡반의 일부분으로 쟈코모가 비로소 오해를 푸는 장면만 올려져 있다.
조반나 다르코의 마지막 장면. 조반나 역의 수잔 던, 카를로 역의 빈센초 라 스콜라, 쟈코모역의
레나토 브루손. 화질이 DVD에 비해 매우 좋지 않고 무대 장치나 복장 디자인이 고증을 반영하지 않고 대충 만든 느낌이지만 장면 상황이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중요한 영상이다.
베르디 작품 중에서 워낙 비인기작이다 보니 음반이나 영상물이
나부코나
리골레토나
일 트로바토레나
라 트라비아타나
아이다처럼 음반이나 영상물이 많지 않은 편이다. 나무위키에서는 여태까지 나온 조반나 다르코의 전곡반과 영상물, 그리고 작중에 나온 아리아가 소개된 음반을 소개하겠다.
전곡반
1951년 RAI 방송 녹음
레나타 테발디[24]가 조반나,
카를로 베르곤지가 카를로 7세, 롤란도 파네라이가 쟈코모 역을 맡은 RAI 방송 녹음이다. 그 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조반나 다르코를 연주했다는 점과 최초로 나온 조반나 다르코의 전곡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음반이다.[25] 지휘는 알프레도 시모네토가 맡았으며 RAI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담당하고 있으나, 요즘 시점에서 듣기에는 반주 템포가 느려서 몰입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조반나 역을 맡았던 레나타 테발디는 당시 전성기 누리기 시작했던 시점이라 목소리가 1960년대 중반에서 나타난 이상 현상과는 다르게 맑고 투명한 가창을 들려준다.[26] 최전성기 시절의 테발디가 노래를 하고 있다는 강점은 있지만 테발디의 가창은 벨 칸토 창법이 아닌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행했던 멜로키 창법[27]에 가깝기 때문에 소리는 강하게 뻗으면서도 메싸 디 보체(Messa di voce)[28]로 처리해야 하는 부분을 딱딱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첫 번째 아리아 "Oh, ben s'addice... Sempre all'alba"에서 멜리즈마가 나오는 부분을 너무 강하게만 밀어서 부르는 바람에 레가토가 약간 뭉개진다는 점도 지적된다.[29] 대신, 조반나가 감옥에 갇히면서 아버지 쟈코모 앞에서 자신의 진실을 말하는 장면과 쟈코모와 조반나의 이중창 부분에선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준다. 거기다 이 RAI 방송 연주를 계기로 테발디가 이탈리아, 프랑스에 가서 조반나 다르코 실제 공연을 했었으니 테발디로썬 나름 의미있는 연주라고 볼 수 있다. 카를로 7세를 맡은 카를로 베르곤지는 이때가 테너로써의 커리어를 시작했던 시기라 목소리가 완전히 트이진 않았지만 모범적인 발성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으며, 롤란도 파네라이의 쟈코모는 평범하다는 평이 많다.[30]
방송용 녹음이지만 음질이 굉장히 좋지 않으며[31] 이 때문에 최초로 나온 조반나 다르코 전곡임에도 입문용으로 듣기엔 무리가 있는 음반이다. 아래에 소개되는
EMI 스튜디오 녹음과
도이치 그라모폰의 콘서트 실황, 그리고 조반나 다르코의 영상물 2개를 감상 하고나서 들어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MI에서 제작된 스튜디오 전곡반으로 조반나 다르코 전곡으로썬 최초의 스튜디오 녹음이다. 워낙 인기가 없어서 아직까진 이 음반이 유일하게 스튜디오 전곡이다.
