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본즈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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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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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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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 1992 | 1993 | 1994 | 1995 | ||||||||||||||||||||||||||||||||||||||||||||||||||||||||||||||||||||||||||||||||||||||||||||||||||||||||||||||||||||||||||||||||||||||||||||||||||||||||||||||||||||||||||||||||||||||||||||||||||||||||||||||||||||||||||||||
1996 | 1997 | 1998 | 2000 | 2001 | ||||||||||||||||||||||||||||||||||||||||||||||||||||||||||||||||||||||||||||||||||||||||||||||||||||||||||||||||||||||||||||||||||||||||||||||||||||||||||||||||||||||||||||||||||||||||||||||||||||||||||||||||||||||||||||||
2002 | 2003 | 2004 | 2007 |
199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 ||||
케빈 미첼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배리 본즈 ( 피츠버그 파이리츠) |
→ |
테리 펜들턴 (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
1992년 ~ 199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 ||||
테리 펜들턴 (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
→ |
배리 본즈 ( 피츠버그 파이리츠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제프 배그웰 ( 휴스턴 애스트로스) |
2001년 ~ 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 ||||
제프 켄트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알버트 푸홀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2001년 ~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행크 애런 상 | ||||
토드 헬튼 ( 콜로라도 로키스) |
→ |
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알버트 푸홀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행크 애런 상 | ||||
알버트 푸홀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앤드류 존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격왕 | ||||
래리 워커 ( 콜로라도 로키스) |
→ |
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알버트 푸홀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격왕 | ||||
알버트 푸홀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데릭 리 ( 시카고 컵스) |
199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 ||||
프레드 맥그리프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 |
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맷 윌리엄스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200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 ||||
새미 소사 ( 시카고 컵스) |
→ |
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새미 소사 ( 시카고 컵스) |
199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점왕 | ||||
대런 돌튼 ( 필라델피아 필리스) |
→ |
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제프 배그웰 ( 휴스턴 애스트로스) |
프랭크 토마스 ( 시카고 화이트삭스) |
→ |
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티노 마르티네스 ( 뉴욕 양키스) |
칼 립켄 주니어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1998) |
→ |
배리 본즈 리키 헨더슨 토니 그윈 시애틀 매리너스 |
→ |
로저 클레멘스 (2004) |
보유 기록 | |
단일 시즌 최다 홈런 | 73개[1] |
통산 최다 홈런 | 762개 |
단일 시즌 최다 볼넷 | 232개[2] |
통산 최다 볼넷 | 2558개 |
단일 시즌 최다 고의사구 | 120개[3] |
통산 최다 고의사구 | 688개 |
단일 시즌 최고 출루율 | 0.609[4] |
단일 시즌 최고 장타율 | 0.863[5] |
단일 시즌 최고 OPS | 1.422[6] |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볼넷 | 27개[7] |
단일 포스트시즌 시리즈 최다 볼넷 | 13개[8] |
최다 MVP 수상 | 7회[9] |
최다 실버 슬러거 수상 | 12회[10] |
최다 30-30 달성 | 5회[11] |
500-500 클럽 | 메이저리그 역대 유일[12] |
역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고액 계약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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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보니야 ( 1992년 5/29,000,000$) |
→ |
배리 본즈 ( 1993년 6/43,750,000$) |
→ |
알버트 벨 ( 1997년 5/55,000,000$) |
피츠버그 파이리츠 등번호 7번 | ||||
밥 로버트슨 (1970~1976) |
→ |
배리 본즈 (1986) |
→ |
루벤 로드리게스 (1986) |
피츠버그 파이리츠 등번호 24번 | ||||
데니 곤잘레스 (1985) |
→ |
배리 본즈 (1986~1992) |
→ |
데니스 모엘러 (1993)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25번 | ||||
마이크 펠더 (1991~1992) |
→ |
배리 본즈 (1993~2007) |
→ | 영구결번 |
마이애미 말린스 등번호 25번 | ||||
앤드루 히니 (2014) |
→ |
배리 본즈 (2016) |
→ |
타자와 준이치 (2017~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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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d5a1e>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No.25 | |
배리 본즈 Barry Bon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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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배리 라마 본즈 Barry Lamar Bonds |
출생 | 1964년 7월 24일 ([age(1964-07-24)]세) |
캘리포니아 주 리버사이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주니페로 세라 고등학교 -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
신체 | 188cm / 83kg |
포지션 | 좌익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 입단 |
198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6번, PIT) |
소속팀 |
피츠버그 파이리츠 (1986~1992)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93~2007) |
지도자 | 마이애미 말린스 타격코치 (2016) |
기록 |
MLB 통산 최다 홈런(762홈런) MLB 통산 최다 볼넷(2,558볼넷) MLB 통산 최다 고의사구(688볼넷) MLB 단일 시즌 최다 홈런(73개, 2001) MLB 단일 시즌 최고 출루율(0.609, 2004) MLB 단일 시즌 최고 장타율(0.863, 2001) MLB 단일 시즌 최고 OPS(1.422, 2004) MLB 단일 시즌 최다 볼넷(232개, 2004) |
가족 |
아버지
바비 본즈 사촌형 레지 잭슨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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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야구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외야수.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인 바비 본즈의 아들로, 총합 7회의 메이저리그 MVP와 통산 최다 홈런을 비롯한 MLB 역대 최고의 기록들을 다수 보유한 선수다. 한 때 베이브 루스를 넘어 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거론될 만한 유일한 선수였으나, 금지 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난 이후로는 그저 야구의 명예를 실추시킨 스테로이드 시대의 대표격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2. 선수 경력
배리 본즈의 선수 경력 | |||
통합 선수 경력: 배리 본즈/선수 경력 | |||
1986~1992년 | 1993~1999년 | ||
2000년 | 2001년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2007년 |
3. 수상 내역
수상 내역 |
올스타 14회 (1990, 1992-1998, 2000-2004, 2007) 내셔널 리그 MVP 7회 (1990, 1992, 1993, 2001-2004) 내셔널 리그 행크 애런 상 3회 (2001, 2002, 2004) 내셔널 리그 골드 글러브 8회 (1990-1994, 1996-1998) 내셔널 리그 외야수 실버 슬러거 12회 (1990-1994, 1996, 1997, 2000-2004) 내셔널 리그 홈런 1위 2회 (1993, 2001) 내셔널 리그 타율 1위 2회 (2002, 2004) 내셔널 리그 타점 1위 (1993) 내셔널 리그 득점 1위 (1992) 내셔널 리그 장타율 1위 7회 (1990, 1992, 1993, 2001-2004) 내셔널 리그 출루율 1위 10회 (1991-1993, 1995, 2001-2004, 2006, 2007) |
4. 금지 약물 복용 스캔들
2004년 10월 16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랭스 윌리엄스와 마크 페이나루 와다 기자는 “배리 본즈가 2003년에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고 특종 보도했다. 이른바 BALCO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캘리포니아 검찰당국은 전해인 2003년 빅터 콘티가 운영하는 베이만연구소(BALCO)가 기존 도핑 검사에 적발되지 않는 신종 스테로이드 제품을 운동선수들에게 불법 제공한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를 개시했다. 약품 제조에 관여한 본즈의 개인 트레이너 그레그 앤더슨의 집에서는 스테로이드와 함께 선수 명단과 전화 번호가 발견됐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의 두 기자는 앤더슨의 증언이 녹취된 테이프를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두 달 뒤 이 신문은 “본즈가 연방대배심에서 ‘스테로이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약을 복용했다"[13]’고 증언했다”고 보도했다. 본즈는 이에 대해 “모른다”로 일관했지만 그에게는 ‘약물로 성적을 끌어올린 선수’라는 딱지가 영구히 붙게 됐다. 그리고 두 기자는 미공개 법정 증언을 입수해 보도했다는 이유로 기소됐지만 2009년 2월 기소가 취소됐다.
연도별로 본즈의 체중 변화다. 의혹 전과 후가 생김새부터 극명히 다르다.
1986년 | <rowcolor=#fd5a1e> 1997~98년 | 2002년 | 200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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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91kg | 98kg | 108kg |
2002년 월드 시리즈를 기념한 2012년 샌프란시스코 행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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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시절 빵빵하던 체격은 사라지고 홀쭉해졌다. 보통 은퇴하면 살이찌는 운동선수들이 많은데 본즈는 정반대.[14] |
1998년까지만해도 그야말로 호타준족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법한 날씬하고 날렵한 몸매였지만 1년새 완전 보름달 얼굴을 한 헐크가 돼서 나타났다. 2000년 스프링캠프에 무려 근육으로 9kg 이상 벌크업한 모습으로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여기서 본즈와 약물에 관한 주요 논점의 사실관계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1938년 연방식품의약품화장품법(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 : 처방약은 의사 처방 없이는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정.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처방약에 포함됨.
2. 1970년 물질통제법(Controlled Substances Act) : 불법 약물 사용, 판매, 소지에 대한 형사 처벌 명문화. 코카인, 헤로인 등 마약 남용 현상을 막기 위해 제정했다.
3. 1988년 개정에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의사 처방이 없거나 질병 치료용이 아닐 경우 처벌 대상 약물에 포함됨. 1990년 개정에서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와 성장 호르몬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4. 1991년 페이 빈센트 커미셔너는 비망록에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금지약물 목록에 추가하도록 지시했다.
