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11 04:26:44

코티스 3세(보스포로스)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234794 0%, #FF7F50 20%, #FF7F50 80%, #234794); color: #FFF"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아르치에낙스 왕조
초대 - - -
아르치에낙스 - - -
스파르토코스 왕조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스파르토코스 1세 사티로스 1세 셀레우코스 레우콘 1세
스파르토코스 왕조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고르기포스 스파르토코스 2세 파이리사데스 1세 사티로스 2세
스파르토코스 왕조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프리타니스 에우멜로스 스파르토코스 3세 파이리사데스 2세
스파르토코스 왕조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스파르토코스 4세 레우콘 2세 에기에논 스파르토코스 5세
스파르토코스 왕조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카마사리에 파이리사데스 3세 파이리사데스 4세 스파르토코스 6세
스파르토코스 왕조
제21대 - - -
파이리사데스 5세 - - -
사우마코스 왕조
초대 - - -
사우마코스 - - -
미트리다테스 왕조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미트리다테스 1세 파르나케스 뒤나미스
아산드로스
미트리다테스 2세
미트리다테스 왕조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뒤나미스
아산드로스
뒤나미스
스크리보니우스
뒤나미스
폴레몬 1세
뒤나미스
티베리우스 - 율리우스 왕조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아스푸르고스 게파이피리스 미트리다테스 3세 코티스 1세
티베리우스 - 율리우스 왕조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레스쿠포리스 1세 사우로마테스 1세 코티스 2세 로메탈케스
티베리우스 - 율리우스 왕조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에우파토르 사우로마테스 2세 레스쿠포리스 2세 코티스 3세
티베리우스 - 율리우스 왕조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사우로마테스 3세 레스쿠포리스 3세 체도스비오스 인닌티마이오스
티베리우스 - 율리우스 왕조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레스쿠포리스 4세 파르산제스 테이라네스 사우로마테스 4세
티베리우스 - 율리우스 왕조
제21대 제22대 제23대 -
토토르시스 라담사데스 레스쿠포리스 5세 -
도우토노스 왕조
초대 - - -
도우토노스 - - -
훈족의 지배
초대 제2대 - -
그로도스 무겔 - - }}}}}}}}}}}}

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12대 군주
Κότυς | 코티스 3세
파일:코티스 3세(보스포로스).jpg
제호 한국어 코티스 3세
그리스어 Κότυς
라틴어 Cotys III
별명 필로카이사르 필로로마이오스 에우세베스(Philocaesar Philoromaios Eusebes: 카이사르를 사랑하고 로마를 사랑하며 경건한 자)
생몰 년도 미상 ~ 234년
재위 기간 서기 228년 ~ 서기 234년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12대 군주.

2. 생애

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10대 군주 사우로마테스 2세의 아들이다. 형제로 레스쿠포리스 2세가 있었다. 레스쿠포리스 2세는 210년 사우로마테스 2세 사망 후 왕위에 오른 뒤 225년 또는 226년에 그를 배제하고 아들 로메탈케스를 공동 통치자로 내세웠다. 그러나 228년을 끝으로 두 사람의 주화는 더 이상 주조되지 않았고, 그가 뒤이어 왕위에 올라 자신의 동전을 주조하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그가 두 사람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는 즉위 후 알란 족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사르마티아인들과 동맹을 맺고 사르마티아 여인과 결혼했다. 또한 아들로 추정되는 사우로마테스 3세를 229년 공동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사우로마테스 3세의 주화가 232년을 끝으로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은 걸 볼 때, 그 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33~234년에는 레스쿠포리스 3세의 주화가 주조되었고, 1913년 헤르손에서 발견된 비문에서 언급된 체도스비오스 왕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는 설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그와 레스쿠포리스 3세, 체도스비오스의 관계는 밝혀진 바 없다.

한편, 보스포로스 왕국의 경제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서 금화에 사용되는 금 함유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말년에는 아예 금화 주조가 중단되었고 은화와 청동 화폐로 전환되었다. 234년 이후로 그의 주화가 더 이상 주조되지 않은 것을 볼 때 이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인닌티마이오스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