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9:19:31

마카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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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종교
2.1. 불교2.2. 도교2.3. 그리스도교
2.3.1. 가톨릭2.3.2. 개신교
2.4. 기타
3. 건축4. 스포츠
4.1. 마카오 그랑프리
5. 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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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카오의 문화를 설명하는 문서.

마카오 중국 포르투갈의 문화가 섞여 있으며 가장 가까운 데서 라틴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실제로 포르투갈어 사용기구 회원국으로도 가맹된 곳이 마카오이며 포르투갈어 어학연수 기관들 역시 훌륭한 기관들이 꽤 있다. 그리고 포르투갈 풍인 세나두 광장(largo de senado)도 있는데 이 광장은 포르투갈이 조성하였으며, 보도블록 하나하나까지 포르투갈에서 직접 만들어 마카오까지 운송해 조성한 광장이다. 그리고 마카오 주민 중 토박이 마카오인은 가톨릭을 믿고 포르투갈어 이름과 중국어 이름을 섞어 쓰며 중국 출신들은 불교나 도교를 믿고 전통을 그대로 지킨다.

2. 종교

마카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지역으로 개인이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이를 표출하는데 제약이 없다.

기독교[1] 도교 불교가 제일 교세가 세서, 교회(기독교), 도관( 도교), 절( 불교)을 쉽게 볼 수 있고, 서로 바로 옆에 위치하거나 길 하나 마주하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한 시야에 절에서 예불을 하는 모습과 도관에서 소원을 비는 모습과 성공회 교회에서 감사성찬례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젊은 세대일수록 무종교이거나 개신교 가톨릭 교인이고, 연배가 많은 세대일수록 도교나 불교를 믿는다.

2.1. 불교

마카오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80%가 불교도라고 한다. 그러나 마카오의 실제 불자 수는 조사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확히 계산하기는 힘들다.

2.2. 도교

도교 역시 중화권의 문화로써 널리 퍼져있다. 마카오에는 많은 수의 도교 사원이 있으며, 특히 바닷가 동네라는 특성으로 인해 마조 숭배 신앙이 널리 퍼져 있다. 마카오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고 추측되는 아마 사원(媽閣廟)이 마조를 모시는 사원이다.

2.3. 그리스도교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그리스도교 문화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지만 마카오에서 그리스도인 인구 비중은 높지 않다. 2012년 조사에 따르면 마카오의 그리스도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6.7%에 지나지 않는다. 링크

2.3.1. 가톨릭

가톨릭은 포르투갈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16세기에 마카오에 온 것을 계기로 전파되었다. 포르투갈 지배와 함께 가톨릭은 마카오의 주요 종교로 자리잡았다.

현재 마카오에서 가톨릭을 믿는 인구는 전체 인구의 5.2% 정도로 추산된다고 하며, 약간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약간의 포르투갈계와 중국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신자가 줄어드는 것과는 달리 가톨릭이 마카오 사회 및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은 작지 않다. 가톨릭 마카오 교구는 여러 사회 단체나 복지 기관을 설립해 사적인 사회 복지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으며, 또한 상당히 많은 수의 가톨릭 학교 및 대학이 있다. 이러한 기관들은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2.3.2. 개신교

개신교는 1807년에 영국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ion)이 마카오에 당도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본래 영국의 개신교 선교 단체들은 마카오에서 자리를 잡고 중국 전역에 포교하려 했으나 제1차 아편전쟁을 계기로 영국령 홍콩이 세워지자 얼마 안 되던 개신교 인구와 선교사 모두 홍콩으로 가버렸다. 그 뒤로는 20세기부터 영국의 성공회를 중심으로 포교가 이루어졌다.

현재 개신교 인구는 마카오 전체 인구의 2%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이 성공회 신자이다. 그 외에도 침례교 루터교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신자 수도 적고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나 가톨릭에서 개신교에 대한 이런저런 견제를 놓았기 때문에[2] 가톨릭에 비해 사회적인 영향력은 작다.