5. 1994년 버드 셀릭 커미셔너는 약물 프로그램을 단체협약에 넣으려 시도했다. 의무 검사 조항이 없는 계획이었지만 선수노조는 거부했다.
6. 1999년 마이너 리그에 스테로이드 검사가 도입되었다. #
7. 2002년 8월 30일 메이저리그 노사는 새 단체 협약에 합의했다. 이 협약에는 1년에 3회 무작위 약물 검사를 한다는 조항이 삽입됐다.
8. 2004년 10월 11일 게리 셰필드는 SI와의 인터뷰에서 2002 시즌 전 트레이닝에서 본즈를 통해 발코를 소개받았다고 밝혔다. SI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소 관계자는 뉴욕 양키스의 강타자에게 오른쪽 무릎의 흉터에 바르기 위해 ‘the cream’으로 알려진 테스토스테론 기반 스테로이드를 주었다. 세필드는 ‘크림’이 스테로이드인 줄 몰랐다고 말한다. 얼마 후, 세필드는 본즈와 절교했다. #
12월 언론기관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본즈가 2003년에 연방대배심에서 금지약물로 알려진 스테로이드계 물질을 사용했다고 증언했다는 특종 기사를 썼다.이 신문은 “본즈가 자신의 트레이너인 그레그 앤더슨으로부터 합성스테로이드(THG)계 약물 ‘클리어’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함유된 연고 형태의 ‘크림’을 제공받아 썼다고 인정했다”면서 “하지만 ‘스테로이드계 약물이란 사실은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본즈 증언의 진실 여부에 대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16%만이 “모를 수도 있다”고 답했을 뿐 나머지 84%는 “정확히 알고 한 짓일 것”이라고 답했다. 또 본즈는 해당 대배심 앞에서 검찰이 제기한 트레이너인 앤더슨 집에서 나온 달력에 본즈 자신의 이름과 스테로이드 등의 약물에 대한 메모에 해서도 모른다고 답했고, 혈액 검사에 대한 450달러의 청구서를 나타내는 메모를 설명하지도 못했다. # 한편 아나볼릭스테로이드통제법(Anabolic Steroid Control Act)을 통해 마크 맥과이어가 복용했던 안드로스텐다이온 등 스테로이드 전구물질이 규제 대상이 되었다. 또한 동년, MLB에서는 최초로 약물검사를 실시하였다. 다만 04년의 검사는 비공개를 전제로 하였다.[15]
9. 2005년에는 성장 호르몬이 처음으로 금지약물 목록에 올랐으며 첫 적발 때 10일 출전정지, 2번째에 30일 출전정지, 3번째에 60일 출전정지, 4번째에 1년 출전정지로 처벌 규정이 강화됐다. 2005년 2월 호세 칸세코의 <주스드>가 출판되자 의회는 3월 17일 메이저리그 약물 관련 청문회를 열었다. 한 달 뒤 메이저리그 노사는 스테로이드 첫 적발 때 50경기 출전정지, 2번째에 100경기 출전정지, 3번째에 영구제명으로 벌칙을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
10. 암페타민을 복용한 선수가 스프링캠프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2006년부터 금지약물로 분류[16]
11. 2006년 3월 Jeff Pearlman의 책 ‘Love Me, Hate Me: Barry Bonds and Making of an Antihero’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1998년 시즌이 끝난 뒤 본즈는
켄 그리피 주니어의 집에서 가진 소규모 식사 모임에서 “나는 작년에 지옥 같은 시즌을 보냈고,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아무도. 맥과이어와 칸세코 그리고 스테로이드에 관련해 최대한 항의해봤지만 허사였다. 그걸 다투는 게 피곤하다. 난 올해 35살이 된다. 앞으로 좋은 시즌은 3 혹은 4시즌 정도일 것이다. 나는 돈을 벌고 싶다. 그냥 하드 코어한 놈들을 사용하려 한다. 그게 내 몸을 상하게 하지 않았음 좋겠다. 그 다음 경기에 나가 야구를 끝장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근의 인터뷰에서 그리피는 본즈와 그런 대화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5월 ESPN과 인터뷰를 통해 "약물 복용 의혹 때문에 솔직히 상처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자신의 기록에 별표를 붙여야 한다는 여론에 대해서 "내 기록에 별표가 붙는다면 실망스럽고 마음아플 것이다.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그런 일은 안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스테로이트 복용 관련 조사로 개인적인 공격을 해오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 한편 또 본즈는 사고를 치게 되는데, 약물검사에서 암페타민이 적발된 것이다. 하지만 출장 정지 징계는 없었기에 그리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다.[17] 이에 대해 본즈는 "팀동료인 마크 스위니 라커에 있는 건강보조제를 먹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12. 2007년 홈런 신기록을 세웠다. 21살의 대학생이 이 공을 잡았고, 이내 경매를 통해 752,467달러에 주인이 바뀐다. 자신의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공을 구입한 패션 디자이너 마크 에코는 인터넷을 통해 공의 향방을 결정짓는 투표를 붙였다. '명예의 전당에 기증할지, 참고 표시를 의미하는 별표 낙인을 찍어 명예의 전당에 보낼 지, 로켓에 실어 우주로 날려버릴 지'의 세 가지 옵션이 있었지만, 다수 팬들의 선택은 공에 별표를 남겨 명예의 전당에 무상으로 기부한다는 것이었다.
제프 아이델슨 명예의 전당 부회장은 “본즈 홈런볼에 별모양의 표시인 ‘애스터리스크’(*)를 붙여 전시할 계획이다. 별도 표시엔 교육적인 의미가 있다. 이는 팬들이 지난해(2007년) 9월 인터넷 여론조사 기간에 본즈 홈런볼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 보여줄 뿐 본즈가 실제로 뭘 했는지 의미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브래드 혼 명예의 전당 대변인도 “본즈가 756호 홈런을 친 뒤 그 공이 경매에 올려지고 다른 이에게 팔려 인터넷 여론조사 대상이 되기까지 모든 과정이 기록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본즈는 야구에 별표 같은 건 없다며, 별표를 표시하면 쿠퍼스타운을 보이콧하겠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결국 별표가 표시되었다. 이에 대해 본즈는 "바보같은 짓"이라며 마크 에코를 비난했다. # # # #
13. 2009년에 2003 혹은 2004년 본즈의 소변 샘플을 재검사해서 스테로이드를 적발했다.[18]
14. 2010년, 연방대배심에서 본즈는 위증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재판방해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19] 받았다.
15. 2015년, 재판방해죄에 대해서도 무혐의 판결이 확정되었다.
위증혐의의 무죄가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약물을 한 적이 없다가 아니라 약물을 복용했지만 본즈가 그것이 약물인지 알고 고의로 했음을 법정에서 확실하게 입증하지는 못했다.[20]
당시 본즈가 연방대배심에 소환된 건 본즈의 약물 복용은 그다지 상관이 없었고, 발코연구소를 잡기 위한 증거와 증언의 확보가 목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본즈는 "나는 약물을 복용한 적이 없다" "나는 발코연구소와는 알지도 못하고 아무런 연관도 없다"라고 증언을 했다. 하지만 트레이너였던 앤더슨의 가택을 압수수색한 결과 본즈의 약물 복용 기록과 약물 검사 등을 기록한 일지가 발견되었고 이후 본즈는 "약물을 복용한 건 맞지만 트레이너가 준 것을 복용했을 뿐이고 나는 그것이 금지약물인지 몰랐다"라고 증언을 번복한다.[21][22]
본즈는 미국 체육계 도핑 파문을 조사하려고 2003년 열린 연방 대배심에서 경기력을 높이려고 의도적으로 금지약물을 먹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다가 위증 혐의로 기소됐다.[23][24]
즉 재판의 초점은 약물 복용이 아니라 복용한 약물의 제조와 유통과정, 그 모든 것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발코연구소를 노린 재판이었다.
참고로 이 재판에서 로저 클레멘스는 팀 동료와 트레이너의 폭로에도 불구하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는 당연한 것인데, 약물을 했다고 재판이 열린 것이 아니라 발코 연구소와의 관계를 묻는 재판이었기 때문이다.
본즈 건 클레멘스건 이 점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약쟁이들의 옹호논리에서 종종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는 점을 근거로 드는 경우가 있는데, 애초에 본즈가 불법으로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건으로 기소된 것이 아니라 스테로이드를 불법적인 과정으로 복용했지만, 이것이 스테로이드인 줄 몰랐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건으로 기소된 것이다. 즉 법정에서 무죄가 나왔다는 것과 약쟁이가 아니란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 이후 약물 복용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검찰은 배리 본즈에게 위증죄를 적용했고 이후 수사를 하면서 밝혀진 각종 정황을 근거로 위증죄가 아닌 한 단계 더 높은 사법방해죄를 적용하면서 사건이 커지게 된다. 즉 검찰은 배리 본즈가 약물을 알고 복용하고 위증한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후 적극적인 가담, 조직적 은폐를 했다고 본 것이다. 발코연구소를 잡기 위한 재판이 엉뚱하게도 배리 본즈 vs 검찰의 사법방해죄 공방으로 변하고 당시의 배리 본즈의 위상과 겹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주종이 뒤바뀐 싸움이 시작되고 만다.
