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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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8080,#555><colcolor=#fff> 경과 | 시리아 민주화 운동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2021년 | 2022년 | 2023년 | 2024년 |
원인과 분석 | 시리아 내전 발발 원인 | 분석과 전망 |
주요 세력 | 시리아 정부측 |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시리아 아랍군) |
지원세력 | 러시아 연방군 · 이란군( 이슬람 혁명 수비대) · 헤즈볼라 | ||
시리아 반정부측 | 시리아 과도정부( 자유 시리아군) | |
지원세력 | 미군 | ||
시리아 임시정부( 시리아 국민군) | ||
지원세력 | 튀르키예군 | ||
이슬람 전선 | ||
알누스라 전선 → 시리아 구국정부 → 시리아 과도정부(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 | ||
로자바 | 로자바( 시리아 민주군) | |
ISIL | ISIL |
주요 전투 | 홈스 전투 | 알레포 전투 | 데이르에조르 포위전 | 코바니 포위전 | 팔미라 전투(2016~2017) | 하샴 전투 | 알바구즈 전투 | 2023년 북동시리아 분쟁 | 알레포 전투(2024년) | 2024년 시리아 반군 공세 |
외국의 개입 | 미국의 역할 | 헤즈볼라의 역할 | 대IS 군사 개입 | 2019년 튀르키예 쿠르드 침공 | 이스라엘의 공습 | 이스라엘의 주시리아 이란영사관 공습 | 이스라엘의 침공 |
기타 | 오해 | 난민과 참상 | 유럽 난민 사태 | 알라, 시리아와 바샤르 | }}}}}}}}} |
2024년 시리아 반군 공세 هجوم المعارضة السورية 2024 2024 Syrian opposition offensiv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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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의 일부 | ||
12월 8일 시리아 정부 붕괴 후 결과 | ||
날짜 | ||
2024년 11월 27일 ~ 12월 8일 | ||
장소 | ||
시리아 전역 | ||
교전 국가 및 세력 | ||
[[틀:깃발| [[틀:깃발| ]][[틀:깃발| ]][[시리아 임시정부| ]] 남부 작전실 시리아 자유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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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국 및 세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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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틀:국기| ]][[틀:국기|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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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뇌부 | ||
아부 무함마드 알줄라니 | 바샤르 알아사드 | |
피해규모 | ||
전사 311명 전사 60명 |
전사 220명, 포로 21명 친이란 민병대 25명 전사 전사 1명 전사 1명 이상 |
전사 3명, 여러 명 포로 |
민간인 사망 111명 | ||
결과 | ||
아사드 정권의 붕괴 무함마드 가지 알잘랄리 과도정부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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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 ||
시리아에 대한 러시아, 이란의 영향력 약화 이스라엘의 시리아 침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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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을 중심으로 하는 시리아 반군 연합이 2024년 11월 27일부터 실시한 공세.이 공세로 인해서 53년 동안 집권했던 알아사드 정권은 주요 도시와 기지들을 모두 반군에게 빼앗기고 12월 8일 반군에게 수도인 다마스쿠스마저 빼앗김에 따라 완전히 패망하게 되었다.
2. 전개
2024년 11월 말, HTS 반군[4]은 시리아 국민군과 연합하여 시리아 북서부에서 정부군에 대한 기습적인 공세를 단행했다. HTS 반군은 알레포를 함락시키고 하마를 순식간에 점령했으며, 홈스를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결국 점령했다.
한편, 2018년부로 정부군으로 전향했던 남부 전선 반군 또한 다시 들고일어나 도시 다라를 점령하는 등 남부에서 그 세력을 확장했다. 이들은 드루즈파를 포함한 여러 민병대들과 연합하여 남부 작전실을 새롭게 세웠으며, 12월 7일부터는 수도 다마스쿠스를 공격했다.
