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프리드리히 4세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프리드리히 4세의 생애를 정리한 문서.2. 대공
2.1. 무능하고 방탕한 황자
프리드리히는 오토프리트 5세의 세 아들 중 차남으로 대공 작위를 수여받았다. 당시 황실에는 차기 황제 자리를 두고 장남 황태자 리하르트와 삼남 클레멘트 사이의 격렬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반면에 프리드리히는 젊을 적부터 각종 유흥, 향락, 사치 등을 즐기는 방탕한 생활에만 몰두하기만 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유력 제위계승권자는 근면하고 교양이 풍부한 리하르트와 행동력이 넘치는 클레멘트로 좁혀지고, 프리드리히는 제위계승경쟁에서 밀려난 채 유흥에 빠져 살았다.하지만 구두쇠에 가까웠던 아버지 탓에 프리드리히는 항상 유흥비가 부족했고, 덕분에 외상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프리드리히는 즉위하기 직전에도 고급 매춘부와 술집에 무려 54만 제국마르크에 달하는 외상 독촉에 시달렸다.[1][2] 대공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옛날이라면 황족의 힘으로 라이히스 리터(제국기사) 칭호를 하사하여 최하급 위치이지만 귀족으로 만들어주는 것으로 빚을 갚을 수 있었겠으나[3] 이 방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수없이 남발된 탓에 현재의 라이히스 리터는 명예직으로써의 가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빚쟁이에게 쫓겨다니던 프리드리히 대공은 외상빚을 갚을 마땅한 방법이 없자 최후의 방법을 떠올리게 된다. 고급 주점 '뷔르거'에 진 외상빚 2만 2천 제국마르크를 어떻게 해결하지 못한 끝에, 황위계승권을 가진 대공이 일개 평민인 뷔르거 주인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제국 역사상 초유의 사태를 벌이고 만 것이다. 본의 아니게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이 된 뷔르거의 주인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른 평민이나 귀족들에게는 한 때를 즐길 비웃음거리였으나 평민 신분의 뷔르거 주인은 이런 사건에 휘말려드는 것 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돈을 받을 구석도 없고 그렇다고 안 받고 그냥 넘어가주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닌지라 고민을 거듭하던 뷔르거 주인은 훗날 대공이 제위에 오른다면 빚의 20배에 해당하는 액수로 변제한다는 증서를 받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지었다. 유흥에 빠져 평민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한심한 황자가 제위에 오를 가망은 없었으니 뷔르거의 주인은 요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선례를 남기지 않으면서도 황족과 다툼을 벌여 본인이 위해를 당하는 것도 방지한 셈이었다.
거대한 제국의 황자가 유흥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평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는 프리드리히를 지지하는 귀족 세력이 전무했다는 것이며 본인의 위엄을 유지할 능력도[4] 의지도 없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굴욕적인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부황과 황실에게 외면받고 있었고 귀족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어있었는데, 이제는 평민층에서도 비웃음거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빌헬름 폰 클롭슈톡 후작을 위시한 유력 대귀족들은 프리드리히의 면전에서도 험담을 늘어놓았고, 힘없는 하급 귀족들과 평민들조차 뒤에서 몰래 비웃을 지경이었다. 프리드리히 대공의 측근으로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자작가의 별 볼 일 없는 삼남 출신인 시종무관 정도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2.2. 엉겁결에 황제가 되다
그런데 제국력 452년에 오토프리트 5세의 장남 리하르트가 제위 계승을 노리고, 부황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다 발각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황태자 리하르트와 그를 옹호한 신하 60명은 전원 처형되었고, 오토프리트 5세는 삼남 클레멘츠를 황태자에 책봉했다. 그런데 3년 뒤 리하르트 황태자가 꾸민 역모는 클레멘트 일파의 누명이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고, 이번에는 클레멘트를 지지한 신하 170명이 숙청당했다. 클레멘트는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하려고 했지만 '우연한 사고'로 우주선이 폭발해 사망했다.오토프리트 5세는 아들들이 황위를 두고 골육상쟁을 벌이다가 단 1명을 제외하고, 모조리 죽어버린 참극을 경험하자 회복할 수 없는 충격을 받게된다. 그 충격으로 인해 쓰러진 오토프리트 5세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고, 그가 붕어하던 시각에 옆을 지키던 사람은 누구도 택하지 않았던 프리드리히 대공 뿐이였다. 결국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오토프리트 5세는 프리드리히를 차기 계승자로 지명했고, 그렇게 프리드리히 대공은 32세의 나이로 은하제국 36대 황제 '프리드리히 4세'로 즉위하게 되었다.
