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라틴아메리카/근현대사
라틴아메리카/근현대사 | |||||||||
19세기 초반~19세기 중반 |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 20세기 후반 | 21세기 | 한계와 비판 |
1. 개요
라틴아메리카 근현대사의 21세기를 다룬다.2. 핑크 타이드와 블루 타이드
2000년대 초 라틴아메리카는 핑크 타이드가 강렬하게 몰아쳤다. 당시 들어선 좌파 정권은 크게 2가지 조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같은 강경좌파, 다른 하나는 브라질의 룰라와 같은 온건좌파이다. 강경좌파의 외정은 대개 반미-친러-친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내정은 국영화, 가격통제와 같은 경제 전반에 대한 정부개입을 선호한다. 반면에 온건좌파의 외정은 중립에 가깝고, 내정은 대체로 사회자유주의와 실용주의를 선호한다. 핑크 타이드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1년에는 인구 1,000만이 넘는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 국가 중 4개국[1]를 제외한 나머지 전부 좌파가 집권했다. 2011년까지 남아메리카에서 일었던, 민주선거를 통한 일련의 좌파 정권 수립을 가리켜 1차 핑크 타이드라고 한다.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와 중국의 상대적 저성장의 여파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서 좌파에 대한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페루 같은 곳에서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차베스와 마두로 쌍두마차의 실정으로 헬게이트가 된 베네수엘라는 좌파정권이 반대파를 닥치는대로 찍어누르면서 독재를 하다가 2019년부터 친서방과 반서방 성향의 인물들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좌파 정권에 대한 피로감과 2018년까지 일었던, 민주선거를 통한 일련의 우파 정권 수립을 가리켜 블루 타이드라고 한다. 이때는 역으로 인구 1,000만이 넘는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 국가 중 2개국[2]만 빼고 나머지 전부 우파가 집권했다.
그러나 1차 핑크 타이드 이후 집권한 우파 정권도 해피엔딩을 맞이하진 못했는데 도널드 트럼프 정권 이후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 대외정책이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하고[3] 생활 물가 인상으로 인해 오히려 기껏 들어선 아르헨티나의 우파 정권이 다시 좌파 연립정권에게 대선에서 패배했고 칠레에서는 대중교통 요금 상승 등의 경제 문제로 인해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하였고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경우에는 마우리시오 마크리와 미셰우 테메르 등 우파 대통령들이 지리멸렬이라는 표현도 부족한(.....) 한심한 리더십을 보여주면서 역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2010년대 말부터 다시 좌파 정권이 연이어 수립되는데 이를 가리켜 2차 핑크 타이드라고 한다. 2차 핑크 타이드는 어떤 면에서는 1차보다 강하게 몰아치고 있는데, 1차는 주요 4개국 중 2개(브라질, 아르헨티나)만 좌파 정권이 들어섰지만, 2차는 1개(아르헨티나)만 빼고 전부 좌파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칠레의 좌파 대통령 가브리엘 보리치의 개헌이 무산되고 아르헨티나에 극우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가 집권하여 2020년대 초에 2차 핑크 타이드가 쇠퇴했다는 일부 평론가들의 설레발도 있지만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다.
3. 브라질, BRICS의 일원으로
- 룰라 집권기 브라질(2002~2010)의 경제지표
2002년 10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줄여서 "룰라"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정치인이 네 번째 대선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브라질 전국에서 손꼽히는 노동 운동가로 급진좌파 성향이었던 그는 대선 승리를 위해 온건한 이미지를 가꾸었고 중도 성향 인사들도 포섭하였다. 룰라는 2006년 재선하여 브라질 사상 두번째로 재선에 성공했다.
야권인사 룰라는 몰라도 대통령 룰라는 실로 운빨을 타고난 정치인이었다. 당시 브라질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대규모 인프라 및 유전 개발 투자, 각종 개혁정책을 통해 급성장하여 BRICS의 일원으로 거듭났다.[4] 그가 집권한 8년간, 브라질의 실업률은 12%에서 7%대로, 경제규모는 약 7천억 달러가 늘어나 세계 8위로, 국가부채 규모는 GDP 대비 5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18%대로 낮아졌다. 80년대 외채위기를 겪은 이후 브라질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신뢰도는 매우 낮아 국채에 비싼 이자를 물어야 해서 선진국 같으면 아무것도 아닌 50%도 브라질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룰라 임기 초반(2002~2005) 대한민국에게조차 밀리는 지경이었던 브라질의 GDP는 룰라의 퇴임 직후인 2011년에는 대한민국의 2배를 넘겼고, 룰라 임기 말의 브라질은 세계 5위권 GDP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었다.
