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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현의 주요 수훈 및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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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대상 최우수 남자 연기상[1] | ||||||||||||||||||||||||||||||||||||||||||||||||||
이낙훈 (197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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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현 (1979년) |
→ | ( 한국방송공사와 언론통폐합으로 합병으로 인한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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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1B4AD><colcolor=#FFFFFF> 노주현 盧宙鉉|Noh Joo-hy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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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노운영 (盧運永, Noh Woonyoung) |
출생 | 1946년 8월 19일[2] ([age(1946-08-19)]세) |
경기도 서울시 종로구 필운정[3]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광주 노씨 (光州 盧氏)[4] |
신체 | 174cm, A형 |
가족 | 2남 1녀 중 셋째 |
배우자 최성경(1977년 결혼 ~ 현재) 딸 노승희, 아들 노우석 |
|
학력 |
서울청계국민학교[5] (
졸업) 배재중학교 ( 졸업) 배재고등학교 ( 졸업) 한양대학교 문과대학 ( 연극영화학 / 학사) |
종교 | 개신교 |
데뷔 | 1967년 TBC 5기 공채 탤런트[6] |
수상 |
2005년 KBS 연예대상 베스트 엔터테이너상 1989년 K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 연기상 1979년 TBC 최우수 남자 연기상 1971년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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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2. 생애
1946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필운동에서 3남매 중 막내이자 차남으로 태어났다. 6.25 전쟁 때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홀어머니[7] 아래에서 자랐다. 그의 형은 LG전자 부회장을 지냈던 노용악[8], 누나는 화가인 노숙자 씨.[9]3. 활동
1967년 동양방송 공채탤런트로 연기경력을 시작해서 곧바로 주목을 받았으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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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극장에 나온 노주현의 모습 (맨 왼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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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 중장년 이후 현재 모습 |
그리고 40대가 된 이후 198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 이전에는 주로 높으신 분으로 출연하여 점잖은 이미지를 보여 주었다. 대표적으로 김수현이 집필한 사랑과 야망의 장홍조 역 등. 1990년대 초 드라마인 제3공화국에서는 장도영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높으신 분 전용 배우의 대표격인지라 도저히 코믹 연기하고는 접점이 없어보였지만 이후 미국 이민과 복귀를 거치고 돌아온 2000년 12월 김병욱 PD의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주인공으로 출연해 코믹의 극치를 보여주면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다. 아니, 이미지 변신을 뛰어넘어 당시 노주현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컬처쇼크를 줬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한국판 호머 심슨이라고 불릴 정도로 단순무식한 아버지를 기가 막히게 잘 살려냈으며 그 덕분에 노주현을 잘 몰랐거나 중후한 이미지로만 알아서 그다지 친근감을 느끼지 못했던 당시의 어린이 청소년과 젊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엄청나게 높아졌다.[14]