몽셰라 카바예가 조반나,
플라시도 도밍고가 카를로 7세,
셰릴 밀른스[33]가 쟈코모로 캐스팅 된 음반이니 실황무대에서 나왔으면 올 드림스타 캐스트라고 불릴 만큼의 초호화 캐스팅이다. 거기다
제임스 러바인이 지휘까지 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밀른스의 경우 커리어 초기에 실제 무대에서 쟈코모역을 몇 번 맡은 경력이 좋은 노래를 들려줌과 동시에 노련한 목소리 연기를 들려주고, 카바예는 이 당시 전성기를 막 달려가고 있던 때라 목소리가 좋은데다 가창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고, 특유의 메싸 디 보체 스킬도 과감하게 보여준다.[34] 도밍고의 카를로 7세는 무대에서 잘 맡은 역이 아니라서
오텔로나
일 트로바토레의 만리코,
삼손과 데릴라의 삼손이나
토스카의 마리오 카바라도시에 비하면 도밍고 만의 진가가 확 살진 않은데다 아직까진 고음의 안정화가 되지 않은 시기라서[35] 카를로 7세의 아리아 끝부분에 나오는 고음 카덴짜에서 도밍고의 가창 약점이 살짝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전반적으로 괜찮고 러바인의 지휘도 요즘 세대들이 들어봐도 지루하지가 않은 템포로 오케스트라를 잘 리드한다. 조반나 다르코를 음악 감상으로 입문하기 딱 좋은 음반으로 음질도 1971년에 출시된 음반 치고는 나쁘지 않다. 이 음반은 EMI Opera 시리즈로 재발매 되었다.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출시된 2013년 짤츠부르크 페스티벌 콘서트 실황 음반
2013년
짤츠부르크 페스티벌 콘서트 실황으로 가장 근래에 나온 조반나 다르코 전곡 음반이다. 여기서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바리톤역 쟈코모을 맡아서 노래를 불렀으며, 러시아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조반나 다르코, 이탈리아의 테너
프란체스코 멜리가 카를로 7세로 캐스팅 되었다. 이 짤츠 실황은 안나 네트렙코의 조반나 데뷔[36]로 화제가 되었으며 플라시도 도밍고는 물론이고, 멜리[37]까지 나왔으니 역시 올 스타 캐스팅. 오페라 실황이 아닌 콘서트 방식 실황이라 가수들의 연기나 오페라의 실제 장면을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고, 콘서트 실황음반으로만 나와서 아쉬움을 많이 남긴 음반이지만[38] 멜리가 고음[39]에서 심하게 조여드는 현상이랑 파올로 카리냐니의 지휘가 무난하지만 EMI의 제임스 레바인 전곡반보다 박력이 약하다던가, 도밍고의 음색이 여전히 바리톤이 아닌 테리톤 이라던가, 네트렙코의 벨칸토 스럽지 않은 창법에 호불호가 갈린다라는 평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40] 전반적으로 괜찮은 편에 속하는 연주이다. 이 콘서트 음반은 성악적 관점이 아닌 연극성 관점에서 보면 괜찮은 편이며 네트렙코가 조반나를 맡은거랑
시몬 보카네그라와
나부코랑 마찬가지로 플라시도 도밍고의 바리톤 역을 노래한다는 점, 그리고 가장 근래에 나온 조반나 다르코 전곡이라는 점에서 의미도 있다. 실황 음반치고는 음질도 스튜디오 녹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만큼 매우 좋다. 위에 테발디가 나오는 RAI 방송용 음반의 열악한 음질에 비하면 훨씬 낫다!
서곡이나 아리아가 수록된 음반
영상물
영상물은 현재까지 2가지 정도만 나와있다.
1989년 볼로냐 시립극장(Comunale di Bologna)실황
최초로 나온 조반나 다르코 영상물로 밑에 소개한 2008년 파르마 극장 실황물이 나오기 전에는 이 영상물이 유일한 조반나 다르코 실황영상 이였다.
