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2 23:56:29

드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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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슬람에서 기원했지만 대다수 드루즈인들조차도 스스로를 별개의 종교로 분류한다.
  • * 일반적으로 시아파와는 별개의 종파로 분류되는 경우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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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즈 상징기 드루즈를 상징하는 오각성

1. 개요2. 기원3. 특징
3.1. 환생 교리3.2. 다른 이슬람 종파와의 차이점
4. 드루즈인

1. 개요

아랍권에 분포하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중 하나.

2. 기원

11세기 사람인 함자 빈알리 빈아흐마드(حمزة بن علي بن أحمد‎, Ḥamza bin ʿAlī bin ʾAḥmad)와 알하킴 비아므르알라(الحاكم بأمر الله, al-Ḥakim bi-ʾAmr Allāh)가 창시했으며 《지혜의 서간(رسائل الحكمة, Rasāʾil al-Ḥikmah)》을 경전으로 한다. 이슬람 시아파, 그 중에서 이스마일파에서 분파했으며 예언자 무함마드의 자리를 11세기 파티마 왕조의 칼리파 알하킴 비아므르알라가 계승했다고 믿는다.

'드루즈'라는 이름은 '아다라지(الدرازي, ad-Darazī)'라고 불리는 이스마일파 신비주의 사상가의 종교관과 이들의 종교관이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아다라지는 무함마드 빈이스마일 나슈타킨 아다라지(محمد بن إسماعيل نشتكين الدرزي, Muḥammad bin ʾIsmāʿīl Naštakīn ad-Darazī)로 알려진 인물이며 부하라 출신으로 11세기 초 파티마 왕조 치하의 이집트로 이주하였다. 드루즈교도들은 아다라지가 이단이며 자신들의 교리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학계에서는 아다라지가 사실상 드루즈파를 창시하고 나서 모종의 이유로 자기가 창시한 종파에서 추방당한 걸로 추정하는 학설이 주류다.

드루즈파는 이슬람에서 분파하기는 했지만 이슬람과는 차이점이 많아 아예 이슬람과는 별개의 종교로서 드루즈교라 부르기도 한다. 무슬림들이 드루즈를 이슬람으로 보지 않다 보니 드루즈는 “미치광이 알하킴을 따르는 바보들” 취급받고 박해를 많이 받아 왔다.[2]

3. 특징

외부의 박해를 많이 받다 보니 이교도들 사이에 있을 때는 그들의 관습을 겉으로 따르며 종교제도에 대해서는 외부 세계에 알려진 것이 잘 없는데 박해를 피하기 위해 이교도는 물론이고 평신도들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드루즈인들의 마을은 하레디 공동체들처럼 굉장히 폐쇄적이라서 외부인이 방문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방문할 때 허가를 받게 한다. 인도의 시크교처럼 군인, 경찰, 경호원 등으로 일하는 신자의 비율이 높다.

중세에는 드루즈파 신도들이 을 쏘는 궁병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1299년 페르시아 일 칸국의 군대가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군대를 3차 홈스 전투에서 쳐부수자, 다마스쿠스를 향해 달아나던 맘루크 군대를 드루즈파 궁병들이 끈질기게 괴롭혔다고 한다.[3] 사실 맘루크 왕조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이 드루즈파를 하도 오랫동안 탄압하다 보니 드루즈파 신도들로서는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맘루크 왕조보다 차라리 몽골인들이 세운 일 칸국을 돕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일 칸국도 나중에 가서는 이슬람을 믿게 되었으나 사실 일 칸국을 세운 몽골인들은 원래 불교[4] 그리스도교를 믿었고 이슬람으로 개종했어도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보다 여전히 그들의 조상인 칭기즈 칸이 만든 법률인 야사를 따랐다. 이런 이유로 맘루크 왕조에서 활동했던 이슬람 율법 학자인 이븐 타이미야는 일 칸국의 몽골인들을 가리켜 "그들은 거짓된 무슬림이며, 위선자들이다."라고 비난하였다.

다만 내내 박해당해 왔던 것은 아니라서 오스만 제국에서는 시아파를 견제하려는 목적에서[5] 인정해 주었고 레바논 아미르국이라고 하여 현재의 레바논 지역을 드루즈 제후들이 통치했으며 해당 지역에서 지배계층의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드루즈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통치 시절을 자신들의 전성기로 여기며 당대의 하층민인 마론파 그리스도인과 반목이 있기도 했다.

3.1. 환생 교리

드루즈는 윤회와 환생을 인정한다. 윤회와 환생에 대한 교리가 있어서 플라톤의 직접적인 영향[6] 혹은 마니교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닌가 추정된다. 이들을 파티마 왕조 시절 시아파 이슬람으로 개종한 마니교 신자들의 후손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아다라지가 한 때는 불교 대학의 중심지였다가 중세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로 변한 부하라 출신인 만큼 윤회와 환생에 대한 교리가 중앙아시아 대승 불교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을 수도 있다.

