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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당(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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حزب البعث العربي الاشتراكي في العراق
영문 명칭 <colbgcolor=#ffffff,#252525>Arab Socialist Ba'ath Party – Iraq Region
한글 명칭 아랍 사회주의부흥당 이라크 지부
(이라크 바트당)
창당일 1948년(비공식)
1951년(공식)
해산일 2003년 5월 16일
당사 주소 이라크 바그다드
이념 바트주의 ( 후세인주의)
1979년 부터
군국주의
• 이라크 내셔널리즘
이슬람주의 (1993년부터)[1]
스펙트럼 1979년 이전: 좌익
1979년 이후: 우익
의원
207석 / 250석
1. 개요2. 구조3. 역사
3.1. 2003년 이전3.2. 2003년 이후
4. 역대 선거 결과 ( 대통령 선거)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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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라크 지역당의 정식 명칭은 아랍 사회주의 부흥당 이라크 지부(Arab Socialist Ba'ath Party – Iraq Region)로 1968년부터 2003년까지 이라크의 집권당이었다.

중앙당 서기장은 1968년의 분열 이후 바트당의 창설자인 미첼 아플라크가 사망할 때( 1989년)까지 했으니 이쪽이 나름 정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플라크 사후 중앙당 서기장직은 한동안 공석이었다가 이라크 지부 서기였던 사담 후세인 1992년부터 겸직했고, 후세인이 죽고 난 2006년 이후부터 현재는 이자트 이브라힘 알 두리가 역시 이라크 지역당 서기직과 함께 중앙당 서기장을 겸하고 있다.

2. 구조

이라크 지역당의 최고 지휘부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정당의 경우 정치국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역사령부/국가사령부(al-qiyada al-qutriyya)에 해당하며 19-21명 가량의 성원들이 당의 최고 지도부였다. 이들중 여성 멤버는 후다 살리흐 마흐디 암마쉬가 유일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던 시점에선 콰르텟/6인방으로 불리는 이자트 이브라힘 알 두리, 타하 야신 라마단, 타리크 아지즈, 알리 하산 알 마지드, 쿠사이 후세인, 사담 후세인 6명이 핵심 멤버로 당의 정책을 관할하였다.

지역사령부 산하에는 각 지방과 군부에 국(maktab al-tandhimat)을 두는데 걸프 전쟁 시점에서는 바그다드, 중부지역, 북부지역, 알 푸라트, 남부지역, 군을 합쳐 6개 국이 존재했으나 2002년까지 17개의 국으로 증가하였다. 국 아래에는 지부(fir‘ )가 존재하며, 2002년에는 69개의 지부가 있었다. 지부 아래에는 구(shu‘ba), 구 아래에는 분구(firqa), 분구 아래에는 세포(khaliyya)를 두었다.

3. 역사

3.1. 2003년 이전

1970년대 부통령이던 사담 후세인의 권력이 점차 강화되어가자, 이에 위기를 느낀 아흐마드 하산 알바크르 대통령이 사담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같은 바트당이 집권하던 시리아와 국가통합 논의를 한 적이 있었다. 아흐마드는 대통령이라는 대표성으로 이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차후 통일국가에서 사담 후세인을 제3인자로 끌어내리되, 하페즈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제1인자로 삼으려는 방향으로 논의하였다. 그런데 하페즈와 사담 모두 실질적으로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하페즈 대통령은 이라크가 강대한 국력 인구 수로 시리아를 집어삼킬 것이라 생각했으며, 사담은 아흐마드와 하페즈가 전면에 나선다면, 자신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버릴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이에 개입하여 결국 통일 논의는 결렬되었다.

3.2. 2003년 이후

이라크 전쟁의 결과 사담 후세인 정권(= 바트주의 이라크) 붕괴 이후 이라크에서는 불법 정당으로 전락한 상태. 하지만 미국은 무조건 묻지마 바트당 축출을 한 탓에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를 개판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바트당이라고 무조건 친후세인 파가 아니라 일단 먹고 살고자 들어간 이들도 수두룩했고, 거의 30년이나 이라크를 독재정치했기 때문에 극단적이거나 광신적인 지지자가 아닌 지역 유지들도 많이 소속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들 중에는 이라크 치안과 지리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라크군이 무기를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같은 중요한 정보들까지 아는 군 간부나 경찰 간부들도 많았다. 당연히 쫓겨난 이들은 미국에 대하여 이를 갈고 IED를 만들어 미군을 괴롭히는 주축이 되었다.