한국 보수 언론 중 하나인 중앙일보에서는 '룰라는 대통령 당선 이전에는 상당히 좌파적인 공약을 내세웠으나 당선 이후에는 보수적인 정책으로 브라질 경제를 부흥시켰다'고 칭찬하였는데, # 해당 주장은 진영논리 입장에서 어느정도 편향된 주장인 것은 배제하더라도 그만큼 룰라의 브라질의 약진이 대한민국 보수층을 비롯한 세계 각계 각층에 상당히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도좌파 출신 룰라는 진영 논리를 배제하고 부정부패와 낭비를 상당부분 근절하였으며, 이렇게 마련한 재원으로 복지를 확충하고 교육 인프라 투자를 대대적으로 개선하였다. 룰라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이후 집권한 같은 노동당 출신 지우마 호세프가 대통령 자리를 잇는다.
그리고 참으로 얄궂게도 룰라가 피한 유탄을 호세프가 맞았다. 세계의 자원들을 흡입하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점차 낮아지면서 브라질산 원자재의 수요가 줄어들었고, 하필 2014년 미네이랑의 비극에 뒤이어 2014년 유가 치킨 게임(이란과 베네수엘라 등 후발 산유국 및 러시아와 알제리 같은 제2세계 국가들을 겨냥한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이 주도한 국제 유가 폭락)의 영향으로 브라질 경제가 개판이 된 영향으로 급속히 인기를 잃고 탄핵되었다. 게다가 룰라마저 2017년 돈세탁과 간접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고 중형을 받고 2018년 대선 출마가 가로막힌다. 하지만 당시 수사판사 세르지우 모루의 판결은 룰라에 대해서 편파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았고, 2021년 3월 연방대법원이 당시 판결을 무효로 하여 대선에 나설 수 있게 된다.
호세프 이후 집권한 중도우파 성향 미셰우 테메르의 부패와 실정을 거쳐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이 되었다. 보우소나루는 브라질의 빈민가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수천여 명 규모의 쿠바 출신 의사들을 '빨갱이는 필요없다'며 모조리 추방하는 패기를 보였었다. #[5] 그러나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집권한 후에도 브라질의 경제는 계속 악화되고 있는데, 룰라 퇴임 직전 1만 달러대까지 상승했던 브라질의 1인당 GDP는 원자재 가격의 하락과 코로나의 여파로 2020~21년 기준 7~8,000달러대로 추락했다가 2023년 1만달러 선을 회복했다. 결국 보우소나루는 막판 지지층 결집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한 표차로 재선에 실패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시우바는 2023년 1월 1일 역대 최고령으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시우바는 보우소나루 정권에서 대폭 삭감한 보우사 파밀리아의 예산을 다시 늘리고 대규모 인프라 건설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한편 1기 시절보다 미국과 이스라엘과 같은 서방 진영에 대립각을 세우면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도 FDI 유입 증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물가 안정, 기준금리 인하 기조로 상승하고 있다.
4. 멕시코, 고질적인 마약 카르텔 문제
1982년 디폴트 선언 후 멕시코는 수차례 채무재조정을 하고 민영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재정균형을 시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멕시코는 경제체질을 일부 개선했으나 그 대가로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급기야 제도혁명당은 부정선거까지 하면서 정권을 연장했으나 1997년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2000년 대선에서 중도우파 국민행동당의 비센테 폭스(2000~2006)에게 패배하여 71년 장기집권에 마침표를 찍었다. 폭스는 FDI 유입과 무역을 촉진하고 경제를 현대화하기 위한 정책들을 입안했다. 또한 제도혁명당의 정책 기조를 계승하여 다수의 국가와 FTA를 체결했다.[6] 그러나 대선에서 국민행동당이 승리한 것과 별개로 의회는 여전히 제도혁명당이 우위인 여소야대였으므로 폭스의 추진력을 약할 수밖에 없었다.국민행동당은 2006년 대선에서 자당의 펠리페 칼데론(2006~2012)이 승리하여 정권을 재창출하는데 성공했지만 부정선거 의혹으로 인한 정통성 시비에 휘말렸다.[7] 칼데론은 폭스의 정책 기조를 계승하여 경제를 개혁하고 북부를 중심으로 한 마약 카르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과 군대의 봉급을 인상하고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여 대대적인 카르텔 토벌전에 나섰다. 2010년 멕시코의 GDP가 1조 달러를 넘겼다. 국민행동당은 기존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한 채 2012년에 제도혁명당의 엔리케 페냐 니에토(2012~2018)에게 다시 정권을 내줬는데 페냐 니에토도 38.1%의 역사상 최저 득표율로 당선된데다 총선 결과 여소야대 상황이 일어나 국정운영에 애로가 생겼다. 니에토는 독과점 해체, 에너지 부문 개혁, 공공교육 개혁, 금융 규제 혁신 등의 조치를 취했다. 2016년 5월에는 상대적으로 저발전된 남부 주들의 개발을 위해 일부 지역으로 경제특구(Zona Económica Especial)로 지정하는 경제특별구역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마약 카르텔의 발호, 국제 유가의 하락, 부패 심화와 같은 문제를 겪었으며 특히 2014년 멕시코 아요트시나파 사범대학교 학생 실종사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은 멕시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비판을 받았다.
