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11:13:41

옥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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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소리
Ok So-ri
파일:/pds/200902/18/23/a0113023_499be1981459a.jpg
본명 옥보경
출생 1968년 12월 24일 ([age(1968-12-24)]세)[1]
(정부 직할) 부산시 동구 초량동
(現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본관 의령 옥씨
신체 164㎝, B형[2]
가족 1남 2녀
학력 경원중학교 (졸업)
서초고등학교 (졸업)
종교 가톨릭 ( 세례명: 가브리엘라)
데뷔 1987년 태평양 CF

1. 개요2. 연예인 활동3. 박철과의 이혼 및 간통죄 소송4. 무산된 연예계 복귀5. 이후의 근황6. 출연작
6.1. 드라마6.2. 영화
7. 수상(후보)

[clearfix]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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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전 배우. 본명은 옥보경이다.

2. 연예인 활동

파일:옥소리 리즈2.jpg 파일:옥소리 리즈3.jpg

리즈 시절

1987년 태평양 화장품 광고를 통해 데뷔했고, 이후 배우로 활동했다. 영화로는 구로아리랑, 비 오는 날 수채화, 젊은 날의 초상, 하얀 비요일, 카루나 등에 출연했고, 드라마로는 사랑을 위하여, 인간의 땅, 옥이 이모 등이 대표작. 1996년 영화 카루나에서는 비구니 역을 맡아 긴 머리카락을 눈물과 함께 삭발하는 연기를 하기도 했다.

90년대 활동 당시 옥소리는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했다. 80년대의 대표 미인이었던 선배 여배우 황신혜조차 옥소리를 보고 "내가 유일하게 미모를 인정하는 여배우"라고 했을 정도. 덕분에 옥소리는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의 메인 모델이었고 옥소리(사운드 카드) 광고에도 출연했다.[3]

데뷔초부터 고 최진실과 단짝이었다. 최진실은 옥소리가 출연한 영화 구로아리랑을 보고 배우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영화배우로 활동당시 심혜진, 배종옥,고 최진실등과 함께 기대되는 여배우 4명안에 들었다. (SBS방송)
그도 그럴것이 영화초반 연기한 영화들의 작품들이 꽤 괜찮은 감독( 박종원, 곽재용, 곽지균 감독)과 함께한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고르는 안목과 첫 스타트가 좋은 배우였으나 이후 TV탤런트로 진로를 바꾸면서 연기의 커리어가 발전되지 못했다.
영화배우로써 유지되었다면 아마도 연기파 배우가 되었을 것으로 아쉬움이 많은 대목이다.

데뷔작 구로아리랑에서의 연기는 첫 연기치고는 괜찮았다. 구로공단 여공연기를 잘 소화해냈으며, 상대역은 이경영이었으며, [최민식, 신은경은 조연으로 출연했다.
[구로 아리랑 은 최민식이 가장 아끼는 영화 3편중 한편으로 전해졌다.
두번째 작품 비오는 날 수채화는 독립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로 큰 히트를 쳤다.(단관개봉시절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7만명 동원)
개봉당시 옥소리의 미모를 보기위해 많은 남성팬들이 극장을 찾았다.
지금보아도 요즘 여배우들보다 완벽한 미모를 자랑한다. 다만, 유독 이영화에서 연기력이 부족하고, 발음이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배역자체가 청순한 여대생 역으로 오히려 잘 어색한 연기가 오히려 잘 어울렸다.
당시 이경영, 방은희, 강석현 등 신인배우들이 나와 신선했다.
세번째 작품은 대종상 작품상 수상작인 고 곽지균 감독의 젊은날의 초상으로 정보석, 이혜숙, 배종옥과 함께 주인공 타이틀을 얻는다.
이전 작품보다 연기가 한층 좋아졌고, 청순한 연기는 한층 더 빛을 바랬다.
여주인공 3명중 처음 등장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부담감이 있을수 있었지만 부잣집딸 여대생 혜연역을 잘 소화해 냈다.
제29회 대종상과 제11회 청룡영화상에서 공동주연배우인 배종옥과 함께 여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대종상은 배종옥, 청룡상은 김보연이 수상)

원래 동료 연기자 변우민과 연인 사이였다. 두 사람은 1991년 8월 3일 개봉한 영화 하얀 비요일에서 남녀 주인공으로 호흡을 맞췄고 이후 자신들이 연인 사이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연인임을 공표한지 얼마 되지않은 1992년 4월 12일, 변우민이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교통사고 환자와 진단서를 바꿔치기한 것이 들통나는 바람에 경찰에 잡혀 병역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는 사건이 발생했다.[4] 이때 옥소리는 첫 주연 드라마 사랑을 위하여에 캐스팅되는 등 한창 잘 나가던 중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이 한창 연애 중일때 평소애 깐깐하기로 유명한 변우민의 어머니가 옥소리를 무척 못마땅해 하여 아들이 옥소리와 사귀는 것을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결국 이런저런 상황이 맞물려져 옥소리는 변우민과 헤어졌다.

