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에 대한 내용은 정성현 문서 참고하십시오.
2002년 촬영된 사진 | |
이름 | 정성현 |
출생 | 1969년 7월 14일 ([age(1969-07-14)]세) |
충청남도 보령군 (現 보령시)[1]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2남 1녀 중 장남 |
신체 | 170cm, 68kg |
학력 | 대림대학교 ( 컴퓨터과[2] / 전문학사) |
범죄유형 | 연쇄살인, 강간살인, 아동 성폭행 |
형량 | 사형 (형집행 무기한 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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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7년 12월 25일에 두 명의 초등학생을 성폭행 시도하다가 죽여 토막낸 뒤 암매장한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2. 생애
1969년 7월 14일 충청남도 보령군(현 보령시)에서 버스 운전기사인 아버지하고 미용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유년 시절 서울로 상경한 이후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상위권 성적을 기록하며 특별한 문제 없이 잘 컸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가정불화가 시작되었고, 결국 고1 때 부모의 이혼을 겪게 된다.
그 후 어머니는 정성현 곁을 떠나고 아버지는 어린 3남매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는지 새어머니를 들여 재혼을 하게 된다.
새어머니하고 같이 살기 시작한 정성현은 '어머니에게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게다가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이에 이복남매 2명이 생기게 되자 두려움이 더욱 커졌다고.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이복 형제들을 편애한 것으로 인해 심한 폭력이 더해져 비정상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모양. 정성현은 유년기에도 아버지로부터 폭력과 학대를 당하였으며 초등학교, 중학교 재학 당시에는 동급생들로부터 집단따돌림에 시달리는 바람에 결국 고등학교 생활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충동적인 성격을 갖게 됐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인 1987년에는 대림대학교 컴퓨터학과에 합격하였고 이후 군 부사관에 지원해 5년 후 제대한 뒤 대학교도 별 문제 없이 졸업을 했다.
이후에는 폭행 등으로 인해 몇 개의 전과가 있었는데 1998년 8월 한 여성에게 만나 줄 것을 요구하며 스토킹했으며 이 여성의 남자친구까지 폭행해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혀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몇 달간 교도소 생활을 했다.
정성현은 3명의 여성과 꽤 깊은 만남을 가졌다. 심지어는 결혼을 전제로 사귄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 모두에게서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은 후부터는 정상적인 이성 교제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모두 정성현의 일방적인 진술이니 걸러들어야 한다. 정성현의 일방적인 스토킹이었을 수 있다.
2006년에 동거녀[3]가 사망했다. 사인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간질환. 당시 37세였던 정성현은 동거녀가 죽은 뒤 혼자 살면서 야동에 탐닉했다. 10여년간 수백편의 아동 포르노[4]를 포함해 1400여개에 달하는 야동과 1만여개의 음란사진 및 여자를 성폭행하고 살해하는 과정이 담긴 스너프 동영상 등을 컴퓨터로 수집해 반복 시청해 오면서 불특정 여성을 상대로 강제로 성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아동 포르노 소지 사실이 드러나자 정성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입니다. 형사님도 포르노 보면 더 자극적인 거 원하잖아요?'라며 오히려 당당했다고 한다.
검거 이후 측정된 IQ는 121로 살인 범죄자들 중에서 꽤 상위권이었다. #
3. 범행
3.1. 군포 부녀자 상해치사 사건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사건 발생 4년 전인 2004년 7월 17일 새벽 1시 경 경기도 군포시의 한 전화방을 찾은 정성현은 도우미인 정모(43, 1961년생)씨와 전화로 음담패설을 나누면서 성적 흥분을 느꼈다. 당시 36살이었던 정성현은 자신보다 8살 많은 정씨에게 성매매를 제안했다. 정씨가 동의하자 두 사람은 금정동 금정역 인근 W 모텔에서 만나 성관계를 시도했는데, 그녀가 대가를 너무 많이 요구한다는 이유를 들어 정성현이 거절하자 정씨는 그를 모욕했고 분노한 정성현은 수차례 폭행했다. 결국 정 모씨는 사망했고 정성현은 사망한 정 씨의 시신을 집 근처 야산 등에 유기했다. 물론 이 경위와 원인도 정성현의 일방적인 진술에 의거한 것이므로, 걸러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5]정씨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정성현에게 주먹으로 얻어맞은 정씨가 방바닥으로 넘어지면서 발생한 뇌출혈이었다. 정성현은 7월 17일 새벽 2시쯤 시신을 모텔에서 끌고 나왔으며, 모텔 주인은 그저 술에 만취한 그녀가 정씨의 등에 업혀 나갔나 보다 여겼지만 사실 정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정성현은 모텔 근처 골목에 숨진 정씨를 잠시 앉혀 놓은 다음 차를 가져와 시신을 집으로 옮겼다. 이로부터 4년 뒤 그가 두 어린이들에게 저지른 범행방식과 같은 방식이다. 시신을 토막낸 정씨는 시신을 검은색 비닐봉지에 나눠 넣고 집 근처 야산에 묻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다시 그는 야산으로 가 묻혀 있던 그것들을 꺼내어 군포시에 있는 다른 야산에 옮겨 암매장했다.