1980년대 이후 집권 정당을 불문하고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갔다. 멕시코와 육상으로 맞닿은 유일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라는 특성상 마약의 대부분이 멕시코를 거쳐갈 수밖에 없다. 초기 카르텔들은 콜롬비아에서 생산한 마약을 소비지인 미국으로 옮기면서 이득을 보는 운반책들이었다. 이후 미국이 생산지와 운반책을 압박하자 마약을 자체 생산하고 유통 경로를 다양화했다. 또한 기존 조직들은 미국과 멕시코의 토벌전에 와해되자 점조직으로 분산하는 식으로 "진화"하여 더더욱 진압이 어렵게 되었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기관마다 다르지만[8] 아무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도 수만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짐작된다.
2018년 대선에서 승리한 좌파 국가재건운동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이른바 "총알 아닌 포옹"(Abrazos, no Balazos) 정책을 내세우며 마약과의 전쟁 중단을 선포하고 대신 카르텔과의 공존을 선택했다. 2020년 2월 말부터 멕시코에서 창궐한 코로나19는 2022년 6월까지 최소 32만 5천명이 죽는 끔찍한 피해를 입혔으며 멕시코는 아메리카 대륙을 통틀어 미국, 브라질을 이어 3번째로 높은 인구 대비 사망률을 기록했다. 2024년 같은 당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대선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재창출했다.
5. 콜롬비아, 내전의 마무리를 향하여
늦게 잡아도 1964년부터 시작된 콜롬비아 내전은 근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낳은 분쟁[9]인 동시에 가장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분쟁이다. 콜롬비아 좌익 반군은 확장을 거듭하여 1990년대에 이르면 주요 도시를 제외한 남부지역 전체가 반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콜롬비아 내전의 해결이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전쟁 중에 자행된 각종 전쟁범죄로 인한 적대의식의 형성과 좌익 게릴라 및 우익 민병대의 변질이다. FARC를 위시한 좌익 게릴라 세력들은 우익 인사들에 대한 테러를 저지르고 게릴라를 반대하는 민간인에 대한 납치와 표적살해를 자행했다. 정부는 좌익 게릴라의 창궐에 맞서 우익 민병대들을 대대적으로 조직했는데 이들 민병대들은 정부군과 함께 민간인을 살해한 후 게릴라로 둔갑하여 전공으로 기록하거나 성범죄를 자행하는 등 잔혹성에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전쟁범죄로 인한 적대의식의 형성은 평화협정을 옹호하는 세력이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직은 반군을 용서할 수 없다” 콜롬비아 평화협정 부결더욱이 오늘날 이들 좌익 게릴라와 우익 민병대는 모두 미국을 목적지로 하는 마약 거래에 긴밀히 연관되어 있어서 분쟁의 해결이 더욱 어렵게 한다. 마약 카르텔과 협력하거나 아예 마약 카르텔 자체로 변질된 무장세력들이 정치인들을 매수하거나 협박하여 자기에게 협력하는 정치인들을 대거 당선시켰고 자기들을 척결할 의지를 보이는 정치인들은 살해했다. 유명한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직설적으로 말해 세계 최대 마약 시장인 미국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마약 카르텔 문제 해결은 요원하며 내전 종결도 요원한 것이다.[10] 그러나 내전의 장기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의 누적과 시민들의 피로감은 평화협정을 위한 움직임을 추동한다. 정부와 최대 반군조직 FARC는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2010~2018) 재임기인 2012년 9월 협상을 재개하여 2013년 5월 26일 구체적인 사항에 합의, 2016년 6월 24일 평화협정안에 합의했다. 10월 2일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평화협정안은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었지만,[11] 어쨌든 양측은 재협상을 거친 후 일부 안을 개정한 최종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 따라 FARC는 2017년에 무장을 해제하고 대부분 사회에 복귀했고 9월에 공식 정당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FARC 내 강경파와 ELN, EPL은 아직까지도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게릴라 투쟁을 벌이고 있다.
