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01:34:57

1996-97 농구대잔치

1995-96 농구대잔치
우승팀: 기아자동차
MVP: 김유택
1996-97 농구대잔치
우승팀: 연세대학교
MVP: 서장훈
1997-98 농구대잔치
우승팀: 연세대학교
MVP: 서장훈

1. 개요2. 참가팀3. 운영방식4. 대회결과
4.1. 조별 리그4.2. 6강 플레이오프4.3. 대회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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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6년 11월 30일부터 1997년 1월 6일까지 펼쳐진 당시 대한민국 농구대회 중 최정상 레벨의 대회. 이 대회가 끝나자마자 KBL 원년시즌이 개막하였고, 이후 농구대잔치는 규모나 권위가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그런고로 스폰서가 없었다.
우승팀 준우승팀 MVP 신인상
연세대학교 상무 서장훈(연세대) 임재현(중앙대)
전희철(동양제과)

2. 참가팀

  • KBL 출범을 앞두고 금융 3팀(기업은행, 산업은행, 한국은행)이 농구팀 해체를 선언했다.[8] 이중 산업은행 농구단은 나래이동통신에 매각되어 팀을 이어나가게 되었고, 한국은행 출신 선수 3명( 김영래, 김상준, 이승학)도 나래이동통신으로 합류하게 되었다.[9] 한국은행의 나머지 선수들(김재득, 황상하, 신창남, 김도완 등)은 모두 선수생활을 접고 한국은행의 일반 행원으로 남았다. 나래이동통신에 공식 인수된 산업은행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기존 산업은행 선수단 중 10명만 나래이동통신으로 이적했고 안세환, 김동현 등은 은퇴 후 일반 행원으로 남았다. 뭐 국책은행은 그냥 취업하기도 어려운 곳들이니 언제 은퇴할지 모르는 농구선수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판단이긴 했다. 실제로 나래이동통신 소속으로 KBL에 진출한 선수 중 정인교, 이인규, 강병수, 최호를 제외하곤 3년 이내에 모두 은퇴했다.
  • 신생 실업팀인 동양제과 대우증권이 새로 참가하였다. 동양제과는 고려대와 한양대, 대우증권은 연세대와 명지대 출신 졸업생들을 주축으로 창단되었다.
  • 기업은행은 마지막 농구대잔치가 끝나면 나산그룹에 농구팀을 매각하여 팀을 존속시키려고 했으나, 내심 상무를 KBL에 참가시키고자 했던 프로농구연맹 측에서 기업은행 농구단의 인수를 불허하였다. 기업은행은 이에 반발하여 1996-97 농구대잔치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후 상무의 KBL 참가 불가 통보를 받은 프로농구연맹은 부랴부랴 기업은행과 나산그룹을 달래었고, KBL 개막직전 광주나산 플라망스를 겨우 참가시켜 8개 팀으로 프로 원년시즌을 시작했다.[10]
선수 학년 Pos. 출신교 선수 학년 Pos. 출신교
연세대 황성인 2 G 180 대전고 김승관 4 G 178 대경상고
은희석 1 G 189 경복고 조동현 2 G 186 대전고
조상현 2 F 188 대전고 최병훈 1 F 187 대전고
김택훈 3 F 193 홍대부고 신석 4 F 187 용산고
서장훈 3[13] C 207 휘문고 구본근 3 C 195 대전고
고려대 신기성 3 G 180 송도고 박규현 4 G 185 부산중앙고
강대협 1 G 187 동아고 이정래 1 G 189 명지고
오광택 1 F 186 대경상고 김기만 1 F 192 명지고
양희승 4 F 195 광주고 이규섭 1 F/C 198 대경상고
현주엽 3 F/C 195 휘문고 박재헌 4 C 200 Artesia H.S
경희대 박성배 4 G 180 경복고 하상윤 2 G 180 군산고
강혁 2 G 187 삼일상고 임성준
손규완 4 F 186 전주고 송영환 1 F 192 낙생고
김성철 2 F 195 삼일상고 황인덕 3 C 198 명지고
윤영필 3 C 193 휘문고 윤훈원 1 C 195 낙생고
건국대 박영진 3 G 182 계성고 김완수 1 G 180 송도고
김상우 2 G 182 송도고 홍성원
손창환 2 F 192 계성고
황문용 3 F 191 대경상고 이영준 1 F 192 광신정산
변청운 3 F/C 192 대경상고 신현식 4 C 196 대경상고
중앙대[14] 임재현 1 G 182 배재고 임성인 경복고
김병천 3 G 180 용산고 한규현 4 F 188 경복고
조우현 2 F 190 동아고 박준용 1 F 189 마산고
박준석 2 F 187 경복고 정훈종 1 C 205 마산고[15]
이은호 3 C 196 상산전자고 박도경 3 C 202 부산중앙고
한양대 이홍수 2 G 179 부산중앙고 강기중 3 G 180 대경상고
정락영 3 G 183 삼일상고 김성모 1 G 182 휘문고
이상영 4 F 188 대경상고 김지용 1 용산고
추승균 4 F 192 부산중앙고 김영준
최성우 3 F/C 191 단대부고 민병희 2 C 197 송도고
명지대[16] 김태진 4 G 174 배재고 김현수 4 G 상산전자고
표명일 3 G 182 양정고 최훈석 2 F 180 휘문고
황인성 3 F 185 휘문고 이병석 1 F 190 대전고
박재일 3 F 190 상산전자고 윤제한 4 F 192 휘문고
길도익 2 F/C 191 대전고 박종덕 1 C 198 상산전자고
단국대 김지윤 1 G 대경상고 정윤식 G 배재고
김동환 1 G 187 마산고
김정인 4 F 190 동아고 문광일
유상욱 배재고 양준호 4 C 197 단대부고
남진우 3 C 195 단대부고 곽기완 4 C 200 계성고
성균관대 이흥배 1 G 180 용산고 김두훈
김종흥 1 G 185 홍대부고 전병철
허훈 4 F 186 용산고 장해진
박주현 3 명지고 이지현
전재경 4 C 195 용산고 민경보

