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처칠 전차의 파생형을 정리한 문서.이하 파생형 이외의 내용은 퍼니전차 문서 참조.
2. 영국
2.1. 기술 기반 파생형
2.1.1. A43 블랙 프린스
|
Tank, Infantry, Black Prince (A43) |
2.1.2. 3인치 건 캐리어 (A22D)
|
|
Gun Carrier, 3in, Mk I, Churchill (A22D) |
그나마 생산된 전차들도 주포를 떼어내고 지뢰제거장비를 장착한 퍼니전차로 개수되어 훈련용으로만 사용되면서 실전에서 쓰이지 않았다.
|
단 4대가 남아있는 3인치 건 캐리어 중 하나의 잔해 |
2.1.3. A23 / A26 순항전차
처칠 보병전차의 크기를 축소하고 무게를 줄인 순항전차 버전들이다. 크롬웰 전차 개발 프로젝트에서 등장했다.A23의 경우 차체가 단축된 형태로 설계하려 했으며, A26은 처칠의 경량화 버전으로 기획되었다. 둘 다 기획 및 설계 단계에서 끝나고 생산되지 못했다.
2.1.4. FV3904
처칠 기반의 궤도형 병력수송장갑차.2.1.5. 처칠 캥거루
|
|
Churchill Kangaroo |
2.2. 장비 추가형
2.2.1. 처칠 오크
Churchill Oke처칠 Mk.2와 Mk.3 기반의 화염방사전차. 이후 처칠 크로커다일로 발전했다.
1942년 디에프 상륙 작전을 위해 개발되었으며, 설계자인 J.M. Oke 소령의 이름을 따왔다. 기본적으로 론슨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Churchill 전차였고, 화염방사용 연료가 들어 있는 탱크가 후면에 장착되었고, 여기에서 파이프가 차체 전면 좌측에 있는 고정 장착부로 이어졌기에 차체 기관총과 간섭하지 않았다. "Boar", "Beetle", "Bull"로 명명된 3대가 디에프 1차 상륙에 투입되었으나 금세 손실되면서 버려졌다.
2.2.2. 처칠 크로커다일
|
|
Churchill Crocodile |
이전부터 여러 전차를 기반으로 화염방사기를 다는 것을 시험한 영국군은 밸런타인 전차와 마틸다 전차에 이어 처칠 전차를 기반으로도 화염방사전차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최소 1분동안 80야드 사정거리에 화염을 직속분사할 수 있고, 안전상의 이유료 외장형 트레일러에 화염방사기 연료를 담은 차량으로 요구되었다. 그렇게 12대의 선행 모델이 1942년 7월에 주문되었으나 전쟁성 정책은 1942년 8월에 이 결정을 뒤집었다. 근거리에서 너무 취약하고 화염 방사기가 맨팩 또는 캐리어 유형이어야 했다는 이유였다. PWD는 연료 개선을 포함한 트레일러 및 장비의 개발 작업을 계속했고, 농축된 연료는 범위와 대상에 대한 효과 측면에서 더 나은 성능을 제공했다.
1943년에 퍼시 호바트 소장이 크로커다일 시연을 본 후 MoS에 개발 계획을 세우라고 명령했고, 참모총장은 79사단 계획에 화염방사기를 추가했다. 참모총장 Alec Richardson 소장의 왕립기갑군단 고문은 1943년 1월에 시제품을 보았고 3월에는 전쟁부에서도 시연했다. 이 프로젝트는 1943년 8월에 250대를 허가받았다. 시제품으로 군대 시험을 하기 전에 주문한 것은 1944년 프랑스 상륙 계획에 맞춰 유닛을 제작하기 위해 필요했다. 시제품은 10월에 제작에 들어갔고, 그 무렵 장비 설계를 수정하여 원래 설계 대상이었던 처칠 IV뿐만 아니라 신형 처칠 VII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기존의 Mk. IV에 맞아야 한다는 요구 사항은 이후 없어졌다.
