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특별 재판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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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팔 학살 [[안팔 학살/재판| /재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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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3년 12월 13일 미군에 의해 이라크의 독재자였던 사담 후세인이 체포되었고, 이라크 연합 임시 당국은 사담 후세인에 대해 전쟁 범죄와 대량 학살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이라크 특별 재판소는 사담 후세인에 대해 사담 후세인의 암살 시도가 발생한 두자일에서 대량 학살이 발생한 두자일 학살, 알-안팔에서 쿠르드족을 대량 학살당한 안팔 학살, 사담 후세인 정권의 인권침해과 이란-이라크 전쟁 시기 남부의 시아파를 탄압하고 학살한 의혹 등으로 사담 후세인과 그의 측근들을 차례차례 기소했다.
2. 배경
자세한 내용은 사담 후세인/일생 문서 참고하십시오.3. 과정
3.1. 2004년 7월 1일 청문회
2004년 7월 1일, 재판 이전 사담 후세인에 대한 46분간의 청문회가 열렸다. 사담 후세인은 진정한 범죄자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라며 자신에 대한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이라크 특별 재판소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이 모든 것이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일으킨 쇼라고 주장했다.사담 후세인은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으며, 판사들이 신원 확인을 묻는 형식적인 절차를 하려 하자 "너희들은 이라크인이고 내가 누군지 알잖아."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을 옹호했고 법정에서 거친 발언을 하기까지 하는 등 청문회와 앞으로 있을 재판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에 쿠웨이트 정보부 장관 아불 하산은 (이런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다고 하면서 이런 태도는 그가 자란 방식을 보여준다며 후세인을 비판했다.
3.2. 수사 및 재판 과정
조지 W. 부시와 당시 스페인 총리 호세 아즈나사이의 2003년 2월 회의의 유출된 녹취록에서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의 재판을 헤이그 국제 사법 재판소에서 재판할 의향을 표명했다.2004년 12월, 클라이브 스태퍼드 스미스는 사담 후세인이 왜 미국 형법에 따라 미국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50페이지 분량의 브리핑을 준비해 발표했다.
런던에 본사를 둔 아랍어 일간지 알 쿠즈 알 아라비는 2005년 5월 초, 요르단의 일부 이라크 관리들에게만 알려진 도널드 럼즈펠드와의 회담에서, 사담 후세인은 자신이 이라크 내부의 무장단체들에게 연합군과의 휴전을 요청하면 석방해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신문은 익명의 영국 고위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라크 저항세력이 공격을 포기하면 사담 후세인이 더 관대한 판결을 받게 될 협상을 제의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5년 6월 17일, 마하티르 모하마드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 램지 클라크 당시 미국 법무장관, 롤랜드 뒤마스 당시 프랑스 외교부 장관, 아메드 벤 벨라 당시 알제리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과 바트당 관계자들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는 이라크 국제 비상위원회의 설립을 발표하고 공동 의장직을 수행했다.
2005년 7월 18일, 사담은 1982년 두자일 마을 주민들의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특별재판소에 의해 기소되었다. 2005년 8월 8일, 사담 후세인의 가족은 요르단에 기반을 둔 변호인단을 해산시켰으며, 유일한 이라크 출신 멤버인 칼릴 알 둘레이미를 유일한 법률 고문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이라크의 잘랄 탈라바니 대통령은 2005년 9월 6일, 이라크 TV에서 방송된 인터뷰에서, 전임자인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직접 자신의 정권 동안 대량 학살과 다른 범죄를 명령했으며, 자신은 죽을 만하다고 고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틀 후, 사담의 변호사는 그가 자백했다는 것을 부인했다.
사담 후세인의 변호인 측은 검찰이 확보한 증거가 없다며 재판 지연을 거듭 주장했고, 검찰 문건을 검토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이들 제출은 재판부로부터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국제앰네스티, 유엔 등 국제인권단체들은 이라크 특별재판소가 공정한 재판을 위한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사형선고 가능성뿐만 아니라 공정성에 대해서도 비슷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 소송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다.
3.3. 두자일 학살/재판
자세한 내용은 두자일 학살/재판 문서 참고하십시오.2005년 10월 19일,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알-두자일에서 발생한 시아파 대량 학살 사건으로 기소되어 바르잔 이브라힘 알 티크리티, 타하 야신 라마단 등과 재판을 받은 사건.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3.4. 안팔 학살/재판
자세한 내용은 안팔 학살/재판 문서 참고하십시오.2006년 12월,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알-안팔에서 발생한 쿠르드족 학살 사건으로 기소되어 알리 하산 알 마지드, 술탄 하심, 파한 주부리 등과 재판을 받은 사건. 다만 이 재판 진행 중 사담 후세인은 두자일 학살에 대한 혐의로 사형당해 재판의 중반부터는 사담 후세인 없이 진행되었다.