시칠리아 섬의 만종에 출연했던 수잔 던이 이 영상물에서는 조반나 역을 맡고, 빈센초 라 스콜라[41]가 카를로 7세,
레나토 브루손이 쟈코모로 출연하였으며
리카르도 샤이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수잔 던은 이 시기엔 아직 전성기라 좋은 노래를 들려주지만 이 실황 전에 공연했던 시칠리아 만종보단 약간 피로가 쌓인 기미가 보이며 노래에 집중 하느라 연기가 많이 뻣뻣한 느낌도 없잖다.[42] 빈센초 라 스콜라는 쭉쭉 뻗는 목소리를 들려주지만 듣는이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으며[43] 브루손의 노래는 밑에 파르마 실황보단 목소리가 젊고 좋지만 역시 연기에서 뻣뻣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실황이다. 더 혹평을 받는 부분이라면 무대의상 디자인과 연출인데, 연출의 경우는 이 당시 오페라 연출들이 지금처럼 움직임이 많지 않아도 성공 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는 것을 감안해야지 비교적 볼만하다. 대신 무대 의상과 고증은 이 영상물에선 따지지 않은 것이 좋다.[44] 이 당시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던 때라 고증 따지는거 없었기도 했고, 이 당시 오페라 무대의 성공은 오로지 가수들의 억량과 쭉쭉 뻗어나가는 창법을 들려주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샤이의 지휘는 나쁘지 않으며 최초로 나온 조반나 다르코 영상물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자.
2008년 파르마 극장 실황
[1]
단, 오페라의 내용이 실러의 희곡과는 차이점이 있다. 아래에 서술할 항목을 참조.
[2]
사실
돈 카를로스가 그랬듯이 실러의 희곡 오를레랑의 처녀가 훨씬
드림소설에 가깝다. 오페라의 주요인물은 실존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실러의 희곡은 거의 분위기가
로미오와 줄리엣이기 때문. 하지만 오페라도 캐릭터들이 실존인물의 이름을 따온 별개의 인물에 가까우니 거의 드림설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3]
오베르토 이전에 로체스테르(Rocester)라는 단편 오페라를 작곡한 적이 있으나 악보가 분실되어 오늘날 연주가 되어지고 있기 않기에 오베르토를 베르디의 첫 번째 오페라로 분류하고 있다.
[4]
이러한 베르디의 애국적 색체는
오텔로에 들어가서 옅어지게 된다.
[5]
시공디스커버리에서 나온 알랭 뒤오의 "베르디 : 음악과 극의 만남"에서는 이 시기를 베르디의 호된 노역의 시기라고 적었다.(P.28)
[6]
나부코의 초연장소가 밀라노 라 스칼라 였기 때문.
[7]
나부코는 성경 내용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이고, 에르나니는
빅토르 위고 원작이다.
[8]
오페라 대본가이며 작곡가. 작곡가보단 베르디 초기 오페라 대본가로써 더 유명하며 오베르토, 나부코, 롬바르디아인들, 조반나 다르코의 대본을 담당했다. 베르디의 9번째 작품
아틸라도 원래는 이 사람을 대본을 쓸 예정이었으나 베르디와의 불화로 이후 협력하지 않았으며
아틸라는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가 대신 대본담당을 하게 된다. 테미스토클레 솔레라가 맡은 대본은 전반적으로 숭고하고 애국적인 분위기를 쓰려고 노력하지만 뜬금없는 장면이 많다는 평이 대다수이고, 이 때문에 베르디 초기작 오베르토랑 나부코랑 조반나 다르코가 내용면에서 너무 작위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9]
이러한 메릴리의 행동은 작곡가의 의도를 무시한 것 뿐만 아니라, 원래 악보의 내용을 훼손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이다.
[10]
일설에서는 라 스칼라 극장주 메릴리가 조반나 다르코의 저작권을 자신이 차지하겠다는 속셈 때문에 베르디가 상당히 빡쳤다는 것과 나부코에서 아비가일레 초연 가수였던 주세페 스테르포니가 메릴리의 정부였기 때문에 당시 스테르포니한테 반한 상태였던 베르디의 아주 개인적인 감정이 섞여서 메릴리와 싸우고 라 스칼라와 한 동안 절교했다는 설이 있다. 거기다 당시 베르디는 아직까진 홀아비 신세였기에 메릴리랑 사귀는 스테르포니한테서
솔로천국 커플지옥을 기분으로 느꼈을 가능성도 높다(...)