그리고 황제 프리드리히 4세는 대공 시절 뷔르거의 주인과 맺었던 약속을 잊지않고 그에게 빚의 20배에 해당하는 1080만 제국마르크를 하사하였다.
3. 은하제국 황제
3.1. 무능한 황제
순전히 운으로 제위에 오른 프리드리히 4세는 처음부터 국정은 내팽개치고 각종 토목공사를 벌여 아버지가 가득 채운 국고를 낭비했다. 그는 지기스문트 2세와 아우구스트 2세 처럼 제국을 단기간에 말아먹을 폭정을 벌이지도 않았지만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 처럼 특별한 치적을 남기지도 않았다. 따라서 국정은 황제가 총애하는 국무상서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이 대신 처리했는데, 리히텐라데 후작은 무능한 자는 아니었지만 보수적인 사람이라서 큰 탈 없이 국가를 다스리며 자신의 권력욕을 눈치챈 자들을 궁정 밖으로 내쫓는 데만 열중했지 새로운 정책, 법률을 결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프리드리히 4세 치하 제국은 커다란 위기가 오지는 않았지만 타성에 젖어가며 점점 안에서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후세 역사가들은 프리드리히 4세의 시대를 가리켜 범용, 태만, 관례, 피로, 폐색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표현상 딱 은하연방 말기와 상당히 유사하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황제의 외척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을 비롯한 대귀족들의 세력이 점차 비대해졌다.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에 비견될 카스트로프 공작 오이겐은 문벌귀족 사회조차 비난할만큼 천문학적인 부정축재를 일으키는 등, 황제가 정무에 무관심한 사이 대귀족들의 전횡이 심각해져갔다. 상당한 세수가 귀족층에 흡수되어 국가 운영에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고, 반란군과의 전쟁이 만성화되면서 귀족 장원에서의 착취, 무거운 세금 부담에 병역 부담까지 부과된 신민들의 불만도 커졌다.[5]
프리드리히 4세의 재위기간은 31년으로, 제국 황제의 평균 재위기간 13년의 2배가 넘으며 재위기간 41년의 루돌프 대제에 이어 골덴바움 왕조 역대 황제 중 두번째로 제위에 오래 머물렀다. 32세의 방탕한 대공이 63세의 노인으로 눈을 감는 동안 나라가 무탈하게 운영되었다는 것은 칭송받을 일이나,[6] 심화되는 내부의 악폐습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정무에 손을 놓은 점은 프리드리히 4세를 암군으로 평가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황제가 달리 치적을 쌓지 않자 중신들이 나서서 군사적 영예를 만들어드려야 한다며 반란군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실로 어이없는 일까지 있었는데, 이로 인하여 황제가 총애하는 애첩의 동생이 공훈을 쌓아 10대의 나이에 군 원수직에 오르고 결국 로엔그람 왕조를 개창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3.2. 여성취향
프리드리히 4세는 대공 시절부터 다양한 여성들을 탐닉하고 다녔다. 전반기에는 원숙하고 풍만한 여성을 선호하며 연상의 귀부인을 취향으로 삼아, 대공 시절에 결혼한 황후는 장식으로 내버려두고 유부녀에게 손대는 일이 많았다. 프리드리히 4세의 재위 시절 제국 변경의 말단 영주 아이젠헤르츠 남작이 자신의 아름다운 부인을 약 1년 간 황제에게 헌상한 대가로, 백작의 작위를 하사받는 걸로도 모자라 궁내상서에 임명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일의 영향으로 여러 귀족들이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의 취향에 맞는 여성을 구해 진상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아내 혹은 친척들을 황제에게 하룻밤 상대로 바치는 일까지 벌어졌다.그러나 제국력 477년에 프리드리히 4세의 나이가 50대로 접어들고, 황후가 폐렴으로 사망한 이후에는 갑자기 10대 중반의 소녀를 선호하기 시작했다.[7] 이로 인해 황제의 애첩으로 선정된 것이 당시 16세였던 주산나 폰 베네뮌데. 베네뮌데는 후작부인의 작위를 받고 한동안 프리드리히 4세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그의 아들까지 임신하는 영광을 누렸으나, 황제의 애첩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면서 순수하고 청초했던 처음의 모습을 잃고 점차 권력에 물들기 시작했다.[8] 이때부터 프리드리히 4세는 베네뮌데를 서서히 멀리하기 시작한다.