결국 2024년 12월 8일, 남부 작전실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자유군[5]의 연합 공세로 수도 다마스쿠스가 함락되면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축출되었다. 수도가 함락당하자 아사드 대통령은 전용기를 타고 러시아로 망명했다. 아사드 정권이 축출된 이후 반군 연합체는 총리였던 무함마드 가지 알잘랄리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하는 과도정부를 수립했다.
마지막까지 구 정부군의 통제하에 있는 지역은 예로부터 알라위파의 거주 지역이었던 서부 지중해 해안가 산악 지역 일대[6] 밖에 없었는데, 다마스쿠스 정부가 무너지자 이 지역들도 시리아 반군에 항복하였다. #
이에 시리아에 주둔하던 러시아 연방군은 철수를 진행하고 있다. #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는 무함마드 가지 알잘랄리는 새로 들어서는 정부가 러시아 군사기지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러시아는 바샤르 알아사드의 망명을 받아줬으나, 그를 버림패 취급하고 타르투스, 라타키아에 위치한 군사기지를 유지하기 위해 시리아 반군들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2.1. 알레포 전투
2.2. 하마 전투
12월 1일 HTS군은 알레포를 점령하자마자 대규모 차량화보병을 동원, 하마로 가는 요충지인 마하트 알 누만(Ma`arat al-Nu`man)을 점령하고 2개축선으로 진격하여 M5고속도로상의 요충지인 칸 샤이쿤(Khan Shaykhun)과 수란(Suran), 56번국도상의 요충지인 칼라트 알 무디크(Qalaat Al Madiq)를 점령한다.사실상 시리아군이 하마와 알레포사이의 마을들을 포기하였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반군이 하마 시내로 진입하기까지 하였으나 알레포에서 후퇴한 수헤일 알 하산 소장의 시리아군이 러시아공군의 지원까지 받아 HTS군을격퇴하였다.
12월 2일 4기갑사단등 여러부대를 증강받고 근처 친정부민병대를 규합한 시리아군은 모렉(Moreck),수란등 하마 북부의 여러 마을들을 재탈환하였고 캄카나(Kamkhana)와 자인 알 자비딘(Zein al-Zabideen) 산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12월3일 HTS군이 다시 수란을 점령하였으나 시리아군의 정면방어선이 강력하게 구축되어 HTS군 지도부는 방어선을 우회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따라 12월 4일까지 HTS군은 방어선을 우회하여 하마 동부의 마르 샤후르(Maar Shahour)와 25사단 사령부를, 서부의 카타브(Khattab)를 점령하여 하마를 3면에서 포위하게되었다.
12월 5일 HTS군이 하마 시내로 진입하자 수헤일 알 하산 소장은 하마를 반군에게 넘겨주고 홈스로 후퇴하였다.하마가 함락되자 히마주 제2의도시인 살라미야 역시 반군에게 항복하였다.
2.3. 홈스 함락
하마에서 후퇴 도중 수헤일 알 하산 소장이 반군의 드론 공격을 받아 사망설이 돌았으나 이후 사진에선 손등에 부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되었다.홈스와 하마 사이의 요충지인 라스탄(al-Lastaan)과 탈비사(Talbisah)는 HTS군의 진격에 맞추어 후방의 반군세력이 봉기, 시리아군은 저항 한 번 못하고 마을을 반군에게 넘겨주었다.
반군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라스탄에 있는 다리를 러시아 공군이 폭파했으나 하마가 함락된지 하루도 안되어 HTS군이 홈스 외곽에 도달하며 무의미해졌다.
수도인 다마스쿠스 역시 남부 시리아 반군에 함락될 위기였기 때문에 수헤일 알 하산소장은 헬기를 이용, 러시아군이 주둔중인 타르투스로 도피하였고 잔존 시리아군은 항복하거나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도주하는등 사실상 시리아군의 주력부대는 소멸한다.
