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 사건 [ruby(秋, ruby=あき)][ruby(葉, ruby=は)][ruby(原, ruby=ばら)][ruby(無, ruby=む)][ruby(差, ruby=さ)][ruby(別, ruby=べつ)][ruby(殺, ruby=さっ)][ruby(傷, ruby=しょう)][ruby(事, ruby=じ)][ruby(件, ruby=けん)][1] Akihabara massac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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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eee,#ddd><colbgcolor=#000> 일시 | 2008년 6월 8일 | |
발생 위치 | 일본 도쿄도 아키하바라 | |
유형 | 흉기난동, 교통사고 | |
범인 | 카토 토모히로 | |
피해 | <colcolor=#eee,#ddd><colbgcolor=#000> 사망 | 7명 |
부상 | 1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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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8년 6월 8일 일본 아키하바라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 사건이다.
2. 범인
자세한 내용은 카토 토모히로 문서 참고하십시오.3. 사건 정황
당시 아키하바라는 휴일이었고 보행자 천국 이벤트(歩行者天国)[2]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가로운 휴일의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 12시 35분경 츄오도리(中央通り 중앙거리)에서 2톤 트럭이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그대로 돌진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5명을 그대로 덮쳤다.[3] 트럭 운전자는 맞은편 차선에서 오던 택시로 돌진해서 부딪친 후 차에서 내렸다.
경찰관과 행인들은 처음엔 단순 교통사고인 줄 알았고 트럭에 치인 사람들을 구하러 근처로 다가왔다. 이 때 범인은 준비해 둔 단검을 빼들어선 괴성을 마구 질러대며 눈 앞의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했다.[4] 테러범은 출동한 경찰관 오기노 히사시(荻野 尚)에 의해 붙잡혔다. 오기노는 맨 처음엔 진압봉으로 대응하다가 범인의 칼에 찔렸지만 방검복 덕분에 큰 부상을 입지 않았고 이후 권총을 뽑아서 겨누자 범인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단검을 버리며 투항했다. 이는 불과 10여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최초 피해자 무토 마이는 교통사고라고 생각해서 도와주러 갔다가 살해당했고 거리에서 메이드 복장으로 아르바이트 중이던 여성, 핸드폰 가판대 아르바이트 등 근처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 또한 변을 당했다.
범인은 당시 25세였던 아오모리현 출신 카토 토모히로(加藤智大)로, 기후현의 단기대학을 졸업한 후 경비원·자동차 공장, 주택자재회사의 비정규직 직원, 트럭 운전기사 등을 전전하며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사건 당시 사용한 트럭 또한 도요타의 하청 공장인 간토자동차공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 렌트한 트럭이었다.
범인은 등산용 나이프 외 5개의 나이프를 더 소지하고 있었는데 사건 이틀 전 밀리터리 수입잡화점에서 구입한 걸로 밝혀졌다. 사건 자체는 2005년 센다이에서 일어난 트럭 폭주 사건에서 범행에 트럭이 이용된 점, 그리고 이 사건 이전에 있었던 가나가와 마사히로가 츠치우라 연속살상사건(土浦連続 殺傷事件)을 저지르면서 트럭과 나이프를 이용한 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범인은 2ch(현 5ch)에 1,000건이 넘는 게시물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인터넷 활동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 했으나 그마저도 갈수록 고립감을 느끼게 되자 결국 6월 8일 새벽 5시 21분에 "아키하바라에서 사람을 죽일 겁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차로 사람들을 치고, 차를 쓸 수 없게 되면 나이프를 사용할 겁니다. 모두 안녕"이라는 내용이었다. 범인이 작성한 스레드와 그와 관련된 2ch 스레드는 대부분 삭제됐지만 당시 다른 2ch 유저들은 범인을 향해 '낚시하지 마라', '할 용기도 없으면서', '어디 해볼 테면 해봐라'라는 식으로 자극했다.[5]
2010년 1월 8일에 1심 재판이 시작되었다. 재판 과정이 길고 긴 걸로 유명한 일본 법정의 관례로 봐선 이 사건의 재판도 길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이례적으로 5년 만에 끝났다. 범인은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했다.
