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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현(1991)/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정대현(1991)

1. 개요2. 두산 베어스 시절
2.1. 2010 ~ 2011 시즌2.2. 2012 시즌2.3. 2013 시즌2.4. 2014 시즌
3. kt wiz 시절
3.1. 2015 시즌3.2. 2016 시즌3.3. 2017 시즌
4. 키움 히어로즈 시절
4.1. 2017 시즌4.2. 2020 시즌

1. 개요

정대현(1991)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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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두산 베어스|두산 베어스]] 시절.}}}

2.1. 2010 ~ 2011 시즌

2010년 3라운드(전체 2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전통적으로 왼손 투수 문제 때문에 골치를 썩던 두산 베어스에서 기대를 걸었던 유망주 중 한 명. 마운드에서 대담하고, 침착한 성격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변화구 구사도 수준급인데, 문제는 구속. 빠른 공의 스피드가 나오지 않는 편이라서 1군 데뷔가 다소 늦어졌다.

2010년에 데뷔해서 중간계투로 간간히 1군 무대에 이름을 올렸고, 2012년에는 5선발 경쟁도 벌이기도 했지만, 결국 5선발 대신 롱 릴리프로 자주 나왔다. 위기 상황에는 이혜천이 나왔고, 정대현은 주로 팀이 뒤지거나 큰 점수차가 났을 때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2.2. 2012 시즌

5월 15일 잠실 한화전에서 선발 투수 서동환이 5실점하고 무너지자 팀이 스코어 5:0으로 지던 2회초 2사 2루에 등판하였다. 최진행에게 1타점 2루타를 맞고 이대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여 거하게 불을 지르나 했지만 양성우를 우익수 플라이로 잡고 완벽한 분식회계에 성공했다. 그후 6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4⅓이닝 71투구수 1피안타 3볼넷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한화 수비진의 에러를 틈타 스코어 6:0으로 지던 경기를 6:11로 대역전하고 결국 8:11로 이기면서 생애 첫 승리를 얻었다. 해당 경기를 바탕으로 임시선발 기회를 얻을 것이라는 평이 생겼으며, 바로 그 주 토요일인 5월 19일 LG 트윈스와의 홈 경기의 선발투수로 나왔다.[1] 4⅓이닝 4실점을 하고 노경은과 교체가 되었는데 4실점은 3회 최동수에게 맞은 3점 홈런, 4회 박용택에게 맞은 1점 홈런이었으며, 홈런 허용 빼고는 비교적 나쁘지 않은 피칭을 보였으나 타선이 상대 선발 레다메스 리즈에게 꽁꽁 묶여 1점도 내지 못하여 첫 선발 등판에서 패전투수가 된다. 그러고 임태훈이 다시 1군에 복귀하며 불펜으로 다시 돌아갔고 5월 말에 임태훈의 말소로 다시 한번 선발기회를 잡을 것으로 보였으나, 대체 선발은 노경은으로 낙점이 되어 계속 불펜으로 활약한다.그러고 노경은은 평생에 잊지 못할 시즌을 만드는 활약을 하게 된다. 그러고 최종전인 10월 6일 다시한번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등판하여 3이닝 1실점으로 비교적 준수하게 피칭을 하였고 이때도 레다메스 리즈와의 맞대결이었으나 타선이 점수를 내지 못하여 패전투수가 되고 만다.

2.3. 2013 시즌

2013년 5월 12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홈 경기에 3회도 못 마치고 5실점 5자책을 찍은 선발 김상현을 구원하여 마운드에 올라와 3회는 어찌 끝냈지만, 4회초에 7실점, 5회 1사까지 4실점 3자책점을 기록하면서 1⅔이닝 11실점 10자책점으로 마운드에 제대로 핵을 투하하고 말았다. 결국 이날 두산 베어스는 스코어 17:5로 완전히 털렸다. NC 창단 이후 최다안타, 최다득점, 최다 득실차 기록과 두산의 2013 시즌 최다실점, 최다 득실차 및 최다피안타, 최다 자책점 기록은 덤 결국 2군으로 강등당한 뒤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이 끝나갈 무렵 고양 원더스의 홈인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 2군과 동아시아경기대회 야구 국가대표팀과의 연습경기 때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갓 제대한 1루수 김강 서진용을 상대로 홈런을 치고 정대현과 함께 더그아웃에서 하이파이브하는 모습이 잡혔다.[2]