3. 운영방식

  • 조별리그: 대학 9팀, 일반부 8팀씩 2조로 나뉘어 조별 풀리그를 통해 각 조 3위까지 6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부여했다.
  • 6강 플레이오프: 각조 상위 3팀 씩 총 6팀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했다. (6강, 4강전, 결승전 모두 3전 2선승)

4. 대회결과

4.1. 조별 리그

순위 대학부 일반부
1위 연세대 8 - 0 상무 7 - 0
2위 고려대 7 - 1 현대전자 6 - 1
3위 경희대 6 - 2 SBS 4 - 3
4위 건국대 5 - 3 삼성전자※ 4 - 3
5위 중앙대 4 - 4 대우증권※ 4 - 3
6위 한양대 3 - 5 동양제과 2 - 5
7위 명지대 2 - 6 나래이동통신 1 - 6
8위 단국대 1 - 7 기아자동차 0 - 7
9위 성균관대 0 - 8
※ 승패 동률 시 골득실차로 순위 결정.

4.2. 6강 플레이오프

6강전 4강전 결승전
- 연세대학교 (대학 1위)
76 : 72
71 : 59
경희대학교
연세대학교
93 : 87
93 : 75
상무
현대전자 (실업 2위)
65 : 68
68 : 65
52 : 68
경희대학교 (대학 3위)
- 상무 (실업 1위)
62 : 60
97 : 89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대학 2위)
81 : 77
93 : 70
SBS (실업 3위)

4.3. 대회 결산


[1] 굵은 글씨로 표기된 선수들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12개팀 중 최하위) 멤버이다. [2] 96-97 농구대잔치 당시 상무 김홍배 감독은 스피드와 수비력 강화를 위해 김승기, 양경민을 중용했다. 대회기간 중 경기후 인터뷰에서 문경은은 "팀이 원한다면 4번(파워포워드)라도 뛰겠다"라면서 은연중에 출장시간에 대한 불만을 내비치기도 했다. [3] 수능점수 미달로 대입에 실패한 후 현대전자에 입단, 이후 KBL 초장기까지 토종 4번으로 쏠쏠한 활약을 했고, 원년시즌 전희철, 정재근 등을 제치고 KBL 토종 덩크슛 1호의 주인공이 되었다. [4] 센터 이창수가 간염(!!)으로 인해 선수생명이 위태로울 때였다. KBL 원년시즌을 통으로 날리고 1997-98 시즌 후반에 겨우 복귀하였다. [5] 발목부상으로 1997 KBL 원년시즌 초반까지 뛰지 못했다. [6] 에이스 허재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음주파문에 이어, 음주운전 & 뺑소니 사건까지 터뜨리며 구속된 상태였다. 곧 훈방되긴 했지만, 당연히 선수자격정지 먹고 농구대잔치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대한농구협회"에서 내린 징계라 "아마추어"선수 자격만 정지된 상태여서, 뒤이어 열린 1997 KBL 원년시즌에는 무리없이 출전했다는게 함정.. [7] 당시 흔치않았던 고졸 출신 실업선수로, 94년에 기아자동차에 입단했다. [8] 모두 국책은행이라, 은행업무 외의 영리 사업을 할수 없었다. [9] 원래는 김동철도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군 입대로 불발되었다. [10] 팀 인수 및 창단절차가 늦었던 광주나산은 1996년 11월에 열렸던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드래프트 탈락 선수들을 대상으로 부랴부랴 외인 2명을 찾아 선발했다. 근데 여기서 찾은게 빌라노바대 출신 득점기계 에릭 이버츠였다. [11] 대학농구연맹 소속 10개팀 중 동국대만 불참했다. [12] 굵은 글씨로 표기된 선수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최종명단에 뽑혔던 멤버이다. [13] 미국 유학 중 학적이 인정되지 않아, 3학년으로 복학. [14] 구병두, 신종석 불참 [15] 본래 95학번으로 입학하려고 했으나, 수능점수 미달로 재수를 했다. [16] 청소년대표출신 2학년 센터 장영재(197cm)가 부상으로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