정씨가 실종된 바로 다음 정씨가 정성현과의 마지막 통화 이후 종적을 감췄음을 확인한 경찰은 정성현을 소환했다. 경찰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통해 거짓 반응까지 얻어냈지만, 정성현은 " 대리운전 때문에 통화한 것"이라고 진술하며 완강히 부인했다. 또 휴대전화 위치확인 시스템 등을 근거로 알리바이를 입증하자 하는 수 없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이 사건은 살인이 아니라 상해치사로 결론지어졌다.
3.2.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
자세한 내용은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4. 이후
재판 중 초등생 피해자 중 우 양에 대해 "유기된 시신을 다 찾지 못하고 장례식을 치룬 일에 대해 깊이 사죄한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악어의 눈물이었다. 사형수로 수감 중에 자기에 대해 보도한 언론을 비롯하여 담당 형사, 교정직 공무원까지 꼬투리만 잡히면 무차별적으로 고소와 민사상 소 제기, 심지어 행정소송까지 온갖 사법구제절차를 남발( 남소)하고 있다고 한다. 전혀 반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 이런 소송은 모두 기각되었다. #2010년 3월, 전 국민적인 사형집행 요구와 당시 법무부의 강력한 사형 집행 의지로 유영철 등과 함께 사형 집행이 검토되어 사형당할 뻔 했지만 당시 청와대가 반대해 무산되었다. 만일 청와대의 반대가 없었다면 그의 사형이 집행되었을 것이다.
2023년, 유영철, 정두영 등 이미 사형 대기 중인 연쇄살인범들이 서울구치소로 이송되었을 때도 정성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이미 정성현은 서울구치소에서 쭉 수감 중이었기 때문. 만약에 이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다면 그 때쯤에 정성현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
5. 기타
- 범행 당일 정성현과 같이 술을 마시던 선배 A씨에 따르면 정성현과 그는 전문대 야간을 다니면서 서로 알게 되었는데 어느 학생의 "옆반에 술 주벽이 심한 놈이 하나 있다"는 말에 역시 술을 좋아하는 그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관계가 시작됐다. 그 이후 우연히 정성현과 술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고, 일정량의 주량을 초과하면 사람들을 괴롭히고 밤새도록 끌고 다니는 행동을 하는 등 주벽을 부리는 정성현과 형, 동생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정성현은 주벽이 심할 때면 교수에게 폭언을 가했다고도 했으며, 주먹 힘마저 차 유리를 뚫을 정도로 셌다고 한다. 또 동네에 고양이가 시끄럽게 군다고 잡아서 목을 졸라 죽였다고 선배와의 술자리에서 얘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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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선배는 정성현이 사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소프트웨어 관련한 회사를 조그맣게 운영한다고 하는데, 손재주가 제법 있어 동네에 버려진 스피커가 있으면 주워다가 개조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선배의 회사 컴퓨터를 곧잘 고쳐주기도 했다고 한다. 사건 다음날에도 범행에 사용했던 차에다가 회사 컴퓨터를 운반했다고 한다. 선배 말로는 차량의 겉은 깨끗한데 속은 엄청 낡았다고 한다.
-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떠[A] 화제가 되었다.[A]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의 진범과 정성현은 차이점이 있어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일축했다. 그리고 경찰은 2019년 9월에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의 진범임을 밝혀냄으로서 범인이 아님이 확정되었다.
- 귀귀의 웹툰 뉴 바이블 8~9화에서 등장하여 사형수 8인의 데스매치 토너먼트에 참여했다. 상대인 이향열이 모래를 흩뿌려 시야를 가리는데 도리어 본인도 시야가 가려져 혼란스러워하는 뻘짓(...)을 하자 그 틈을 타 당수로 이향열의 목을 부러뜨려 이기지만, 곧이어 정성현을 견제하던 두 사형수 정남규와 강호순이 다구리를 치자 그들을 못 이기고 과다출혈로 사망하여 최후를 맞았다.