4.1. 그때는 금지약물이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MLB에서 스테로이드가 금지약물로 지정된 것은 2005년이 되어서이니, 본즈는 약은 빨았다고 해도 문제가 될 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25]그러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때부터 이미 올림픽 금지약물이었으며, 따라서 그게 나쁜건 줄 모르고 빨았다는 식의 주장은 성립이 될 수 없다. 더군다나 알려진 것과는 달리 스테로이드는 2005년에 MLB 금지약물로 지정된 것이 아니다.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약물들은 1991년에 금지 약물로 지정되었고, 그 당시 MLB 커미셔너였던 페이 빈센트(Fay Vincent)는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불법적인 약물의 사용과 거래를 금한다.'라는 문구가 포함된 문서를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에 배포했다. 6년 후인 1997년에는 빈센트 커미셔너의 후임이었던 버드 셀릭(Bud Selig) 커미셔너 대행 또한 그와 같은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스테로이드에 대한 본격적인 처벌이 시작된건 그보다 훨씬 지나고나서지만, 스테로이드는 본즈가 빨던 시절에도 명백한 금지약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까지는 본격적인 처벌이 없었다고 쉴드치는 것은 말이 안된다. 까고말해 시험장에서 컨닝하다가 걸렸는데 감독관보고 "왜 이때까지 다른 놈들은 안 잡아갔으면서, 이제서야 ㅈㄹ하세요?"라고 변명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차라리 맥과이어가 대놓고 복용했고[26], 이후 피아자가 복용했다고 자수했던, 안드로스텐다이온(속칭 안드로)이라면 경기력 향상 약물은 맞으나 2004년까지는 금지 약물이 아니었기에 명전 입성에도, 현역 연장을 통한 3000안타와 같은 기록 달성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스테로이드는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이건 1991년도부터 금지 약물이었으므로 본즈는 1991년 이후에 스테로이드를 복용했으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약쟁이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도 제기된다.
위와 같은 사실과 주장에도 불구하고, 올림픽과 메이저리그는 금지약물 규정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무리가 있다. 아울러 페이 빈센트의 공식서한 및 버드 셀릭의 주장 역시 조항(policy)화 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페이 빈센트 당시 커미셔너는 메이저리그에서 약물 문제가 어느 정도인지 현황은 알지 못했으며, 단지 약물문제가 불거지는 타종목과 달리 야구계에는 약물 문제가 없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메이저리그 자체에서 구두로 규정화한 것에 불과하다거나, 성문의 규정을 둔 게 언제인가를 다투는 것은 선수 평가에 있어 큰 의미가 없다. 이미 약본즈가 스테로이드를 몸에 넣은 것 자체가 미국의 물질통제법 및 1990년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통제법에 어긋나서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법률 앞에 리그 규정 유무는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어떤 변명을 해도 배리 본즈는 불법으로 금지 약물을 몸에 넣고 경기력을 향상시킨 약물 타자이다.[27][28]
그러나 애초에 법률로 의미를 따지는거 자체가 어렵다는 반론이 있다. 쉽게 말해 논쟁이 주객이 전도된건데 불법으로 얻은 약물을 신체에 주입하는 모든 행위가 도핑은 아니기 때문. 즉 이러한 비판은 도핑행위가 당시에도 불법인게 아니라 도핑행위를 까기 위해 불법행위인걸 찾아내 비판하는 것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당장 위법행위만 따지자면 베이브 루스가 전성기때 술을 자주 마셨던것 역시나 문제가 되는데 루스의 전성기는 다름아닌 그 금주법이 발동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루스가 당시 법을 어겼다고 해서 약쟁이 취급을 하지는 않는다. 또한 도핑을 한 선수들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당시에는 도핑이 얼마나 심각한 위반행위인지 모르고 있었을 이도 꽤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술하겠지만 본즈는 본인 입으로 도핑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지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분명히 도핑이 공정한 경쟁을 위반하는 심각한 문제인 것을 알면서도 그저 약쟁이들을 이기고자 도핑을 해댄 것이기에 무지했다는 핑계가 불가능한, 더더욱 악질적인 케이스인 것이다.
4.2. 본즈의 스테로이드 복용 주기는?
스테로이드를 끊임없이 투여할 수는 없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자연스럽게 신체 내 생산을 중지하기 때문에 중성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경기의 그림자(Game of Shadows)’란 책에 의하면 ‘배리 본즈는 한 달에 한 주 정도 컨디션이 심하게 다운된다’고 불평을 하고 있다. 본즈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했음은 이미 확실하지만, 그 역시 시즌 내내 이 약물을 투여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약물 복용의 주기가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경기의 그림자’에서 본즈 스스로가 얘기한 것을 종합해 그 패턴을 살펴보면 2002시즌에 확연히 나타난다. 본즈가 46개의 홈런을 기록했던 2002시즌을 기준으로 약물을 복용한 기간으로 의심되는 3주간의 장타율은 0.878이고, 약물복용을 중단한 1주간은 0.533이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평균 장타율이 0.430임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이다. 또한 투여 기간으로 짐작되는 3주간 그가 생산한 안타의 34%는 홈런이다. 그렇지 않은 1주간은 19%에 그친다.[29] 물론 약물 비투여 기간으로 추정되는 1주의 성적도 일반 선수들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약물 투여를 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는 명확하다고 했다. 이런 패턴은 시즌 내내 지속되며 공식화되고 있다. 결국 그의 약물복용 의심은 이런 패턴에서도 피하기 어렵다고 발코(BALCO) 스캔들을 폭로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 기자들은 입을 모은다. #
4.3. 그는 왜 스테로이드에 손을 댔는가?
현재로서는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약물을 복용했다는 분석이 통설이다.본즈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든 말든 상관없이 야구만 한다는 스타일이라고 공언하고 다녔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등학교 코치도 알아챘을 정도로 알기 쉽게) 본즈는 사실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길 원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게끔 하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다른 사람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걸 자신이 깨닫게 된 계기는 1998년. #
본즈는 이미 96년에 40-40 클럽에 가입했고, 98년에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그것도 만 33세라는 창창한 나이에 400-400이라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정작 98년 시즌 메이저리그 팬들의 모든 시선은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레이스에 쏠려있었다. 자신의 업적보다 마크 맥과이어의 시즌 최다 홈런기록 경신이 더 주목을 받자(실제로는 켄 그리피 주니어에게도 밀렸다), 배리 본즈는 "호타준족보다 홈런을 많이 치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홈런 개수를 늘리기 위해 약물에 손을 대게 되었다는 것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주장이다.
<Game of Shadows>[30]는 본즈의 약물 복용동기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즉, 98년 마크 맥과이어의 열광적 인기에 질투하고 분노한 본즈가 스테로이드 전문가를 찾기 시작하면서 약물을 복용하였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건강식품 구입말고 약물에 손도 대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기술되어 있었고, 오히려 맥과이어, 소사가 분명한 약쟁이임을 알고 있고 [31] 그래서 분노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맥과이어의 인기를 캔들스틱 파크에서 직접 목격하고 광분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본즈에게 있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본즈는 맥과이어가 약쟁이임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맥과이어와는 달리 본즈는 건강식품 가게에서 기껏해야 단백질 셰이크를 살 뿐이었다. 하지만 1998년 시즌 중, 본즈는 맥과이어가 자신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경의와 인기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걸 보고 결심을 굳혔다. 지금까지 말 그대로 쓰레기 취급해 온 그것, 약물을 복용하기로.
사실 논란의 시기 이전만으로도 명예의 전당 입성은 확실시 되었다. 약물을 복용하기 전(으로 추정되는 시기인) 90년대에 이미 완성한 400홈런 400 도루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이었다.[32] 게다가 오히려 약물 사용으로 인해 불어난 체중과 상식을 초월한 고의 사구 개수로 인해서 도루 개수, 안타 개수 등에서 손해를 봤던 것을 생각하면 600-600, 또는 3000안타도 달성했을 지 모른다.
다음 기사를 보면 베이브 루스에 대한 질투 때문일 수도 있어 보인다.
지난해 7월 20일 오클랜드의 맥카피 콜리세움 하늘에 714호 아치를 그려 ‘백인의 우상’ 베이브 루스와 나란히 하는 이정표를 세운 본즈는 이렇게 소감을 밝히며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털어놨습니다. "엄청난 구원이다 ."
본즈에게 루스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와 어깨동무함으로써 비로소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질투와 극복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658홈런을 날리며 루스의 기록이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2003년 이미 그런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755는 내 눈을 사로잡는 숫자가 아니다. 내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는 숫자는 오직 714뿐이다. 나는 루스와 같은 왼쪽 타자로 시즌 장타율, 출루율, 볼넷 등 그의 기록을 모두 지워 버렸다.[33] 그런데 아직도 그가 야구의 모든 것이다. 좋다, 이제 마지막 남은 그의 홈런 기록을 깨 버리겠다.”
755개의 최다 홈런 기록을 갖고 있던 행크 애런보다, 더 뛰어넘고 싶은 질투의 대상이자 목표였던 게 바로 루스였던 것입니다.
본즈에게 루스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와 어깨동무함으로써 비로소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질투와 극복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658홈런을 날리며 루스의 기록이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2003년 이미 그런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755는 내 눈을 사로잡는 숫자가 아니다. 내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는 숫자는 오직 714뿐이다. 나는 루스와 같은 왼쪽 타자로 시즌 장타율, 출루율, 볼넷 등 그의 기록을 모두 지워 버렸다.[33] 그런데 아직도 그가 야구의 모든 것이다. 좋다, 이제 마지막 남은 그의 홈런 기록을 깨 버리겠다.”
