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키메데스 포조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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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 포조의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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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41번 | ||||||||||||||||||||||||||||||||||||||||||||||||||||||||||||||||||||||
스티브 프레이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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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 포조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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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털링 히치콕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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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48번 | |||||||||||||||||||||||||||||||||||||||||||||||||||||||||||||||||||||||
제프 만토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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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 포조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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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자우스 (1997~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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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39번 | |||||||||||||||||||||||||||||||||||||||||||||||||||||||||||||||||||||||
마이크 그린웰 (1985~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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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 포조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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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웨스트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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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40번 | |||||||||||||||||||||||||||||||||||||||||||||||||||||||||||||||||||||||
브릭스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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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조 (2000~200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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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바레스 (2000.6.11.~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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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 포조 Arquimedez Poz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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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아르키메데스 포소 오르티스 Arquimedez Pozo Ortiz |
출생 | 1973년 8월 24일 ([age(1973-08-24)]세) |
산토도밍고 |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산토도밍고 고등학교 |
신체 | 176cm, 71kg |
포지션 | 내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90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 SEA) |
소속팀 |
시애틀 매리너스 (1995) 보스턴 레드삭스 (1996~1997)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99) 해태 타이거즈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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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해태 타이거즈 소속 2루수. 해태가 2000년 모기업의 부도에도 야심차게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영입한 2명을 한경기도 쓰지 못하고 퇴출하여 새로 보스턴에서 2명을 데려왔는데 그중 1명이 바로 내야수인 포조였다.2. 선수 경력
2.1. MLB
포조는 1990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 1995년 시애틀 소속으로 빅리그 첫무대를 밟았다. 그후 1996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하였고 MLB에서는 총 26경기를 뛰었다.2.2. NPB
그후 1999년에 일본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했다. 당시 일본 주니치에서 활약하던 선동열과 이종범은 변화구를 잘 치는 타자라고 평했으며 실제 정규시즌에서도 준수한 타격 능력을 보여줬다.하지만 준수했던 타격 능력과는 반대로 수비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시즌 도중부턴 이전의 주전 3루수였던 신도 타츠야에게 다시 자리를 내준 채 대타 요원으로 밀려났고 결국 91시합 출장, 타율 .297 9홈런 30타점의 기록을 남긴 채 시즌 종료 후 전력외 통보를 받고 팀을 떠나게 되었다.
2.3. KBO
이후 2000년 해태 타이거즈에 호세 마라베를 대체할 용병으로 입단했다.[1] 그러나 기대와 달리 한국에선 오히려 2루 수비가 불안하고 부상복귀한 홍현우와 포지션이 겹쳤다. 당시 김응용 감독이 방출이 확정된 롯데 자이언츠의 테드 우드와 트레이드도 고민 할 정도였다. 그는 불안한 수비 때문에 자주 벤치에 앉아 있자 코치에게 불만을 품었고, 그에 대한 화답으로 방출당하였다. 그러나 해태 프런트의 푸대접 논란이 이어졌다. 포조는 외국인 선수치곤 176cm, 71kg로 체구가 작았고 기량이 떨어지긴 했지만 더 문제는 해태 프런트의 대우였으며 포조는 구단의 푸대접에 에이전트에게 직접 항의 하기도 했다. 그후 현재 포조의 근황을 알 수 없다. 성적은 39경기 타율 0.213 1홈런이었다.3. 여담
- 후에 후신인 KIA 타이거즈에 특이한 이름을 가진 용병이 입단하면서 다시금 주목 받았는데[2] 해태에서 뛸 당시에는 포조라는 성을 등록명으로 사용하고 활동했기에 풀네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후배 용병 덕분에 같은 계열의 풀네임이 알려졌기 때문.
- 성인 포조는 스페인어 발음대로면 포소, 스페인 본토식으로는 포쏘에 가깝게 읽히지만, 당시 한국은 영어권이 아닌 인물의 이름도 영어식으로 읽다 보니 포조로 등록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에밀리아노 기론과 같은 케이스. 기론도 라틴 문자로는 Giron이고 스페인식으로 읽으면 본토든 중남미든 히론이라고 읽힌다.
- 최상덕의 말에 의하면 경기가 잘 안풀릴 때 방망이 여러개를 들고와서 잘 맞혀보이는 방망이를 골라달라고 했다고 한다.
- 요코하마 시절 응원가는 훗날 호세 카스티요, 네프탈리 소토 등의 여러 외국인 선수들에게 유용되었다.
4. 관련 문서
[1]
공교롭게도 호세 마라베 역시 포조가 입단하기 전해인 1998년에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서 뛰었다. 그러나 타격은 나름 괜찮았던 포조와는 정반대로 이쪽은 극초반에 2시합 연속 3안타를 기록한 걸 빼면 바깥쪽
변화구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등 형편없는 타격만 보여주다(39시합 출장, 타율 .218 1홈런 12타점) 2군으로 강등되어 그대로 시즌이 끝나자마자 퇴출당했다. 2000년에 해태의 용병 타자로 오게 되지만 신변보호를 목적으로 권총을 소지한 것이 발각되어 공항에서 체포. 이후에는 부상까지 겹치면서 시즌 전에 퇴출되었다.
[2]
애초에 이 문서도 소크라테스가 KIA와 계약하고 난뒤에 생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