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 앤 오츠의 주요 수상 이력
|
||||||||||||||||||||||||||||||||||||||||||||||||||||||||||||||||||||||||||||||||||||||||||||||||||||||||||||||||||||||||||||||||||||||||||||||||||||||||||||||||||||||||||||||||||||||||||||||||||||||||||||||||||||||||||||||||||||||||||||||||||||||||||||||||||||||||||||||||||||||||||||||||||||||||||||||||||||||||||||||||||||||||||||||||||||||||||||||||||||||||||||||||||||||||||||||||||||||||||||||||||||||||||||||||||||||||||||||||||||||||||||||||||||||||||||||||||||||||||||||||||||||||||||||||||||||||||||||||||||||||||||||||||||||||||||||||||||||||||||||||||||||||||||||||||||||||||||||||||||||||||||||||||||||||||||||||||||||||||||||||||||||||||||||||||||||||||||||||||||||||||||||||||||||||||||||||||||
|
Daryl Hall & John Oates | |
|
|
출신지 |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
멤버 | 존 오츠, 대릴 홀 |
장르 | 블루 아이드 소울, 팝 록, 소프트 록, 리듬 앤 블루스 |
활동 기간 | 1970년 ~ 2024년 |
레이블 |
Atlantic RCA Arista U-Watch |
링크 |
[clearfix]
1. 개요
앨범 ‘The Very Best Of’ |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출신의 블루 아이드 소울 듀오.
1970년대 초반 데뷔하여 1980년대 초중반에 업계의 정상에 머물러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블루 아이드 소울의 대표적인 뮤지션이며 필라델피아 소울을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 장르를 혼합하는, 그루브 있는 음악으로 흑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우리나라에선 인지도가 낮지만 영미권에서는 엄청나게 큰 사랑을 받은 그룹으로, 1980년대 초 차트를 지배한 그룹으로 평가받으며 한 시대의 상징격으로 여겨지는, 전설적인 그룹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이들보다 적게 회자되지만, 당대 인기는 엄청났으며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며 상당한 고정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전설적 그룹이다. 현대에 잘 알려져있는 1980년대 대표 아티스트인 마돈나/프린스/마이클 잭슨/조지 마이클 못지않게, 오히려 차트에서는 더욱 큰 히트를 친 아티스트가 바로 홀 앤 오츠와 필 콜린스인데, 홀 앤 오츠의 경우 특히나 80년대 초 약 3-4년간 대중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다.
1970년대에는 선술한 블루아이드 소울, 특히 필라델피아 소울의 영향을 받은 앨범들을 발매한 반면, 성공가도를 달린 1980년대에는 여기에 팝, 록, 그리고 신스팝적 요소를 추가해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다만 한국에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데, AC/DC, 롤링 스톤스와 함께 이러한 부류의 가수들의 예시로 항상 언급된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의 그들의 인기는 80년대 당대에도 엄청나서 일본판 한정 앨범도 발매하고 80년대는 물론 90년대에도 여러 번의 대단위 라이브를 펼친 바 있다. 예를 들면 한창 인기몰이를 시작하던 1982년의 NHK 홀 라이브나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ftYgy2xNLF0), 1988년 은튀후 1차복귀 당시 일본에서 열린 도쿄돔 라이브도 완전히 만원으로 들어찬 모습을 볼 수 있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ieuUvg-KjWk).
여섯 개의 빌보드 핫 100 1위 곡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스티비 원더가 10곡, 마돈나가 12곡, 엘튼 존이 9곡의 싱글 1위곡을 갖고 있는 것과 비교해봐도 대단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앞에 언급된 가수들은 이러한 1위곡들을 10년이 넘는 긴 기간 동안에 기록한 반면 홀 앤 오츠는 5개의 넘버 원 싱글을 1981년에서 1984년 사이에 기록했다. 80년대 중반 이들의 인기를 짐작케 하는 기록으로 1984년 "Out of touch"가 마지막 1위를 기록했을 때까지, 80년대 이들과 동수인 5곡의 넘버 원 싱글을 기록한 유이한 가수는 바로 마이클 잭슨뿐이었다.