755개의 최다 홈런 기록을 갖고 있던 행크 애런보다, 더 뛰어넘고 싶은 질투의 대상이자 목표였던 게 바로 루스였던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흑인이므로 백인 루스에 대한 감정이 심했다.[34]
본즈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경신할 것은 베이브 루스의 홈런 기록(714)이며, 나의 우상인 행크 애런의 기록(755)은 깨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역대 홈런 1위인 행크 애런은 흑인, 2위 베이브 루스는 백인.
"루스의 기록은 흑인이 메이저리그에 뛸 수 없던 시절에 작성됐으니 가치가 없다. 따라서 내가 지워버리겠다"는 것이 본즈의 변. 결국 행크 애런은 존경의 대상, 루스는 '사이비'라는 주장이다. 현재 643홈런으로 윌리 메이스(660개)에 이어 역대 홈런 랭킹 4위인 본즈는 "지난달 캔자스시티의 니그로리그 박물관에 다녀온 뒤 그 숱한 기록들이 인정받지 못하는데 분개해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이 베이브 루스를 야구의 신으로 받들고 있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며 백인들의 심기를 자극했다.[35]
"루스의 기록은 흑인이 메이저리그에 뛸 수 없던 시절에 작성됐으니 가치가 없다. 따라서 내가 지워버리겠다"는 것이 본즈의 변. 결국 행크 애런은 존경의 대상, 루스는 '사이비'라는 주장이다. 현재 643홈런으로 윌리 메이스(660개)에 이어 역대 홈런 랭킹 4위인 본즈는 "지난달 캔자스시티의 니그로리그 박물관에 다녀온 뒤 그 숱한 기록들이 인정받지 못하는데 분개해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이 베이브 루스를 야구의 신으로 받들고 있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며 백인들의 심기를 자극했다.[35]
이후 2006년 5월 자신을 돌아본 본즈는 지난 해 2월 스프링캠프 도중 열린 기자회견에서 루스의 기록을 좇는 데 대해 "루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명이지만 나와는 달리 백인이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 현실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내가 처한 현실은 인종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때는 지금보다 젊어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본즈는 또 아들 니콜라이에게 "지금 아빠가 사는 것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 화를 참고 용서하는 법을 배우라고 가르쳤다"고 말해 최근 심경 변화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
다만 상술한 약물 복용 시기와 이유는 어디까지나 본즈에게 어느 정도 우호적인 사람들의 예상일 뿐이다.
5. 약물 파동, 그 이후
2010 월드시리즈 관람 후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타격코치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역시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을 강하게 받은 마크 맥과이어가 현역 타격코치로 일하고 있기도 하니까.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은 맥과이어는 타격코치 임명 전에 자신의 스테로이드 복용에 관해서 다 밝혔지만, 본즈는 그럴 수가 없다. 왜냐면 모든 것을 밝힐 경우 2010년 3월에 예정되어있는, 2003년 연방대배심에서 고의로 스테로이드 복용을 하지는 않았다고 위증한 죄에 대한 재판에서 백프로 지게 된다.'2010년 3월에 열린 연방 대배심에서는 위증한 죄에 대해서는 무죄 평결이 났으나, 애매한 증언으로 재판을 방해한 죄가 인정되었다. 단 이것은 어디까지나 '위증죄'에 대한 무혐의지 본즈가 약물을 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며 본인이 지켜낸 것은 겨우 고의로 약물을 복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뿐, 스테로이드 사용했다는 객관적 사실은 본인도 자백한 것이고, 약물 검사에서도 적발되었으며, 추가로 금지 약물로 지정된 이후 암페타민까지 복용한 것이 약물 검사 결과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법적으론 위증죄는 벗어났지만 재판과정에서 본즈의 수많은 치부가 까발려짐에 따라 이미지는 시궁창으로 떨어지게 된다. 본즈가 트레이너와 주사 주입에 대해 의논하는 통화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 관련자들에 대한 본즈의 협박과 욕설 및 트레이너에게 보내진 익명의 협박장 등이 언론을 통해 낱낱히 까발려지고 스포츠 신문 1면을 연일 차지하게 된다.
이는 이후 약물혐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쳐 약물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인하며 언론 플레이를 펼치다가도 본게임인 재판 혹은 조사회가 시작되면 얌전히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36]
2011년 12월 17일에 열린 재판방해죄 재판에서 30일의 가택구금과 250시간의 사회봉사, 4천달러의 벌금과 함께 2년간의 보호관찰이 결정됐다. 2012년 02 월시 진출 기념한 레전드 초청에 제프 켄트와 더불어 모습을 드러내고 백수 모드를 유지 중이다.
이후에 스프링캠프에 간간히 샌프란시스코의 타격 인스트럭터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2015년 2월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측에서 본즈를 정식으로 타격 코치로 영입할 가능성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본즈에 대한 시선이 영 좋지 않아서 구단 측에서는 이러한 입장을 밝히면서도 조심스러운 분위기. 그러나 이러한 비난들을 무릅쓰면서도 샌프란시스코가 본즈를 코치로 영입하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데, 잠깐이지만 스프링캠프에서 본즈가 건드렸던 선수들은 성적이 상승했다. 때문에 본즈의 코칭 능력 자체는 기대해볼 수 있겠다.
2015년 11월 말부터 마이애미 말린스가 본즈를 타격 코치로 영입하기 위해 접촉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12월 4일 말린스가 본즈를 타격 코치로 공식적으로 선임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마크 맥과이어의 선례에서 보듯 선수 시절엔 논란의 시기 이전부터 무시무시한 타격성적을 뽑아내던 괴물이었던 만큼, 스탠튼을 포함한 말린스 타선을 자신만의 메카니즘으로 개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3월 시범경기 도중에 말린스 타자들과 장난으로 홈런더비를 하더니 지안카를로 스탠튼과 크리스천 옐리치를 상대로 우승했다.
2016 시즌 이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단장 특별 보좌관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2018년 2월 5일 (현지시각) 그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썼던 25번을 공식 영구결번으로 처리되었다.[37] 영구결번식은 8월 12일 열린다.
본즈의 영구결번에 대해서 말이 많긴 하지만,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로 꽤 많은 약쟁이들이 영구결번을 받았기에 여론을 의식하면서 10년간 영구결번을 주지 않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옳다. 성적 자체로는 명예의 전당을 가고도 남는 성적이기 때문이다.
2023년 5월 22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도 본즈의 피츠버그 활약상을 인정하여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이로서 본즈는 MLB 명예의 전당은 탈락했지만, 그가 몸담았던 두 구단의 명예의 전당 헌액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영구결번은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2024년 6월 18일 타계한 그의 대부인 윌리 메이스의 추모행사에서 헌정연설을 수행하였다.
6. 선수로서의 평가
자세한 내용은 배리 본즈/선수로서의 평가 문서 참고하십시오.7. 본즈의 지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였던 바비 본즈의 아들이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 멤버이자 외야수 최다 골드 글러브 수상 기록자이면서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5위의 전설적인 선수인 윌리 메이스와[38] 대부-대자 관계이며, "10월의 사나이" 뉴욕 양키스의 레지 잭슨과는 이종사촌 관계다.이는 아버지인 바비 본즈가 자기 아들을 키우기 위해 배리가 어릴 적부터 지인들과 꾸준히 만나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꿈은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하는 대스타 [39]가 되는 것이라서 어릴 적부터 그렇게 길러왔다고 한다.
심지어 어린 아이인 배리에게 사람들의 사인을 받게 하고 대부인 윌리 메이스를 멘토로 그의 모든 것을 배우라고 교육시킨다. 배리 본즈의 어릴 적 생생한 기억 중 하나는 대부인 윌리 메이스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캔들스틱 파크에서 야구를 관람하며, 계속 야구에 대한 질문을 해서 귀찮게 했던 날이다. 윌리 메이스는 질문들의 날카로움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투수를 셋업할 수 있고 외야로 날라오는 공을 예측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건 5살짜리 꼬마아이가 아니라 젊은 선수였다. # 또한 본즈는 7세부터 메이스의 등번호 24번을 달고 뛰었고, 24번이 영구결번인 샌프란시스코에 와서야 25번으로 바꿔 달았다. 본즈의 24번 집착은 대단해서, 피츠버그 입단하고 벤치워머인 대니 곤잘레스의 24번을 반강제로 스틸해갔다. 메이스와 본즈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본즈의 샌프란시스코 입단식에 본즈가 메이스에 대한 존경을 표출하고 756호 홈런 신기록 경기에서도 함께 했으며 그 외에도 켄 그리피 주니어, 프랭크 토마스와도 친하다.