2.4. 기타

이슬람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 및 이민자를 중심으로 퍼져 있으며, 모스크도 하나 있다.

3. 건축

중세부터 포르투갈 땅이였는지라 문화유산 및 볼거리들이 즐비하다. 1557년부터 442년간의 포르투갈 지배로 인해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기의 문화유산이 산재되어 마카오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표적인 포르투갈 식민시기의 문화유산인 상파울루 성당(São Paolo Catedral)과 그 옆의 바다가 바라보이는 몬테 요새(Fortaleza de Monte)[3]부터 성 도밍구스 성당(Igreja de São Domingos)[4], 로우카우 맨션(Casa de Lou Kau)[5], 마카오 주교좌 성당(대성당, Sé Catedral), 세나두 광장(Largo de Senado)[6], 로버트 호퉁 경 도서관, 동 페드로 5세 극장(Teatro Dom Pedro V)을 지나 성 요셉 신학교, 성 로렌수 성당, 릴라우 광장, 무어리시 배럭[7], 마카오 시내 전체가 보이는 펜야 성당까지 이어지는 거리는 마치 포르투갈 스페인 이베리아 국가를 방문한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세나두 광장의 바닥은 칼사다 포르투게사라고 하는 대항해시대의 물결을 상징한 포르투갈 특유의 모자이크 바닥으로 장식되어 포르투갈의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주교좌 성당 앞의 광장에는 역시 포르투갈 특유의 도자기 타일 벽인 아줄레주 양식에 동양풍의 그림을 그려넣은 분수대가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항구 쪽에는 마카오에서 가장 높은 곳에 포르투갈이 감시를 위한 요새와 등대를 세워놨는데 이곳이 가이아 요새이다.

이외에도 바스코 다 가마나 조르주 알바레즈 등 대항해시대 포르투갈 위인들의 동상을 안치한 동명의 공원들도 도시 곳곳에 위치해 있다.

마카오 반도 뿐 아니라 남쪽의 콜로안과 타이파 지역에도 포르투갈의 유산이 남아있는데, 콜로안은 영화 도둑들의 촬영지였던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당과 에그타르트 가게인 로드스토우 1호점으로 유명하며, 타이파는 과거 포르투갈인들이 살던 주택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타이파 주택박물관과 늪지 건너편으로 보이는 코타이 스트립의 광경이 유명하다.

포르투갈의 흔적 뿐 아니라 남중국의 풍취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만다린 하우스[8]와 어촌으로서 광동인들이 많이 모시는 바다의 여신인 천후를 모신 곳이자 마카오의 어원이 된 곳인 아마 사원까지 볼거리가 풍부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명성이 아깝지 않다.

4. 스포츠

마카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는 가맹이 돼 있지 않지만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에 가맹이 돼 있다. 그래서 올림픽에는 별도의 국가 대표팀을 내보내지 못하고 있지만[9] 패럴림픽에서는 대표팀을 내보낸다. IOC 회원은 아니지만 유관 기관인 IPC와의 관계 때문에 IOC 국가코드는 할당돼 있다. 1987년부터 계속 가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1996년에 올림픽 헌장이 개정되어 속령이 신규 가입할 수는 없어서 마카오 올림픽 대표팀이 보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다만 이웃 홍콩의 경우 속령의 가입이 허락됐던 시절부터 올림픽 대표팀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아시안 게임에는 대표팀을 내보낸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종목은 우슈.

여기도 홍콩처럼 따로 축구리그가 있고 피파에 따로 가입했다. 하지만 잉글랜드 영향으로 60년대부터 안정적인 2부리그 체제를 갖춘 홍콩과 달리 마카오 리그는 열악했다고 한다. 100만도 안 되는 인구라 어쩔 수가 없을 듯.