경제는 1980년대에 시작한 석유산업을 바탕으로 활황을 띠고 있다. 석유산업은 이미 1990년대 GDP의 2~4%, 수출의 20~30%를 차지한 중요한 산업으로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회복하고 경제성장을 견인한 주요 산업이었다.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2002~2010)은 2000년대 초에 시작한 콜롬비아의 경제호황을 주도한 인물로, 2003년 콜롬비아의 모든 자원개발을 국영기업이 독점하던 기존 정책에서 벗어나[12] 해외를 포함한 민간기업의 참여를 허용하고 소유권 인정, 규제 완화 등 일련의 혁신 조치를 취했다. 여기에 2000년대 초 원자재 붐에 힘입어 석유산업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수출에서 비중이 30~50%로 증가, 콜롬비아 최대의 외화 소득원이 되었다. 또한 우리베 대통령은 콜롬비아군 인력과 예산을 2배로 확충하여 반군에 강경책으로 일관하였다. 그 결과 2002년 10만명당 68.3명에 달했던 살인율은 2010년 33.7명으로 줄었고, 반군의 주요 자금 출처였던 납치도 같은 기간 3,000건에서 300건으로 줄었다. # 반군의 세력 자체도 FARC는 2만명에서 8천명으로, ELN은 3,500명에서 1,500명으로 병력이 확연히 줄었다. # 2010년 9월 22일에는 FARC의 부사령관으로서 야전 지휘를 담당하던 모노 호호이(Mono Jojoy)[13]를 사살했다.[14] 개선된 치안과 정부군의 우세를 바탕으로 콜롬비아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했고 IMF, 세계은행 등과 긴밀히 협력하여 공기업 민영화와 재정지출 절감 등 경제개혁을 진행했다. 2010년대 초 원자재 붐이 끝난 이후에도 콜롬비아는 성장을 지속했다.
2022년 8월 대선에서 당선된 구스타보 페트로는 역대 콜롬비아 대통령 중에서 첫 좌파 대통령이 된다. 게다가 페트로는 청소년기 M-19 게릴라 출신이었다. 콜롬비아는 우파가 오랫동안 집권했지만, 이번만큼은 좌파의 물결을 피하지 못했다. 다만 페트로는 자기 나라가 산유국인데도 태양광과 풍력 같은 청정에너지로 전환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이스라엘과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벌어진 '제노사이드'를 이유로 단교를 선언하여 정치논리로 경제논리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줘 향후 경제에 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6.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와 밀레이의 당선
2003년 12월 대통령이 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도 룰라만큼이나 운 좋은 사람이었다. 2001년 디폴트 때문에 국제 자본시장에 대한 접근을 차단당하여 사실상 망할 일만 남았지만 2002년 대통령 권한대행 에두아르도 두알데(2002~2003)의 고정환율제 포기로 페소화 환율이 폭락하여 실질환율만 남아 비로소 "정상화"되었고, 여기에 국제 원자재 가격이 대폭 상승하여 아르헨티나가 성장할 여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키르치네르 정부는 확장재정을 재개하고 1990년대에 민영화된 ASA, ANSES와 같은 일부 기업을 재국유화했다. 키르치네르의 임기 시작과 더불어 현대 아르헨티나의 최장기 호황이 시작했다. 경제성장률은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7.1%에 달했는데 특히 2003~2007년 구간은 9%에 달했다. 실질임금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72% 상승했다.고질적인 외채 문제(2003년 1,662억 달러)도 2005년 초 시장 외적인 방법을 동원해 일부 탕감받는데 성공했는데 그 방식이 민간이 보유한 820억 달러 규모의 국채를 액면가의 75%가 삭감된 신규 국채로 강제 교환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국제 자본시장에서 신뢰를 쌈싸먹는 일로 이탈리아와 일본의 채권자들이 강력히 반발했으나 이미 디폴트를 선언한 아르헨티나 정부 입장에서는 알 바 아니었다. 결국 76% 이상의 채권자들이 공채교환에 참여하여 아르헨티나 정부 입장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키르치네르는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한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2007~2015)에게 대통령을 승계하며 찬사 속에서 퇴임했다.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는 1번째 임기 중인 2010년에 2번째 채무조정에 합의하여 2001년 디폴트를 선언한 채무의 93%를 해결했다.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의 2번째 임기 중인 2012년부터 경제위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0년대 초부터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무역수지가 악화되었다. 