8. 역대 1위 기록
- 통산 홈런 (762호)
- 단일시즌 홈런 (2001, 73개)
- 통산 볼넷 (2558개)
- 단일시즌 볼넷 (2004, 232개)
- 통산 고의볼넷 (688개)
- 단일시즌 고의볼넷 (2004, 120개)
- 단일시즌 장타율 (2001, .863)
- 단일시즌 출루율 (2004, .609)
- 역대 좌익수 보살 (5225회)
9. 기록
- 메이저리그 올해의 선수 3회 (1990, 2001, 2004)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올해의 선수 5회 (1998, 2001~2004)
- 베이스볼 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3회 (2001, 2003, 2004)
- 베이스볼 아메리카 내셔널리그 올스타 7회 (1993, 1998, 2000~2004)
- 메이저리그 홈런 1위 2회 (1993, 2001)
- 메이저리그 장타율 1위 8회 (1990, 1992, 1993, 2001~2004)
- 메이저리그 장타 1위 3회 (1992, 1993, 2001)
- 메이저리그 전체 출루율 1위 6회 (1992, 2001, 2002~2004, 2007)
- 메이저리그 타수당 홈런 1위 8회 (1992, 1993, 1996, 2000~2004)
- 내셔널리그 타율 1위 2회 (2002, 2004)
- 내셔널리그 타점 1위 1회 (1993)
- 내셔널리그 득점 1위 1회 (1992)
- 내셔널리그 출루율 1위 10회 (1991~1993, 1995, 2001~2004, 2006, 2007)
- 내셔널리그 볼넷 1위 12회 (1992, 1994~1997, 2000~2004, 2006, 2007)
- 내셔널리그 고의사구 1위 12회 (1992~1998, 2002~2004, 2006, 2007)
10. 명예의 전당 입성 실패
연도 | 득표율(%) |
2013 | 36.2 |
2014 | 34.7 |
2015 | 36.8 |
2016 | 44.3 |
2017 | 53.8 |
2018 | 56.4 |
2019 | 59.1 |
2020 | 60.7 |
2021 | 61.8 |
2022 | 66.0 |
일단 2013년 명예의 전당 첫 투표에서는 백지표를 던진 기자들의 영향 때문인지 로저 클레멘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클레멘스 37.6%, 본즈 36.2%) 세간에서는 똑같이 투타 역대급 레전드의 커리어를 가졌지만 약물 의혹이 있는 판이라 차별대우를 해선 안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일단 첫 투표에서는 둘 다 적당한 선에서 높지도 낮지도 않은, 큰 차이가 없는 수의 표를 받았다.
2년차인 2014년 투표에서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더해지면서 득표율이 34.7%로 오히려 하락했다(로저 클레멘스는 35.4%). 인터넷에서 선행공개된 수치에서 40%를 상회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로, 인터넷에서 공개하지 않는 보수적 기자들은 여전히 약물문제와 엮인 선수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후 5년은 명예의 전당 첫회 입성자들이 이어질 것으로보이고, 그로 인해서 입성이 밀리느니 크레익 비지오 같은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약물 관련 인물들의 득표율 상승은 난항을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도 역시 전년도와 비슷한 36.8%의 득표율을 보였으나, 2016년에는 44.3%로 뚜렷한 상승곡선을 보였다. 하지만 이건 투표인단 숫자가 줄어든 영향이라는게 중론. 실제로 자세히 따져보면 투표율은 올랐다지만, 투표자 총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본즈 자신은 스스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면서 기고만장한 모습이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그런데 미묘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약물 복용자인 마이클 피아자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면서 본즈나 클레멘스와 같은 복용자들에게도 서광이 비치는 모습. 특히 피아자의 경우 약물복용자임에도 불구하고 위화감이나 논란이 전혀 없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기 때문에 이제는 약물복용이 명예의 전당 입성에 장애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물론 피아자가 복용한 안드로스텐다이온은 2004년 이전까지는 법적으로도 메이저 규정상으로도 금지약물이 아니었고 2004년 이후[45] 피아자는 약물 검사에서 걸린 적이 없기 때문에 '금지'약물은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니 경우가 다르다.
본즈와 클레멘스가 소사, 매니같은 다른 약쟁이들보다 득표율이 높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통산 성적 때문이고, 둘째는 이 둘이 약을 빨기 시작했다고 의심되는 년도 이후의 기록을 전부 삭제해도[46]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명전 투표 사전집계 사이트인 BBHoFTracker에 따르면, 12월 21일까지 공개된 명전 투표용지 82표(전체 투표 중 18.7%)에서 본즈는 무려 7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보다 높거나 같은 득표율은 제프 배그웰 90%, 팀 레인스 89%, 이반 로드리게스 83%, 트레버 호프만 76%, 블라디미르 게레로 71%, 그리고 로저 클레멘스 71%이다. 사전집계가 실제 득표율보다 다소 높게 집계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도 (실제로 본즈와 클레멘스는 사전집계 대비 5~7%낮은 실제 득표율을 기록하곤 했다.) 첫 턴 후보로도 거론되던 게선생과 동급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꽤나 충격적이다.
2017년 1월 19일 명전 결과 발표에 따르면 배리 본즈의 득표율은 53.8%이다. 이는 버드 셀릭의 영향[47]으로 거의 20%가량 상승한 것이지만, 비슷한 수치로 꼽히던 블라디미르 게레로가 71%를 거의 그대로 가면서 2018년 명예의 전당 입성을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20%가량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원래 사전집계로 잡히는 사람들은 좀 더 긍정적이고, 세이버매트릭스나 언론 등에 개방적인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집계에서 득표율이 더 잘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최종 집계에서 거의 20%나 떨어졌다는 것은 사전 공개를 하지 않은 기자들의 상당수는 그러거나 말거나 약물에 부정적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사람들의 성향이 그대로라면, 2018년 또 다른 버드 셀릭 특수가 없을 경우에는 명예의 전당 초기 투표 결과가 뚜렷한 상승없이 지지부진 했던 것처럼 딱히 상승폭이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014년 20%에서 출발해서 꾸준히 상승해 결국 51.8%까지 올라온 마이크 무시나와 비교하면 오히려 입성 가능성은 더 떨어진다.
2018년 1월 24일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56.4%를 득표, 지난해 대비 2.6% 상승에 그쳤다. 이 추세라면 마지막 해 극적 입성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2019년 1월 레지 잭슨은 "배리 본즈와 로저 클레먼스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야 한다"며" 때가 됐다"고 했다. 잭슨은 2012년 11월 언론 인터뷰에서 본즈와 클레먼스의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는 둘 외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은 바 있다. 그 정도로 강경한 입장을 취했던 잭슨이 이제는 태도를 바꿨다. 잭슨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여름에는 전설적인 타자 윌리 메이스가 "본즈와 클레먼스에게 투표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MLB.com은 소속 기자 6명의 투표 현황도 공개했다. 클레멘스와 본즈 모두 6명 전원으로부터 '헌액돼야 한다'는 지지를 받았다. 이들 6명은 모두 본즈를 1순위, 클레멘스를 2순위로 꼽았고, 리베라와 할러데이, 마르티네스, 무시나에게도 모두 표를 던졌다. MLB.com의 존 폴 모로시 기자는 '매년 그랬듯 난 본즈와 클레멘스에게 투표했다. 적어도 약물과 관련된 선수들에 대한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메이저리그에 약물 관련 규정이 생긴 200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징계를 받은 선수에게 난 투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전 매우 복잡한 시대에 뛴 최고의 선수들은 지지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또한 커트 실링은 “명예의 전당과 약물 문제와 관련해 한 가지 질문이 있다. 배리를 MVP로 뽑았던 기자들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이제 와서 그에 대한 투표를 거부하고 있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솔직한 얘기를 듣고 싶다”고 물었고, 빌 제임스도 이 의견에 동조해 “그가 약물을 사용했음을 알고도 3~4차례 MVP를 준 뒤 이제 와서 그가 명예의 전당감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 외에도 로저 클레멘스와 본즈의 압도적인 성적 때문인지 프랭크 토마스[48], 페드로 마르티네스 등의 헌액자들 중 본즈와 클레멘스의 입성을 지지하는 은퇴 선수들은 많이 있다. 2021년에도 2003년 본즈와 함께 내셔널리그 올스타에 선정됐던 전 메이저리거 프레스턴 윌슨은 본즈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하기 전에 이미 MVP 3회를 수상했기에 본즈는 명예의 전당에 오를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빌 제임스 역시 2021년에 2005년 이전은 괜찮다는 논리를 펼쳤다. #
반대 견해도 만만치 않다. ‘팬 크레드 스포츠’ 존 헤이먼은 “60%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고 전했다. ‘LA타임즈’ 빌 샤이킨은 “본즈와 클레멘스가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사표를 만들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보스턴 글로브’의 원로 기자인 댄 쇼네시는 “그들은 속임수를 썼다. 그들이 명예의 전당 선수였다는 것을 안 믿는다. 마스터스 골프 대회에서 10타 차이로 이기고 있지만 마지막 날 18번 홀에서 부정행위를 하면 실격된다”며 현상을 요약했다. 하지만 쇼네시 기자는 ESPN에 “나는 스테로이드 시대에 있었다. 지금은 점점 냉정해진다. 본즈와 클레멘스에 투표한 이들 모두 이해한다”면서 “데이빗 오티즈가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 첫 해에 기회를 잡았을 때, 본즈와 클레멘스는 10년 차가 된다. 재밌을 것이다”며 운을 뗐다. 오티즈 역시 통산 541홈런의 강타자이지만, 약물 복용 전력이 있다. 다만, 본즈와 클레멘스처럼 불명예스러운 은퇴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지적하며 논란이 증폭될 수밖에 없음을 예견한 것. 쇼네시 기자는 이들에게 기꺼이 투표할 수 있다는 뉘앙스였다고 ESPN은 설명했다.