베네뮌데에 대한 애정이 식으면서 프리드리히 4세의 취향이 규방의 한 떨기 꽃에서 들에 핀 꽃으로 바뀌게 되자, 궁내성 관리들이 대거 거리에 나가 황제의 취향에 맞는 여성을 찾아 헤매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황태자 루트비히가 죽어서 새 사내아이를 얻어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으므로 궁내성 직원들은 분주하게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소녀들을 찾았다. 그러나 힘들여서 찾아봤자 프리드리히 4세는 한 달도 안 가서 싫증을 내 버렸으니 궁내성 직원들은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당시 군무상서가 내각회의에서 전선에 병력이 부족한데 궁내성이 너무 많은 직원을 거드리고 있다고 불평하자 궁내상서가 "총탄과 광선이 오고가지는 않지만,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처절한 전쟁을 하고 있다"하고 있다고 대꾸한 일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말단 직원 중 하나인 콜비츠의 눈에 걸려든 인물이 바로 안네로제 폰 뮈젤이었다. 궁내성은 안네로제의 아버지 세바스티안 폰 뮈젤에게 50만 제국마르크를 지참금으로 주고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비록 안네로제는 팔려오다시피 프리드리히 4세에게 진상되었지만 제법 황제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고, 이후 전임인 베네뮌데가 후작부인의 작위를 받은 것처럼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의 작위를 수여받으며 사실상 황후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안네로제는 베네뮌데와 그외 다른 애첩들과는 달리 정치에 관여하거나 권력을 과시하기는 커녕, 프리드리히 4세에게 그 어떤 개인적인 부탁도 하지않고 오히려 그를 편안히 대해주며 조용히 지내는 처신을 보였다. 항상 '청초하고 순수한' 모습을 유지하는 안네로제의 모습에 프리드리히 4세는 그녀를 더욱 총애했고, 이후 안네로제는 20살이 넘은 뒤에도 프리드리히 4세의 총애를 받는 유일한 애첩이 되었다.[9] 그런데 그녀의 동생 라인하르트 폰 뮈젤은 행복한 일상을 파괴하고 사랑하는 누이를 데려간 프리드리히 4세에게 복수심을 품게 되었고, 친우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와 함께 언젠가 황제로부터 누이를 되찾아오겠다고 맹세했다.
3.3. 천억의 별, 천억의 빛
시계열상 첫 등장은 외전 1권 <황금의 날개>. 유년학교를 졸업한 라인하르트는 본래 준위로 임관해야 했지만 프리드리히 4세는 특별히 소위로 임관시키라고 지시했다. 고작 소위 임관에 매달려 반대하는 신하도 없었기 때문에 라인하르트는 졸업하자마자 바로 소위로 임관했다.이후 외전 4권 <천억의 별, 천억의 빛>에서 등장한다. 반플리트 성역 회전이 벌어지기 직전 신임하는 시종무관 리하르트 폰 그림멜스하우젠 자작이 전투에 참여하려 하자 우주함대 사령장관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는 이 무능한 골칫거리를 전투에서 배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4세는 어차피 여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두어라고 지시했고, 그림멜스하우젠의 전투의지는 자살 연극을 할 정도로 차고 넘쳤기 때문에 뮈켄베르거는 그림멜스하우젠 함대를 전선에 배치할 수 밖에 없었다.
반플리트 성역 회전이 끝나고 제국군 원정함대가 오딘으로 귀환하자 프리드리히 4세는 그림멜스하우젠을 대장에 서임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어차피 여생도 얼마 안 남았으니 대장에 서임해도 문제 없고, 이제 더 이상 전선에 나갈 일도 없다고 덧붙였는데, 그러자 골머리를 앓던 군부와 궁정은 타협점을 찾아 그림멜스하우젠 자작을 대장에 서임하되 전선 근무에서 배제시켰다. 그리고 안네로제와 그림멜스하우젠의 추천을 받아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를 소령에 서임했다.
제국력 485년 6월 11일 프리드리히 4세는 대장 승진에 대한 사례 인사를 하러 온 그림멜스하우젠 자작과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예의는 있지만 두서가 없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500초 동안 나누어 시종들을 지루하게 만든 뒤 라인하르트 폰 뮈젤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림멜스하우젠은 라인하르트의 젊음을 보고 젊음이란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했고 프리드리히 4세도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 중에 라인하르트가 못할 것은 없을 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제국기사에 불과한 라인하르트가 성년이 되면 어엿한 귀족의 가명,家名,을 내려주겠다고 말했고 관록이 붙는 건 라인하르트가 아니라 가문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사방에 퍼졌고 누이를 버린 파렴치한의 성씨를 버릴 수 있게 된 라인하르트는 기뻐했지만 문벌귀족들은 루돌프 대제부터 내려온 명문 로엔그람 백작가를 벼락출세한 애송이가 하사받는다며 라인하르트와 프리드리히 4세를 한꺼번에 비난했다. 물론 황제에게 비난을 가해도 공식석상이 아니면 불문에 부치는 통례 때문에 귀족들의 발언은 처벌받지 않았다.