[11]
쉽게 말하면 나부코 이후 발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면서 소재 역시 진부했다는 의미.
[12]
역사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보면 조반나 다르코의 대본이 역사왜곡으로 보일 수도 있고, 위에서도 서술했듯이
드림소설에 가까운 내용이기 때문에 이런 쪽을 싫어하는 이들에겐 거슬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13]
이 작품이 만들어졌을 무렵에는 아직
벨 칸토 작풍이 남아있던 시절이라 대본보다 음악이 선두주자나 마찬가지였다.
[14]
1951년 RAI 방송 연주는 음반으로 나와있으며 레나타 테발디가 조반나 다르코,
카를로 베르곤지가 카를로 7세, 롤란도 파네라이가 쟈코모 목소리를 담당했다. 이 음반은
유튜브로 풀버젼이 나와있으나 밑에 음반 소개에도 적듯이 음질이 심하게 좋지 않으므로 주의!
여기서 감상하자!
[15]
이 음반은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실황음반으로 나와있다. 밑에 서술한 내용 참조.
[16]
일본 실황은
유튜브에서 하일라이트 형식으로 볼 수 있다.
[17]
안나 네트렙코의 경우 2013년에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내놓은 베르디 아리아집에 조반나의 아리아 O fatidica foresta를 수록했다.
[18]
하나는 수잔 던이 나오는 1989년 볼로냐 극장에서, 또 하나는 바실레바가 나오는 2008년 10월 파르마 레조 극장 공연 실황에서.
[19]
베르디의 작품은 대부분 남성 가수를 위시해서 작곡한 것들이 많다. ‘임금님의 하루’, ‘에르나니’, ‘루이자 밀러’, ‘맥베스’, '가면 무도회'만 봐도 바리톤이나 테너가 타이틀롤을 맡은 것들이다. 물론,
아틸라처럼 베이스가 타이틀롤을 담당하는 것도 있다. ‘나부코’의 경우 주세피나 스테르포니를 주연으로 기용하기 위해 작곡한 것이지만 프리마 돈나를 위한 오페라는 아니다.
[20]
테너 중에서 리리코나 스핀토 테너들이 주로 맡는다. 1막부터 카바티나와 카발레타를 부르기 때문에 멜리즈마랑 레가토가 가능한 테너가 맡는 것이 효과적이다.
[21]
소프라노 영역 중에서도 리리코나 리리코 스핀토 배역이다. 푸치니나 베리즈모 오페라를 주로 맡았던 가수보다는 벨 칸토 오페라를 주로 맡은 가수가 맡는 것이 적격이다.
[22]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출연했던 밀라노 라 스칼라
아이다 공연실황에서 타이틀롤 역할을 맡았었다.
[23]
보통 소프라노들이 이 오페라에서 조반나의 아리아를 부를 때 첫 번째 아리아보다 2번째 아리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첫 번째 아리아가 기교를 좀 요구한다면 "O Faticida Foresta"는 레치타티보 부분에서 약간 극적인 느낌을 주고 아리아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노래를 끝마칠때까지 서정적인 분위기로 진행되는 때문에 성악도들이 부르기에는 조반나의 2번째 아리아가 좀 더 쉬운 편이기 때문이다.
[24]
마리아 칼라스의 라이벌 이라고 불렸던 그 테발디가 맞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찬사했던 만큼 당시 이탈리아를 대표했던 소프라노 였으나
마리아 칼라스의 등장으로 미국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25]
RAI 음반은 실황이 아니며, 그렇다고 스튜디오 녹음도 아니다. RAI 방송 녹음이니 방송용 녹음이라고 봐야한다. 단, 실황이 아니든 스튜디오 음반이 아니든 이 음반이 최초로 나온 조반나 다르코의 전곡 연주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26]
테발디의 전성기는 1940년대 후반에 토스카니니에게서 발탁되면서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 중반에
라 보엠과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공연 도중에 목소리의 이상이 생기면서 쇠퇴기가 찾아왔다.