그리고 2011년 3월 24일,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다. #
범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한 것으로 미뤄 보아 항소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결국 항소해서 2심 재판이 이어졌다. 국선변호인은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당연히 인정되지 않았고, 2012년 9월 12일 도쿄고등법원 재판부 역시 죄질이 너무 나쁘다는 이유로 그대로 사형 판결을 유지했다.
동년 9월 25일 변호인이 상고했으나 2015년 2월 2일 최고재판소에서 상고를 기각하면서 3심까지 간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만에 사형이 확정됐다. # 사실 이보다 피살자가 더 적은 사건의 경우라도 사형이 쉽게 내려지는 판이니 예상된 결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사법부는 정상참작의 사유가 없으면서 2명 이상을 살해한 자는 예외 없이 사형 판결을 내려 왔다. 또 범인의 죄목인 대량살인이 워낙 흉악하며 범인이 자신의 죄만 인정하지 반성하지도 않는 흉악범이라서 그가 사형을 선고받은 것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나가야마 기준)
결국 범인 카토 토모히로는 구치소에 수감되었고 수감된 지 14년 만인 2022년 7월 26일 오전 사형이 집행되어 향년 39세로 사망했다. 워낙 죄가 흉악한 터라 그가 사형에 처해졌을 때 일본에서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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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카와 요시히사 법무대신의 카토 토모히로 사형 집행 후 발표 ( 마이니치 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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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집행 관련 뉴스 ( 니혼 테레비) |
3.1. 사망자 명단 및 사인
사망자들의 사인 및 뒷이야기는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본어)3.1.1. 트럭 뺑소니
- 나카무라 카츠히코([ruby(中, ruby=なか)][ruby(村, ruby=むら)][ruby(勝, ruby=かつ)][ruby(彦, ruby=ひこ)] 74세 남성, 도쿄도 스기나미구, 치과 의사 은퇴, 사인: 둔상에 의한 흉부대동맥 파열, 전신에 걸친 다발성 외상)
- 후지노 카즈노리([ruby(藤, ruby=ふじ)][ruby(野, ruby=の)][ruby(和, ruby=かず)][ruby(倫, ruby=のり)] 19세 남성, 사이타마현 쿠마가야시, 도쿄전기대 2학년, 사인: 외상성 뇌손상, 전신에 걸친 다발성 외상)
- 카와구치 타카히로([ruby(川, ruby=かわ)][ruby(口, ruby=ぐち)][ruby(隆, ruby=たか)][ruby(裕, ruby=ひろ)] 19세 남성, 지바현 나가레야마시, 도쿄정보대 2학년, 사인: 두개골 골절로 인한 뇌손상)
3.1.2. 칼
- 미야모토 나오키([ruby(宮, ruby=みや)][ruby(本, ruby=もと)][ruby(直, ruby=なお)][ruby(樹, ruby=き)] 31세 남성, 사이타마현 와라비시, 회사원, 사인: 폐 관통상으로 인한 과다출혈, 흉부자상)
- 코이와 카즈히로([ruby(小, ruby=こ)][ruby(岩, ruby=いわ)][ruby(和, ruby=かず)][ruby(弘, ruby=ひろ)] 47세 남성, 도쿄도 이타바시구, 무직, 사인: 유족의 요청으로 공개되지 않음)
- 마츠이 미츠루([ruby(松, ruby=まつ)][ruby(井, ruby=い)] [ruby(満, ruby=みつる)] 33세 남성, 가나가와현 아쓰기시, 요리사, 사인: 동맥 손상으로 인한 실혈사, 복부자상)
- 무토 마이([ruby(武, ruby=む)][ruby(藤, ruby=とう)] [ruby(舞, ruby=まい)] 21세 여성, 도쿄도 키타구, 도쿄예대 4학년, 사인: 대정맥 외 다수 장기손상으로 인한 실혈사, 복부자상)
4. 사건 이후
- 사건은 이후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비정규직 출신의 범행'이라는 점에서 일본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고찰이 있었는가 하면 인터넷상에서는 심화되는 일본의 빈부격차, 양극화와 관련해서 극단적 커뮤니티 5ch(사건 당시에는 2ch)를 중심으로 그를 "격차사회의 영웅"으로 떠받들기도 했다. 당장 일본 웹에서 카토 토모히로의 이름과 영웅이라는 한자를 같이 검색해 보면 일본 정부를 마구 비난하면서 일반인들이 감히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으니 신이라느니, 일요일에 아키하바라를 거니는 "인생의 승리자"인 젊은 놈들을 응징함으로써 인생의 패배자들의 한을 널리 알렸다느니 따위 등의 스레드들이 내걸렸던 것을 볼 수 있으며( 출처) 2ch에서는 메이드가 메이도(冥土, 명토)[6]로 갔다느니 하는 고인드립 및 경찰이 현장에서 범인과 대치하는 사진을 스타워즈 제다이 검술대결로 합성한 고인드립성 합성사진( 출처)까지 나돌아다니고 있었다.[후방주의] 아예 일부는 이 사건을 누명 사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범인이 갖고 있던 동인지에 동방 동인지도 포함되어 있었고, 범인이 사건 당일, 자기 친구에게 해당 흉기인 나이프를 보여주면서 "이게 동방에서 사용되었던 나이프다." 라는 발언을 했음이 드러나면서, 아무 잘못도 없는 동방 프로젝트도 언론에서 까이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아키하바라와 동방의 이미지는 꽤나 안 좋아졌다.
