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05-27 11:37:00

더미:201805271136

이름 설민석
출생 1970년 10월 10일[1]
가족 배우자, 아버지 : 설송웅
학력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학 석사 석사학위 논문
십이지 개띠
별자리 천칭자리
종교 개신교
소속 단꿈교육(前 태건에듀) (대표)
이투스 (한국사 강사)
링크 단꿈공무원 홈페이지
단꿈자격증 홈페이지
단꿈교육 유튜브 채널

1. 개요2. 강의
2.1. 구성2.2. 강의력2.3. CG 삽입
3. 저서4. 비판5. 논란
5.1. 2007학년도 모평 사건5.2. 사전 알바 동원
6. 기타

1. 개요

파일:attachment/taegun.jpg
2005년경의 프로필 사진.
전국에 계신 수험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신뢰의 이름 태건 설민석입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승리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국민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한국사 강사 설민석입니다.

이투스 한국사 영역 대표강사이자 단꿈교육의 대표. 많은 이들이 혼동하지만, '잘 가르치는 강사'[2]와 '전문 사학자'는 다른 영역이다.[3]

호는 태건(太建). 1970년 생으로 본관은 경주 설씨. 설씨 자체도 나름 희성이지만 순창 설(薛)씨와 경주 설(偰)씨 이 2가지가 있는데 이 중 후자이며 전국에 약 3,500명밖에 안 되는 희귀 성씨이다. 경주 설씨는 위구르 출신 중앙아시아인 설손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고려에 귀순하면서 시초가 됐고, 그 아들 설장수는 고려 말부터 조선 정종 초기까지 문관으로서 벼슬을 지냈다.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 교육학 석사)을 졸업했다.[4] 태건(太建)이라는 를 사용한다. 본인의 호를 딴 태건에듀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7년 7월이 되어서 단꿈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이트를 확장시키게 된다. 강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뮤지컬 명성황후 덕분이었다고. 뮤지컬을 보고 나서 감명을 받아 국사 공부를 시작하였고, 여러 준비 끝에 학원에 입성하게 되었다.[5] 1995년에 중학생 보습학원에서 사회를 가르쳤다. 처음에는 설민석 사회탐구라는 이름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인터넷 강의에 뛰어든 초창기에는 윤리 한국지리도 가르쳐서 통합 사회탐구 강사였다. 그러나 7차 교육과정 이후 한국사에만 전념하고 있다. "전국에 계신 수험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신뢰의 이름 태건 설민석입니다."[6]로 강의를 시작한다.[7][8]

2. 강의

2016년 11월 22일, 2018년도 대비 필수 한국사 커리큘럼에 해당되는 강의들을 아무런 제약 없이 모두에게 무료로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공지사항에 따르면 개념완성뿐만 아니라 문제풀이, 파이널까지 전부 제공될 예정이다.

2.1. 구성

대체로 막 공부를 시작하거나 흥미가 없는 학생이 들으면 좋고, 중상위권에게도 평이 좋다. 다른 강사들에 비해 세부사항을 암기하는 노하우들을 자주 알려주는 편. 밑에서도 볼 수 있듯이 ""라든가(…).

수업을 위해 직접 해당 지역으로 가서 보충영상을 찍는다. 고려 청자를 테마로 도자기 제작 영상을 찍기도 했고 역사적 테마를 정해 백두산, 독도, 제주도 강화도를 다녀와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해외동포 자녀들에게 한국사를 알리는 재능 기부활동도 하고 있다. 단꿈교육이나 유튜브, 이투스 홈페이지에 가면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장방문 촬영은 황현필 역시 벤치마킹 했으며, 설민석과 항상 엮이는 강민성 역시 이에 영향을 받아 연말에 직접 현장 답사를 나가 응원영상을 찍어온다.

2.2. 강의력

대체로 재미있고 시사성있는 강의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 시사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객관성을 포기한 점은 비판받는다.[9] 아래 비판 문단 참조.

수업 시간에 노래도 하기도 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그려주는 역사인물 캐릭터 그림들을 제법 귀엽게 그려낸다.[10] 현대사 파트의 역대 대통령 성대모사는 빙의 수준이다.[11][12] 아무래도 연극영화과 출신이라 그런지 역사 수업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점에서 타 강사들과 차별성을 보인다. 이러한 연기라든가 뒤에 나올 CG삽입, 방송 출연을 비롯한 영화 해설 등의 미디어 활용을 가미하여 본업과 시너지를 내는 모습이다.

