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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配達
자세한 내용은 배달 문서 참고하십시오.2. 倍達
2.1. 한민족을 가리킨다고 알려진 말
2.1.1. 개요
한민족을 '배달의 민족'이라고 부르곤 한다. 한자 표기는 배달( 倍 達)로 위 배달과 다르다. 다만 아래의 유래에 따르자면 순우리말일 것이고 한자 표기는 단지 취음이다.2.1.2. 역사
퍼져있기로는 상고 시대부터 이어온 매우 고유한 말처럼 이야기되고 있으나 근대에 생긴 말로 추측된다. 조선 숙종 때 쓰였다고 주장되는 규원사화에서 한민족을 '배달'이라고도 부른다고 말하고 있으나 항목을 참조하면 알 수 있듯이 규원사화부터가 사료비판을 통과하지 못하는 책이고, 배달이라는 말이 한민족을 뜻하는 단어로 쓰인 것은 1909년 대종교의 문건인 '단군교 포명서'에서 등장하는 것이 자료상 최초이다.배달이라는 말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자들은 고조선 당시 '백달임검(박달나무 임금)'을 후세에 한자로 단군(檀君)이라고 썼다고 한다. 다만 이 역시 신빙성에는 문제가 있는데, 왜냐하면 단군은 삼국유사에서도 보듯 박달나무 단(檀)이 아닌 壇君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단'이라는 음을 표기하기 위한 취음일 가능성도 있다. 한편 신채호은 壇의 의미에 집중하여, '제단의 임금', 즉 제정일치의 지도자를 뜻한다고 보았다. '배달'의 유래에 대한 초록불의 정리
일단 국어사전에는 수록되어 있고, 한글날 노래의 가사에도 등장하는 등 현대에 이르러 한민족을 예스럽게 일컫는 말로서 정착에 성공하기는 한 것으로 보인다.
2.1.3. 사용례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가에도 배달의 역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 대한제국 애국가 세 번째 가사에서도 반만년의 역사 배달민족이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 유명한 배달앱인 배달의민족도 해당 의미로서의 배달을 광고에 활용하며 성장했다. '우리가 누구? 배달의 민족!'이 캐치프레이즈였으나 독일 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된 이후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
2.2. 배달국(환단고기)
환단고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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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단월드 · 식민사학 해체 범국민운동본부 ·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 협의회 · 상생방송 · 증산도 · 칸코리아(KHANKOREA) | ||
관련 서적 | 규원사화 · 단기고사 · 대쥬신제국사 · 대한민족통사 · 부도지 · 신비소설 무 · 찐삼국사 · 천국의 신화ㆍ 천부경 · 치우대제 · 치우천왕기 · 퇴마록 | ||
관련 인물 |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B82647,#F8E77F> 저자 | 이유립 · 계연수 · 이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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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898 ~ B.C. 2333)
'신시국', '신시배달국' 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태백산, 즉 현재 백두산이 시원지로 총 1565년 동안 18명의 환웅이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삼성기 전 하편에 따르면 환국 말기 안파견 환인이[1] 삼위태백을 둘러보고 이곳이 홍익인간 할 곳이라 치부하며 누굴 보낼까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오가 무리가 서자 환웅을 추천하고, 이에 안파견은 환웅에게 천부인 3개와 3,000명 무리를 내어주고 세상에 내려 보냈다고 한다. 내려온 환웅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인간의 360여가지 일들을 맡아 세상을 교화하였다고 한다.
1대~13대의 환웅이 재위할 때는 국명을 신시배달(神市倍達) 하였고, 14대~18대의 환웅이 재위했을 때에는 청구배달(靑丘倍達) 이라 칭했다고 전해진다. 14대 환웅은 그나마 유명한 자오지환웅, 즉 치우천왕 이었다고 한다. 치우천황은 미리 철제 도구를 썼고, 싸움실력이 너무나도 뛰어나 온 천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2]
그러나 환단고기 자체가 위서라 단정되어 근거는 없다.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환단고기의 이 기록을 근거로 BC 3898년을 원년으로 하는 신시개천(神市開天)이라는 연호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