2019년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득표율 60%대를 넘을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 미국 디어슬레틱에 따르면 7번째 도전 안에 60%를 넘은 선수 24명 가운데 23명이 남은 3번의 기회 안에 75%를 넘고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이같은 전례를 따른다면 본즈와 클레멘스의 현실적 목표는 2019년 헌액보다는 60%를 넘는데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59.1%에 그쳤다. 작년보다 2.7%만 오르면서 얘기가 나온 것 만큼은 상승하지 못했다.
2020년엔 위에서 언급한 마의 60%를 드디어 넘겼다. 딱 60.7%를 기록. 그러나 이제 남은 기회는 2번이라 과연 끝까지 물을 먹을지, 아니면 결국에는 입성할지는 두고볼 문제. 그리고 위에 나와있듯이 본즈의 입성 여부가 알렉스 로드리게스, 데이비드 오티즈 같은 선수들의 명전 투표 결과에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상당하다.
2021년에도 중간 투표에서 70%를 겨우 걸치는 것으로 보아, 9회차에도 들어갈 가능성은 낮아졌다.
2021년 명예의 전당 대상자 발표 직전인 1월 22일, 행크 애런의 타계 소식이 들려오면서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2022년 한 번[49] 남은 그의 명전행 가능성은 더 어두워졌다.[50]
결국 1월 27일, 커트 실링, 로저 클레멘스와 함께 9회차에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못했다.[51]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보아 10회차에도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 변수는 오직 데이비드 오티즈가 2022년 첫수에 입성할 시 반사적 이익으로 입성하는 것뿐이다. 확실히 오티즈에 대한 기자 여론이 이상할 정도로 좋기 때문에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상식적인 논리로는 오티즈의 이름을 체크하면서 본즈와 클레멘스는 하지 않는 것이 도저히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 1월 26일, 본즈는 결국 마지막 10회차 투표에 66.0%로 최종 탈락했다. 이제는 베테랑 위원회 추천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약쟁이 투수이면서 은퇴 동기인 로저 클레멘스 또한 65.2%로 탈락하였다. 이에 레지 잭슨은 " 의혹이 있는 특정 선수는 1년 만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평가 기준이 애매하다고 생각했고, 이제 생각을 바꾸게 됐다. 본즈와 클레멘스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지하지 않는 것은 탈락 이유가 안된다"면서 오티즈를 저격하고 사실상 대놓고 본즈와 클레멘스의 입성을 지지했다. # 행크 애런 역시 생전에, 부정행위를 하고도 헌액된 선수들이 많다는 이유로 본즈와 다른 스테로이드 선수들이 약물을 복용했지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피트 로즈만은 예외로, 경기에 배팅을 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이에 본즈는 “투표 입성은 실패했지만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입성하는 방법이 있으니 자신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첫 번째 위원회 투표에서 4표도 받지 못하며 탈락했다.
11. 여담
- 참고로 그는 사실 오른손잡이라고 한다. 다만 아버지인 바비 본즈가 야구선수는 왼손이 유리하고 본즈의 대부였던 윌리 메이스 역시 왼손잡이였다며 좌투좌타로 키워냈다는 말이 있다.[52] 하지만 바비 본즈는 아들과 거리를 두는 걸로 유명했으며,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유명한 설에 따르면 공을 잡고 있는 배리의 손을 쳐내며 "내 아들은 절대 왼손잡이가 아니다"라고 투덜댔다고 한다. # 시계도 왼손에 차고 다니는 걸 보면 "야구만" 왼손으로 하는 오른손잡이인 셈.
- 2012년에는 사이클에 맛을 들인 듯 하다. 사이클 행사에서 팬들에게 자주 목격되고 있다고 한다. 아마 선수시절부터 겪어온 무릎 통증을 다스리는 수단인 듯. 지금 보면 선수시절 벌크업한 것이 다 빠져서 홀쭉해졌다.
- 그런데 랜스 암스트롱의 약물 스캔들에 대해서 암스트롱을 옹호하기도 했다고 한다.
- 약즈의 위엄으로 불릴만한 홈런으로 체인지업 홈런이 있다.
- 사우스파크 시즌 8 에피소드 3 Up the down steroid 에서 '모든 기록에서 제 이름을 없애주세요. 왜냐하면 전 존나 비열한 계집애 새끼이며, 스테로이드나 복용하는 병신이니까'라고 까였다.
- 유명한 야빠 만화가 최훈이 배리 본즈에 대해서 상당한 애정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 실제로 프로야구 카툰의 전신격인 MLB 카툰을 보면 배리 본즈가 작중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사실 기록들만 보면 소재로 안쓰는 게 이상하지만 그가 은퇴한 2007년 이후 불과 1년만에 MLB 카툰을 관두고 프로야구 카툰으로 연재방향을 변경한 걸 보면 의미심장하다.[53]
- 본즈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기록했던 fWAR은 46.6인데 이는 같은기간의 뉴욕 메츠(46.6) 밀워키 브루어스(45.3) 캔자스시티 로열즈(31.5) 디트로이트 타이거즈(30.9) 몬트리올 엑스포스(29.5)보다 높다
- 제레미 곤살레스라는 573이닝동안 방어율이 4.95를 기록한 투수가 본즈를 6번 상대해서 한 번도 출루시킨 적이 없었는데, 2008년에 번개를 맞아서 사망했다.
- 자신이 게임에 나오는거를 싫어해서 라이선스를 안 주었다. 그래서 MLB 더 쇼 시리즈에서는 레지 스토커(Reggie Stocker)라는 가명으로 등장했고 그외 게임들에서도 가명으로 등장하거나 아예 등장하지를 않았다. 딱 한 작품 실명으로 등장한적 있는데 스퀘어에서 만든 일미간 프로야구이다.
- 카를로스 벨트란이 쓴 글에 벨트란과 본즈와의 인연이 자세하게 적혀있는데 AT&T 파크의 클럽하우스에서 남들은 한개, 팀의 프랜차이즈나 리더, 베테랑 같이 팀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수들이 많아야 두개 배정받는데 본즈는 그런 로커를 5개나 배정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벨트란이 "배리, 언젠가 타격에 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까요?"라고 물어보자,본즈는 벨트란보다 앞서 클럽하우스를 나가서 (배팅)케이지로 향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 참조. [번역] 고맙습니다, 야구 여러분 (Muchas gracias, béisbol.) - 카를로스 벨트란
- 래퍼 카녜 웨스트가 3집 Graduation에서 배리 본즈의 이름을 곡의 제목으로 썼다.
- 알버트 푸홀스처럼 팬서비스에 인색했다. 본즈는 야구만을 바라봤다. 본즈의 유명한 인터뷰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쇼 자체에 만족하지 않는가? 쇼가 끝나면 엔터테이너가 집에 가서 쉬게 놔둔다. 그가 다음 쇼를 준비할 수 있게. 그런데 야구에서는 선수들을 보고 만지고 카드를 모으고 거래하고, 저지도 사고 팔고 한다. 나한테 그런 부차적인 것들은 야구 본연의 흥미를 떨어뜨린다. 싸인 수집가들! 나는 영화가 끝나면 크레딧이 끝난 다음 자리를 뜬다. 영화가 끝났으니까. 그런데 나는 세 시간 동안 서서 싸인해줘야 된다고? 팬들은 '배트맨'을 보기 위해서 $10을 내지만 잭 니콜슨의 사인을 기대하는건 아니다" # 이러한 최악의 팬 서비스에 비례하듯이 젊었을 적부터 실력에 비례하여 개차반 인성을 가지고 있어서 동료 선수들에게는 평판이 좋지 않았다. 안그래도 인성과 팬 서비스 둘다 나쁜 선수였는데 약물 복용 이후로는 평판이 더욱 추락하였다. 이 때문에 악마의 재능 항목에도 등재되기도 하였다. 그래도 선수 시절 내내 이렇다할 사고는 치지 않았고 알버트 벨처럼 과격하고 사고뭉치같은 면모를 보이지 않았고 야구만 바라본 사람답게 시합마다 야구인에 걸맞은 마음가짐은 유지하였다.
- 마이애미서 코치시절 스즈키 이치로가 3000안타를 기록, 프로통산으로 피트 로즈의 통산안타를 체친 것에 대해 질문을 받자 "앞으로 이치로 같은 선수가 또 일본에 나타난다면 그땐 시간낭비하지 말고 빨리 미국으로 오게해라" 라고 답변한 적이 있다. 또한 이치로는 배팅 연습에서 매일 다른 선수들보다 많은 홈런을 치는 선수라서 이치로가 홈런 더비에 나온다면 자신은 이치로가 이길 것이라고 발언한 적도 있다.
- 성질머리가 더러운 선수로 악명이 높았고 약물 복용의 영향으로 체격도 거대해서 함부로 다가가기도 어려운 스타일이었지만 의외로 싸움은 잘한 편이 아니었다. MLB에서 확실한 싸움꾼은 알버트 벨과 카일 판스워스 정도고 본즈는 여기에는 해당이 안되며 벤치 클리어링이 터졌을 때도 상대 선수에게 욱한 모습으로 다가가도 주먹다짐은 잘 하지 않았다.
- 목소리가 하이톤이다. 더러운 성격과 위압감이 넘쳤던 선수 시절의 활약, 절대 만만해보이지 않는 외모와는 대비되는 부분. 특히 756홈런을 기록하자마자 그 소감을 말하는 장면에서는 목소리를 더 키워서 말해야해서 그랬는지 톤이 더 높아져서 목소리와 약으로 인해 거대해진 외모의 괴리가 훨씬 더 커보인다. 평소 인터뷰에서는 그렇게까지 톤이 높은 편은 아니다.
