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피아자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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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헌액자 | ||||||||||||||||||||||||||||||||||||||||||||||||||||||||||||||||||
마이크 피아자 | |||||||||||||||||||||||||||||||||||||||||||||||||||||||||||||||||||
헌액 연도 | 2016년 |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
투표 결과 | 83.0% (4회) |
마이크 피아자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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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신인왕 | ||||
에릭 캐로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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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피아자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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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몬데시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1993년 ~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포수 부문 실버 슬러거 | ||||
대런 돌튼 ( 필라델피아 필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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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피아자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뉴욕 메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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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 로페즈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제프 코나인 ( 플로리다 말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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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피아자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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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 알로마 주니어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25번 | ||||
데니스 쿡 (1990~1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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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피아자 (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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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월락 (1993)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31번 | ||||
로저 맥도웰 (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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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피아자 (1993~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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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페니 (2005~2008) |
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31번 | ||||
롭 넨 (1993~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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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피아자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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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페니 (2001~2004) |
뉴욕 메츠 등번호 31번 | ||||
존 프랑코 (1990~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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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피아자 (1998~2005) |
→ | 영구결번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번호 33번 | ||||
션 버로우스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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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피아자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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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웰스 (2007)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31번 | ||||
커크 살루스 (2004~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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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피아자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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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그레이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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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야구 국가대표팀 No. 31 | |
<colbgcolor=#002d72><colcolor=#ffffff> 뉴욕 메츠 No. 31 | |
마이클 조셉 피아자 Michael Joseph Piazz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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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8년 9월 4일 ([age(1968-09-04)]세) |
펜실베이니아 주 노리스타운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마이애미 데이드 대학교 |
신체 | 190cm / 90kg |
포지션 | 포수, 1루수, 지명타자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88년 드래프트 62라운드 (전체 1390번, LAD) |
소속팀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92~1998) 플로리다 말린스 (1998) 뉴욕 메츠 (1998~2005)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6)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07) |
지도자 | 이탈리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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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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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포수 역사상 최고의 타격[1][2]을 보여준 선수였다. 포수라는 최고의 수비부담을 가진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세운 기록이 워낙 무시무시하여 아래에 언급될 몇몇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쿠퍼스타운에 2016년에 입성했다.선수 시절 성적
잘 보면 알겠지만 포수인데도 15시즌 defensive WAR 1이라는 HoF급 포수로서는 꽝인 결과를 남겼지만[3], 포수라는 굉장히 힘들고 체력적으로 힘든 포지션을 소화했음에도 공격쪽에서는 초월적인 67.7(연평균 4.513)이라는 무시무시한 offensive WAR를 찍었다.(오클랜드 지명타자 시절 제외) 이 무시무시한 공격지표가 워낙 좋 아서 포수 수비 꽝이라고 까던 사람들도 그의 HoF 입성에는 이견이 없다.
비슷한 시기 전성기를 구가한 이반 로드리게스와 함께 양대 리그 최강의 포수로 꼽혔지만, 수비력은 10년 연속 골드글러브 수상자이자 전성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46%라는 경이적인 도루저지율을 기록 중인 퍼지에겐 한없이 밀린다. 두 선수의 어깨 차이는 다른 포지션에서 조니 데이먼과 블라디미르 게레로 수준의 격차나 다름없다.
2.1. 낙하산 지명자 62라운더의 빅리그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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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생활을 시작한 다저스 시절 | 짧았던 말린스 시절 |
사실 학창시절 동안 실력이 크게 늘지 않았고, 아마추어 드래프트에 참여해봤자 지명되지 않을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빈스가 구단을 사려고 했지만 마이크가 말려서 포기하고 다저스 구단 관계자이자 감독이던 토미 라소다와의 친분[6]을 통해드래프트 62라운드에서 간신히 다저스의
마이너리그에서 출중한 공격력을 보여주던 피아자는 1992년 맛보기로 메이저리그에 승격되었고, 1993년 24세의 나이로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주전 첫해 .318의 타율에 35홈런 112타점을 기록하면서 신인왕과 실버슬러거를 수상하였다. 이후 매 시즌 3할 이상의 타율과 20홈런 90타점 이상을 기록하면서 폭발적인 화력을 보여주었다. 사실 물어깨로 정평이 나 있지만 젊은 시절에는 그래도 도루저지율 25% 이상일 정도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다만 떨어지는 블로킹 능력과 수비력, 적절하지 못한 볼배합…. 하지만 이런 단점들을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타격 하나는 절륜이었다. 다만 수비에 관해서는 현지보다 국내에서 더 과도하게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박찬호와 배터리를 맞췄기 때문이다.
2.2. 메츠의 간판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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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21일, 역전 투런 홈런을 때려낸 직후 |
메츠 시절엔 노쇠화 경향이 보이는 바람에 1루로도 조금 뛰었고 다저스 때보다는 약간 수치가 하락했고 높은 연봉값에 대해 비판이 존재했으나 여전히 절륜한 타격을 선보이며 비판을 잠재웠다. 7년 반 동안 .296 .373 .542 220홈런 655타점. 타격에서 답답한 점이 많았던 메츠의 3, 4번[18]으로서 역사에 남을 선수가 되었다. 또한 2004년에는 포수 통산 352호 홈런으로 칼튼 피스크의 포수 최다 홈런 기록을 넘어섰다.
2006년 파드리스 소속으로 셰이 스타디움에 와서 4회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두들겨 솔로홈런을 뽑아냈을 때는 오히려 상대팀 선수인 피아자에게 기립박수와 커튼콜을 보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경기에서 6회에 솔로홈런을 한번 더 쳤을 때도 메츠 팬들은 오히려 승부보다 피아자에 열광했는데, 8회 4-2로 메츠가 앞서는 상황에서 피아자가 다시 타석에 올라와 교체된 투수 애런 헤일만을 상대로 또 큰 타구를 쳤지만, 깊숙한 중견수 뜬공으로 아웃되고 말았다. 참고로 당시까지 피아자 포함 어떤 메츠 선수도 셰이 스타디움에서 3홈런을 친 적이 없었는데, 피아자가 원정팀 선수로 와서 거의 3홈런을 칠 뻔한 것이다.[19]
2008년에는 9월 말 셰이 스타디움의 마지막 경기에 방문하여 메츠 역사상 넘버원 에이스 톰 시버의 마지막 시구를 캐치했고, 다음 해 시티 필드 개장 경기에서도 톰 시버의 시구를 받았다.
