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16:20:47

밀약

1. 개요2. 유사품3. 역사
3.1. 초창기3.2. 발전기3.3. 쇠퇴기3.4. 중흥기3.5. 이면기
4. 장점5. 단점6. 유명한 밀약7. 관련 문서

1. 개요

/ Secret treaty

한자 그대로 남몰래 한 약속을 뜻한다. 이 단어는 주로 국가 간의 외교에 있어서 세상에 공표되면 곤란하기 때문에 몰래 맺은 협정을 지칭할 때 쓰인다.

국가 간의 외교라는 것은 대단히 민감한 문제인데다, 자국에 불리한 협약을 맺을 경우 그 사실이 국민들에게 알려지면 정권 유지가 힘들어지므로 밀약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적국(혹은 가상의 적국)에 대한 견제를 위해 맺는 밀약도 있으므로, 밀약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애초에 국가 간의 외교에 도덕적인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긴 하다.

2. 유사품

밀약은 말 그대로 존재 자체가 비밀인 조약이다. 일반적인 조약에 딸려오는 부속 의정서가 밀약일 경우라도 해당 부속 의정서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감추어진다.

따라서 진행중인 협상 자체는 비밀이지만 최종 합의 결과는 공표되는 비밀 협상과는 전혀 다른 존재다. 이미 비밀 협상의 결과 자체가 외부에 공표되기 때문이며 외교적 협의를 위해 비밀 협상이 이루어지는 것 자체는 국가 내부에서는 의회같은 기관이 인정하고 국외에서는 각국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

3. 역사

3.1. 초창기

인류가 부족국가를 성립하는 시절부터 밀약은 항상 존재하였다. 애초부터 국가를 지배하는 권력자들간의 거래 자체가 비밀로 속하는 것이었으며 그 중에서 공표해서 확실한 이득을 볼만한 것들만 현대의 조약처럼 외부로 공표되었다.

그리고 도시국가가 형성될 무렵에는 체계적이지 않지만 밀약의 구조와 종류가 성립되었다. 현대의 밀약처럼 애초에 밀약을 하려고 만난 것 자체가 비밀인 특급 밀약부터 조약의 부속문서 형식으로 몰래 들어가는 밀약이나 암묵적으로 서로 양해한 것으로 보고 발동되는 밀약까지 여러가지 종류가 나온다.

그래서 국제법상으로 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조약이 성립되기 시작하기 이전의 밀약들은 조약과 별도의 구분없이 혼용되었으며 그 중에서 비밀성이 높은 것을 밀약이라고 지칭했다.

3.2. 발전기

동아시아 방면이 조공(朝貢, tribute)으로 국제관계를 정립하는 동안 서구권에서는 조약이 국제관계를 정립하는 틀이 되면서 밀약이 조약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증상은 열강이 성립되면서 점점 더 커지게 된다. 강대국들이 단독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압도하지 못하는 군웅할거에 가까운 상태가 되자 외부로 노출되는 조약만으로는 서로간의 외교관계가 불충분하므로 밀약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어느정도인가 하면 1521년 이후 110개의 국가 및 독립적인 정치조직간에 협상한 밀약의 숫자만 593개에 달한다고 2004년에 출판한 밀약모음집에서 통계를 낼 정도다.

해당 시기에 밀약을 자주 한 국가로는 유럽 대륙에 강력한 단일 국가 독주체제가 나오는 것을 막으려는 대영제국이 제일 많았고 유럽 대륙 내에서 패권을 다투던 프랑스,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식민지 획득이 주요 관심사가 되는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자 식민지와 관련된 밀약도 다수 체결되었다.

밀약이 가장 많았고 그 수준도 중대했던 시기는 제1차 세계 대전 직전과 전쟁 중이었다. 애초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유중 하나로 강대국간에 체결된 군사적 협약이 밀약으로 다수 존재하였기 때문이었다. 밀약이 서로 거미줄같이 얽혀 있으면서도 누구도 밀약 전체를 파악할 수 없기에 사소한 분쟁이 점점 강대국들을 강제로 끌어들이면서 전쟁 중단을 위한 노력이 무산된 것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중에도 협상국 동맹국간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면서 중립국들을 자신의 편에 끌어들이고 참전을 권유하기 위해 각종 이권을 제시하며 해당 국가가 밀약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밀약의 내용이 공표될 경우 타격이 심각했고 기습적인 개전이 전황에 도움이 되었으므로 그 시대의 밀약은 반드시 현재의 합의는 비밀로 유지된다 같은 조항이 중요 항목에 올라갈 지경이었다.

3.3. 쇠퇴기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대규모의 총력전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일반 시민들도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자 각국의 여론은 밀실에서 몇몇 권력자와 관계자들만 참석해서 체결되는 밀약같은 것 때문에 피해를 입기 싫다고 좀 더 개방적이고 공개적인 비판이 가능한 외교방식을 요구했다.