2.4. 다마스쿠스 함락
2024년 12월 7일 ~ 2024년 12월 8일(2일) 간 벌어진 전투. 다마스쿠스가 반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바샤르 알아사드는 가족과 함께 러시아로 도주했다.3. 아사드 정권이 패망한 원인
이러한 반군의 공세에 13년간의 내전 승리 직전으로 보였던 구 정부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11일만에 붕괴한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정규군인 시리아 아랍군이 재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내전 발발 후 각지에서 대규모 탈영이 잇따른데다 연이은 격전으로 극심한 인명손실을 겪어 3년만에 병력이 32만명에서 17만 3천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생긴 거대한 전력 공백은 8~10만명 규모의 친정부 민병대를 양성하여 메꿨다. 여기에 전투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았다고 간주된 몇몇 사단에 지원을 집중해주면서 주요 전력으로 동원했다.그러나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정규군과 민병대를 가리지 않고 정예 병력이 소모되는 속도가 축적되는 속도를 초과하게 되었는데[7] 그 중에서도 아사드 정권의 핵심 지지집단인 알라위파 장병의 인명피해가 극심하였다고 한다.[8] 또한 내전 장기화로 인한 경제난이 누적되면서 월급마저 부족해지자 정규군과 민병대를 가리지 않고 사기가 바닥을 치게 되었다. 적지않은 병사들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 약탈도 마다하지 않을 지경이 되었는데 군대의 기강이 해이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의 민심 이반까지 일으켰다. 정규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양성한 민병대는 자기 주둔지에 죽치고 앉아있으면서 경제력을 빨아들이는, 무늬만 친정부인 사실상의 군벌로 전락하였고 이는 아사드 정권의 동원력과 경제력을 크게 제약했다. 화룡점정으로 정부와 정규군, 민병대를 가리지 않고 이른바 '캡타곤'[9]이라고 하는 마약 거래에 연루되는 극악한 부패까지 탄로되었다. 이런 약점이 장기간 누적되면서 시리아군을 점점 약화시켰고 결국 11월에 반군이 일거에 전면 공세에 나서자 삽시간에 무너지게 된 것이다.
두번째로 중요한 원인은 경제 재건에 실패한 것이다.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경제의 주춧돌인 농업, 경공업, 에너지(석유, 천연가스) 산업이 완전히 붕괴했다. 산업 인프라가 파괴되거나 작동을 멈추고 관련 산업에 종사하던 주민들 대부분이 죽거나 부상, 피난하면서 경제활동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경제성장률은 내전 초반인 2012년과 2013년에 각각 –30.8%, -36.5%를 기록하며 전례 없는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후 전황이 정부군에게 유리하게 호전되기는 했으나 지지부진한 전황과 계속된 소모전으로 인해 산업 재건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석유 생산량은 2011년 일일 35.3만 배럴에서 2018년 2.4만 배럴로 감소했고 #, 천연가스 생산량은 2011년 87억m3에서 2023년 30억m3로 감소했다. # 더욱이 기껏 생산한 에너지들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맞아 외국으로 수출할 수 없게 되면서 자금줄이 말라버렸다. 생산과 수출을 비롯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올스톱한 상태에서 정부가 월급을 주기 위해 찍어낸 시리아 파운드는 휴지조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공식환율에 따르면[10] 2011년 3월 미화 1달러에 47파운드로 교환이 가능했지만 2023년 4월에는 7,500파운드가 있어야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시리아의 1인당 GDP는 421.1달러로[11] 내전이 발발한 2011년의 1/7에도 미치지 못했다. 내전의 장기화와 정권의 부정부패로 인해 2023년 기준 UN의 보고에 따르면 시리아 인구의 최소 90%가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는 지경이다. # 이 때문에 과거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외세의 개입에 대한 불만으로 아사드 정권을 지지했던 민심이 이제는 확연히 돌아서버리고 말았다. 흔히 '배고픈 민주주의보다 배부른 독재가 더 낫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같은 논리가 오늘날 시리아에서는 '배고픈 세속 독재보다 배부른 이슬람 독재가 더 낫다'라는 식으로 전개되어버린 것이다. 