강민성처럼 흐름에 중점을 둔다. 원래 설민석의 수업 방식은 분명히 암기에 중점을 뒀었다. 이 시기 수능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흐름의 강민성, 암기의 설민석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이 수업 방식의 차이로 인해 설민석과 강민성 간의 비방도 활발해서 강민성이 이투스를 떠나는 시점까지 서로 디스했었다. 당시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 사이에서도 수업 방식에 대한 토론이 벌어져 설민석과 강민성이 직접 공지를 올려서 수강생들에게 자중하고 학업에 매진하라고 했을 정도로 설민석과 강민성의 수업 방식은 상반됐었다. 지금와서는 직접적으로 강민성을 언급하면서 디스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자기와 상반된 수업 스타일에 대한 디스는 한다. 이투스 사탐 과목 강사들끼리 모여서 좌담을 하는 동영상인데 여기서 설민석의 암기에 기반한 수업 방침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다가 수능 사회(역사과) 과목 중 기존의 국사와 한국근현대사가 통폐합된 시기에 맞물려 이때부터 암기를 동반한 흐름의 방식으로 수업 스타일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주요 강의들이 수능이나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는 극단적인 암기 무용론을 주장하지 않지만 근현대사 파트의 경우 주요 사건의 연도 암기를 강조하기는 한다.

2.3. CG 삽입

인강에 CG를 자주 동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해설 강좌나 독도 관련 영상은 배경으로 CG를 이용했다. 이외에도 강의에 깨알같은 CG가 들어있다.
신미양요는~ 미국과의 전쟁으로서~ 광성~진에서 어재연이 싸웠는데요
광어로이드까지 생겼다!

영화 암살의 해설 강의에서는 신흥무관학교의 모습을 3D로 재현하여 산자락을 휘어 감는 18개의 동으로 구성된 교실들을 보여주는데[13], 이것을 모두 태건 연구소에서 제작했다고 한다. 산 전체의 전경부터 교실 내부의 모습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했는데, 현장답습을 통한 스케치 단계부터 고증을 제대로 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해당 영상


3. 저서

대중적 인기 및 본인의 해설영상 등을 바탕으로 책을 집필했다.

*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2016, 세계사)
* 버림받은 왕자, 사도 (2015, 휴먼큐브)
* 설민석의 첫 출발 한국사 (2015, 휴먼큐브)
* 한 권에 잡히는 한국사 (2015, 진학사)
* 전쟁의 신, 이순신 (기적의 승리, 명량) (2014, 휴먼큐브)
* 역적의 아들, 정조 (2014, 휴먼큐브)
* 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 (2014, 휴먼큐브)

특히 <조선왕조실록>(2016, 세계사)은 6개 온오프라인 서점 1위 역사 서적으로는 그랜드슬램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역사 분야 도서가 종합 1위에 오른 것은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 이후 처음이다.

