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문 작은 열쇠

사람의 마음에는 문이 있다.
문이 열리지 않으면 마음과 마음은 통하지 않는다.
굳게 닫힌 그 문은 무거운 돌문일까.
아니면 오랫동안 여닫지 않아 녹슬어버린 철문일까.
하지만 그것이 벽이 아니고 문이라면 언젠가는 열릴 터.
굳게 닫힌 문을 열기 위해서는 주문이 필요할까.
혹은 열쇠가 필요할까.
그것들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모양이 아니다.
반드시 멀리 떠나야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곁에 있는데도 찾기 힘든, 그런 것도 있는 법.
하지만 설령 그것을 손에 넣는다고 해도 멋대로 손잡이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문을 외고 열쇠를 밀어 넣는 데까지.
저편에서 ‘들어오세요’ 하고 문을 열어주기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문은 영원히 열리지 않는다.

항상 미안해. 작년 그때, 너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웠어. 토코,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아도 좋아.

츠카사: 알고 있어. 후쿠자와 유미 상을 좋아하지? 네가 유미 상을 봐왔듯, 나는 줄곧 너를 봐왔으니까. 유미 상은 멋진 사람이야. 그러니까 유미 상의 쁘띠쇠르가 됨으로써 네가 행복해진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해 왔어. 때문에 이제껏 말하지 않았던 거고. 하지만 넌 유미 상에게 다가갈 때마다 상처받고 돌아오잖아. 참 이상한 일이지. 유미 상은 그 손에 칼 같은 건 전혀 들고 있지 않은데. 언제나 맨손인데.
토코: 분명, 저한테 문제가 있는 거겠죠.
츠카사: 알고 있구나. 그래. 네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유미 상과는 함께 걸어갈 수 없어.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자신을 바꿀 수 있다면 아무도 고생은 안 하겠지. 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기가 괴로워. 이제, 유미 상은 잊도록 해. 내가 지켜줄 테니까.

“그럼, 묻겠는데… 토코, 작년 여름에 어째서 캐나다에 가지 않았지? 유미 짱이 오가사와라 별장에 가는 줄 알고, 예정을 변경했잖아.”

“그 즈음에 고모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어. 삿 짱[3]이 유미 짱을 별장에 데려간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토코가 ' 캐나다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고. 나는 그때 토코가 유미 짱을 질투해서 둘 사이를 방해하려고 별장에 갈 결심을 했는 줄 알았어.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런 게 아니야. 토코는 유미 짱이 걱정돼서 따라간 거야. 별장지에서 만나는 아가씨들은 위험하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그 사람들은 심술을 부린다는 자각이 없는 만큼 성가시니까 말이야.”

“…그래. 너는 자기가 당한 일을 유미 짱도 겪게 될까 두려워한 거였어.”

토코: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하지 말아요.[7] 그 소리를 믿으란 말이에요? 믿었다 배신당할 정도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믿지 않는 편이 나아요!
카시와기: 아니. 넌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믿고 싶어 하고 있어. 도망치면서 쫓아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어. 언제까지 그렇게 도망치기만 할 거야? 그러다가 조만간 전부 지쳐서 아무도 따라오지 않게 된다고.

토코: 그런가요. 그런 거였나요. 내가 나라면 된다? 부모님은 관계없다? 역시, 그런 거였잖아요. 도대체 언제부터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쇠르를 제안하신 것도 결국은 저에 대한 동정심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죠? 역시 유미 님은 세라 크루에게 크리스마스 이브의 자선을 베풀고 싶으셨던 것뿐이에요. 제게 로사리오를 내미셨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으셨을까요.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유미 님이 저 같은 걸 쁘띠 쇠르로 바라실 리 없다고. 그런데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렸네요.
유미: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토코: 무의식적으로 그러셨다면 더더욱 나빠요.
유미: 있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야?[8]
토코: 오지 마세요! 그 이상 가까이 오지 마세요! 변명 같은 건 듣고 싶지 않아요.

“유미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생각에 유미는 분명 토코 짱의 그런 사정을 모르고 있어. 그리고 설령 우연히 알게 됐다 해도, 그런 것으로 토코 짱에 대한 평가를 바꿀 아이가 아니야. 그건 그랑 쇠르인 내가 가장 잘 알아. 그런데도, 줄곧 네 생각만 하는 유미가 너무 가엾구나.”

만일, 정말로 모든 것이 오해였다면 어떻게 하나. 내가 조금 전 유미 님에게 던진 말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돌이킬 수 있을까.

“하나, 둘, 셋….”
일단 숫자를 세보았다. 그건 유미 님이 가르쳐 준 마음을 진정시키는 주문이었다.
“열하나, 열둘.”
백까지 세고 나면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을까.
모르겠다. 그래서 일단 세보았다.
백을 세고 나서 눈을 뜬다 해도, 이 술래에게는 더는 찾아야 할 친구가 없을지도 모른다.
‘조만간 전부 지쳐서 아무도 따라오지 않게 된다고.’
언젠가 스구루 오빠가 한 말이 숫자 세는 것을 방해했다.
그렇게 의심만 하면서 누구에게든 칼을 들이댄다면, 정말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서른여덟… 서른아홉.”
토코는 지금 고독했다.
이 세상에는 누구나 혼자 태어난다. 그러니까 인간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양부모님 밑으로 왔다. 그래도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인간은 의외로 강한 것 같다고.
“마흔다섯.”
하지만 사실은 매우 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자기와 연결돼 있던 인연을 제 손으로 하나하나 끊어놓고서, 외롭고 외로워 견딜 수 없었다.
스구루 오빠가 말한 대로다.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믿고 싶다 생각하고, 쫓아와주리라 생각하면서 도망쳐왔다.
그래서 외톨이가 됐다면 그건 자업자득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쉰여섯.”
눈을 떴을 때 함께 놀던 친구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해도, 다른 누군가에게 불평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순넷.”
그래도 끝까지 셀 때까지는 알 수 없다. 정말로 모두가 사라져버렸는지, 눈을 뜰 때까지는 알 수 없다.
“일흔.”
숫자가 커짐에 따라 토코는 숫자를 세기가 두려워졌다. 백까지 세고 나면 눈을 떠야만 한다.
눈을 떴을 때 토코는 분명 학교 정원에 홀로 남겨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다.
숫자를 세기가 두렵다.
하지만 한번 시작한 이상 백까지 세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여든하나.”

“노리코! 노리코! 노리코! 노리코!”[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