기존의 처칠 전차에 화염방사기와 트레일러는 장착하는 개조 키트 형태로 생산되었고, 개조킷은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어 야전 정비부대에서 장착이 가능했다. 1944년에 배치된 이후 주문 수량이 750대로 늘어났고,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 배치하기 위해 200대가 더 주문되었다.
|
|
처칠 VIII 크로커다일의 연료탱크 |
화염 생성은 먼저 크로커다일의 주 연료탱크에서 온 휘발유를 사용하는 소형 분사기의 작동과 함께 점화 플러그에서 전기 점화가 시작되면 분사되는 주 연료에 불이 옮겨붙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발사시에는 연료 분사량을 조절하여 화염 강도와 사거리도 조작 가능했고, 그냥 연료를 뿌린 다음에 점화한 연료를 뿌려 불을 내는 것도 가능했다.
연료탱크 트레일러 자체에는 12mm 방탄 장갑을 적용하여 소총탄에 맞아도 연료가 유출될 염려도 없었지만, 그 이상의 성능을 내는 화기에는 파괴되었기에 전차로 트레일러를 가려서 보호했다. 수송시에는 전차만 HET로 옮기고 트레일러는 AEC 마타도어 트럭으로 따로 견인했다.
또한 주포를 그대로 남겨놓았기 때문에 전차전에서 일반 처칠과 동급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개발 단계에서 다양한 전차가 고려되었지만 최종적으로 선정된 전차는 처칠 VII와 처칠 VIII로, 가장 믿음직한 방호력을 가지고 있기에 선택되었다. 1942년부터 개발되다가 1944년 1월에 프로토타입이 배치되었고 완성형이 동년 4월부터 인도되었다. 제작된 총 800대 가운데 200대는 대일전에 쓰려고 남겨두었지만 실제로 쓰이지는 않았다.
가뜩이나 전차 상대하기도 벅찬데 약점인 연료탱크조차도 사실상 대전차화기 외의 모든 화기에 면역이었으니, 이런 무지막지한 장비를 상대하는 독일군은 말 그대로 버틸 수 없이 한 줌의 잿더미가 되어야만 했다. 영상
이 연료를 전부 소모하는데는 8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화염방사기는 짧게 짧게 끊어 쏘는거라 80초면 보병용 화염방사기보다 매우 오래가는 것이고, 연료보충도 타국 화염방사전차들은 후방으로 빠져서 연료보급을 받지만 크로커다일은 그냥 다 쓴 연료탱크를 떼어내고 예비 탱크를 연결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연료 보급 후 전선 재투입까지 걸리는 시간도 훨씬 짧았다.
한 일화로 독일군 중대가 숨어있는 헛간에 화염방사기를 쏘다가 연료 밸브가 고장나서 80초어치의 연료를 한방에 퍼부은 사태가 있었는데, 헛간은 흔적도 없이 불타서 전소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소수의 독일군 병사들은 지옥도를 목격하고는 힘이 빠져 기어가지도 못할 정도였으며 발사한 영국군 측도 아무리 적군이라곤 해도 이리 잔혹하게 죽여야만 했나?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이 화염방사 전차는 훌륭한 대화수단이었다고 한다. 한 번은 강화된 진지에 농성 중인 독일군들에게 항복을 권유해도 듣지않았는데, 크로커다일이 진지 앞에 있던 거대한 나무를 본보기로 순식간에 재로 만들자 얌전히 손들고 나왔다고 한다.[4]
당시에 나온 화염방사기중에는 상당한 사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최대 200미터까지 나갈 정도다[5]. 다만 200m는 과장되었고 실제로는 범위 100m대라는 기록도 있고, 실전 환경에서는 보통 73m에 그쳤다는 기록도 있다. 물론 이것만 해도 다른 화염방사기들 사거리는 가볍게 넘기는 수준이지만 말이다.[6]
연료 보급에는 최소 90분이 걸렸고 가압에는 약 15분이 걸렸다. 필요한 압력을 위해 승무원이 가능한 한 사용 직전에 가압했는데, 이는 압력을 오래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료는 보통 초당 4갤런(18L)의 속도로 소모되는게 예상되었다. 연료는 물에서도 연소 가능해서 숲과 집에 불을 지르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저격수나 MG42 사수가 연합군에게 극도의 혐오를 받고 보이는대로 사살당한 것처럼, 처칠 크로커다일의 승무원들도 생포당하면 사살을 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화염에 휩싸이고 자신이 " 산 채로 고통스레 불타 죽는다" 는 심리적 공포가 그만큼 심했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군들의 말에 의하면 매우 잔인한 병기라고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한국전쟁에도 투입되었는데, 화염방사기를 떼고 기관총을 장착하여 Mk VII 사양으로 운용되었다.
