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단 그리고 거듭된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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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당시 벤피카 1군 선수들 |
1908년 9월 13일, 스포르트 리스보아는 상호합의하에 그루포 스포르트 벤피카(Grupo Sport Benfica)[1]를 인수하고 구단의 이름을 스포르트 리스보아 이 벤피카(Sport Lisboa e Benfica), 줄여서 SL 벤피카로 변경한다. 합병에도 불구하고 이 두 그룹은 서로를 맞춰가며 구단을 운영하였는데, 스포르트 리스보아측은 본인들이 맨처음 구단을 성립할 때 정한 팀의 정체성, 팀색상, 독수리 문양 및 모토를 유지하였으며 그루포 스포르트 벤피카측은 본인들이 사용하던 홈 경기장인 캄포 다 페이테라(Campo da Feiteira)와 메인 디렉터 그리고 클럽 하우스를 유지하기로 한다. 이 두 그룹은 스포르트 리스보아가 포르투갈 내에서 인정받는 구단이고 축구의 인기에 힘입어 리스본내에서 꽤 대중적인 구단이였기에 SL 벤피카의 창단일을 스포르트 리스보아에 맞추기로 결정한다. 로고와 관련해서는, 벤피카 로고에 있는 사이클 바퀴는 스포르트 리스보아 구단 로고에 사이클 바퀴를 추가하여 그루포 스프르트 벤피카의 가장 중요한 스포츠 종목인 사이클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홈 경기장인 캄포 다 페이테라를 임대하는 것에 문제가 존재하였고, 마침내 벤피카는 1913년 최초의 잔디 축구장인 캄포 데 세치 히오스(Campo de Sete Rios)로 홈 경기장을 이전하게 된다. 4년 뒤, 벤피카는 이번엔 인상된 임대료를 내는 것에 거부를 하며 다시 한번 홈 경기장을 캄포 지 벤피카(Campo de Benfica)로 이전한다. 결국 1925년에 마침내 본인들 소유의 경기장인 이스타디우 다 아모레이아스(Estádio das Amoreiras)를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1940년 이스타디우 도 삼포 그란지(Estádio do Campo Grande)로 옮기기 전까지 그 곳에서 홈 경기를 치르게 된다.
포르투갈 리그 출범은 1934년에 시작하였는데, 벤피카는 첫 출범 시즌 3위를 기록 한 뒤, 이후 세 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1940년대에는 벤피카는 3번의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2]과 4번의 타사 드 포르투갈[3] 우승을 경험한다.
벤피카의 첫 번째 국제적인 성과는 1950년 라틴 컵[4][5]에서 우승했을 때이다. 이 트로피는 포르투갈 구단이 획득한 최초의 국제적인 우승 트로피이다. 1957년 벤피카는 다시 한번 결승전에 오르며 우승을 노렸으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하고 만다.
1952년, 조아킴 페레이라 보갈류가 회장으로 선출되고 1954년 오토 글로리아 감독이 부임함에 따라 벤피카는 더욱 현대화되고 전문화된다. 초기 좌석 수용 인원이 4만명인 에스타디오 다 루즈(Estádio da Luz)로 홈 경기장을 이전하였으며, 1960년에는 좌석 수용 인원을 7만명까지 확장한다.