- 이 사건 이후 나이프에 대한 단속도 철저해져서 나이프 휴대는 상상도 못 하고 심지어 빅토리녹스(통칭 맥가이버칼)조차도 휴대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약 6개월 전인 2007년 12월에 일어난 사세보 스포츠센터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총기규제 강화가 논의되고 있었는데 때마침 이런 상황에서 이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총기뿐만 아니라 나이프를 포함한 도검류 규제까지도 포함된 총기 및 도검류 규제에 관한 개정 법안이 제출, 통과되어 시행되었다.
- 인터넷상에 올라온 불온한 키워드(살인, 자살, 로리 등)를 감시, 수집하는 예고IN도 이 사건 때문에 제작되었다.
- 카토 토모히로는 2017년에 사형수들의 그림 전시회에 답답할 울( 鬱)자를 A4용지 81장에 빼곡히 써서 아이돌 마스터 극장판 포스터를 만들어 출품했다. #
-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일어나기 7년 전 같은 날인 2001년 6월 8일에 이케다 초등학교 무차별 살상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매년 6월 8일이면 두 사건이 동시에 언급되는 일이 많다.[8]
- 사건 10년차를 맞아 추모 행렬이 있었다. #
- KBS2 스펀지 249회 방송분[9] 및 9층 시사국 2023년 8월 방송분[10], 2023년 9월 3일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23년 9월 23일 차트를 달리는 남자[11] 등에서 이 사건을 소개했다.
5. 유사 사건
- 1981년 6월 17일 도쿄도 고토구에서 가와마타 군지(川俣軍司)라는 29세의 실직자가 지나가는 여성과 아이들에게 칼을 휘둘러 4명이 숨지고 2명이 크게 다쳤던 후카가와 칼부림 사건이 있다. 범인은 상습적인 공갈, 상해, 폭행, 메스암페타민 투약 등등의 전과 기록이 있었고 문신과 불량한 태도 탓에 구하는 직장마다 오래 못하고 잘리기 일쑤였다. 1983년 테레비 아사히를 통해 드라마화되기도 했으며 쇼와 시대 전반은 물론 아키하바라 살상사건 전까지 도리마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묻지마 살인 사건 중 하나였다.
- 1982년 6월 3일 홍콩 특별행정구 삼수이포(深水埗)에서 조현병을 앓고 있던 28세의 레이치항(李志衡)[12]이라는 청년이 앤앤 유치원(安安幼稚園, 안안유치원)이라는 곳에 난입해서 마구 흉기를 휘둘러 6명 사망[13], 44명의 부상자를 낸 앤앤유치원 칼부림 사건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친모와 여동생도 피살되었다. 결국 레이치항은 1983년 4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10년경까지 치료감호로 수감 생활을 했다.[14] 이 사건은 한국에서는 외신 구독자들 이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15] 중화권에서 묻지마 살인 사건의 사례 중 하나로 보도되었다. 이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 1986년에 제작된 전로정전(癲佬正傳, Lunatics)으로 2년 후 한국에서도 D&S 인터내셔널을 통해 제목 그대로 비디오로 수입되었다.