- 박찬호가 은퇴 후 선수 시절을 회상하면서 가장 어려워했던 타자로 꼽았다. 본즈는 박찬호를 상대로 통산 21경기 65타석 47타수 13안타 8홈런 14타점 15볼넷 1몸에맞는공 7삼진을 기록했다.
12. 코치 활동
2016시즌 마이애미 말린스의 타격코치로 임명되었다. 은퇴한 이후 계속해서 지도자를 꿈꿔왔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 꿈을 이룬셈이다. 그리고 마이애미가 이번시즌 핵타선을 만들어 내면서 지도자로서 첫 걸음을 순조롭게 하고있다.크리스찬 옐리치나 마르셀 오수나야 잠재력이 있었다지만, 이전 세 시즌 2할8푼대로 내려갔던 올스타 출신 3루수 마틴 프라도의 타율을 다시 3할 위로 올려놓고, 쩌리 유틸리티맨 데릭 디트릭이 3할에 가까운 타율을 유지하고 있는것을 보면 분명 코치로서 본즈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안카를로 스탠튼 역시 전반기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데 본즈의 역할이 컸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크리스찬 옐리치가 본즈를 만난 이후 장타력이 대폭 향상되고, 훗날 MVP급 타자로 각성하면서 본즈의 코치로서의 유능함이 재조명받았다. 옐리치는 훗날 본인이 MVP로 거듭나는 데 본즈 코치의 훈련법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2017년부터는 구단 특별보좌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복귀한다.
본즈의 타격 코치 에피소드에 관해서는 마이애미 사장이었던 데이비드 샘슨의 인터뷰 참조.
13. 관련 문서
14. 둘러보기
199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bWAR 1위 | ||||
그렉 매덕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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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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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워커 ( 몬트리올 엑스포스) |
2001년 ~ 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bWAR 1위 | ||||
토드 헬튼 ( 콜로라도 로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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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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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푸홀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1990년 7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라인 샌드버그 ( 시카고 컵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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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 피츠버그 파이리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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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저스티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1991년 7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배리 라킨 ( 신시내티 레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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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 피츠버그 파이리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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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클락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1992년 4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하워드 존슨 ( 뉴욕 메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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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 피츠버그 파이리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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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호세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1992년 9월 ~ 1993년 4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게리 셰필드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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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 피츠버그 파이리츠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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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배그웰 ( 휴스턴 애스트로스) |
1996년 4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단테 비솃 ( 콜로라도 로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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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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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배그웰 ( 휴스턴 애스트로스) |
1997년 7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마이크 피아자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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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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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피아자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2001년 5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루이스 곤잘레스 (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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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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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곤잘레스 (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
2001년 9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새미 소사 ( 시카고 컵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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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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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게레로 ( 몬트리올 엑스포스) |
2002년 8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래리 워커 ( 콜로라도 로키스) |
→ |
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브라이언 조던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2003년 7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알버트 푸홀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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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블라디미르 게레로 ( 몬트리올 엑스포스) |
2004년 4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짐 토미 ( 필라델피아 필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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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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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 버크먼 ( 휴스턴 애스트로스) |
2004년 8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짐 에드몬즈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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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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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 벨트레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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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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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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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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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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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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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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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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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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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1992, 1993, 2001, 2002, 2003, 2004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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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1991, 1992, 1993, 1994, 1996, 1997, 2000, 2001, 2002, 2003, 2004시즌
[11]
아버지
바비 본즈와 함께 메이저리그 역대 유이한 기록
[12]
400-400 클럽 역시 본즈가 유일하다. 사실 350-350도 유일하다.
[13]
본인의 진술에서 이미 과정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약물 복용을 시인. 위증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아직 유효하지만, 약쟁이라는 점은 빼박이자 확정.
[14]
물론
칼 말론과 같이 운동을 계속하는 은퇴 선수들은 현역 시절의 몸매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고 본즈 역시 SNS에 자신이 운동하는 영상을 현재에도 이따금씩 올리곤 한다. 하지만 현재는 약물을 복용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운동을 해도 약즈 시절의 몸매가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5]
이 당시 103명의 약물복용이 적발되었다고 하며, 그 103명 중 검사결과가 유출된 것은
데이빗 오티즈를 비롯한 극소수이다. 이 검사에서 본즈는 적발되지 않았고, 이를 근거로 본즈의 팬들과 일부 팬들은 본즈가 약물 적발이 되지 않았으나, 정황증거로만 약쟁이로 치부된다고 오해를 한다. 하지만 이 검사가 허접해서 그런 것이고, 후술하듯 이 당시 본즈의 샘플을 입수해 빡세게 재검사하자 스테로이드가 검출되었다.
[16]
참고로 2003년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투수 스티브 베클러가 에페드라 사용 후유증으로 스프링캠프 도중 사망한 뒤 에페드라의 판매가 법적으로 규제되었다.
[17]
이 당시 암페타민에 대한 징계는 매우 경미했다. 스테로이드는 1차 적발로 50경기 출장정지가 내려지지만 암페타민은 징계없이 6개월동안 6번의 테스트를 받도록 돼 있었다. 두 번째 적발되면 25경기, 세 번째 적발 때
80경기 출장 정지가 내려졌다.
[18]
본즈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관한 약물 검사에서는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2004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입수한 그의 샘플이 정부 당국에 의해 재조사 되었다고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가 이 사건에 정통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19]
30일 가택구금 / 벌금 4천달러 / 사회봉사 250시간 / 보호감찰 2년
[20]
금지약물을 알면서 투약하지 않았다는 본즈의 항변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언이 있다. 본즈의 쇼핑 도우미 캐시 호스킨스는 2011년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서 열린 본즈의 위증 혐의 공판에서 본즈가 개인트레이너 앤더슨의 도움으로 약물을 맞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캐시는 "앤더슨은 내가 보는 것을 꺼렸지만 본즈가 '괜찮다'고 말해 볼 수 있었다. 본즈가 앤더슨과 방에 들어가며 "안 걸린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안 걸린다'는 본즈의 말은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피할 수 있는 '디자이너 스테로이드'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1]
검찰이 공개한 앤더슨의 일지에 기록되어있던 내용의 일부 2000년 11월 29일과 2001년 2월 6일 체취한 소변 샘플에서 각각 메테놀론과 낸드롤론, 메테놀론이 검출됐다. 2001년 2월 20일 제출한 샘플에서도 본즈는 메테놀론과 낸드롤론에 양성반응을 보였고, 2003년과 6월 5일 샘플에서는 THG와 클로미펜과 외인성 테스토스테론이, 2006년 6월 8일 샘플에서는 D-암페타민이 검출 이 내용대로라면 이미 예전부터 약물을 복용해 왔던 것이고 2004년 사무국이 실시한 도핑검사에서도 무사통과는 언감생심이다. 사무국이 약물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이다. 또한
제이슨 지암비는 본즈의 개인 트레이너이던 그레그 앤더슨에게 본즈의 활약 비법을 계속 캐물으니 '크림과 클리어'로 불리는 스테로이드와 주사용 스테로이드, 주사기를 보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크림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고 클리어는 에피테스토스테론인데 메이저리그 약물검사는 두 물질 비율을 따져 도핑 선수를 적발하기 때문에 두 수치를 한꺼번에 높이면 걸리지 않는다는 설명을
앤더슨에게서 들었다고 덧붙였다.
[22]
홈런 기록을 지키려고 금지약물과 관련해 위증을 이어갔다고 관련 재판에서 검찰은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서 열린 최종변론에서 본즈가 말할 기회를 모두 얻었지만 끝내 진실을 털어놓지 않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제프리 네드로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스테로이드 사용이 메이저리그 홈런기록을 포함한 그의 성과에 오점을 남기기 때문에 본즈는 위증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배심원들은 상식적으로 봐달라"며 "1년에 1,700만 달러(약 185억원)를 버는 선수가 무엇인지 물어보지도 않은 약물을 개인 트레이너에게서 받아 사용하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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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공판에는 옛 여자친구, 쇼핑 도우미, 동업자, 전·현직 선수, 스포츠용품업체 관계자, 미국 반도핑 기구 전문가 등이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본즈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본즈 측에서는
증인을 한 명도 법정에 세우지 않았다. 참고로 증언들을 살펴본다. 본즈의 옛 애인인 킴벌리 벨은 검찰의 질문에 따라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추정될 수 있는 본즈의 신체 변화상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그는 본즈가 고환이 모양이 변하면서 쪼그라들었고 발기불능에 시달렸으며 가슴에 털도 계속 깎아냈고 등에 여드름이 나서 고생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벨은 스테로이드의 정신적 부작용인 듯 본즈가 점점 난폭해지면서 자신에게 언어폭력을 가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본즈가 나에게 '목을 잘라 하수구에 버리겠다'고 위협했고, 내 가슴확대 수술비를 자기가 댔으니 주입물을 도려내겠다는 말까지 했다"며 울먹거렸다. 본즈의 변호인은 벨이 본즈와 헤어지고 나서 보복을 하려고 거짓 증언을 하고 있다고
배심원들에게 항변했다.
