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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준/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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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4. 롯데 자이언츠
4.1. 2007 시즌4.2. 2008 시즌4.3. 2009 시즌4.4. 2010 시즌4.5. 2011 시즌4.6. 2012 시즌4.7. 2013 시즌4.8. 2014 시즌4.9. 2015 시즌4.10. FA4.11. 2016 시즌4.12. 2017 시즌4.13. 2018 시즌4.14. 2019 시즌4.15. 2020 시즌4.16. 2021 시즌
5. 연도별 주요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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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롯데 자이언츠 소속 우완 투수 송승준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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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선수시절 (출처 : 포토로) 미국 진출 (출처 :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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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레드삭스 선수시절 (출처 : 포토로) (출처 : 포토로)

고등학교 때 부산 지역에서는 동갑내기 투수 3명이 주목을 받았는데 경남고의 송승준, 부산고의 백차승, 경남상고의 김사율이었다. 1998년 첫 대회인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다 잡았던 우승을 김사율의 경남상고에게 연장전에서 아깝게 내주고[1] 그 후에 열린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 봉황대기 결승전 경기고와의 경기에서는 17K를 잡아내며 고교 랭킹 No1 투수로 등극한다.

3.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

1999년 롯데 자이언츠의 고졸우선지명을 받았지만,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계약금 90만 달러의 조건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했다. 2020년 MBC SPORTS+ 유튜브 채널 스톡킹에 나와서 밝힌 바로는 실제 수령한 금액은 언론에 발표된 90만 달러보다 더 많은 103만 달러였다고 언급했다. 그 와중에 3만 달러는 부모님 몰래 떼먹었다고 한다.

1999년 입단 당시 무려 그 조시 베켓과 비견될 정도의 특급 유망주였고, 2002년에는 보스턴 팜내 유망주 랭킹 1위를 기록했다.[2] 실제로 진출 초반 마이너에서도 굉장히 잘했다. 어차피 뭘 던져도 못 치길래 타자한테 직구 던질테니까 치라는 사인을 보냈다가 바로 코치가 올라와서 혼냈다고.. 벌금도 냈다고 한다.

여담으로, 당시의 스카우팅 리포트 background 문단의 첫 문장이 참 씁쓸하다. 그 내용인 즉슨 " 송승준은 보스턴의 넘버원 유망주에 선정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난 몇 년간 그 자리에 올랐었던 선수들이 그만큼 기구한 역정을 거쳐왔다." 얄궂게도 이 내용처럼 그는 기구한 역경 끝에 빅 리거가 되지 못했다.

오른손 골절상[3], 감독의 편파적인 기용, 인종 차별 등 여러가지 사정이 겹쳐서 몇 번씩 있었던 콜업 기회를 날려 버렸다. 와중에 집에 강도가 드는 등 매우 힘들었다.

여담으로 빌리 빈 케빈 유킬리스를 사기쳐서 데려오려고 한 일화가 머니볼에 언급된다. 거기서 오마 미나야 엑스포스 단장을 등쳐먹던 콩단장이 송승준이란 이름도 제대로 발음 못하고 "갸 이름 발음허기도 힘드네. 뭐더라, 성성?" 이렇게 굴욕을 당한다. 결국 몬트리올 엑스포스 클리프 플로이드 딜에 엮여서 김선우와 함께 엑스포스행. 많은 이들이 잘 알다시피 그 과정에서 엑스포스로의 트레이드 후 오클랜드행이 추진되던 케빈 유킬리스 테오 엡스타인이 그 사기행각을 간파하는 바람에 잔류했고, 이후 레드삭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 참고로 이 장면은 영화에선 안나오고 책에만 언급된다.

결국 송승준 메이저리그에서 단 1경기도 뛰어 보지 못한 채, 2006 시즌을 마지막으로 귀향했다. 때마침 2007년 3월에 열린 해외파 특별 지명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다시 받으며 고향 팀에 입단했다.

4. 롯데 자이언츠

4.1. 200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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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복귀시 입단 시절 (출처 : 포토로) 국내 복귀후 데뷔 시절 (출처 :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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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출처 : 포토로)

2007년 5월부터 1군 등판을 개시했으며, 동계훈련도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2008년에 괴물같은 활약을 하지 않을까 기대를 모았다.

4.2. 200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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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어짤 (출처 : 포토로) (출처 :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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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선수시절 (출처 : 포토로) (출처 : 포토로)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12승을 거둬서 손민한, 장원준에 이은 준수한 3선발로 2008 시즌을 마쳤다.

사실 2008 시즌 이후에 입대를 앞두고 있어서 암울한 상태였지만, 경고 후배인 이대호 등과 함께 올림픽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려서 기사회생의 찬스를 잡았다.[4]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중국전과 쿠바전에서 호투하며 한기주, 오승환의 부진으로 구멍난 계투진의 출혈을 막았다. 그렇게 같은 팀의 이대호, 강민호와 함께 병역 문제를 해결하는데 공을 세웠다.

2008 시즌은 12승 7패, 평균자책점 3.76, WHIP 1.46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10승 투수가 되었다.

4.3. 2009 시즌

2009년 초반 롯데 부진의 일등공신. 기존 1선발 손민한이 부상으로 전열 이탈한 상황에서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맡아줘야 했다. 하지만 시즌 초반에 부진했다.

