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11 04:33:05

레스쿠포리스 5세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234794 0%, #FF7F50 20%, #FF7F50 80%, #234794); color: #FFF"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아르치에낙스 왕조
초대 - - -
아르치에낙스 - - -
스파르토코스 왕조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스파르토코스 1세 사티로스 1세 셀레우코스 레우콘 1세
스파르토코스 왕조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고르기포스 스파르토코스 2세 파이리사데스 1세 사티로스 2세
스파르토코스 왕조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프리타니스 에우멜로스 스파르토코스 3세 파이리사데스 2세
스파르토코스 왕조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스파르토코스 4세 레우콘 2세 에기에논 스파르토코스 5세
스파르토코스 왕조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카마사리에 파이리사데스 3세 파이리사데스 4세 스파르토코스 6세
스파르토코스 왕조
제21대 - - -
파이리사데스 5세 - - -
사우마코스 왕조
초대 - - -
사우마코스 - - -
미트리다테스 왕조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미트리다테스 1세 파르나케스 뒤나미스
아산드로스
미트리다테스 2세
미트리다테스 왕조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뒤나미스
아산드로스
뒤나미스
스크리보니우스
뒤나미스
폴레몬 1세
뒤나미스
티베리우스 - 율리우스 왕조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아스푸르고스 게파이피리스 미트리다테스 3세 코티스 1세
티베리우스 - 율리우스 왕조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레스쿠포리스 1세 사우로마테스 1세 코티스 2세 로메탈케스
티베리우스 - 율리우스 왕조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에우파토르 사우로마테스 2세 레스쿠포리스 2세 코티스 3세
티베리우스 - 율리우스 왕조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사우로마테스 3세 레스쿠포리스 3세 체도스비오스 인닌티마이오스
티베리우스 - 율리우스 왕조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레스쿠포리스 4세 파르산제스 테이라네스 사우로마테스 4세
티베리우스 - 율리우스 왕조
제21대 제22대 제23대 -
토토르시스 라담사데스 레스쿠포리스 5세 -
도우토노스 왕조
초대 - - -
도우토노스 - - -
훈족의 지배
초대 제2대 - -
그로도스 무겔 - - }}}}}}}}}}}}

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23대 군주
Ῥησκούπορις | 레스쿠포리스 5세
파일:레스쿠포리스 5세.jpg
제호 한국어 레스쿠포리스 5세
그리스어 Ῥησκούπορις
라틴어 Rhescuporis
생몰 년도 미상 ~ 341년
재위 기간 서기 314년 ~ 서기 341년

1. 개요2. 행적

[clearfix]

1. 개요

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23대이자 마지막 군주.

2. 행적

라담사데스와 함께 토토르시스의 아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화폐학적 증거에 따르면, 309년 토토르시스가 사망한 뒤 라담사데스가 단독 왕에 올라 화폐를 주조했고, 314년에 그가 공동 왕으로 등극하여 화폐를 주조했다. 그러나 화폐 주조에 쓰일 구리 수입이 갈수록 줄어들어서 동전의 품질이 악화되었고, 나중에는 구리 대신 황동을 사용해야 했다.

322년 라담사데스가 사망한 뒤 단독 군주가 된 그는 토토르시스 치세 때 로마 제국에 빼앗겼던 테오도시아 시를 탈환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를 공인한 걸 감안하여 기독교를 국교로 수용하고 공물을 바치면서, 로마 제국이 외부의 적으로부터 왕국을 보호해주길 희망했다. 그의 통치 말기에 주조된 주화에는 콘스탄티누스 1세의 초상이 새겨졌는데, 이는 로마에 대한 종속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의미한다. 335년 타만 반도에 성벽을 쌓아 외적의 침략에 대비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1세 사망 후 정국 혼란과 게르만족, 사산 왕조의 침략에 시달려서 보스포로스 왕국을 도울 여력이 되지 않았다. 결국 341년 고트족의 침략으로 판티카파에움과 파라고리아 등 보스포로스 해협의 주요 도시가 파괴되었고, 그의 화폐는 더이상 주조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의 역사가 리처드 가넷은 이후에도 왕조가 이어졌을 거라고 주장했다. 콘스탄티누스 7세의 저작 <제국의 통치에 관하여>에서 보스포로스 왕 '사우로마테스'와 로마의 전쟁이 묘사되고 이후에 "사우로마테스의 왕권이 끝났다"라는 기록이 있는 걸 볼 때, 왕조가 그의 사후에도 이어졌다가 로마에게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학계는 고고학적 증거가 없고 몇 안 되는 문헌 기록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도출한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왕조는 레스쿠포리스 5세 사후 무너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