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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틀리 왕국 15대 군주 ქაიხოსრო | 카이호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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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카이호스로 |
조지아어 | ქაიხოსრო | |
라틴어 | Kaikhosro | |
가족 |
레반(아버지) 투타 구리엘리(어머니) 바크탕 6세(형제) 다비트(형제) 도멘티오스 4세(형제) 흐바람제(누이) 예세(이복형제) 케테반(아내) 샤하나바즈칸(후궁) 다비트(장남) 샤나바즈(차남) 안나(장녀) 호레산(차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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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년도 | 1674년 ~ 1711년 | |
재위 기간 | 1709년 ~ 171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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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르틀리 왕국 15대 군주.2. 생애
카르틀리 왕국 12대 국왕 바크탕 5세의 삼남이자 13대 국왕 기오르기 11세의 동생인 레반과 투타 구리엘리의 아들이다. 형제로 바크탕 6세, 다비트, 도멘티오스 4세가 있었고, 누이로 흐바람제가 있었으며, 이복형제로 예세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사파비 제국의 궁정에서 자랐으며, 1700년 이스파한 지사를 맡아 1709년까지 맡았고, 1703년부터 1709년까지 대법원장을 맡았다. 1709년 기오르기 11세가 암살된 뒤 레반이 카르틀리 욍이 될 예정이었으나 7월에 이스파한에서 사망하면서 그가 카르틀리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카르틀리 왕국으로 돌아가는 건 허락받지 못했고, 형제 바크탕 6세가 그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1709년 아프가니스탄의 조지아 분견대 사령관을 맡아 반란 진압에서 활약했지만 1711년 9월 27일 칸다하르 근처에서 길자이족에게 참패해 30,000명의 병사와 함께 전사했다.그는 생전에 케테반과 결혼하여 다비트, 안나, 호레산, 샤나바즈를 낳았다. 그가 사망한 후 케테반은 장남 다비트와 함께 러시아로 이주했고, 예카테리나 이고리예브나로 개명했다. 1730년 5월 3일 러시아에서 사망하고 성 페터르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다비트는 모스코바에서 1738년까지 살다가 사망했고 돈스코이 수도원에 묻혔다. 안나와 샤나바즈는 기록이 남지 않아서 행적을 알 수 없고, 호레산 공주는 1710년 술탄 호세인 샤의 후궁으로 들어갔고 1727년 술탄 호세인이 사망한 뒤 에레반의 칸과 재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