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5:51:27

기오르기 4세(이메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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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이메레티 왕국 13대 군주
გიორგი | 기오르기 4세
제호 한국어 기오르기 7세
조지아어 გიორგი
라틴어 George IV
이름 기오르기 구리엘리(გიორგი გურიელი)
가족 카이호스로 1세(아버지)
말라키아(형제)
다레얀(첫째 아내)
타마르(둘째 아내)
카이호스로 2세 구리엘리(아들)
마미아 구리엘리(아들)
생몰 년도 미상 ~ 1684년
재위 기간 1681년 ~ 1683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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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차 이메레티 왕국 13대 군주.

2. 생애

구리아 공작 카이호스로 1세의 장남이다. 1660년 카이호스로 1세가 디미트리오스 구리엘리를 따르는 귀족들에 의해 살해되자 형제 말라키아와 함께 아할치헤의 아슬란 파샤에게 망명했다. 1668년 디미트리오스 구리엘리가 이메레티 왕이 되었다가 귀족들의 쿠데타로 실명형에 처해진 후 추방되자 구리아로 돌아와서 새 공작이 되었다. 1672년 아슬란 파샤의 지원을 받고 바그라트 5세에 대적했다. 바그라트 5세는 투르크군에 패배하고 생포됐지만, 아슬란 파샤에게 뇌물을 바치고 왕위를 보전받았다.

1672년 겨울, 바그라트 5세는 군대를 모아 구리아로 쳐들어가 철저하게 황폐화시켰다. 이에 카르틀리 왕국 아르칠리 왕자와 함께 아슬란 파샤를 찾아가서 바그라트 5세를 몰아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다 바그라트 5세와 화해하고 1674년 바그라트 5세의 딸 다레얀과 결혼했다. 1678년 바그라트 5세가 아르칠리에게 축출되고 구리아로 망명하자, 1679년 에르주룸 파샤의 지원을 받아 아르칠리를 축출하고 바그라트 5세가 복위하도록 도왔다. 이후 바그라트 5세와 함께 아르칠리를 도왔던 밍그렐리아 공국의 공작 레반 3세를 공격했다. 레반은 패배한 뒤 그와 화해하고 자신의 아들 마누하르를 인질로 보냈다. 1680년 레반 3세가 사망하자 마누하르를 살해하고 밍그렐리아를 함락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1681년 바그라트 5세가 사망했다. 당시 바그라트 5세의 후계자였던 알렉산드레 4세는 카르틀리 왕국에 인질로 가 있었기에 그가 귀족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그는 다레얀과 이혼하고 바그라트 5세의 미망인인 타마르와 재혼했다. 이후 다시 한 번 밍그렐리아를 공격했지만 밍그렐리아 공국의 가신 기오르기 리파르티아니에게 격파당했다. 1683년, 아할치헤의 파샤는 카르틀리 왕 기오르기 11세를 설득하여 알렉산드레 4세를 풀어주게 한 뒤 투르크군을 이끌고 이레메티로 쳐들어갔다. 사전에 아할치헤 파샤와 내통하고 있던 이메레티 귀족들은 대거 귀순했고, 그는 구리아로 도주했다. 1684년 라차 공작 쇼시타, 레흐쿠미의 로드키파니제, 밍그렐리아의 가신 기오르기 리파르티아니와 연합하여 알렉산드로스 4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이메레티로 진입한 뒤 블라케르네의 테오도토스 성상을 약탈했다.

알렉산드레 4세는 아바시제 공작 파아타 아바시제와 미켈라제 공국의 지원을 받고 반격을 가했고, 양군은 로키티에서 맞붙었다. 그 결과 그는 패배를 면치 못하고 전사했고, 아들 마미아 구리엘리는 아할치헤로 달아났다. 형제 말라키아는 알렉산드레 4세에 의해 구리아 공작에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