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8-13 18:44:43

전예원

<colbgcolor=#d7dff2><colcolor=#000000> 전예원
全睿媛|Jun Yewon
파일:1Z1K7VMG5P_1.jpg
출생 1974년 10월 10일 ([age(1974-10-10)]세)
파일:서울특별시 휘장.svg 서울특별시 파일:중구(서울특별시) CI.svg 중구
본관 파일:천안, 정선 전씨 종문.svg 정선 전씨 (旌善 全氏)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0cm|54kg| B형
가족 아버지 전은상, 어머니 민희원, 여동생 전예영(1978년생), 매부 최성준(1976년생), 조카 최하루(2004년생), 최하엘(2009년생)
배우자 남편 이도영 (1997년 5월 3일 결혼 ~)
자녀 장녀 이초윤(1998년 7월 1일생([age(1998-07-01)]세))
장남 이지윤(1998년 7월 1일생([age(1998-07-01)]세))
차녀 이아윤(2000년 3월 26일생([age(2000-03-26)]세))
학력 파일:external/www.lila.es.kr/1935510533_DuwZ5rp3_C0CFB7AFB7CEB0ED228429.gif 리라초등학교 (졸업)
파일:예원학교 로고 다크모드.png 예원학교 (성악과 / 졸업)
파일:서울예고 로고 다크모드.png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파일:서울대학교 로고.svg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 / 학사)
줄리어드 스쿨 (성악 / 석사)[1]
종교 천주교 ( 세례명: 마리스텔라)
차량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5세대 아방가르드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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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성악가[2]이자 음악교사.

2. 생애

1974년 10월 10일 서울특별시 중구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슬하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참고로 친할아버지 한의사 출신으로서 몰래 태극기를 만들어 나눠주고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을 본인이 운영하던 약방에 목숨을 걸고 숨겨주거나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故 전현근 지사로, 전예원은 독립운동가 후손이다.

부자면 자식들의 성적에만 목을 매고 보수적인 사상을 주입시키며 키울 것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진보주의인 부모님[3] 슬하에서 엄격하게 예의를 지키는 가정교육을 받은 것 외에는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자유롭게 자랐다.

대한민국 1세대 성악가였던 첫째 이모 민희완의 영향으로 5살 때부터 이모의 음악학원에 다니며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레슨 시작 3달 만에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이더니 10살 때 출전한 금호유소년성악콩쿠르에서 4~6학년 연장자들을 누르고 초등부 대상을 거머쥐며 본격적으로 성악 전공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전예원의 재능을 눈여겨본 큰이모 부부와 달리 부모님은 자유롭게 자란 데다 너무 어린 딸이 힘든 레슨 과정을 못 버틸 것이라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큰 이모에게 힘든 건 시키지 말라는 등 눈치까지 주며 반대하였으나, 전예원이 매일 레슨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힘든 기색 없이 재미있었다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떠드는 모습을 본 뒤로는 아낌없는 지원과 응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 성악과를 모두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여담으로 서울예고 재학 시절 남다른 일화가 있는데, 1학년 2학기에 나오는 과학 수업에 심취하여 전공을 바꾸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이후 단원에서의 수업이 더럽게 재미없어서(..) 없던 얘기로 했다고.그런데 동창인 뮤지컬배우 배지은의 증언에 의하면 그렇게 재미없어 하면서도 과학 시험을 보면 점수가 늘 100점이었다고 한다. 당시 딸의 반응에 의사인 아버지가 굉장히 난감해했다고 한다. 또한 3년 내내 반장을 역임하고 성적도 전교 1,2등을 번갈아 하는 등 얌전한 모범생 이미지였지만 친구들과 담을 넘다가 걸린 적도 있다고..[4]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에 입학했다. 대학교 1학년 때인 1993년 평소 관심 있던 사진 동아리에 입부했는데, 이때 마찬가지로 갓 신입생이었던 현재의 남편을 만났고, 사진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인해 금방 캠퍼스 커플로 발전했다고 한다. 여느 커플들처럼 군대 문제로 헤어질 뻔 하기도 했으나 어찌됐든 곰신 꽃신이 될 때까지 무사히 연애를 이어갔으며 남편은 막 군대를 제대하고 전예원은 대학교를 갓 졸업한[5] 1997년 5월 3일 토요일 신라호텔에서 결혼했다.

결혼 후 1998년 7월 1일에는 이란성 쌍둥이 남매를, 2000년 3월 26일에는 을 출산하며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6] 이후 2000년 6월, 브로드웨이 전용 극장을 통해 성악가 데뷔를 하게 되면서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001년 9월 줄리어드 스쿨 음악학부 성악과(Vocal Arts) 석사 과정에 입학했고,[7] 2005년 5월 Elizabeth Bishop(엘리자베스 비숍) 교수의 사사 아래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논문 유료 열람 사이트에서 평점이 5점 만점에 4.85에 달할 정도로 수작으로 꼽힌다.