이미 드루즈 창시 이전의 부와이 왕조 시기의 시아파들은 상당수가 환생을 믿은 듯하다. 애초에 시아 사상에 내재한 마흐디 사상이 환생의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헤지라 341년(서기 952년) 재상 알무할라비는 윤회(Tanasukh) 사상을 가진 몇 사람을 체포하였다. 그들 중에는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영혼이 자신의 육체에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젊은이와 파티마의 영혼이 자기 몸 속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여인이 끼어 있었다. 또 한 남자는 지브릴 천사로 행세하였다. ... 무이즈 아다울라는 그들을 석방할 것을 명하였는데, 이는 시아파에 대한 그의 편애 때문이었다. 부와이 왕조 사람들이 시아파 이단자라는 바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부 알마하신의 연대기

여하튼 윤회와 환생을 믿어서 그들의 무덤의 비석에는 이름이 적히지 않는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종교적 장소는 티베리아스에 위치한 예언자 이트로( 슈아이브)의 영묘인데 아랍인 이트로는 모세의 장인으로서 유대인이 아니었고 사막을 통과하는 유대인들을 도왔으며 유일신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티베리아스가 현재 이스라엘 영토에 속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드루즈인들은 교리적인 이유로도 이스라엘 유대인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같은 이슬람 계통의 종교 중에서 윤회를 인정하는 종파는 알라위파가 있다.

3.2. 다른 이슬람 종파와의 차이점

드루즈는 윤회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타 종교로의 개종을 인정하지 않으며 "타 종교에서 드루즈로의 개종도 인정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드루즈의 신자인 사람만이 드루즈 신도가 될 수 있다. 즉 드루즈 신자들은 전생에 신앙생활을 했던 동료들이며 태어난 아기들은 환생한 셈이 된다. 다른 종교의 신자와 결혼하지도 않으며 박해 상황에서 생명이 위태롭게 되면 겉으로 자신의 신앙을 부인하는 것이 교리적으로 허용된 것도 그들의 교리의 특징이다.

결정적으로 이슬람의 6대 믿음 중 두 가지, 5대 의무 중에서도 둘을 부정한다. 우선 믿음에 있어 쿠란이 아닌 다른 경전을 이용하고 결정적으로 "무함마드를 마지막 예언자로 보지 않으며" 노아(누흐), 아브라함(이브라힘), 모세(무사) 등을 중요한 예언자로 섬기는데 그 중에서도 모세의 장인인 '이트로(슈아이브)'를 매우 중요한 예언자로 섬기고 있다. 드루즈에서는 이트로가 정의와 공정, 그리고 모세에게 일신교를 전해 주었다고 믿는다. 무슬림의 의무인 하루 5번 예배는 마음속으로 항상 기도한다며 따르지 않고 성지순례도 메카는 믿는 자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며 거부한다. 이러니 수니파·시아파를 막론하고 무슬림의 입장에서 어찌보면 유대교, 그리스도교와 다를 바 없는 이질적인 종교 수준을 넘어서 이슬람에서 배교한 것으로 보기도 하여 '성서의 민족' 대우도 받지 못하는 박해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드루즈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상당히 배타적인 종교가 될 수밖에 없다.

4. 드루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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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즈인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인이자 드루즈교를 믿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그 수는 80만~200만 정도로 추산된다. 시리아 남부에 55만명이 살다 보니 가장 많으며 그 다음으로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에 분포하고 베네수엘라, 호주, 미국, 캐나다로 이민가서 그곳에서도 많이 거주한다. 다만 해외로 이주한 드루즈인의 상당수가(특히 라틴아메리카로 이주한 경우 거의 다) 정체성과 드루즈를 완전히 상실하고 현지인들과 동화되는 편이었는데 이는 드루즈의 교리가 구전으로 전해지다 보니 유대교 같은 다른 종교적 소수자 공동체보다 정체성 유지가 더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드루즈인은 다른 중동의 민족처럼 독자적인 언어나 방언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의 사용에서 이슬람의 직접적 영향이 강한 무슬림 아랍인에 비해 이슬람 이전의 아랍어 인명을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학술적으로 드루즈인은 민족종교집단으로 분류된다.