2011년 중순 신용대출 발행량의 증가 속도가 GDP를 넘어서 경기과열에 대한 우려를 빚었다. 2011년 인플레이션이 2002년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임기가 끝날 때까지 연 20~40%에 달하게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다음해부터 긴축에 들어갔다. 2012년 4월에는 무역수지 호전과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아르헨티나의 석유 및 천연가스 기업인 YPF에 대한 재국유화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로도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는커녕 자본도피만 일으켜 외환보유고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자본의 이동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암시장의 증가로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포함한 헤지펀드들이 2001년 디폴트 선언 대상이었던 구 채권에 대한 채무조정 합의를 거부하고 뉴욕지방법원에 원리금 전액을 상환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하여 2014년 7월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상환을 거부했고 이에 따라 7월 30일 한번 더 디폴트가 이루어졌다. 진짜 먹고 죽을 돈도 없었던 2001년과 달리 2014년 디폴트는 협상 결렬로 인한 이른바 "기술적 디폴트"로 세계경제에 미친 파장은 상대적으로 미미했지만, 2011년부터 서서히 연옥으로 입장하던 아르헨티나 경제를 지옥으로 편도여행 보내기는 충분했다.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가 퇴임한 2015년 인플레이션은 30%를 넘었고 재정적자는 8%에 달했다. 1인당 GDP는 2011년을 최고점으로 하여 정체와 하락을 반복했고, 2017년이 되자 더욱 가파르게 하락했다.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의 후임 마우리시오 마크리(2015~2019)와 마크리의 후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2019~2023)[15] 모두 경제위기 해결에 실패했고 상황은 계속 악화되기만 했다. 2019년 1인당 실질GDP는 2015년 대비 89%로 떨어졌는데 같은해 말에 발생한 코로나 19로 2015년 대비 80%까지 더 떨어졌다.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라틴아메리카 내에서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위상은 해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위기 전인 2011년 1인당 GDP는 칠레에 비해 14% 낮고 멕시코보다 19% 높았는데, 2019년에는 멕시코에게 추월을 허용했고 칠레와의 격차는 2023년 24% 더 낮아서 격차가 더 벌어졌다.
기성 정치인의 무능에 신물이 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2023년 대선에서 강경 우파이자 자유주의 경제학자 출신의 하비에르 밀레이를 뽑았다. 밀레이는 강력한 긴축정책과 자유무역, 페소화 폐지와 미국 달러화를 주장한다. 밀레이의 정책은 야당과 노조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데 과연 그의 개혁이 성공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7. 기타 국가
7.1. 베네수엘라
2000년대 초반 우고 차베스는 세계 뉴스 토픽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로서 조지 W. 부시의 일방주의를 비판하는 하나의 아이콘이었다. 베네수엘라인은 미국에 큰소리 뻥뻥 치고 다니면서 세계인들의 이목을 끄는 차베스에게 열광했다.바로 이 장소에 어제 그 악마가 다녀갔습니다. 제가 서 있는 이 연단에는 아직까지도 유황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어제, 제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제가 악마라고 지칭한 미합중국 대통령 각하께서 마치 자신이 전세계의 주인인 것처럼 연설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의 연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과 의사가 여기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2006년 9월 20일 우고 차베스의 연설