2011년에는 피닉스에서의 올스타 전야 퓨처스게임에서 미국팀 감독을 맡았는데 메츠 모자를 쓰고 감독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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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ESPN의 퓨처스게임 중계에서 루이곤조는 Dayan Viciedo, Chih-Hsien Chiang, Hak-Ju Lee 등 영미권에서는 생소한 이름들을 발음하지 못해서 버벅댔는데 피아자는 미쿡인들의 이름을 여유롭게 발음하고 윙크를 날렸다(...).
2015년 이전에는 메츠 31번이 비공식 결번이었으며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시되는 레전드에 대한 예우로서 아무도 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2016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고 영구결번되었다.
그런데 국내 야구온라인 게임인 마구마구에서는 비슷한(?) 이름의 마이크.P를 LA 다저스소속의 레전드 카드를 출시해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메츠에서 더 극진한 대접을 받아서 그렇지 선수로서의 순수한 기량의 최고점은 다저스 시절이 맞긴 해서 딱히 욕 먹을 이유는 없다. 다저스 시절 WAR(BR 기준)이 31.9로 메츠 시절의 24.5보다 월등하며, 다저스 시절 MVP 2위를 두번이나 했고 wRC+ 커리어하이도 다저스 시절이다. 통산 조정 OPS도 160과 136으로 꽤 많이 차이난다. 뭐 어쨌건 나중에 추가패치로 메츠버전 레전드도 나왔다.
3. 플레이 스타일
선수 시절 통산 .308 .377 .545, 427홈런[21] 1335타점 oWAR(공격기여도) 65.9 dWAR(수비기여도) 1.0을 기록한 역대 최고의 공격형 포수이다.특히 메이저리그에서 15년 동안 주전으로 출전했는데 데뷔 시즌부터 은퇴까지 단 한 시즌도 100삼진을 당하지 않으면서 통산 3할 타율을 유지한 400홈런 타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역대 최고의 꾸준함을 보여준 타자들에 당당히 꼽힐 수 있다는 것.[22]
워낙 배트 스피드가 빨라서 어지간한 에이스급 투수들도 바르고 다녔다. 포수라는 걸 감안하면 흉악스러운 타율이나 홈런도 저 사기적인 배트 스피드에서 나왔다. 위에도 언급되었듯이, 로저 클레멘스를 상대로는 통산 25타석 22타수 8안타 4홈런 10타점 2볼넷이고, 한때 팀메이트이자 도미니카 캠프시절부터 다저스 밥을 같이 먹었던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상대로는 통산 27타석 26타수 10안타 6홈런[23] 8타점. 톰 글래빈 상대로는 통산 90타석 75타수 27안타 6홈런 13타점. 글래빈에게는 삼진 5개 당하는 동안 무려 15개의 볼넷을 얻어내는등[24]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자랑한다. 글래빈이 메츠에 올때는 피아자가 살짝 아쉬웠을듯(...) 피아자에게 많은 타점을 조공한 선수들.[25]
클레멘스와 페드로를 상대로도 가히 본즈급의 OPS를 찍었고 커리어 말년 오클랜드에서나 제대로 상대해 본 로이 할러데이에게도 12타수 6안타 1홈런 4타점을 빼앗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통산 16타수 밖에 상대하지 않은 지옥의 종소리가 피아자에게 7안타 4홈런 11타점이나 털렸다는 것이다.(...) 메츠의 철천지 웬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그렉 매덕스, 존 스몰츠에게는 다소 부진했다지만 이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사실 상대전적 OPS 6할 정도야 이상할게 없다(...). 한편 김병현에게는 유달리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통산 10번 상대해서 고의사구 1개만을 얻어냈고 9타수 무안타 3삼진 1병살로 철저히 눌렸다. 박찬호와 대결에서는 홈런 1개 포함 16타수 6안타(.375)로 강했다.
선수 시절 내내 타자에게 불리한 구장만을 골라다녀서 손해를 좀 본게 아쉬운 점. 그럼에도 다저 스타디움부터 시작해서 프로 플레이어 스타디움, 셰이 스타디움, 펫코 파크, 콜리세움 등 모두 손꼽히는 투수친화 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통산 400개가 넘는 홈런을 쳐냈다. 덕분에 통산 OPS+ 수치가 142로 굉장히 높은데, 이는 포수 중에 전례가 없는 기록으로 레지 잭슨 같은 웬만한 외야 강타자들보다도 높은 수치다.
3.1. 수비력 논란?
당대 미국의 전문가나 코칭스탭들의 평가를 기준으로 하면, 물어깨를 제외하면 그의 수비능력은 좋지는 않은데 포수를 못할 정도는 아니다였다. 하지만 최근 대두되는 포구(프레이밍) 능력과 블로킹 능력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뛰어난 포수였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통계 분석이 발달함에 따라 포수 능력을 다각도로 평가하는 게 가능해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도루저지가 사실은 그렇게까지 엄청난 요소는 아니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26]박찬호와는 볼배합 관련해서 호흡이 맞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저명한 MLB 중계진에게까지 까이기도 했으며 특히 박찬호의 부진에는 피아자의 막장스런 리드 능력 때문이라는 극성스런 의견이 대세였으나 서재응과의 좋은 배터리 궁합을 보고 몇 년 사이 급성숙(?)해진 피아자의 리드를 칭찬하기도 하는 웃긴 일도 벌어졌다.[27]
유명한 일화로, 한 인터뷰에서 피아자는 박찬호가 변화구만 던지면서 도망가는 승부를 한다고 의문을 제기한적 있다. 국내에서는 이 인터뷰가 나오자 피아자의 볼배합이 무식하다고 깠지만 피아자는 박찬호가 당시 메이저리그 내에서도 열 손가락안에 들 강속구를 던질 수 있으면서도 정작 마운드 위에선 제대로 구사하지 않고 도망다니는 투구를 했기 때문에 박찬호의 마인드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28] 즉 박찬호는 메이저리거로써 패스트볼로 정면승부식 피칭을 해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데 왜 도망다니냐는 것. 특히 로저 클레멘스나 드와이트 구든도 데뷔 초기엔 잠깐 같은 증세를 보였지만 빅리그에 적응하고 나서 바로 파워피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대투수가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박찬호의 피칭 마인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포수 리드 항목에도 있는데, 이전까지 갖고있던 편견과 달리 메이저리그의 게임콜링은 같은 시기 크보나 NPB에 비해 훨씬 정교하고 엄격했다. 애초에 포수 혼자가 단독으로 투수한테 이거 던져라 저거 던져라 명령하지 않는 리그인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리드가 안 좋다는 것은 그 투수의 커맨드가 안 좋다는 뜻이다. 박찬호가 2013년 WBC중계중에 "피아자는 2스트라이크일때는 무조건 직구 던지랬어요"라고 폭로한 바 있다. 의도야 어찌 되었든 본인의 변화구를 잘 안받아줘서 아무래도 조금 서운했던 모양이다. 이 점은 한국야구의 틀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박찬호와 피아자의 야구관 차이를 말해주는 것.