- 1988년 8월 22일 오타쿠가 4세 소녀를 납치, 살해해서 오타쿠에 대한 세간의 인식에 크게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었다. 미야자키 츠토무, 도쿄·사이타마 연쇄 유아납치 살해사건 문서 참조.
- 1991년에 일어난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 다만 차량을 이용해서 불특정 다수에게 돌진해 사람을 치이게 했다는 것까지는 유사하나[16] 흉기 살상을 못했다는 점이 다르다. 흉기는 인질극용으로만 써서 흉기를 들고 인질극을 하기는 했지만 금방 시민들에게 제압되어서 미수로 그쳤다.
- 1999년 9월 29일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역에서 30대 남성 우와베 야스아키가 카토 토모히로와 완전히 같은 수법으로 무차별 살상극을 저지른 사건이 있었다. 시모노세키역 무차별 살상사건 참조.
- 2002년 9월 4일 교회 어린이 선교원에서 50대 남성이 교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흉기를 휘두른 광진구 어린이선교원 흉기난동 사건이 있었으나 사망자는 없었다.
- 2008년 3월 가나가와 마사히로가 벌인 묻지마 살인이 카토 토모히로에게 영향을 준 듯하다. 가나가와는 아무 이유도 없이 지나가는 행인과 지하철역의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는데 그로 인해 결국 2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실제로 카토는 가나가와의 범행을 본떠 칼을 흉기로 사용했다고 증언했으며 이 증언을 접한 가나가와는 자신을 따라했다며 기뻐서 날뛰었다고 하며, 본인이 카토보다 사람을 적게 죽인 것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 2010년 5월 11일 중국 산시성 한중시(漢中市)의 한 유치원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다. 범행 수법 역시 1982년 홍콩의 레이치항(李志衡)사건과 동일했고 이 과정에서 교사 1명과 원생 6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사건 직후 자살했다.
- 2010년 6월 22일 히로시마 마쓰다 공장에서 해고된 것[17]에 앙심을 품은 비정규직 노동자 히키지 도시아키(42)가 자동차를 몰고 9km를 폭주해 공장 생산직원 하마다 히로시(39)를 숨지게 하고 이 외에 중상자 2명, 경상자 8명을 냈다. 도시아키는 '카토 토모히로의 범행을 모방했다.'고 밝혀 큰 충격을 주었다. 마쓰다 우지나공장 차량질주 사건 참조.
- 2011년 2월 2ch에 "2월 11일 신주쿠역에서 아키하바라 사건보다도 더한 무차별 살인사건을 저지르겠다."는 요지의 예고가 올라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네티즌의 이목을 끌었으나[18] 매우 다행히도 그저 무개념 중학생이 관심 받고자 쓴 뻘글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2월 17일 오후 1시 20분경 그 중학생의 친형이 "동생이 바보 취급당했다. 형으로서 실제로 무차별 살인이 일어나는 걸 보여주겠다"는 이유로 신주쿠역 부근에서 칼을 휘두르다가 (사상자는 없음.) 경찰에 자수했다고 했다. 그런데 신주쿠역 CCTV 어디에도 이 소년이 칼을 휘두르는 광경이 찍혀 있지 않았고 목격자도 없었다고 한다. 그냥 칼만 챙겨 경찰서로 직행했던 것이다. #
- 2014년 5월 21일 대만 타이베이 지하철 반난선의 장쯔추이(江子翠)역에서 정지(鄭捷)라는 21세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승객 4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그 후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범행 동기를 묻는 질문에 '그냥 큰 사건 한 번 일으켜보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밝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후 사형을 선고받았고 2016년에 대만 형법 규정에 의해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 2023년 신림역 칼부림 사건: 2023년 7월 21일 대낮에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지하철역인 신림역 4번 출구 근처 상가거리에서 33세 남성 조선[19]이 칼을 품에 숨긴 채 이동하다가 갑자기 칼을 꺼내 지나가던 20~30대 행인[20] 남성 4명을 칼로 미친 듯이 마구 찔러 1명을 살해하고 3명[21]에게 중상을 입힌 2023년 신림역 칼부림 사건을 일으켰다. 