같은 해 6월 14일 프리드리히 4세는 신임하는 신하이자 국무상서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에게 라인하르트가 성년이 되면 로엔그람 백작가를 하사하기로 결정했다. 무문의 명가인 데다가 라인하르트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새로 가문을 만드는 게 아니고 대가 끊긴 가문을 재흥하는 거라면 귀족들이 늘어나서 귀찮아질 일이 없다고 반대하지 않았다. 이후 올해 안에 새로운 출병이 있는지 묻고 국무상서가 통수본부로부터 출병계획안이 제출되었다고 보고하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품을 했다.
3.4. 별을 부수는 자
제국력 486년 프리드리히 4세는 라인하르트 폰 뮈젤이 제3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동맹군 제11함대를 격파하고 사령관 윌렘 홀랜드 중장을 사살하는 공을 세우자 대장에 서임하고 대장 예우에 따라 신조전함 브륀힐트를 수여했다. 프리드리히 4세를 증오하던 라인하르트도 은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전함을 보고 진심으로 사자를 통해 황제에게 감사를 표했다.제국력 486년 3월 21일, 제국의 대귀족이자 황제의 사위인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프리드리히 4세를 자택에 초청하여 친목 연회를 열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4세는 연회장에 오던 중 복통 때문에 참석을 보류하고 황궁으로 돌어갔다. 그 사실이 궁내성을 통해 전달되자 사람들은 아쉬워하는 척 했지만 매력 없는 황제가 참석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자는 없었다. 그런데 황제가 돌아가고 얼마 뒤, 30년 전 온갖 굴욕을 맛보며 귀족사회에서 퇴출당했던 빌헬름 폰 클롭슈톡 후작이 황제 암살을 위해 설치한 폭탄이 폭발하여 자택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10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귀족 100여명이 죽거나 다치자 분노한 귀족들은 자발적으로 토벌대를 결성하여 클롭슈톡 후작을 응징하려고 했다. 특히 파티의 주최자이자 예비역 상급대장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밤에 찾아와 복수를 외치며 현역 복귀와 토벌군 사령관에 임명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프리드리히 4세도 복수심에 불타는 공작을 도저히 말릴 수 없어 토벌군 사령관에 임명했다. 이후 뒤늦게 정보를 입수한 라인하르트 폰 뮈젤도 같은 청을 올렸지만 프리드리히 4세는 라인하르트와 사이가 나쁜 플레겔 남작을 비롯한 귀족들이 다수 종군하는데 라인하르트가 지휘하기 어렵다고 기각했고 라인하르트도 인정하기 싫었지만 황제의 말이 옳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프리드리히 4세는 기왕 황궁에 왔으니 안네로제를 만날 것을 허락했다.
클롭슈톡 사건이 진압되면서 사태는 조용해지나 싶었더니 안네로제에 황제의 총애를 빼앗긴 주산나 폰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문제가 되었다. 라인하르트는 더 이상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음모를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후작부인을 헐뜯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 소문은 어느새 황궁까지 들어갔고 프리드리히 4세는 리히텐라데를 통해 시외에 있는 장원을 하사할 테니 황궁에 있는 저택을 나가 행복한 여생을 보내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분노하여 눈이 돌아간 베네뮌데 후작부인은 암살자를 고용하여 귀가하는 라인하르트와 안네로제 일행을 습격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의 신변을 예의주시하던 볼프강 미터마이어 소장과 오스카 폰 로이엔탈 소장에 의해 암살자들이 모두 잡히면서 실패하고, 후작부인의 측근 글레저 의학박사가 후작부인의 만행을 고백하면서 베네뮌데 후작부인은 위기에 몰린다.
이 모든 상황을 보고받은 프리드리히 4세는 포도를 먹으면서 "주산나가 그렇게까지 힘들었을 줄이야"라고 말한 뒤 멍을 때렸다. 리히텐라데는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지존의 총애를 잃고 분노한 것은 이상하지 않다며 총애할 대상을 자주 바꾼 프리드리히 4세를 애둘러 비판했지만 프리드리히 4세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괴롭지 않게 끝낼 수 있도록 하라"라고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혼잣말로 어차피 자신도 따라갈테니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 기다리라고 중얼거렸다.
"무훈을 기대하겠노라,
라인하르트 폰 뮈젤."
강렬한 개성도, 깊은 교훈도 없는 목소리가 수천 년에 걸쳐 관례가 된 문장을 허공에 읊조렸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소신,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이번에도 화려한 무훈을 세운다면 잔소리 많은 궁정 노신,老臣,들도 그대가 로엔그람 백작가를 잇는 데 불만을 품지 못할 게다. 작위와 지위는 공적의 결과로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니 말이다."