1950년대 벤피카는 3번의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6]과 6번의 타사 드 포르투갈[7]을 우승한다. 1955년에 벤피카는 포르투갈의 챔피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위로부터 초대 유러피안컵을 초대받지 못하였고, 결국 1957/58시즌 세비야를 상대로 UEFA 대회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2. 황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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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피카 | 팀 | 바르셀로나 | ||||||||
대진 | 합계 | 1차전 | 2차전 | 녹아웃 | 대진 | 합계 | 1차전 | 2차전 | ||
하츠 | 5:1 승 | 2:1 승 (원정) | 3:0 승 (홈) | 예선 라운드 | 리르서 | 5:0 승 | 2:0 승 (홈) | 3:0 승 (원정) | ||
우이페슈트 도저 | 7:4 승 | 6:2 승 (홈) | 1:2 패 (원정) | 1라운드 | 레알 마드리드 | 4:3 승 | 2:2 무 (원정) | 2:1 승 (홈) | ||
오르후스 | 7:2 승 | 3:1 승 (홈) | 4:1 승 (원정) | 준준결승 | 흐라데츠크랄로베 | 5:1 승 | 4:0 승 (홈) | 1:1 무 (원정) | ||
라피트 빈 | 4:1 승 | 3:0 승 (홈) | 1:1 무 (원정) | 준결승 | 함부르크 | 3:2 승 | 1:0 무 (홈) | 1:2 패 (원정) | ||
플레이오프 1:0 승 (중립) | ||||||||||
6승 1무 1패 (23득점 8실점) | 합계 성적 | 6승 2무 1패 (17득점 6실점) | ||||||||
◀ 1959-60 | 결승 | ▶ 1961-62 |
'''''' | ||
방크도르프 슈타디온 (베른) | ||
주심: 고트프리트 딘스트 (스위스) | ||
관중: 26,732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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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피카 | 바르셀로나 | |
3 | 2 | |
<rowcolor=#000,#fff> 31'
주제 아구아스 32' (OG) 안토니 라마예츠 55' 마리우 콜루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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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산도르 코츠시스 75' 졸탄 치보르 |
- | ||
◀ 1960 유러피언컵 결승전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1962 유러피언컵 결승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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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유로피언컵 2연패 이후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는 당시 팀의 수문장, 코스타 페레이라 |
'''''' | ||||||||||
벤피카 | 팀 | 레알 마드리드 | ||||||||
대진 | 합계 | 1차전 | 2차전 | 녹아웃 | 대진 | 합계 | 1차전 | 2차전 | ||
- | 예선 라운드 | 버셔시 | 5:1 승 | 2:0 승 (원정) | 3:1 승 (홈) | |||||
아우스트리아 빈 | 6:2 승 | 1:1 무 (원정) | 5:1 승 (홈) | 1라운드 | 볼클뤼벤 | 12:0 승 | 3:0 승 (원정) | 9:0 승 (홈) | ||
뉘른베르크 | 7:3 승 | 1:3 패 (홈) | 6:0 승 (원정) | 준준결승 | 유벤투스 | 4:2 승 | 1:0 승 (원정) | 0:1 패 (홈) | ||
플레이오프 3:1 승 (중립) | ||||||||||
토트넘 | 4:3 승 | 3:1 승 (홈) | 1:2 패(원정) | 준결승 | 스탕다르 리에주 | 6:0 승 | 4:0 승 (홈) | 2:0 승 (원정) | ||
3승 1무 2패 (13득점 3실점) | 합계 성적 | 8승 0무 1패 (27득점 3실점) | ||||||||
◀ 1960-61 | 결승 | ▶ 1962-63 |
'''''' | ||
올림피시 슈타디온 (암스테르담) | ||
주심: 레오 호른 (네덜란드) | ||
관중: 45,715명 | ||
벤피카 | 레알 마드리드 | |
5 | 3 | |
<rowcolor=#000,#fff> 25'
주제 아구아스 33' 도미시아누 카벰 51' 마리우 콜루나 64' (PK), 69' 에우제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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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3', 39' 페렌츠 푸스카스 |
- | ||
◀ 1961 유러피언컵 결승전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1963 유러피언컵 결승전 |
유러피언컵 2연패에 성공한 벤피카는 1962년에 다시 인터컨티넨탈컵에 참가했지만 산토스 FC에게 패해 또 준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벤피카는 1963년, 1965년, 1968년 총 3번 더 유로피안컵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나 63년에는 AC 밀란에게 패배, 65년에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게 패배, 1968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게 패배하면서 3번의 준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피카는 1965년, 1966년, 1969년에 UEFA 클럽 랭킹 1위를 차지하는 위엄을 달성한다. 그뿐만 아니라, 1968년에는 프랑스 풋볼 선정 올해의 유러피언 팀 상을 수상한다. 1960년대 벤피카는 8번의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8], 3번의 타사 드 포르투갈[9] 및 두 번의 유로피안컵 우승[10]을 달성한다. 이러한 성과 대부분은 흑인 최초이자 포르투갈 클럽에서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한 에우제비우의 엄청난 활약상이 큰 역할을 하였다.
