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11 04:20:25

아스푸르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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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초대 군주
Ἀσποῦργoς | 아스푸르고스
파일:아스푸르고스.jpg
제호 한국어 아스푸르고스
그리스어 Ἀσποῦργoς
라틴어 Aspurgus
별명 필로로마이오스(Philoromaios: 로마를 사랑하는 자)
생몰 년도 미상 ~ 서기 38년
재위 기간 서기 8년 ~ 서기 38년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초대 군주.

2. 생애

그의 출신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지만, 그의 이름이 고대 이란어 단어 "aspa"(말)과 "aspabara"(기마)에서 파생된 점을 볼 때 유목민족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크림 반도 타만 반도를 분리하는 해협인 크르치 해협을 따라 사르마티아 부족 연합의 일부로 살았던 아스푸르기아노이(Aspurgianoi) 족이 있었는데, 학자들은 그가 이 부족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그가 아산드로스 뒤나미스의 아들이라는 설을 제기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뒤나미스가 폴레몬 1세와 갈등을 벌이다가 크림 반도 내륙으로 도주한 뒤 사르마티아인의 보호를 받았을 때 그와 결혼했다고 주장한다.

기원전 8년, 보스포로스 왕국의 군주 폴레몬 1세가 아스푸르기아노이 족을 정벌하러 출진했다가 전투에서 패한 뒤 생포된 후 목숨을 잃었다. 그 후 뒤나미스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인정을 받고 보스포로스 왕국의 단독 군주로 등극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남은 자식이 없었기에, 서기 8년 사망한 후 그녀의 남편 또는 아들인 그가 왕위에 올랐다. 이후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오드뤼사이-사파이 왕국의 공주 게파이피리스와 결혼했다.

그는 처음 왕위에 올랐을 때 "레스쿠포리스 아스푸르고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다 10년경 로마에 방문하여 아우구스투스 황제로부터 보스포로스 왕위를 정식으로 인정받자, 이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자신의 이름을 아우구스투스의 이름 중 하나인 '율리우스'와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아스푸르고스"로 개명했다. 보스포로스 해협에서 발견된 비문에 따르면, 그의 정식 명칭은 "카이사르의 친구이자 로마를 사랑하는 자, 보스포로스 해협과 테오도시아, 신드, 메오트, 타펫, 토레아츠, 프세세, 타나이드 전체의 왕"이었다. 이후 그의 후예들은 언제나 "티베리우스 율리우스"를 성으로 사용했다.

보스포로스 왕국은 그의 시대에 경제적으로 번영했다. 고르기피아에 잘 짜여진 수도관과 배수로가 건설되었으며, 그리스 전통을 따른 건물이 잇따라 건설되었다. 또한 체르소네소스 반도가 이 시기에 왕국에 편입되면서, 왕국은 흑해 무역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제 성장은 이 시기에 주조된 금화와 구리 주화가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입증되었다. 한편, 그는 판티카파에움에 자신을 신격화한 사원을 세움으로써 왕권 강화를 꾀했다.

38년 사망했는데,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연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칼리굴라 황제는 폰토스 왕국의 군주 폴레몬 2세를 보스포로스 왕위에 앉히려 했지만, 보스포로스 사람들은 이를 거부하고 아스푸르고스의 아내 게파이피리스를 여왕으로 추대했다. 게파이피리스가 1년 후 사망하자 아들 미트리다테스가 새 왕으로 추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