이후 근처 건물의 주차장 출입구 쪽의 야외 계단으로 이동해 앉아 있던 범인은 출동한 경찰에게 체포되는 과정에서도 경찰들에게 짜증을 내며 "열심히 살아보려 했는데, 잘 안 돼서, 사는게 너무 좆같아서 그랬다"고 몇 마디 말을 했으나 직후 큰 저항 없이 순순히 체포되어 연행되었다. 이후 경찰서에서의 정식 사건 조사에서도 범행 이유를 묻자 체포현장 발언과 유사하게 "경제적으로 사는게 힘들어서 그랬다. 내가 불행하니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려고 그랬다."는 진술을 했다. 하지만 경찰의 범죄기록 조회 결과 과거에도 흉기상해 전과가 있던 범죄자[22]였던 데다 미성년자 때조차 범죄로 인한 처분을 많이 받아 소년원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자신의 경제적 스트레스를 길에서 처음 본 사람들에게 살인이라는 끔찍한 방식으로 표출했던 정황과 더불어서 볼 때 기본적으로 심각한 폭력성을 타고난 사람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범행에 쓴 흉기조차 본인의 돈으로 산 것이 아니라 상점에서 훔친 칼이었던 걸로 밝혀졌다.[23]
- 서현역 칼부림 사건: 2023년 8월 3일 대낮에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 서현역 인근의 백화점인 AK플라자 분당점 근처에서 만 22세의 범인 최원종[24]이 경차를 타고 인도로 돌진해 주변 행인들을 차로 습격[25] 한 뒤 칼을 소지한 채 하차하여 급하게 AK플라자 백화점 2층 입구로 들어가 실내에 있던 백화점 방문자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러 2명[26][27]을 살해하고 12명을 다치게 하여[28] 총 14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범행 중 경찰이 건물 안에 들어오자 다시 도주하여 백화점 밖으로 나갔지만 백화점 근처의 아파트단지 입구에서 체포 되었다. 아키하바라 사건처럼, 이 사건의 범인도 예고글을 범행 전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썼던 것이 사건 일주일 뒤 밝혀지기도 했다.[29] 범행에 이용된 차종[30][31]과 범행동기[32]만 제외하면 이 사건으로부터 무려 15년 후 이웃나라인 대한민국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 JR 아키하바라역 흉기 난동 사건: 2024년 1월 3일 아키바하라역 야마노테선 승강장에 정차한 열차 안에서 20대 여성이 흉기를 휘둘러 승객 4명에게 부상을 입혔고 체포되었다.
- 주하이시 체육센터 차량 돌진 사건 : 2024년 11월 11일 주하이 체육센터에서 판모씨가 SUV를 몰고 육상 트랙에서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자동차로 치여 무려 35명의 사망자와 43명의 부상자를 낸, 사실상 테러에 가까운 엄청난 인명피해를 내었다. 중국 공안은 판씨가 이혼 후 재산 분할 결과에 불만을 갖고 있던 것이 범행 동기라고 발표했는데, 일각에서는 아키하바라 사건처럼 사회 불만을 이유로 일으킨 테러가 아니냐는 의견도 많다. 당장 한달 전에도 상하이에서 칼부림 사건이 일어나 3명 사망, 15명이 부상당했다. # 상하이, 주하이 사건 의외에도 계속해서 묻지마 살인 사건이 터지고 있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공안은 사상자수가 엄청난 테러 사건이다보니 최대한 언론 통제로 검열을 하고 있고, 사건 장소에 외부인 출입 및 취재를 철저히 막고 있다.
[1]
혹은 "아키하바라 묻지마 살인 사건"([ruby(秋, ruby=あき)][ruby(葉, ruby=は)][ruby(原, ruby=ばら)][ruby(通, ruby=とお)]り[ruby(魔, ruby=ま)][ruby(事, ruby=じ)][ruby(件, ruby=けん)])이라고도 한다.
[2]
한국의 '차 없는 거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3]
이로 인해 후지노 카즈노리, 카와구치 타카히로, 나카무라 카츠히로가 심하게 다쳐 사망하였다.
[4]
코이와 카즈히로, 미야모토 나오키, 미츠이 미츠루는
척살당해
과다출혈로 인해 쇼크사했다.