2009년 여자 아이돌 스타들과 함께 농촌 생활을 체험하는 이야기를 다룬 예능 프로그램인 청춘불패에 고정 출연했다. 예능 프로그램으론 최초. 왕년의 청춘스타가 이젠 딸, 조카뻘 아가씨들과 시골에서 재미있게 지낸다는 컨셉 때문에 중년층 이상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4. 주요 출연작
4.1. 드라마/시트콤
- 결혼작사 이혼작곡 III - 신기림
- 결혼작사 이혼작곡 II - 신기림
- 결혼작사 이혼작곡 - 신기림
- 내 이름은 트로트
- 그래, 그런거야 - 유민호
- 오만과 편견 - 이종곤
- 압구정 백야 - 맹규식
- 모두 다 김치 - 박재한
- 왕가네 식구들 - 고지식
- 감자별 2013QR3 - 노수동
- 수상한 가족 - 민대식
- 폼나게 살거야 - 조용팔
- 주홍글씨 - 윤정호
- 수상한 삼형제 - 주범인
- 조강지처 클럽 - 최군수
- 춘자네 경사났네 - 이만석
- 그 여자가 무서워 - 백동수
- 거침없이 하이킥 - 서민정 아버지[15]
- 소문난 칠공주 - 공수표
- 그 여름의 태풍 - 한광석
- 장미의 전쟁 - 이기준
- 분이 - 강문수
- 순풍산부인과 - 안마 치료사[16]
- 똑바로 살아라 - 노주현
-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 노주현
- 오남매 - 허정
- 선희 진희 - 최회장
- 황금시대 - 김병익
- 착한남자 - 박정훈
- 유정 - 장동욱
- 행복의 시작 - 민기백
- 제4공화국 - 김용태
- 좋은 남자 좋은 여자 - 민성신
- 일과 사랑 - 이윤호
- 제3공화국 - 장도영[17]
- 남편의 여자 - 정태
- 장미정원 - 한상준
- 옛날의 금잔디 - 윤영호
- 목소리를 낮춰요
- 밥상을 차리는 여자 - 주명
- 꽃피고 새울면 - 최승명
- 구리반지
- 사랑의 굴레 - 박인섭
- 철새 - 장선규
- 13세의 봄 - 성일 부
- 타인
- 사랑과 야망 - 장홍조
- 그대의 초상
- 은빛여울
- 딸이 더 좋아
- 전쟁 6.25 - 정일권 참모총장
- 적도전선
- 불타는 바다 - 검사[18]
- 독립문 - 이준
- 미망인
- 금남의 집
- 전우 - 정화섭[19]
- 청춘행진곡
- 개국 - 조준
- 여자의 강 - 이민규
- 달무리 - 민규
- 물망초
- 꽃가마
- 맥토
- 옥동이 - 김성공
- 인간가족 - 성우
- 꽃바람
- 길
- 옛날 나 어릴적에 - 사위
- 달동네 - 김동혁
- 소망
- 의녀미사
- 대춘향전 - 이몽룡
- 야 곰례야[20] - 김영섭
- 천년호[21]
- 하얀 날개[22] #
- 그리워[23] #
- 시집갈 때까지는[24]
- 언약[25]
- 그건 그려
- 서울야곡[26] # - 김영국
- 허부인 전 - 상구
- 추적 - 수사관
- 무악재 세돌이 - 천돌
- 풍운백년 <젊은 그들> [27]
- 님[28]
- 아빠 #
- 불어라 봄바람 #
- 사슴아가씨
- 형제 - 한동석
- 알뜰부인 덜렁부인
- 너는 약자[29]
- 마부[30]
- 청춘극장 - 백영민
- 꿈은 좋았는데
- 딸[31] - 장 #
- 통곡의 종
- 아씨 - 이봉구
- 아내의 모습
4.2. 영화
-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 무림반점 사장 역
- 잠복근무 : 주인공 천재인( 김선아)의 삼촌이자 상관 천 반장 역
- 작업의 정석
-
까불지마 :
벽돌과 개떡의 빵셔틀임삼복 역 - 긴급조치 19호 : 비서실장 김도철 역
- 나의 아내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주환 역
- 열 일곱살의 쿠데타
- 들개
- 영원한 유산
- 처녀의 성 : 순오 역
- 욕망 : 하일 역
- 서방님 따라서 : 봉구 역
- 미워도 다시 한번 대완결편: 시리즈의 4편격인 완결편에 출연한다. 당시 스타 아역 배우인 김정훈의 성인 역할. 이복 형제 역할은 홍종현, 성인 역을 김종결이 맡았다.
- 말썽난 총각 : 동호 역
- 풋사랑 : 강세준 역
- 아무도 모르게 : 이영 역
- 비운의 왕비 : 대사관 직원 역
4.3. 예능
4.4. 공연
- 지붕위의 바이올린(2008) - 테비에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2015)
- 아트(2022) - 세르주
5. 여담
-
1980년대부터 애견인으로 유명했던
연예인으로,
셰틀랜드 쉽독,
저먼 셰퍼드 등을 매우 아끼고 대회 출전이 가능한 혈통 좋은 개들을 많이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덕분에 1980년대에 방송에 나와 기르던 셰퍼드들을 데려와 온갖 장기자랑을 보여주기도 하고 여러 드라마에서 개들도 나왔다고 인터뷰했다.