황제는 웃었다. 율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웃음소리가 라인하르트의 머리를 따끔따끔 찔렀다.
"백작가 정도는 누가 계승하고 누가 폐절해도 딱히 상관은 없다만, 상관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자들도 많거든."
금발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황제의 얼굴에 조심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영명하다고도 위대하다고도 평가하기 힘든, 말하자면 5세기에 걸친 전제정치의 시궁창에서 배출한 골덴바움 왕조의 노폐물 같은 제36대 황제. 권력과 부를 낭비하는 자. 그러한 인간이 그저 생각 없이 한 말이었을까.
문득 라인하르트는 바람의 존재를 느꼈다. 허무의 심연에서 몰아쳐 밀려드는 기류에는 젊은이를 전율케 하는 미립자가 실린 것 같았다. 취기의 잔재는 심신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래서 생각인데, 짐은 그대를 아예 후작으로 삼을까 한다만. 어떠냐?"
그날 황제는 황금색 머리카락의 청년을 잇달아 놀라게 했다.
"후작...... 말씀이십니까?"
"베네뮌데 후작가는 그대도 알 만할 사정으로 대가 끊기고 말았지 않느냐. 괜찮다면 그대가 이름을 이어, 제 몇 대손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베네뮌데 후작이 되지 않겠는가?"
라인하르트는 무어라 대답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황제의 발언은 지나치게 의표를 찔렀으며, 게다가 단순한 변덕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불투명한 요소가 많았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라인하르트의 정신세계 지평선에서 펼쳐졌다. 그는 압도당하고 있었다...... 황제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통찰하기 어려웠던 기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때 황제는 궁정 내의 평판이나 자신의 편견과 증오로 헤아릴 수 없는 윤곽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크나큰 영광이오나, 소신에게는 백작조차 분에 넘치는 지위이옵니다. 후작은 말하자면 구름 위의 신분인지라, 소신의 손이 닿지 않사옵니다."
"그래, 그리 생각하나? 후작은 고사하고 백작조차 분에 넘친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구름 위의 신분이라 생각한다?"
"......."
"황제는 후작보다도 높다는 것이 세간의 상식이네만, 경도 그리 생각하나?"
"......예."
화려한 황금색 머리를 숙인 채 라인하르트는 꼭 필요한 대답만을 했다. 황제에게 시험을 받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이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그의 마음속에서 나선형으로 얽히며 마찰을 일으켜 불꽃을 피웠다.
다시 황제가 껄껄 웃었다.
"그래, 그리 생각하나? 그럼 지금은 정려,精勵,(힘을 다하여 부지런히 노력함.)하여 백작을 목표로 하라,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여. 그리고 그 후에는 또 다른 것을 목표로 삼으면 될 터."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2권 <별을 부수는 자>, 김완, 이타카(2011), p.200~202
베네뮌데 후작부인이 사형당한 뒤, 프리드리히 4세는 출병을 앞둔 라인하르트의 출정 인사를 받았다. 여기서 프리드리히 4세는 무기력하고 방탕한 기존의 모습과 다르게 라인하르트의 의표를 찌르는 모습을 보였고, 라인하르트는 처음으로 프리드리히 4세의 의중을 읽지 못하고 압도당했다. 할 말을 마친 프리드리히 4세는 시종의 도움을 받아 술 취한 몸을 이끌고 퇴실했고, 라인하르트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지 못했다.강렬한 개성도, 깊은 교훈도 없는 목소리가 수천 년에 걸쳐 관례가 된 문장을 허공에 읊조렸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소신,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이번에도 화려한 무훈을 세운다면 잔소리 많은 궁정 노신,老臣,들도 그대가 로엔그람 백작가를 잇는 데 불만을 품지 못할 게다. 작위와 지위는 공적의 결과로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니 말이다."
황제는 웃었다. 율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웃음소리가 라인하르트의 머리를 따끔따끔 찔렀다.
"백작가 정도는 누가 계승하고 누가 폐절해도 딱히 상관은 없다만, 상관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자들도 많거든."
금발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황제의 얼굴에 조심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영명하다고도 위대하다고도 평가하기 힘든, 말하자면 5세기에 걸친 전제정치의 시궁창에서 배출한 골덴바움 왕조의 노폐물 같은 제36대 황제. 권력과 부를 낭비하는 자. 그러한 인간이 그저 생각 없이 한 말이었을까.
문득 라인하르트는 바람의 존재를 느꼈다. 허무의 심연에서 몰아쳐 밀려드는 기류에는 젊은이를 전율케 하는 미립자가 실린 것 같았다. 취기의 잔재는 심신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래서 생각인데, 짐은 그대를 아예 후작으로 삼을까 한다만. 어떠냐?"
