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11 04:21:15

미트리다테스 3세(보스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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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3대 군주
Μιθραδάτης | 미트리다테스 3세
파일:미트리다테스 3세(보스포로스).jpg
제호 한국어 미트리다테스 3세
그리스어 Μιθραδάτης
라틴어 Mithridates
별명 필로게르마니쿠스 필로파트리스(Philogermanicus Philopatris: 게르마니쿠스를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자)
생몰 년도 미상 ~ 서기 68년
재위 기간 서기 39년 ~ 서기 44/45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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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3대 군주. 45년 클라우디우스 1세에게 폐위되었다.

2. 생애

보스포로스 왕조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초대 군주 아스푸르고스 게파이피리스의 장남이다. 남동생으로 코티스 1세가 있었다. 기원전 38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로마 황제 칼리굴라는 폰토스 왕국의 폴레몬 2세에게 보스포로스 왕위를 주려 했다. 그러나 보스포로스 인들은 단호히 거부하고 게파이피리스를 여왕으로 추대했다가 1년 후 게파이피리스가 사망하자 그를 왕위에 올렸다.

그 후 통치를 이어가던 그는 서기 44/45년경 알 수 없는 이유로 클라우디우스 1세에게 폐위당했고, 동생 코티스 1세가 새 왕으로 옹립되었다. 율리우스 아퀼라가 이끄는 로마군이 보스포로스 해협을 장악하여 이를 기정사실로 삼자, 그는 내륙지대로 피신하여 사르마티아 부족들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다가 아퀼라의 로마군이 철수하자, 그는 군대를 모아 코티스 1세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먼저 다르다네스 부족의 왕을 쫓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뒤, 여세를 몰아 보스포로스 해협을 침공하려 했다.

이에 로마군의 방식으로 무장한 보스포로스군이 코티스 1세의 지휘하에 출진하자, 그는 이에 맞서다 패배한 뒤 다르다네스 부족의 수도 소자로 후퇴했다. 그러나 곧 수비대를 남겨두고 우스파 족의 도시인 시라크스로 후퇴했다. 로마-보스포로스 연합군은 소자를 함락하고 시라크스로 진격해 그곳을 포위하고 주변 지역에서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다. 결국 우스파 족 역시 항복했고, 그는 에우노네스 족에게 도주했다. 에우노네스 족은 미트리다테스에게 로마군에 귀순하라고 권했다. 미트리다테스가 보복을 두려워해서 선뜻 응하지 않자, 그들은 미트리다테스의 편지와 함께 사절을 클라우디우스 1세에게 보냈다.

미트리다테스는 편지에서 클라우디우스 1세에게 용서를 구하고 개선식에서 '전리품'으로 쓰이거나 사형당하는 걸 면제해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사절은 클라우디우스 1세에게 "승자로서 자비를 베풀어 미트리다테스를 해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고, 클라우디우스 1세는 수락했다. 그 후 로마로 보내진 그는 20여 년간 그곳에 억류되었다가 68년 가이우스 님피디우스 사비누스와 함께 갈바 황제를 상대로 음모를 꾸민 혐의로 기소된 후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