4. 반응
이라크 잘랄 탈라바니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이번 재판이 공정했다고 생각한다"며 "이라크 사법부의 독립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누리 알 말리키 총리는 "사담 정권 시절 미망인과 고아, 사랑하는 사람을 비밀리에 묻도록 명령받은 사람들, 감정과 고통을 억누르도록 강요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칼레드 알 아티야 이라크 국회 제1부대표는 "우리는 사담 후세인과 그의 심복들이 이라크 국민, 아랍인, 쿠르드족, 이슬람교도, 그리고 서방 사회 전체를 상대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최대한의 처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인도 프라나브 무커지 외무장관은 사형 선고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며, 그러한 판결은 "승자의 정의"로 보여서는 안되며 이라크 국민과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성명에서 "이러한 사형 결정은 신뢰할 수 있는 법적 절차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
벨기에 카렐 데 구흐트 벨기에 외무장관은 69세의 노인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말하는 한편, 가이 베르호프슈타트 총리는 언론에 "정의가 이루어졌다"고 말했지만, 후에 총리의 대변인은 헤이그의 국제 형사법원에서 사담 후세인을 재판하는 것이 더 낫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외무부 장관의 대변인은 아일랜드와 EU 협력국들은 과거 이라크 정부 인사들에 사형선고를 적용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
이탈리아 로마노 프로디 총리는 "범죄를 축소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사형 선고에 대한 이탈리아 정부의 확고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2006년 12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재차 강조했듯이 이탈리아는 사형제도에 항상 그리고 모든 경우에 반대한다. 그것은 내가 유엔에서도 단호히 강조한 일반적인 원칙이다."라며 사담 후세인의 재판과 사형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
러시아 콘스탄틴 코사체프 외교위원장은 사형이 집행될지 의문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이것은 현대 이라크가 사담 후세인 정권에 취하고 있는 도덕적 판결에 가깝다"고 말했다.
영국 마거릿 베켓 외무장관은 "이라크 국민을 상대로 한 범죄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은 이라크 정의에 직면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니 블레어 총리는 사담 후세인이든 누구든 사형제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
바티칸 시국 교황청 정의평화회의의 레나토 라파엘레 마르티노 추기경은 사담 후세인에 대한 사형 선고를 반대하며 "저에게는 죄를 다른 죄로 처벌하는 것, 즉 정당성을 위해 살인을 하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요구하는 시점에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토니 스노우 백악관 대변인은 재판이 이라크 사법부가 독립적이라는 '절대적인 증거'를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사담 후세인의 재판은 독재자의 통치를 법치주의로 대체하려는 이라크 국민들의 노력에 획기적인 사건"이라며 "오늘날 이 정권의 희생자들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정의의 척도를 받았다"고 밝혔다.
짐바브웨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짐바브웨 망명자 모임은 사담 후세인의 사형 선고를 환영하며, 사담 후세인의 사형은 퇴위된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와 전 라이베리아 독재자 찰스 테일러의 몰락과 함께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는 물론 전세계의 독재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기를 희망했다.
"우리는 피노체트, 테일러 그리고 다른 최근의 사건들과 함께 이 사건은 국제법. 국가법에 따라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독재자들과 가해자들에게 명백하게 분명하고 중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 큰 메시지가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과 그의 밑에서 고문과 기타 반인륜적 범죄의 위임을 받고 있는 모든 독재자들의 귀를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호주 존 하워드 총리는, "그들은 다른 많은 나라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임의적으로 사담 후세인을 처형하는 것을 허락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은 투명한 재판을 선택해 새로운 이라크가 존재한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기로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또 존 하워드 자신은 사형 제도에는 반대한다고 밝혔으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재판을 받아 적법한 절차로 형을 집행했다는 것을 높게 평가했다.