2.4. 2014 시즌

2월 16일 자체 청백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2월 20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연습경기에선 4이닝 4피안타 1실점으로 또 호투했다. 2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2군과의 연습경기에선 선발로 등판해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내며 아주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고 구속이 140km/h도 안 되지만 어째 이 팀 좌완은 흑마구가 종특인가? 볼넷은 주지 않았다. 연습경기만 따지만 11이닝 1실점, 엄청난 발전을 보였다. 그리고, 두산 베어스 2014 스프링캠프의 투수부문 미스터 미야자키(...)에 선정되었다. 정미미

하지만 3월 3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개막 2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4:1로 지던 5회초 무사 1, 3루 상황에서 선발 투수 노경은을 구원하기 위해 등판했지만, 잡으라는 타자는 안 잡고 5번타자 큰 이병규와 다음 타자 작은 이병규에게 연달아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여 밀어내기로 실점하더니, 7번타자 손주인에게 1타점 적시타를 맞고 최병욱으로 교체되었다. 최병욱이 9번타자 권용관에게 희생플라이, 2번타자 이진영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정대현의 주자를 모조리 홈에 불러들인 것도 모자라 자기도 망하면서, 정대현은 이날 0이닝 1피안타 2볼넷 3실점 3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4:4로 대패했다.

결국 이 날의 부진으로 정대현은 3월 31일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5월 8일 선발로 출장 2⅓이닝 4실점을 기록하며 승패 없이 물러났다. 팀은 15득점으로 승리 하였고 정대현에게 기회를 더 줄것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5월 14일 SK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5이닝 2실점, 하지만 엄청난 점수 지원으로 프로 첫 선발승을 달성한다. 5월 14일 경기는 정대현과 이재우의 5선발 후보의 시험장 이었는데 둘 다 잘 던져서 누가 5선발로 발탁될 지 오리무중이 되었다.

하지만 이후 선발로도 중계로도 털리는 모습만 보여 주며 좋지 못했다. 일단 시즌이 끝난 시점에서 경찰청 입대를 신청한 상태였으나 탈락했다. 그러나 이미 합격한 정병곤이 서류상의 문제로 합격이 취소되면서 정대현이 대신 경찰청에 합류하게 됐다.

3. kt wiz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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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kt wiz|kt wiz]] 시절.}}}
2014년 11월 28일 kt wiz의 전력보강 선수로 지명되어 이적하게 됐다.[3] kt는 면담을 거쳐서 정대현의 입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고, 면담 끝에 군 입대를 연기했다고 한다.[4] 2014년 12월 4일이 경찰청 입대자들의 입소일인데, 같은 날 kt wiz에 새로 입단한 선수들이 조범현 감독과 상견례를 가지는 자리에 정대현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군 입대 연기는 기정사실화됐다.

3.1. 2015 시즌

3월 28일 개막전에 선발 필 어윈의 뒤를 이어 등판해 공 5개만에 박종윤에게 역전 쓰리런을 허용하며 이 날의 패전 투수이자 kt의 역사적인 첫 패전 투수가 되었다(...).

5월 28일 잠실 LG전에서 7이닝 9K 무실점으로 개인 최다 이닝, 탈삼진 기록을 갈아치우며 시즌 1승을 따냈다. 이는 본인의 380일 만의 선발승이다.

6월 3일 수원 SK전에서도 7이닝을 소화하며 7피안타 2K 2실점으로 시즌 2승을 올렸다. 100km 대의 느린 커브가 일품.

6월 9일 사직 롯데전에도 5이닝 2실점 (1자책점)을 기록하며 3연승을 기록. kt 토종 에이스로 키워 질듯 하다.