피파에 가입하여 월드컵 예선도 따로 나가지만 당연히 동네북. 당연히 홍콩보다 피파 랭킹도 더 낮다. 국대 축구는 마카오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할 것.

4.1. 마카오 그랑프리

파일:마카오GP 로고 .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06px-Circuito_da_Guia_GP.svg.png

유서 깊은 기아 서킷(Guia circuit)에서 열리는 레이싱 이벤트이다. 기아 서킷은 시가지 트랙으로, 1954년부터 레이스가 시작되었으며 1961년부터는 오픈휠 카테고리 레이스도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점점 그 규모를 불려오면서 현재는 FIA F3 월드컵[10]을 비롯해 FIA GT 월드컵, 마카오 모터사이클[11] 그랑프리 등이 열린다. 마카오 기아 레이스 2.0T라는 시리즈도 함께 열리고 있으며, TCR 월드 투어의 폐막전도 개최한다.
초반부터 속력을 줄이지 못한 차량들이 단체로 충돌하여 아비규환이 되었다. 포뮬러 1도 아니고 F3급에서. 애초에 이곳은 F3를 위해 있는 서킷이지만 저 코너의 특성과 어린 드라이버들의 실수들이 얽혀 항상 저런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 영상은 1분 40초부터 보면 되고, 프로 레이서들이 포진한 GT3도 예외는 없다. 한 번 실수하면 바로 사고로 직행하는데, 비슷한 사고가 GT나 TCR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곳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서킷으로, 난이도가 어렵기로 유명한 모나코 서킷은 물론 최근에는 바쿠 시티 서킷 등의 막장 서킷이 등장해 악명을 떨치기도 하지만 이런 곳들과도 차원을 달리하는 헬 오브 헬 서킷이다.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구불구불하면서 노폭이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는 마카오를 그대로 서킷에 옮겼기 때문. 특히 위 트랙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멜코 헤어핀의 경우 폭이 7m밖에 되지 않는다. 즉 모나코 서킷에 있는 페어몬트 헤어핀보다 더 타이트하고 좁아서 속도를 정말 많이 줄여야 한다. 전체 길이도 6km로 꽤 길어서 한 번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바로 사고 직행이다. 그래서 매년 대회를 보면 사고가 항상 터진다.

감이 잘 안 온다 싶으면 이 서킷이 수록되어 있는 레이싱 게어들이 몇 개 있는데 한 번 시도해보면 된다. 주행 시 "뭐 이딴 서킷이 다 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서킷 타입이 시가지라 노면의 그립이 부족한 것은 물론 애초에 아스팔트가 일반 공도의 그것이기 때문에 도로 가장자리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지는 거지 같은 역뱅크 코너들이 수두룩하다. 좁은 노폭 때문에 추월 시도는 굉장히 적고, 사고 때문에 트랙이 막혀서 레이스가 중단되는 경우도 흔하다. 모험수를 걸기보다 사고를 안 내고 집중력 있게 잘 달리는 드라이버가 이기는 곳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높은 드라이빙 스킬이 없으면 도전할 수조차 없는 곳이다.