이미지가 잘못 박힌 탓에 과도하게 까이는 탓도 있는데 실제 피아자는 박찬호가 호흡을 맞춘 포수중 게임출장 1위(89경기), 소화이닝 2위(385.1이닝)이며, 평균자책점도 3.71로 준수하다. 어깨가 약하다고 알려진 것과 다르게 박찬호 경기에선 20회 도루허용,12회 저지로 도루저지율도 0.375이다. 다저스 시절에만 한정하면 거의 5할대에 육박하였으나,(특히 1997년에 한정하면 5할 7푼정도였다. 1998년엔 트레이드 직전까지 도루 허용만 3개를 하고 하나도 잡아내지 못했지만...) 샌디에이고 시절 박찬호와 재회했을 때, 폭풍 도루허용(...)으로 도루저지율이 1할대에 그치면서 이미지를 깎아먹은 감이 있다.
피아자가 말린스-메츠로 이적한 뒤에 다저스가 야심차게 영입한 토드 헌들리의 경우에도 똑같이 작용했다. 헌들리 역시 빠따는 당시 포수들 중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정도로
결국 국내에서는 박찬호가 다저스 선발로 자리잡아가던 시점에 주전 포수였기 때문에 인지도가 높았고 메츠 시절에는 서재응과 호흡을 맞추기도 하였다. 반면 메츠 시절 서재응은 피아자와 궁합이 잘 맞는 편이었다. 언론 인터뷰에서 피아자의 볼 배합을 극찬하기도 하였다.
팬들 상상 이상으로 보수적인 미국 야구감독들이 특히나 중대하게 보는 사안이 수비인데, 그중에서도 중요한 자리인 주전포수로 계속 낙점한 것은 분명히 포수로서의 기본이 되니까 그랬던 것. 매년 떨어지는 도루 저지율과 별개로 매년 포구실책의 수가 적어졌던 걸 보면 비록 한동안 메츠에서의 1루수 출장시간이 있었음을 감안해도 이는 분명 그럭저럭 못봐줄 정도는 아니었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구위와 제구력의 격차가 크기로 소문난 선수라 볼을 남발할바엔 구위 좋은 패스트볼로 우겨넣고 안타를 맞는 것은 어느정도 감수하자라는 의도인 것[29]
각종 코치진의 증언과 박찬호의 해설을 볼때 팀플레이어형 자기희생적인 포수는 절대 아니라는 결론은 이견없이 나온다. 또한 이기적인 포수는 자신의 도루저지율을 위해 바깥쪽 속구만을 주로 요구하는 경우도 많기에 도루저지율을 기준으로 포수의 수비력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결론 또한 알 수 있다.
덧붙여 다저스 시절엔 노히트 노런 경기를 이끌기도 했다. 라몬 마르티네즈, 노모 히데오. 특히 비가 내리는 와중에서 투수들의 무덤 쿠어스필드에서 노히트노런을 이끌어냈다는 점을 보면, 수비력이 아주 나쁜 포수는 절대 아님을 알 수 있다.[30]
메이저리그는 적자생존이다. 피아자가 그나마 타격은 되니 어떻게든 살아남긴 했다 쳐도, 과연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그토록 수비력이 수준 이하였다면, 진작에 다른 포지션(예: 지명타자)으로 전향했을 것이다. 포수자원 대체야 뭐 유망주 키우거나 외부 영입 등 길은 많다.[31]
Baseball Prospectus에서 1988시즌부터의 프레이밍 수치를 공개하면서 피아자의 수비력에 대한 의외의 사실이 밝혀졌다. 놀랍게도 피아자가 리그 최고수준의 프레이밍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 자료에 따르면, 피아자는 1988-2014시즌까지 역대 누적 프레이밍 순위 7위를 기록 중이다. 그의 수비력에 대한 선입견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들지만, 전성기에 그는 거의 매년 Framing Runs 10위권 내에 들었으며, 심지어 1996년에는 Framing Runs 전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1996년 Framing Runs 순위
4. 명예의 전당 입성 및 도핑 논란
연도 | 득표율(%) |
2013 | 57.8 |
2014 | 62.2 |
2015 | 69.9 |
2016 | 83.0 |
일단 같은 해 출발하는 선수가 약켓맨, 약즈, 약사를 제외하더라도 크레익 비지오와 커트 실링이 있어서 첫 턴 입성이 쉽지만은 않을 뿐더러 그 다음해부터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같은 첫 턴 입성이 확실한 레전드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때문인지 일단 첫 해에는 57.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HOF 입성에 실패하였다. 다음해에도 그렉 매덕스, 프랭크 토마스, 톰 글래빈, 마이크 무시나 같은 선수들이 대기 중이며 기존의 크레익 비지오, 잭 모리스 등도 제쳐야 하는 상당한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당분간 호프집 입성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선수 본인은 만약 HOF 가게 된다면 메츠의 멤버로서 입성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톰 글래빈 역시 그에 대해 "역대 최고 타격의 포수니까 명예의 전당 첫 투표에 입성할 것"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은 2013년 2월.