러시아 혁명으로 탄생한 소련에서도 레프 트로츠키가 러시아 제국 시절에 체결된 밀약들을 공개하면서 협상국측의 외교에 타격을 주고 여론을 악화시켰다. 그래서 밀약과 비밀외교에 대한 인상이 매우 나빠지게 된다.

특히 당시의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은 밀약과 비밀외교의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미 치머만 전보 사건으로 원하지도 않았는데 1차대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으며 협상국편에서 전투에 참여한 결과 그 동안 협상국측이 각종 밀약을 한 사례들에 경악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파리 강화 회의에서 14개조 평화원칙을 발표하면서 그 중 하나로 밀약과 비밀외교의 폐지를 주장했다.

결국 국제연맹의 설립 규약 제18조에 모든 국제연맹 회원국은 모든 조약이나 국제 협정을 연맹 사무국에 등록해야 하며 등록하지 않는 한 어떠한 조약도 구속력이 없다는 내용을 넣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등록 대상이 될 조약중 상당수가 정식으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어찌되었든 조약을 공개적으로 등록하는 초기 구조가 등장했다.

3.4. 중흥기

그러나 국제연맹은 여러가지 사유로 인해 매우 미약한 능력만을 발휘했고 특히 추축국간의 밀약이나 추축국과 소련간의 밀약등 여러가지 중대한 조약이 밀약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조약 자체는 공개되었지만 부속 의정서가 밀약으로 만들어지면서 해당 의정서에 공개할 수 없는 내용이 수록되는 편법이 자주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39년 8월 23일에 체결된 독소 불가침조약인데 해당 조약 자체는 공개된 조약이지만 부속 의정서는 밀약이었는데 나치 독일과 소련간에 발트 3국 폴란드 제2공화국을 어떻게 나누어 먹을 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부속 의정서에 담겨 있었으며 해당 의정서는 밀약으로 1989년까지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합국측이 밀약을 사용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당시인 1935년 12월에 영국 외무장관인 사무엘 호어(Samuel Hoare)는 프랑스 총리인 피에르 라발(Pierre Laval)과 가칭 호아레 - 라발 밀약을 체결했다. 해당 밀약은 에티오피아의 대부분을 이탈리아 왕국에게 넘겨주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 당시에 국제연맹이 이탈리아 왕국의 침공을 비난하고 전쟁을 중단시키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국제연맹 밖에서 밀약이 체결되니 국제연맹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다. 호아레 - 라발 밀약 자체는 2개월 후에 언론에 특종 형식으로 내용이 누출되면서 사무엘 호어가 내각에서 사임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이미 에티오피아는 멸망 직전이었고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고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라는 식민지로 전락한다.

심지어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도 밀약은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당시의 연합국 수뇌부들이 유엔을 설립하는 것에 찬동하며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각국의 영향력 적용 구간과 정도를 두고 밀약이 난무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1944년 10월에 제4차 모스크바 회의에서 영국 총리인 윈스턴 처칠과 소련 서기장인 이오시프 스탈린간에 체결된 이른바 백분율 합의였다. 간단한 메모장 정도의 쪽지에 휘갈겨 쓴 합의에 따라 서방 연합국과 소련간에 동유럽과 그리스에 대한 영향력 수준이 합의되었다. 해당 밀약은 윈스턴 처칠이 2차대전이 종전한 후 12년 후에 서술한 회고록의 마지막 권에서 공개되었다.

3.5. 이면기

2차대전이 끝나고 유엔이 성립한 후 국제연맹의 제18조를 승계하여 유엔 헌장 제102조에 조약의 공개 등록을 유엔 사무국에 가급적 빠르게 할 것으로 규정하였으며 등록되지 않은 조약은 유엔 및 산하기관에 적용 및 근거자료로 활용할 수 없다고 언급하여 사실상 조약의 구속력을 상실한다고 정의하였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서도 제80조에 협약 당사국이 조약이 발효되면 자신이 당사국인 조약을 등록하도록 요구하는 조항을 넣었으며 해당 협약이 1980년 1월 27일 발효되면서 조약의 공개적 등록이 사실상 의무화되었다.

위의 조항들을 근거로 해서 유엔 사무국은 1946년 12월부터 2013년 7월까지 200,000개 이상의 조약을 기록하는 데 성공하였고 구체적인 조약 등록 구조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조항들을 모두 합치더라도 원래 국제연맹의 제18조의 후반부에 기록된 등록되지 않은 조약은 실효한다라는 규정이 없기에 밀약이 완전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현대에도 당연히 밀약이 존재한다.