중반기에는 날이 풀리며 패스트 볼 구위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 반짝 에이스 모드를 보이더니 2009년 6월 28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와 7월 4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 7월 10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3경기 연속 완봉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송삼봉 영상 대기록을 작성한 계기가 여자 친구의 따끔한 일침 때문이라는 후문이 있다. 손민한의 어깨가 나간 상태에서 조정훈, 장원준과 함께 롯데 마운드의 중심이 돼 버텼다.

허나 내성 발톱이라는 매우 골치 아픈 증상에 시달렸다. 수술이 필요했지만 팀을 위해서 수술은 시즌 후로 미뤘다.

시즌 중반 3경기 연속 완봉승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롯데의 에이스였으나, 그 후로 페이스가 많이 무너져 조정훈, 장원준에 이어 3선발로 뛰었다.

2009시즌 최종 기록은 13승 8패, 평균자책점 4.72, WHIP 1.45로 2년 연속 12승 이상을 기록했다.

2009년 10월 2일(음력 8월 14일) 추석 연휴에 열린 두산-롯데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였으나, 2회초 0-3으로 뒤진 롯데는 송승준이 1사 2, 3루 위기에 몰리자 김현수를 거르고 만루를 채우는 작전을 선택하는데... # 완벽하게 실패했다. 결국 1.1이닝 7실점으로 그야말로 탈탈 털리고 내려갔다. 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하면서 큰 경기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또한 이것을 계기로 송추석의 별명을 얻게 되었다.

4.4.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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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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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012 시즌

4월 7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5⅓이닝 107투구수 8안타 4사사구 3탈삼진[5]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다. 팀이 스코어 1:4로 승리하여 2012 시즌 롯데의 첫 승리와 자신의 시즌 첫 승을 류현진에게 따냈다.

6월 7일, 이전까지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는 행보를 보였다. 여전히 볼넷을 간간히 주고, 주지 않아도 될 점수를 주면서 퀄리티 스타트를 했다.

7월 극악의 부진을 보이며 최다패 투수로 등극했고, 2군에도 다녀오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8월에는 5경기 35이닝 3실점 2자책 방어율 0.51로 환골탈태하며 변함없는 기복을 보였다. 다만 승운이 많이 따르지 않았다. 8월에도 2승밖에 추가하지 못했고 결국 28경기 163이닝 7승 11패 평균자책점 3.31로 시즌을 마치며 5년 연속 10승 달성에 실패했다. 하지만 평균 자책점 부문에서는 한국무대 복귀후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10월 8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1008 대첩의 희생자가 되며 5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4⅔이닝 84투구수 6피안타 1볼넷 1탈삼진 4실점 비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팀은 스코어 8:5로 이겼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이기던 10월 12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2012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 팀이 스코어 1:0으로 지던 2회초 1사 2루 상황에서 선발 투수 고원준에 이어 등판했다. 첫 타자이자 2번타자 민병헌을 삼진으로 잡아 이대로 위기를 넘기나 했지만 3번타자 김현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 4번타자 윤석민에게 1타점 적시타를 맞고 실점했다. 이어 5번타자인 최준석에게 볼넷을 내줘 2사 만루의 장작을 쌓았지만 다음 타자 이원석을 투수땅볼로 아웃시켜 완벽하게 분식회계에 성공했다. 이날 송승준은 4⅓이닝 71투구수 3피안타 3볼넷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팀은 3:0으로 지던 8회말에 3점을 뽑아 연장 10회까지 승부를 끌고 간 뒤 3:4로 이겼다.

송승준은 2012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9이닝 동안 승패, 홀드, 세이브 없이 9피안타 4볼넷 2탈삼진 4실점 비자책점을 기록했다.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송승준은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7이닝 6피안타 2볼넷 1피홈런 1몸에 맞는 공 6탈삼진 6실점 5자책점 평균자책점 6.43, 1패를 기록했다.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송승준은 2012년 포스트시즌 9경기 중 4경기에 등판했다. 16이닝 15피안타 1피홈런 6볼넷 1몸에 맞는 공 8탈삼진 10실점 5자책점 평균자책점 2.81, 1패를 기록했다.

4.7. 2013 시즌

부상 당한 이용찬을 대신해 WBC에 출전했다. 1차전에서 네덜란드에 0:5 참패한 직후 호주전에 선발 등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의구심을 가졌지만, 4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6:0 승리에 발판을 놓았다. 결과적으로 이 대회 선발요원들 가운데 가장 좋은 활약을 보였다. 여담으로, 당시 주심이자 현역 메이저리그 심판인 Greg Gibson이 보크를 선언하자 유창한 영어로 보크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때 영어를 너무 잘해서 심판이 놀랐다고 한다. "송승준과 영어의 힘"

3월 30일 한화와의 개막전에 등판했지만 3⅔이닝 4실점으로 털렸다. 그러나 팀은 역전승.

4월 4일 NC와의 PK더비 첫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6⅓이닝 1실점 6K로 QS+와 시즌 첫 승을 챙겼다. 팀은 개막 후 5연승을 질주.

8월 18일 NC전 연장 12회말, 지명타자 소멸인 상황에서 김성배의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미국시절 타격 경험이 있었기에 롯데 입장에선 대타로 쓸 야수가 한명도 없던 상황[6]에서 그나마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의외로 괜찮은 스윙을 보여줬다. 스윙폼이 이대호와 비슷해서 팬들을 놀라게 했다. 결국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해설위원 이숭용이 마지막 공을 보고 "저 공은 타자들도 속을 수밖에 없는 공"이라 말해준 걸로 위안 삼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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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석에 들어섰을 때의 표정.