사담 후세인이 1978년 바트당 내의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대숙청하면서 유능하고 강직한 관료들도 같이 갈려나갔고 이후는 후세인의 독재와 학살에 협력하는 사실상의 범죄집단이 되었던 건 사실인데, 그 와중에도 타리크 아지즈[2], 술탄 하심[3]같은 현실주의자나 사베르 압델 알 두리[4]같이 바트당이 실각하고 수십년이 지나서도 주민들에게 기억되는 인물 또한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이라크 바트당을 제거하면서 그 정보를 이라크 내에 새로 수립된 초강경 시아파 정권 인사들에게 의존했고, 이들은 후세인 독재 잔재의 제거보다는 복수에만 더 초점을 두었다.

더 문제는 바트당 인사에 무력 말고도 정계 및 문화적으로도 인재들이 많았던 사실. 이라크 내 동물 관리에서 문화재 관리 및 기술직까지도 미국은 그저 바트당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축출하고 그 자리에 듣보잡을 앉혔다가 반대로 돈만 펑펑 나가고 이들은 무능 그 자체라서 욕만 실컷 먹었다. 한국에서도 나온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라는 책에도 동물원 관리에서부터 이라크 동식물에 대한 지식을 가진 이들을 바트당이라는 이유만으로 내쫓아버려 그야말로 백지상태에서 일해야 했던 미국 동물보호단체들의 미군정에 대한 앙금이 돋보이는 비난이 실려있다.

2014년 이라크 내전이 발발하자 수니파 계열의 종교적 극단주의를 표방하는 이슬람 국가와 손을 잡고 말리키 정부를 적대하며 숙련된 병력들을 공급했다. 그러나 이라크와 시리아를 전부 혹은 일부라도 떼어 국가를 만들겠다는 이슬람 국가와 이라크 정권을 다시 가지려는 바트당의 견해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 갈등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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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인즉 아랍민족주의의 한 갈래인 바트주의는 세속주의를 기반으로 한 이데올로기로, 수니파 사담 후세인 알라위파 하페즈 알 아사드 (현재 시리아 대통령의 아버지) 모두 바트주의 기반으로 정권을 잡았을 정도로 종교와는 무관하다. 애초에 아랍민족주의 자체가 아랍 언어를 쓰는 아랍 민족이라는 개념에 기반한 이념이지, 여기에 '종교'는 전혀 중요한 요소로 고려가 되지 않는다[5]. 바트당은 후세인 시절 이라크 주류였던 시아파를 탄압하였는데, 그 이유는 시아파가 이웃 국가 이란을 모델로 한 신정국가체제를 수립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후세인 정부가 붕괴된 후 시아파가 정권을 잡자 ISIL과 바트당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명분으로 손을 잡았으나, 자국 극단주의를 때려잡으려고 반대 종파와 손을 잡은 것에 불과할 뿐 그 속 알맹이는 사회주의자, 세속주의자이기 때문에 종교 원리주의자들과는 근본적으로 이해가 일치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6] 결국 2016년 이후로 갈라졌고 결국 바트당과 갈라선 IS는 이라크군의 토벌로 몰락했다.[7]

정리하자면, 이라크에서 바트당이 정권을 잡은 시기는 이르게 잡으면 1963년, 바트당의 정권 완전 장악은 1968년이다. 즉 후세인 집권 이전까지 따질 경우 바트당이 이라크를 통치한 기간은 35~40년에 이른다는 것. 이는 이라크 사회 대부분의 영역과 그 주요 인사들 대부분이 좋건 싫건 바트당과 유형무형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되기에 충분한 기간이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바트당과 관련된 인사들을 대부분 축출해 버렸으니 사회의 전 영역에 거대한 인력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 일차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본질적일수도 있는 이차적인 문제는, 중동 이슬람권역의 특성상 세속주의 성향의 바트주의자들이 배제될 경우 그 빈 자리를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세력은 주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 종교 원리주의자들은 현대의 과학적 합리주의에 기반한 실무 및 국정능력이든, 미국과의 협력을 비롯한 대외 관계 유지능력이든 바트주의자들의 하위호환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상위호환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꼬아 말하자면 90년대 걸프전 이래의 악연만 빼고 보면 이라크 내 정치세력 중에서는 차라리 세속주의 성향의 바트당이 미국과의 상성이 좋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라 할 정도이다.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후세인의 바트당 정권을 '과격 이슬람주의 정권'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 역시 이라크등 중동 문제에 개입하면서도 그 정세에는 무지한 미국인들을 비판하는 소재로도 자주 사용되지만 그 이전에 '이슬람 원리주의'를 위험하게 여기고 적대시하면서도 바트당 정권을 무너트린 뒤에는 이라크의 주도권을 그들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는 미국의 입장을 가진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중동의 반미주의자'는 '과격파 이슬람 원리주의자'이고,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주적으로 떠오른 후세인에 대해서도 이 이미지가 그대로 덧씌워졌지만 정작 중동 정세에서 '세속주의 독재정권'인 후세인과 바트당 정권은 '과격파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가장 큰 적대세력이라는 모순이다. 당장 바트당 정권 몰락 이후 이라크 정세 안정을 위해 미국이 선택한 파트너는 시아파인데, 중동에서 시아파의 맹주는 이라크 이상으로 미국의 오랜 적국인 이란인 것이다.