6월 15일 기준으로 56.1이닝, 3.04로 털려서 조기강판을 많이 당했단 이미지랑 달리 의외로 성적이 꽤나 준수하다. 물론 이닝은 여타 선발 투수들에 비해 부족하지만 점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6월 16일 수원 NC전에서 7이닝 2실점을 기록하여 호투했지만 동점인 상황에서 강판되 승리와는 인연이 없었다. 팀은 8회말 1점 득점후 장시환이 등판했지만 9회초에 동점을 허용하며 블론세이브를 기록했고 곧바로 9회말에 임창민을 상대로 앤디 마르테가 희생 플라이를 만들어내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팀 창단 역사상 첫 끝내기 승리.

8월 26일 경기에서 김종민과 배터리를 이뤄 1회에만 폭투 4번이라는 타이 기록[5] 을 작성한 끝에 홈런 2방을 맞고 3 ⅔이닝 7실점으로 탈탈 털렸다. 사실 서술이 없었을 뿐이지 후반기 이후로 조기강판이 부쩍 늘고 5이닝 이상을 소화해도 제구 때문에 불안한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었다. 결국 조범현 감독은 다음날 27일에 변화가 없다며 일침을 가하며 2군 선수들과 훈련하도록 2군으로 내려보냈다. 다만 엔트리에서 말소하진 않았다. 이 경기는 3년이 지나서야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에 관련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엠스플 보도에 의하면 15년도 경기 중 한 이닝 폭투 4번 했다는 경기가 검찰에 의해 승부조작 의심을 받았다고 하는데 15년도 프로야구에서 1회초 폭투 4번은 이 경기가 유일하다.

9월 4일 선발로 등판하기 직전에 조범현 감독이 게으른 것 같다는 기사가 났다.

결국 당일에 또 털려 패전투수가 되었다.[6]

조범현 감독이 “2군에 있는 정대현에게는 코치들 중 누구도 손을 못 대도록 했다. ‘ '네가 알아서 스케줄을 짜서 훈련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워크에씩 측면에서 그 동안 못난 모습을 어지간히도 노출한 모양.

9월 24일 다시 1군에 복귀했지만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인다.

10월 5일 팀의 마지막 경기에서 NC를 상대로 8.1이닝 동안 무사사구 1실점하는 역대급 호투를 펼쳤지만 끝내 NC의 중심타선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 점을 더 내주며 팀 첫 토종 완투승 투수 도전에 실패하고 조무근에게 마운드를 넘겼다.(8.1이닝 2실점)

3.2. 2016 시즌

6월 10일, 넥센과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출장했다. 같은 날 광주에서는 동생 정동현이 삼성을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KBO 역사상 최초로 같은 날에 형제가 선발 등판하는 기록을 세웠다. 같은 날 형제 동반 선발승 기록도 눈앞에 두고 있었으나 KT 불펜진이 후속 점수를 허용해 정대현의 승리는 날아가고 말았다. 동생은 삼성 타선을 상대로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를 거둔 것이 위안.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110006005&code=980101 http://www.xportsnews.com/jsports/?ac=article_view&entry_id=733619

8월 19일 경기까지 총 17경기를 등판했는데 최소 5이닝 이상 소화한 경기가 8경기뿐이다. 작년에는 중간에 부진했어도 그래도 가능성이라도 남아있었지만 올해 들어서 투구 내용이 훨씬 나빠진 상태. 나이도 적지 않아 군 입대도 해야 하는게 악재.

8월 19일 수원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1군 복귀전을 가졌으나 1.2이닝 9피안타 9실점(9자책점)으로 무너졌다. 볼넷은 없었지만 투구수 조절을 하지 못하면서 불안한 모습만 보이고 마운드를 정성곤에게 넘겼다. 경기 후 다시 2군으로 내려갔는데 끝모를 부진에 선발진도 무너지고 있어 팬과 코칭스태프의 걱정이 심화되고 있다.