3. 1962-63 시즌
자세한 내용은 SL 벤피카/1962-63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4. 유럽대항전 준우승과 침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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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벤피카 역대 최고의 레전드 에우제비우 |
80년대도 마찬가지로 벤피카는 계속해서 번창을 거듭하는데, 1980/81시즌엔 수페르타사 드 포르투갈[14], 프리메이라 리가, 타사 드 포르투갈을 모두 우승하며 한 시즌에 자국 트로피를 모두 획득한 최초의 포르투갈 클럽이 된다. 그 이후 팀에 부임한 스벤고란 에릭손 감독의 지도하에 프리메이라 리가 2연패[15] 및 타사 드 포르투갈[16] 1회 우승을 차지하였고 1983년에 UEFA컵 결승에도 진출하나 안더레흐트에 패해 아쉽게 준우승을 한다. 홈 경기장인 에스타디오 다 루즈도 확장 공사를 통해 1985년 3층까지 경기장을 넓히며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크고 전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경기장으로 탈바꿈 시킨다. 1년 뒤, 1985년 수페르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 1986년 타사 드 포르투갈을 우승한 벤피카는 이후 1988년부터 1994년까지 3번의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17] 1번의 타사 드 포르투갈[18] 1번의 수페르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19]을 차지한다. 1988년과 1990년엔 유러피언컵 결승전까지 진출하나 결승에서 PSV와 AC 밀란에게 패해 이번에도 아쉬운 준우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1980년대 초반부터 발생한 재정 문제 그리고 이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선수단에 투입한 대규모 투자는 클럽 재정을 악화시키기 시작하였다. 그저 막연한 지출 및 의심스러운 선수 계약[20]이 더욱 상황을 악화시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벤피카는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으며 세금과 선수들에게 급여를 지불하기도 벅찬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1994년부터 2003년까지 벤피카에 11명의 감독들이 팀을 지휘하였는데 1995/96시즌 타사 드 포르투갈에서 우승은 차지하나 1999년 셀타비고에게 7:0 수치스러운 패배를 당하며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가장 큰 패배를 경험한다. 더 나아가 2001/02시즌 리그 6등을 차지하면서 2년간 유럽 대항전에도 진출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마누엘 빌라리뉴가 당시 벤피카 회장으로 새롭게 선출된 이후 팀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고 새로운 에스타디우 다 루즈 건설을 승인한다.
5. 1972-73 시즌
자세한 내용은 SL 벤피카/1972-73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6. 1989-90 시즌
자세한 내용은 SL 벤피카/1989-90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7. 2000년대
마누엘 빌라리뉴 회장에 뒤를 이어 회장 자리를 역임한 루이스 필리페 비에이라 회장과 함께 벤피카는 주제 무리뉴 감독이 지휘하는 FC 포르투를 상대로 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을 차지하면서 드디어 우승 트로피 가뭄을 끝낸다. 이듬해에는 리그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1994년 이후 10년만에 다시 한번 리그 트로피를 가져왔으며 수페르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도 함께 이룬다. 그 이후 새롭게 출범한 컵대회 타사 다 리가 우승까지 해내며 포르투갈 클럽 최초로 모든 자국 컵대회 우승을 이루는 팀이 된다. 하지만 이후 2009년까지 어떠한 우승 트로피도 없는 무관이 계속된다. 유럽 대항전에서 벤피카는 2005/06시즌 이후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에 3년 연속 진출하였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2005/06시즌 조별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단두대 매치에서 2:1로 역전승해 극적으로 16강에 오른 뒤[21] 16강에서 당시 유럽 디펜딩 챔피언이던 리버풀을 1,2차전 합계 3:0으로 꺾으며 8강에 진출했을 때이다.8. 2010년대