차베스는 위 연설처럼 미국 대통령을 가리켜 악마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마다하지 않고 대미외교에서 초지일관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였고 라틴아메리카 내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존 지역공동체를 대체하기 위한 다른 지역공동체, 이른바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ALBA)"을 구상했다. 그는 미국 주도의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설립에 반대하여 2001년 12월 개최한 제3차 카리브 공동체(CARICOM) 정상회담에서 ALBA를 최초로 제안했고, 2004년 12월 베네수엘라-쿠바 정상회담을 계기로 ALBA가 정식 출범했다. 설립 목적은 남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이 역내 국가간 경제 협력을 통해 미국과 유럽에 독립적인 지위를 얻는 것이었다. 2024년 ALBA는 정회원국 10개국에 옵서버 국가 3개국으로 구성되었다.2006년 9월 20일 우고 차베스의 연설
그러나 거창한 의도와 대비되는 ALBA의 실상은, 근본적으로 차베스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여 정치논리로 경제논리를 찍어눌러버리고 베네수엘라의 석유 판매고에만 의존하여 참여를 유도하는, 지극히 기형적이고 결코 오래갈 수 없는 결함체제였으며 회원국들에게 어떤 유의미한 경제적 발전을 도모하거나 어떤 의미있는 지역공동체로 성장하는데도 실패했다. 정회원국은 중진국인 베네수엘라, 쿠바를 빼면 전부 극빈국이거나 후진국, 소규모 도서국가들이며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베네수엘라와 아이들이라고 해도 할말이 없을 정도다. 차베스도 ALBA의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해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에게 초청장을 보냈지만 이들 국가에게서 최소한의 관심조차 받는데 실패했다.[16] 차베스는 또한 단순한 반미 지도자 1에 머무르지 않고 미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지역공동체를 조직해 미국의 영향력을 조지겠다고 나서서 미국을 지나치게 자극했다. 이런 거창한 대외정책은 베네수엘라의 국력이 결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모했고 향후 정치/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조국이 커다란 짐을 지게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무상의료, 무상교육과 같은 복지 예산을 대폭 확충하고 석유산업을 국유화해서 외국 기업을 내쫓았다. 복지정책의 재원을 석유 판매로 마련했으니 석유 산업이라도 제대로 유지해야겠지만 이른바 자본 파업에 대한 보복으로 석유산업에 종사하는 고급 인력들을 대거 해고하여 두뇌유출을 자초했다. 주요 요직들을 차지한 차베스의 근위 세력들은 경제영역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확대하는 한편 이전 인사들보다 극심한 부정부패를 벌여 거대한 부를 쌓았다. 소비재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외환통제로 볼리바르화의 과대평가를 억지로 유지하고 가격통제로 소비재 가격을 낮추어 수입에 의존하는 생필품의 가격을 낮게 유지함으로써 빈곤층의 지지를 획득했다.
차베스와 마두로의 경제 정책으로 석유산업은 석유산업대로 망하고 복지는 복지대로 망해버렸다. 2000년대 고유가에 증산은커녕 정체하거나 감소하기만 한 석유 생산량, 전쟁이나 내전을 겪지 않은 국가 치고는 기이할 정도로 급격한 생활수준 하락, 경제학 교과서의 예시로 나올 법한 초인플레이션[17], 아무런 경쟁력도 키우지 못하고 정부 지원에 의존하다가 정부 지원이 끊기자 그대로 몰락해버린 제조업[18], 미제의 하수인인 야권을 조지고 차베스와 마두로 동지를 결사옹위하자는 친정부 민병대와 국영 매스미디어, 베네수엘라 경제가 망해버리자 바로 개점휴업 때리고 얼마 안 가 해체에 들어간 ALBA[19], 생활고와 정부의 탄압을 피해 난민으로 조국을 등진 7백만의 국민까지, 이 모든 것은 우고 차베스가 설계한 정치/경제/문화 등 거의 모든 부문의 정책이 그 근본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드러내며, 그 결과는 2024년 지금도 후임 니콜라스 마두로가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오바마 행정부와 사우디가 주도하여 2014년부터 시작된 유가 치킨 게임에서 똑같이 증산에 나서서 점유율 방어는커녕 감산을 해서 고유가를 유지하자고 애처롭게 호소할수밖에 없었다. 얼마 안 가 베네수엘라는 세계 경제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2008년에 차베스가 지옥에나 가라 이 양키 X끼들아!! 여기 준엄있는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 양키 X끼들아! 100번이나 지옥으로 떨어져라!라고 연설한 적이 있는데 #, 차베스 덕분에 양키 X끼들 대신 베네수엘라의 3,000만 국민들이 10년도 넘게 지옥에 담금질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진실로 웃음벨이 아닐 수 없다.
