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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총기 발전사 ||
장전 방식 | 전장식 | 후장식 | |||
격발 방식 | 매치락 | 휠락 | 플린트락 | 퍼커션 캡 | 탄피 |
강선 유무 | 머스킷 | 소총(라이플) |
1. 개요
Percussion Cap |
기본적인 구조는 플린트락과 거의 같은 전장식 흑색화약 총이지만, 부싯돌과 화약 접시 대신에 단순한 공이와 뇌홍을 담고 있는 작은 금속제(주로 구리) 캡인 퍼커션 캡으로 구성된 발화장치로 되어 있다. 약실로 이어지는 꼭지[1]에 캡을 씌우고 방아쇠를 당기면 공이가 캡을 때리면서 예민한 뇌홍을 격발시키고, 뇌홍의 불꽃이 약실의 장약을 발화시켜 발사된다. 물론 이 캡은 일회용이므로 총알 개수만큼 갖고 다녀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캡을 떨구거나 잃어버리기 쉬워서 여분을 좀 갖고 다니는 편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인류는 최초의 뇌관을 가지게 되었다.
훗날 이 캡은 탄피, 탄두와 결합해서 일체화된 탄약이 된다.
조선에서는 동화모(銅火帽) 또는 동모(銅帽), 동모아(銅帽兒)라고 부르며 청나라에서 수입하다 적어도 1883년 이후로는 기기국을 통해 자체 생산한 기록이 있다.
2. 상세
퍼커션 캡 격발 방식은 영국의 화학자였던 에드워드 찰스 하워드(1774~1816)가 1800년에 개발한 것이 시초이다. 그리고 몇년 후, 스코틀랜드의 애버딘셔, 벨헬비에 있는 교회의 목사 겸 발명가였던 알렉산더 존 포사이스(Alexander John Forsyth 1768~1843)가 1807년에 찰스 하워드가 만든 격발 방식을 좀 더 다듬은 후 개발을 완료했다. 포사이스는 평소 새 사냥을 즐겼는데 기존 플린트락 방식의 총은 구조상 방아쇠를 당기면 우선 부싯돌이 화약 접시의 점화용 화약에 불을 붙이는지라 발사까지의 약간의 시간차가 있었다. 때문에 새가 부싯돌 소리만 듣고 날아가버리고는 해서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발사되는 총을 만들기 위해 퍼커션 캡을 개발했다. 또한 영국/스코틀랜드의 포사이스가 가장 대표적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비슷한 시기에 다른 나라에서도 각자의 퍼커션 캡을 개발한 사람들이 여럿 존재한다.매치락 시대부터 근 4백년을 이어져 온 화약 접시가 대부분 사라지면서[2] 장전 속도도 더 빨라졌고[3], 바람 불고 비오는 날에도 장약만 젖지 않으면 안정적으로 발사할 수 있다는 부가 효과도 얻게 되었다.[4] 격발부가 밀폐된 덕분에 탄속이 상승하는 개선점도 가져왔다. 여기에 더해서 불발확률이 크게 떨어지는 아주 좋은 결과도 가져왔다. 플린트락 시대에는 플린트가 무디어져서, 프릿즌이 닳아서, 바람이 불거나 총이 흔들려서 플래시 팬의 화약이 쏟아져서, 아니면 그냥 재수가 없어서 플래시 팬만 점화하고 제대로 격발이 안 돼서 등등 온갖 사유로 불발나는 일이 다반사라, 군대에서는 10명이 쏘면 7~8명만이 격발한다고 세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반면 퍼커션 캡의 불발률은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는 새 사냥 등의 취미나 생활용으로도 매우 큰 차이며, 군용 무기로서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이렇게 퍼커션 캡이 개발된 지 한참 후인 1842년에 이르러서야 영국군이 브라운 베스의 개량형에 이 방식을 채택하였고 그 이후에야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5] 이렇게 채택이 늦어진 것은 포사이스의 특허권이 소멸될 때까지 채용을 늦췄기 때문이다.[6]
상단 사진의 모자처럼 챙이 있는 퍼커션 캡은 일명 머스킷 캡(또는 winged musket cap)이라 부르는 것으로, 퍼커션 캡 규격 중 비교적 크기가 크고 챙 덕분에 잡아 들고 씌우기 쉽다. 사실 개발 최초의 퍼커션 캡은 저런 챙이 없었고, 그래서 손가락이 정밀하지 못한 서양 군인들은 니플에 씌우는 걸 제법 어려워했으며, 일부 국가의 군은 이때문에 퍼커션 캡을 낮게 평가하기도 했다.