8.1. 2011-12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맨유를 상대로 1승 1무를 거두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보였다. 16강전 상대이던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게 1차전 원정에서 3:2로 졌다. 그리고 2차전, 벤피카 안방 경기에서 2:0으로 벤피카가 이기면서 골득실로 앞서 8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제니트 콧대를 뭉개줬다. 8강 추첨 결과 첼시 FC가 맞붙게 되었는데 1차전 안방 경기에선 0:1, 원정 경기는 1:2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타사 다 리가 결승에서 질 비센트 FC를 2-1로 이기고 4연패에 성공했다. 리그는 포르투에 이어 2위로 마감했다.8.2. 2012-13 시즌
챔피언스 리그 조 추첨 결과 G조의 FC 바르셀로나,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셀틱 FC와 한조가 되었다. 그리고 1차전 셀틱 원정에선 득점 없이 비겼다. 2차전 바르셀로나와 홈 경기에서는 0:2로 패배하고 3차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게도 패하면서 1무 2패로 꼴찌로 추락했다. 이후 모스크바, 셀틱을 안방에서 각각 2:0, 2:1로 잡아내며 16강 진출의 불씨를 살려냈지만, 6차전 원정에서 바르셀로나와 비기고, 셀틱이 모스크바를 이기면서 결국 벤피카는 3위로 탈락하여 유로파 리그 32강 진출로 만족해야 했다.유로파 32강 상대는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 2-1,1-0으로 2경기 모두 이기면서 16강에 진출, 16강상대인 지롱댕 보르도와의 1차전인 안방 경기도 1-0, 원정 경기도 3-2로 이기면서 8강에 진출했다. 8강전 상대인 뉴캐슬 유나이티드도 1승 1무로 거뜬히 누르고 4강에 진출하여 페네르바흐체와 결승행을 다투게 되었다. 1차전 원정에선 0:1로 지긴 했지만 안방에서 3:1로 이기면서 30년 만에[22] 결승에 진출했다.
UEFA 유로파 리그 결승
2012-13 UEFA Europa League Fin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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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5. 15 / 암스테르담 아레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
첼시 FC |
SL 벤피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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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1 | |||||
60' 페르난도 토레스 90 +3' 블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 |
68' 오스카르 카르도소 (PK) |
결승 상대는 바로 작년 챔스 8강에서 벤피카에게 탈락을 선사했던 첼시 FC. 하지만 2:1로 패하여 복수 및 51년 만의 유럽 대항전 우승은 실패로 돌아갔다.
8.3. 2013-14 시즌
리그에선 모처럼 순항하여 28차전까지 23승 4무 1패로 리그 우승을 기록했다. 셋 시즌 연속으로 우승하던 포르투가 무려 15점이나 승점이 뒤쳐진 채로 3위, 2위인 스포르팅과도 7점이 벌어졌기에 남은 2경기 여부랑 상관없이 우승을 차지했다.포르투갈 컵은 4강전에서 바로 리그 라이벌 포르투와 맞붙어 3-1로 이기며 결승에 진출해 히우 아브와 우승을 다투게 되었다. 그리고 1-0으로 이기면서 10년 만에 컵 대회 우승을 탈환하며 더블 우승을 기록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파리 생제르맹, 올림피아코스, 안데를레흐트와 조를 이뤘다. 5차전까지 2승 1무 2패로 조 3위를 거두고 있는데 이미 1위를 확정지은 파리를 안방에서 이겨야 한다.2위인 올림피아코스와 같은 승점이지만 1무 1패로 승자승에게 밀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6차전 느긋하게 경기를 벌인 파리를 2:1로 이겼으나 올림피아코스도 안데를레흐트를 이기면서 승자승에 밀려 3위로 탈락하며 유로파 리그에 진출했다. 32강에서 PAOK FC와 맞붙어 1-0, 3-0으로 가볍게 털어버렸다. 16강에선 토트넘 핫스퍼를 3-1, 2:2로 제치고 8강에 올라 AZ 알크마르와 맞붙어 쉽사리 털면서 4강에 진출, 유벤투스와 결승 진출을 다투게 되었는데 1차전 안방 경기는 2-1로 이겼다. 2차전 원정은 득점없이 비기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12-13 시즌에 이은 2년 연속 결승 진출이다(12-13 시즌은 첼시 FC에게 1:2로 패해 준우승). 하지만 13-14 시즌 유로파 리그 결승도 세비야 FC에게 승부차기 끝에 2-4로 패하면서 2회 연속 준우승에 그쳐야 했다.