사실 이는 이라크뿐 아니라 중동 전역의 정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국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파트너이자 중동 문제의 이상적인 해결을 원하는 사람들(특히 제1세계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대안은 <충분히 세속적, 합리적, 민주적으로 인권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치세력의 집권>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동의 정세에서 이런 세력의 영향력은 아주 미미하며 실제로 이 지역의 정치적 주도권을 두고 다투는 것은 '잔인한 세속주의 독재권력'과 '만만찮게 잔인한 극단주의 종교 과격파'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 아랍의 봄과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20세기 초중반부터 득세했던 다수의 세속주의 독재정권들이 붕괴하는 모습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으나 광신적인 종교 원리주의 과격파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나가는 모습이 속속 나타나면서 그 환호성들이 쑥 들어간 것 역시 현실이다. 어차피 양쪽 모두 잔인성이나 부정부패 측면에서는 어느 쪽이 낫다고 할 것도 없는 상황에서 서구 열강(및 제 1세계적 가치관)의 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세속주의 독재정권쪽이 그나마 대화가 성립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크다고 볼 여지까지 있는 것.

따라서, 후세인 정권 자체의 청산은 물론 필요한 일이었겠지만 전후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바트당 전체를 완전히 청산해버린 미국의 선택은 지나치게 성급하고 무모했다는 평가를 받을만 한 것이다.

어쨌거나 본국인 이라크에서는 멸망했지만 요르단 국회에 1석을 가지고 있다.

2020년 들어 IS가 몰락하면서 일부 이라크 바트당의 잔당들과 지지층 세력들이 시리아, 요르단 국경 사막지대에서 게릴라 반군 투쟁을 벌이며 이라크 정부에게 맞서고 있지만 수적으로도 이라크 정부군보다 딸리는지라 현 이라크 정권을 전복시키고 정국 주도권을 재장악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바트당 측도 이를 인지해 여러 루트로 이라크를 비롯한 각국 정부에 접촉하고 있는데, 미국과 이란이 지켜보고 있는 이상 양지로 나올 가능성은 높다고 보기 어렵다.

4. 역대 선거 결과 ( 대통령 선거)

1995년 대통령 선거 사담 후세인 99.9% 당선[8]
2002년 대통령 선거 100% 당선[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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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일반적인 이슬람주의같은 반동적 보수성을 보이진 않았고, 상대적으로 세속적인 편이였다. [2] 쿠웨이트 침공을 비판하는 행적을 보였다. [3] 군사적으로 뛰어난 지휘관이었다는 이유로 이라크 전쟁 한 달 전에 후세인에게 연금당했으며, 쿠르드족과 접촉했던 적이 있었다. [4] 안팔 학살 당시 학살 명령에 강제로 서명해야 했던 인물이다. 국민들이 앞장서서 대동단결해서 그의 무죄를 주장했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상술한 미국의 묻지마 대숙청 때문에 유죄를 받고 아직도 감옥에 있다. [5] 다만 <아랍 민족> 의 정체성과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무관하다고 독해버리면 오해의 여지가 크니 주의가 필요하다. 애초에 아랍어의 보급과 이를 통한 아랍인이라는 정체성의 형성 자체가 상당부분 이슬람의 종교적 정체성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즉, <아랍인> 이라는 개념의 형성 과정은 이슬람의 종교적 정체성과 분리할 수 없지만 근대 민족주의에 기반한 <아랍 민족주의>는 이 '이미 형성된 아랍인' 을 종교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지향을 보이는 이념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6] 비슷한 사례로 이란 혁명 초기에도 무신론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과 민주주의에 입각한 공화제 수립을 주장하던 공화주의자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손을 잡았으나, 호메이니와 하메네이, 라프산자니 등을 위시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들이 정권을 잡자 숙청이 벌어져 공산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 대부분이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대부분 처형되거나 정부 구성에서 배제되었는데 이라크도 별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 [7] 물론 IS의 몰락은 점령한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영내에서 잔혹한 이슬람 극단주의식 통치에 반감을 키운 점령지 주민들의 민심이 떨어져나간 점도 주효한다. [8] 사담 후세인 집권 이후 첫 국민 직선제 선거다. 찬성 8,348,700표, 반대 984표, 무효 7,876표다. [9] 반대 0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