[27]
마리오 델 모나코가 아르투로 멜로키한테서 전수받은 창법으로 후두를 누르면서 강하게 내뱉는 창법을 말한다. 소리를 강하게 내뽑을 수 있다는 점과 남자성악가 같은 경우 마초적인 느낌을 표현하기엔 강점을 줄 수 있으나 멜리즈마와 레가토가 고르지 못하고 고음에서 심하게 밀어버리는 경향이 있어 듣는이에 따라 고음에서 조이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호불호가 굉장히 갈리는 창법이다. 이 창법을 소화 할 수 있는 성악가는 마리오 델 모나코가 대표적이며 레나타 테발디도 참여작 중에선 벨 칸토 작품보다 푸치니나 베르디 후기 작품에서 주로 맡았고 고음에서 너무 밀어부치기 때문에 벨 칸토 보다는 멜로키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덧붙이자면 멜로키 창법은 성악 생명의 전성기가 짧은 것이 치명적인데 이 창법을 고집하다가 목소리의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성악을 공부할때 한국 성악가들이 멜로키 창법은 거의 금기로 지정하면서 성악도들에게 벨 칸토 창법 위주로 성악도들을 가르치고 있다.
[28]
소리를 여리게 하면서 아름답게 처리하는 방법으로
몽셰라 카바예의 특기이기도 했다.
[29]
이 부분 때문에
레나타 테발디가 칼라스의 라이벌 이라고 불렸으면서도 칼라스한테서 밀리게 된 요소중에 하나이다. 칼라스는 음색이 아름답지 않지만 벨 칸토 창법을 사용했던 가수였기 때문에 레가토와 멜리즈마가 나오는 부분을 부드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더 큰 이유는 테발디는 베르디 후기 작품이나 푸치니 작품이나 베리즈모 오페라에서 지정선을 두었고, 칼라스는
노르마와
청교도와
루치아를 비롯한 그 전에 잊혀졌던 벨 칸토 오페라를 불을 부친 것이나 마찬가지 였기 때문에 당시 오페라 관객들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 캐릭터 해석에서도 테발디는 가창에 중점을 둔 반면, 칼라스는 그 캐릭터의 몰입하면서 연기했다는 점에서도 테발디가 칼라스에게 밀리게 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30]
롤란도 파네라이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고
마리아 칼라스가 참여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실황과
일 트로바토레 음반에서도 평범하고 약한 노래를 들려준다는 지적이 많은 편이다. 여담으로, 파네라이가 활약했던 시대는
레너드 워렌,
티토 곱비,
에토레 바스티아니니,
로버트 메릴같은 전설적인 바리톤들이 즐비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더더욱 비교를 많이 당했던 편.
[31]
어느 정도냐면
마리아 칼라스의
라 트라비아타 라 스칼라 실황 음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거기다 테발디의 조반나 다르코 음반은 방송용 녹음임에도 음파도 고르지 못하며 잡음이 살짝 나오기도 한다.
[32]
제일 구하기 쉬우나 성악가들과 지휘자 러바인의 사진, 리브레토가 없다
[33]
셰릴 밀른스가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살짝 낮은 편이기도 하고, 전통 이탈리아 창법을 배우는 성악가들과 성악도들한테는 모범적인 발성이 아니라고 까이기도 하지만, 당시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스타 바리톤이나 마찬가지인 성악가였다. 발성에서는 비록 전통 벨 칸토 창법을 선호하는 성악가들한테 까이지만 무대 연기에서는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쌍을 이룬 오페라 배우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기력과 음악성이 뛰어났다. 요즘 성악가로 치면
토마스 햄슨이나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랑 비슷한 평과 인지도의 성악가로 볼 수 있다. 의외로 영어권쪽 오페라 팬들은
피에로 카푸칠리나
레나토 브루손이나
레오 누치 보다 셰릴 밀른스처럼 연극성을 타고난 성악가를 더 선호하기도 한다. 사실 카푸칠리나 브루손 같은 이탈리아 성악가들은 발성은 뛰어난데 연기에 어색한 사람들이라는 평도 만만찮게 많다. 아니, 원래 이탈리아 성악가들이 발성에 너무 신경 쓴다고 연기를 뻗뻗하게 하거나 어색하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랑
카를로 베르곤치를 보라.