2차 대전 전후에는 처칠 전차들이 새로 개발된 센추리온 전차로 대체됨에 따라 처칠 크로커다일의 후속작으로 센추리온 기반의 크로커다일도 계획되었다. 센추리온 크로커다일의 개발을 위해 코멧 전차에 트레일러를 연결하고 주행하는 시험도 거쳤고, 센추리온 크로커다일 시제차도 만들어졌으나 결국 화염방사기의 짧은 사거리 때문에 변화하는 전장에서 쓰기에는 부적합한걸로 판명나면서 개발되지 않았다.
2.2.3. 처칠 ARV
|
Churchill Armoured Recovery Vehichle |
2.2.4. 처칠 교량전차
|
Churchill Bridge Layer |
처칠 Mk.3와 Mk.4 차체를 사용한 버전은 No.2 Bridge, Mk.7의 차체를 사용한 버전은 Bridge No.3로 명명되었다.
2.2.5. 처칠 ARC
Churchill Armoured Ramp Carrier |
2.3. 전투공병전차 파생형
2.3.1. 처칠 AVRE
|
Churchill Armoured Vehicle Royal Engineers |
18kg 25인치 230mm[7] 박격포탄으로 토치카나 대전차 장애물 등을 파괴하며 공병대에서 운용했다. 공병대 차량이니만큼 교량, 지뢰제거기, 상륙작전 때 해안에 캔버스 천을 '카페트처럼' 까는 '보빈'장비 등을 장착할 수 있다. 포탄을 장전하려면 포신을 위로 꺾어, 아래에서 탄을 밀어넣어야 했다. 때문에 포신 바로 아래에 자그마한 해치가 있어서 차내에서 그걸 열고 바로 포탄을 넣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대전기에는 대부분 Mk. III와 Mk. IV를 개조한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운용이 되었으며, 1947년에는 기존의 처칠 AVRE를 업그레이드하여 처칠 MK.VII를 기반으로 하고 주포를 165mm 구경 로열 오드넌스 L9 파괴포로 변경한 FV3903가 개발 및 생산되었다.
2.3.2. Ardeer Aggie
|
Ardeer Aggie |
2.3.3. FV3902 / Toad
처칠 기반의 지뢰 제거 차량으로, 마인 플레일을 장비했다. 엔진도 롤스로이스 미티어로 교체되었다.2.3.4. FV3903
|
FV3903 |
[1]
Mk.III로 추정.
[2]
주포 자체는 당시 만들어진 많은 무포탑 전차들처럼 약간의 상하좌우 선회 가동이 가능하다.
[3]
Fuel Research Aluminium Stearate
[4]
출처:
라이프 제2차 세계대전
[5]
이는 크로커다일에 탑재되는 라곤다 화염방사기가
대공용 화염방사기를 만들려는 시도 끝에 나온 물건이기 때문이다.
리벤스 화염방사기만큼은 아니어도 이놈도 참 만만찮은 녀석이다. 어쨌든 덕분에 화염방사기 최대의 단점인 사거리 문제를 개선시킬 수는 있었지만, 정작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화염방사기는 대공용으로 부적합하다는 것만 확실하게 증명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6]
당시 보병용 화염방사기가 대부분 20m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고 차량용 화염방사기도 기껏해야 50m 전후였다.
[7]
과거 여러 매체나 서적까지도 290mm로 언급할 만큼 잘못 알려졌었으나, 실제 구경은 230mm이다. 290mm는 이 포의 명칭인 Mortar, Recoiling, Spigot, 29mm에서 29mm가 오독, 와전된 것이다. 이 29mm는 발사봉인 '스피곳'의 지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