UEFA 유로파 리그 결승
2013-14 UEFA Europa League Fin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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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5. 15 / 유벤투스 스타디움 (이탈리아, 토리노) | |||||
세비야 FC |
SL 벤피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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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0 (4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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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했다면 전번 시즌 콩트레블을 만회하는 트레블 우승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준우승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리그, FA컵, 리그컵을 모두 우승하며 도메스틱 트레블을 달성했다.[24]
8.4. 2014-15 시즌
2014년 8월 20일 QPR의 줄리우 세자르를 자유계약(FA)으로 영입. 하지만 주전급 자원인 로드리고 모레노. 에세키엘 가라이, 얀 오블락, 오스카 카르도소, 길레르미 시케이라, 누누 고메스 등을 떠나보내면서 전력에 막대한 손실이 생겼다. 다만 니콜라스 가이탄이나 엔소 페레스 등 팀을 떠날 것이 유력했던 에이스가 둘이나 남아서 팬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밖에 그리스 국가대표 수비형 미드필더 안드레아스 사마리스를 영입하였다.12월 29일, 엔소 페레스가 발렌시아로 이적했다. 이로써 에이스 중 한 명을 잃었다. 챔피언스리그 32강에서는 레버쿠젠, AS 모나코, 제니트라는 꽤 까다로운 조에 편성되어 1승만을 거두면서 조 4위로 탈락했다.
리그에서는 33라운드에 2연패 우승을 확정지었다.마지막 경기를 2위 포르투가 이겨도 같은 82점이지만 골득실차가 8골이나 차이가 나고 리그에서 포르투를 상대로 1승 1무 (2-0,0-0)를 기록하여 승자승에서 앞서기에 우승을 차지했고 이 우승으로 마지막 리그 연속 우승이였던 1982/83시즌, 1983/1984시즌 이후 첫 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타사 드 포르투갈은 8강에서 브라가에게 1-2로 패해 2년 연속 우승을 실패했다. 그나마 타사 다 리가는 결승에 진출해 CS 마리티무랑 5월 29일에 결승전을 치뤘으며, 결승에서 마리티무를 꺾고 6번째 우승을 달성하였다.
8.5. 2015-16 시즌
일단 감독부터 바뀌었다. 조르제 제수스 감독이 라이벌 스포르팅 CP와 계약하면서 벤피카는 루이 비토리아 감독을 선임했다. 이후 팀의 주전 오른쪽 풀백이였던 막시 페레이라가 계약 만료 이후 보스만 룰로 FC 포르투로 이적했다. 이에 따라 93년생 유망주 넬슨 세메도가 주전 라이트백으로 자리 잡았다. 벤피카는 이적 시장에서 노쇠화 된 줄리오 세자르를 대신하여 에데르손 키퍼를 영입한 것을 비롯, 기존의 유망주들이였던 빅토르 린델뢰프, 헤나투 산체스, 겨울 이적시장에 영입된 FC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 알렉스 그리말도 등을 주전으로 활용하며 세대 교체를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발렌시아 CF와 1년 임대 형태로 가 있던 안드레 고메스, 호드리구 모레노, 주앙 칸셀루가 완전 이적하면서 벌어들인 이적료로 라울 히메네스같은 좋은 영입을 했다.포르투갈 리그에서는 라이벌 FC 포르투에게 더블을 당했지만 34경기에서 22실점만을 허용하는 굳건한 포백라인에 더불어 조나스 올리베이라, 니콜라스 가이탄의 폭발적인 역습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29승을 기록, 승점 88점으로 86점의 스포르팅 CP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특히 조나스는 골든 슈 경쟁까지 할 정도로 폭발적인 득점력을 자랑했고 가이탄 역시 시즌 통합 11골과 19도움의 환상적인 활약을 하며 자신이 벤피카의 에이스임을 증명해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까지 가는 등 약진했는데, 갈라타사라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FC 아스타나와 한 조를 이루며 조 2위로 진출했다. 참고로 이때 아틀레티코 원정에서 가이탄의 맹활약으로 1-2로 역전하면서 귀중한 승점 3점을 따냈는데, 아틀레티코는 이 경기를 전후로 비센테 칼데론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무패행진을 달렸다는 점에서 벤피카를 칭찬할만 하다. 조 기록은 3승 1무 2패, 승점 10점이다.