9월 11일 KIA 타이거즈 전에서 8 ⅓이닝 2실점으로 모처럼 호투했지만 9회 고영표 1점 분식을 하고 주자 2명을 남기고 내려간걸 배우열 박경수의 발로차 실책 등으로 2실점 하는 등 9회에만 3실점하며 승리투수는 커녕 오히려 패전을 떠안게 됐다.

9월 17일 두산 베어스 전에서 선발등판하여 1/3이닝 6실점으로 아름답게 털리며 시즌 9패를 쌓았다. 평균 자책점은 7.51로 상승.

9월 25일 기아전에서 5이닝 3실점하는 동안 타선들이 상대 실책을 계기로 득점 지원을 해주었고 계투진들이 그럭저럭 잘 막아주며 시즌 3승을 챙겼고 팀의 2연승을 이끌어냈다. 평균 자책점도 7.28로 하락.
11월 23일 추적60분 승부조작편에 모자이크로 등장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브로커의 일방적인 주장이니 주의할 것

3.3. 2017 시즌

4월 1일 SK와의 개막 3연전에 솩나쌩이라는 자신의 별명에 걸맞게 무사사구 6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sk 저격수 그리고 그 경기는 KBO 역대 23번째 무사사구 경기가 되었다. 무사사구 경기여서 그랬는지 2시간 9분만에 경기가 끝났다.경기시간 단축은 무사사구가 답

4월 8일 삼성과의 홈 경기에 등판해 2연속 선발승을 챙겨갔다. 1대 0 승리는 덤.

4월 14일 LG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등판해 류제국을 상대하게 된다. 결과는 5 ⅓이닝 5실점하며 패전. 히메네스에게 만루 상황에서 싹쓸이 적시타를 맞은 게 치명적이었다.

4월 19일 기사를 보면 두산 시절 코칭스태프 쪽에서도 게으르단 평가를 받았던 듯 하다. 사고를 치는 쪽은 아니었고, 쉬는 시간에 추가훈련을 하기보다 그냥 멍하니 방에만 박혀있던 타입. "너 농땡이냐?" "네." [7]

4월 20일 KIA전에서 4이닝 8실점으로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주권에 이어 정대현까지 무너질 경우 선발진이 다시금 위태로워지는데, 선발 전원 안타를 허용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4월 26일 NC전에서 6이닝 6실점으로 무너져 패전투수가 되었다.

5월 들어 선수들을 거의 질책하지 않는 김진욱 감독도 '초반 반짝 후 부진한 패턴을 버리지 못한다면 절차에 따라 입대시킬 것'이라고 강하게 공개적인 경고를 날렸다. 2일 롯데전에 등판해 초반에 호투했으나 문규현의 12구 볼넷으로 흐름이 깨졌고 5.1이닝 4실점으로 무너졌다. 팀은 송승준에게 8이닝 11K로 영봉패를 당했다. 이제 네가 갈 곳은 2군도 3군도 아닌 6군이다

5월 9일 KIA전에서 양현종과의 맞대결에 기가 죽은 것인지 1회부터 제구 난조를 보였고 2회 5실점 등 5이닝 9실점으로 멸망했다. 김진욱 감독의 투수교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결국 다음날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고 주권이 대신 올라왔다.

5월 25일 대구 삼성전에 고영표에 휴식이 부여되어 선발로 등판했으나 5이닝 6실점으로 죽을 쒔다. 팀이 9회에야 겨우 4점을 따라가는데 그쳐 6패 달성. 자책점도 39점으로 최대패, 최다실점을 찍었다. 김진욱식 공개처형인가 이후 김진욱이 정대현을 너무 믿었다며 앞으로는 팀을 위하는 선수 중심으로 야구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보아 단단히 찍힌 것 같다.

이후 불펜으로 강등.

6월 24일 SK전에서 1.2이닝 1실점으로 팀의 한 점차 패배의 원인을 제공했고 본인도 패전투수가 되었다. 좀 빨리 가라 군대.