그날 황제는 황금색 머리카락의 청년을 잇달아 놀라게 했다.
"후작...... 말씀이십니까?"
"베네뮌데 후작가는 그대도 알 만할 사정으로 대가 끊기고 말았지 않느냐. 괜찮다면 그대가 이름을 이어, 제 몇 대손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베네뮌데 후작이 되지 않겠는가?"
라인하르트는 무어라 대답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황제의 발언은 지나치게 의표를 찔렀으며, 게다가 단순한 변덕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불투명한 요소가 많았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라인하르트의 정신세계 지평선에서 펼쳐졌다. 그는 압도당하고 있었다...... 황제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통찰하기 어려웠던 기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때 황제는 궁정 내의 평판이나 자신의 편견과 증오로 헤아릴 수 없는 윤곽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크나큰 영광이오나, 소신에게는 백작조차 분에 넘치는 지위이옵니다. 후작은 말하자면 구름 위의 신분인지라, 소신의 손이 닿지 않사옵니다."
"그래, 그리 생각하나? 후작은 고사하고 백작조차 분에 넘친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구름 위의 신분이라 생각한다?"
"......."
"황제는 후작보다도 높다는 것이 세간의 상식이네만, 경도 그리 생각하나?"
"......예."
화려한 황금색 머리를 숙인 채 라인하르트는 꼭 필요한 대답만을 했다. 황제에게 시험을 받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이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그의 마음속에서 나선형으로 얽히며 마찰을 일으켜 불꽃을 피웠다.
다시 황제가 껄껄 웃었다.
"그래, 그리 생각하나? 그럼 지금은 정려,精勵,(힘을 다하여 부지런히 노력함.)하여 백작을 목표로 하라,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여. 그리고 그 후에는 또 다른 것을 목표로 삼으면 될 터."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2권 <별을 부수는 자>, 김완, 이타카(2011), p.200~202
3.5. 여명편
제국력 487년 3월 19일,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아스타테 회전에서 동맹군 2개 함대를 격파하는 전공을 세우고 귀환하자 프리드리히 4세는 노이에 상수시에서 만조백관이 모인 가운데 열린 원수 서임식에서 직접 임명장을 읽고 제국원수장을 하사하여 라인하르트를 제국원수에 서임했다. 또한 우주함대 부사령령장관에 임명하여 제국 우주함대 절반의 지휘권을 맡겼다.제국력 487년 5월 자유행성동맹군의 명장 양 웬리가 이제르론 요새를 무혈함락하자 깜짝 놀라서 궁내상서 노이쾰른을 시켜 리히텐라데에게 사태 설명을 요구했다. 리히텐라데는 신성불가침한 제국 영토가 외적에 침탈당해 황제의 신금을 어지럽한 것을 사죄했다. 요새 함락의 책임을 지고 제국군 3대 장관이 모두 사표를 제출했는데, 프리드리히 4세는 라인하르트를 불러 세 직위 중 어느 것이 탐나느냐고 마치 장난감을 고르게 하는 듯한 어조로 물어 리히텐라데를 당황하게 했다.[10]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직접 공을 세운 것도 아닌데 다른 이들의 자리를 빼앗을 수 없고,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한스 디트리히 폰 젝트 대장은 전사, 토마 폰 슈톡하우젠 대장은 포로가 되었으니 달리 죄를 물을 자가 없다고 3대 장관의 면책을 요청했다. 여기에 리히텐라데까지 찬동하자 프리드리히 4세는 리히텐라데의 건의대로 3대 장관의 녹봉을 1년간 반납시켜 유족 구제기금으로 전용시키고 세부사항을 리히텐라데에게 맡겼다.
알현이 끝나자 프리드리히 4세는 온실로 가서 장미를 가꾸었다. 그런데 리히텐라데 후작이 몰래 달려와 프리드리히 4세가 총애하는 라인하르트가 언젠가는 제국을 찬탈할지도 모른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던 프리드리히 4세는 "죽지 않는 인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멸의 국가도 없는 법. 짐의 대에 은하제국이 멸망한다 하여 안 될 도리라도 있느냐?"라도 답해 국무상서를 전율케 했다.
4. 죽음과 그 이후
|
프리드리히 4세의 장례식 |
'심장질환이라고......? 자연사란 말인가? 그 작자에게는 아깝기 짝이 없군.'