16강에서는 H조에서 헐크를 앞세운 막강한 공격력을 (6경기 13골) 자랑하며 손쉽게 조 1위로 올라온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만났고, 많은 사람들이 제니트의 승리를 예상했으나...1차전 홈에서 조나스의 90분 추가시간 골로 1-0, 2차전 러시아 원정에서 2-1로 극적인 역전승을 뽑아냈다. 보다 실리적인 축구로 아르템 주바와 헐크를 앞세운 제니트의 거센 공격력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켰다는 평가. 이 두 경기에서도 가이탄과 조나스의 활약이 돋보였다. 총합 3-1로 8강 진출로 했다. 8강 추첨도 하기 전에 VfL 볼프스부르크와 함께 강팀들의 대진 소원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결국 분데스리가의 골리앗 FC 바이에른 뮌헨과 만났다.
1차전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바이에른 뮌헨의 거센 공세에 이은 아르투로 비달에게 2분만에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이후 단단한 수비로 더 이상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원정에서 최대한 틀어막고 홈에서 뮌헨을 공략하겠다는 비토리아 감독의 의중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포인 조나스가 경고누적으로 2차전 출전하지 못하고 에이스 가이탄 역시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벤피카의 탈락이 유력해 보이는 상황이다. 2차전, 전반전에 역시 바이에른이 점유율을 많이 가져갔지만 벤피카는 탄탄한 포백으로 잘 버텨냈고 결국 한 두번의 역습 찬스를 잘 살려냈다. 결국 조나스 올리베이라를 대신해 선발 출장한 라울 히메네스의 헤딩골로 앞서나간다.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헤나투 산체스와 류보미르 페이사가 상당한 활동량으로 상대 빌드업의 시작점인 사비 알론소를 압박했고 바이에른의 빌드업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며 중원 기싸움에서 우위를 가져간게 페이스가 벤피카로 넘어간 원인. 하지만 이 흐름을 지속 시키는데엔 실패했고 반격에 나선 바이에른이 경기 템포를 올리며 비달의 동점골과 후반전 터진 토마스 뮐러의 역전골로 우위를 가져갔다. 홈에서 궁지에 몰린 벤피카는 닥공을 시전했고 76분에 안데르손 탈리스카의 왼발 프리킥으로 동점골 기록에 성공했지만 두 골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골은 더 이상 터지지 않았고,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바이에른의 입장에서는 이 경기가 헤나투 산체스를 데려가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총합 3-2로 탈락.
타사 다 포르투갈에서는 2라운드 라이벌 스포르팅 CP를 만나 2-1로 패배하며 탈락했지만 타사 다 리그에서는 순항하며 결승전 마리티무를 6-2로 무자비하게 짓밟고 우승에 성공했다. 루이 비토리아 감독은 벤피카 감독으로서의 첫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이다. 엘리세우(후반기 그리말도)-자르델-린델로프-넬시뉴로 이어지는 튼튼한 포백과 함께 조나스와 콘스탄티노스 미트로글루의 빅 앤 스몰 투톱으로 이어지는 꽤나 클래식한 4-4-2 전술을 애용했다. 전술 자체로만 보면 킥 앤 러쉬 전술에 가장 특화된 전술이지만, 비토리아 감독의 4-4-2는 롱 볼에 능한 시메오네 식 4-4-2에 가깝다. 13-14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가장 유사. 티아고-가비의 전성기 시절처럼 비토리아의 벤피카 역시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 (페이사/사마리스)와 공격 능력이 좋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한 명 (헤나투/피찌)을 중원에 배치하며 활동량이 높은 선수들로 효율적인 중원을 구축한다. 공격수 역시 라울 가르시아- 디에고 코스타 투 톱처럼 개인기량과 침투가 뛰어난 조나스와 포스트플레이 및 연계에서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는 미트로글루의 투톱을 활용하며, 세트피스가 강력한 것과 포백과 미드필더의 간격이 좁은 것 까지 판박. 다만 시메오네의 아틀레티코 보단 롱볼 비율이 조금 더 높고 역습의 완성도나 측면에서의 연계력이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다만 리그에서 약체를 상대할 때는 얘기가 조금 달라지는데, 실리적인 축구보다는 측면 윙어 둘 중 한 명과 연계가 뛰어난 미트로글루를 중원에 가담시키며 중원 숫자 싸움에서 우위를 가져가는 동시에 반대쪽 윙어와 윙백을 완전히 윙포워드처럼 배치시키고 그쪽 측면을 터는 빠른 템포의 축구를 주로 사용한다. 로베르토 만치니 시절 11-12 시즌 맨체스터 시티 FC와 비슷한 지공 형태를 보인다. 똑같은 4-4-2로 상당히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감독으로 평가된다.