4.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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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무사, 유사 역사교사
  • 강의 도중에 객관적이지 못하며 자신만의 주관적인 감정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14] 또한 실제 역사에 어긋나거나 지나치게 단순화 시키는 경우가 많아 보기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다보니 서술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검증이나 고증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로 그 부분을 넘어가 버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니면 후술하듯 인기에 비해 지식이 얕거나.
  • 한일 역사에 대해 일본 한국을 시기 질투해서 그렇다라고 보았다. 또한 일본 자민당을 보고 일본 우경화에 국민들이 침묵하는 이유가 일본 국민들이 전쟁을 그리워해서 그렇다는 주장을 했다.[15][16]
  • 장희빈과 경종의 거세 사건에 대해 어쩌다 어른 강연에서 실제 역사인 것처럼 말했지만, 이건 야사의 내용이다.[17][18]
  • " 이방원 제1차 왕자의 난에서 40명으로 성공한 난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 역시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이 되지 않는 내용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기록이야 그렇지만 실제론 왜곡이 있을 것이라 보는 게 중론으로 박시백도 비전공자지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이를 두고 나라 꼴이 우습게 되어 버렸다고 지적한다.
  • 2016년 6월 방영된 어쩌다 어른에서 김성일이 민본이라는 조선왕조의 초심을 잃은, 당파싸움 때문에 서인이 ' 일본이 쳐들어온다!!'고 하니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 위정자였다고 하는 등의 내용을 설명했는데 실제로 김성일은 전혀 민본을 잊은 위정자가 아니다. 김성일 항목 참조. 이 때의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1년 뒤인 2017년 7월 13일 방송에서는 다시 김성일을 언급했는데, 전쟁이 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가 실제 전쟁이 난 탓에 많은 비판과 오해가 있지만 실은 민심의 동요를 우려했기 때문이었다는 것, 전쟁 중에 의병장으로 활동한 것 등을 소개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어쩌다 어른에서 " 미국인들이 부럽지 않다. 미국은 영웅이 없어서 상상 속 영웅을 만들어 찬양한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 그러나 이는 크게 잘못된 발언이다. 미국에도 그들만의 영웅이 있고 그들을 기리고 추모하는 행사도 많이 열린다. 가령 조지 워싱턴이라든가 존 케네디 대통령이라든가 인디언이나 성소수자의 영웅인 성난 말, 하버 밀크등이 있는 데다, 당장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터 킹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때도 진주만 공습 이후에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전장에 나가서 싸웠고, 6.25 전쟁에서 한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의 병사들이 가장 많이 죽었는 지를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
  • 무한도전에서 치하포 사건 김구 일본의 군관을 죽였다는 설로 주장을 했다. 이 설은 김구의 백범일지에서만 저술되어 있는 주장이라 교차 검증이 되질 않아서 사학계에서는 김구가 군관이 아닌 단순한 민간인을 죽였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 예전 강의에서 민족대표 33인 3.1 운동 당시 행적을 저속한 말로 묘사한 것과 민족대표 33인의 대다수가 1920년대 변절했다는 잘못된 강의 내용으로 인해 2017년 3월에 논란이 되었다. 민족대표 33인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들 중 단 3명 만이 실제로 변절했다. 그러나 설민석의 대중성에 속아넘어간 네티즌 다수는 설민석의 주장이 맞다고 여기며 민족대표 33인을 욕하고 있다. 링크 링크2
  • 민족 대표 33인 비하에 대해 지난 2017년 3월 지나친 표현에 대해선 트위터 상에서 사과 한다면서도 학계의 비판적인 견해를 수용해서 한것이라 했는데 어느 학자의 어느 출처인지 밝히진 않았다. # 유족들이 4월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 4월 17일 17일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 전달한 공식문서를 통해 사과했고 재차 5월초 언론을 통해 공개하였다. # 논란이 되는 룸살롱, 마담, 변절, 민족대표 33인 역할등 발언에서 학계의 비판(?)적인 시각은 끝내 제시하지 못했고, 기존 발언을 전부 철회하고 사과했다. 문제는 설민석의 팬들이 2017년 3월에는 설민석이 맞다며 유족들과 기존 역사학계 의견을 이유 없이 폄훼했으나 이번 공개사과에도 불구하고 설민석 팬들은 첫번째 사과라고 하기 부족한 유감정도의 표명만 강압적으로 받아낸 줄 알고 기존 견해를 철회한 사실은 거의 모른다.
  • 2016년 7월 20일 출간한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이란 책에선 조선왕조실록 기사의 특정부분만 빼서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짓도 보였다. 설민석은 본인의 책에서 조선왕조실록 중 정조실록 1권, 정조 즉위년 3월 10일 신사 4번째 기사를 인용하였는데 본인 입맞에 맞는 일부분만 인용하여 원전문이 전하려는 뜻을 완벽히 뒤틀어 놓고 있다. 아래는 책에서 설민석이 제시한 부분이다.

본래는 이렇다.
"아! 과인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아들이다. 선대왕께서 종통(宗統)의 중요함을 위하여 나에게 효장세자(孝章世子)를 이어받도록 명하셨거니와, 아! 전일에 선대왕께 올린 글에서 ‘근본을 둘로 하지 않는 것[不貳本]’에 관한 나의 뜻을 크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예(禮)는 비록 엄격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나, 인정도 또한 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향사(饗祀)하는 절차는 마땅히 대부(大夫)로서 제사하는 예법에 따라야 하고, 태묘(太廟)에서와 같이 할 수는 없다. 혜경궁(惠慶宮)께도 또한 마땅히 경외(京外)에서 공물을 바치는 의절이 있어야 하나 대비(大妃)와 동등하게 할 수는 없으니, 유사(有司)로 하여금 대신들과 의논해서 절목을 강정(講定)하여 아뢰도록 하라. 이미 이런 분부를 내리고 나서 괴귀(怪鬼)와 같은 불령한 무리들이 이를 빙자하여 추숭(追崇)하자는 의논을 한다면 선대왕께서 유언하신 분부가 있으니, 마땅히 형률로써 논죄하고 선왕의 영령(英靈)께도 고하겠다."

