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2 14:32:03

랭커스터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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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스터 가문
House of Lancaster
파일:랭커스터 왕조 휘장.svg
국가 잉글랜드
본가 플랜태저넷 왕조
존속 창건 1362년 ( 곤트의 존)
최후 1472년 ( 헨리 6세)
종교 가톨릭
성립 이전 플랜태저넷 왕조
멸망 이후 요크 왕조

1. 개요2. 역사
2.1. 초창기2.2. 장미 전쟁
2.2.1. 몰락
2.3. 튜더 왕조
3. 가문원
3.1. 랭커스터 백작3.2. 랭커스터 공작3.3. 왕권 성립 이후
3.3.1. 역대 국왕3.3.2. 역대 왕비3.3.3. 그 외
3.4. 계보
4. 보유 작위5. 여담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의 역대 왕조 중 하나이자 플랜태저넷 왕조의 방계 가문.

에드워드 3세 아들이자 초대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에서부터 시작됐다.[1] 총 3명의 잉글랜드 국왕을 배출.

현재 왕위와 병합되어 있고 왕실재산기관인 랭커스터 공국이 있다.

2. 역사

2.1. 초창기

시조는 에드워드 3세의 3남이자 초대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 에드워드 3세의 뒤를 이어 그의 장손자 리처드 2세가 즉위했지만, 그는 아직 어렸던 터라 섭정을 맡은 곤트의 존이 실권을 쥐고 있었다. 존의 적장자이자 리처드 2세의 사촌형인 볼링브룩의 헨리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리처드 2세가 성인이 되고 친정을 시작하면서 의회와의 불화가 심화되었다. 결국 1386년에 곤트의 존이 카스티야로 원정을 떠나자, 볼링브룩의 헨리는 정계에 입문해 리처드 2세와 적대하기 시작했다. 헨리는 노퍽 공작 토머스 모브레이와 함께 청원파의 일원이 되어 리처드 2세의 총신들을 범법자로 규정하고, 이를 리처드 2세에게 강요하다가 그의 격노를 샀고 1398년에 토머스 모브레이와의 불화를 구실로 국외로 추방당했다.

이후 1399년에 곤트의 존이 사망하고 리처드 2세에 의해 랭커스터 공작령을 몰수당하자, 볼링브룩의 헨리는 반란을 일으켜 리처드 2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스스로 헨리 4세로 즉위했다. 하지만 결국 찬탈자였기에 몇몇 귀족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고 위협했다. 이후로도 헨리 4세는 1400년에 리처드 2세의 지지자들이 꾸민 음모를 막아내고, 연달아 일어난 반란을 제압하면서 상당히 고생스럽게 왕위를 유지했다. 헨리 4세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그의 이복동생들이자 곤트의 존의 5, 7, 8남의 가문인 보퍼트 가문[2], 헨리 4세의 적자이자 후계자인 몬머스의 헨리 왕자와의 사이에서 파벌이 형성되었다. 이에 헨리 4세와 헨리 왕자의 사이가 나빠졌으나, 몇 개월 후 헨리 4세가 죽으면서 헨리 왕자가 헨리 5세로 즉위했다.

헨리 5세가 즉위했을 때는 한창 프랑스 백년전쟁으로 투닥대던 시기라 그는 왕위에 오르고 대부분의 시간을 프랑스군과 치고받으며 지냈다.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나 전염병인 이질에 걸려서 아들 헨리 6세가 태어나고 얼마 뒤 사망한다.

2.2. 장미 전쟁

1385년에 존의 동생인 랭글리의 에드먼드는 요크 공작의 작위를 받고 후에 랭커스터 왕조의 숙적인 요크 왕조 시조가 되었다.

백년전쟁이 발발했던 헨리 5세까지만 해도 왕권을 유지했지만 헨리 6세의 시대에 요크 왕조와의 장미 전쟁으로 왕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프랑스 출신으로 헨리 6세의 왕비인 앙주의 마르그리트는 병약한 헨리 6세를 마음대로 다루었는데, 영지, 작위, 왕위계승권까지 가진 요크의 리처드를 경계해 제2대 서머셋 공작 에드먼드 보퍼트와 함께 리처드를 견제했다. 결국 요크 가문과 보퍼트 가문의 사이는 험악해졌다.

헨리 6세가 병에 걸리자 요크의 리처드 호국경(Lord Protector)의 자리에 올랐지만 헨리 6세가 회복하자마자 보퍼트 가문에 의해 정권에서 밀려난다. 결국 1460년에 리처드는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자신의 두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 10월에 요크 가문은 랭커스터와의 전투에서 승리해 헨리 6세를 생포했다. 하지만 12월에는 오히려 요크의 리처드와 그의 차남 에드먼드가 전투에서 패배하고 처형당했다.