특히 빌보드 탑 40곡을 80년대로 한정하면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보다도 더 많은 싱글 히트곡을 (총 Top 40곡은 29곡, 그중 22곡이 80년대) 보유한 팝의 전성기인 80년대 최고의 듀오였다. 이 기록이 어마어마한 건 이들이 발매한 총 싱글수가 63개였다는 것. 즉 29/63, 46%, 싱글 두 곡당 최소 한 곡은 탑 40에 들었단 이야기이다. 이는 2000년대기록까지 합한 것이니 80년대만 따지자면 전성기에는 거의 싱글을 내는 것마다 최소 빌보드 탑 40는 기본이었다는 소리다. 싱글 한 장에 보통 A, B면 두 곡이 실리고 A면이 타이틀 곡이니 싱글을 낼 때마다 히트곡이 나온 셈.
그리고 이 기간에 기록한 탑 10 싱글의 갯수는 총합 13개인데, 이 당시에는 싱글컷된 노래들만 차트에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보기 희귀한 기록이다. 보통 1년에 싱글을 4~5개 정도 발매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은 이 기간 동안 발매한 대부분의 싱글들이 대히트했다는 것이 체감뿐만 아니라 기록으로도 확실하게 증명이 된다. 대단한 점은 데뷔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중견 아티스트가 서서히 인지도를 높이다가 데뷔 10년 차에 최전성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빌보드에서의 위상은 2008년 발표한 1958년- 2008년까지 50년간 가장 싱글차트에서 빛을 발했던 100인의 아티스트 (링크 https://www.listal.com/list/billboard-hot-100-alltime-top)에서 15위를 차지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참고로 프린스가 16위).
당시 이들의 인기를 보여주는 대표적 공연으로 1985년에 뉴저지의 리버티 스테이트 파크에서 열린 라이브를 보면 약 6만명 이상의 관중이 들어찬 모습을 보여준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ZRTTES4BZ04).
이렇게 전성기를 맞이한 그들은 1984년 자신들의 6번째 빌보드 1위곡을 만들어 낸 후, 그들의 음악적 우상이자 60-70년대 소울의 대부인 템테이션스과의 1985년 아폴로 극장 합동 라이브를 치른 후 (홀과 오츠에겐 데뷔때부터 이들 선배들과의 공연이 꿈의 무대였다고 한다) 상업적 인기에 염증을 느끼고 잠정적 은퇴를 결정한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의 활동공백기 동안 대릴 홀은 솔로가수로 1986년 빌보드 5위를 차지한 "Dreamtime"을 발표하는 등 커리어를 이어간다.
3년의 공백후 그들은 다시 음악적 결합의 갈증을 느끼고 선술한 "Oh Yeah!"앨범으로 복귀한다. 이들의 80년대 중반까지의 인기를 반증하는 예로 바로 이 1988년 복귀때 반응을 들 수 있는데, 이때 처음으로 싱글컷 된 "Everything your heart desire"가 빌보드 핫 100에서 3위를 차지했음에도 본인들을 포함 평단에서 '실패'쪽으로 판단했을 정도 (즉 1위를 기대했다는 이야기이다). 홀&오츠의 사실상 전성기의 마지막 히트곡은 이들의 32번째 싱글핫차트 100 히트곡이자, 28번째 빌보드 핫 탑40이자, 21번째 연속 탑 40싱글곡인 "Oh, Yeah!"앨범 수록곡 "Downtown life"였다. 1990년의 So close (빌보드 11위)가 있었지만, 역시 이 곡을 포함해 3곡의 히트싱글이 포함된 1988년의 Oh Yeah!가 마지막 전성기 앨범이라고 볼 수 있다.
해외에서는 엄청난 거물이지만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아티스트 중 하나다.[1]이는 아마도 80년대 다른 뉴웨이브 신스팝 계열의 스타들에 비해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약간은 생소한 느낌의 장르의 대표격이었던 이유도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에서도 골수 팬이 존재하고 있고,[2]또 광고음악, 영화음악 등에 이들의 음악이 많이 쓰여서 사람들에게 알려진 곡이 많이 있다. you make my dreams 같은 노래는 TV 예능에서 브금으로도 종종 등장하는 편이다.
