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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tzia III.a Santxitz | ||
가문 | 세메노 왕조 | |
생몰년도 | 미상 ~ 1000년? | |
출생지 | 팜플로나 왕국 | |
사망지 | 팜플로나 왕국 | |
재위 기간 |
팜플로나 왕국 국왕 | 994년 - 1000년 또는 1004년 |
아버지 | 안초 2세 | |
어머니 | 우라카 페르난데스 | |
형제 | 라미로 산치츠, 온찰루 산치츠, 아다 산치츠 | |
배우자 | 세메나 페르난디츠 | |
자녀 | 안초 3세, 우라카 가르체이츠, 엘비라 가르체이츠, 가르치아 가르체이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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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팜플로나 왕국 8대 국왕. 가르치아 산치츠 2세라고도 불린다.2. 생애
팜플로나 왕국 7대 국왕 안초 2세와 카스티야 백작 페르난도 곤살레스의 딸 우라카 페르난데스의 장남이다. 형제로 라미로 산치츠, 온찰루 산치츠, 우라카 산치츠가 있었다. 994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왕위에 올랐다. 팜플로나 왕국이 관리하던 아라곤에서는 어머니 우라카가 통치를 행사했지만, 나중에는 남동생 우라카 가르체이츠가 관리했다.가르치아 3세는 왕국에 쳐들어온 후우마이야 왕조의 실권자 알 하지브 알 만수르에 맞서 싸우면서 아버지가 후우마이야 왕조와 맺은 봉신 협약을 파기했다. 그러나 996년 후우마이야 왕조의 강력한 공세에 버티지 못하고 코르도바로 사절을 보내 봉신 서약을 맺어야 했다. 997년 칼라타유드(Calatayud)에 들렀다가 그곳 총독의 동생과 갈등을 벌인 끝에 살해했다. 알 만수르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50여 명의 기독교 유지들을 처형했다.
1000년 7월 29일 카베라 전투에서 카스티야 백작 산초 가르체스, 살다냐의 가르시아 고메스 백작과 함께 알 만수르에 대적했으나 패배했다. 이후 아들 안초 3세가 처음으로 왕으로 언급되는 1004년까지의 행적은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그가 카베라 전투의 여파로 사망했고 사촌인 비구에라 왕 산초 라미레스가 팜플로나를 이끌었을 것이라 추정하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