[24]
또한 스티브 호스킨스가 연방대배심 조사에서 본즈의 스테로이드 복용 사실과 이로 인한 성격파탄 증세까지 폭로했다. 호스킨스는 1998년 본즈의 결혼식 때 들러리를 섰고 사인볼과 기념품 사업에도 파트너로 나섰던 친구. 호스킨스의 여동생이 본즈에게 여자를 소개시켜줄 만큼 절친한 사이였다. 그러나 2003년 본즈가 호스킨스를 ‘사인 도용’ 혐의로 고발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이에 본즈의 개인변호사는 “호스킨스가 예전에 사인 도용을 문제삼을 경우 본즈의 혼외정사와 탈세·약물복용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며 “수사관들이 지나치게 호스킨스와 본즈의 예전 여자친구의 증언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25]
2019년에도 현지의 일부 기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26]
이 인간은 스테로이드도 복용했으며, 스테로이드는 약맥이 약을 빨던 그 시기에도 이미 금지 약물이었다. 약맥이 괜히 명전 못 가는게 아니다.
[27]
물론 미국 법률상 의료 목적 등으로 허가를 받으면 스테로이드를 사용할 수 있었으나, 허가받지 않았으므로 금지 약물이다. 이는 허가를 받았으면 에더럴을 섭취할 수 있었고 섭취했던
크리스 데이비스가 중간에 허가 없이 에더럴을 먹어 사무국으로부터 금지 약물로 처벌받은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에더럴과는 다르게, 애초에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진짜 오늘내일하는 중환자 대상이 아닌 처방용으로는 아예 안쓰이는 약이라서 허가고 뭐고간에 말도 안되는 핑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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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서
마이크 피아자와 본즈는 경우가 다르다. 피아자가 복용했다고 자백한 안드로는 국가의 법률상으로도 2004년에야 금지약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안드로도 스테로이드와 비슷한 것이란 점에서 피아자의 기록은 순수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법률상으로는(그리고 그 당시 메이저리그 규정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기록 자체가 부정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한 마디로 말하면, 2004년 이전의 안드로는 자양강장제 혹은 링거 주사와 완전히 같다. 카페인이 금지 약물이 되면 그 전까지 커피를 마시며 뛰던 선수들은 전부 다 약쟁이가 되는가? 김진욱 감독은 경기 중에도 대놓고 금지 약물을 빨던 약쟁이 감독이고? 이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이건 피아자가 간사한게 아니라 약본즈를 포함한 약쟁이들이 쓰레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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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1주간도 약빨이 아직 어느 정도 잔존하고 있는 성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스테로이드 약빨이 일년도 아니고, 한달도 아니고, 일주일도 못간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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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에 관한 책들 중 Love Me, Hate Me와 함께 가장 유명하며 약물과 관련한 부분을 더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 책은 천 페이지가 넘는 문서와 200명 이상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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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는 98년 맥과이어의 안드로스텐다이온 복용이 드러났을 때 대놓고 경멸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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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가 은퇴한지 14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본즈의 500-500은 고사하고 400-400도 본즈밖에 없다. 300-300클럽도 본즈 포함 8명밖에 없다. 현역들 중에선
마이크 트라웃이 310-203을 기록 중이지만 400-400의 달성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가능성이 있는 다른 선수들로는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나
훌리오 로드리게스 등이 있지만 이들은 아직 20대 초중반이라 가능성을 논하기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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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록들을 세우자 본즈는 2003년 올스타전에서 루스를 향해 'Wipe Him Out!(난 이미 루스를 넘어섰어!)'이라고 말해 백인 보수주의자들로부터
극심한 반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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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역시 그라운드 밖에서는 내성적인 편이었고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종종 주위 사람들을 당황시켰다고 한다. 바비 본즈는 아들이 경기에 집중하려다 오해를 사는 것이라 변호했지만 주위의 생각은 달랐다. 팀의 승패보다 자신의 기록을 중시하는 선수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본즈는 당시 동료 외야수 앤디 반 슬라이크가 '미스터 피츠버그'로 불리며 팀의 간판으로 대접받는 것을 불편하게 받아들였다. 반 슬라이크를 '위대한 백인들의 영웅'이라 부르며 시기심을 드러낸 적도 있다(이에 반해 본즈 커리어 초반에 사람들이 그의 잠재력을 계속 논쟁했을 때, 반 슬라이크는 “아직 발현이 되지 않았을 뿐, 재능만 놓고 보면 배리 본즈는 리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며 실드를 쳐줬다.
#). 본즈는 90년부터 3년 연속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기도 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크게 부진해
영웅이 되지는 못했다. 이처럼 그는 스포트라이트에 집착했고, 백인을 질투했다.
[35]
그러나 본즈가 약빨임이 드러나며 오히려 베이브 루스가 반대급부로 더욱 추앙받는 역효과가 났다.
[36]
언론 플레이는 거짓이라도 문제가 안 되지만 재판이나 조사회에서 헛짓하면 위증, 사법방해죄에 걸려들 수 있다. 미국에서 이는 정말 한 순간에 훅 갈 수 있는 큰 죄다.
[37]
사실 그의 은퇴이후 25번을 쓰는 선수는 없었으니 언론을 의식해 영구결번 처리를 못하고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약쟁이이기는 하지만 다른 구단에도
약쟁이
영구결번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애초에 모든 구단이 약쟁이를 한 명 정도는 주전으로 쓰는 현재에 와서는 적어도 본즈의 활약으로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던 샌프란시스코는 그를 천대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38]
2015년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넘어섰다. 그리고 2020년 알버트 푸홀스도 극심한 부진 속에서 메이스의 통산 홈런 기록을 넘어섰다.
[39]
아버지인
바비 본즈는 14년 동안
호타준족의 상징인
20-20을 10시즌, 그리고
30-30을 5번이나 기록했다. MVP투표에서 2번 5위 안에 들었고,
골드 글러브도 3차례 받았다. 통산 성적은 타율 .268, OPS .824, 302홈런, 461도루로 HoF급까지는 아니어도 대스타급 선수임엔 충분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바비 본즈는 술을 너무 좋아해서 심지어 술 마시고 경기에 출장한 일까지 있었다. 그래서 바비는 부족한 자신이 아닌 윌리 메이스를 배리의 대부로 부탁해서 아들의 멘토가 되도록 했다. 바비의 마음을 배리는 충실히 따라 야구에 대한 자문은 아버지가 아닌 메이스를 먼저 찾아갔다. 부자가 자주 언급했던 유명한 이야기. 배리는 그 아버지보다도 더 괴물같은 성적을 냈다. 아예 본즈 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
4회 이상 수상자는 오직 배리 본즈밖에 없다.
[41]
사실 클럽이라는 말도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그 클럽 가입자가 배리 본즈 단 한명뿐이기 때문이다. 500-500은 커녕 심지어 메이저리그를 포함한 전세계 어떤 프로야구 리그에서도 아직 400-400을 기록한 선수가 없다.
[42]
메이저리그 좌타자로는 유일한 기록.
MLB에서 약물 없이 청정하게 40-40을 달성한 선수는
알폰소 소리아노,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
오타니 쇼헤이 뿐이다.
[43]
배리 본즈 상대로 피홈런이 가장 많은 투수는 그렉 매덕스와 존 스몰츠로 9개를 했고 그 뒤로 8개의
커트 실링,
테리 멀홀랜드,
박찬호가 있다.
[44]
당장 첫 턴에 들어간
데이비드 오티즈도 약쟁이지만 오티즈의 이미지는 본즈와는 비교도 안 되게 좋다.
[45]
04년 이후는 활약이 미비했기 때문에 약물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46]
본즈는 미첼리포트 등에서 2000년부터 약물을 복용했다는 게 정설로 여겨진다.
[47]
버드 셀릭은 본즈와 클레멘스가 약물하던 시기의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로, 사실상 야구 흥행을 위해서 약물 사용을 방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 버드셀릭이 단지 커미셔너라는 이유만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면서, 약물 선수들을 명예의 전당에서 배제하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게 되었다. 이 때문에 약물관련 선수들의 투표율이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48]
토마스는 약물 반대로 유명하지만 의혹이 있는 제프 베그웰과 이반 로드리게스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행복하지 않지만 이들이 들어온 이상 본즈와 클레멘스도 들어와야 한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49]
2021년 명예의 전당 대상자 투표는 이미 끝났다.
[50]
당연히 행크 애런은 배리 본즈와 대척점에 있는 선수였다.
[51]
본즈는 총 61.8%의 득표율을, 커트 실링과 로저 클레멘스는 각각 71.1%, 61.6%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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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윌리 메이스는 우투우타다.
[53]
최훈 작가는
미네소타 트윈스의 팬이다.
[54]
소수의 의견이긴 하지만, 말린스가 스타트를 끊어준 이상 본즈의 타격코칭 커리어가 뚫렸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본즈는 원래 자이언츠의 코치를 맡고 싶어했고, 반대로 자이언츠는 물론이요 본즈를 코치로 앉히고 싶어했던 팀들은 꽤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본즈의 약물 의혹때문에 찜찜해서 고용하지 못 했던 것이었고, 이제 말린스가 한번 써 봤었으니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본즈를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이와 같이 흘러갈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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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도
돈 매팅리 현 마이애미 말린스 감독과 배리 본즈는 코칭스태프로 한솥밥을 먹던 한 시즌 내내 굉장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