아사드 정권 하에서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민중들은 반군의 공세를 기회로 길거리로 나와 정권 타도를 외치며 반군에 합류하게 되었다. # 추가로 시리아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수니파 입장에서는 아사드 정권 치하에서 소수의 시아파가 다수의 수니파를 지배하고, 또한 기독교나 드루즈 등 소수종파들이 자신들과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을 결과적으로 역차별로 받아들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12]
부차적으로는 남부 다라 주의 반군을 완전섬멸하는데 실패하여 양면전선을 형성하는 화근을 남겼고, 여기에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던 국가 및 단체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시리아에 신경쓰지 못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2022년에 발발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집중하느라 시리아에 신경을 쓰지 못했고,[13] 이란은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시리아 내 군사 시설 파괴 및 고위 관료 암살 공작으로 군사적 역량이 약화되었으며, 헤즈볼라는 2024년 9월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폭격으로 지도부가 몰살당했고, 직접적으로 군대를 파병하진 않았어도 아사드 정권에게 무기와 물자들을 공급하며 아사드를 간접적으로 지원해오던 중국은 2020년대에 와서 자국이 미중무역전쟁과 대봉쇄의 여파 탓에 극심한 경제난에 빠지고, 대만 해협 긴장 조성 등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과 메콩강 상류 댐 건설을 통한 수자원 독차지 등 아시아 역내 지역을 자국의 우선순위로 두는 대외 정책에 치중하게 되면서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한 관심과 무기 지원량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시리아의 우호국인 북한 역시 자국의 경제난과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으로 시리아에 대한 북한의 무기 지원이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아사드 정권을 지지해온 국가들 대부분이 다들 제 코가 석 자라 시리아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던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아사드 정권의 방심도 반군의 공세가 성공한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군은 2024년 11월까지 적어도 지도상으로는 반군을 튀르키예 국경지대까지 밀어붙일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 반군의 물주인 튀르키예가 물자 지원을 넘어 직접 월경하자 양국 군대의 충돌을 우려한 알 아사드는, 비록 내전을 완전히 종식하지는 못했지만 반군을 국토의 구석탱이에 몰아넣어 당장 정권을 위협하지는 못할 지경으로 만든 것에 만족하여 2020년 3월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중재 하에 반군과 휴전협정을 체결하고 장기적으로 정부군이 우위를 지닌 상태에서 정부 측에게 유리한 평화협상을 체결해 전쟁을 끝내겠다는 플랜을 추진했고, 이후 2024년 11월까지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서는 간헐적인 교전만 벌어졌다. 그러나 이러는 사이 정부군의 기강이 해이해졌고 지난 4년간 튀르키예의 지원으로 전력을 강화한 반군이 공세에 나서자 정부군은 순식간에 붕괴하였고, 결국 아사드 정권은 급속도로 무너져 전복되었다.
4. 반응
4.1. 이스라엘
-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중동의 역사적인 날로 평가하고 아사드 정권의 패망을 대체로 호의적으로 보고 있으며, 시리아와 국경 분쟁 지역인 골란 고원의 국경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
- 한편 이스라엘은 아사드 정권 때 구축한 화학 무기 시설 등 각종 전략 자산들이 정부 붕괴 이후 이대로 방치될 시 분명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 우려하여, 홈스 함락 직전 아사드 정권에게 최후통첩을 보냈으며, 결국 아사드 정권 자체가 붕괴된 게 확실시되자 골란 고원에 대한 완충지 확보 및 시리아 전략 자산 완전 파괴를 명분으로 시리아령 골란 고원을 침공했다.