- 베스트셀러극장에서 방영한 단편 호러 드라마 개에서 저먼 셰퍼드가 광견병에 걸려 여름날 피서지로 유명한 작은 섬마을을 공포로 몰고 가는데 바로, 광견병에 걸린 명연기를 펼친 이 개가 바로 노주현이 키우던 개였다. 이 드라마는 1984년 8월 26일 납량특선으로 방영해 나중에 주말 오후에 재방영했다. 김원일이 1972년에 현대문학 지에서 쓴 <발병(發病)에서 침묵(沈黙)까지>를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이다. 개주인인 윤교수 역으로 최불암이 나왔으며 마을 보건소장은 전운이 연기했다. 직접 보여주지 않으나, 피서 나오다가 밤중에 텐트 바깥으로 나간 4살 정도 어린 여자아이가 개에게 물려죽는 시체로 슬쩍 보여준다든지 아이들도 물려 광견병에 걸려 침흘리며 발광하다가 죽는다든지 지금으로서는 방영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여럿 나왔다. 동네 개들을 마구 물어죽이거나 피서객들이 데려온 작은 강아지도 피투성이가 되어버리는 장면도 나오고 여친이 이 개에게 물려 혼수상태가 된 탓에 분노한 남친이 개를 잡고자 가져온 작살을 쏘지만 개가 빠르게 피하여 놓치기도 한다. 극중 윤교수는 아끼던 개를 설득하려고 하다가 이 개에게 물려 크게 다치며, 보건소장도 개에게 물려 엄청 다치는데 둘 다 광견병에 걸린 듯한 모습을 슬쩍 보인다. 마지막에는 미친 개로 인하여 광견병에 걸려 외아들을 잃은 마을 파출소장이 총들고 손수 개를 쏴죽인다. 이 호러 드라마에서 명연기를 보여준 저먼 셰퍼드는 독일 유명 셰퍼드 브리더들도 인정했을 정도로 품종적으로 우수한 셰퍼드였다고 한다. 덕분에 꽤 큰 거액에 팔라는 독일인들 제의도 많이 받았지만 천수 누릴때까지 키웠다고 한다.
- 영화의 경우 긴급조치 19호에서 보여준 악랄한 이미지와 까불지마에서 보여준 코믹한 이미지가 전혀 상반되어 있다. 까불지마의 경우는 노주현 정도면 나이가 엄청나게 많은 연예인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같이 호흡을 맞춘 2명의 배우라는 게 하나는 최불암이요 또다른 하나는 오지명인지라 노주현은 완전히 막내로 전락했다.
- 젊을때는 겉모습의 이미지와 달리 약간 욱하면 성격이 과격하고 다혈질적으로 나타나는 부분도 있었다고 한다. 과거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바로, 20대 초중반에 방송국 PD와 언쟁 수준이 아니라 주먹질을 하며 진짜 폭력으로 싸운 적도 있다고 한다. 본인도 뭘로 시비가 붙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자신이 욱해서 꽤 심하게 싸운 기억은 분명히 난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이런점이 부각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묻혔지만 지금같으면 엄청난 물의를 일으켜 연예계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지만 운이 좋아 연예계 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또한 드라마 달동네 이미숙의 MBC 출연 문제로 본인도 하차당하자 사장에게 사과를 받아야겠다며 사장실로 갔다가 TBC PD 출신인 윤혁기 당시 KBS 부사장과 마주쳐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그가 사과를 거부하자 2차로 간 룸살롱에서 주먹다짐을 하여 두 사람 모두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다혈질인 부분이 있다고 스스로 인정했고, 최근들어 이런점이 부각되면서 호불호가 많이 갈려 연예계 활동이 뜸해졌다.