[5]
훗날 2015년 미국에서 일어난
움프콰 칼리지 총기 난사 사건에서도 범인이
4chan에 예고글을 올리자 게시판 스레드에 있던 다른 이들 역시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6]
일본어로 '
저승'을 이르는 말. '메이드'와 발음이 같다.
[후방주의]
해당 링크의 사이트에 여자의
유두까지 적나라하게 나오는
야한 광고가 있으므로 접속 시 주의할 것.
[8]
그래서 범인이 이 사건도 의식했다는 설도 나왔다.
[9]
여기서 일부 각색이 있는데, 실제 범행에 쓰인 차량은
이스즈 엘프였으나 재연에 등장하는 범행 차량은
기아 봉고로 각색되었고, 가토 도모히로는 청소년 3명을 차로 치어 죽인 것으로 각색되었다. 여기서 가해자는 택시와 부딪힌 게 일절 나오지 않았고 그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것만 나왔다. 그 이후 큰 소리로 다 죽여버릴 거라고 한 뒤 가만 안 둔다고 달려들어 사람들을 살상했다. 그 뒤 도망치던 중 경찰과 대치하였고 경찰에게 칼로 위협하고 경찰을 찌르려 하지만 경찰이 이를 피하고 그를 체포한 것으로 각색되었다.
[10]
흉기난동, 사이버 공간에서 자란다
[11]
이 회차의 주제는 분노 조절 장애로 인한 사건사고 Best 12인데, 이 사건은 그 중 10위에 올랐다.
[12]
예일식 표기 기준으로 리치항, 한자 독음으로 이지형,
표준 중국어로는 리즈헝. 1954년생으로 당시 중증
조현병(구 정신분열증)과 과대망상증 환자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정도였으며 부모로부터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되기도 했다. 이 사건 이전에도 1976년에 이웃 주민들과 난투극을 벌인 적이 있었다.
[13]
일가족으로는 렁와이인(梁惠娟, 양혜연), 레이시우칸(李少芹, 이소근)의 2명. 유치원생 사망자는 로잉시(盧詠詩, 노영시), 풍킨꿕(馮建國, 풍건국), 따이카이남(戴啟南, 대계남), 꽌파이인(關沛恩, 관패은)으로 4명이다.
[14]
사건 이후 현재는 석방되었고 홍콩의 어느 정신과 의원에서 치료 중이다.
[15]
이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가 한국에선 군부독재, 군사정권 시기였으며 5개월 전의
야간통행금지 해제 등으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와 약 2달 전에 일어난
우순경 사건, 심지어 이 사건과 같은 날에 일어난
서대문 세 모녀 피살사건과
장영자 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에 묻혀서 신문에도 기사가 전무했으며 얼마 뒤 일어난
유리병 살인사건은 단신으로 보도되었다.
[16]
이 과정에서 2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17]
범인은 4월에 해고됐다고 주장했지만 회사 측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난 당일에도 출근할 예정이었다.
[18]
신주쿠역 인근은 한국인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혐한 시위나 범죄의 표적이 된 적이 많다.
[19]
성이 "조", 이름이 "선"이다. 외자 이름이다.
[20]
실제로는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던 노인과도 마주쳤고 범인은 그 노인도 해칠까 고민하는 듯 가까운 곳에 서 있었으나 노인은 칼을 들고 있는 범인을 보고도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이는 태도로 계속 걷던 방향으로 흡연하며 걸어갔다. 그러자 범인도 이내 포기했는지 그냥 그를 걸어가게 내버려 두다가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기에 중노년 피해자는 없었다.
[21]
셋 다 부상을 입었지만 사건 초기에는 그 중 피해자 한 명의 부상이 특히 심각한 수준이라 목숨이 위태롭다고 보도되었는데 며칠 뒤 뉴스에서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라고 보도되었다. 생사의 기로는 아닌 상태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이후에도 2주간 사망 보도가 없었기에 회복되어 생존한 것으로 추정된다.