주로 Hall & Oates로 알려져 있으나, 이들의 공식명은 사실 Daryl Hall and John Oates이다. 본인들은 듀오라고 불리는 것보다 독립적인 두 아티스트의 협업으로 인식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를 거쳐 현재까지도 (가장 최근 앨범은 2018년) 대릴 홀 자신의 집을 개조한 스튜디오에서 가수들을 초청해 라이브를 유튜브로 공개하는 "Live from Daryl's House"를 통해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2. 역사
2.1. 이들의 만남
1946년 필라델피아 근교 포츠타운에서 태어난 대릴 홀 (Daryl Hall)은 타고난 음감과 음악적 재능이 특출난 아이였다. 성가대 활동과 어머니로부터의 보컬 트레이닝을 통해 어린 나이부터 조기교육을 받았다. 역시 다양한 음악적 환경에서 자라났던 존 오츠 (John Oates)는 1948년 뉴욕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필라델피아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1967년 필라델피아의 아델피 볼룸에 있었던 한 쇼에 참가하던 중 발생한 총격전으로 인해 대피하다가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조우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 이들은 둘 다 템플 대학교에 재학하고 있었으며 각기 다른 밴드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들은 곧 룸메이트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1970년에 정식으로 듀오를 결성하게 된다.2.2. 성공의 시작
이들은 서로 간의 음악적인 공통점을 발견하고 같이 작업을 시작한 이후 뉴욕으로 거주를 옮겨 새로운 음악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이들은 이후 Tommy Mattola[3]를 매니저로 영입하게 되고 1972년 Whole Oats[4]라는 타이틀로 Atlantic Record와 계약을 맺어 같은 해 첫 앨범 "Whole Oats"를 발표하게 된다. 유명 프로듀서인 아리프 말딘이 제작하였으나 히트곡을 내진 못하였다.1973년 두번째 앨범 《Abandoned Luncheonette》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역시 아리프 말딘의 제작으로 좀 더 독자적이고 세련된 사운드를 생산해냈는데 평론가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발매 당시는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후 수록곡인 She's Gone은 1976년에 역주행에 성공한다. 1974년 싱글 발매 당시에는 홀 앤 오츠가 미국 전국에서 인기를 얻기 전이라 자신의 도시인 필라델피아 차트에서는 4위까지 올랐었으나 전국 차트, 즉 빌보드 핫 100에서는 60위가 최고 기록이었다. 즉 지역 히트였다.
1974년 토드 런그렌을 프로듀서로 맞이하여 세번째 앨범 "War Babies"[5]를 제작하나 크게 실패하자 Atlantic Record는 이들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게 된다. RCA로 옮겨 네번째 동명 타이틀의 앨범 "Daryl Hall and John Oates"를 1975년에 발표한다. 이 앨범에서 Daryl Hall의 당시 여자 친구였던 Sara Allen에 대한 헌정곡, "Sara Smile"이 빌보드 핫 100 4위, 1976년 빌보드 연말 차트 12위까지 올라 이들의 잠재력을 보여주게 된다. Atlantic Record 시절의 She's Gone이 뒤늦게 차트에 등장하여 1976년 차트 6위를 기록하였다.
1976년 발표된 "Bigger Than Both of Us" 앨범의 두번째 싱글인 Rich Girl으로 이들은 드디어 1977년에 빌보드 핫 100 1위 곡을 얻게 된다. 이들은 또한 공연실황이 담긴 라이브 앨범 "Live Time" 등 앨범을 연속적으로 발표하며 끊임없는 창작력을 과시하였다.
2.3. 전성기
I Can't Go for That (No Can Do) [1981] |
Maneater [1982] |
그들은 여기에 만족치 않고 곧 1981년 걸작 "Private Eyes"를 발표하며 Private Eyes와 I Can't Go for That (No Can Do)을 차례로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려 이들이 황금기에 들어섰음을 선언한다.
이어서 1982년작 "H2O"에서는 Maneater가 마이클 잭슨과 폴 매카트니의 The Girl Is Mine을 밀어내고 빌보드 핫 100 1위에 4주간 머물게 된다. 1983년 컴필레이션 앨범 "Rock'n Soul Part 1"에 포함된 신곡 Say It Isn't So는 마이클 잭슨과 폴 매카트니의 Say Say Say에 밀려 2위에 머문다. 홀 앤 오츠는 1984년작 "Big Bam Boom"의 싱글 Out of Touch를 통해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르며[7] 다시 정상에 오른 후 다음 해 1985년 기념비적인 Apollo Theater 공연과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끝으로 휴식기에 들어간다.