윗 기사를 요약하자면, 본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긴하지만 선대왕( 영조)의 명령으로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하였으니 나는 효장세자의 아들이다. 따라서 내 어머니 혜경궁 홍씨도 대비의 예를 받을 수 없으며 만일 사도세자를 추숭하고자 한다면 형벌로 그들을 논죄할 것이다. 정도가 된다. 즉, 대신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영조-사도세자- 정조의 계통이 아니라 영조-효장세자-정조라는 계통이 옳음을 명시한 것이데, 설민석은 전문의 뜻은 알아보지도 않고 기사 하나만 딸랑 던져주면서 마치 공식적으로 정조가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인증하는 것처럼 책에 언급해 놓아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이덕일이 먼저 노론 음모론을 부각하며 퍼뜨린 오류지만 설민석 역시 명색이 '조선왕조실록'이란 타이틀의 책을 집필하면서 해당 기사를 직접 확인해야 하는데, 책에는 왜곡된 내용을 적었다는 건 확인하지 않았거나, 확인하고도 왜곡했다는 것이니 이덕일과는 상관없이 어느 쪽이든 설민석의 문제는 맞다.[19][20]

그 외에도 강의를 보면 역사에 대한 전문성이나 깊이가 떨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객관성은 역사학을 전공한 다른 강사들에게 밀리는 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역사학 전공자 및 역덕후들에게는 깊이 있는 지식도 없으면서 말빨로 장사한다는, 소위 역사 장사꾼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강의 내용 6차 교육과정 수준에 멈춰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본인도 최근에 이러한 비판을 인식했는 지 강의 중에 자기는 방송쟁이가 절대 아니며 99% 수험생을 위해 활동한다고 어필하고 있다.

그가 위에서 서술한 어쩌다 어른 프로에서 강연했을 때 ' 역사로 어른을 위로하는 특급 강사 설민석이 왔다!!!' 라는 자막이 나온 것이 그의 행보와 맞물려 딱 맞는 수준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여기서 지적하는 사항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가르치는 사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설민석에게 문제가 되는 건 당연하지만 고객인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점수만 잘 나오면 그만이니까라는 심리로 용인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설민석은 단순한 시험 강사가 아닌 대중을 상대로 한 역사 강사로 방송 등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고, 그만큼 역사 교양을 쌓으려는 사람들에게 매우 잘못된 지식을 전파할 우려가 크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얕은 설민석의 지식이 전공자나 심지어 아마추어 역사 애호가들 눈에도 명확히 보이는데, 자칭 '한국사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활동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학문 분야에서 전문가 소리는 아무에게나 붙이는 게 아니다.[21]

설민석의 강의는 내용을 어렵게 하지 않고 재밌게 하여 대중적인 인기는 끌었다는 세일즈 포인트가 있지만 깊게 파고 들면 '객관성보단 일단 관심을 끄는 것이 우선이 되는 상업적 역사 강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한국사 강의만 해도 부족한 점이 드러나는 설민석은 강의에서 부연설명을 위해 세계사나 국제 정세를 다룰 때도 있는데, 내용 전개를 본인의 지식 범주를 넘어서서 너무 넓게 벌린 나머지 수업 내용이 사실보다는 근거가 확인이 안 된 자신의 주관적 개인 견해로 채워질 때도 있다. 그의 주관적인 견해가 0부터 100까지 전부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이러한 단점들이 하나씩 쌓여가다보니 그의 수업 퀄리티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고, 설민석이라는 한국사 강사가 많은 수험생을 가르치는 강사인만큼 이는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애초에 설민석이 비전공자였고[22][23] 그의 사교육 강사 커리어가 한국사가 아닌 통합 사회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5. 논란

5.1. 2007학년도 모평 사건

2006년 9월에 시행된 2007학년도 9월 한국근현대사 모의평가에서 잘못된 해설을 했다.

파일:200709kmh.jpg

18번 문제 '(가) 남북 기본 합의서(1991)'와 '(나) 6.15 남북 공동 선언(2000)' 사이에 일어난 남북 관계 변화를 <보기>에서 고르는 문제였다.
여기서 설민석 강사는 모의평가 해설에서 'ㄷ.최초로 이산 가족이 상봉하였다.'라는 보기를 (나)시기 이후로 해설한 것이다.[24]
학생들은 해설이 이상하다고 항의했지만 설민석 강사는 '내 말이 맞다.'라고 대응하여 논란이 됐다.