4.8. 2014 시즌

1년 전과 같은 날짜에 또 다시 같은 팀을 상대로 선발 등판했다. 하지만 1회와 2회 연속 만루에 매번 주자를 꾸준히 내보내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에는 한화 불펜이 제대로 삽질해줘 패전은 면했지만, 이번에는 한화 불펜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는 개막전을 패배로 장식하면서 한화의 사직 개막전 징크스를 끊어주었다.

4월 6일에는 한술 더 떠 2이닝동안 5실점으로 시원하게 얻어맞았다. 승부가 일찌감찌 기울어졌고 그 후 심수창이 추가 2실점한 반면, 상대팀 안지만에게 점수를 딱 1점만 얻어내면서 팀은 졌다. 이후 기사에 따르면, 1회에는 컨디션이 정말 좋았는데 2회 딱 들어서면서 허벅지에 이상이 생겨 밸런스가 무너졌다.[7] 사실 직후에 트레이너가 올라갔지만 괜찮다고는 말했다. 그는 당시 고집부린걸 후회한다고 한다. 이후 출전한 4월 12일 KIA전과 4월 19일 두산전 모두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무승 3패에 방어율 6점대를 기록했다. 당연히 팬들에게 비난 받았다.

4월 24일 목동 넥센전에서 3⅓이닝 동안 6실점을 내주었다. 방어율은 6점대에서 8점대로 더 상승. 4회때는 밀어내기 볼넷까지 허용하면서 본인이 총체적 난국임을 제대로 보여줬다. 구위도 좋지 않은데 제구까지 안되면서 경기를 제대로 말아먹었다. 팬들은 팀에 민폐만 끼치는 송승준을 보며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송승준의 2군(상동)행을 간절히 바랬다.

5월 3일 경기에선 5.2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바지를 걷을 만큼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왔다. 예전처럼 4월이 지났으니 그가 다시 잘해주길 팬들은 바랬다.

5월 8일 두산전에서는 3이닝 동안 6실점을 기록하며 탈탈 털렸다. 롯데는 이날 두산에 15:6으로 대패했다. 전날 대승을 거두며 끌어올랐던 상승세에 찬물을 대차게 끼얹자 송승준은 또 신나게 까였다. 다른 해와는 달리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다. 리그에서 다패 부분 선두를 달렸다.

송승준은 원래 시즌 초반(4,5월)에는 컨디션이 들쭉날쭉했다. 하지만 당해에는 심하게 부진했다. 먼지 나게 털리면서 강점이던 이닝 소화조차 못했다.

5월 20일 삼성전에 선발 등판하였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4⅔이닝 4실점으로 대차게 털렸다. 팬들은 이제 아예 기대를 접은 수준. 이날 1패를 추가하면서 리그 다패왕 순위에서 독보적인 1등을 달렸다. 이때까지 롯데가 기록한 패는 19패. 그중 약 37%인 7패를 혼자서 기록했다. 당시 총 9개구단 선수들 중에서도 팀에 민폐끼치는 것으로 독보적이었다.


6월 7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하였다. 4강 다툼을 치열하게 하고 있는 SK와의 경기였고 본인도 절박함을 느꼈는지 7이닝 무실점 10k로 시즌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었다. 방어율도 7.11에서 6.08로 크게 낮추었다. 무엇보다 직구 구위가 살아난 게 인상깊은 경기였다. 시즌 2승째를 거두었고 2승 모두 문학에서 열린 SK전에서 기록했다. #

6월 13일 KIA전에 등판했다. 타선에 불이 제대로 붙은 KIA가 상대였다. 상대 선발투수는 양현종이었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는 송승준의 호투가 반드시 필요했다. 양현종을 넘어서면 4강 진출에도 청신호가 밝혀지기 때문에 팀 전체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 송승준은 이범호에게 쓰리런을 맞는 등 5실점을 했다. 하지만 팀의 8득점 지원으로 6⅓이닝 5실점, 승리투수가 되었다. 충분히 이닝을 먹어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7월 12일 광주 KIA전에서 지명타자였던 최준석이 포수로 들어가 지명타자가 소멸되자, 송승준은 강영식의 대타로 약 1년만에 타석에 들어섰다. 풀카운트 접전까지 가는 끝에 삼진으로 물러났다.

최종 24경기 8승 11패 122이닝 ERA 5.98, 피안타율 .325, WHIP 1.71의 성적을 거두었다. 망했다. 국내 복귀 이후 최고 방어율, 첫 시즌이었던 07 시즌에 이은 두번째로 적은 이닝, 12년과 함께 한 시즌 개인 최다패 기록 등 불명예스러운 기록만 남겼다. 여담으로 송승준은 이전까지 한 시즌 사구(몸에 맞는 공)가 두 자릿수를 넘은 적이 없었는데, 당해 10개로 최초로 두 자리를 넘겼다.

4.9.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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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FA

한편 2015년 9월 7일자 이 기사에 따르면, 2007년 첫해에 등록 일수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규정이닝의 ⅔를 채운걸 감안해 2007년 일수를 채운 걸로 인정받았다. KBO에서 송승준은 다음 해가 아닌 2015 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는다는 유권해석을 했다. 경위가 복잡한 편인데 자세한건 기사를 참조.