2.4. 쇠퇴기
이들은 1988년 Arista사를 통해 "Ooh Yeah!" 앨범으로 컴백하나 정상의 인기를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이 앨범의 리드 싱글 "Everything Your Heart Desires"는 빌보드 핫 100 3위, 1988년 빌보드 연말 차트 80위 권 안에 든 히트곡이었다. 1990년대에는 "Change of Season" 앨범 이후 긴 동면기를 갖게 된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서 계속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감으로써 20세기에는 누리지 못했던 예술과 상업 양 차원의 동시적인 성공을 60세를 넘긴 시기에 얻게 된다.2.5. 해체
2023년 11월, 오츠가 그룹의 퍼블리싱 지분을 프라이머리 웨이브 뮤직에 양도하려는 계획을 진행하자 홀이 고소를 하게된다.홀은 파트너십 배신이라 주장하고 오츠는 이런 주장에 대해 염려되며 이상하고 부정확하다고 맞받아쳤다.
2024년 4월, 롤링스톤지와의 인터뷰에서 오츠는 자신은 홀 앤 오츠라는 그룹에서 이제 나갔으며 둘이 함께 공연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 했다.
2024년 5월, 자신의 솔로 6집 앨범 D.를 홍보하기 위한 버라이어티지와의 인터뷰에서 홀도 오츠의 인터뷰 내용이 맞다고 인정하며 그룹은 54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해체되었다.
3. 디스코그래피
3.1. 스튜디오 앨범
발매일 | 제목 | 리드 싱글 | 빌보드 성적 |
1972.11 | Whole Oats | Good night and good morning | |
1973.11 | Abandoned Luncheonette | She's Gone | 6위 |
1974.10 | War Babies | Can't stop the music | |
1975.8 | Daryl Hall and John Oates | Sara smile (2nd Single) | 4위 |
1976.8 | Bigger than Both of Us | Rich Girl (2nd single) | 1위 |
1977.2 | No Goodbyes | It's uncanny | 80위 |
1977.9 | Beauty on a Back Street | Why do lovers (break each other's heart?) | 73위 |
1978.8 | Along the Red Ledge | It's a laugh | 20위 |
1979.10 | X-static | Wait for me | 18위 |
1980.7 | Voices | Kiss on My List (3rd single) | 1위 |
1981.9 | Private Eyes | Private Eyes / I Can't Go for That (No Can Do) | 1위 |
1982.10 | H2O | Maneater | 1위 |
1983.10 | Rock'n Soul Part1 | Say it isn't so | 2위 |
1984.10 | Big Bam Boom | Out of Touch | 1위 |
1988.4 | Ooh Yeah! | Every thing your heart desires | 3위 |
1990.3 | Change of Season | So close | 11위 |
1997.9 | Marigold Sky | Promises ain't enough | 28위 |
2003.2 | Do It for Love | Do it for love | 1위(AC) |
2004.10 | Our Kind of Soul | I'll be around | 97위 |
2006.10 | Home for Christmas | It came upon a midnight clear | 1위(AC) |
4. 여담
솔로 앨범을 포함한 각자의 활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대릴 홀은 2007년부터 Live from Daryl's House라는 인터넷 방송으로 크게 인기를 얻게 되어 차후 정식 프로그램으로 제작하여 2017년까지 방영된 바 있다. 유명한 뮤지션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각자의 히트곡 등을 같이 연주하는 내용이다.1980년작 Voices 앨범의 네번째 싱글이었던 You Make My Dreams는 발매 당시보다 시간이 지난 2000년대에 재평가되는 곡이다. 영화 "웨딩싱어"를 시작으로 500일의 썸머[8], 레디 플레이어 원등의 영화에 사운드트랙으로 쓰이고 코카콜라 광고에도 쓰였다.[9]아카펠라 그룹 Pentatonix가 커버하여 UglyDolls의 사운드 트렉으로 발매하였다. NHL의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의 홈구장 스코샤뱅크 아레나에서 18/19시즌 부터 홈팀의 득점곡으로 사용.[10] 대릴 홀이 노래했지만 듀오의 공동작업물이며 기본적으로 존 오츠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곡이다. 존 오츠도 자신의 2011년 솔로 앨범에서 블루그래스 스타일로 커버한 바 있다.
