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9 14:31:06

공민배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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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구)창원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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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7대 경상남도 창원시장
공민배
孔民培 | Kong Min-bae
파일:20180404.01010104000005.01L[1].jpg
<colbgcolor=#1061af> 출생 1954년 1월 8일 ([age(1954-01-08)]세)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면 동정리
(현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정동 361)[1]
거주지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감계리
창원 감계 힐스테이트 4차
재임기간 제31대 경상남도 함양군수
1993년 4월 7일 ~ 1994년 1월 2일
제16-17대 경상남도 창원시장
1995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학력 창원초등학교 (졸업)
마산중학교 (졸업)
경남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 행정학 / 학사)
경남대학교 대학원 ( 행정학 / 석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 행정학 / 박사[2])
소속 정당
약력 내무부 근무
경남 함양군청 수습행정관
경상남도청 지방과 과장
제31대 경상남도 함양군수 (관선)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 ( 문민정부)
제16-17대 경상남도 창원시장 (민선 1· 2기 / 무소속· 한나라당)
경상남도 시장군수협의회 회장
창원초등학교 총동창회 회장
경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총동창회 회장
열린우리당 지방균형발전특별위원장
열린우리당 창원시 갑 운영위원장
대한지적공사 사장 ( 참여정부)
경남도립남해대학 총장
더불어민주당 창원시 의창구 지역위원장

1. 개요2. 생애3. 활동
3.1. 제31대 함양군수 시절3.2. 민선 초대, 2대 창원시장(1995년-2002년)3.3. 대한지적공사(2004년-2007년)3.4. 경상남도지사 선거 도전
3.4.1. 첫번째 도전 (2012년)3.4.2. 두번째 도전 (2018년)3.4.3. 세번째 도전? (2022년)
4. 선거 이력5. 여담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2. 생애

1954년 1월 8일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면 동정리(현 창원시 의창구 동정동)에서 교육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창원초등학교, 마산중학교, 경남고등학교,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 경남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3회)를 졸업하고, 2001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남고등학교, 경희대학교 1년 선배였던 문재인과 경희대 법대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하였고, 재학중 경희대 쌍경법회 총무를 맡았다.

1978년 제22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주로 경상남도청,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서른 아홉에 함양군수로 발령받았으며 창원시장 출마전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실 행정관을 역임했다.

초대, 2대 민선 창원시장을 거쳐 경상남도 시장, 군수 협의회 회장, 대한지적공사 사장(현 LX 한국국토정보공사), 경남도립 남해대학 총장을 맡았다.

3. 활동

대학원 진학 중에 행정고시를 합격하여 경남도청에서 첫 근무를 하고 1993년 함양군수로 발령받았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친여 무소속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출마하지 않았다.

2004년 대한지적공사(현 한국국토정보공사)를 지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남해대학 총장에 취임했다.

김두관 경상남도지사가 대선 경선 중 사퇴하면서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치러진 2012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민주통합당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무소속 권영길 후보와 단일화하면서 사퇴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경남도지사 후보로 경선을 준비하였으나 김경수 의원이 전략공천을 받자 결과에 승복하였다.

3.1. 제31대 함양군수 시절

국민학생 시절 창원 군수를 보고 본인도 군수[3] 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대학원 진학 중에 행정고시를 합격하여 경남도청에서 첫 근무를 하고 39살 때 함양군수로 발령받았다.[4]

3.2. 민선 초대, 2대 창원시장(1995년-2002년)

민선 초대, 2대 창원시장을 연임했다. 청와대 근무 후 지방자치제도가 실행됨에 따라 공직을 그만두고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해 연임 하였다.

창원시장에 취임하면서 제시한 슬로건은 ‘행복 자치시 창원 건설’이었다. 당시 창원시 재정자립도가 상대적으로 타 시군에 비해서 높아 성산아트홀 건립에 국비뿐 아니라 도비도 지원 받지 않고 전액 시비로 충당하고 공연장 객석보다 무대면적을 더 넓히고 자하 연습실도 완비하였다.

지방 재정의 재원 확충을 위해 지방 최초 경륜장인 창원 경륜장을 건설했다. 경륜사업을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할 수 있다는 법률이 있었지만 사행성 사업이라는 인식으로 반대가 거세었지만, 시의원들의 찬성을 이끌어 냈다. 600억 원을 투자하여 약 석 달 만에 매출이 1조 원에 육박하여 지방세 10%인 1천억 원의 세수가 들어왔다. 또한 창원시 의창구에 위치한 창원사격장 시설을 확충했다.

그 외 대표적인 치적으로는 대동제(大洞制)가 꼽힌다. 대동제 실시 결과 인력 400명을 감축하고 464억원의 예산 절감하는 동시에 행정동의 기능을 강화하고 주민통합 효과 확대 등의 성과를 냈다고 평가받는다. #

3.3. 대한지적공사(2004년-2007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시 갑(현 의창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권경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2004년 8월 대한지적공사 사장으로 부임했다. 재임 중 주요 전력으로는, 2006년 라오스에서 도로건설을 위한 지형측량(155km)을 성공하였고, 2007년에는 베트남 박닌성 산업단지 및 신도시 조성측량을 완료하였다.