이후 옥소리는 1994년 드라마 영웅일기에 함께 출연한 동료 연기자 박철과 사귀게 되었고 1996년 12월에 박철과 결혼했다.

옥소리는 1998년 2월 25일부터 3월 19일까지 총 8부작으로 방영되었던 SBS 드라마 옛 사랑의 그림자 출연을 마지막으로 연예계 활동을 접었고 1999년, 박철과의 사이에서 딸 1명을 낳았다. 두 사람은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별다른 구설이나 소문이 없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연예계의 대표적인 원앙 부부로 알려져있었다. 심지어 파경을 맞기 1년전이자 결혼 10주년 때인 2006년에는 공개적으로 리마인드 웨딩까지 하였다.

옥소리의 대표작으로는 영화 구로아리랑, 비오는날 수채화, 젊은날의 초상과 드라마 옥이이모, 사랑을 위하여,
영웅일기라고 볼수있다.

이아로, 지수원이 옥소리와 매우 닮았다.

3. 박철과의 이혼 및 간통죄 소송

그러다가 갑자기 2007년 10월 9일, 두 사람이 이혼소송 중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박철이 옥소리의 간통 사실을 알게된 후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때 원앙 부부로 알려져 있던 두 사람이 실제로는 서로 말도 없이 산 쇼윈도 부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당시 옥소리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박철이 자신 몰래 사채까지 써서 빚이 생겼고 이를 알게 된 후 박철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그가 이혼을 단호하게 거절하며 자신에게 "차라리 다른 남자랑 만나라"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옥소리는 "11년간 잠자리 10번. 박철은 100명의 술집여자와 잠자리했다."는 # 발언까지 했다.

당시 옥소리의 간통 상대에 대한 세간의 이야기가 많이 돌았는데, 이때 주로 언급되는 인물이 팝페라 가수이자 박철의 후배인 정세훈, 그리고 한국내 특급호텔에서 셰프로 지내던 이탈리아인 요리사 G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진다.

2007년 10월 28일, 옥소리가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스스로 정세훈의 간통 사실을 밝히면서 G와의 관계는 부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해외로 도피한 G와 결혼까지 하고 자식낳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서 G에 관해서 옥소리가 한 말은 전부 거짓임을 스스로 인증했다.) 간통죄 문서를 봐도 알 수 있지만, 간통죄의 입증은 상당히 어렵다. 더구나 이후 위헌소송을 하기는 했지만, 현행법상으로 위법인 행동을 했다고 스스로 밝혔으니 이건 자수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서 박철은 옥소리가 정씨는 물론이고 G와도 간통을 했다고 하면서 그 증거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옥소리를 형사고소했고, 결국 2008년 1월 옥소리가 기소되었다. 이후 이혼소송은 간통소송으로 발전했다.

간통죄는 합헌, 위헌 논란이 거셌기에 옥소리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한정 위헌을 포함하여 헌법재판소 재판관 5명이 위헌 의견을 냈지만 2/3인 6명에 미달되어 합헌 결정이 나면서 결국 정식재판이 진행되었다. 이 재판과정도 당대에 엄청나게 유명했는데, 피고인 옥소리와 정세훈의 주장이 대립하는 부분이 있고, 옥소리의 20년지기 친구 김모씨[5]는 박철 측 증인으로, 박철의 로드 매니저는 옥소리 측 증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 실제로 박철이 룸살롱에서 잦은 술자리를 가지고 과소비를 하는 등 가정에 소홀했다는 것은 인정되었지만 박철도 간통을 했다는 것은 입증되지 않았고[6] 간통을 자백한 옥소리의 책임이 더 큰 것으로 판정되어 딸의 친권과 양육권이 박철에게 넘어갔으며 2019년까지 옥소리가 박철에게 양육비로 매달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게다가 옥소리는 간통죄로 징역 8월과 집행유예 2년, 같이 기소된 정세훈 역시 징역 6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2015년에 간통죄가 위헌 결정이 나면서 마지막 합헌 결정일(옥소리가 청구한 헌법소원의 결정일, 2008년 10월 30일)의 다음날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였으므로 옥소리 등의 간통죄는 재심 및 형사보상 청구 대상이 된다.

4. 무산된 연예계 복귀

2011년, 옥소리는 요리사 G와 재혼해 자식들(1남 1녀)을 낳고 대만에서 거주하다가 2014년경, 대한민국 연예계 복귀를 시도했다. 옥소리는 2014년 3월 12일 SBS 한밤의 TV연예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며 복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뉴시스 3월 20일 방송[7] tvN 현장토크쇼 TAXI에도 출연해 복귀를 시도했다.