뉴질랜드 헬렌 클라크 총리는 유죄 판결 자체는 적절했지만, "오랫동안 사형제도에 반대해 왔고, 그것은 항상 나에게 걱정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4.1. 비판
사담 후세인의 법률 고문인 칼릴 알둘라이미를 포함한 비평가들은 미국 관리들이 법원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칼릴은 성명에서 "이 법원은 미군 점령의 산물이며 이라크 법원은 침략자들의 도구와 고무 도장에 불과하다"고 말했다.칼릴 알 둘라이미와 여러 국제 논평가들은 이 판결이 2006년 11월 5일 전 세계에 생중계된 날짜를 부시 행정부가 이틀 뒤 치러진 미국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일부러 날을 잡아 선정했다고 주장했다. 2006년 10월 16일에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일부 증인의 재소환 검토로 연기되었고, 11월 5일 판결이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판결은 며칠이 지나서야 공개되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인들이 후세인과 그의 동료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법령을 대부분 초안했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주말 바그다드 주재 미국 관리는 "전범 등 혐의로 정부를 기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미국과 영국만 법원에 자문을 제공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사형 선고를 비판하며 "심각한 결함이 있고 불공평한 재판"이라고 말했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 앰네스티의 말콤 스튜어트 국장은 "심판원의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는 심각한 결함으로 인해 그 과정이 엉망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정치적 간섭이 헌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국제앰네스티가 제기한 구체적인 우려는 재판의 '특별재판'(이라크 헌법에 따라 위헌)이라는 지위, 재판 도중 판사의 퇴거에 의한 재판 진행에 대한 정치적 간섭, 재판에서 변호인단 구성원의 배제 및 일부 피고인들의 강제 퇴장, 사담 후세인을 변호한 변호인들에 대한 암살 등이었고, 거기다 변호인단의 변론이 끝나기 전에 재판이 종결되었다는 점을 들어 재판 자체가 불공평한 재판이라며 비판했다.
5. 영향
언론인 모하메드 바치가 2014년 후세인의 재판과 처형이 이라크의 종파주의를 심화시켰다고 주장했듯이 후세인의 재판과 처형은 의도가 있었던 없었던 2006년 초부터 이라크 내부에서 일어났던 내전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재판 직후 시아파에 대한 수니파의 폭력, 혹은 그 반대도 많이 일어났다. 이 결과 이라크 내전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성급한 사담 후세인의 처형은 그를 처형된 지 며칠 만에 수니파의 순교자이자 서방 세력과 시아파에 대항한 아랍 영웅으로 만들어버렸다. 호스니 무바라크 당시 이집트 대통령은 이스라엘 신문 예디오트 아로노트에 "사담이 처형된 방식을 누구도 잊지 못할 것"이라며 " 그들이 그를 순교자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수니파는 미국과 시아파 중심의 이라크 정부가 아랍 민족주의의 마지막 흔적을 없애버린 것으로 보고 있었기에 그들은 사담 후세인의 처형을 '미국에 의해 감독된 종파적 보복 행위'라고 비난했다. 몇몇 아랍의 수도에서 수니파 시위대가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난동을 부린 일도 있었다.
6. 사건사고
사담 후세인의 변호인단은 재판부의 정당성을 추궁하고 미군이 압수한 국방 서류의 반납과 국방 보호에 관한 보안 문제에 대해 질문한 후 법정을 박차고 나온 일이 있었다. 또한 사담 후세인과 공동 피고인들이 아민 부장 판사와 재판부를 상대로 난동을 부린 일이 있었는데, 그 다음 날 자신에 대한 증언을 듣고 나서는 판사들을 맹렬히 비난했고, " 지옥에 가겠다."라며 재판으로의 복귀를 거부했다. 그 후 2005년 12월 7일, 사담 후세인은 또다시 자신이 수감된 조건과 재판에 대해 불평하며 법정에 서기를 거부하는 등 재판에 매우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의 불만에는 무엇보다도 그가 4일 동안 옷을 갈아입지 못했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5일 후에는 "저는 제 몸 구석구석 매를 맞았고, 그 징후들이 제 온 몸에 있습니다."라며 미국의 납치범들이 자신을 고문했다고 주장했다.
다에쉬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라오프 압둘 라흐만 판사
2014년 6월, 몇몇 언론들은 라오프 압둘 라흐만 판사가 바그다드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 사담 후세인에게 사형 선고를 했다는 이유'로 다에쉬에게 살해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오보이며 안전한 곳에 있다고 전했다.
2006년 1월 29일, 사담 후세인의 이복동생인 바르잔 이브라힘 알 티크리티가 경호원들에 의해 재판장에서 끌려나가고[1], 변호인단이 퇴장당했으며, 사담 후세인은 사임한 리즈 가린 전 대법원장 로프 라흐만과의 경합 끝에 퇴장당하면서 재판이 혼란에 빠졌었다.