그리고 시즌 후, 리그에서 가장 먼저 계약에 성공했다. 4년 40억 잔류. #

4.11. 2016 시즌

1군과 2군에서 각각 10경기씩 등판했다. 선발로서 충분한 기회를 줬으나 1군에선 부진한 성적을 기록[8]하는데 그쳤다. 팬들은 그에게 0를 뚫고 -에 해당하는 수준의 평가를 내렸다.

1군에서 가능성이 전혀 없느냐? 그것은 또 아니었다. 2군에서는 그나마 사람 같은 성적을 기록[9]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군에서도 선발 관점에서 이닝소화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그에게 남은 1군 투수로서의 가능성은 1~3이닝을 소화하는 롱 릴리프 정도였다. 선발로서는 가망이 없었다.

그 가능성에 대해 '슬로우 스타터인 그가 릴리프라는 보직에서 잘 할 수 있을리 없다.'라는 회의론 파, '아직 1~3이닝이라면 담당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라는 긍정론파, '그냥 1군에서 보기 싫다.'라는 1군 배척론파로 팬들이 나뉘었다. 가장 큰 지지를 받는 건 1군 배척론파였다.

하지만 기적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을 때 왔다.

4.12.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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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진에 빠졌다가 다시 부활한 시즌이다.

4.13. 2018 시즌

파일:송승준 1600이닝 투구.jpg 파일:송승준 1200 탈삼진.jpg

2경기 1패 방어율은 5.40이다.

4월 11일 선발로 나왔으나 4타자만 잡고 햄스트링 부상을 호소하며 1.1이닝만에 진명호에게 마운드를 넘겨주고 내려왔다. 작년 꾸준한 모습을 보여준 선발투수 1명이 중도하차한 것은 아쉽지만, 다행히 이 날 진명호가 3.2이닝 퍼펙트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롯데의 핵심 계투로 활약하게 되었다.

6월 1일 한화전 다시 1군 콜업되어 5.2이닝 100구 8피안타 2볼넷 7K 3자책으로 승리 요건을 갖추고 내려갔으나, 믿었던 필승조가 무너지며 팀은 추가점을 전혀 내지 못하고 6:0에서 13:6으로 대역전패를 당했다.

6월 7일 NC전 등판해 4.1이닝 72구 6피안타 1볼넷 3K 3자책으로 조기강판되었다. 6회 팀의 타선이 4점을 내며 패전 위기는 벗어났으나, 이번에도 진명호가 무너지며 팀은 결국 패배했다.

6월 9일 박세웅의 복귀에 맞춰 불펜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6월 14일 삼성전 8회 초 등판해 2이닝 32구 1피안타 3K 무실점의 호투를 보여줬으나, 등판 시점에서 팀은 이미 역전당한 뒤였다.

6월 15일 SK전 박세웅의 뒤를 이어 5회 말 무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해 삼진과 희생플라이, 뜬공의 1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지었고, 4이닝 38구 1피안타(1피홈런) 3K 1자책을 기록하며 시즌 첫 승겸 통산 105승을 기록했다. 전날 32구를 던지고 장거리 이동 후 등판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홈런 하나를 제외하면 완벽한 투구를 보여줬다.

6월 19일 6회 말 김원중의 뒤를 이어 등판해 1.1이닝 31구 2피안타 3K 1실점을 기록했다. 다만 실점 과정이 아쉬운 것이 7회 말 2사까지 세 타자를 KKK로 잡아낸 후, 로하스의 안타 때 무리한 주루를 한 로하스를 2루에서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 타이밍이었으나, 80억 소녀 어깨가 2루로 한 번에 던지지 않고 원바운드로 신본기를 거쳐서 번즈에게 보내는 바람에 2루타가 되고 말았으며 이후 적시타를 맞아 동점이 되었으나, 남은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잘 잡아 역전은 허용하지 않았고, 8회 초 황진수의 홈런으로 시즌 2승째를 기록하였다.

특이하게도 구원 투수로 올라와서 동점을 허용했지만 송승준이 자신보다도 팀을 먼저 생각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고, 김원중이 무려 7점대의 평균 자책점으로도 리그 1위의 득점 지원으로 그간 4승이나 얻은 점, 요즘 팀의 타선이 8년 전의 향수를 일으킬 정도로 불이 붙고 있어 추가점을 기대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 송승준이 시즌 2승 째를 챙겼다는 점 등 때문에 팬들의 여론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당일 손승락이 포크볼을 실전에서 성공적으로 사용했고, 그것을 도와준 것이 송승준이라는 점을 언급하자 파도파도 미담만 나온다며 여론은 더욱 좋아진 상황이다.

파일:관리야구는 지랄.png

6월 중순 불펜으로 전환한 이후 2주도 안되는 사이 206구를 던졌다. 개석두의 관리야구는 허상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6월 29일 한화전에서 4회 등판해 25구를 던졌다. 6월 불펜으로 전환한 후 보름간 던진 공이 231개다.

9월 27일 넥센전 선발 등판해 1회부터 33개의 공을 던지며 3실점 1자책[10]을 하며 은퇴 직전에 몰렸으나, 2회부터 각성하며 투구 수를 매우 아끼며 5.2이닝 92구 4피안타 2볼넷과 몸에 맞는 공 하나, 5K 3실점을 기록했다. 2, 3, 4회엔 전부 삼자범퇴로 막아내는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나이 탓인지 90구 이후 힘이 빠져 QS까지 아웃 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김하성에게 볼넷을 주면서 승리 요건을 갖추고 오현택과 교체되었다. 그러나 그 재앙이 발단하며 승이 날아갔다.