- 대통령 당선 당시 여러 면에서 신세대 정치인으로 불린[32]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예명뿐만 비슷한게 아니라[33] 나이와 본관도 같고, 생년월일마저도 고작 10여일 남짓 차이난다. 그밖에 우연의 일치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후에 집권한 조지 W. 부시, 도널드 트럼프와 1946년생으로 동갑이며 클린턴 전 대통령과는 아예 생년월일이 같다. 비슷한 이름으로 인해 똑바로 살아라 등의 시트콤에선 방영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 성대모사를 하기도 하였다.
- 특히 노주현의 리즈 시절을 상징하는 것은 속옷 전문업체 태창의 '빅맨 CF' 시리즈.[34] 이 CF는 '남성의 상징&로망=노주현, 빅맨' 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며 대박 of 대박을 쳤다. 오죽했으면 당시 각종 유행하던 유머 시리즈에도 '빅맨' 이 등장했을까. 예를 들면 '3代 MAN'에 슈퍼맨, 배트맨, 그리고 빅맨이라든가 말이다.
- 1980년대에 베스트 드레서에 단골로 뽑힐 만큼 출중한 패션 센스를 자랑한다. 본인의 체형과 얼굴에 잘 어울리면서 심플하고 세련된 의상을 잘 골라입는 편, 50대까지는 넥타이 를 동반한 수트를 많이 입었으나, 60대 이후로는 노타이로 다양한 셔츠와 재킷 차림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의외로 노타이의 셔츠 연출이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멋진 모습이다. 오버사이즈의 뿔테 안경 등 본인을 상징하는 아이템도 많은 편이다.
- 사업 수완이 상당히 좋다. 1980년대부터 사업(피자헛, 사진 스튜디오 등)으로 큰 돈을 벌었고 1997년에는 제주도에 망고농장을 샀는데, 제주도의 지가가 폭등하면서 이익을 보았다.
- 요새는 인터넷에서 비트코인 업체 모델로 볼 수 있다. 재테크 성공사례로 유명한 인물이기에 캐스팅 된 것으로 보인다.
- 1977년 3월에 아내인 최성경씨(1954년생)와 결혼하여 슬하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이 개털 때문에 사망했다는 루머가 있었으나, 아니라고 해명하였다.
- 1995년부터 1999년까지 4년간은 미국에 거주하면서 활동을 쉬었는데, 이는 자녀 교육을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본인은 활동을 하기 위해 1999년에 귀국하고 한동안 기러기 아빠로 살았다. 그래서인지 아들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
기존의 근엄한 이미지가 고착화되었고 이게 고민거리였는데 김병욱 PD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캐스팅을 제의하자 바로 수락했다고 한다. 알다시피 이게 대히트를 치면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다. 덕분에 친근한 이미지로 바뀌어 여러 시트콤과 예능에 나오게 되었다.
- 청춘불패에서 나무를 한 번에 벨 정도로 힘이 세서 주민들, 아이돌들에게 헐크촌장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 2009년 이전에는 안경을 착용하지 않았으나 노화로 인한 가리기 용도로 2009년 후반부터 뿔테 안경을 지속적으로 착용하고 다닌다.