그 대책으로 캡이 아닌, 내부에 뇌홍이 담긴 가느다란 튜브 형태의 구리 점화관을 쓰는 튜브락이라는 물건도 만들어졌다. 튜브락 자체는 원래 밀짚을 빨대처럼 사용해서 화약을 담아 대포의 점화용으로 쓰던 물건에서 기인했다. 소총용으로 개량된 튜브락은 퍼커션 캡과 놓고 비교하면 장전이 쉬웠는데, 니플 대신에 드럼이라 불리는 측면의 넓은 구멍에 끼우고(상단부가 열리기 때문에 끼운다기보단 놓는 것에 가깝다), 공이가 달린 드럼 뚜껑을 덮은 후 방아쇠를 당기면 해머가 공이를 때리고 공이가 드럼 속의 튜브를 때려 격발한다. 처음에는 가스와 불똥이 새기 쉬운 구조에 뚜껑을 서둘러 닫다가 공이가 튜브를 때려 의도치 않은 격발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드럼과 뚜껑을 개량해서 이 문제점은 잡는다. 튜브를 가느다란 구리 실로 페이퍼 카트리지에 하나씩 매달아두었기에 퍼커션 캡식처럼 페이퍼 카트리지와 캡을 따로 꺼낼 필요가 없어 조금 더 빠른 재장전이 가능했다. 이러한 나름의 장점이 있는 구조라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주로 채용했다.
그러나 오헝이 튜브락을 채용하는 동안, 다른 지역에서는 그냥 퍼커션 캡에 챙을 달면 손가락으로 집기도 씌우기도 쉽다는 것을 깨달아 금세 개량이 이루어졌고 대세를 차지하게 된다. 튜브락은 채용 초창기에 뇌홍보다 덜 민감한 화합물을 사용해서 퍼커션 캡보다 신뢰성이 떨어지는[7] 헛발질을 했던데다, 오헝이 채용해서 대량으로 쓰고 있는 상황에서는 타국에서 대세인 퍼커션 캡으로 갈아타기도 뭣하고, 당장은 쓸만해도 장래적으로는 탄피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퍼커션 캡의 장점은 갖지 못해 결국 대세는 차지하지 못한다.
기존의 전장식 총기에 간단한 개조만 가하면 퍼커션 캡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남북 전쟁 등 주요 19세기 전투에 모두 이 방식의 머스킷과 소총이 사용되었으며, 심지어 초기형 리볼버 또한 이 방식을 사용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1860~70년대 이래로 일본 등지에서 직수입되어 기존의 화승총을 대체하기 시작하였으며, 1880년대 부터는 기기국을 통해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다. 구한말 의병들 중 일부가 외국으로부터 사들이거나 직접 대장간에서 제조하는 식으로 퍼커션 캡 작동 방식의 조총이나 권총을 만들기도 했다.
캡&볼 리볼버라 통칭하는 퍼커션 캡 사용 리볼버는, 실린더의 각 약실에 흑색화약과 탄환을 넣고 총에 달린/또는 외장식의 램로드로 꽉 눌러준 후 실린더 뒷부분 각 약실마다 하나씩 달린 니플에 일일이 캡을 달아 점화시키는 방식이다. 비단 콜트 리볼버뿐 아니라 레밍턴제 리볼버, 스타 리볼버, 애덤스 리볼버 등 당대 리볼버가 전부 다 그랬다.[8] 캡앤볼 리볼버가 나오기 전에도 리볼버 자체는 존재했으나, 플린트락과 매치락 구조에 필수적인 플래시 팬을 각 약실마다 따로 달아주거나, 공용 플래시 팬에 자동으로 점화약이 일정량 주입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했고 당시의 부실한 금속 가공 능력 덕에 완성도가 꽤 부족한 편이며 비쌌기에 당연히 널리 퍼지지 못했다. 하지만 캡앤볼 리볼버는 가끔 캡이 반동으로 벗겨져나가는 등의 실패 확률은 있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확실하게 실용성이 보장되었기에, 본격적인 리볼버 시대를 열고 개인용 연발 휴대화기의 대중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부피 큰 챙이 있는 머스킷 캡은 니플이 작고 좁은 곳에 오밀조밀하게 들어가 있는 캡&볼 리볼버에 맞지도 않고, 챙이 쓸데없이 실린더 회전에 방해되기도 하기에, 캡앤볼 리볼버용 퍼커션 캡은 챙이 없는 물건을 쓴다. 보통 #10 캡(리볼버 표준 사이즈)과 #11 캡(좀 큰 사이즈)이 가장 흔히 쓰인다. 캡앤볼 리볼버는 어차피 미리 장전해두고 쓰는 물건이라 챙이 없어도 크게 문제 없고, 캡앤볼 리볼버의 재장전을 돕기 위해 캡퍼라고 부르는 장전 도구도 있다.