4. 키움 히어로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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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키움 히어로즈|넥센-키움 히어로즈]] 시절}}}
KT위즈에서 패전조로도 죽 죽을 쑤다 7월 7일 서의태와 함께 넥센으로 트레이드되었다. 대신 KT로 넘어간 선수는 타석민. 키움 팀 자체가 좌완이 풍족한 팀이 아니라서 [8]트레이드 시도 자체는 나쁘진 않았지만 하필 왜 정대현이였나는 부정적인 여론이 다수. 피지컬이 좋은 서의태가 메인인 트레이드라는 말까지 나오는걸보면 정대현의 위상이 얼마나 떨어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kt wiz의 팬들은 풍악을 울렸다고 한다.[9]

4.1.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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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후 받은 유니폼 들고 찍은 사진.

7월 8일 장영석과 함께 1군에 등록되자마자 바로 경기를 치렀는데, 2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추격조/롱 릴리프로 써먹을 모양.

7월 13일 잠실 두산전에서 7회 등판해 1이닝 8구 무실점을 기록했다.

7월 22일 고척 kt전에서 5회 등판해 2.2이닝 2실점을 기록했고, 유한준의 타구에 오른쪽 팔을 맞는 부상을 당했다. 이 부상 탓인지 24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후 알려진 소식에 의하면 2군에서 선발 수업을 받고 있는 걸로 보이지만, 이적 후 첫 퓨처스 경기인 7월 29일 kt전에서는 2이닝 6피안타 3실점 2자책점으로 시원하게 털렸다. 일단 이 시점에서 금민철원점회귀 부진으로 소속팀 히어로즈의 5선발 자리가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어 정대현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상황이므로 분발이 요구된다.

결국 금민철 대신 8월 3일 SK전 선발 등판이 결정되며, 5강 경쟁팀을 상대로 이적 후 첫 선발 등판이라는 부담스러운 상황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그간 좋지 않은 성적에도 SK 상대로는 굉장히 강했던지라 이 경기는 괜찮지 않겠냐는 기대가 있었고 6이닝 2실점으로 기대에 부응했다. 비록 속구 구속은 130km/h대에서 형성되었지만 볼넷이 전혀 없을 정도로 자신감있는 투구를 펼치며 이적 후 첫승이자 시즌 3승째를 거두었다. 주어진 기회에서 성과를 냈기 때문에 다음 번 선발 로테이션에서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음 날 바로 말소되었다. 부상을 입었다는 얘기도 없으니 노골적인 저격 등판 인증(...).

그러나 대신 선발로 올라왔던 윤영삼이 처참하게 망하면서 다시 선발 기회를 받아 8월 20일 NC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1이닝동안 2피홈런 포함 4실점으로 크게 털렸다. 넥센에 새로 영입되는 투수들은 딴 건 몰라도 NC공포증 하나는 정말 기가막히게 금방 배운다.[10] 그리고 팀은 딱 1점차까지만 쫓아가는 저력을 발휘하며 그대로 패배하는, 올시즌 넥센식 패배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이 없는 소속팀 사정 덕분에 결국 윤영삼과 번갈아가며 5선발 자리에 다시 얼굴을 내밀게 될 듯.

그러나 이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다. 헌데 장정석 감독은 18시즌 선발 후보로 꾸준히 정대현을 거론했고, 정대현 본인도 18시즌 선발 도전 의사를 피력했으나, 마무리캠프에도 참가하지 못하는 등 선수 관리의 허점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 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가비지 이닝을 막아줄 추격조조차 부족해서 최원태 하영민 등 선발진과 롱릴리프들을 갈아먹으면서도 즉전감 추격조어린 금민철로 쓸 수 있었던 투수를 선발 준비시킨다면서 2군 대기시켜놓고 정작 그 선수의 병역 문제조차 제대로 체크하지 않은 것. 프론트가 드래프트와 트레이드를 통해 김선기 이승호 등등 가능성있는 젊은 투수들를 근근히 긁어모은 덕에 당장 정대현의 공백이 아쉬울 일은 없게 되었지만, 어쨌든 2017년부터 급격히 어수선해진 히어로즈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가 되었다.