피아자가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근육 강화제인 안드로스텐다이온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게 되었다. 이 안드로는 마크 맥과이어가 즐겨 사용했던 바로 그 약물이며, 게다가 바이옥스, 암페타민, 에페드라도 복용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일단 피아자가 맥과이어처럼 안드로를 MLB 사무국에서 금지약물로 분류하기 시작한 2004년 이전에 약물을 끊었다[33]고는 하는데, 이 말을 이제 과연 누가 믿어줄 지가 문제다. 설령 안드로스텐다이온, 암페타민 등의 복용문제가 당시 기준으로 금지약물 복용은 아니라고 쳐도, 현재 금지약물로 지정된 이상 투약이 100% 확실하여 빼도박도 못하는 선수는 물론 단순한 약물 의혹만 있는 선수도 싸잡아 비난하는 세태가 당연시되는지라 피아자처럼 약밍아웃을 한 이에게 대중들이 전과 같은 우호적인 시선을 보낼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하지만 피아자가 합법적인 규정 내에서 위 약물을 복용한 것을 인정했고, 문제가 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만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자서전에서 주장한만큼 이에 대한 여론의 귀추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주목해 볼만하다.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 피아자의 명예의 전당 득표율은 재수에 도전한 2014년에 62.2%로 전년보다 상승했고, 삼수째인 2015년에도 69.9%를 기록하며 꾸준히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배리 본즈나 로저 클레멘스 같은 다른 약쟁이들은 물론 제프 배그웰처럼 단순 의심만 받는 후보들조차 득표율이 전부 하락한 것과는 대조적이다.[34] 당시 규정 내 약물 사용을 자신이 먼저 고백했다는 데서 피아자에 대한 현지 여론은 이미 상당히 우호적으로 반전된 상태이고, 근년 후보가 하도 괴수들이 많이 모여서 당장 못 들어간 것일 뿐이라 간주하는 이들도 많다. 스테로이드에 대하여 거짓말을 했다는 확증이 없는 이상, 피아자의 쿠퍼스타운 입성은 이제 길어봤자 3년 내에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6년 투표에서 83%로 너끈히 기준인 75%를 넘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이제는 피아자가 LA 다저스의 모자를 쓰고 입성하냐, 뉴욕 메츠의 모자를 쓰고 입성하냐가 이슈인데, 마이크 피아자는 미련없이 커리어 하이를 보낸 뉴욕 메츠의 모자를 선택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 이는 톰 시버에 이은 팀 프랜차이즈 통산 두 번째 명예의 전당 입성자이며, 공통적으로 원 소속팀과 좋지 않게 헤어진 랜디 존슨과 비슷한 선례로 보인다. 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유라면, 역시 아무 말 안했으면 조용히 넘어갔을 일을 스스로 솔직하게 공개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청교도들이 세운 국가 답게 정직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며, 위증죄가 매우 큰 중죄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약물 복용을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앤디 페팃이 양키스 영구결번에 오른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피아자의 도핑은 엄연히 규정 내에서의 도핑이었기 때문에, 기록의 순수성이 훼손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부정한 기록이 된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작용했을 것이다.[35]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이크 피아자는 역대 명예의 전당 입성자 중 역대 최저 순위 지명자라고 한다. 재미있게도 이 해는 역대 최고 지명순위 HoFer(1라운드 1번,전체 1순위)와 역대 최저 지명순위 HoFer(62라운드 2번, 전체 1390위)가 동시에 나오기도.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마이크 피아자 | 0 | 101 | 207 | 62 |
HOF 입성자 평균 | 27 | 144 | 100 | 50 |
- JAWS - Catcher (5th)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마이크 피아자 | 59.4 | 43.1 | 51.2 |
포수 HOF 입성자 평균 | 53.4 | 34.4 | 43.9 |
5. 지도자 경력
2009 WBC, 2013 WBC 당시 이탈리아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참가하였다.2019년 11월 질베르토 제랄리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계약 기간은 2021년까지인데, 이탈리아 대표팀이 2021 WBC에 참가하기 때문에 이를 대비해 이탈리아계 야구 스타인 피아자를 감독직에 앉힌 걸로 보인다. ## 그러다 WBC가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2023년으로 연기되면서 2023년으로 자동 연장됐다.
WBC A조 첫 상대인 쿠바를 승부치기 접전 끝에 6:3으로 이기면서 감독 데뷔 첫승을 신고했다. 1라운드를 2승 2패로 마치면서 2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2라운드에서 강팀 일본에게 3:9로 패배하며 2라운드에서 마치게 됐다.
6. 여담
- 10대 임신을 주제로 한 영화 <주노(Juno)> OST로도 쓰인, 벨 앤 세바스찬이라는 밴드의 Piazza, New York Catcher라는 노래가 잘 알려져 있다. 딱히 이 마이크 피아자 선수와 큰 연관이 있는 노래는 아니고, 웹에서 검색해도 대체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나, 곡 자체만으로도 괜찮다보니 이 곡을 커버한 사람들의 영상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Piazza New York Catcher, are you straight or are you gay라는 가사가 나오기 때문에 무턱대고 듣는 야덕들은 다소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이 노래가 나오기 전부터 피아자는 게이라는 의혹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결국 이 때문에 피아자는 자신이 이성애자임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2005년 플레이보이지 모델 출신 여성과 결혼하며 이같은 의혹을 잠재웠다.
- 결혼직전 팀 동료에게 결혼반지는 어떤게 좋냐라는 질문을 했는데 다들 돈을 많이 버니 비싼 반지등을 사주라고 했지만 톰 글래빈이 어차피 이혼할 거 제일 싼 걸로 사줘라고 해서 주변이 빵터졌던 일화가 있다. 서재응의 증언
- 한국팬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메탈헤드이다. 특히, 잭 와일드와는 절친한데, 잭 와일드의 아들 중 헨드릭스 로즈의 미들네임에 그의 이름인 '마이크'가 들어갔을 정도. 실제로도 헨드릭스의 대부이기도 하다. 그 인연으로 블랙 레이블 소사이어티의 2집 Stronger Than Death의 동명 트랙 Stronger Than Death에 배킹보컬로 참여했다. 그것도 그로울링 파트(...) 또한, 뉴욕 메츠 시절의 피아자와 근육돌(?!)로 넘어가는 과도기 비주얼의 잭 와일드가 서로의 기타와 배트를 교환하는 사진도 찾아볼 수 있고, 2016년 피아자의 명예의 전당 헌액 때 잭 와일드가 페이스북에 축하메세지를 남긴 일화도 있다.