후에 이 퍼커션 캡의 구조를 간략화하여 뇌홍 캡과 화약, 총알을 일체형으로 만들었으며, 이것이 곧 탄피의 탄생이 되었다. 이후 앞서 언급된 많은 전장식 총들이 탄피식으로 개조되기도 했다.[9] 그래도 탄약의 등장 후 바로 사라지지 않고, 초기의 핀파이어 탄약, 림파이어 탄약들이 여러 문제점을 보유해 센터파이어 탄약이 나오고 대중화가 될 때까지 페이퍼 카트리지와 함께 계속 쓰였다.
70년대부터 국내에 판매하기 시작한 장난감 화약총의 경우, 격발 장치와 이 퍼커션 캡만 있는 것과 같은 구조이다. 단발과 6연발, 8연발이 있었으나 90년대 들어 안전 문제나 민원, 사고가 일어나며 화약을 이용한 장난감 제조가 어려워지고 사실상 시중에서 사라졌다.[10]
1967년작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 “황야의 분노”(Day of Anger, I giorni dell'ira, 1967)에서 리 밴 클리프(프랭크 탤비 역)의 마상결투씬에서 장전하는 모습이 리얼하게 나온다.(0:00 ~ 1:08 구간) 당시에도 이미 구식이었던 소총을 말 위에서 소지한 상태에서 먼저 장전하고 발사하여 상대를 절명케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설정.[11][12]
20세기 이후에는 실전에서 사장된 지 오래로 알려져 있으나,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서 미얀마 반군과 시민군이 사용하는 게 확인되었다. #
물론 서구권에서는 플린트락과 마찬가지로 민수 사냥용/전통 사격 스포츠용으로는 여전히 어느 정도 입지가 있다.
[1]
조금 속된말로 젖꼭지 노출형이라고 한다. 아예 이 부분을 가리키는 영단어도 Nipple(꼭지, 젖꼭지)니까.
[2]
구조가 비슷한 기존의
매치락 등을 개조해서 만든 경우 화약접시가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3]
다만 플린트락보다 반드시 빠른 것은 아니다. 페이퍼 카트리지를 쓰는 플린트락은 페이퍼 카트리지 하나만 꺼내면 점화약과 장약 둘 다 해결되지만, 퍼커션 캡은 약실 장약과 별개로 캡을 다른 주머니에서 따로 꺼내서 끼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군인들은 굵은 손가락으로 조그마한 캡을 끼우기 어려워했고, 서두르다가 캡을 놓치는 일도 흔했다. 캡을 놓치는 문제 때문에 아예 캡을 탄약량보다 10% 정도 더 많이 보급했을 정도.
[4]
화약을 가지고 다니거나 장전하는 동안 화약이 젖어서 비오는 날에 사격을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려웠다. 비오는 날에도 문제없이 사격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현대적인 금속탄피가 등장한 이후의 일이다.
[5]
1833년 미 육군이
M1819 홀 소총을 개량하면서 대량 사용하기도 했고, 애초에 사냥용 샷건을 만들기 위해 제작을 시작했기에 스포츠나, 사냥, 호신용
데린저 등에서는 1842년 이전에도 사용되고 있었다.
[6]
비용 문제도 있다. 부싯돌 하나로 수십에서 수백발을 쏠 수 있는
플린트락이나 화승을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는
매치락과는 달리, 퍼커션 캡은 1회용에다가 화학 지식 및 산업 인프라가 없으면 양산이 어렵다. 그래서 퍼커션 캡을 자체 생산할 능력이 없는 사회에서는 한동안 계속 이전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7]
그래도 격발 실패율이 한자릿수라, 플린트락보다는 훨씬 낫다
[8]
가끔
서부극에서 뇌관식 모델 리볼버들을 탄피식으로 재장전해 쏘는 장면이 있는데,
고증오류가 아니다. 1860년대를 넘어 기술이 발달하면서 뇌관식을 탄피식으로 바꾸는 개조는 쉽고 흔한 것이 되었다.
[9]
퍼커션 캡에 탄두를 끼워 만든 총알로 실내사용을 염두에 둔 총기들에 갤러리건 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이후 발전하여
림파이어 탄약이 된다.
[10]
오프라인에서 구하기 힘들 뿐이지 재고가 있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구할 수 있다.
[11]
영상의 배경음악은 나중에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와
군도: 민란의 시대에
OST로 수록된다.
[12]
재밌게도 클리프가 미리 입에 납탄을 물고있어 배럴에 화약을 넣자마자 바로 총구를 입에 대고 뱉어 상대보다 더 빠르게 장전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주인공의 승리에 신빙성을 준다. 실제로 당시 엘리트 군인들은 더욱더 빠르게 재장전 하기 위해 입에 납탄을 물고있다 넣는 방식으로 장전했다는 기록을 인용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