5.1. 상대 여배우 관련
- 박정수
-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 부부
6. 논란
6.1. 섭외 안 들어와 발언
'박근혜 지지자' 노주현, 문재인 정부 저격? "오비이락…드라마 섭외 안 돼"2019년 5월 7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서 인터뷰 하는 도중 최근 활동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활동하지 않은지) 2년 됐다. 오비이락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서 1편도 섭외가 오지 않는다”라고 답했는데, 이 발언은 마치 정치적인 이유로 문재인 정부에서 압박을 가해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게 했다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논란이 되었다. 오비이락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농으로 말한 느낌이다. [35]
노주현은 대표적인 보수 우파 지지 연예인으로, 그와 더불어 이순재, 최불암, 송해, 이덕화 등이 보수 우파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노주현은 이순재, 최불암과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산하 '문화가 있는 삶' 추진단에서 활동하며 박근혜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 지지 활동을 벌였던 적이 있다. 이와 같은 보수 지지 성향의 연예인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 한 편도 섭외가 오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한다면 아무래도 발언의 진위 여부 논쟁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수 우파 진영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던 다른 인물들이 문제없이 미디어에 잘만 출연하고 있어[36] 노주현의 발언은 매우 신빙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던 이순재, 최불암, 이덕화 등이 현재까지 활발하게 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며 복수의 방송사 드라마 PD는 "노주현의 발언이 매우 뜬금없었는지 의아하다"고 전했다(...) 한 PD는 "직접 경험하진 못했지만,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회사에서 특정 배우의 출연을 막았다고 들은 것은 있다"면서 "현재는 그런 일들은 거의 없다"고 못박았다. 또 다른 PD는 "방송사에서는 드라마 한 편에 명운을 걸며 철저하게 산업 논리로 간다"면서 굳이 진실을 말하면 "트렌드와 캐릭터 등을 통해 배우를 섭외하는데, 최근의 트렌드와 노주현 씨의 이미지가 잘 들어맞지 않아서 섭외가 안됐을 수도 있다"고 간략하게 언급했다. '보수 지지' 노주현 "文정부 들어 섭외 안돼"..사실일까
노주현이 특별한 정치적인 의도 없이 정말 시기적으로 딱 맞는지라 "문재인 정부 들어서"라는 표현을 쓴 것인지 아니면 정말 정치적인 성향 때문에 무언가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의도적으로 언급한 것인지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인지라 당사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를 일이다.
문제의 발언 일주일 뒤인 2019년 5월 14일 노주현이 결국 한 드라마에 캐스팅 확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노주현, '내 이름은 트로트' 출연확정…5년만 브라운관 복귀 또 한번 발언의 신뢰성이 하락하는 부분이기는 하다. 이에 '섭외가 없었다'라는 발언은 5월 7일에 있었고 1주일 뒤인 14일에 와서 드라마 주연으로 확정되었으니 7일 시점에서 '1편도 섭외가 들어오지 않았다'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으나, 섭외 이후 캐스팅 확정이 일주일도 안돼서 이루어졌을지는 의문이다.
묘하게 이 발언 이후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에도 캐스팅되었다.
종합적으로 당사자가 캐스팅이 잘 안되는 이유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현재 나이가 70이 훌쩍 넘었기 때문에 캐릭터 폭이 좁아진걸로 보인다. 노주현보다 한살 많은 탤런트 장용만 보더라도 50~60대 때는 주말드라마 황제로 불릴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최근들어 뜸해진걸 보면, 강인한 아버지 상을 보여줘야 할 나이가 너무 늙어서 나오면 표현이 전달이 제대로 안 될 수 있기 때문에 제작사측에서 다소 캐스팅을 꺼리는 것도 있다.
그 후인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 동작구 을에 출마한 나경원 전 의원과 계양구 을에 출마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장관 지원유세하였다.
[1]
당시에는 대상이 따로 없었고, 최우수 남자·여자 연기상이 최고의 상이었으나, 1979년에 한정해 대상이 부활해
강부자가 수상했다.
[2]
음력
7월 23일
[3]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필운동
#
[4]
내사복공파(內司僕公派) 24세 ○구(九) 항렬. 족보명은 순구(舜九)다. (
족
보)
[5]
1895년
중구
수하동에서 개교하여
1969년에 폐교했다가
1991년에 현 위치인
노원구에서 재개교했다.
[6]
참조
[7]
1916년 12월 10일 출생,
2017년 당시 한국나이 101세 병상에 있는 모습이 나왔다. 어머니(김용자)는 이화학당 출신으로 젊은 시절 ‘종로 거리를 걸어다니면 그 거리가 훤해진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미인이었다고 한다.
2019년 3월 22일에 소천하였다.