그러나 밀약의 성격은 변화하였다. 과거와 같이 밀약 자체가 강대국간의 중요한 합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약의 부속 의정서급으로 외국에 군사기지를 비밀리에 건설하거나 핵무기를 운반 및 저장한다던지 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밀약으로 하는 급의 세부내용 지정급이나 콘트라같은 답없는 반군조직을 지원하기 위해 남아메리카의 각국과 비밀거래를 하는 급의 더러운 비공식 합의급으로 밀약이 사용된다. 주로 이런 밀약은 냉전의 2개 축인 미국 소련에서 주로 발생하였다.

4. 장점

밀약이 여러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이용되는 이유가 있다.
  • 비밀유지 - 가장 큰 장점으로 적에게 알려지지 않으므로 적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습격당하기 딱 좋으며 아군쪽에서도 정적같은 자에게 알려지지 않으므로 내부대응도 쉽게 전개된다. 적이나 정적을이 밀약의 내용이라도 짐작할 시기에는 이미 일이 벌어진 지 오래인데다가 밀약이 체결되었다는 것은 끝까지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 신속성 - 권한을 가진 최소한의 인원이 신속하게 모여서 체결하므로 신속성 하나는 제대로 뽑아준다. 일반적인 조약처럼 의회에 비준을 받거나 투표를 통해 최종결정되는 등의 시간낭비가 심한 과정이 들어가지 않으므로 격동하는 국제정세에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
  • 비난의 차단 - 국가간의 거래에서 일반 대중이나 도박판의 먹잇감이 된 대상이 비난을 쏟아낼 더러운 분야의 거래가 상당히 많은데 이런 것은 대중에 공개되는 조약으로 체결할 수 없다. 그렇다고 상대방과 아무런 합의 없이 진행할 수도 없으므로 밀약이 성행하게 되는 것이다.

5. 단점

밀약이 현대에 들어와서 비공식 합의급으로 급수가 크게 낮아지고 조약의 부속물 같이 되며 빈도도 낮아진 이유가 존재한다.
  • 최악의 신뢰성 - 밀약 자체가 존재 여부도 비밀에 붙여지는 것이므로 뒷감당이 가능하다면 깨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밀약이 깨졌다고 해도 정식 조약처럼 어디 가서 항의하거나 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대표적 사례인 독소 불가침조약도 결국 나치 독일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독소전쟁을 일으키면서 처참하게 깨졌다.
  • 알려지면 큰 타격 - 밀약 자체가 더러운 거래가 많아서 일단 밀약이 공표되버리면 당사국의 정계에 태풍 직격급의 타격이 온다. 위에 언급한 영국 외무장관인 사무엘 호어(Samuel Hoare)가 쫒겨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고 밀약이 공표되면 대상국과 주변국의 인심도 나빠진다. 러시아 혁명으로 소련이 수립되자 러시아 제국의 밀약을 공표해버리면서 특히 협상국의 민심이 크게 나빠졌으며 밀약 규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 누출 가능성 높음 - 밀약 자체는 소수의 인원이 모여서 체결하므로 당장의 비밀엄수는 가능하다. 하지만 밀약 체결에 참가한 소수가 나중에 실각하거나 망명하거나 은퇴하거나 하는 식으로 현직에서 물러나면 개인적인 판단으로 밀약을 누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윈스턴 처칠이 회고록에서 백분율 협약 같은 것을 누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 감시기능 추가 - 밀약이 축소화한 대표적인 이유중 첫번째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삼권분립등의 제도를 통해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서로 견제하도록 하고 감시기구를 만들어서 국가 정책이 제대로 돌아가는 지 감시한다. 그래서 극소수의 권력자들이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기 때문에 밀약을 체결하고 싶어도 당사자가 불분명하고 체결시간도 오래 걸려서 불가능해진다.

    설령 국가 내부에서 합의등을 통해서 밀약 체결같은 것이 가능해지더라도 미국같은 초강대국들이 외교적으로 감시를 하는 상황이라서 쉽게 들키므로 무의미하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밀약을 혐오하는 경향이 크며 미국이 국익을 위해 밀약을 체결하더라도 앞서 이야기한 부속 의정서나 비공식적 합의 수준의 조약 같지도 않는 수준에 머무르며 그나마도 들켜서 미국 내부 여론에게 두들겨 맞는 일이 흔하다. 이란-콘트라 사건같은 것이 사례중 하나다.
  • 담당기관 부재 - 밀약이 성행하던 시절에는 외무부가 매우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조약의 체결부터 비준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현대의 외무부는 그냥 중앙정부의 외교관계를 담당하는 부서에 불과할 수준으로 위상이 떨어졌다. 그래서 밀약에 필요한 단일화된 창구 및 담당기관이 없으므로 제대로 된 밀약이 체결될 수 없게 되었다.

6. 유명한 밀약

당연한 이야기지만 밀약은 몰래 맺은 협정이므로, 밀약을 맺는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협정의 기간이 끝난 뒤에 공표되거나 제3자에 의해 폭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현재도 우리가 모르는 많은 밀약들이 당연히 존재할 것이다.

7.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