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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바우두/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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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히바우두의 국가대표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2. 데뷔

1994 미국 월드컵에는 자국에서의 대활약에도 아쉽게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한다. 호나우두가 후보로라도 포함된 것에 비하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1997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국가대표에 승선했지만, 몇 경기 밖에 나오지 못하는 등 활약이 미미했다.

2.1.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진짜 그의 활약은 1998 프랑스 월드컵부터다. 전 대회인 미국 월드컵에서 맹활약했던 호마리우가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낙마하기는 했지만, 당시 브라질에는 호나우두의 파트너에는 호마리우와 호흡을 맞췄던 베베투, 2선 미드필더에는 레오나르두 아라우주와 히바우두 본인이 있었다. 또 든든한 주장이자 호마리우, 베베투와 함께 지난 대회 우승의 주역 둥가 아우다이르, 카푸 호베르투 카를루스가 양쪽 풀백으로 버티고 있던 어마무시한 팀이었다. 그는 10번 에이스 넘버를 받았고 주전으로 뛰기 시작한다. 브라질은 조별 리그 3경기를 2승 1패로 통과하고 히바우두는 조별 리그 3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6강에서 만난 칠레는 삼파이우와 호나우두가 2골씩 넣으며 4-1로 격파한다. 8강에서는 덴마크에게 1-0으로 지고 있는 상황, 히바우두가 역전골과 결승골을 넣으며 3-2로 역전승을 거뒀고 4강 상대 네덜란드 호나우두의 선제골[1] 파트릭 클루이베르트의 동점골로 1-1로 승부차기까지 가서 승리한다. 그렇게 오른 결승전 상대는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마에스트로 지네딘 지단 철의 포백이 버티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 전까지는 어렵사리 올라온 프랑스였기 때문에 압도적인 모습으로 올라온 브라질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다수였다.[2]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고 히바우두와 호나우두는 경기 내내 이전 경기와는 다른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고 결국 팀은 지단에게 2골을 내주는 등 3:0으로 대패하고 만다. 그리고 히바우두는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2.2. 1999 코파 아메리카 파라과이

1년 뒤 199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토너먼트에서만 4골 1어시스트로 맹활약하며 브라질의 우승을 이끈다. 히바우두는 대회 MVP로 선정되었고 호나우두와 함께 5골로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의 맹활약을 통해 히바우두는 1999년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였다. 브라질은 이렇게 다시 한 번 재기에 성공하며 다음 월드컵 역시도 기대되었다.

2.3.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1 마르쿠스 · 2 카푸 · 3 루시우 · 4 호케 JR · 5 에드미우송 · 6 R. 카를루스 · 7 히카르지뉴 · 8 지우베르투 · 9 호나우두
10 히바우두 · 11 호나우지뉴 · 12 지다 · 13 벨레티 · 14 A. 포우가 · 15 클레베르송 · 16 주니오르 · 17 데니우손
18 밤페타 · 19 주니뉴 · 20 이지우송 · 21 루이장 · 22 R. 세니 · 23 카카
파일:브라질 국기.svg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파일:히바우두 월드컵.jpg
​그러나 2002 한일 월드컵 전까지만 해도 팀의 조직력 문제로 말이 많았다. 지역 예선도 힘겹게 올라온 상태였고 호나우두는 부상에서 복귀한지 얼마 안된 상태였다. 하지만 본선에서 그들은 각성한다. 당시 공격의 삼각편대 3R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히바우두는 막강한 모습을 보여줬고 조별 리그에서는 C조에 걸려 터키[3], 중국, 코스타리카를 모두 꺾고 3전 전승으로 16강에 올라간다. 히바우두는 3경기에서 3골을 넣는다. 16강에서는 벨기에를 상대로 히바우두와 호나우두의 2골로 2-0 승리, 8강 잉글랜드를 상대로 또 다시 호나우지뉴와 히바우두가 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거둔다. 다음 4강 튀르키예전에서 호나우두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고 결승에서 독일을 만난다. 당시 독일은 올리버 칸이 버티고 있었지만 호나우두가 이를 뚫어내며 2골을 기록했고[4]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드는데 성공한다. 히바우두는 실버슈를 수상하고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2.4. 이후

그러나 셀레상에서의 히바우두는 2002 월드컵이 마지막 불꽃이었다. 2003년 11월 19일 우루과이와의 2006 독일 월드컵 남미 예선 경기[5]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은퇴하게 된다.

히바우두의 국가대표 경력을 정리하자면 메이저 대회에 겨우 3번 나갔을 뿐이지만 1998 월드컵 7경기 3골 2어시스트 + 베스트 11, 2002 월드컵 7경기 5골 1어시스트 + 실버슈 + 베스트 11, 1999 코파 아메리카 5경기 5골 1어시스트 + MVP + 득점왕 등 일단 나가기만 하면 매번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셀레상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진정한 애국자였다고 평가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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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바우두 어시스트. [2] 당시 프랑스는 조별 리그에서의 압도적인 모습에 비해 16강에서 파라과이와 연장 혈투 끝에 블랑의 골든골로 겨우 승리했고 8강 이탈리아와는 승부차기까지 갔으며 4강 크로아티아 역시 대회 득점왕 슈케르에게 선제골을 내주는 등 고전하다가 튀랑의 2골로 간신히 역전승을 거뒀다. [3] 이 경기에서 히바우두는 역대급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데 코너킥 볼을 받으려 기다리던 히바우두가 터키 선수가 찬 공에 다리에 볼을 맞지만 히바우두는 안면을 감싸안고 넘어지며 할리우드 액션을 시도했다. 이를 본 주심은 터키 선수에게 퇴장을 주는 병크가 일어난다. [4] 첫번째 골은 히바우두의 슈팅을 칸이 제대로 캐치하지 못하고 놓친 볼을 호나우두가 차 넣은 것이고, 두번째 골 역시 클레베르송이 호나우두에게 어시스트하기 전 절묘한 흘려주기로 독일 수비진을 교란시켰다. [5] 당시 3:3 무승부를 기록했다. 히바우두는 79분까지 뛴 후에 루이스 파비아누와 교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