워낙 레이스에서 사고들이 많이 발생하여 트랙의 난이도를 떠나 안전성마저 걱정되는 상황이다. 2021년 현재까지 기아 서킷에서 총 17명이 사망했으며, 바이크 레이서 9명, 자동차 레이싱 드라이버 5명, 그 외 관중 및 레이스 관계자 3명으로 집계된다. 최근 일어났던 사망 사고가 2017년인 것을 보면 레이스의 안전성이 많이 개선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위험천만한 트랙인 것은 분명하다.
샤를 르클레르의 원랩 온보드. 턴3부터 지옥이 펼쳐진다.
F3 이벤트가 열리기 시작한 후로 포뮬러 1의 등용문 역할[12]을 하여 예전엔 F1으로 직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상위 포뮬러 시트 확보가 극도로 불황인 최근에는 그리 대단한 대접은 못 받는 듯 하다. 다만 여전히 F1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드라이버들은 기아 서킷에서도 특출난 모습을 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8위에서 시작해 마지막 랩에서야 결정된 댄 틱텀[13] 의 극적인 레이스
2017 FIA GT World Cup 예선 당시의 크래시. 이 사고로 인해 20명 중 12명이 사고를 당했고, 그나마 차량을 수리해서 복귀한 다니 융카데야를 제외한 나머지 11명은 그대로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충격적인 사고 장면이 있으므로 시청에 주의.
그러나 2018년 마카오 그랑프리에서는 역대급으로 심각한 사고가 나왔다. 네덜란드의 반 아메르스푀르트 레이싱(Van Amersfoort Racing)의 유일한 여성 드라이버인 소피아 플뢰르슈(Sophia Floersch)의 레이스 카가 카메라맨 스탠드로 날아가 들이박혔기 때문. 이전에는 목격되지 못했던 사고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카메라맨들과 그녀가 사망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모든 사람들은 생존했고 플뢰르슈는 척추 쪽 골절상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5. 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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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콩은 영국 영향으로 기독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성공회를 의미하고, 마카오는 포르투갈 영향으로 기독교가 가톨릭을 뜻 한다. [2] 본국인 포르투갈에서도 1974년까지는 가톨릭 외의 다른 종교의 포교는 제약을 받았다. 마카오도 비슷했다. [3] 요새 내부는 마카오 역사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요새 입구에는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의 동상이 있다. [4] 성당 2층과 3층, 4층의 성물전시관이 볼만하다. [5] 포르투갈 양식과 남중국 양식이 혼합된 주거 형태를 볼 수 있는 곳 [6]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기 조성한 광장으로, 보도블록 하나하나까지 포르투갈에서 직접 만들어 마카오까지 운송해왔다고 한다. 광장 남쪽 총독 관저의 도서관에 식민지 시기의 고서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광장 동쪽 자비의 성채에도 전시관이 있어 방문해볼 만 하다. [7] 포르투갈 식민지 주둔군 내에 복무하는 모로코 용병 출신 병사들이 살던 아랍풍 병영건물이다. [8] 마카오 지역 향신이자 작가, 사회개혁가였던 정관응의 저택으로 남중국 재력가의 주거 모습을 잘 보여준다. [9] 1999년 12월 20일 이전까지는 포르투갈의 속령이었기 때문에 포르투갈 대표팀 소속이었으며, 중국에 반환된 이후 현재는 보통 중국 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하는 편이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홍콩 대표팀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다. [10] F3 카테고리에서 일정 성적 이상의 드라이버들로 선정된다. [11] 사실 모터사이클은 안전 문제 때문에 시가지 서킷에서 경주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당장 모토 GP 서킷들만 봐도 시가지 서킷은 단 한 곳도 없다. [12] 미하엘 슈마허, 아일톤 세나, 데이빗 쿨싸드 등이 이 대회 우승자이다. [13] 2015년에 세이프티 카를 무시하고 마구 추월하고 첫 랩에 크래쉬한 드라이버를 다시 쫒아가 들이받는 등 막장스러운 짓을 하고 무려 2년 동안 경기 금지를 당했다 돌아온 드라이버이다. 재능이 출중한 드라이버인 만큼 복귀 후 최근 다시 주가를 올리는 중이며, 레드불 주니어 팀에서 승격을 이야기할 때 가장 유력하게 떠올랐었지만 복귀 이후로도 성적이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자 2019년 6월 마침내 레드불과의 계약이 파기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윌리엄스와 디벨롭먼트 드라이버 계약을 체결하여 F1 시트를 향한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지만 최근에 또 막장 인성 어디 안 갔는지 트위치 방송에서 니콜라스 라티피를 신나게 비난하다가 윌리엄스에서도 계약을 파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