[34]
비록 카바예가 콘서트에서 조반나 다르코 아리아만 불러서 음악적 해석이 살짝 미숙하다는 평이 있다고 해도...
[35]
사실 도밍고는 원래부터 고음쪽이 약한 것은 유명하고 거의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전통 벨 칸토 창법 성악가들이나 고음 선호하는 오페라 팬들한테 까이는 요소. 하지만 실상은 도밍고의 연기력과 비주얼 때문에 팬들이 더 많답니다.
[36]
비록 오페라 무대가 아닌 콘서트 실황 데뷔지만, 전곡을 불러서 노래했으니 데뷔라고도 볼 수 있다.
[37]
마리엘라 데비아가 나온 2008년 밀라노 라 스칼라
마리아 스투아르다 실황이랑 안나 네트렙코가 출연한 2011년 빈 국립 극장
안나 볼레나 실황에 출연했던 그 테너이다.
[38]
외국의 어느 네트렙코 팬은 콘서트 실황 사진만 보고 설렜는데 막상 출시된것은 영상물이 아닌 음반이라서 상당히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39]
멜리는 전형적인 리릭 테너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고음에서도 혹평을 받기도 하고 간혹 실제 공연에서 박자를 강탈하는 경우가 많은데 2014년
짤츠부르크 페스티벌
일 트로바토레 공연 1막에서 박자 미스를 하고 말았다.
[40]
네트렙코도 비쥬얼과 연기에서는 굉장히 뛰어난 오페라 배우지만 음반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평을 받는다. 러시아 성악가들 특유의 후두를 누르고 밀어부치는 멜로키에 가까운 창법때문에 벨 칸토 오페라에서는 음정이 떨어지거나 멜리즈마 나오는 부분이 많이 무너진다고 한다.[45] 이 점에서
마리아 칼라스와
조운 서덜랜드,
몽셰라 카바예,
마리엘라 데비아,
에디타 그루베로바와 같은 과거의 대가들이나 벨 칸토와 로시니를 주로 맡는
디아나 담라우와 많이 비교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네트렙코 목소리 자체는 베르디 중후기 오페라나 러시아 오페라나 베리즈모에 더 어울린다는 얘기도 상당수 나온다. 이 부분에 대해선 청취자가 듣고 판단할 것.
[41]
2003년 도쿄 노르마 실황, 2006년 노르마 실황 폴리오네로 나왔던 테너이다.
[42]
오페라에서 비쥬얼과 연기를 따지게 된 건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지만, 안나 네트렙코가 출연한 2005년 짤츠부르크 페스티벌
라 트라비아타 실황이 나오면서 비쥬얼과 연기를 더욱 중시하기 시작하게 된다. 즉, 1989년 조반나 다르코 볼로냐 극장 실황 당시엔 연기에 중요점 보단 아직까진 노래만으로도 승부수를 걸었던 때였으니 수잔 던을 비롯한 다른 가수들의 연기가 뻣뻣하게 나오는 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43]
라 스콜라가 출연한 실황은 스콜라의 노래 스타일 때문에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편. 특히 파바로티나 플로레스처럼 고음에 시원한 느낌을 주는 테너나 프랑코 코렐리처럼 드라마틱한 음성을 가진 테너나 도밍고나 카우프만 같은 연기파 목소리를 선호하는 이들에겐 무매력으로 받아들여 지기도 한다. 거기다 라 스콜라는 고음에 가서 살짝 쥐어짜는 느낌도 있어 답답한 느낌을 줄 때도 있다.
[44]
볼로냐 실황의 캐릭터들 의상은 백년전쟁 당시의 잔 다르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목동들 같은 의상이다. 허나, 병사들을 보면
백년전쟁 당시의 병사들 옷이랑 근접해 있다. 즉, 아리까리한 고증 반영 또는 고증을 그다지 인식하지 않은 결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