4.2. 미국
4.3. 러시아
- 아사드 정권 붕괴 이전인 공세 초기,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이번 공세가 "이 지역 내 시리아 주권에 대한 침해"라고 비판하고 "시리아 당국이 가능하면 빨리 질서와 헌법 질서를 회복하기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
4.4. 이란
-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시리아 반군이 정권을 전복하고 승리를 선언한 것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음모에서 비롯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
4.5. 튀르키예
4.6. 프랑스
4.7. 독일
4.8. 영국
4.9. 대한민국
- 대한민국 외교부는 시리아 폭압 정권의 종식[14]은 "시리아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진전"이라고 평하면서, "이번 변화를 계기로 시리아 내 모든 폭력이 종식되고 시리아인들이 평화와 안정을 향해 나아가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4.10. 중국
4.11. 이라크
4.12. 요르단
4.13. 사우디아라비아
4.14. 북한
- 반군의 공세가 격화되자 12월 5일 반군과 그 배후세력을 맹렬히 비난했고 시리아 정부를 지지했다. #
[1]
사실상 반군 지원 세력의 주축으로 현 시점으로는 이스라엘과 함께 해당 전쟁의 최대 승자라고 할 수 있다. 반군들에게
러시아,
이란의 공백을 이용해 교전을 재개하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2]
동남부 반군인 시리아 자유군을 지원했다. 하지만 내전이 오랜 시간 지속되고 있어서 서방 측의 피로도가 쌓인 데다
트럼프 행정부 1기에 지원을 줄이면서 영향력이 축소되었다. 곧 재집권하게 되는 트럼프 역시 시리아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바 있어
알탄프 지역을 제외하면 서방과 미국의 영향력이 소멸되다시피 할 가능성이 높다. 시리아 자유군 등 남부 반군은
HTS 등 북부 반군에 비해 군사력, 행정력, 자금력, 전투 경험, 무기의 질에서 열세다. 그래서 반군간 내전이 재발한다면 전망이 밝지 않다.
[3]
알아사드 정권 붕괴 직후 반군의 승리를 경축하는 축전을 보냈다. 하지만 곧바로
골란 고원 완충지 확보를 위해 시리아 남부 지역에 대한 제한적 침공을 감행했으며, 동시에
쿠르드족의 자치권과 안전을
공식 지지하는 선언을 했다.
[4]
알 카에다와 연계된 전적이 있는
알누스라 전선에 다른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단체들이 합류하여 세운 조직이다.
[5]
자유 시리아군하고는 다르다.
[6]
라타키아,
타르투스 등
[7]
타이거 대령으로 알려진 수헤일 알 하산의 부대도 2015년 5월 이들리브에서 패전하면서 이런 정예 기간 병력들을 상당수 잃어버렸고, 이후로는 장교진 포함 1,000명의 기간 병력을 중심으로 휘하에 정예 민병대들을 충원받아 지휘하는 태스크 포스 형태로 작전하였다고 한다.
[8]
보수적으로 잡아도 2020년까지 알라위파 남성 청년의 1/3에 달하는 10만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9]
중추신경 각성제인 암페타민과 유사한 약물이다.
[10]
실질적인 화폐 교환이 이루어지는 암시장 환율은 이것보다 훨씬 높다.
[11]
시리아의 공권력이 붕괴하였으므로 통계에 잡히지 않은 GDP가 더 있기는 할 것이다.
[12]
소수의 수니파가 다수의 시아파를 지배했던 또 다른 바트당 계열인
사담 후세인 치하와 사담 후세인 정권 이전의 하심 왕조 치하의 이라크와는 반대되는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13]
러시아는 반군의 공세가 본격화되자 아사드 정부군을 돕기 위해 부분적으로 공중 지원을 해 주었으나 대규모 인적, 물적 지원을 하지는 못했고 결과적으로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14]
외교가에서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보통의
외교적 수사를 뛰어넘을 정도로 수위가 높은 어조다. 이처럼 강경한 투로 논평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 정권이 이미 회생 불능의 파멸 상태였고, 무엇보다
알아사드 정권의 시리아가 대한민국과 수교하지 않은 채
북한하고만 단독 수교한
친북 국가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