[22]
20대 때 술집에서 다른 테이블에 있던 손님과 말다툼을 하다가 그의 머리를 소주병으로 때려서 뇌진탕을 일으키고, 깨진 소주병을 휘두르다가 본인을 말리던 술집 직원도 병으로 찌른 혐의로 특수폭행죄가 성립되어 집행유예를 받았다는 게 밝혀졌다. 당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형생활을 안 했거나 잠시 구속되었더라도 집행유예를 받았으니 금방 풀려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는 특수폭행은 단순 폭행과 달리 초범도 징역이 나오기 쉬운 죄인데, 집행유예가 나온 걸로 보아 피해자들에게 금전적 합의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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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2개나 준비했지만 터무니없게도 1개는 택시에 놓고 내려서 잃어버렸다는 게 밝혀졌다. 생각보다 면밀하지 못하고 멍청한 행동을 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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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하바라나 신림역 칼부림 사건과 달리 과거 정신병원에서 치료받은 이력이 확인되었고, 고등학교도 대인기피증으로 자퇴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 시기 이후 검정고시와 수능을 보고 대학에 입학한 대학생 신분이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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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후 하루 동안 사망자가 없었으나 응급수술 및 기타 모든 응급치료 후에도 의식저하 등의 심각한 증상을 보이며 생명이 계속 위독했던 피해자들은 흉기에 습격당한 피해자가 아니라 자동차로 습격당한 피해자들 중 2명이었고, 사건 수일 후 모두 사망했다. 그 중 한 명인 60대 여성 이희남씨는 뒤쪽에서 자동차로 습격당했기에 뇌손상 뿐만 아니라 등쪽 부상, 즉 척추부상으로 인한 척수손상이 추정되어 생명의 위험이 매우 심각해졌다고 보도되었고 뇌사가능성이 높게 판단되어(공식 뇌사 판정은 받지 않았다. 뇌사판정은 진료한 의사 외에도 많은 의료인들이 같이 판단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못하는 거라 시간이 꽤 걸리고, 그 기간동안 환자가 생존해야 하는데, 이 피해자는 그 정도 시간 전에 사망했기 때문.) 피해자의 남편이 언론과의 인터뷰도 하였고 피해자인 부인의 이름도 공식적으로 공개했는데, 사건 3일만에 사망하였다. 다른 한명인 20대 여성은 뇌사상태에 빠져 25일간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있다가 사망했다. 흉기 피해자들은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은 긴급 이송과 치료로 모두 넘겨서 생존했다. 아키하바라 사건은 차량에 의해 살해당한 피해자들과 흉기에 의해 살해당한 피해자들이 둘 다 있었다. 범행 피해자 수는 유사하나 그 중 사망자 수는 아키하바라가 훨씬 많아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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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피해자는 상술된 차량 피해자인 60대 여성 이희남 씨였다. 남편과 산책하던 중 차량에 습격당했는데, 14명의 전체 피해자들 중 가장 먼저 습격당한 피해자(차량 습격사건 현장이 촬영된 근처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이 뉴스에 보도되었을 정도)였다. 사건 3일 뒤에 사망했는데, 사건 당일 밤에 사망했다는 오보가 뉴스에도 나온 적이 있었다. 사망한 피해자는 범인의 차량에 처음으로 치인 첫 피해자였는데, 범인의 차량에 등을 치어 수미터를 날아가 떨어진만큼 다른 부상과 차원이 다른 심각한 중상이었기도 해서 치료한 의사가 뇌사소견을 낸 것이, 정보전달이 잘못되어 그랬던 것이었다. 뇌와 척추를 모두 심각하게 다쳐 응급수술과 치료 후에도 영영 의식을 찾지 못하고 단 3일만에 사망한 것이다.
[27]
두번째 피해자는 사건 25일만에 사망한 20대 여성 김혜빈 씨인데, 역시 차량 돌진의 피해자였고, 뇌사 상태에 있다가 사망했다. 미술 전공 대학생으로 당시 현장 근처의 한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근처에 음료를 사러 가던 중 차량에 습격당했다. 첫번째 피해자는 실질적으로는 뇌사 상태였지만 판정하기 짧은 시간인 3일만에 사망한 관계로 판정받을 시간이 부족하여 뇌사판정을 못 받았는데, 두번째 피해자는 3주 이상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뇌사판정을 받고 사망했다.
