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5:49:43

기오르기 8세(이메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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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이메레티 왕국 20대 군주
გიორგი | 기오르기 8세
제호 한국어 기오르기 8세
조지아어 გიორგი
라틴어 George VIII
이름 기오르기 구리엘리(გიორგი გურიელი)
가족 마미아 구리엘리(아버지)
엘레나(어머니)
카이호스로(남동생)
엘레니(첫째 아내)
크바람제(둘째 아내)
마미아 4세 구리엘리(장남)
기오르기 5세 구리엘리
생몰 년도 미상 ~ 1726년
재위 기간 1716년(1차 재위)
1720년(2차 재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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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차 이메레티 왕국 20대 군주.

2. 생애

구리아 공국의 공작이자 2차 이메레티 왕국 17대 군주인 마미아 구리엘리 기오르기 아바시제의 딸인 엘레나의 장남이다. 남동생으로 카이호스로가 있었다. 1711년 이메레티 왕위를 차지한 아버지에 의해 구리아 공작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1712년 왕위에서 축출된 마미아는 다시 공작을 맡았다. 1714년 1월 마미아가 사망한 후, 그는 두번째로 구리아 공작에 선임되었다. 1716년 밍그렐리아 공국의 공작 베잔 다디아니와 주라브 아바시제는 기오르기 7세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아할치헤의 아슬란 파샤에게 왕을 전복시키고 그를 왕위에 앉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슬란 파샤는 이를 받아들여 투르크군을 파견했고, 기오르기 7세는 라차로 도망쳤다가 스비모네티로 이동했다가 투르크군에게 대패하여 많은 희생자를 내고 카르틀리 왕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이메레티 왕국의 수도 쿠타이시에 입성한 뒤 이메레티의 새 군주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투르크군이 아할치헤로 돌아간 지 3개월 후, 귀족들은 그를 왕위에서 몰아낸 뒤 왕국 전체를 나눠갖기로 했다. 그는 구리아로 돌아간 뒤 어머니 엘레나와 갈등을 벌였다. 엘레나는 수도자로 지내고 있던 또다른 아들 카이호스로를 수도원에서 데려온 뒤 그가 구리아 공작이라고 선언했다. 엘레나는 베잔 다디아니 등 귀족들에게 뇌물을 줘서 구리아를 침공하게 했고, 그는 아할치헤로 달아났다. 그러다 귀족군이 돌아가자 구리아로 돌아온 후 베잔 다디아니와 화해했다.

1719년 8월 기오르기 7세가 아할치헤의 이사크 파샤의 원조를 받아 이메레티로 진군해 수도 쿠타이시를 점령했다. 그의 반대자들은 오크리브에 모여서 기오르기 7세를 왕으로 모시길 거부했다. 이에 투르크군이 오크리브로 이동하자 귀족들은 각자의 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투르크군은 많은 조지아인을 살해하고 오크리브를 황폐화시킨 뒤 베잔 다디아니가 있는 오디시로 진군했다. 다디아니는 막대한 뇌물을 줘서 투르크군이 공세를 더 이상 펼치지 않게 했다. 기오르기 7세는 귀족들과 화해한 뒤 투르크군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1720년 2월 22일, 기오르기 7세는 시몬 아바시제의 초대를 받고 연회에 참석했다가 살해되었다. 이에 그가 다시 한번 왕을 자처했지만 1720년 6월 귀족들에게 쫓겨나고 기오르기 7세의 아들 알렉산드레 5세가 왕위를 이었다.

그는 생전에 2번 결혼했다. 첫 결혼은 기오르기 아바시제의 딸 엘레나였고, 1717년 이혼한 뒤 베잔 다디아니와 화해할 때 그의 딸 크바람제와 결혼했다. 그가 사망한 후 크바람제는 라차 공작 쇼시타 3세와 결혼했다. 그는 장남 마미아 4세 구리엘리와 기오르기 5세 구리엘리를 낳았다. 1726년 사망 후 장남 마미아 4세 구리엘리가 구리아 공작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