[8]
1940년생이고 노주현과 배재고 동문이다. 노용악이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금성사(LG전자)에 입사한 1965년에 노주현은 배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연영과에 입학했다. 2021년 12월 12일에 별세했다.
[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교직에 몸담았는데 이 때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바로
왕영은이다.
[10]
그가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1970년대 초 한진희가 주연을 맡기 시작하는 시대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짧지만, 사실상 드라마 쪽은 노주현의 독무대였다.
[11]
당시에는 방송사별로 전속 탤런트제도가 있었다.
[12]
그 TBC 드라마의 위엄이랄 수 있는 것이 흔히 19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꼽히는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 3인은 영화와 드라마 양쪽 모두에서 스타였지만, 드라마의 경우 3명 모두 TBC에서만 활동했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 여자 탤런트 경우 KBS의
한혜숙, MBC의
김자옥,
김영애가 1951년생 동갑내기로 1970년대 브라운관의 트로이카로 불리기도 했다.
[13]
1980년대로 넘어가면서 TBC 출신 인기PD와 작가들이 이적하면서 다른 방송사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었으며 MBC에서
임채무가 사랑과 진실 주인공으로 1980년대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후에 방송에 출연해서 과거를 얘기하던 노주현은 직속 후배였던 한진희를 인정하지만, 임채무에게는 "에이 임채무는 나한테 안 됐지"라며 자기보다 약간 아래로 보는 듯한 농담을 했다. 물론, 농담이었으나 확실히 주연 커리어가 본인들보다 늦은 임채무를 경계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이가 딱 3살 차이다. 다만 임채무는 노주현과 다르게, 해병대를 나온 뒤인 20대 중반에 공채배우로 데뷔했다. 더구나 30대가 넘어서 주연으로 자리잡아 이것도 노주현보다 조금 걸렸다.
[14]
재미있게도 이는 극중 노주현의 아버지인 노구 역할로 출연한
신구도 마찬가지. 노주현에 비해서는 그 충격이 덜했지만 이쪽도 그 동안의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연기였다. 비슷한 시기 방영했던
태조 왕건에서 신구가 맡은
왕륭 역할과 노구 역할을 비교해 보면 이미지의 차이가 상당히 큰 편이다.
[15]
서민정은
똑바로 살아라 극 중 노주현의 딸
노민정 역을 맡은 바 있다.
[16]
551화 출연
[17]
비열한 인물로 등장하며 장도영이 <제2공화국> 보다 깎아내려진 <제3공화국>의 경우 장도영 본인이 직접
인터뷰한 장면이 방영되기도 했다. 장도영이 인터뷰에서 한 해명을
나레이션이 직접 비판하는 장면까지 있다.
[18]
극중
송승환의 해외 노동 출국에 보증을 서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 검사로 나온다.
[19]
50화 출연
[20]
1979년 6월 18일부터 1980년 5월 17일까지 방송된 일일연속극이다. 시골 소녀 곰례(정윤희)가 서울 도심 빈민가의 다리가 불편한 김영섭(노주현)에게 시집오면서 일어나는 각종 에피소드와 역경,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상류층의 화려한 생활에 초점을 맞추던 그동안의 드라마와는 다르게 도심 빈민가를 무대로 소외계층을 주인공으로 삼아 큰 눈길을 끌었다. 거기에다가 주,조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함께 10.26, 12.12사태로 통금시간이 앞당겨지면서 사람들의 귀가시간이 앞당겨진 덕택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 5개월 후 달동네를 집필한 나연숙 작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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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978년 7월 30일에 방영한 납량특집극. 장미희와 노주현이 출연했으며, 장미희가 천년 묵은 구미호로 열연을 펼쳤다. 이후 거듭된 재방영 요청끝에 8월 6일에 다시 방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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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1월 11일부터 1979년 3월 11일까지 방영한 주말 연속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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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6월 24일부터 1978년 11월 5일까지 방영. 가족들을 부양하기위해 자기를 희생해가며 젊음을 바쳐온 한 여인이 순진한 청년과 사랑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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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3월 11일부터 1978년 6월 18일까지 방영. 유지인, 장미희, 서미경, 정소녀, 노주현, 임성민 주연이었다. 역경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호스티스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관심을 끌었다. 바니걸스가 주제곡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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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전까지 방영되던 주말연속극들의 인기가 워낙 넘사벽 이었던지라,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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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월 16일부터 그 해 9월 30일까지 방영된 일일연속극. 노주현,
한진희,
이낙훈 주연으로
나전칠기를 소재로 하였으며 항상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을 되풀이하고 그들에게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한 세대 간의 갈등을 그렸다.