앞으로 5년, 아니 2년만 오래 살았더라면 그가 범한 죄악에 합당한 죽음을 안겨주었을 것을.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프리드리히 4세의 붕어,崩御, 소식을 듣고.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권 <여명편>, 김완, 이타카(2011) p.381
앞으로 5년, 아니 2년만 오래 살았더라면 그가 범한 죄악에 합당한 죽음을 안겨주었을 것을.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프리드리히 4세의 붕어,崩御, 소식을 듣고.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권 <여명편>, 김완, 이타카(2011) p.381
그렇게 방탕하게 살았던 프리드리히 4세는 우주력 796년, 제국령 침공작전이 진행되던 중 급성 심장질환으로 급사했다. 향년 63세. 암릿처 회전에서 승전을 거두고 오딘으로 귀환한 은하제국군은 오딘의 지표를 가득 메운 조기,弔旗,의 물결을 볼 수 있었다.
원작, OVA, DNT, 후지사키 류 코믹스 모두 프리드리히 4세가 죽었다고만 언급할 뿐 구체적인 묘사는 하지 않았지만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에서는 프리드리 4세의 임종이 확실하게 묘사된다. 암릿처 회전이 끝날 때쯤 노이에 상수시의 침대에 누워 죽어가던 프리드리히 4세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리히텐라데에게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이대로 짐이 죽으면 필시 분쟁이 벌어질 것이다"고 리히텐라데의 걱정을 정확히 지적한다. 이에 리히텐라데가 무엇보다 폐하의 건강이 걱정이라고 하자 갑자기 "정해 두었거든."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짐은... 무엇 하나 결정할 줄......'라고 생각하며 "후계자는 정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뒤 숨을 거둔다.[11]
어쨌든 프리드리히 4세가 죽자 라인하르트는 상술한 대사를 중얼거리며, 그에게 직접 복수하지 못한 아쉬움을 속으로 표했다. 키르히아이스도 똑같은 심경이었다고 한다. 한편 오베르슈타인은 대놓고 "황제는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채 죽었습니다."라고 말해서 라인하르트와 키르히아이스를 제외한 나머지 제독들을 놀라게 했다. 정작 오베르슈타인은 태연하게 본관이 충성을 맹세한 것은 어디까지나 로엔그람 원수뿐이므로 설령 황제라 해도 경어를 붙일 대상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고, 라인하르트도 제지하지 않았다.
오베르슈타인의 말대로 프리드리히 4세는 후계자를 정하지 못한 채 죽었다. 황태자 루트비히는 오래 전에 죽었고 황태자 사후 프리드리히 4세는 명확한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았다. 유력한 황위 계승권자는 황제의 손자 에르빈 요제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엘리자베트 폰 브라운슈바이크, 리텐하임 후작가의 자비네 폰 리텐하임이 있었는데, 셋 다 미성년자였다. 따라서 누가 제위에 올라도 누군가 뒤에서 섭정을 펼쳐야 했고, 오래 전부터 자기 딸을 제위에 올리고 싶어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는 발빠르게 움직여 귀족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제국재상 대리와 국무상서를 겸직하며 실질적으로 제국을 이끌어온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은 자신의 권력보전을 위해 골덴바움 왕조가 유지되기를 원했고, 그렇기에 강대한 세력을 가진 외척이 제국을 사유화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별다른 무력이 없던 리히텐라데는 황제를 옹립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력을 가진 인물이 필요했고,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바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백작이었다. 라인하르트도 당장은 리히텐라데의 권력이 필요했고 언젠가는 문벌귀족 세력과 대결해야 했으므로 리히텐라데의 제의를 받아들여 동맹을 맺었다.
동맹을 맺은 두 사람은 기습적으로 에르빈 요제프 2세를 황제로 옹립하여 정권을 장악했다. 라인하르트-리히텐라데의 신체제가 성립되자 소외된 문벌귀족들은 극도로 분노했고 마침내 하나로 뭉쳐서, 국정을 농단한 두 사람을 궁정에서 몰아낸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패배했다. 여기에 리히텐라데마저 라인하르트에게 제거당하면서 골덴바움 왕조는 라인하르트의 꼭두각시로 전락했으며, 카타린 케트헨 1세가 라인하르트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완전히 무너진다. 결국 프리드리히 4세는 골덴바움 왕조의 실질적인 마지막 황제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1]
하급 공무원인 키르히아이스의 아버지가 받는 연봉이 4만 제국마르크,
안네로제가 팔려간 뒤 받은 막대한 하사금이 50만 제국마르크였다. 고급 주점이라고 해도 어지간히 돈을 막 쓴 셈.