옥소리가 연예계로 다시 복귀한다는 소식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자 3월 20일 밤에 방송된 JTBC 썰전 예능심판자에 출연한 허지웅은 이에 대해 강한 어조로 네티즌들을 비판하였다.
실질적으로 법적으로 절차가 끝난 타인의 가정사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면서 거기에 평가질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오만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민주공화국에서. (중략) 셀럽들의 사생활에 반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인용되는 대중들의 실체에 대해서 전부 유리멘탈에 엄청나게 완고한 도덕주의자에 자기는 요만큼의 흠결도 없었던 인생을 살았던 대단한 인간들같아요. (중략) 비단 옥소리 씨 뿐만 아니라 셀럽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면 좋겠어요! 한 명도 안 빼놓고. - JTBC <썰전> 허지웅 발언 중. 영상

그러나 당시 옥소리가 방송에서 법적 절차가 모두 끝났다고 주장했던 것과 달리 3월 21일 일요신문이 단독으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당시 옥소리의 남편인 이탈리아인 G는 기소중지 중인 상태였다.[8]

결국 SBS 제작진과 tvN 제작진은 각각 "기소중지된 사실을 몰랐다. 알았으면 방송을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고, 허지웅은 방송 다음날 그 내용이 완전히 뒤집히는 바람에 오히려 역풍을 맞고 망신만 당했다.

이렇게 옥소리는 복귀가 무산되자 다시 대만으로 돌아갔다.

2015년 간통죄가 위헌 판결로 폐지되었으니 다시 복귀를 못 할 이유도 없는데, 활동 당시에도 청순한 미모 외에는 별다른 장점이 없고 연기력이나 카리스마도 매우 부족한 배우였기 때문에 과연 복귀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5. 이후의 근황

2017년, 결국 G와도 이혼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지인의 말로는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두 사람의 사이가 안좋았고 2014년 옥소리가 대한민국 연예계로 복귀하려 했을 때 이미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난 상태였다고 한다. 요리사 G는 대만 현지의 싱글맘인 여성과 재혼했다. 현재 대만에서 양육권 재판 진행 중.

그런데 새로운 보도에 따르면 요리사 G는 옥소리와 결혼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보도 이후의 인터뷰에서 옥소리는 결별을 ‘이혼’이 아닌 ‘이별’이라 지칭했고,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로는 이혼이 성립되지 않는 점에서 '결혼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높다. 결혼식만 올리고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던 경우일 수도 있고...

2018년 10월 13일 한국일보를 통해 요리사 G와의 양육권 전쟁이 마무리되었고 자녀를 두고 벌인 양육권 소송에서 옥소리가 패소했다는 근황이 전해졌다. 옥소리는 항소까지 하며 긴 시간 재판을 진행했지만 최근 1심과 같은 결과를 통보 받았다고. #

이후 2024년인 현재까지 옥소리에 대해 어떠한 소식도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반인으로 조용히 살고 있는 듯 하다.

6. 출연작

6.1. 드라마

6.2. 영화

7. 수상(후보)

  • 1991년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후보 - 젊은날의 초상
  • 1991년 대종상 여우조연상 후보 - 젊은날의 초상
  • 1992년 KBS 연기대상 여자인기상 수상 - 사랑을 위하여
  • 1993년 KBS 연기대상 여자우수상 후보 - 사랑을 위하여


[1] 최진실 생년월일이 완전히 같고, 황수정과도 생일이 같다. [2] https://pann.nate.com/talk/325279 [3] 이 사운드 카드 이름이 배우를 의식했다는 말도 있으나 (출시와 배우 전성기가 겹친다.), 공식적으로는 언급이 없다. [4] 당시 변우민은 연예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병역비리 논란으로 인해 사법처리를 받았다. 1992년 6월 2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으며 사건 이후 변우민은 방송사 출연정지 상태였다가 1995년 출연정지가 해제, 같은 해, SBS 드라마 '고백'으로 복귀했다. [5] 옥소리가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이용되다가 증거가 잡혀서 자신도 박철에게 고소당할 처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나중에 밝혔다. [6] 사실 여부를 떠나 원래 간통을 밝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7] 당시 방송시각은 (목요일) 저녁 7시 40분. [8] 여기서 기소중지라는 이야기는, 상단에도 언급된 것처럼 G가 옥소리 간통사건 당시 당사자였는지 아닌지 부분이 법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G는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출국했기 때문에 국내미거주 사유로 검찰수사가 중단되었고 기소중지가 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근거가 전혀 없는 뜬소문이었다면 검찰측에서 기소중지를 요청하지 않고 불기소했을 것이고, 실제로 관계가 없었다면 G가 한국에 와서 수사를 받아서 검찰의 불기소처분을 받아내야 배우자인 옥소리의 상황이 깨끗해진다. 이게 안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9] 전 남편인 박철과 함께 출연한 단막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