당시 작품의 고증 및 연출에 참여했던 이칠용씨의 회고 방영 당시에 시간대를 여러번 옮겼는데, 처음에 8시 20분 연속극으로 시작해 이후 8시 40분 연속극으로 시간대를 변경했고, 또다시 시간대를 옮겨 최종회까지 9시 35분 연속극으로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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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6월 17일부터 10월 14일까지 금요드라마로 방영했다. 유명 극작가인 유호가 극본을 맡았으며, 하강일PD가 연출했다. 유지인, 노주현, 오현경이 주연배우로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다. 방영당시 높은 인기때문에 드라마 촬영도중 출연배우인 오현경이 수영복을 입은채 도망을 가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장미희, 정윤희가 출연해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
청실홍실'과 함께 2세대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본격적으로 개막시킨 작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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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요호 사건에서부터 한일합병전 조선군대해산까지의 민족의 격동기를 두 자매가 겪는 고난을 다룬 TBC 일일연속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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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8월 3일부터 방송했던 연속극. 6.25 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했다. 유지인의 TV 드라마 데뷔작이며, 노주현은 극에서 군의관 역으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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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삼각관계를 그린 드라마이다. 주인공 동수(노주현)가 본처가 있는데 외국 유학을 가서 애인이 생겨 동거를 하다 같이 귀국하여 고민한다는... 내용이다. 외국에서 만난 애인 지은은 고은아가 연기, 본처 양순 역은 아씨로 유명한
김희준이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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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의 후속 일일연속극. 1961년 개봉했던 동명의 영화의 리메이크 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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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8월부터 71년 9월까지 300회가 넘게 방영된
TBC 매일 연속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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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탤런트 노주현과 마찬가지로
8.15 광복으로 일제강점기 체제가 끝난 이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 시기를 겪지 않았고, 민주화 이후인 1988년에 정계에 입문해 군사정권과 직접적인 대립을 하지 않았다는 점과 더불어 대통령 당선 당시 인터넷 팬클럽을 통해 자발적인 후원으로 당선된 최초의 케이스이면서 21세기에 당선된 최초의 대통령이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당시에는 신세대 정치인으로 언론에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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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현의 본명은 노운영이다. 노주현이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작명인에게 노운영이란 이름으로는 결혼을 3번 한다는 말을 들어서 그렇게 바꾸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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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은 가히 내의업체 자체의 최전성기로. 한창 왕성히 활동하던 남자 연예인들을 간판 모델로 기용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당시 경쟁업체였던
쌍방울 트라이는
이덕화의 문짝 내려치기로 공전의 히트를 쳤고, 또 다른 라이벌
BYC는
유인촌과
김영철을 번갈아 기용하면서 자존심 대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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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 이유가 무엇이든 2년 동안 작품 활동을 쉬는 배우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도 노주현의 발언의 진정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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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의 경우 2020년에 매니저에 대한 갑질이 논란이 되기는 했는데 그건 이순재의 부인과 연관된 문제로 이순재 본인과 직접 관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갑질 논란에 대해서는 본인이 인정하고 피해자인 매니저에게 직접 사과 의사를 밝혀 매니저 본인과 합의하여 매듭지었다. 무엇보다도 해당 논란의 경우 정치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순재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송재호도 문재인 정부 출범한 2017년 이후 2020년 작고할 때까지 배우 활동을 잘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