[28]
이 중 10명이 중상으로 크게 다쳤다. 중상이 아닌 2명은 차량 피해자 1명, 흉기 피해자 1명인데, 차량피해자 1명은 경상이라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지 않아 신원파악이 안 되었고(이 부분 때문에 사건 초기 보도에서 차량 피해자가 4명이라고 보도한 언론이 많았고 총 피해자도 13명으로 오보되기도 하였다. 한명만 병원 긴급이송을 안 했기 때문.), 흉기 피해자 1명은 병원 이송은 되었지만, 팔꿈치 쪽을 칼에 다쳤는데 깊게 찔린게 아니라고 진단되어 기초적인 처치로 치료가 끝나서 수술 같은 외과적 치료를 하지 않았다. 당시 기본적인 상처치료를 마치고 피해자 중 유일하게 당일 귀가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피해자들은 모두 외과적 치료와 입원을 했다.
[29]
한 네티즌이 국무총리실에 범인의 글을 신고했었는데, 별다른 처리를 하지 않았다. 당시 범인은 장소나 특정 범행 대상에 대한 상세한 계획은 쓰지 않고 "회칼을 가지고 다닌다"는 글, "사람들을 죽일 것이다"라는 글, "이세계로 갈 것이다"라는 글 등 파편적인 형태로 글을 썼었기에 계획성이 약했었기 때문. 하지만 막상 이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경찰검찰이 태도를 바꿨는데, 이런 식으로 대략적인 살인예고글을 쓰는 사람들도 인지만 하면 죄다 검거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실제로 한달간 200여명을 검거했다. 상세하지 않게 대충 쓴 사람들에게 적용한 혐의가 협박죄였지만, 상세하게 쓴 사람들은 (미성년자만 아니면) 검거 후 살인예비죄나 협박죄로 구속시키게 되어 구속된 사람도 20명이 넘을만큼 꽤 있었다.
[30]
이 사건은 트럭(이스즈 엘프 5세대)이 범행에 이용되었고 서현역 칼부림 사건은 경차(기아 모닝 2세대)가 범행에 이용되었다.
[31]
두 사건에서 범행에 사용된 차량 모두 범인 본인 소유의 차량이 아니라는 것도 같다. 일본 아키하바라는 범인의 회사 소유 트럭, 한국 서현역은 범인의 모친 소유 자동차였다.
[32]
아키하바라 범인은 신림역 범인과 유사하게 정신병력 없이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려는 동기(이상동기)로 중범죄를 저질렀지만, 서현역 범인은 체포된 뒤의 조사에서 "온 세상 수많은 사람이 나를 감시하고 스토킹했기에 괴로움에 견딜 수 없어 내가 그 중 많은 사람들을 죽여서 경찰에게 알리려 했던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범행 동기를 밝혔고, 정신병원 치료경력이 있던 것이 밝혀졌다. 즉 범행동기가 "망상"이다.(아키하바라나 신림역 살인범의 범죄동기는 수사기관 용어로 "이상동기"라고 부른다.) 범인에게 평소 스토킹을 당한 방식이 뭐냐니까 전자파와 방사선 공격을 당했다는 희한한 진술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사이코패스 검사에서도 신림역 범인 조선과 달리 조사가 불가능한 상태(정신질환자라 못한 것)라서, 경찰 측에서 신림역 살인범과 서현역 살인범은 다른 범행동기라고 결론을 내렸다. 사이코패스 검사는 △대인관계 △정서적 문제 △생활방식 △반사회성 등 총 4가지 항목을 프로파일러가 면담해서 결정하는데, 최원종은 이 중 대인관계와 정서적 문제에 대해 면담하는 게 불가능한 상태라서 사이코패스 판정이 안된 것. 이에 대해 살해당한 피해자의 남편과 사위 같은 유족들은 "범인을 학력 컴플렉스의 피해자로 만들어주고 정신질환자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서사를 만들어주는 현재 사회분위기는 잘못되었다. 그는 아무 죄도 없이 한평생 착하게 살았던 내 아내(혹은 장모님)를 이유없이 살해한 악질적인 테러살인범일 뿐."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범죄전문가들도 단순히 정신질환에 의한 망상으로 끝나는 동기 외에, 신림역 살인사건에 대한 모방 충동이라는 범죄동기를 무시할 수 없다는 쪽인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이후에도 치료를 받다가, 코로나19가 전국에 발발한 뒤 3년간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