동료 강민성 강사는 이 잘못된 해설을 강력하게 비판하였고 당장 해설 강의를 내리라고 호통을 쳤다고 전해진다.
이 후 강민성 강사는 온·오프라인 강단을 가리지 않고 '설민석은 강사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수없이 비판을 쏟아냈다.
혹자는 역사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연구도 부족하고 지식과 전문성이 결여되있다고 말한다. [25]

5.2. 사전 알바 동원

'17년 3월, 최진기 강사와 더불어 1타 강사 홍보를 위해 인터넷 댓글 알바를 대거 고용해 자기 홍보를 하고 여론을 조작했다는 혐의로 소송을 당했다.

설민석 강사의 입장

6. 기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기혼이며 아내 및 자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아내의 종교는 개신교며 참고로 설민석 본인도 아버지, 아내와 더불어 개신교 신자다.[26]

최진기의 군대 후임이다.

자기 관리에 있어서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다. 메가스터디 문명 강사의 말을 빌리면 원래는 굉장히 후덕한 체형이었으나 강의를 시작하면서 살을 뺐다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늦은 시간엔 회식 자리에서도 무언가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 집안에 손 벌리기 민망하다는 이유로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 했다고 한다. 막노동부터 세차장, 신문 배달, 우유 배달, 키즈카페 보모, 산타클로스까지(…). 그러다가 학원 강사가 됐다고.

무한도전 공식 역사선생님으로 자주 출연했다. 첫 출연은 결투특집 하하 VS 홍철으로, 하하의 선생님 역할로 출연한 것이 정말 뒤늦게(…) 드러났다. MBC 파업 때문에 방송이 반 년 정도 미뤄졌기 때문. 하하에게 국사와 국가의 수도, 사자성어 등을 가르쳤으며 여기서 온갖 드립으로 예능감을 제대로 표출했다. 코트에 드리부아르 모나~코! 사실 무한도전의 출연으로 실제 방송될 날짜였던 2월 초에 방송이 되었다면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지라 자신의 수강생을 모을 수 있던 절호의 찬스였지만, 실제로 방송된 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 후에 무한도전 TV특강 특집에 2번째로 출연했으며 유재석, 하하, 길의 일일 역사선생님으로 등장하여 변함없는 예능감을 표출했다. 그리고 최근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 특집에 3번째로 출연했다. 그리고 본인의 닮은 꼴인 김태호PD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당황해서 스태프들 뒤로 숨는 김태호PD는 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태건 스페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직접 역사의 현장으로 가서 미니 다큐멘터리를 촬영한다. 2014년 6월 현재 상해임시정부 간도[27], 4.19 혁명이나 5.18 민주화운동 등 총 14편이 있다.

이 외에도 2012년부터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2013 <관상>, 2014 <역린>, <명량>, <국제시장>의 스페셜특강 영상을 맡았고, 2015년에 <암살>과 <사도>, 2016년에는 <인천상륙작전>, <밀정> 특강까지 촬영하면서 역사 영화의 홍보에는 필수요소가 되었다. 2014년 6월 KBS 아침마당 목요특강편 <세상을 바꾸는 남자, 그 남자를 바꾸는 여자>에도 출연하여 주부 시청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2014년 9월엔 KBS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에도 국사강사로 출연했다. 기획재정부의 부탁을 받아 <역사 속 세법 이야기_세법개정안>, <역사 속 예산> 기획특강과 2015년 8월에는 서울특별시, 서울신문과 함께 <쓰레기로 보는 숨겨진 역사>라는 특강까지. 사실상 가장 매체 출연빈도가 높은 국사 강사인 듯.[28]

강의 영상 촬영은 본인이 직접 디렉팅한다고 밝혔다. 카메라에 대고 본인이 원하는 구도와 방향을 잡아주거나 이렇게 하면 재미 없다고 조언하기도 한다고. 영화 해설 강의를 제작할 때도 편집이나 특수효과를 영화사에 도맡지 않고 본인이 직접 관여해 만든다고 말했다. 본인이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보니 프로듀서 기질이 강한 듯하다.