10월 2일 한화전 선발 등판해 직전 등판처럼 또 1회부터 24구를 던지며 게임을 터뜨리나 싶었으나, 2회부터 5회까지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5이닝 77구 3피안타 3볼넷 2K 2실점 1자책으로 승리 요건을 갖추고 내려갔다. 내려간 이유는 단지 6회 첫 두 타자가 좌타자이기 때문이었으며 이후 이명우가 올라가 좌타자 둘을 상대한 후 우타자 지성준에게 2루타와 좌타자 하주석에게 내야안타를 맞고 윤길현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7회말 38억 족발 고롤코가 불을 지른 뒤 급하게 올라온 구승민 약쟁이에게 쓰리런을 맞으며 승리가 날아갔다. 다음날, 내려간 이유가 기사로 나왔는데 허벅지 통증때문이었다고 한다.

10월 9일, 기아전에서 선발 등판 예정이다. 제발 호투를 해주길 빈다.

10월 9일 기아전 3회초 2사 23루 상황에서 중견수 플라이로 끝날 상황이 조홍석 행복수비로 2실점을 하고 그 뒤 흔들리며 2.2이닝 7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후 왼손잡이가 적시타를 맞으며 실점은 8점으로 늘어났다. 조홍석의 수비는 실책으로 기록되지 않아 8점 모두 자책점이다. 그러나 경기가 동점이 되며 ND 처리되었다.

10월 14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 선발로 나와 5.1이닝 64구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하고 오현택에게 마운드를 넘겨줬다.

4.14. 2019 시즌

양상문감독의 말에 따르면 오프너로 쓴다고 한다. 기사 송승준 "은퇴? 아직 아니야…부족하면 떠나겠다" ① '롯빠아재' 송승준 "롯데 우승 순간 내가 있었으면" ②

인터뷰에서 작년엔 부상 때문에 리듬이 깨져 부진했다고 했는데, 이를 증명하듯 2월 23일 퉁이 라이온즈와의 연습 경기에서 구속은 144km/h까지 나오고 2이닝 퍼펙트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파일:송승준 7000타자 상대.jpg

정규시즌에서는 삼성과의 3차전에 자멸하고 내려간 윤성빈의 뒤를 이어 3.2이닝 5피안타 (1피홈런) 3사사구 3실점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이날 통산 7000타자 상대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후 윤성빈과 함께 퓨처스로 내려갔고, 4월 3일 3.1이닝 7피안타 2사사구 5실점을 기록했다.

이후 KBO 퓨처스리그로 내려가 4월 3일 상동 야구장 KIA 타이거즈 전 홈경기 선발로 나와 3.1이닝 19타자 69투구수 15타수 7피안타 2사사구 2삼진 5실점 5자책 13.50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여 첫 패를 기록하였고 4월 9일 SK 퓨처스 파크 SK 와이번스전 원정경기 선발로 나와 4이닝 16타자 45투구수 15타수 4피안타 1피홈런 1사사구 1삼진 3실점 3자책 9.82 평균자책을 기록하였다.

열흘이 딱 되자 4월 14일 1군에 등록되며 창원 NC 파크 NC 다이노스전 원정경기 선발투수로 확정되었다. 다만 1.0이닝 33투구수(S:18, B:15) 2피안타 4사구 2, 2실점 2자책으로 3번 타자 나성범, 5번 타자 박석민 볼넷, 6번 타자 권희동에게 안타를 내주고 일찍 강판, 팀은 9위로 추락했고 6연패로 이어졌다.

결국엔 또 4월 15일 말소되었고 1+1 전략은 또 실패. 이후 2군에서도 얻어맞고 있으며 아마 시즌 후 은퇴할 가능성이 크며 9월 다시 1군에 콜업되었고 14일 대전 한화전에서 오선진을 상대로 통산 1210번째 탈삼진을 잡아내 롯데 최다 탈삼진 선수가 되었다.

올해도 부진하면서 은퇴가 예상되었으나, 성민규 단장이 내년도 함께 간다는 뜻을 밝히면서 내년 시즌도 롯데에서 뛰게 되었다.

4.15. 2020 시즌

1군 최저 연봉인 5,000만원[11]을 받고 한 시즌을 더 뛰게 되었다. 보직은 중간계투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재계약 당시 성민규 단장은 올 시즌에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한 시즌을 더 뛰어도 상관없다고 말했고, 송승준 본인은 시즌 중에라도 안되겠다는 판단이 들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

4월 29일 교류 연습경기 NC 전에서는 선발등판하여 2이닝 1K 무실점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연습경기에서 2경기 0.00ERA 3이닝 0.00WHIP 9이닝당 3.00삼진 0.00볼넷을 기록했다.

5월 12일 두산 베어스 전에서 4회에 마운드에 올라 첫 등판을 가졌으나 김재환에게 홈런을 맞는 등 2이닝 3피안타 1피홈런 2실점을 기록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5월 17일 한화 이글스 전에서는 이승헌이 강습 타구를 머리쪽에 맞으면서 3회 1사 만루 상황에서 마운드를 넘겨받았으나, 3명의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는 분식 회계를 보였다. 여기에 4회에도 추가 실점을 기록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다급한 등판이였다고 하더라도 제구가 전혀 안되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 사이에선 이젠 진짜 보내주자는 의견이 대다수. 1.2이닝 3피안타 2볼넷 1실점을 기록하였다.