- 스파이더맨 홈커밍에 등장한 피터 파커가 마이크 피아자의 팬인데 방에 마이크 피아자와 관련된 물품과 뉴욕 메츠의 모자가 있다. 피터 파커의 거주지가 뉴욕 퀸스에다가, 숙모가 이탈리아계[36]라는 설정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감독이 캐릭터 설정을 꽤 신경쓴 듯 하다.
- Baseball Cube 에 마이크 피아자가 2009년에 LA 에인절스와 계약했다는 뉴스가 떠서 혼란을 주었는데 마이크 피아자는 친척지간인 동명이인의 24세 AA 우완투수이다. 이 동명이인 마이크 피아자는 결국 AA를 끝으로 2014년에 은퇴했다.
-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방송에서 해설위원을 맡은 박찬호가 해설을 하다가 투수의 컨디션에 관해 당시 피아자와의 일화를 이야기했는데. 전성기 시절 배터리를 이뤘던 사이인만큼 친하긴 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박찬호는 피아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박찬호의 피칭이 난조에 이를때면 마운드로 올라와서 "괜찮아?"하고 물어봤다고 한다. 박찬호는 "굿"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 2002년에 개봉한 휴 그랜트, 산드라 블록 주연의 투 윅스 노티스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여주인공인 산드라 블록이 파울볼을 잡으려 하는 바람에 겹쳐 피아자가 볼을 놓친다. 이후 피아자는 여주인공에게 양키스 게임이나 보러가라고 하고(...) 여주인공은 악명높은 메츠 팬들에게 엄청난 야유를 먹는다.
- 김병현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상대한 세 타자 중 마지막 타자였다. 김병현이 처음 받은 인상은 계속해서 공을 커트하기에 '잘하는 타자'였다고. 김병현은 이 경기에서 결국 업슛으로 피아자에게 삼진을 먹이고 첫 등판에서 첫 세이브를 기록한다. 53분 50초 부터
6.1. 로저 클레멘스와의 악연
뉴욕 메츠 시절의 사건으로 라이벌팀인 뉴욕 양키스의 로저 클레멘스과는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로저 클레멘스는 유독 피아자에게 약한 면모를 보였는데, 2000년 6월 9일 피아자가 클레멘스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1달 후인 7월 9일에 열린 서브웨이 시리즈 더블헤더 2차전[37]에 선발 등판한 클레멘스는 2회초 타석에 들어온 피아자에게 머리쪽 빈볼을 날렸고, 피아자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38] 대주자와 교체된 피아자는 헬멧을 쓴 덕에 심각한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이후 둘은 언론을 통해서 서로 공개적으로 비난을 주고받았다.공교롭게도 그해 2000년 월드시리즈에 양키스와 메츠가 동시에 진출하면서 둘은 다시 한 번 맞붙게 되었다. 결국 10월 23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월드시리즈 2차전 1회초에 또다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피아자가 클레멘스의 공을 친 게 파울이 됐는데 이 때 부러진 방망이 조각이 마운드에 있던 클레멘스한테까지 튕겨져 날아왔다. 그리고 고의였는지 실수였는지는 모르지만 클레멘스는 그 방망이 조각을 집어들더니 1루 선상을 달리고 있던 피아자를 향해 던져버렸다. 사실 동영상을 보면 클레멘스도 방망이 조각을 마치 타구인 것 처럼 잡은 후에 1루로 던지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에...
이미 석달 전의 빈볼 사건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피아자는 분을 못이겨 클레멘스를 향해 몇 마디를 던졌고, 클레멘스가 이에 무시하는 투로 응수하면서 순식간에 벤치 클리어링이 터지고 말았다. 이후 2001 올스타전에 선발 투수와 선발 포수로 맞붙었을 때도 뉴스거리를 많이 생산했다 카더라.
이후 시간이 흘러 2004년 올스타전을 앞두고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가버린 클레멘스가 선발투수로, 피아자가 선발포수로 뽑히면서 두 앙숙이 내셔널리그 올스타 팀의 배터리를 이루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언론에서 "서로에게 감정이 없다.", "다 지나간 일이다.", "각자 일에 충실히 할 것"이란 발언을 쏟아내면서 화해무드가 조성되나 싶었는데…올스타전 1회 초장부터 볼배합을 놓고 마찰이 벌어졌고, 결국 클레멘스는 1이닝 동안 홈런 2개 포함 5피안타 6실점 3자책점을 기록하고 내려왔다. 엄청나게 난타를 당하는 바람에 우익수 새미 소사가 초반부터 열일을 했다.
6.2. 이탈리아와의 인연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많은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처럼 조상이 시칠리아섬 출신이다. 2016년에 세리에 A[39] 구단인 팔레르모 FC 인수 루머가 있었는데 직접 부정하며 밝힌 사실. 그리고 피아자 가문이 이탈리아 계통이었던 까닭에[40]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하는 이탈리아 대표팀에 발탁, 이탈리아 국기를 달고 출전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탈리아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야구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으로 미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지만, "나의 심장은 이탈리아에 있다. 이탈리아는 나의 일부" 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이탈리아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다.
현역 메이저리거였던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41] 이탈리아 야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하였던 바 있고, 은퇴 이후에도 지도자 신분으로 이탈리아 대표팀에 합류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선수 시절 각종 인터뷰에서도 이탈리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곤 했다. 이러한 애정을 바탕으로 2016년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하며 복수국적자 신분이 되었고, 이탈리아로 완전 이민을 택하며 현재는 이탈리아에 거주 중이다.
이탈리아 혈통답게 축구팬이기도 하여서 로마에서 열린 2008/2009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FC 바르셀로나 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직접 관전하기도 했다. 현재는 이탈리아 야구대표팀 감독이지만 간간히 세리에 A 프로구단( 팔레르모의 팬인듯)에 놀러가서 사진찍히는거 보면 확실히 축구도 좋아하는 듯하다.