태건에듀라는 개인 인터넷 강의 사이트를 운영하며, 소속 강사는 설민석 본인과 오예진[29], 최진기(…)이다. 공무원 한국사와 한국사 능력 검정을 주로 강의한다. 2017년 7월에는 태건에듀를 단꿈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명을 변경해 회사를 확장하여 공무원 국어 정원상 교수, 공무원 영어 김태은 교수를 영입해 공무원 필수과목팀을 꾸려 공무원 사이트를 새롭게 개편하고[30] 한능검과 관광통역안내사를 다루는 자격증 사이트와 교양한국사나 인문 상식 등을 다루는 인문교양 사이트(추후 예정) 등 세개의 사이트로 분리하였다.

저서로는 <무도한국사특강>, <역적의 아들 정조>, <전쟁의 신, 이순신>, <누드 문제집 2014>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등이 있다. 그중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근 1달이 넘도록 여러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에 기분 업 된 설민석은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태건에듀의 페이스북에서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을 무료로 나눠주는 이벤트도 진행한 바 있다.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갑자기 "선생님, 박영효는 친일파인가요?"라고 물어보길래 느낌이 이상해서 왜 그러냐고 되물었는데[31] 알고 보니 박영효의 고손녀였다고 한다(…). 학생이 상처를 받을까봐 별말 없이 학습상담을 해줬다고.

내비게이션을 쓴 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았고 차량으로 이동할 땐 다른 사람에게 직접 길을 물어본다고 한다. 애플리케이션 사용법이나 QR 코드의 개념도 익숙하지 않을 정도로 기계에 약한 것 같다(…).

폐소공포증이 있다고 하며 추위를 상당히 많이 탄다고도 한다. (실제로 강의를 보면 옷을 매우 두껍게 입고 나온다.)

2012년 10월 13일 KBS2 예능 프로그램 청춘불패 시즌2에 출연했으며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디폴트 영어 자막은 덤

2015년 SBS 대하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추석특집 방송에 출연하여 고려 말기에 관련한 강의를 했다.

2015년 10월 11일 JTBC 프로그램 김제동의 톡투유에 깜짝 게스트로 출연했다.

2015년 10월 28일 SBS 프로그램 영재 발굴단에 출연했다.

2016년 1월 2일 KBS의 오늘 미래를 만나다 "2016년 통일을 말하다 1부"를 진행했다.

2016년 1월 7일과 14일 ' 어쩌다 어른'에 출연하여 초심(初心)을 주제로 한국사 강의를 했다.[32]이 몇 달 후 최진기와 함께 고정이 됐다.

2016년 4월 8일 SBS의 선거방송 2016 국민의 선택 프롤로그에 출연해서 선거와 관련해서 강의를 했다. 덤으로 국민의 선택 본방송에서도 등장. 1부에 출연해서 프롤로그와 같은 내용의 강의를 진행했다. TCC로 만들었으면

2016년 4월 16일 KBS 예능 파일럿 '배틀트립'에 출연했다. 본인이 윤두준의 팬임을 밝히고 여행 파트너로 지목했다. 덕계?

2016년 6월 6일 제61회 현충일 추념식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17년 7월 태건에듀를 단꿈교육으로 바꿔서 사업을 확장한다. [33] (공무원, 자격증, 인문교양)

강아지를 좋아하는 애견인이다. 말티즈를 키운다고 한다. 말티즈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종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주관주의

본인의 사생활에 대해선 거의 언급을 하지않는다. 대신 본인의 과거 일화와 일적으로 만난 연예인이나 고위공직자 또는 자신이 기르는 강아지 얘기를 자주 한다.

연극영화과 출신답게 연기나 노래도 잘 하는 것으로 보인다.

강의 중 인천상륙작전을 찬양하는 것을 "이게 뭐하는 거에요… 동상세우고…"라고 비판했지만 영화 <인천상륙작전> 홍보영상 역시 설민석 강사가 맡았다(...).

강의에서 현실 정치에 대한 언급을 별로 안하는 편이지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일 국사 강의 시간에 극단적인 비유를 들어서 탄핵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34]

최근 한국사를 다룬 영화 또는 드라마에 특별영상이나 본인이 제작한 강의영상으로 시대관을 설명해주는 것이 하나의 마케팅 트렌드가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 전에 영상을 보면 작품에 몰입하기 쉽고 작품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해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평은 매우 좋은 편. 수능이나 공무원 한국사가 아닌 교양으로서의 한국사 부문에서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교양 한국사를 주제로 한 책이 베스트 셀러에도 올랐다. 연극영화과 출신이라 마치 연극을 하듯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개그콘서트의 前 코너 1대 1에서 이창호가 그를 패러디한 썰민석 역으로 출연했다.