이스라엘 드루즈인들은 주로 이스라엘 북부의 22개 촌락에 거주하며 독립적인 문화, 사회, 종교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 시민권자라서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 체르케스인과 동등한 병역의무를 지고 있다. 오늘날의 드루즈인 공동체들은 군장성과 경찰간부 및 대학교수와 외교관으로 기용할 만큼 매우 높은 대접을 받고 있는 비유대인 공동체가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치하에서 살고 있는 드루즈인들 가운데 극소수는 이스라엘에 충성을 거부하면서 아랍 민족주의를 선동하다가 헌병대 군사정보국에 체포되어 형사재판을 받았는데 이스라엘 정부는 그들에게 부여된 국적을 모두 박탈하고 석방되는 즉시 국외로 추방시켰다.

다만 골란고원의 원주민이라 할 수 있는 골란고원 드루즈인[7]들은 1981년 이스라엘의 합병 이후, 이스라엘 정부의 강제적인 이스라엘 시민권 부여를 거부하고, 현재도 이스라엘 시민권이 아닌 '이스라엘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병역의무와 이스라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지지 않으며, 해외로 이동할 시 이스라엘 정부에서 일종의 한시적 통행증을 발급해주고 있다. 다만 골란고원에 거주하는 드루즈인들은 개별적으로 이스라엘 시민권을 신청할 권리를 보유했으며, 이 경우 투표권, 크네세트 출마권[8] 을 부여받고, 이스라엘 여권을 받는다.

시리아의 드루즈인들은 소수 종교를 보호하는 알라위파 아사드 정권에 우호적이다. 유명한 사람으로는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 공화국수비대 104여단장으로 재직하면서 데이르에조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대공세로부터 끝끝내 지켜낸 방어전의 귀재 잇샴 자헤라딘 장군이 있다.[9] 당연히 대이스라엘관도 나머지 시리아인과 다르지 않아서 대부분이 이스라엘의 영토 합병에 분개하며 골란 고원 일대에 대한 시리아의 영토 주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2024년 12월 아사드 정권이 붕괴하고 수니파 근본주의 성향의 과도정부가 들어서자 골란 고원과 남부 시리아의 드루즈 공동체 일각에서는 이스라엘로의 망명과 영토합병을 지지하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 이는 HTS를 위시한 舊 반군 내 근본주의 세력의 보복조치와 탄압에 대한 우려로 인해 촉발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향후 이스라엘의 노골적 영토 확장 정책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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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테러로 사망한 드루즈인 장례식

이스라엘 인구의 2%를 차지하는 이스라엘 드루즈인들은 이스라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그들을 옹호하다 보니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에서는 증오의 대상이다. 헤즈볼라도 자국과 시리아의 드루즈인들과는 우호적이지만 이스라엘의 드루즈인은 이스라엘의 개라며 증오한다. 실제로 2006년에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드루즈인들의 All-Druze Herve Battallion 사단이 헤즈볼라와 싸웠다.[10] 시리아 내전 때는 드루즈인들이 시리아 반군에게 학살당하고 있으니 학살당하는 동포들을 구해 달라고 이스라엘 정부에 건의했으나 이미 복잡한 국제정세를 더 복잡하게 할 수 없는 이스라엘 정부는 개입하지 않았다.

이들과 처한 환경이 다른 레바논의 드루즈인들은 처세를 달리해서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동에서 그리스도교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인 레바논은 수많은 종파가 복잡하게 얽힌 다종교 국가라 종파간의 내전을 겪어 보았고 다시 내전이 터지면 걷잡을 수 없어지는지라 군사령관은 드루즈에게 할당하는 식으로 소수 종교에게도 안배해 주고 있다.[11]


[1] 무와히둔 두루즈(موحدون دروز, '드루즈 유일신론자')로도 불린다. [2] 애초에 드루즈 스스로부터가 무슬림으로 인식하지도 않는다. [3] 출처: 신의 전쟁/ 도현신 지음/ 이다북스/ 310쪽 [4] 일 칸국의 창시자인 훌레구 불교 신자였다. [5] 정확히 말하자면 시아파에서 갈라져나온 여러 종파들끼리 서로 싸우라고 부추기는 목적이었다. [6] 플라톤 역시 인간이 환생한다고 주장했으나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는 플라톤의 철학을 신플라톤주의를 통해 간접적으로 공부했으므로 이들이 과연 직접 플라톤의 환생 개념을 공부했는지 의문으로 남고 있다. [7] 헤르몬산 관광으로 알려진 Majdal Shams, 중부의 Buq'ata, Mas'ade 등은 드루즈인들이 거주하는 마을이다. [8] 이스라엘 의회 [9] 2017년 10월 18일 데이르에조르에서 지뢰 폭발로 사망했다. [10] 물론 레바논의 드루즈인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11] 레바논은 무려 18개 종파가 얽혀있는 국가라서 내전을 막기 위해서 각 종파간의 합의에 따라서 "대통령과 군 참모총장은 마론파, 총리는 수니파 무슬림,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 국회부의장과 부총리는 정교회 신자, 군 사령관은 드루즈"식으로 정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