이 시기 세 아이들이 모두 뉴욕 주와 같은 북동부 내륙에 붙어있는 코네티컷 주 월링포드에 위치한 명문 사립 보딩스쿨인 초우트 로즈마리 홀에 입학하면서 방학 시즌과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 여유 시간이 생겨 대학원 졸업 후에도 성악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심심함을 달래고자 개인 블로그에 끄적이기 시작했던 글이 미국 영세 출판사 편집자의 눈에 띄면서 원고 집필도 시작했는데, 이 책이 2009년 출간된 〈Hey, Wimpy Kid!〉 동화책 시리즈다. 총 3권으로 완결되었고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처음 해보는 일이 무서운 건 당연하지만 너무 겁 먹을 필요 없이 곁에 있는 가족들을 믿고 원하는 걸 하라"는 내용인데 시리즈 순서대로 첫째딸, 아들, 둘째딸을 위해 썼다고 한다.[8]

3. 여담

  • 미국에서는 뉴욕 주 뉴욕시 맨해튼, 그 중에서도 집값이 어마무시하게 비싸기로 유명한 제일가는 부촌 어퍼 이스트 사이드[9] 중심부에 위치한 5층짜리 초호화 단독주택[10]에 거주하였다. 살았던 집을 미국 부동산 사이트에서 찾아본 결과 2020년 기준으로 시세가 무려 300억원대인 것으로 밝혀져 재력을 조금이나마 가늠케 했다. 이후 2013년 가족 모두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매매하였고, 2014년에 미국 모 과자회사 CEO가 다시금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1]
  • 동료들이 인정하는 공인 선녀로 심성이 매우 곱고 실제 성격이 굉장히 순하고 착하다고 한다. 착하기로 유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전예원은 친구들과 학교 동료들 사이에서 바르고 착하기로 유명하다. 가식으로 꾸며내기도 어려운 수준의 착함을 넘어서 거의 어리버리해 보일 정도로, 부잣집 자제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순박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심지어는 카페라떼를 주문했는데 실수로 카푸치노가 나와도 직원이 난처해할까봐 그냥 마신다는 것이다. 정작 전예원은 이걸 착한 성격이라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천성, 그것도 스스로 약간 불만일 정도이며 게다가 친구들과도 종종 다툴 정도의 피곤한 천성이라고 생각하는 모양. 그 외에도 성악가 시절 동료였던 제인 윈스턴이 한 인터뷰에서 원래 인성이 좋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긍정적이라 화는 내는지 묻기도 했으며, 2008년 전예원의 최초이자 마지막 국내 활동이자 처음이자 마지막 뮤지컬 활동이었던 비틀쥬스에서 베리사 역으로 전예원과 같이 호흡을 맞췄던 뮤지컬배우 윤미라가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했을 때 '예원 선배님은 들었던 미담 보다도 더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참고로 윤미라가 무려 4살이나 어리다.


[1] 석사 논문 : A Study on the Four Mélodies by Franz Liszt by Victor Hugo(공식 번역 : Victor Hugo의 시에 의한 Franz Liszt의 4개의 Mélodie에 관한 연구) (2011년 5월, 지도교수 Elizabeth Bishop) [2] 포지션은 메조 소프라노 드라마티코. [3] 아버지 전은상은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본인 역시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에 투신했고, 어머니 민희원 역시 정권에 반대하며 학생운동에 열심이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만난 계기로 학생운동을 하다 사복경찰에 잡힐 뻔한 것을 서로 숨겨주면서였다고 한다. [4] 참고로 본인 제자들에게 이 얘기를 해주며 "안 들킨 게 있다면 그건 안 들킨 게 아니라 눈감아준 것이다."란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5] 참고로 당시 전예원만 졸업한 상태였고, 남편은 군대에서 막 제대해 2학년 1학기 복학을 기다리고 있던 상태다. 남편이 복학 후 대학교를 졸업한 것은 2000년 2월이라고. [6] 셋째가 레드코튼의 리더 유예다. [7] 남편은 줄리어드 스쿨 인근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교 공과대학원에 입학. [8] 출판 당시 동화책답지 않은 정교한 서술과 포근한 그림체, 무엇보다 "내 아이들을 위해 썼다"는 캐치프레이즈가 흥하면서 나름 판매 사이트 2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현재는 절판되어 책을 구할 수 없는 상태지만, 작가인 전예원이 케이팝 톱걸그룹 레드코튼의 센터인 유예의 어머니인 사실에 관심을 가진 해외 팬들을 필두로 2019년 말부터 과거에 책을 사둔 이들이 중고 서적 사이트에서 해당 동화책을 거래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9] 가십걸에 등장하는 그곳 맞다. 흔히 맨해튼 상류층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대부분은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풍경과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보고 만들어진 이미지다. [10] 말이 단독주택이지 그냥 영화에 자주 나오는 대저택급 외관을 갖추고 있다. 담장이 잔디 마당과 수영장 딸린 집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고 현관문 앞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출입문을 2개나 거쳐야 한다. [11] 대저택이다 보니 정착해 살 때만큼 관리하기도 어렵고 아무래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였기 때문에 아무리 미국 출장이 잦다 해도 팔아버리는 편이 여러모로 나은 선택이었다. 출장 등 급한 용무가 있을 때는 그냥 레지던스를 렌트하면 된다고.근데 뉴욕의 렌트비는 상상을 초월하는데.. [12] 메르세데스-벤츠의 ‘스프린터 벤’을 베이스로 개발된 클래스 B 등급의 캠핑카. 2개의 트윈베드와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 옷장 및 냉장고 그리고 주방과 접이식 식탁, 한 개의 소파 침대와 2대의 캡틴 의자로 구성되어 있고 북미 시판 가격은 미화 121,974불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