7. 연도별 성적
마이크 피아자의 역대 MLB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1992 | LAD | 21 | 74 | 16 | 3 | 0 | 1 | 5 | 7 | 0 | 4 | 12 | .232 | .284 | .319 | .603 | 0.0 | 0.1 |
1993 | 149 | 602 | 174 | 24 | 2 | 35 | 81 | 112 | 3 | 52 | 86 | .318 | .370 | .561 | .932 | 7.4 | 7.0 | |
1994 | 107 | 441 | 129 | 18 | 0 | 24 | 64 | 92 | 1 | 43 | 65 | .319 | .370 | .541 | .910 | 3.8 | 3.6 | |
1995 | 112 | 475 | 150 | 17 | 0 | 32 | 82 | 93 | 1 | 49 | 80 | .318 | .400 | .606 | 1.006 | 6.0 | 6.2 | |
1996 | 148 | 441 | 129 | 16 | 0 | 36 | 87 | 105 | 0 | 102 | 93 | .336 | .422 | .563 | .985 | 6.6 | 5.4 | |
1997 | 152 | 602 | 201 | 32 | 1 | 40 | 104 | 124 | 5 | 80 | 77 | .362 | .431 | .638 | 1.070 | 9.1 | 8.7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1998 | LAD/ FLA/ NYM | 151 | 626 | 184 | 38 | 1 | 32 | 88 | 111 | 1 | 58 | 80 | .328 | .390 | .570 | .960 | 6.6 | 6.2 |
1999 | NYM | 141 | 593 | 162 | 25 | 0 | 40 | 100 | 124 | 2 | 51 | 70 | .303 | .361 | .575 | .936 | 4.5 | 4.3 |
2000 | 136 | 545 | 156 | 26 | 0 | 38 | 90 | 113 | 4 | 58 | 69 | .324 | .398 | .614 | 1.012 | 5.8 | 5.1 | |
2001 | 141 | 573 | 151 | 29 | 0 | 36 | 81 | 94 | 0 | 67 | 87 | .300 | .384 | .573 | .957 | 4.6 | 4.5 | |
2002 | 135 | 541 | 134 | 23 | 2 | 33 | 69 | 98 | 0 | 57 | 82 | .280 | .359 | .544 | .903 | 4.6 | 3.0 | |
2003 | 68 | 273 | 67 | 13 | 0 | 11 | 37 | 34 | 0 | 35 | 40 | .286 | .377 | .483 | .860 | 1.6 | 2.1 | |
2004 | 129 | 528 | 121 | 21 | 0 | 20 | 47 | 54 | 0 | 68 | 78 | .266 | .362 | .444 | .806 | 0.5 | 0.2 | |
2005 | 113 | 442 | 100 | 23 | 0 | 19 | 41 | 62 | 0 | 41 | 67 | .251 | .326 | .452 | .778 | 0.9 | 0.1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2006 | SD | 126 | 439 | 113 | 19 | 1 | 22 | 39 | 68 | 0 | 34 | 66 | .283 | .342 | .501 | .843 | 1.9 | 3.0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2007 | OAK | 83 | 329 | 85 | 17 | 1 | 8 | 33 | 44 | 0 | 18 | 61 | .275 | .313 | .414 | .727 | -0.3 | 0.1 |
MLB 통산 (16시즌) |
1912 | 7745 | 2127 | 344 | 8 | 427 | 1048 | 1335 | 17 | 759 | 1113 | .308 | .377 | .545 | .922 | 63.7 | 59.5 |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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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니 리나레스 |
이안 킨슬러 |
산도르 귀도 |
||||||
[1]
요기 베라,
자니 벤치,
칼튼 피스크 등 공수 양면에서 활약한 선배 대포수들이 세웠던 역대 포수 최고의 타격기록들 다수를 경신했다.
[2]
역대 5000타석 이상 소화한 포수 중
진 테니스(Gene Tenace)와 함께 유이하게 wRC+ 140을 찍고 있는 포수이다. 다만 이쪽은 당시가 투고타저 시기였던 데다가 본인의 스타일도 홈런을 뻥뻥치는 스타일이 아닌 눈야구 중심의 타자라서 클래식 비율 스탯(.241 .388 .429)과 누적(1060안타 210홈런)에서 많이 부족하여 피아자에게 압도적으로 인지도가 밀린다. 현역 중에는
버스터 포지가 128을 기록하며 가장 높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3]
따라서 이 때문에 빅 레드 머신의 주역이었던
자니 벤치에 비해서는 포수로만 따지자면 확실히 밀리게 되었다. 자니 벤치는 모든 부분에서 굉장한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
[4]
어느 정도였냐면 마이크의 드래프트 선발이 불투명해지자 아들을 프로 무대에 데뷔시키기 위해서
메이저리그 구단을 하나 사려고 했다고 한다. 결국 아들들이 이를 만류하여 빈스가 구단주가 되는 일은 없었다.
[5]
형제들중 독보적으로 운동능력이 엄청나서가 아니라 전부다 저주받은 운동능력을 가진 형제들중 그나마 라는 뜻이다.(...)
[6]
라소다, 피아자 모두 이탈리아계이다.
[7]
다만 에프렌 나바로 같이 전체 지명순위는 더 낮은 메이저리거가 있기는 있다. 나바로의 경우는 2007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50라운드(전체 1450순위)로 지명되었다. 참고로 이 해의 드래프트는 1453명이 지명되었다. 다만 나바로는 메이저리그 6시즌 통산 157경기 78안타 3홈런 22타점 타율 .241에 OPS .635라는 백업 선수 수준의 성적을 냈고, 일본의 한신 타이거스에서 2년간 81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264에 3홈런 27타점 OPS .680으로 여기서도 실패한 후 멕시칸리그로 갔다. 또한 메이저리거도 드래프트에 지명받지 못한 선수와 자유계약을 맺는 것도 있다 보니 이런 선수는 더 기대치가 낮았다고 봐야 한다.
프랭크 허먼이 그 케이스. 다만 허먼도 메이저에서는 패전처리나 전전하다가 일본행을 택한 선수이다. 여담으로 가장 픽 순위가 낮은 메이저리거는 1996년 드래프트 89라운드 (전체 1721번)의 트래비스 펠프스이다.
[8]
2023년 기준 메이저리그 30팀 곱하기 40인 로스터를 계산하면 1200명이 나온다. 1309번이면 앞순번 선수들로 메이저리그 로스터를 다 채우고도 한참 뒷순위라는 것..
[9]
현재는 메이저리그 드래프트를 20라운드까지만 뽑으니 제도가 변경되지 않는 이상 깨질 수가 없다.