2000년대에 이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된 것은 위 두 가지 사항의 공이 크다.[11]
남성 듀오로는 10년 정도 일찍 활동한 사이먼 앤 가펑클과 비견되는 측면이 있다. 둘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남성 듀오에, 키다리 보컬리스트+땅딸막한 기타치는 작곡가 컨셉이 아주 유사하다.[12] 일찍 해체한 사이먼 앤 가펑클과 달리 홀 앤 오츠는 롱런하고 있다.
GTA 바이스 시티의 팝 채널 Flash FM에서 이들의 곡인 Out of Touch가 송출된다. 바이스 시티의 프리퀄인 GTA 바이스 시티 스토리즈에서도 같은 채널에서 이들의 Family Man이 송출된다.
Grand Theft Auto IV의 80년대 라디오 채널인 Vice City FM에 그들의 히트곡 중 하나인 Maneater가 나온다. 그리고 GTA 4의 확장팩인 TBoGT에서 등장인물인 에반 모스가 LP를 틀어놓고 이 노래를 따라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도 있다. # Maneater는 메탈 기어 솔리드 5에도 사용되었다.
Grand Theft Auto V의 라디오 채널 중 NONSTOPPOP에서 Adult Education이 나온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등장인물 홀 호스는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
가수 백예린이 이들과 관련된 노래를 여러곡 낸것으로 보아 홀 앤 오츠의 팬 내지 애청자로 추정된다. [13]
[1]
80년대의 해외 팝 스타 중에는 가사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검열당해 국내에서는 거의 인지도가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예가
프린스.
[2]
윤종신,
김구라 등
[3]
공격적인 프로모션으로 유명하였다.
머라이어 캐리의 첫 남편으로 그녀의 발견을 통해 업계 정상의 성공을 쟁취하게 된다. 1990년대는 타미에게 전성기였다. 물론 몇 년 지나지 않아 이혼해서 머라이어 팬들 사이에서는 금기어에 가까운 인물이다.
[4]
언어유희다. Whole이 Hall처럼, Oats가 Oates처럼 발음나기 때문이다.
[5]
다이나믹 듀오의 고백은 이 앨범의 수록곡 You're Much Too Soon의 기타 리프를 샘플링 한것이다.
[6]
영국 가수인 폴 영이 1985년에 불러
빌보드 핫 100 1위, UK 차트 4위를 기록한 대히트곡인 '
Everytime You Go Away'는 사실 대릴 홀이 작곡한 곡으로 이 앨범에 먼저 수록되어 이들이 먼저 발표한 곡이다. 다만 이들의 버전은 히트하지 못했다.
[7]
이들의 6번째 빌보드 핫 100 1위 곡이었다.
[8]
톰(
조셉 고든 레빗)이 조이(
주이 디샤넬)와 하룻밤을 같이하고 사랑에 빠진 상황에서 세상이 모두 아름다게 보이는 장면에 등장하는 곡.
https://youtu.be/t2VGpqq2-I8
[9]
박보검이 등장하는 코카콜라 광고 Coke & Meal 편에서 BGM으로 사용.
https://youtu.be/A4lkS9C2c2Y
[10]
골 혼(Goal Horn)이 나오자마자 나오는 곡, 홈팀의 득점에서 나오는 골이라 관중들이 신나게 따라부른다.
https://youtu.be/H1JpS3BbDLE
[11]
이들에 대한 재평가의 과정과 뒷 얘기는 다음의 덕후스러운 브런치북을 참고하길 바란다: https://brunch.co.kr/brunchbook/hall-oates
[12]
다만 음악적으로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파급력이 더 크다 평가받고 있다.
[13]
Sara Smile은 홀 앤 오츠가 부른 것을 리메이크했고, 아예 노래 제목이 Hall & Oates인 것도 있다. 또한 '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는 홀 앤 오츠의 I Can't Go for That과 비슷한 분위기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