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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로스 왕국 미트리다테스 왕조 제6대 군주 Scribonius | 스크리보니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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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스크리보니우스 |
그리스어 | Σκριβονιος | |
라틴어 | Scribonius | |
생몰 년도 | 미상 ~ 기원전 15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17년 ~ 기원전 1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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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스포로스 왕국 미트리다테스 왕조 6대 군주. 아산드로스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고 아산드로스의 아내 뒤나미스와 결혼했지만 폴레몬 1세를 앞세운 로마군이 쳐들어오자 강대한 로마 제국과 싸우기 싫어한 주민들에 의해 피살되었다.2. 생애
그의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는 로마의 자유인이었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그는 코키스 귀족 대표였다고 한다.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그는 폰토스 왕국과 보스포로스 왕국의 군주였던 미트리다테스 6세의 손자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아우구스투스 황제로부터 왕위를 인정받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기원전 17년, 그는 반란을 일으켜 아산드로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보스포로스 귀족들이 아산드로스의 아내이자 미트리다테스 6세의 손녀였던 뒤나미스를 지지했기 때문에, 그녀를 축출하는 대신 결혼하고 공동 왕으로 인정하기로 했다.하지만 아우구스투스는 그를 인정하길 거부했다. 기원전 15년, 그는 폰토스 왕국의 군주 폴레몬 1세에게 찬탈자를 몰아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폴레몬 1세가 함대를 이끌고 흑해를 가로질러 쳐들어오자, 보스포로스인들은 강대한 로마 제국과 싸우길 원치 않았기에 스크리보니우스를 살해하고 로마군의 입성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로마 제국이 폴레몬 1세를 보스포로스 왕으로 내세우는 건 받아들이지 않고 반란을 일으켰다.[1] 이에 폴레몬 1세가 구원을 요청하자,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가 기원전 14년 로마 함대를 이끌고 보스포로스로 진군해 반란군을 제압했다. 폴레몬 1세는 주민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뒤나미스와 결혼했다.
[1]
이때 '아산드로스 2세'로 알려진 뒤나미스의 아들을 추대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