[10]
아예 재능이 없진 않았고, 특히 시력이 매우 좋았다. 1993년 봄 훈련 때 라소다는 안과의사 로젠바움에게 어느 마이너 리그 선수가 탁월한 프로 선수가 될지 예측해보라고 요구했고, 로젠바움 의사는 시력 검사에서 우수한 결과가 나온 피아자를 꼽았다. 2.50까지 잴 수 있는 특별 제작한 시력 검사표를 써서 프로 야구 선수들이 얼마나 잘 볼 수 있는지를 측정할 수 있었다. 바로 그해 피아자는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11]
안과 의사로 일하던 루이스 로젠바움은 1992년 봄에도 메이저 리그 선수들뿐 아니라 마이너 리그 선수들까지 다저스 소속의 선수들을 검진하기 위해서 훈련 시설에 방문했다. 시력 검사가 이루어지고 라소다 감독이 퉁명스론 어투로 로젠바움에게 어느 마이너 리그 선수가 메이저 리그에서도 잘 나갈지 예상할 수 있겠냐고 묻자, 그는 시력 검사에서 아주 우수한 결과가 나온 마이너 리그 1루수를 점찍었다. 바로
에릭 캐로스…
[12]
출처: 데이비드 엡스타인, 『스포츠 유전자』, 이한음 옮김, 열린책들(2015), p65-67.
[13]
이는
마이크 소시아 퇴출,
폴 코너코 포기,
페드로 마르티네즈 포기,
대런 드라이포트 계약 등과 함께 결과적으로 보면 다저스 역사상 최악의 실책 중 하나로 꼽힌다.
[14]
다만 이 당시 다저스는 피아자를 내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피아자는 트레이드 이전부터 다저스 구단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걸맞은 연봉 대우를 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당시 다저스는 현 시점처럼 돈을 메가톤급으로 쓰던 구단도 아니었고, 오말리 구단주 밑에서 선수를 키워서 쓰던 시기라서 선수들의 연봉을 후하게 줄 수도 없었던 사정이었던 구단임에도 그런 다저스가 1994년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큰 금액이었던 계약금 120만 달러를 쾌척해가면서 데려온 선수가 있었는데, 그 선수가 바로
박찬호였다. (직전 해였던 1993년 당시에만 해도 100만 달러 계약금조차도 상당히 큰 금액이던 시기였다. 이 계약금의 주인공은
알렉스 로드리게스.) 이 때문에 피아자 본인도 연장 계약 오퍼로 자신의 실력만큼이나 큰 오퍼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구단에서 많은 금액의 연장 계약 오퍼를 주지 못하게 되자 박찬호는 계약금 120만 달러나 주면서 데려왔으면서 자신에게는 겨우 이거? 라는 입장으로 박찬호의 이름까지 직접 거론하면서 구단 관계자와 마찰을 빚었고, 프랜차이즈답게 대우를 해 달라고 압력을 넣으면서 지속적으로 연장 계약을 거부하자 이를 보다못한 다저스 구단이 선수가 고점에 있을 때 트레이드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피아자 본인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힌 내용인데, 실제로 피아자는 박찬호의 계약 건을 두고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메이저리그로 직행을 하는 것은 특혜라는 입장으로 굉장히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을 정도로 박찬호와의 사이가 꽤 서먹했다. 대놓고 본인과 박찬호는 코드가 맞지 않았다고 언급했을 정도. 어쨌든 당시 기준으로 다저스는 피아자와의 연장 계약이 틀어져서 이후에 FA로 풀린다 해도 잡지 못할 상황에서 그래도 남는 장사를 했기 때문에 이 시점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실책이라고 보기 어려웠지만 이후
루퍼트 머독 구단주 부임 이후에 빚어진 구단의 갖가지 삽질로 인해 최악의 결과를 빚어버렸고, 저 세 가지 중에서도 제대로 실책이라고 꼽을 만한 것은 페드로 마르티네즈 건과 대런 드라이포트 건 정도이지 나머지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여기에 그 시절
노모 히데오 정도를 제외하고는 당시 다저스의 투수진들 대다수가 피아자와 배터리를 맞추는 것을 상당히 싫어했기 때문에, 피아자를 더 데리고 있기 어려웠던 사정도 있었다고 한다.
[15]
재밌게도 피아자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던 토미 라소다는 피아자에게 절대 1억 달러 계약을 안겨주면 안된다고 다저스에 신신당부했다.
[16]
물론 같이 말린스로 이적한 토드 질 역시 말린스의 포풍세일 정책 때문에 타자가 필요했던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 이후 2000년에 메츠로 옮겼다.
[17]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피아자의 대체자로 영입한 선수가 다저스에서 올스타 포수로 성장한 폴 로두카였다.
[18]
말년에는
카를로스 벨트란,
클리프 플로이드,
데이빗 라이트의 합류로 5, 6번에 자리했다.
[19]
물론 원정팀 선수 중에는 셰이 스타디움에서 3홈런을 친 선수가 없진 않았다. 그리고 경기장이 시티필드로 바뀐 이후에도 한참 후에, 2015년이 되어서야 홈에서 3홈런을 친 메츠 선수가 등장했다.
[20]
쿠바 망명자 가족에서 태어났으니까 뭐 월드팀에 포함되어도 크게 문제까진 없다고 보면 될듯.
[21]
162경기당 평균 36홈런. 순수 포수 출장 경기 홈런만 해도 396홈런이다. 그야말로 포수 중에서는 역대 최고의 장타력을 가진 선수이다.
[22]
이 기록의 보유자는
테드 윌리엄스,
스탠 뮤지얼,
루 게릭,
멜 오트,
행크 아론,
베이브 루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알버트 푸홀스,
치퍼 존스, 그리고 마이크 피아자까지 열 명 뿐이다. 이 중 푸홀스는 노쇠화로 인해 2021년 현재 통산 3할이 깨졌다.
[23]
페드로에게 가장 많은 홈런을 때린게 피아자였다. 형 라몬과의 관계도 있고, 피아자가 페드로가 레드삭스와 계약 규모를 상회하는 수준의 계약을 요구하면서 보스턴 시절 페드로와 피아자는 계속해서 디스하는 사이였다. 결국 페드로가 2005년 메츠로 오며 다시 배터리가 되지만...
[24]
물론 글래빈의 통산 1회 성적이 K/BB가 1에 가까울 정도였던 점도 있지만 글래빈 상대로 90타석을 상대하면서 13타점에 OPS가 1.133이라는건 범상치 않은 수치다.