베네수엘라가 경제정책 엉망으로 짜서 통크게 자해한거야 그렇다 치고, 미국이 베네수엘라에게 벌이는 경제제재가 베네수엘라 경제 조지는 것 외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상당히 타당한 주장인데, 2차대전 이후 현대 사회에서 인권 탄압국이나 독재 국가 중 경제제재를 맞고나서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된 사례는 아직까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세르비아가 유이하다.[20] 서방의 제재를 받았던 베네수엘라 등등이 과연 경제파탄 이후에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자라잡았는지 생각하면, 이 경제제재가 제재 대상국의 민주주의 정착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는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바꿔 말해서 대한민국의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돕겠다고 경제제재를 가해서 경제성장을 막고 1950년대 수준으로 한국 경제를 되돌려놓았다면 과연 한국에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보면 빠르다. 2019년에 들어서는 이른바 2019년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라 하여 후안 과이도가 마두로 정권을 뒤집으려 했으나 실패한다.[21]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유가가 폭등하자 미국에서 다급하게 태도를 바꿔 베네수엘라 측에 석유 증산을 요구한 상황이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된 베네수엘라 정유 시설은 미국이 원하는 (기존에 러시아에게서 수입하던) 수요의 일부만 대체 가능할 뿐이다. #
7.2. 볼리비아
2006년 취임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가까이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며[22] 경제정책 등으로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2019년 부정선거 의혹으로 실랑이를 벌인 끝에 사퇴하였다. 중간에 우파 정당 출신 자니네 아녜스가 임시대통령으로 재임했다가 2020년 대선에서 모랄레스와 같은 당 출신인 루이스 아르세가 당선되었다. 이로서 볼리비아는 블루 타이드에도 불구하고 좌파 정당이 굳건히 정권을 유지한 몇 안되는 나라가 되었다.7.3. 페루
사실 페루는 이념적으로 핑크 타이드나 블루 타이드를 겪었다기보단 정정불안이 워낙 잦아서 좌우익이 어쩌다 교대로 집권한 것에 가깝다. 원래 페루 정치는 대통령 중 절반 가량이 부패와 스캔들, 쿠데타로 퇴진할 정도로 만성적인 혼란을 겪었다.[23]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피해를 심하게 입었고, 특히 교육은 코로나 여파가 더 심했다. 이에 25년 경력의 교사였던 극좌 성향의 페드로 카스티요는 이러한 현실에 분노를 느끼고 출마한 뒤,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운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당선 당시와는 달라진 정치적 방향성과 부패로 소속 정당에서 출당되고 부패로 인해 야당들에게 탄핵 위기에 처하자 직전 소속 정당과 야당들, 의회를 상대로 친위 쿠데타까지 시도하다가 군대와 내각이 거부하면서 몰락하며 1년만에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의 직위를 계승한 디나 볼루아르테는 원래 같은 자유 페루 출신이지만 2022년 출당된 후 우경화해 오늘날은 우파 정당과 연합하고 있다. 그러나 볼루아르테도 부패 스캔들과 시위 강경진압 때문에 지지율이 낮은 상황이다.7.4. 칠레
2017년 당선된 보수주의 대통령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지하철 요금 30페소(50원) 인상으로[24]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 잇따른 반정부 시위 끝에 결국 칠레는 군사정권 말기에 제정되었던 기존 헌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제헌의회[25]를 소집하게 되었다. 새로 선출된 제헌의회에는 기존 보수파 정치인이 대거 낙선하고 좌파와 무소속 의원이 대거 당선되었다. 또한 2020년 10월 피노체트 헌법을 국민투표로 폐지했다.더 나아가 2021년 12월 칠레에서는 좌파연합 후보인 가브리엘 보리치가 당선되면서, 다시 한번 좌파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신자유주의 요람 칠레, 이젠 그 무덤 될 것” 집권 이후에는 우파도 안배하는 내각을 구성했지만 그보다 한 술 더 떠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로 내각을 채우다시피 했고, 무엇보다도 전술했듯이 제헌의회의 제헌 헌법이 2022년 7월에 통과되면 어차피 선거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는지라 국내외 지지자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1]
멕시코,
콜롬비아,
칠레,
과테말라
[2]
에콰도르,
볼리비아
[3]
사실 트럼프 자신의 관심이 없는 분야는 철저히 외면했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우파 세력에 대한 지원이 끊겼다.
[4]
BRICS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두문자어로 기존 서구와 일본을 대신해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지 중 하나로 급부상한
이머징 마켓을 가리킨다.
[5]
여담으로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코로나 19가 심각해진 2020년 5월부로 자신이 추방했던 쿠바 의사들을 다시 브라질 의료 현장에 투입하면서 조롱을 듣기도 했다.
#
[6]
2023년까지 멕시코는 최소 50개국과 FTA를 체결했다.
[7]
2위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와 0.56% 차이로 매우 아슬아슬하게 승리했다. 그래서 오브라도르는 한동안 선거 결과에 불복하였다.
[8]
마약과의 전쟁은 범죄조직과의 전쟁이라는 특성상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의 기준을 잡는 것부터 어렵다.
[9]
사망자가 최소 22만 명으로 악명높은
더러운 전쟁의 거의 3배나 된다. 또한 난민은 400~500만명이다.