8.6. 2016-17 시즌
포르투갈 리그 우승으로 챔피언스리그 1번시드를 받았고 SSC 나폴리, 디나모 키이우, 베식타스 JK와 함께 B조에 배정되었다. 그리고 16강에 진출을 성공했고 상대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결정되었다. 리그에서도 순조롭게 순항중이다.챔스에선 홈에서 도르트문트를 1-0으로 잡았지만 원정에서 4-0으로 패배하면서 탈락한다. 이후 리그에서는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하면서 포르투갈 축구 역사상 최초로 리그 4연패를 달성했다.
8.7. 2017-18 시즌
여름 이적 시장서 주요 선수들을 대거 판매했다. 풀백 넬송 세메두를 3,050만 유로(약 409억원)에 FC 바르셀로나로, 센터백 빅토르 린델로프는 3,500만 유로(약 440억원)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주전 골키퍼이던 에데르송 모라에스 역시 4,000만 유로(약 504억)의 이적료에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콘스탄티노스 미트로글루 역시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로 떠났다.리그에서는 늘 그래왔듯이 스포르팅과 포르투와 순위다툼을 벌이고 있으나, 챔피언스리그에선 톱시드에 배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맨유와 바젤, CSKA 모스크바를 만나 6전 전패라는 충격적 성적을 기록하며 광탈하고 말았다.
8.8. 2018-19 시즌
후이 비토리아 감독이 부진한 성적에 대한 책임으로 경질되자 브루노 라즈 감독이 소방수로서 시즌 중반을 책임졌으며 포르투와 최종전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친 끝에 두 시즌만에 리그 우승이자 벤피카의 37번째 리그 우승을 안겨주게 된다.유로파 리그에서는 8강까지 올라와 프랑크푸르트와 만났고, 홈에서의 1차전에서 4:2로 이기고도 2차전 원정 경기에서 2:0으로 져 합산 스코어는 4:4가 됐고, 결국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거해 프랑크푸르트가 4강에 올라가면서 귀신같이 또 유럽 대항전에서 탈락했다.
8.9. 2019-20 시즌
프리시즌에 열리는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에서 우승했다. 프리시즌인지라 저주를 깼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RB 라이프치히와 올랭피크 리옹에 밀려 조 3위를 기록했고, 유로파리그 32강에서 FC 샤흐타르 도네츠크를 만나 1-2 패, 3-3 무를 기록하며 탈락했다. 리그에서 포르투에 승점 5점이 뒤처진 채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타사 드 포르투갈까지 포르투에게 빼앗기며 철저한 콩이 되었다.9. 2020년대
9.1. 2020-21 시즌
자세한 내용은 SL 벤피카/2020-21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조르제 제수스 감독이 다시 팀에 복귀한 뒤 코로나 19 대유행이라는 힘든 상황속에서 150m 유로라는 대규모 투자를 해줬음에도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에 탈락하며 조별 리그에도 진출하지 못하였고 수페르타사 드 포르투갈에서 패배, 타사 드 포르투갈 결승전에서 패배, 우승도 이루지 못하며 3위를 기록한다.