시즌이 끝나고 2018년부터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익요원으로 복무한다.

4.2. 2020 시즌

군복무를 마치고 제이크 브리검이 팔꿈치 통증으로 빠져 5월 28일 NC 다이노스와의 원정경기에 뜬금없이 선발 투수로 낙점되어 1군 복귀 소식을 알렸다. 문제는 정대현이 퓨처스에서조차 ERA 8점대로 좋지 않았는데 NC의 타율을 감안한다면 이길 가능성은 전무했다. 당연히 키움팬들 사이에서는 이 경기가 사실상 정대현의 마지막 기회가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역시나 2.2이닝 홈런 포함 61구 5피안타 3실점을 기록한 뒤 3회말 2사 1루에서 물러났다. 다행히(?) 상대 선발 김영규가 2이닝 4자책으로 3회초 키움 공격에서 물러나며 정대현은 패전 요건은 갖추지 않게 되었다. 군역으로 인한 긴 공백기 이후 첫 1군 선발 경기를 갖는 걸 감안하면 그럭저럭 던졌다고 볼 수도 있는데 손혁이 그냥 내려버렸다.

이렇게 허무하게 1군 복귀 경기를 마치고 바로 다음날인 5월 29일자로 신재영과 함께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후 1군 호출 자체를 받지 못했다. 퓨처스에선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2020년 9월 말 기준 무승 1패 2홀드, 6점대 ERA를 찍었는데, 어느덧 내년이면 정대현도 만 30세가 된다는 부분을 감안하면 남은 기회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11월 12일 신재영, 김규민 등과 방출되었다. 이미 나이가 충분히 찬 데다 1군에서 주어진 기회도 살리지 못했고 2군에서도 매우 부진한 성적을 찍었으므로 예상대로라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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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지어 해당 날짜의 원래 선발투수는 더스틴 니퍼트의 차례인데 하루 미룬 후 등판이었다. [2] 그 때 정대현과 함께 찍힌 김강은 백넘버 없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당연히 2차 드래프트 때문에 군 보류로 놔뒀겠지...어차피 즉전 아닌 이상 실익이 없었다. 당시 두산 1군 자리도 포화된 상태였고 한화에서 온 선수라며 두산팬들은 김강에게 기대를 하지도 않았다. [3] kt의 20인 외 지명을 최초로 보도한 스포츠서울의 기사에는 오현택이 들어 있었다. 오현택이 정대현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모두 일치한다. 이후 최초 보도의 내용 또한 수정되었다. [4] 하지만 상무의 경우는, 입대를 취소하면 다시 상무에 지원할 수 없다. 그래서 내야수 정현은 그대로 입대한다. 경찰청은 그런 규정이 없다. [5] 같은 팀의 심재민- 이해창 배터리가 당 시즌 6월 2일 먼저 작성한 기록. 팀 기록으로는 2014년 6월 22일 SK가 작성한 이래 3번째. [6] 댓글들을 보면 롯데 정대현과 헷갈리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있다. [7] 두산시절 2군 덕아웃에서 꾸벅꾸벅 졸고있는 모습을 봤다는 일화는 두산 팬이 아닌 사람들도 다 알만큼 유명하다. [8] 밴헤켄은 이미 노쇠했고, 오주원,금민철도 나이가 서른 중반이라 언제 퍼져도 이상하지가 않다. [9] 당장 혀갤과 콱갤의 당일 반응만 봐도 아무리 병살왕이라지만 왜 4번타자를 보냈냐는 침울한 분위기vs.윤석민은 안 터져도 정대현의 영수증 정도로 취급하면 된다는 분위기였다. 윤석민이 워낙 수원에서 극강이기도 했고...윤석민보다 잘 하는 타자가 kt에 몇 없는데? [10] 사실 kt 시절에도 NC 상대로 매우 약했다. 특히 나성범 상대로 2015년 이후 18타수 9안타 2홈런 0.500 호구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