5월 23일 키움 히어로즈 전에서는 2피홈런으로 탈탈 털린 최영환의 뒤를 이어 2회초에 등판, 2.2이닝 동안 노히트로 키움 타선을 봉쇄하며 호투하였다. [12]

5월 30일과 6월 3일, 팀이 지는 경기에 등판하며 모두 실점했다. 30일 두산전은 끝내기를 허용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기아전은 승리와 무관한 상황이어서 2이닝을 소화했다.

주로 선발투수가 조기강판 되거나 점수차가 크게 났을때 등판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구속이 많이 떨어졌지만 변화구만큼은 여전히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최저연봉을 받고 뛰는지라 팬들도 큰 기대를 걸기보다는 은퇴를 준비하는 단계라고 생각했으나 WAR에서도 양수값을 기록하며 롱 릴리프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나가는 중이다.

특히 6월 7일 부진에 빠졌던 박세웅이 좋은 모습을 보이며 첫 승을 따낼 때 옆에서 격려와 조언을 보내줬다는 사실이 알려져 참된 베테랑의 모습이라며 팬들에게 찬사를 받고있다.

6월 9일 한화전에서 샘슨의 뒤를 이어 7회초 2사 1, 2루 상황에서 등판, 삼진을 잡아내 승계 주자를 지우고 다음 이닝도 등판해 1.1이닝 무실점으로 좋은 피칭을 보여줬다.

6월 13일 LG전에서는 5:3으로 뒤져있던 6회말 마운드에 올라와 1점을 내줬다. 그러나 7회초 공격에서 롯데가 대거 4득점으로 역전, 7:6으로 승리하며 687일만에 승투를 기록했다. 통산 108승.

6월 30일 현재 나올 때마다 주자를 출루시키지만 꾸역꾸역 막거나 번트로 아웃 하나만 잡은 후 교체되나 분식을 당하지 않아 1.79의 높은 whip에 비해 4점 초반의 era를 유지하는 중이다.

7월 4일 SK전에서 최대 147km/h의 직구를 던지는 등 1.1이닝 1실점으로 나쁘지 않은 피칭을 선보였다. 다행히 오현택이 파울플라이와 2루수 땅볼로 잘 막아내었지만 승계주자 3명을 남겨놓고 교체된 것은 아쉬운 점.

7월 8일 한화전 6:2 9회에 등판해 2K를 솎아내며 깔끔하게 1이닝을 틀어막았다. 최근 들어 마무리를 제외한 롯데 젊은 국내 투수진들이 많이 흔들리는 가운데 노경은과 함께 노장 투혼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7월 28일 NC전에서는 9회초 9:8로 뒤진 상황에서 73분 간의 우천 중단 끝에 경기가 속개된 후 김형준 상대 볼카운트 2볼에서 김원중에 이어 마운드를 이어 받았는데 김형준을 삼진, 박민우를 포수 파울 플라이 처리하며 추가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9회말 정훈의 재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이 터지면서 극적인 구원승을 따냈다. 시즌 2승째이자 통산 109승이다.

이후 중간계투로만 나오다가 2군에 내려갔고, 9월 8일 NC전에서 1군으로 콜업되자마자 선발로 나서게 되었다. 사실상 첫번째 투수로서 2~3이닝 정도 던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회도 버티지 못하고 0.1이닝 3피안타 2사사구 5실점 5자책을 기록하며 강판되었다. 개인 KBO 커리어 선발등판 최단이닝 투구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썼다.

시즌 후 방출 명단에 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이미 성적이 하락세에 접어드는 지라 현역생활을 더 이어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구단은 송승준과 대화를 통해 향후 진로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4.16. 2021 시즌

2020시즌 후 두 번의 방출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2020년 기준 만 40세의 노장이고 구위하락이 뚜렷해서 올 시즌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은퇴할 것이라는 예측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20년 11월 26일,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다 시즌 중 은퇴경기를 치르고 이후 코치 업무와 프런트 업무를 수행할 예정으로 2021 시즌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확정되었다. 프랜차이즈 스타와의 의미있는 마무리를 위한 재계약으로 보이며, 타자 쪽은 이대호가 있지만 투수 쪽에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이 없다는 점에서도 계약에 의미가 있다.[13] 이로 인해 2021 시즌 KBO 최연장자가 되었다.[14]

3월 11일 약물 의혹이 터졌다. 하지만 몇시간 후 본인이 바로 입장문을 공개하며 반박했다. # 이후에 이여상에 대한 폭로가 터져나와 폭로의 신빙성이 의심되며 여론이 송승준에게 기울어졌다.

이후 시즌이 시작돼서도 이렇다할 소식이 들리지 않다가 4월 16일 오랜만에 들린 소식에 의하면 시즌 전 소동때문에 선수단에 합류하지 못하고 스카우트팀과 동행하고 있다고 한다. 김풍철 팀장과 함께 주로 고교선수들을 보러 다니고 있다고.