[1] 2018년 현재 만 47세로, 관리를 매우 잘한 편이다. [2] 사실 잘 가르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수업 내용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향된 개인적 시각으로 인해 수업 디테일에서 꾸준히 비판이 있어왔기 때문에 한국사를 올바르게 잘 가르치는 교육자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지 한국사를 재밌는 표현들로 흥미롭게 가르치는 강사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좋다. [3] 교육자(교사와 강사)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설민석의 오류들은 다른 교육자들도 겹치는 영역이 많고, 다른 교육자들 역시 '교육' 전문가이지 '역사' 그 자체에서 전문가들은 아니다. 즉 고등학교 한국사 교사와 강사들에게 사학과 박사 수준의 지식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고, 특히 역사라는 학문의 특성상 일개 역덕후가 특정 분야에서만큼은 교수보다 더 잘아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설민석의 경우 단지 잘 가르치는 강사를 넘어, '한국사 교육'이 아닌 '한국사'의 전문가로 포장이되어 엄청난 비판을 받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본인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4] 석사논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5] 학원 강사는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6] 요즘은 "전국에 계신 이투스 가족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로 바뀌었다. [7] 위 인삿말은 인터넷 강의용 인사이고, 영화 해설 강의 등 국민을 대상으로 올리는 영상에서는 "우리 역사를 사랑하시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한국사 전문가 설민석입니다."로 시작한다. [8] 한국사 전문가라는 호칭은 물론 자칭이다. '전문가'라는 칭호는 역사 뿐만 아니라 결코 아무한테나 함부로 붙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특히나 역사라는 학문을 교육시키는 것만 전공한 설민석이, 역사학에 평생을 바치는 역사학자들을 제치고 이런 호칭을 스스로 붙이는 것은 후안무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아래 비판 항목을 봐도 설민석의 역사 인식과 역사 이해력은 여러가지로 문제점이 상당히 많다. [9] 시사성이란 그 당시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회적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시대적 성격 및 사회적 성격을 의미한다. 물론 이 성격이라는 것은 단순한 사실관계만으로 이해하기엔 다소 복잡한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주관적인 해석을 인용해야 한다는 것은 다소 이해가 되지만 이것이 시사성을 위해 객관성을 포기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10] 과거에 미술을 전문적으로 하려 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꿈을 포기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11] 과거 '설민석 빙의'가 연관 검색어였다고 한다. [12] 현대사 강의를 할 때 상당히 디테일한 부분까지 알려주는 데, 본인이 점점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13] 4분부터. [14] 정확히 말하면 역사는 주관성을 배척하는 학문이 아니다. 괜히 조선왕조실록에 사관의 논평이 꼬박꼬박 들어간게 아니다. 역사학이 순수 100%의 객관으로만 되어야 한다는건, 오히려 전문 사학에서 부정하는 논리이다. 그리고 대학 전공 수준의 전문적으로 학문적인 접근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교육은 정치성이나 어떤 의도성을 가지기 쉽다. 전국민이 역덕이나 연구성과로 먹고 사는 연구자가 아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실관계 자체를 왜곡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는, 실록에 있는 사관의 논평처럼 역사를 더 풍성하게 하는 사례들도 분명히 있다. 문제는 사실관계 자체가 '의도적으로' '지속적으로' 왜곡되는 경우인데, 이게 바로 흔히 말하는 역사왜곡들이다. 따라서 주관적 역사해석까지는 용인될 수 있으나, 사실관계가 지속적으로 틀려나간다면 반성이 필요하다. [15] 일본의 우경화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2가지 이유로는 1) 일본 경제의 쇠락화, 2) 한국과 중국의 대국화에 따른 부상 등이다. 실제로 일본의 대기업 상당수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심지어 일본의 자랑이었던 가전회사들은 한국의 삼성전자 등에 발려버리는 치욕까지 당했고 경제사정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70-80년대 후반, 그리고 90년대까지 세계를 재패하던 자신들의 위세가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본인들의 위기감을 부채질했으며 특히 중국의 부상은 일본인의 경계심에 불을 지폈다. [16] 또한 일본의 우경화는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의 "피벗 투 아시아" 즉, 아시아 회귀 정책으로 인해 "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대리인"으로 일본을 선택, 적극적 군사 역할을 주문했기 때문이었던 국제정치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으나 이부분은 정책의 부분이지 일본국민들이 한국에대한 시기를 오랬동안 해왔던 사실과는 별개이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집권당이었던 일본 민주당의 미흡한 대처와 장기불황의 책임문제로 진보 야당 세력이 일본 국민들에게서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장기불황의 대부분의 기간은 자민당이 차지하고있다. 