[2]
물론 후대인 라인하르트 때에도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처럼 귀족이 평민에게 채무를 져서 소송에 걸려 망신을 당하는 일이 있었지만, 이건
립슈타트 전역으로 문벌귀족들이 대거 몰락한 이후의 사건이고 프리드리히가 대공이었던 시절은 귀족들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골덴바움 시대였다. 심지어 황위 계승권까지 갖춘 직계 황자인 대공이 빚 독촉을 당했다는 건 프리드리히가 평민층에서조차 무시받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3]
300년 전에는 제국기사 작위로 귀족 신분을 하사받은 폰 베링이 재무상서까지 역임한 사례가 있었지만, 프리드리히의 시대에는 명예귀족이라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바닥까지 떨어져있었다.
[4]
54만 제국마르크라는 액수가 거액이긴 하지만 제국의 황족을 곤란하게 만들 액수는 절대로 아니다. 황실의 재산이나 본인의 사재로 감당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해도 황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는 황족인 이상 적당히 위세있는 귀족 가문에서 이를 해결해주는 것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닌데, 그 어떤 가문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은 당시 프리드리히의 인망이 떨어질대로 떨어져있었다는 것이다. 누구의 지지를 받고있지도 못하고, 황족인 자신과 친분을 목적으로 새롭게 나서줄 가문도 없었다는 것이니 프리드리히의 위치가 어디까지 비참한 처지였는지 알 수 있다.
[5]
페잔 자치령의 란데스헤르인
아드리안 루빈스키는 만약 프리드리히 4세가 사망하지 않고 더 오래 살았다면, 대귀족들의 권력이 소왕국을 건설할 수 있을 정도로 폭주했을 것이며 귀족들의 내부 분열로 제국이 와해되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6]
어처구니가 없긴 하지만 골덴바움 왕조의 황제들은 중기부터 그 통치가 썩 안정적이지 못했다. 하다못해 프리드리히 4세 역시도 클롭슈톡 사건이나 카스트로프 동란처럼 여러 지방반란에 시달렸다. 그러니 30년 넘게 재위하면서도 그래도 나라에 큰 탈 없이 그럭저럭 굴러가게라도 만든건 무능한 재능에 비해서는 중박은 친 셈이다.
[7]
사실 이건 단순히 프리드리히 4세의 취향이
소아성애적으로 바뀐 게 아니라, 권력에 때묻지 않은 소녀스러움과 순수함을 선호하기 시작했다고 보는게 옳다. 자신의 애첩이 되면서 사실상의 황후로 군림하며 권력욕에 조금씩 변질되어갔던 베네뮌데 후작부인은 갈수록 멀리했던 반면, 기존의 순종적이고 유순한 태도를 끝까지 유지한 안네로제는 자신이 승하하는 그 순간까지 곁에 두며 매우 아꼈다. 종합해보면 단순히 나이만 어린 게 아니라, 소위 '청초하고 순수한' 이미지의 여성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8]
딱히 외척을 중용하거나 정치적인 권력을 탐한 것은 아니지만 베네뮌데가 황제의 아들을 임신하여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가 격렬하게 대치 중인 차기 계승 구도를 뒤바꾸게 되자, 이후 베네뮌데는 황제의 아이를 임신하는 족족 의문스러운 사건으로 유산 및 사산하게 되었고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성격이 다소 히스테릭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9]
안네로제의 뛰어난 미모도 총애를 받는데 한몫 했겠지만 미인이라는 건 황제의 다른 애첩들도 마찬가지였을테고, 애초에 프리드리히 4세는 안네로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평생동안 여색을 탐하며 안네로제 수준의 미녀들을 질릴 정도로 보고 지냈다. 결국 안네로제의 미모보단 그녀의 유순하고 청렴한 성격이 총애의 결정적인 이유라는 것. 안네로제가 어떻게 보면 자신을 황궁으로 끌고온 원흉인 프리드리히 4세에게 이런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본인이 인정했듯이, 라인하르트와 키르히아이스의 장래를 위해서이기도 했고 그들 덕분에 시기질투가 난무하는 황궁에서 흑화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
다만 이것은 소설판 한정으로 OVA에서는 프리드리히 4세가 그냥 무덤덤하게 권유하기 때문인지 황당해하는 장면 없이 무덤덤한 표정의 리히텐라데 후작이 나오며 후지사키 류 코믹스 판에서도 프리드리히 4세가 어느 직함을 갖고 싶냐고 물었을때는 리히텐라데 후작은 무덤덤하게 있다가 세 직함 모두 겸임하는것은 어떠냐는 말에는 리히텐라데 후작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것 뿐이다.
[11]
대공 시절부터 황제가 된 뒤에도 후계를 둘러싼 암투에서 먼발치 떨어져 방관하기만 할 정도로 권력 투쟁을 싫어했기 때문에 후계자를 정함으로써 생기는 분란도 싫어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라인하르트를 보고
자신의 친우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답습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친우의 평가와 그외 여러가지 일 때문에 라인하르트를 실질적인 후계자로 삼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