[25]
2001년부터 같은 지구 팀끼리 지겹도록 자주 만나게 된 MLB 대진의 특성상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나
필라델피아 필리스,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뛴 선수들은 타수가 많이 쌓였기 때문에 타점 수가 높게 측정되는 것이 반영되긴 했다.
[26]
사실 도루저지는 포수보다 투수의 책임이 더 큰 부분.
[27]
한국 내 메이저리그 팬덤 자체가
박찬호로 대표되는 초기 한국인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활약으로 생성되어 그들의 성적 따라 팬덤 규모의 확대와 축소가 일어났기에 메이저리그 투수들과 연관있는 포수들은 숙명적으로 한국 내 언론에게 이런 방식으로 언급되었다. 일례로 수비력에 있어서는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
이반 로드리게스는 텍사스 시절 부상으로 구위가 좋지 못했던
박찬호와 연계되어 '포수 마스크를 썼을 때의 팀 평균자책점'이라는 개념으로 폄하된 적도 있다. 이후 FA로
플로리다 말린스로 이적해서 팀의 2003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견인하며 팀의 평균 자책점은 투수 구위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증명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박찬호의 부진이 이반 로드리게스에게 책임이 전가되며 반사이익을 얻었던 인물은
투수력이 좋은
컨텐더 팀들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뛴 마이크 피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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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런 발언은 한국 야구팬들에게 '미국야구 = 무조건 정면승부'라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고정관념을 갖게 하는데 원인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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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제구력이 나쁜 선발투수나 너클볼러나 싱커볼러같이 홈플레이트에서 심한 변화를 일으키는 구질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일부 투수들이 주전포수 대신 전담포수를 둔 예는 지금도 있다. 예를 들면
팀 웨이크필드나
그렉 매덕스. 이 투수들은 비슷하게도 당시 팀내 주전이지만 궁합이 안 맞는다고 GG쳤던 포수들이
제이슨 배리텍,
하비 로페즈라는 리그 상위권의 공격형 포수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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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라몬 마르티네즈와는 꽤 불협화음이 있었다. 피아자가 파이어세일 중이던 마이애미로 트레이드되며 골드글러브 포수 찰스 존슨+
바비 보니야+
게리 셰필드를 받아왔을 때, 라몬은 언론에 "더이상 주자나 폭투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저 마운드에서 던지는 것만 신경쓰면 되니 훨씬 자신감이 생긴다"며 피아자를 간접적으로 디스하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형의 뜻을 이어받아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보스턴 시절 끊임없이 피아자의 신경을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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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피아자는 선수생활 마지막 시즌 1시즌을 제외하면
지명타자를 쓰지 않는 내셔널리그에서 뛰었고, 1루수 전향은 실패해서 30대 중반에 다시 포수 포지션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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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프 펄먼 기자의 책 <The Rocket That Fell to Earth>에서 대놓고 스테로이드 복용자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분히 무차별 폭로성이 짙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이 책 외에는 아무 데서도 언급된 바 없고 팬들은 이 책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 또한
이반 로드리게스도 이 책에 나왔지만
호세 칸세코의 책 <Juiced> 외에 아무런 도핑테스트나 각종 신뢰할만한 소스에서 언급된 바 없다는 점에서 약쟁이로 치부할 수 없다. 그리고 기레기들 덕에 퍼지는 HOF 득표율을 까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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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미국 CBS 스포츠는 피아자가 자서전을 통해 현재 금지 약물인 근육강화제 안드로스테네디온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전했다. 피아자는 또 바이옥스, 암페타민, 에페드라도 복용했지만 이 약물들이 금지되기 전에 복용을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드로스테네디온이 1998년 '홈런왕'으로 이름을 날린 마크 맥과이어의 라커에서 발견되자 더는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안드로스테네디온은 2004년 금지 약물로 분류됐다. 피아자는 "힘을 원했지만 감옥에 가고 싶진 않았다"고 밝혔다.
# 참고로 당시 메이저리그는 안드로를 금지약물로 취급하지 않았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는 스테로이드 계열 금지약물로 지정하고 있었다(NFL, NCAA도 금지약물로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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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제프 배그웰도 피아자처럼 안드로스텐다이온이 금지되기 이전 복용했음을 고백한 사례이다. 결국 둘 다 명전 입성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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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피아자가 '금지 약물을 쓰지 않았다'는 근거는 '안드로스텐다이온을 사용하긴 했지만, 금지 약물로 지정된 2004년 이후에는 끊었다'는 피아자의 주장밖에 없긴 한데, 이걸 반박할만한 증거나 정황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냥 닥치고만 있어도 다들 청정타자로 알아서 추겨세워줬을 상황이었음에도 굳이 도핑 사실을 고백했다는 점, 기록을 봐도 '2004년을 기점으로 안드로를 끊었다'는 피아자의 주장과 깔끔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점(2004년과 2005년에 타격 성적이 급락하고 2006년에
마지막 불꽃을 불사른 뒤 2007년에 WAR 마이너스를 찍고 은퇴했다.) 때문에 저 발언에 대해서는 대부분 믿어주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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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숙모 역의
마리사 토메이도 실제로 이탈리아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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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경기가 취소되어 더블헤더 1차전이 낮에 열리게 된 것인데, 이 경기는 메츠의 홈인 셰이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결국 원래 이날 예정되어 있던 경기는 더블헤더 2차전이 된 셈인데, 이 경기는 양키스의 홈인 양키 스타디움에서 시작하는 경기. 따라서 1차전 경기가 끝난 후 관중들은 모두 셰이 스타디움에서 지하철을 타고 양키 스타디움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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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부상으로 얼마 후 열린 그해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내셔널리그 포수로 선정되었음에도 출장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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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팔레르모 FC는 1부리그인
세리에 A 소속으로 15-16시즌 기준으로 아슬아슬하게 강등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끝없는 추락으로 인해 16-17시즌에 세리에 B로 강등, 18-19시즌에 회계 부정행위가 적발되며
세리에 D로 강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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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피아자가 인종차별성 발언을 했을 때 국내 기자들은 이 점을 들어 피아자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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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의 경우 국적에 상관없이 부모/조부모의 국적이나 출생지에 따라 대표팀 국적 선택이 가능하다. 실제로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초대 대회 때는 미국 대표팀 소속으로, 2회 대회 때는 도미니카공화국 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