6.1. 변호사 납치 및 살인 사건
2005년 10월 20일, 아와드 하메드 알 반다르의 변호사, 사둔 수가이어 알 자나비 변호사는가 그의 사무실에서 무장괴한들에 의해 납치되었고, 그의 사무실 근처에서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되었다. 2005년 11월 8일, 타하 야신 라마단 전 부통령과 압둘라 카젬 루이드를 대변하던 아델 알 주베이디 변호사가 바그다드에서 무장괴한 3명에 의해 살해되었다. 바르잔 이브라힘 알 티크리티의 변호사인 태머 하무드 알 쿠자에 역시 이번 공격으로 부상을 입었다.6.1.1. 사담 후세인 변호사 암살 사건
2006년 6월 21일, 사담 후세인의 변호사였던 카미스 알 오베이디가 사드르 시의 시아파 지구 근처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된 사건.
카미스 알 오베이디는 1966년 7월 7일에 태어난 수니파 변호사로 2005년 10월 19일 사담 후세인의 재판이 시작된 직후부터 암살되기 직전까지 사담 후세인의 변호사로써 변호인단과 함께 사담 후세인을 변호해주었다. 하지만 2006년 6월 21일, 이라크 경찰 제복을 입은 괴한에 의해 그의 집에서 납치되었고, 이후 사드르 시의 시아파 지구 근처에서 총상을 입은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확실한 물증은 없으나 정황상 두자일 학살 사건 등으로 사담 후세인에게 원한을 갖고 있던 시아파 세력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며, 이번 살인은 사담 후세인의 재판 마지막 단계 직전에 살해가 발생했다. 사담 후세인의 수석 변호인인 칼릴 알 둘라이미 변호사는 사담 후세인의 변호인단을 위협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주장하며 그와 동시에 수니파 아랍인들이 이라크 경찰을 사칭한 암살단을 운영했다고 주장해온 이라크 내무부를 비난했다. 사드르 시의 일부 소식통은 알 오베이디를 살해한 것은 '아부 데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시아파 군벌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알 오베이디의 죽음은 사담 후세인과 7인의 공동 피고인들, 그들의 변호인단이 국제적인 보호를 받을 때까지 단식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자파르 알 무사위 재판소장은 "재판을 계속할 것이며 단념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는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사담 후세인은 2006년 7월 7일 알 오베이디 살해사건에 대한 새로운 단식투쟁에 착수하였고, 재판은 그가 출석하지 않은 채 계속되었다. 그는 18일 만에 두 번째 단식투쟁을 끝내고 다시 법정에 섰다.
7. 관련 인물
- 두자일 학살 관련자
- 사담 후세인 - 당시 이라크 대통령, 두자일 학살 총책임자.
- 바르잔 이브라힘 알 티크리티 - 사담 후세인의 이복동생, 이라크 정보국장.
- 타하 야신 라마단 - 이라크 전 부통령
- 아와드 하메드 알 반다르 - 이라크의 수석 판사, 두자일 학살의 관련자.
- 압둘라 카젬 루이드 - 두자일 지역 바트당 고위 관계자
- 미자르 압둘라 루에이드 - 두자일 지역 바트당 고위 관계자
- 알리 대엠 알리 - 두자일 지역 바트당 고위 관계자
- 모하메드 아자위 알리 - 두자일 지역 바트당 고위 관계자
- 안팔 학살 관련자
- 사담 후세인 - 당시 이라크 대통령, 안팔 학살 총책임자.
- 알리 하산 알 마지드 - 사담 후세인의 사촌, 이라크 정보국장.
- 술탄 하심 - 이라크 국방장관.
- 후세인 라시드 알 티크리티 - 이라크 군 총사령관.
- 프란스 반 아나트 - 네덜란드의 화학자. 안팔 학살을 비롯한 이라크의 전쟁범죄에 협조.
- 파한 주부리 - 이라크의 군인, 군사 정보국 총사령관.
- 타허 알 아니 - 바트당 사무총장.
- 기타 인물
- 타리크 아지즈 - 이라크 바트당 간부.
- 아비드 하미드 마흐무드 - 이라크 대통령 비서.
- 아야드 푸타이 알 라위 -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참모총장.
- 마흐무드 디얍 - 이라크 내무장관
-
압둘 바키 알 사둔 -
이라크 바트당 전 간부.
[1]
바르잔 이브라힘 알 티크리티는 재판 도중 과격하게 변호하는 일이 종종 있어 왔으며 그로 인해 재판에서 퇴장 당한 일리 여러 차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