실제로 일본 최대 야당인 민진당 총재 렌호는 원전 제로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천명했는데, 일본 국민들과 자민당에서 볼 때, 지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가동을 전면 중지해 발전용 화석연료 수입으로만 3년간 270조 원이나 썼다. 이 엄청난 비용을 견디지 못해 안전이 검증된 원전에 한해 제한적인 가동을 실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성이 결여된 대책없는 원전제로 정책으로 자민당과 일본 국민, 심지어 같은 당 소속이자 전 총리였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마저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능한 순둥이보단 능력 있는 문제아가 낫다 [17] 저서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야사라고 분명히 적긴 했다. [18] 야사의 내용이라고 강연에서는 자막으로 처리했다. [19] 그나마 설민석은 정조 독살설을 부정하는 등 이덕일식 노론 음모론에 경도되진 않았다. [20] 역사학자라면 당연한 것이지만 자료의 한 부분만 보고서 이렇다 저렇다는 판단을 내려서는 절대로 안되는 일이다. 문락의 전체, 그리고 이를 보충할 수 있는 여러가지 자료를 참고하여 이때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21]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기위해선 최소한 해당분야에 대한 소양지식은 기본이고 이에 대한 연구활동, 저술활동과 학술 세미나 참여등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소견을 넓혀 나가야 하며 아울러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학설에 대해 여러 다른 정식자료를 통해 검증해 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한국사 같은 경우는 논란이 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데다가 특히 일제감정기를 통해 상당부분 왜곡된 것 역시 상당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교정도 시급한 실정이라[35] 일반인들에게 강연을 하는 한국사 전문가라고 불릴만한 위치에 있기에는 수준이 얕다고 볼 수 있다. [22] 상술한 대로 학사 학위는 연극영화학이지만, 2010년에 역사교육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엄밀히 따지면 현재는 역사교육학 전공자라고 할 수 있다. [23] 그러나 역사교육으로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과연 역사교육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이 또한 의문이다. 당장 그는 역사'교육' 전문가라고 말하려면 기본으로 가지고 있을 역사 교사자격증조차 없다. 교육대학원 나왔으니 교사자격증 있는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법제상으로 학부에서 관련 전공으로 학위를 받은 사람이 아니면 기본적으로 교사자격증을 받을 수 없고, 단지 석사학위만 취득이 가능하다.(현직 교사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는데 설민석은 당연히 해당사항 없다) 더구나 교육대학원은 기존 교사들을 재교육하며, 교직이수를 못한 전공자를 교사로 양성하는 것이 설립 목적이지, 학자의 양성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 2가지가 아닌 일반 비전공자가 듣기에는 교육과정이나 교과 내용이 많이 부실하다. [24] 참고로 최초의 이산 가족 상봉은 1985년 9월 서울과 평양에서 이루어졌다. [25] 말빨로 강사가 된 성공적인 케이스일듯. [26] 고려 불교를 언급하다가 본인이 개신교 신자임을 언급했다. [27] 다만 이 부분에 있어선 왜곡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강의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자세한 건 간도 항목 참조. [28] 영화 특강으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졌다고 한다. 본인이 말하기를, 자신의 라이벌은 '최태성' 등의 역사 선생님이 아니라 뽀로로 같은 만화 캐릭터라고. [29] 설민석의 제자라고 한다. [30] 현장 강의의 경우, 강남 YBM 학원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31] 정확히는 "왜애~?"라고 능청을 떨었다고 한다(…). [32] 그런데 이 강의 와중에 학봉鶴峯 김성일을 다루면서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인물됨과 왜국(倭國)의 정세를 보고함에, 당파성 때문에 의도적으로 황윤길과 다른 말을 했다.'는 식의 표현을 했다. 김성일 항목에도 나와 있듯이, 이 건에 대한 김성일 나름의 명분과 변명 또한 있는데, 오로지 당파성에 의한 졸렬한 발언인 것으로 독단적으로 결론짓고 소개한 것은 비판점이 된다. [33] 공무원 사이트와 자격증 사이트가 2017년 7월 25일 정식 오픈했고 이후 인문교양 사이트도 오픈예정이라고 한다. [34] 조금 순화해서 표현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이 탄핵 사유로 적절할 경우 역대 대통령들 중에는 사형감도 있다. 그런데 사실 사형감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사형선고를 받은 대통령이 2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