9.2. 2021-22 시즌
자세한 내용은 SL 벤피카/2021-22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후이 코스타가 이 시즌부터 구단 회장으로 취임했고, 벤피카는 리그에서는 저번 시즌과 마찬가지로 3등을 기록하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8강에 오르며 오래간만에 유럽 대항전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 특히 조별리그에서 FC 바르셀로나를 유로파리그로 보내버리면서 16강 진출에 성공했으며, 16강에서는 6전 전승으로 올라온 아약스를 꺾고 8강에 올라가는 등 굵직굵직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비록 8강에서 리버풀 FC 종합 4:6이라는 점수로 패하며 탈락했지만 벤피카로서는 6년만의 8강이라는 성과를 남겼다.
9.3. 2022-23 시즌
자세한 내용은 SL 벤피카/2022-23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챔피언스 리그에서 지난 시즌보다 더욱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조별리그에서 파리 생제르맹 FC, 유벤투스 FC를 밀어내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하여 2연속 16강 진출에 성공했으며, 16강에서는 클뤼프 브뤼허 KV를 상대로 1, 2차전 합계 7-1로 크게 찍어누르며 2연속 8강 진출까지 달성하였다. 그러나 8강 상대인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게 홈에서 0-2로 패한것이 발목이 잡혀 원정에서 간신이 3-3 동점을 만들어냈으나 합계 스코어에서 밀려 또다시 4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9.4. 2023-24 시즌
자세한 내용은 SL 벤피카/2023-24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9.5. 2024-25 시즌
자세한 내용은 SL 벤피카/2024-25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
[1]
번역하자면 스포츠 벤피카 그룹
[2]
1941/42시즌, 1942/43시즌, 1944/45시즌
[3]
1940년, 1943년, 1944년, 1949년
[4]
일명 코파 라티나, 포르투갈어로는 타사 라티나(Taça Latina). 라틴 유럽 국가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의 클럽들 간에 펼쳐진 축구 토너먼트이었다.
[5]
1949년에 첫 대회가 개최되었는데, 각 국의 최상위 리그 우승 팀들이 참가하였다. 1957년 대회가
유러피언컵의 탄생으로 마지막이 되었으며
미트로파컵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사라지고 유러피언컵이 탄생하기 전까지의 기간 동안은 라틴컵이 유럽의 가장 권위있는 대회로 여겨졌다.
[6]
1949/50, 1954/55, 1956/57
[7]
1951년, 1952년, 1953년, 1955년, 1957년, 1959년
[8]
1959/60시즌, 1960/61시즌, 1962/63시즌, 1963/64시즌, 1964/65시즌, 1966/67시즌, 1967/68시즌, 1968/69시즌
[9]
1962년, 1964년, 1969년
[10]
1961년, 1962년
[11]
1970/71시즌, 1971/72시즌, 1972/73시즌, 1974/75시즌, 1975/76시즌, 1976/77시즌
[12]
1970년, 1972년
[13]
총 30경기 가운데 무려 23경기 연승을 달성하며 28승 2무 리그 득점은 101골 기록
[14]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팀과 타사 드 포트루갈 우승팀이 붙는 컵대회
[15]
1982/83시즌, 1983/84시즌
[16]
1983년
[17]
1988/89시즌, 1990/91시즌, 1993/94시즌
[18]
1993년
[19]
1989년
[20]
이 기간동안 100명이 넘는 선수를 영입한다.
[21]
맨유는 조 4위로 UEFA컵 32강조차 가지 못했다.
[22]
82/83 시즌 UEFA 컵 시절
RSC 안데를레흐트에게 패해 준우승.
[23]
심지어 패배를 확정지은 골도 라스트 미닛 골이였다. 후반 추가시간 포르투의 공격전개 상황일때 2대1 패스로 공간을 만들어낸 켈빈의 슛팅이 강하게 땅볼로 가 반대쪽 포스트로 가서 그대로 골대에 꽂히며 패했다.
[24]
또한 유럽 대항전에서의 호성적 덕분에 2015년 UEFA 클럽 랭킹 6위를 차지하는 기염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