2.2.1. 몰락

1461년 헨리 6세는 리처드 공작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에드워드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에드워드는 스스로 왕위에 올라 에드워드 4세로 옹립했고 요크 왕권을 시작됐다. 요크 왕조의 내분으로 1470년에 잠시 헨리 6세가 복위하긴 했지만 결국은 다시 에드워드 4세에게 빼앗기고 유배 중 사망하고 만다.

헨리 6세의 아들이자 랭커스터 최후의 웨일스 공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는 전투 중 사망하고 즉위하지 못했다.

이때 헨리 4세의 자손들은 서계를 포함해 말 그대로 끊어진다.

2.3. 튜더 왕조

이렇게 랭커스터 본가와 사생아계 후손들이 문자 그대로 멸절당하자, 랭커스터 지지파들은 리치먼드 백작 헨리를[3]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의 뼈대를 구축했다. 1483년의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1485년 리처드 3세가 보스워스 전투에서 리치몬드 백작에게 패해 전사했다. 리치먼드 백작은 요크와 랭커스터의 화합의 상징으로 에드워드 4세의 장녀 요크의 엘리자베스를 왕비로 삼고 헨리 7세로 즉위해 튜더 왕조를 창건한다.

3. 가문원

3.1. 랭커스터 백작

  • 에드먼드 - 제1대 랭커스터 & 레스터 백작. 헨리 3세의 아들
  • 토머스 - 제2대 랭커스터 & 레스터 백작. 제1대 랭커스터 백작의 아들.
  • 헨리 - 제3대 랭커스터 & 레스터 백작. 제1대 랭커스터 백작의 아들.
  • 그로스몬트의 헨리 - 제1대 랭커스터 공작, 제4대 랭커스터 & 레스터 백작. 제3대 랭커스터 백작의 아들.

3.2. 랭커스터 공작

  • 그로스몬트의 헨리 - 제1대 랭커스터 공작, 제4대 랭커스터 & 레스터 백작.
  • 블랜치 - 랭커스터 공작부인, 제5대 랭커스터 & 레스터 백작부인. 그로스몬트의 헨리의 딸. 곤트의 존의 부인.
  • 곤트의 존 - 제1대 랭커스터 공작. 에드워드 3세의 아들. 블랜치의 남편.

3.3. 왕권 성립 이후

3.3.1. 역대 국왕

3.3.2. 역대 왕비

3.3.3. 그 외

3.4. 계보

곤트의 존 헨리 4세 헨리 5세 헨리 6세
존 보퍼트 존 보퍼트[4] 마거릿 보퍼트 헨리 7세
( 튜더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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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서머셋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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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요크 공작
에드먼드 튜터 마거릿 보퍼트 헨리 6세
랭커스터 왕조
마거릿 보퍼트 에드워드 4세
요크 왕조
리처드 3세
요크 왕조
헨리 7세
튜더 왕조
요크의 엘리자베스 에드워드 5세
요크 왕조
헨리 8세
튜더 왕조
}}}||

[1] 모르타뉴 백작위와 노장 백작위를 통합해 페르슈 백작위를 창설했다.

4. 보유 작위

  • 잉글랜드 국왕
  • 프랑스 국왕자칭
  • 랭커스터 백작(Earl of Lancaster)
  • 레스터 백작(Earl of Leicester)
  • 상파뉴와 브리의 백작(Count of Champagne and Brie)
  • 보퍼트와 노장의 군주(Lord of Beaufort and Nogent)
  • 모라이 백작(Earl of Moray)
  • 페레르 백작(Earl Ferrers)
  • 더비 백작(Earl of Derby)
  • 솔즈베리 백작(Earl of Salisbury)
  • 링컨 백작(Earl of Lincoln)
  • 랭커스터 공작(Duke of Lancaster)

5. 여담



[1] 정확하게 랭커스터 백작 가문은 1267년, 에드먼드부터 시작됐다. [2] 곤트의 존이 정부이자 세번째 아내인 캐서린 스윈포드에게서 낳은 존 보퍼트, 헨리 보퍼트, 토머스 보퍼트 [3] 리치먼드 백작 헨리의 아버지 에드먼드 튜더는 헨리 6세의 이부남동생이고, 어머니 마거릿 보퍼트 곤트의 존의 증손녀로 모계 혈통으로나마 랭커스터 왕조의 피를 물려받았다. [4] 아버지와 이름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