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조카에 대한 내용은 루키우스 마리우스 페르페투우스(237년 집정관) 문서 참고하십시오.
Lucius Marius Perpetuus 루키우스 마리우스 페르페투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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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직위 | 원로원 의원, 집정관, 야전 사령관 |
가족 |
루키우스 마리우스 페르페투우스(아버지)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형)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조카) 루키우스 마리우스 페르페투우스(조카) |
경력 |
제4군단 스키티카
트리부누스 밀리툼, 트리부누스 라티클라비우스 제16군단 플라비아 피르마 군단장 아라비아 페트라이아 속주 총독 모이시아 수페리오르 속주 총독 집정관(214) 다키아 속주 총독 아프리카 속주 총독 아시아 속주 총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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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세베루스 왕조의 원로원 의원, 집정관, 야전 사령관.2. 생애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비문을 통해, 세베루스 왕조의 통치하에서 가장 성공하여 죽을 때까지 권세를 누린 원로원 의원으로 유명한 마리우스 막시무스의 동생이다. 형 마리우스 막시무스와 마찬가지로 비문을 통해, 경력이 잘 알려져 있다. 다만, 형과 달리 재임한 날짜 중 상당수는 해석이 불가능해, 재임 기간은 불확실하다.아버지는 포에니 전쟁 후 이탈리아에서 포에니쿠스(Poenicus) 혹은 푸닉(Punic) 지방으로 불린 오늘날 북아프리카 해안 지역에 정착한 조상을 둔, 에퀴테스 출신의 갈리아 검사관 루키우스 마리우스 페르페투우스이다. 혈통은 이탈리아인, 본적은 아프리카 속주 혹은 트리폴리타니아 속주이며, 원로원 의원이 되기 전까지 성장하며 보낸 지역은 갈리아 지방이다. 아버지는 원로원 의원이 아니었지만, 에퀴테스 출신 관료로 인정받았고, 경력과 생애 거의 대부분을 갈리아에서 보냈다.
비문에 따르면, 첫 공적인 삶 아래의 증명된 직위는 형 마리우스 막시무스가 지지하고 옹립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시절부터 시작됐다. 그는 형의 도움, 황제의 후원 아래 시리아 코엘레 속주에 주둔한 제4군단 스키티카의 트리부누스 밀리툼에 임명됐고, 이후 종종 넓은 띠 대대장로 번역된 트리부스 라티클라비우스를 지냈다. 이때 그는 재무관, 법무관 직책을 함께 보유하며 군복무를 했다. 이후 이 경력을 살려, 서기 200년 또는 서기 203년 세베루스 황제의 후원 속에서 당시 시리아 코엘레 속주 총독으로 세베루스 황제의 친구, 형 마리우스 막시무스의 친구 루키우스 알페누스 세네키오 휘하의 로마군단 중 하나인 제16군단 플라비아 피르마의 레가투스(군단장)에 임명됐다. 이어 그는 아라비아 페트라이아 속주 총독이 됐다. 이어 속주 관할 도시 행정업무를 맡았는데, 카라칼라 황제 시절인 211~214년 모이시아 수페리오르 속주 총독에 임명돼, 카라칼라 황제를 돕는 야전사령관으로 게르만족과 전투를 치렀다. 이후 214년경 집정관에 추천받아 취임했고, 이 경력 아래 다키아 속주 총독이 됐다. 그러다가 카라칼라 시대 후기인 218년경 아프리카 속주 총독을 지낸 뒤, 219년경 아시아 속주 총독이 됐다. 이후 기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