하지만 이후 6월달에 팀 다큐멘터리에서 훈련시간 때 그라운드에서 후배들에게 조언하는 모습이 나온걸 보면 어찌저찌 선수단과는 합류한걸로 보인다. 다만 약물파동이 밝혀지기 이전이라 현재는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6월 14일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는 송승준에게 금지약물 소지로 7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다. 본인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강력히 항소를 주장하고 있으나, 징계가 최종 확정된다면 본인 입장에선 불명예스런 은퇴가 될가능성이 높다.[15]

최근 들어서는 우강훈 등 신인급 선수들의 볼을 잡아주고 코칭을 해주면서 플레잉 코치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10월 30일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은퇴식은 올해 약물소동으로 인한 구설수를 책임지고 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한달 후인 11월 19일 기사를 통해 은퇴 발표 하루 전인 10월 29일 이미 위증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

5. 연도별 주요 성적

5.1. MiLB

  • 한 연도에 동일 구단 산하 여러 레벨의 기록이 존재할 결우, Rk → A- → A → A+ → AA → AAA 순으로 서술.
역대 기록(투수)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9 GCL 레드삭스(Rk) 13 54⅔ 5 5 0 0 .500 2.30 47 2 24 61 29 14 1.23
2000 로웰 스피너즈(A-) 13 72⅔ 5 2 0 0 .714 2.60 63 1 20 93 26 21 1.14
2001 오거스타 그린재킷스(A) 14 75 3 2 0 0 .600 2.04 56 3 20 79 24 17 0.99
사라소타 레드삭스(A+) 8 48⅓ 5 2 0 0 .714 1.68 28 1 18 56 11 9 0.95
2001 시즌 합계 22 123⅓ 8 4 0 0 .667 1.90 84 4 38 135 35 26 0.97
2002 트렌턴 썬더(AA) 21 108⅔ 7 7 0 0 .500 4.39 106 11 43 116 35 26 0.9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2 해리스버그 세너터스(AA) 1 5 0 0 0 0 - 0.00 5 0 0 5 2 0 1.00
2002 시즌 합계 22 113⅔ 7 7 0 0 .500 4.20 111 11 43 121 37 26 1.30
2003 해리스버그 세너터스(AA) 13 72⅔ 5 2 0 0 .714 2.35 55 5 25 44 26 19 1.09
에드먼턴 트래퍼스(AAA) 13 73⅔ 7 2 0 0 .778 3.79 69 6 34 40 34 31 1.38
2003 시즌 합계 26 146⅔ 12 4 0 0 .750 3.08 124 11 59 84 60 50 1.24
2004 GCL 엑스포스(Rk) 2 9⅓ 1 0 0 0 1.000 5.79 10 0 4 3 6 6 1.50
브레바드 카운티 매너티스(A+) 3 12 0 1 0 0 .000 6.75 14 2 3 10 11 9 1.42
에드먼턴 트래퍼스(AAA) 13 63⅓ 3 1 0 0 .750 4.26 70 7 32 59 35 30 1.56
2004 시즌 합계 18 84⅔ 4 2 0 0 .667 4.78 94 9 39 72 52 45 1.5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5 산호세 자이언츠(A+) 9 37 5 2 0 0 .714 1.95 27 3 19 47 11 8 1.19
노리치 내비게이터스(AA) 6 36⅓ 3 2 0 0 .600 2.48 34 4 7 29 10 10 1.13
프레즈노 그리즐리스(AAA) 10 55 2 4 0 0 .333 4.42 50 6 38 37 32 27 1.56
2005 시즌 합계 25 123⅓ 10 8 0 0 .556 3.16 111 13 64 113 53 45 1.33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6 위치타 랭글러스(AA) 27 130⅔ 5 10 0 0 .333 5.37 138 16 74 99 83 78 1.59
MiLB 통산
(7시즌)
166 854⅓ 56 42 0 0 .571 3.50 772 67 361 778 401 332 1.30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3년 2완투 1완봉
MiLB 통산 2완투 1완봉

역대 기록(타자)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03 해리스버그 세너터스(AA) 13 7 .286 2 0 0 0 0 1 0 1 .375 .286 .661
에드먼턴 트래퍼스(AAA) 13 10 .300 3 0 0 0 0 2 0 1 .364 .300 .664
2003 시즌 합계 26 17 .294 5 0 0 0 0 3 0 2 .368 .294 .662
2004 에드먼턴 트래퍼스(AAA) 14 17 .176 3 1 0 0 1 0 0 0 .176 .235 .41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05 노리치 내비게이터스(AA) 6 4 .500 2 1 0 0 2 0 0 0 .500 .750 1.250
프리즈노 그리즐리스(AAA) 10 5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2005 시즌 합계 16 9 .222 2 1 0 0 2 0 0 0 .222 .333 .555
MiLB 통산
(17시즌)
56 43 .233 10 2 0 0 3 3 0 2 .267 .279 .546