[10]
다만 미국 정부 자체는 2000년부터 이른바 콜롬비아 계획(Plan Colombia)을 추진하여 무장세력 소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콜롬비아산 마약이 자국을 난장판으로 만드는데 미국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문제는 미국 정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미국 자체가 세계 최대 마약 시장이다보니 끊임없이 수요가 창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의 토벌전으로 마약 카르텔도 거대조직들은 와해되고 그 자리를 추적이 어려운 군소조직들이 대체하는 식으로 "진화"하는 양상까지 보인다. 덤으로 원래 콜롬비아는 마약 생산국일뿐 소비국은 아니었지만 2010년부터는 국내 소비량도 증가하고 있다.
#
[11]
1,306만 6,047명의 콜롬비아 국민 중 637만 7,487명(49.79%)이 찬성에, 643만 1,376명(50.21%)이 반대에 투표했다. 투표율도 37.44%로 매우 낮았다.
[12]
석유 또한 1948년 설립된 석유공사인 에코페트롤(Ecopetrol)이 독점했다.
[13]
모노 호호이는
콜사인이다. 본명은 빅토르 훌리오 수아레스 로하스(Víctor Julio Suárez Rojas).
[14]
우리베의 퇴임일인 8월 7일로부터 불과 6주 후의 일이므로 사실상 우리베의 성과라고 봐도 무방하다.
[15]
알베르토 키르치네르 정부에서 프랑스의 총리에 해당하는 수석장관(Jefe de Gabinete de Ministros)으로써 키르치네르의 정치적 동반자로 충실히 일했다.
[16]
애초에 ALBA의 맹주인 베네수엘라가 중남미의 빅 4보다 체급이 떨어지는 마당에 자기를 중심으로 뭉치라고 요구하면 먹힐리가 없다.
[17]
2018년 초 베네수엘라 정부가 인플레이션 집계를 포기했으므로 다른 기관의 추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 4월까지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은 5,379만 8,500%에 달했고, IMF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 말까지 1,000만%에 달했다. 현재
베네수엘라 볼리바르는 화폐가 아니라 공예품 재료로 사용되어서 관광객들에게 팔리고 있다.
[18]
베네수엘라는 단순히 석유의 비중이 크다고 설명할게 아니라, 석유가 없으면 국가가 붕괴하는 석유국가(Petrostate)이다.
[19]
ALBA는 2024년 지금까지 정기+비정기 합쳐 총 32회의 정상회담을 개최했는데 2010년까지는 매년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베네수엘라의 위기가 심화된 2011년부터 회담을 개최하는 터울이 길어졌고 아예 개최를 하지 않은 해도 생겼다. 온두라스는 2010년, 에콰도르는 2018년에 탈퇴했다. 볼리비아는 2019년 탈퇴했다가 아르세 대통령 당선 후 복귀했다.
[20]
그리고 이 둘 다 일반화가 안 되는 특이 사례인데 남아공은 인종차별 때문에 보이콧을 받은 거지 반공 진영에서는 암묵적으로 추인받았고 세르비아는 전신 유고슬라비아 시절 때도 서방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즉 인권 탄압이나 독재 운운하지만 제재 국가의 절대 다수가 반미 정권임을 감안하면 경제 제재로는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추동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도리어 제재는 경제적 살인이라는 말(고 램지 클라크 전 미국 국무장관)처럼 해당국 국민의 반감만 불러일으킬 뿐.
[21]
우고 차베스의 집권 시절 차베스의 독재 및 장기집권 낌새가 보이자 반대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은 주로 대학생이나 고학력 전문직 직종 종사자들이었는데,
#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가 본격화된 2016년 전후하여 이들 상당수가 콜롬비아나 브라질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 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 대학생들이나 고학력 화이트 컬러 직종 계급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22]
물론 북한이나 시리아의 독재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등 어느 정도 선은 지켰다.
[23]
1950년부터 2021년까지 대통령이 18번 교체되었는데 쿠데타로 4번 퇴진했고 탄핵 또는 사임으로 퇴진한게 또 4번이다.
[24]
칠레 지하철 요금은 인상한 요금 기준으로 830페소(1370원)으로 한국과 비슷하지만 국민소득은 한국의 절반이고 실제 노동자들의 소득은 1/4 수준으로 낮아서 엄청나게 비싸다.
[25]
개헌과 제헌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기존 체제 내에서 현행 헌법을 수정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국민 주권에 기반하여 아예 제헌의회에 대한 국민 신임으로 헌법을 원점에서부터 재작성함으로서 제헌 이전의 기존 체제는 원천적으로 초기화 시켜버리는 것. 즉 사실상 제2의 건국이다. 대외적으로나 기존 국가 그대로 간주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