3.4. 경상남도지사 선거 도전

3.4.1. 첫번째 도전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고 있던 2012년 11월 1일, 김두관 지사의 사퇴로 열리는 경상남도지사 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김영성 전 창신대 외래교수, 김종길 전 민주당 경남도당 대변인, 김형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경선을 치러 51.2%를 득표, 11월 21일 민주통합당 후보로 선출되었다. #

하지만 무소속으로 출마를 결심한 권영길 전 의원과의 야권 후보 단일화 문제가 남아있었고, 여러 갈등 끝에 공민배 후보가 11월 26일, 사퇴를 선택해 권영길 후보가 범야권 단일 후보로 선출되면서 꿈이 무산되었다. #

거기다 본선에서 야권 단일 후보인 권영길 후보가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에게 37.1% vs 62.9%라는 매우 큰 격차로 패하면서 아쉬움을 더했다.

3.4.2. 두번째 도전 (2018년)

2018년 2월 6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경상남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선언문에서 "민선자치 이후 네 분의 도지사를 선출했지만, 그중 세 분의 도지사[5]가 중도 사퇴함으로써 도정공백을 초래했다"며 "도민 주권이 존중되고 서민과 약자의 삶이 보호돼야 할 도정은 독선과 아집, 오만과 불통으로 도민 갈등은 증폭됐고 산업화 산실이었던 경남 성장은 둔화됐다"고 지적했다. #

당초 권민호 전 거제시장, 공윤권 전 경상남도의원 등과 경선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고공행진과 평창 올림픽의 예상을 뒤엎은 성공적인 개최,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등의 영향으로 부울경 지역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연일 상승하면서 경상남도지사 직 탈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현직 김해시 을 선거구의 국회의원이었으나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우세를 보여주던 김경수 의원을 당에서 단수 공천하기로 하자 다른 후보들과 함께 사퇴하여 김경수 후보를 추대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로 하면서 꿈을 접었다. # 그래도 이번에는 김경수 후보가 자유한국당 김태호 전 도지사를 누르고 민주당 당적을 가지고는 처음으로 경상남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빛을 봤다.

3.4.3. 세번째 도전? (2022년)

하지만 2021년 7월 17일, 드루킹 특검에 의해 기소된 김경수 도지사가 업무방해죄로 유죄가 확정되면서 다음해 있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한번 경남도지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2022년 6월 1일 있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서 김두관 의원과 민홍철 의원이 출마를 포기하면서 인력난에 시달리게 되자 권민호 전 거제시장, 한경호 전 행정부지사와 함께 후보군에 올라있다. 다만 4년전 선거와 달리 부울경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입지가 많이 좁아진 상황이라 출마를 결심하더라도 당선 가능성은 현격히 낮아진 상황. #

하지만 공 전 시장 역시 불출마 의사를 확고히 밝히면서 출마 가능성이 없어졌다. #

대신 국민의힘 박완수 의원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게 되면서 공석이 될 창원시 의창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5월 6일, 민주당 지도부가 현직 경남도의원인 김지수의 전략공천을 확정지으면서 보궐선거 출마 역시 성사되지 않았다.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 창원시장

[[무소속(정치)|
무소속
]]
59,448 (30.56%) 당선 (1위) 초선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28,352 (81.59%) 재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창원 갑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40,972 (36.99%)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무소속(정치)|
무소속
]]
21,638 (27.24%)
2012 하반기 재보궐선거
( 광역자치단체장)
경상남도지사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사퇴 [6][7]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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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기 창원 공민배.jpg
1회 지선 (경남 창원시장) 2회 지선 (경남 창원시장)
파일:17대 창원갑 공민배.jpg
파일:18대 창원갑 공민배.jpg
17대 총선 (경남 창원시 갑) 18대 총선 (경남 창원시 갑) }}}}}}

5. 여담

  • 아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알게됐고 오랜 연애 후 고향에서 결혼했다. PC통신이 발달하기 전의 세대가 그렇듯 결혼 전까지 연애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키웠다고한다.
  • 경희대 법대 동문모임 중 하나인 ‘쌍경법회(雙慶法會)’의 창립멤버다. 문재인이 초대 총무를 맡고 후임으로 2대 총무를 맡았다.[8]
1분 59초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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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마산 진해 김해 양산
공민배 김인규 김병로 송은복 손유섭
진주 거제 통영 고성 밀양
백승두 조상도 고동주 이갑영 이상조
창녕 남해 하동 사천 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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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산청 함양 거창 합천
조성휘 권순영 정용규 정주환 강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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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배 황철곤 백승두 송은복 안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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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하동 사천 의령 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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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 박사 학위 논문 : 우리나라 地方行政階層 調整에 관한 硏究 : 昌原市의 大洞制 導入成果를 中心으로(우리나라 지방행정계층 조정에 관한 연구 : 창원시의 대동제 도입성과를 중심으로). [3] 당시 기초단체장은 선출직이 아니라 임명직이였다. [4] 발령받기 전년도에 지방의회가 개원된 상태라 임명직이 사라지므로 군수를 못할수도 있었다. [5] 김혁규, 김두관, 홍준표가 사퇴했고 김태호만이 임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6] 무소속 권영길 후보와 단일화로 인한 사퇴. [7] 전임자 김두관 사직.(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 [8] 두 사람 모두 1월생이고 1살 차이임에도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재수를 하여 여전히 1년 선후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