5.2. KBO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sWAR
2007 롯데 25 117 5 5 0 0 0.500 3.85 115 13 55 76 52 50 1.40 1.91
2008 26 153⅓ 12 7 0 0 0.632 3.76 154 7 76 114 78 64 1.46 2.87
2009 29 167⅔ 13
(4위)
8 0 0 0.619 4.72 175 25 76 104 92 88 1.45 2.80
2010 27 168 14
(4위)
6 0 0 0,700 4.39 156 20 69 113 90 82 1.29 3.06
2011 30 172⅓
(5위)
13
(4위)
10 0 0 0.565 4.18 181 17 66 126 84 80 1.39 3.35
2012 28 163 7 11 0 0 0.389 3.31 158 12 65 117 73 60 1.32 2.77
2013 29 167⅔ 12 6 0 0 0.667 3.76 171 11 68 133 74 70 1.40 4.06
2014 24 122 8 11 0 0 0.421 5.98 166 16 53 89 91 81 1.71 1.64
2015 25 125 8 7 0 0 0.533 4.75 131 17 48 112 71 66 1.42 1.76
2016 10 41⅓ 1 2 0 0 0.333 8.71 62 6 23 35 43 40 2.01 -0.77
2017 30 130⅓ 11 5 0 1 0.688 4.21 132 19 45 113 63 61 1.33 2.80
연도 출장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sWAR
2018 롯데 22 79 3 4 0 0 0.429 6.15 93 8 39 68 58 54 1.62 0.36
2019 11 14⅓ 0 1 0 0 0.000 4.40 16 2 6 13 7 7 1.54 0.19
2020 22 24⅔ 2 2 0 1 0.500 6.20 30 2 17 25 17 17 1.78 0.09
2021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5시즌)
338 1645⅔ 109 85 0 2 0.562 4.48 1740 175 708 1238 893 820 1.44 26.88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colbgcolor=#ffffff,#191919> 2003 2완투 1완봉
2007 2완투
(3위)
0완봉
2008 2완투
(2위)
1완봉
(2위)
2009 3완투
(3위)
3완봉[16]
(1위)
2010 1완투
(6위)
0완봉
KBO 통산 8완투 4완봉

[1] 김사율/선수 경력 문서 아마추어 문단 참조 [2] KBO에서 활동하는 이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믿기지 않겠지만 당시 김병현, 서재응, 최희섭, 송승준, 김선우, 봉중근, 백차승, 추신수 등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까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들 대부분은 국제 유망주 자유계약 시장에서 최고의 유망주로 대접받던 선수들이었다. 실제로 메이저까지 대부분 갔었고 김병현이나 추신수는 말할것도 없고 그외에 몇몇은 단기적으로는 꽤 임팩트를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뒤에 호기롭게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많은 한국인들이 메이저 무대조차 밟지 못하고 온 것을 보면 확실히 저때 당시 유망주들의 재능 자체는 뛰어났다고 봐야할 듯. 단적인 예로 김선우 추신수의 계약금은 100만 달러가 넘어갔는데, 이 정도는 웬만한 드래프트 1라운더의 계약금과 맞먹는다. [3]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소속되어 있던 2004년, 메이저리그 콜업이 확정된 상황에서 메이저 데뷔 이틀 전 마이너리그 경기 중 부상을 당했다. 당시 송승준은 김선우와 팀메이트였는데 부상을 당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와서는 김선우에게 "행님~ 고마 제 운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더..."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한다. 근데 조금 아이러니한 것은 송승준의 부상으로 인해 생긴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메이저로 콜업된 선수가 바로 김선우였다는 것. 더 자세한 당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김선우의 인터뷰. [4] 원래 손민한을 선발하려 했으나, 손민한 본인이 자기 대신 송승준을 추천하여 최종 엔트리에 뽑혔다는 카더라가 있다. [5] 2012 프로야구 첫 삼진 포함. [6] 9회말에 동점을 만들기 위해 야수카드를 모조리 뽑아들었고, 급기야 지명타자로 나왔던 장성호도 대주자 교체후 수비로 돌려서 지명타자마저 없어졌다. 10회말 투수 타석에서는 강영식이 타격했다. [7] 11년도에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던 부위라고 한다. [8] 10경기 8.71 41.1이닝 [9] 10경기 2.66 50.2이닝 [10] 2사 12루에서 민병헌의 행복 수비로 주자가 모두 들어왔다. 다만 1회 2사를 잡은 것도 번즈의 호수비와 안중열의 도루 저지로 가능했다. [11] 그 전 시즌까지 1군에 등록된 적이 없던 2군 선수의 연봉은 2,700만원에서 시작하고 이 금액이 프로야구 선수의 최저연봉으로 많이 알려져있지만, 실제로 2군에서 뛰다 1군으로 콜업된 선수는 규정에 따라 해당 시즌에서 1군으로 뛴 만큼은 5,000만원에 맞춘 금액을 받는다. 간단히 말해 2700만원의 2군 최저 연봉을 받던 선수가 한 시즌의 절반을 1군에서 뛰었다면 2,700만원 중 절반인 1,350만원과 5,000만원 중 절반인 2,500만원을 각각 합쳐서 받게 된다는 것이다. [12] 2루수 실책으로 출루를 허용한 것이 유일하다. [13] 노경은, 김대우가 있지만 오래 있진 않았고 김대우는 올 시즌 거의 처음으로 1군에 오래 있었다. [14] 지난 시즌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박용택(1979년생), 권오준, 이택근(이상 1980년생)이 모두 은퇴함에 따라 1980년생이 송승준 한 명 뿐이다. [15] 다만 여론은 복용을 한것도 아니고 바로 돌려준 부분이라 다소 호의적인 편이다. 물론 신고를 바로 안한건 분명 잘못인건 맞지만, 야구계의 선후배문화를 본다면 차마 후배 인생망치는 일은 본인이 하고 싶진 않았을 부분도 참작하긴 해야한다. [16] 3경기 연속 완봉승. 1995년 OB 베어스의 투수 김상진이 기록한 이래 14년 만이며 한국 타이기록이다. 2연속 완봉으로도 2002년 두산 베어스 투수 빅터 콜 이래 7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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